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명반 에세이 75: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 Aladdin Sane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삶은 여전히 아름답다
■ 인류종말에 대한 환상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
프랑스 작가 미셸 트루니에, 그가 자신의 책 “외면일기”에 남긴 말이다. 세계인의 사랑을 받던 데이비드 보위의 육신은 시간 앞에 속절없이 파괴되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은 그의 육신이 그러하였듯 결국 시간 앞에 파괴될 것이다. 그러나 보위의 노래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다. 보위는 자신의 노래가 자신의 육신보다 오래도록 여기에 머무르리라는 걸 예감했을까. 확실한 건, 그가 시간이 가진 파괴력을 실감했고, 그것을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그 두려움의 실체는 무엇이었을까. 보위는 그 두려움의 실체를 음악으로 표현했다. 올해 50주년을 맞이한 그의 정규 6집 앨범 “Aladdin Sane”에 그 두려움들이 담겼다.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한다지만, 이 앨범에 담긴 노래들은 파괴되지 않았다. 여기에 담긴, 50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파괴되지 않은 두려움이란 무엇이었을까.
데이비드 보위는 정규 5집 앨범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를 통해 세계적인 스타로 거듭났다. 그러나 이 앨범에 얽힌 이야기를 보면 그다지 유쾌한 이야기들로만 채워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앨범이 발표되던 때가 1972년 6월이었고, 때는 베트남 전쟁이 아직 진행 중이던 때였다. 미국의 다른 동맹국들이 베트남 전쟁에서 발을 빼던 중, 미국은 여전히 베트남 전쟁을 진행하던 때였다. 보위는 어릴 때부터 불안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나, 친하게 지내던 이부형의 조현병 증세를 지켜보기도 했는데, 이런 삶을 살아온 보위로서는 이 세계의 모든 혼란을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터.
그의 삶과 세상의 혼란은 보위에게 인류종말에 대한 환상을 잔뜩 키우게 했고, 이는 지기 스타더스트(Ziggy Stardust)라는 페르소나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지기 스타더스트는 화성에서 지구 온 록스타로서, 자신의 로큰롤로 세상을 사랑으로 채워, 지구인들을 종말로부터 구하겠다는 사명을 실천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화성에서 온 록스타의 최후는 세상을 구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 것으로 이어진다.
지기 스타더스트는 어째서 그런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는가. 보위는 다음 앨범에서 다른 페르소나를 내세워, 그에 대한 더욱 자세한 이야기를 다루게 된다. 보위가 1973년 4월에 정규 6집으로 발표한 “Aladdin Sane”이 바로 그것이다. 보위는 지난 앨범을 발표하며 자신의 인생에서 전례 없던 거대한 부와 명성을 맞이한다. 이런 성공은 보위에게 쾌락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자신이 갖고 있던 인류종말에 대한 불안한 환상을 더욱 키우기도 했다. 보위의 정규 4집 앨범 수록곡 “Changes”를 통해 예언한 자신의 삶과 같다.
“Every time I thought I'd got it made, It seemed the taste was not so sweet.
매번 나는 내가 이룬 것들에 대해 생각하지만, 그게 달콤하지만은 않았던 거 같아.”
■ 미국의 양면성이 낳은 페르소나
보위에게 있어서, 미국이란 극단적인 애증의 공간이다. 자본주의 진영의 우두머리로서 소비문화 팽창에 앞장서는 것은 물론이요, 세계 최강대국으로서 정의라는 이름으로 휘두르는 전쟁들까지, 보위에게 미국이란 코즈믹 호러(Cosmic Horror)와 같다. 하지만 보위는 미국에서 출발한 비트닉(Beatnik) 문화, 뉴욕 전위예술 등에 심취했던 사람이기도 했다. 보위에게 미국이란 아름다운 낭만의 땅이었으며, 자신이 사랑하는 예술가들의 고향이기도 했다. 보위의 마음속에 심어진 이런 미국에 대한 양극단 인상은 그의 새로운 페르소나 “알라딘 새인(Aladdin Sane)”을 탄생시킨다.
