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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바디헤드(Body/Head) - The Switch

 

인생명반 에세이 47: 바디헤드(Body/Head) - The Switch

 

[ 고요히 흐르는 혼돈의 추상화 ]

 

 

아방가르드

 

20세기 이후로 사회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속도로 급변하기 시작했다. 이런 급변하는 사회는 고스란히 예술계로 전해졌고, 이는 곧 다양한 예술적 실험을 낳았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추상화(抽象畵, Abstract Painting). 여기에 대표적 화가로서 러시아의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네덜란드의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미국의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등이 있다. 추상화의 등장은 당시 시대상과 무관하지 않은데, 많은 사람들이 종교나 군주제 등으로 대표되는 기성 체제에 극심한 회의를 느낄 시기였고, 여기에 대한 대변혁을 요구하던 시기였다. 이런 사회 분위기가 미술까지 영향을 주면서, 추상화라는 과격한 양식이 생겨났던 것이다.

 

추상화는 회화(繪畫, Painting)에 있어 입체성과 서사를 배제하여 가장 순수한 회화를 지향한다는 특징이 있다. 회화란 평면으로 표현하는 예술이기에, 평면에서만 할 수 있는 것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추상화가 등장했던 것이다. 입체성은 조소(彫塑, Sculpture)의 산물이고, 서사는 문학의 산물이기 때문에, 지극히 평면의 예술을 추구하는 추상화야 말로 가장 순수한 회화라는 의견도 있다. 추상(抽象, Abstract)이란 형상(形象, Form)의 대척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형상은 눈에 보이는 것을 뜻하며, 추상은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이나 관념 등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추상화는 눈에 보이는 것을 묘사하는 것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묘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림이란 눈에 보이는 것인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건 추상화가 가진 필연적 모순이겠지만, 이런 양식이 20세기의 급진성을 대표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예술적 급진성을 아방가르드(Avant-Garde)라고 한다.

 

 


▲ 잭슨 폴록 작품 “Eyes in the heat

 

미술에도 추상화로 대표할 수 있는 아방가르드가 드러났는데, 음악에도 그런 아방가르드가 있었을까? 당연히 있었다. 기존의 리듬과 멜로디라는 요소를 배제시키고, 의미 없는 소리들만 나열하는 형식의 음악을 시도한 뮤지션들이 있었다. 루 리드(Lou Reed)1975년 앨범 “Metal Machine Music”이나 동년에 발표된 브라이언 이노(Brian Eno)“Discreet Music” 앨범을 들어보면 당시 음악계가 가지고 있던 급진성을 엿볼 수 있다. 그 이전에 1952“433라는 곡을 발표한 존 케이지(John Cage)도 빼놓을 수 없다. 이 곡은 존 케이지가 주장했던 우연성의 음악을 잘 드러내는 그의 대표작으로, 433초 동안 피아노 앞에서 앉아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곡이다. 433초 동안 흐르는 침묵 사이에도 주변에서는 발소리, 숨소리 등이 섞이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음악이 된다는 주장을 표현한 곡이다. 곡이라기 보단 행위예술에 더 가깝게 느껴지지만, 이런 존 케이지의 발상이 음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셈이다.

 

 

가장 순수한 음악

 

이런 선례들에도 불구하고 음악의 아방가르드는 미술의 아방가르드에 비해 주목을 덜 받는 느낌이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추상화는 그저 들여다보면 끝이지만,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 긴 시간 동안 의미 없는 소리들만 나열되는 걸 반가워할 사람은 별로 없다. 그나마 추상화는 아무렇게나 펼쳐진 선과 색들이 눈이라도 즐겁게 만들어주지, 아방가르드 음악은 그야말로 소음이 따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음악에 아방가르드를 시도하려는 뮤지션은 소수지만 꾸준히 등장했고, 그런 흐름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어찌보면, 80년대 후반에 등장해 90년대 초중반 전성기를 맞이한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이 아방가르드 음악으로서 대중에게 다가간 첫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초창기 얼터너티브 록 밴드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밴드인 픽시즈(Pixies)나 소닉 유스(Sonic Youth)를 들어보면, 펑크로도 메탈로도 정의할 수 없는 해괴한 록 음악을 느낄 수 있다.

 

 

 

▲ 킴 고든

  

이 둘로부터 시작된 음악적 실험은 너바나(Nirvana)를 통해 좀 더 팝에 가까워지며 대중에게 널리 퍼지게 되었다. 소닉 유스도 거꾸로 너바나로부터 영향을 받아 자신들의 음악에 좀 더 팝의 색채를 가미하며, 대중에게 좀 더 다가갔다. 1990년 앨범 “Goo”1992년 앨범 “Dirty”에서 그런 모습을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1994년에 나온 다음 앨범 “Experimental Jet Set, Trash and No Star”에서 소닉 유스는 점차 다시 아방가르드로 회귀했고, 1995년 그 다음 앨범 “Washing Machine”에선 팝보다 아방가르드를 먼저 내세운 것처럼 들리는 음악성을 가지게 되었고, 1998년 앨범 “A Thousand Leaves”2000년 앨범 “NYC Ghosts & Flowers”에서는 팝의 색깔을 완전히 덜어낸 아방가르드를 선보였다. , 아방가르드는 소닉 유스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다.

