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명반 에세이 102: 영화 “레토(Leto)” 사운드트랙
추운 나라에도 여름이 오듯, 차가운 세상에도 젊음은 튀어오른다
■ 죽고 싶은 청춘
“빌리는 자살할 거라며 밤새 떠들었어. 25살에 머리를 날려버리겠다며, 25살까지 살기 싫다고 했어.
Well, Billy rapped all night about his suicide. How he'd kick it in the head when he was 25. Speed jive, don't want to stay alive, When you're 25.”
모트 더 후플(Mott the Hoople) 노래 “All The Young Dudes” 첫 소절이다. 나는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노래로 처음 알았는데, 정작 이 노래를 더 좋아하게 된 계기는 따로 있었으니, 영화 “레토(Leto)”를 보고 좋아하게 되었다. 영화 속에서 처음 보는 밴드가 이 노래를 부르는데, 관객들은 온통 술과 담배와 섹스에 절여져 엉망진창 뒤엉키고 있었다. 그런 풍경이 혼돈보단 새로운 질서처럼 보였고, 새로운 질서는 새로운 평화를 가져다주었다. 노래는 원곡보다 훨씬 아련한 음색으로 편곡되어, 그 풍경이 더욱 편안하게 다가왔다.
25살에 죽는다? 뭐, 나는 그렇게 일찍 죽고 싶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커트 코베인보다 오래 사는 인생은 아무 의미도 재미도 없다고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커트 코베인은 27세에 죽었다. 지금 나는 커트 코베인보다 나이가 많아졌다. 올해도 겨우 세 달 정도 남았는데, 올해에 들어서며 나는 김광석보다도 나이가 더 많아졌다. 청춘, 내 청춘에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돌아보면 청춘이라는 낱말처럼 사회가 미화시킨 낱말은 또 없는 것 같다.
청춘이라고 하면 20대를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20대를 사계절에 비유할 땐, 청춘(靑春)이란 말이 원래 가진 뜻과 달리, 봄보다는 여름에 자주 비유된다. 20대라고 하면 아무래도, 신체적으로 이제 막 다 자란 때고, 인생에서 가장 혈기왕성한 때이니, 인생에서 가장 치열한 시절이기도 하겠다. 그런 치열한 성질이 여름과 무척 닮았다. 푸른 봄이란, 인생의 여름이기도 하다. 20대, 청춘이란 정말 인생의 아름다운 시절인가. 혈기왕성한 아름다운 시절에, 그들은 왜 벌써 인생을 지겹다고 느끼고, 죽고 싶다고 떠들까.
■ 퇴폐와 로큰롤에 절여져 살아가는 청춘 악동들의 이야기
우선, 앞서 언급한 영화 “레토”를 알아보자. 이 영화는 퇴폐와 로큰롤에 절여져 살아가는 청춘 악동들의 이야기니까. 이 영화 제목도 러시아어로 ‘여름’을 뜻한다. 이 영화는 러시아 영화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Кири́лл Сере́бренников) 작품이며, 2018년 개봉했다. 작품의 배경은 1980년대 소련 레닌그라드. 그곳에서 활동하던 록 가수 빅토르 초이(Виктор Цой), 마이크 나우멘코(Майк Науменко)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영화이며, 실제로 빅토르 초이는 소련 록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칭송 받는 밴드 “키노(Кино)”의 창시자다. 이 영화는 빅토르 초이 전기 영화 성격을 띠고 있지만, 역시 영화라서 실제와는 많이 다르다. 그러나 키노 음악과 빅토르 초이의 매력에 빠지기엔 충분히 훌륭한 작품이다.
소련 록 음악이라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생소한 것이 지금 현실이다. 그도 그럴 게, 소련에서 록 음악은 검열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소련이 자국민들의 사상을 얼마나 심하게 통제하고 세뇌했는지, 냉전 시대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그런 냉전 시대 소련의 풍경을 보여주듯, 영화의 시작은 록 공연장 안에 직원들이 관객들의 호응마저 검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관객들은 공연 도중에 춤추는 것도 금지, 팔을 뻗는 것도 금지, 현수막을 드는 것도 금지, 노래를 크게 따라 부르는 것도 금지된다. 그나마 그들에게 허용된 호응이란, 노래가 끝날 때마다 뻣뻣하게 앉아서 박수나 치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공연장 직원들이 보지 않는 구석, 무대 뒤 풍경은 뻣뻣하고 답답한 객석과는 다르다. 객석과 무대 뒤 풍경의 강렬한 대비를 영화는 이런 대사들로 보여준다.
