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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Moonlight Fairy Reversal Grand Slam) - Goodbye Alumin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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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72: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Moonlight Fairy Reversal Grand Slam) - Goodbye Aluminum

 

약점을 당당하게 노래할 수 있다면 그건 더 이상 약점이 아니다

 

■ 내가 축배를 들게 될 날은 언제

“축배를 들어라. 오늘을 위해서, 내일을 향해서, 축배를 들어라!”

 

때는 올해 설 연휴. 경주에서 설 차례를 지내고 나서, 대구에 있는 자취방에 돌아오니 심심했다. 나는 오랜만에 트위치 방송을 켰다. 내가 들어간 방송은 한참 24시간 방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24시간 동안 쉬지 않고 방송을 진행하겠다는 건데, 이게 딱 들어도 얼마나 힘든 도전인지 대충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방송은 저녁 8시 즈음 끝나서, 시청자들의 축하를 받았다. 이 때 한 시청자가 해당 방송인을 위해 틀어준 노래가 이 노래였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축배” 이 노래가 트위치 방송에서, 시청자가 건넨 도전 과제를 방송인이 완수하면, 축하하는 의미로 틀어주는 게 문화로 굳어졌다는 얘기를 듣긴 했는데, 이렇게 실시간으로 그 현장을 목격하니, 나조차 그 노래와 함께 감격을 실감하게 됐다. 역시 노래의 힘이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 문득 이 노래를 부른 주인공에 대해 더 알고 싶어졌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약칭 달빛요정. 사실 나는 스무 살부터 이 가수를 알고 있었다. 어쩌다가 이 가수를 알게 되었는지 그 경위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당시 내가 즐겨듣던 노래가 “요정은 간다”였다는 건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당시 나는 우울증이 심하던 때라서, 내가 듣는 노래 대부분이 패배자 정서를 짙게 풍기는 노래들이었는데, 그런 노래를 찾다가 알게 된 게 달빛요정이었다.

 

지금은 “축배”로 유명한 가수지만, 사실 이 사람의 음악 전체를 살펴보면 축배와는 어울리지 않는 노래들이 대부분이다. 그의 노래 과반이 패배자가 되어버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노래들이며, 그의 팬을 자처하는 사람들도 그가 노래하는 이런 패배자 정서에 공감하느라 팬이 된 경우가 많다. 그가 발표한 정규 1집 이름부터가 본인 이름에 홈런과는 정반대인 “Infield Fly”다. 이런 사람이 어쩌다가 “축배”라는 노래를 만들고, 이런 노래로 유명해지게 되었을까.

  

 

▲ EP 수록곡 “축배”

■ 달빛요정과 나의 공통분모

지금 이 시기에 달빛요정의 노래가 내게 다가온 건 운명처럼 느껴진다. 달빛요정 그가 직접 쓴 자서전 “행운아”가 발간되었다는 사실을 올해 처음 알게 되었고, 그 책을 통해 알게 된 그의 인생을 보니, 그의 인생이 참 내 인생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들어서 내가 처한 상황과 그의 인생이 맞닿은 부분을 발견하면서, 이건 운명이 아닐 수가 없다고 느꼈다.

 

달빛요정을 언급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설명 중 하나가 이거다. 원맨밴드. 그런데 이 사람 앞에 붙은 이런 수식어는 보통과 좀 다르다. 원래 원맨밴드라는 건, 작사, 작곡, 연주까지 혼자서 다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지만, 달빛요정은 여기서 더 나아가, 제작, 홍보, 유통까지 도맡아 한다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창작과 사업을 병행하는 의미로서 원맨밴드인 거다. 이 부분에서 특히 내 인생과 그의 인생에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었는데, 나도 내 책을 집필, 교정, 편집, 제작, 홍보, 유통까지 혼자서 다 맡아서 하는 소위 ‘독립출판’이라는 걸 해봤기 때문이다. 달빛요정은 앨범을 만드느라 신용불량자가 되었다는데, 달빛요정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나도 내 책을 만드느라 거액을 날리고 실패한 경험이 있다.