알라딘 새인의 얼굴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그의 얼굴에 새겨진 번개다. 앨범 표지에서부터 그의 얼굴을 커다랗게 드러내고 있어, 그 정체를 의식하기 쉽다. 아니, 의식하기 싫어도 한 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번개는 어둡고 흐린 하늘에 자신의 빛을 선명하게 과시하며 사람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는다. 보위에게 미국이란 그런 땅이었다. 번개가 내리치는 하늘처럼 빛과 어둠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나라. 그 대비가 강렬해서 도무지 잊을 수 없는 땅. 보위는 지난 앨범을 통해 얻은 부와 명예로, 미국이라는 나라를 더욱 가깝게 느낄 기회가 많아졌다. 그를 통해 미국에서 벌어지는 재앙들이 얼마나 끔찍한지 피부로 느낄 때가 많았고, 반대로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위대한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이런 극단을 오가면서 보위의 마음속엔 천둥번개가 쳤고, 알라딘 새인은 거기서 탄생했다.
알라딘 새인은 우선, 미국이라는 나라를 처음 경험하는 외계인으로서, 미국에서 벌어지는 온갖 난리법석을 즐긴다. 살면서 처음으로 밟는 땅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왠지 재앙마저도 장난처럼 흥겹게 느껴진다. 1번 트랙 “Watch That Man”은 신나는 로커빌리(rockabilly) 리듬으로 술집의 문을 연다. 사람들이 모여 술과 함께 왁자지껄 떠드는데, 거기서 한 사람이 몰래 어느 방으로 들어가려 애쓰고 있다. 보아하니 그 방에 들어가는 게 무척 힘들어 보인다. 그런 모습마저도 웃기고 즐겁기만 하다. 술에 잔뜩 취한 사람들 곁에서 웃고 떠드는데, 그중에 몇몇은 술뿐만 아니라 마약에까지 취한 것 같다. 뭐, 그래도 상관없겠지. 어쨌든 즐거우니까.
밤새 마시고 웃고 떠들다보니, 밝아오는 아침과 함께 불안마저 모습을 드러낸다. 겉모습은 우아하고 화려하지만, 그 안에 거대한 재앙을 감추며 서서히 다가온다. 2번 트랙 “Aladdin Sane”은 이런 마음의 풍경을 그리며 시작된다. 마이크 가슨(Mike Garson)의 피아노 연주는 처음엔 맑은 하늘 아래 파도처럼 우아하게 주변을 적시다가, 점차 힘과 속도를 더해가며 바다의 위대함을 뽐내듯,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격류로 변한다. 이 격류는 우리가 살아가는 땅을 덮치며 세상을 온통 혼란으로 물들인다. 세상에 깔린 혼돈과 더불어 피아노는 엉망으로 울부짖는다. 제목 옆에 붙은 괄호를 보면,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기 바로 직전 년도를 번갈아 적어놓고, 마지막에 물음표를 띄운 걸 볼 수 있다. 이제 곧 제3차 세계대전의 파도가 전 세계를 휩쓸 거라는 알라딘 새인의 불길한 예언을 담은 노래인 것이다.
■ 사랑하는 법조차 동영상을 보며 배우는 세대
3번 트랙 “Drive-In Saturday”는 사막처럼 무정한 세상에서 오아시스처럼 떠오르는 사랑의 현장을 그린다. 그러나 오아시스인 줄 알고 다가갔던 사랑은 신기루가 되어, 서서히 고요하게 시간 속으로 사라진다. 지난 토요일 자동차극장에서 보았던 영화처럼 그렇게 지나간다. 영원 같던 사랑도 지나고 나면 왠지,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듯 순식간에 지나간 것 같다. 보위는 이 노래를 만든 배경에 대해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달빛이 17, 18개의 은빛 돔 위를 비추고 있었어요. 그것들이 뭔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죠. 하지만 그걸 보고 핵 관련 재앙이 일어난 이후의 미국, 영국, 중국의 모습을 상상하게 되었어요. 방사선이 사람들의 마음과 생식기에 영향을 미치는 바람에, 사람들이 섹스를 안 하는 거죠. 섹스하는 방법을 다시 배우는 유일한 길은 예전의 섹스 방식이 담긴 영화를 보는 거예요.”