 

세월이 흘러 2011년 소닉 유스는 핵심 멤버인 킴 고든(Kim Gordon)과 서스턴 무어(Thurston Moore)의 불화로 해체하게 되었고, 둘은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운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킴 고든은 기타리스트 빌 네이스(Bill Nace)와 함께 2인조 밴드 바디헤드(Body/Head)”를 결성하며, 소닉 유스보다 훨씬 철저하게 음악적 아방가르드를 추구하게 되었다. 2013년 그들의 첫 번째 정규앨범 “Coming Apart”가 발표되었는데, 이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싸늘했다. 1번 트랙 “Abstract”은 제목부터 이 밴드가 지향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말하고 있다. 음악이란 원래 미술에 비해 추상적 성격이 강한 예술이지만, 기존 음악에 잔존하던 서사적 형상적 요소들을 더욱 철저히 배제하며, 음악이 가진 추상적 성격을 극대화시켰다. 멜로디와 리듬을 거의 느낄 수 없으며, 가사가 있음에도 그 가사가 정확히 뭘 말하는지 파악하는 게 힘들었다. 그러나 소닉 유스의 앨범을 초기부터 후기까지 골고루 들어온 코어 팬들에게선 이들의 도전정신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그들에겐 바디헤드의 음악이 소닉 유스의 이름으로 쌓아온 명성을 향해 완전한 작별을 고하며, 더 이상 소닉 유스의 명성에 의지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들렸다. 다른 한 편으론 소닉 유스 시절 추구하던 아방가르드의 극대화를 의미하기도 했다. 그야말로 상업성을 철저히 배제한 가장 순수한 아방가르드로 들렸다는 것.

 

 

 

▲ “Coming Apart” 앨범, 1번 트랙 “Abstract”

 

 

순수를 추구하는 자는 폭력적이다

 

바디헤드는 대중의 싸늘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2018년 정규 2“The Switch”를 발표한다. 멜로디와 리듬을 붕괴시키는 음악성이 대중의 외면을 받는 주요한 요소였는데 “The Switch”에선 오히려 거기서 더욱 철저히 멜로디와 리듬을 부숴버린다. 정말 “Coming Apart” 앨범 수록곡들조차도 이보다 멜로디와 리듬을 더 붕괴시킬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였는데 말이다. “Coming Apart”에선 그나마 보컬이라도 또렷하게 들렸는데, “The Switch”에선 보컬조차 뭉개져서 가사도 잘 들리지 않는다. 전작에선 기타 연주가 그나마 친다는 느낌 정도는 있었는데, 이 작품에선 이게 과연 연주라고 부를 수 있는 건가 싶은 의문까지 들 정도다. 기타를 치는 게 아니라, 기타를 괴롭히는 것처럼 들릴 정도며, 기타 연주가 아닌 기타의 비명소리를 녹음해놓은 것 같다. 루 리드의 앨범 “Metal Machine Music”에 비하면 다채로운 구성을 선보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조차 기성 음악들과는 한참 떨어진 형태를 취하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음악을 만드는 걸까. 듣고 있으면 귀가 괴로울 뿐이지 않은가. 저번 앨범도 충분히 귀가 괴로웠지만, 이 앨범은 그보다도 더 괴롭다. 내가 아무리 소닉 유스의 열성팬이라지만, 이건 못 견디겠다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런데, 마법처럼 바디헤드의 곡들이 내 귀에 좋게 들리기 시작했다. 무슨 계기가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단 한 가지 분명한 건, 이제 나는 그들의 음악을 통해 노이즈보다 순수함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이다. 순수함, 그것은 언제나 순종적이고 얌전한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종교나 철학으로 가보면, 오히려 순수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훨씬 과격하고 반항적인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 바디헤드 멤버들, 좌측부터 킴 고든(기타, 보컬), 빌 네이스(기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다. 사실 이 세상 자체가 순수한 세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온갖 거짓과 욕망으로 뒤틀리고 더렵혀진 것이 세상인데, 이런 세상에서 둥글게 살아가려면 세상에 만연한 거짓과 욕망에 익숙해져야만 한다. 이런 세상에서 순수를 지킨다는 건 곧, 세상에 만연한 거짓과 욕망에 맞서 싸우는 것을 의미하며, 싸움은 곧 반항과 폭력을 동반하게 되어있다. 바디헤드가 내뿜는 귀 아픈 소음들은 상업에 물든 음악들을 향한 투쟁의 결과물인 셈이다. 바디헤드는 더욱 순수해지고 싶었고, 순수해지고 싶은 만큼 기성 음악을 이루는 요소들을 더욱 철저히 배제해나갔다. 그런데, 이런 음악이 실험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아무래도 우리가 기성 음악을 들으며 느끼던 감성과 위로를 얻기는 힘들지 않을까? 놀랍게도, 이런 극도의 아방가르드를 추구하는 음악에도 감성이 있다. 추상화에도 멋이 있듯이 말이다. 다만, 그 감성과 멋이 기성의 작품들과 많이 다를 뿐이다. 기성 작품들과 차별화된 감성과 멋을 가진 탓에 친해지기는 힘들어도, 일단 친해지기 시작하면 내 마음에 가장 깊게 다가오기도 한다.