“마이크, 진짜 끝내줬어. 진짜 예술성 없고, 리듬도 끔찍하고. ‘쓰레기’는 히트할 거야. 관객 절반이 따라 부르더라.”
“술 줘?” “좋지.”
“딴 놈들은 여자 품던데, 우린 맨날 술이냐. 일리야, 미쳤어? 대마 냄새 복도까지 나.” “냄새 좋잖아.”
소련의 록 음악 탄압 행태를 알 수 있는 장면이 또 하나 있는데, 마이크와 빅토르가 친구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가는 장면이다. 그들에게 한 노인이 다가와 시비를 건다. 그들의 옷차림, 머리모양,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미국놈들을 떠받들다니, 조국이 너희들 교육도 시켜줬잖아. 뭐 하라고 가르쳤을까? 집을 짓고 가정도 꾸리고 나무도 심으라고. 근데 짐승마냥 소리나 지르고!”
이렇게 노인이 먼저 그들에게 시비를 걸어도, 거기 있던 경찰은 오히려 노인 편을 든다. 이런 소련의 탄압 속에서도, 빅토르와 마이크가 로큰롤을 멈출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나는 이 영화를 보면 떠오르는 다른 영화가 있는데, 한국 영화 “고고70”이다. 2008년에 개봉한 영화로, 이 영화는 한국의 1970년대를 배경으로, 군부정권의 대중음악 탄압을 다룬 작품이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소련과 한국은 정반대의 체제를 운영했지만, 어찌 청춘을 억누르는 모습은 이토록 닮았는가. 늙은이들이 차지한 세상이란, 청춘의 방황을 허용하지 않는다. 늙은이들은 청춘에게 늘 성실하고 건전한 사회 구성원이 되라고, 청춘을 억압한다. 늙은이는 자본주의나 공산주의나 모든 체제에 다 있으므로, 한국과 소련이 청춘의 음악을 탄압하는 모습도 그렇게 닮았으리라.
■ 청춘은 세계 공용어
이 영화는 단순히 소련 록만 다룬 건 아니고, 그들이 어떤 음악적 자양분을 먹으며 꿈을 키웠는지 보여준다. 그들의 영웅은 역시, 데이비드 보위, 루 리드(Lou Reed), 토킹 헤즈(Talking Heads), 이기 팝(Iggy Pop), 마크 볼란(Mark Bolan). 모두 자본주의 진영의 음악인들이다. 작품 안에서 이들의 음악도 전면에 내세우며, 풍성한 음악적 재미를 전시한다. 빅토르와 마이크가 탄압 속에서도 로큰롤을 멈출 수 없었던 이유, 그것은 청춘이 국경과 이념마저 뛰어넘기 때문이다.
청춘을 지나온 사람들이야, 청춘이 좋은 시절, 찬란한 시절이라고 말하지만, 한참 청춘을 겪고 있는 당사자들에겐, 청춘이란 그렇게 멋진 게 아니다. 청춘 앞에서 청춘을 찬미하는 건 마치, 7월 더위에 고통 받는 사람 앞에서, 이제 곧 가을이 올 테니 조금만 참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여름의 찬란한 햇살은 모든 것을 선명하게 비추지만, 모든 것이 선명하다는 건, 아픔과 슬픔마저 선명하다는 것. 청춘은 청춘이라서 아픔을 선명하게 느끼고, 아픔을 선명하게 느끼는 만큼 방황한다.