어쨌거나 알라딘 새인이 노래하는 남자는 비디오를 보며 섹스를 어떻게 하는 건지 터득했고, 사랑하는 여인과 섹스를 나누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 남자를 바라보는 알라딘 새인은 불길한 예언을 하나 던진다.
“It's a crash course for the ravers.
그건 날라리들을 위한 속성강의였어.”
그들이 봤던 섹스에 관한 동영상들은 전부 포르노뿐이었다. 그들의 세상이 섹스를 온통 포르노로 물들였기 때문이다. 포르노에는 사랑이 없으므로, 오직 사랑 없는 쾌락뿐이므로, 그들이 포르노를 통해 섹스를 배울 수 있었을지라도, 섹스를 통해 사랑을 나누는 방법까진 터득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섹스와 사랑은 온통 날라리, 양아치, 불한당들의 싸구려 쾌락에 삼켜지고, 그들의 사랑은 길을 잃고 방황한다. 그렇게 사랑으로 시작된 섹스는 자동차극장에서 상영된 영화처럼, 더 이상 현실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한 때의 환상으로 흘러가버린다.
보위가 우려하던, 성관계가 없어진 사회에 대한 예언은 어디까지 실현되었을까. 그나마 다행인 건, 핵전쟁의 위협이 그토록 오랫동안 이어졌음에도, 진짜로 핵전쟁이 벌어지진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더 이상 섹스를 하지 않게 되리라는 건, 현재 발생하고 있는 여러 현상을 통해서도 충분히 예감할 수 있다. 요즘 성별 간 갈등 현상이 두드러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이는 곧 연애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성관계조차 기피하게 되는 현상까지 이른다. 성관계는 오직 포르노로만 소비되고, 포르노로 소비하는 성관계에 만족하니, 성관계를 할 필요를 못 느끼게 되는 거다. 그렇게 성관계는 오직 포르노로만 전파되고, 사랑이 깃든 성관계는 점점 세상에서 사라져간다.
성관계를 포르노로만 소비하고 만족하는 게 꼭 나쁜 현상이라곤 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좀 슬프지 않은가. 뭐든지 사라져가는 걸 바라본다는 건 슬픈 일이다. “Drive-In Saturday”는 이런 슬픈 풍경을 노래한다. 무정한 세상에서 낭만을 찾아 떠나는 이들 즉, 사랑이 깃든 섹스를 찾는 이들을 향한 응원가처럼 들리기도 한다.
■ 누가 이 미친 남자를 사랑할까
알라딘 새인은 디트로이트로 향한다. 디트로이트, 그곳은 20세기 초반 미국에서 네 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였고, 그 많은 인구를 끌어들인 건 자동차 산업이었다. 그러나 1950년대 로스엔젤레스 자동차 산업이 성장하면서, 디트로이트는 위협 받기 시작했고, 1970년대 미국에서 일본 자동차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디트로이트는 빠르게 쇠퇴했다. 활력을 잃은 도시는 희망을 잃었고, 도시엔 오직 마약, 폭력, 매춘만이 남을 뿐이었다. 이 도시는 그 대가로 폭동을 치르던 중이었다. 4번 트랙 “Panic In Detroit”는 이런 디트로이트의 난폭한 풍경을 그린 곡이다.
알라딘 새인의 눈에는 이 난폭한 풍경이 그저 신기했던 모양이다. 미국에 발을 들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외계인, 알라딘 새인 입장으로서는 이 폭동이 왜 일어난 건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일 터. 알라딘 새인은 인디아나 존스 같은 탐험가로 변신한 것처럼, 폭동으로 겁에 질린 도시 곳곳을 누빈다. 폭동에 달아나는 사람들의 비명을 리듬으로, 그는 춤을 춘다. 폭동을 주도하는 혁명가의 모습이 알라딘 새인 눈에는 그저 연극에 불과해 보였는지, 그들 앞에 가서 연예인을 만난 것처럼 싸인 하나 해달라며 매달린다.