 

 

감정의 근원

 

“The Switch”는 감정의 근원에 관해 말하는 앨범이다. 사실 감정이란 처음 우리 안에서 형성될 때는 언어의 형태로 오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덩어리로 올 뿐이고, 우리는 이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 이성을 사용해 해석하면서, 그 때서야 감정에 언어가 부여될 뿐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성을 통해 서툴게 번역한 감정을 남들 앞에 표출할 수 있을 뿐이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문예든, 이 모든 게 이런 감정의 언어들을 남들 앞에 전시하는 연장선인 셈이다. 그런데, 바디헤드의 음악은 언어로 해석되기 전,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감정을 그대로 발산한다. 이들의 음악은 쉽게 해석되지 않을뿐더러, 해석을 철저히 거부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내가 이렇게 글로써 해석을 시도하는 것조차 미안하게 느껴질 정도다. 그러나 이게 글쟁이의 아픈 숙명이지 않겠는가.

 

 

 

▲ 2번 트랙 “You Don’t Need”

 

해석이 잘 되지 않는 음악이지만, 일단 듣고 있으면 이 음악이 표출하는 감정이 그다지 긍정적인 것은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다. 감정이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누워만 있을 때에도 끊임없이 자신만의 흐름을 가진다. 따라서 이 앨범 속 음악도 나름의 흐름을 갖고 있다. 물론 그 흐름을 읽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반복청취를 하다 보면, 그 안에서도 나름 구성을 느낄 수 있다. 이 앨범은 오직 5개의 트랙만 존재할 뿐이지만, 총 재생시간은 38분으로 정규앨범으로서 딱 알맞은 길이를 지니고 있다. 1번 트랙 “Last Time”은 부유하는 혼돈이 느껴지고, 2번 트랙 “You Don’t Need”에선 좀 더 거칠어진 사운드를 들려주며 가중되는 혼돈을 표출한다. 3번 트랙 “In the Dark Room”에선 날카롭게 변한 사운드가 청자의 신경을 긁으며 다가온다. 4번 트랙 “Change My Brain”에선 해체와 결합을 반복하는 감정의 움직임이 느껴지며, 5번 트랙 “Reverse Hard”는 이 모든 것이 절정에 이르러 서서히 폭발을 향해 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글쟁이로서 나름의 해석을 내려 보았지만, 이 작품을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이 어찌 가능하랴. 그러나 이 앨범은 청자들에게 묻는다. 꼭 정확하게 해석될 수 있는 작품만이 가치 있는 작품이냐고. 해석되지 않는 감정도 존중 받을 가치가 있지 않느냐고. 모든 것을 정확하게 해석하려 들지 말라고. 이것은 얼핏 공격적으로 들릴 수 있는 질문이긴 하지만, 나조차 스스로 해석되지 않는 감정에 빠졌을 땐, 내가 오히려 타인을 향해 이런 질문을 뱉는 사람이 된다. 이럴 때, 이런 해석 불가능한 음악이 존재한다는 게 얼마나 큰 위안인가. 나조차도 해석할 수 없는 감정에 빠졌을 때, 나는 이 앨범을 듣는다. 이 앨범과 함께, 해석할 수 없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둔다. 그럼 어느 샌가 그 감정은 나를 떠나게 된다. 그리고 깨닫는다. 내가 그런 감정을 억지로 해석하려 파고들었다면, 오히려 더 화가 나고 더 피곤해졌으리라고. 대중의 외면을 받으면서도 음악의 순수성을 되찾으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바디헤드 멤버들에게 감사한다. 이들의 열정 있는 행보를 통해, 나는 나 자신을 해석하지 않는 채로 내버려둘 수 있는 자세를 배운다. 그렇게 나는 힘겹게라도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트랙리스트


1. Last Time

2. You Don’t Need

3. In the Dark Room

4. Change My Brain

5. Reverse H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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