그러나 청춘은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더욱 과격하게 터지는 법. 이들이 겨우 20대에 죽고 싶다고 외치는 건 어쩌면 사회를 향한 원망이자 반항일지도, 그들의 원망과 반항을 신나는 로큰롤에 담아 외치는 것일지도. 이 영화는 마이크의 아내 나타샤와 빅토르의 연애를 다루는데, 누가 봐도 불륜이다. 청춘을 다루는 영화에 불륜이라니. 웃긴 건, 마이크가 빅토르와 나타샤 사이에 벌어지는 일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빅토르의 음악 활동을 태연하게 지원해준다는 거다. 어쩌면 이런 불륜도, 아무리 억눌러도 결국 터져 나오는 청춘의 속성을 표현한 것이겠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터져 나오는 사랑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청춘은 세계 공용어다. 음악이 세계 공용어인 것처럼, 청춘도 세계 공용어다. 이것은 마치 소련 젊은이들이 영미 로큰롤에 열광하는 것과 같고, 한국의 청춘들이 일본 소설 “인간 실격”을 읽고, 아픈 감동을 느끼며 그것을 청춘의 통과의례로 여기는 것과 같다. “레토”는 러시아 영화라는 생소한 성격을 갖고 있지만, 청춘과 음악에는 국경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려보자. 그러면 이 영화가 러시아 영화라는 사실은 큰 문제가 아니게 되고, 이 영화가 주제로 다루는 로큰롤과 청춘이 더욱 깊이 다가올 것이다.
올해 여름은 벌써 지났고, 9월도 거의 끝났다. 그런데 옛 레닌그라드, 현 상트페테르부르크 여름은 한국 9월과 비슷한 기후를 갖고 있다고 한다. 9월에 레닌그라드의 여름을 다룬 영화를 돌아보며,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나의 20대를 되돌아본다. 지독한 자살충동과 함께 지냈던 나의 20대. 나의 20대도, 나의 자살충동도, 흑백영화처럼 아련해졌다. 그러나 아련한 기억은 때론 현실보다 선명하게 나를 붙잡는다. 청춘이 내게 속삭인다. 내게는 아직 터져 나와야 할 청춘이 남았다고. 아직도 해야 할 한심하고 멍청한 짓들이 많이 남았다고. 아픔에 무뎌지기 전에 더 많이 다치고 방황해야 한다고. 그것이 삶이라고.
트랙리스트
1. (You’re a) Scum (Дрянь) – Zveri
2. Broken Hearted Blues (Acoustic & Bass Demo) – T. Rex
3. Summer (Лето) – Zveri
4. Sundown (Закат) – Zveri
5. My Friends (Мои друзья) – Petr Pogodaev, Philipp Avdeev, Zveri
6. Deadbeat (Бездельник) – Petr Pogodaev, Philipp Avdeev, Zveri
7. The Nighttime (Ночь) – Zveri
8. Psycho Killer (Talking Heads cover) – Alexander Gorchilin & Zveri
9. Junior High Babe (Восьмиклассница) – Petr Pogodaev, Zveri
10. I’m Waiting for the Man – Velvet Underground
11. Passenger (Iggy Pop cover) – Anton Sevidov
12. Rock ’n’ Roll Star (Звезда рок-н-ролла) – Zveri
13. The Beatnik (Когда-то ты был битником) – Petr Pogodaev, Zveri
14. In the Backyard of Rock Club ( Двор рок-клуба) – Zveri
15. Perfect Day (Lou Reed cover) – Elena Koreneva, Anton Sevidov
16. Ashes to Ashes – David Bowie
17. The Mood I’m In (Моё настроение) – Petr Pogodaev, Zveri
18. The Return (Возвращение) – Zveri
19. Plenty of Time (And Out of Dough) (Время есть, а денег нет) – Petr Pogodaev, Zveri
20. Kitchen Scene (На кухне) – Petr Pogodaev, Zveri
21. Completely (Всецело) – Alexander Gorchilin, Zveri
22. All the Young Dudes (David Bowie cover) – Shortparis
23. Six A.M. (6 утра) – Zveri
24. The Tree (Дерево) – Petr Pogodaev, Petr Tishkov, Zveri
25. Summer Will Be Over Soon (Кончится лето) – Kino
26. L’été a Cannes (French bonus track) – Jenia Lubich & Zveri
▼ 필자가 직접 정리한 본 음반 정보 링크입니다.
영화 “레토(Leto)” OST 200% 즐기기
2018년 개봉작 “레토(Лето)”는 키릴 세레브렌니코프(Кири́лл Сере́бреннико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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