이제 막 미국에서 떠오르는 록스타, 알라딘 새인. 그는 한 늙은 배우를 접대한다. 그 배우의 온갖 변태 성욕을 맞춰주며, 알라딘 새인은 점점 그 늙은 배우를 닮아간다. 한 때 말끔하고 상냥한 모습으로 대중 앞에 나서던 사람. 하지만 그의 이면엔 쾌락 말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문드러진 삶이 있었다. 그는 쾌락에 병든 모습으로 알라딘 새인을 맞이한다.
5번 트랙 “Cracked Actor”는 명예를 잃고 남은 건 돈뿐인 한 배우의 문드러진 속내를 노래한다. 배우는 알라딘 새인에게 속삭인다. 어차피 죽으면 모든 게 끝이야. 죽기 전에 실컷 즐기면 그만이라고. 쾌락 앞에선 어차피 도덕도 신념도 철학도 사랑도 다 무용지물이지. 함께 즐기자. 벗어, 벗으라고! 늙은 배우의 속삭임과 함께, 쾌락은 짜릿한 감각을 더해간다. 짜릿하게 다가오는 감각과 함께, 믹 론슨(Mick Ronson)의 기타는 더욱 격렬하게 울부짖는다. 이게 쾌락의 교성인지, 아파서 소리치는 건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엉망으로 울부짖는다.
시간은 마약, 전쟁, 무정, 폭동, 위선, 이 모든 것을 증폭시키며 모든 것을 파괴한다. 시간 앞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걸 느낀 알라딘 새인. 그는 마약, 전쟁, 무정, 폭동, 위선, 이 모든 걸 흡수하고, 세상의 일부가 된다. 사랑을 잃어가는 세상에서, 나도 세상을 사랑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내가 세상을 사랑하지 않으니, 세상 그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누가 이 미친 남자(A Lad Insane), 알라딘 새인을 사랑할 수 있으랴.
■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할까
6번 트랙 “Time”이 익살스러운 피아노 연주와 함께 다가온다. 악기가 뿜어내는 익살은 어느새 살벌한 가학이 되고, 알라딘 새인의 목소리는 가학적인 악기를 길들여 가까스로 부드럽게 만든다. 하지만 시간의 기습은 끝나지 않는다. 악기는 다시 시간을 따라, 알라딘 새인에게 장난치듯 가학을 행한다.
알라딘 새인은 사랑을 잃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의식한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며, 마음을 고친다. 아침이 밝아올 때마다 같이 떠오르는 이 지긋지긋한 불안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는 지혜를 깨닫는다. 불안을 물리치는 방법은 오직, 시간을 의식하지 않는 것.
시간은 모든 것을 파괴하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바로 지금에 충실해야 한다. 시간이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을 파괴하기 전에, 바로 지금 사랑에 충실해야 한다. 삶을 온통 불안한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채울 필요는 없었다. 내일이 없을 것처럼 산다는 건 한심한 짓이라고 세상은 말한다. 세상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세상 사람들이 그다지 현명한 건 아닌 것 같다. 이런 멍청한 사람들이 하는 말을 뭐 하러 듣나. 어차피 미래라는 게 온통 불안뿐이라면, 그런 미래는 없는 게 차라리 낫다. 시간과 싸워서 이기지도 못할 거라면, 시간을 잊어버리자. 내 마음에서 시간을 지워버리자. 나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지,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다. 미래보다 중요한 건 언제나 바로 이 순간, 지금이었다.
“We should be on by now.
우리는 언제나 지금에 충실해야 해.”
이 구절은 구호가 되어, 격렬하게 울리는 악기들과 함께 끊길 줄 모르고, 내 마음에 울려 퍼진다. 하지만 나는 이미 불안에 중독되었다. 이 중독에서 빠져나오려고 구호를 외치고 또 외친다. 지금에 충실하길 바라는 마음은 울리고 또 울려서 절규가 되어간다. 내 절규가 하늘에 닿을 때 즈음, 내 마음이 밝아지는 걸 느낀다. 심호흡을 해본다. 나는 아직 이렇게 멀쩡히 숨쉬고 있다. 이걸로 충분하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어느새 내 곁을 떠났다.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니, 세상이 참 아름답게 느껴진다. 불안에서 벗어나니, 저 아름다운 별을 바라볼 여유마저 생긴다. 저 별을 바라보고 있으니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나의 연인, 당신. 당신은 내 마음에 가장 아름답게 떠오른 별이다. 나는 다시 사랑을 깨닫는다. 숨쉬는 모든 존재는 사랑할 자격이 있으니, 나도 사랑을 할 테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밤을 낭비하며 춤을 출 테다.
■ 시간조차 파괴하지 못한 것
이 앨범의 후반부는 온통, 보위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찬사가 자리를 차지한다. 이들은 모두 미국인이다. 알라딘 새인의 세계관 안에서, 보위의 첫 아내였던 앤지 보위(Angie Bowie)는 “The Prettiest Star”로 다시 태어났고, 펑크 록(Punk Rock)의 아버지 이기 팝(Iggy Pop)은 “The Jean Genie”로 다시 태어났으며, 소울(Soul) 가수 클로디아 레니아(Claudia Lennear)는 “Lady Grinning Soul”로 다시 태어났다. 미국인은 아니지만, 미국을 음악으로 정복한 영국인 믹 재거(Mick Jagger)는 “Let's Spend The Night Together”의 선율 속에 살아있다. 보위는 시간 앞에 사랑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지, 이미 잘 깨닫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토록,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노래로 앨범의 후반을 채웠던 것이리라.
사랑이 있어, 시간이 가져올 파괴에 두렵지 않을 수 있다. 아니, 사랑은 시간 앞에서도 파괴되지 않을 것 같다. 시간이 모든 것을 파괴하고, 죽음마저 파괴하며, 시간이 시간마저 파괴할 때까지, 사랑은 결코 파괴되지 않을 것 같다.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가 아직도 파괴되지 않고, 이토록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아직도 살아 숨쉬는 건, 우리가 데이비드 보위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사랑이 그의 노래를 시간이 행하는 파괴로부터 지켜준 것이다. 이토록 사랑은 힘이 세다.
알라딘 새인은 시간 앞에 두려움만 느끼지 않았다. 그는 사랑과 음악으로 시간 앞에 저항했다. 그에게 사랑과 음악은 다가올 시간에 두려워하지 않고, 그저 오늘을 즐기며 누리게 해주는 힘이다. 사랑이 있고 음악이 있어, 이 모든 파괴와 퇴폐가 아름답다. 사랑은 죽음을 삼키고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사랑은 폐허에 꽃을 피우는 힘이다. 음악은 파괴된 것들을 그러모아,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조합하는 힘이다. 사랑과 음악이 있다면, 시간이 가져올 파괴에 두렵지 않을 수 있다.
보위는 지기 스타더스트의 비극을 그리면서도, 지기는 로큰롤처럼 흥겹게 죽었노라 말했다. 영웅은 비극이 있어야 비로소 영웅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위는 지기 스타더스트의 죽음을 웅장하게 그려냈다. 이처럼 미국이 가져오는 공포 속에서도, 그 풍경을 이토록 흥겨운 로큰롤에 녹여낼 수 있었던 건, 미국에 그가 사랑하는 영웅들 즉, 예술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예술을 통해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웠고, 그렇게 보위 자신도 세계인으로부터 사랑 받는 예술가로 거듭났다.
보위의 인생에는 수많은 불안과 공포가 있었지만, 그에겐 음악이 있어, 그 모든 불안과 공포마저 사랑할 수 있었다. 그의 사랑은 그 모든 불안과 공포를 흥겨운 리듬과 강렬한 선율로 바꾸었다. 그래서 그에겐 퇴폐마저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그의 삶은 퇴폐가 낳은 낙천적인 삶이었다. 나도 그의 삶을 닮아, 예술로서 이토록 불안한 세상마저 사랑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나도 그의 삶을 닮아 퇴폐마저 아름다운 삶을 살기를 바란다.
트랙리스트
1. Watch That Man
2. Aladdin Sane (1913–1938–197?)
3. Drive-In Saturday
4. Panic in Detroit
5. Cracked Actor
6. Time
7. The Prettiest Star
8. Let's Spend the Night Together
9. The Jean Genie
10. Lady Grinning 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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