 

내가 이런 경험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올해 중으로 책을 한 권 더 내려고 준비 중이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거다. 그런데 달빛요정도 정규 1집 내고 그렇게 경제적으로 고생을 했으면서, 결국 정규 3집까지 냈다. 그 사이에 싱글 한 장, EP까지 두 장을 더 내서, 그가 발표한 음반은 총 여섯 장에 이른다. 그러니 그의 노래가 내 마음에 더 와 닿을 수밖에. 물론 그는 신문에 기사도 나오고, TV와 라디오 방송에도 출연할 만큼 유명해졌으니, 아무리 자기 처지가 구질구질하다고 노래해도, 나에 비해 사업수완이 훨씬 뛰어난 건 분명해 보인다. 그의 사업수완을 질투하고 있으니, 그가 내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며 이런 말을 건네는 것 같다. “야, 어차피 너나 나나 처지가 거기서 거기인데 뭘, 나 같은 걸 질투까지 하고 그러냐.” 그렇다. 그는 이토록 내게 질투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사람이다.

 

 

▲ 정규 1집 수록곡 “절룩거리네” 라이브 영상

■ 내 인생의 영토는 여기까지

이토록 그의 인생과 음악에 푹 빠져 지낼 무렵, 내게 가장 큰 울림을 전해준 음반이 있었으니, 그것은 그가 2008년에 발표한 정규 3집 “Goodbye Aluminum”이다. 그는 2003년에 발표한 정규 1집부터 특유의 패배자 정서로 유명했는데, 그 앨범의 대표곡인 “절룩거리네”를 살펴보면 이렇다.

 

“나도 내가 그 누구보다 더 무능하고 비열한 놈이란 걸 잘 알아. 절룩거리네.”

 

1집부터 이토록 지독한 패배자 정서를 내뿜었는데, 3집에선 더욱 처절하고 구질구질해진 패배자 정서를 표출한다. 2집은 달빛요정 스스로 사실상 ‘0집’이라 칭해야 마땅하다고 했을 만큼, 단 한 곡만 2집을 위해 만든 곡이고, 나머지는 모두 1집 이전에 만든 곡들이라고 한다. 그래서 사실상 3집이 1집 이후에 처한 달빛요정의 상황을 드러내는 최초의 앨범인 셈이다. 그래서 달빛요정이 1집 이후에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었나 보면, 1집보다 더 처절하면 더 처절하지, 결코 더 나아지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다. 달빛요정 스스로 3집 대표곡으로 내세우고 싶었다고 밝힌 노래 “치킨런”을 보자. 이 노래는 달빛요정이 생계비를 마련하려고 가수 일과 치킨 배달 일을 병행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본인 경험 반, 상상 반으로 만든 노래라고 한다.

 

“내 인생의 영토는 여기까지. 주공 1단지 그대의 치킨런. 세상은 내게 감사하라네. 그래, 알았어. 그냥 찌그러져 있을게.”

 

1집 대표곡 “절룩거리네”에선 그나마 “하나도 안 힘들어. 그저 가슴 아플 뿐인 걸”이라며 자신을 애써 위로하는 모습마저 보이지만, 3집의 “치킨런”은 그런 위로조차 없이 더욱 철저하게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한계를 단정한다.

 

지난달 나는 사정이 궁해져, 인력사무소 가서 건설현장 일용직을 받아 일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서 같이 일하던 반장님 한 분과 대화를 나누다가, 내가 출판 사업을 하는 중이라고 밝히게 되었다. 그러자 그 반장님께서 안타깝다는 말투로 하신 말씀이 있었다.

 

“출판? 그거 배고픈 일인데! 그래도 귀한 일 하네. 대한민국은 문화 예술이 안 통하는 나라야. 출판조차 돈이 돈을 먹는 구조라니까. 우리나라에선 출판도 기반이나 인맥이 없으면 안 돼. 책 3천부도 안 팔리는 게 대부분이야. 자네 책이 안 팔리는 게, 자네 책이 별로라서 그런 게 절대 아니고, 이게 우리나라에선 당연한 거라니까. 한국 사람들이 참 책을 안 읽어요.”

 

내 사업의 어려운 처지를 나 말고 다른 사람이 공감해준다는 게 참 반갑다가도, 한 편으론 그날 나와 처음 얘기 나눈 사람조차, 우리나라 출판 현실을 이렇게 말한다는 게, 내가 처한 현실을 더욱 가깝게 느끼게 되어 씁쓸하기도 했다. 내 사업으로 이런 궁한 현실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 건가 한탄도 잠깐 하게 되었다. 정말 “내 인생의 영토는 여기까지”라는 가사가 와 닿는 순간이었다.

 

 

▲ 2번 트랙 “나의 노래” 드라마 “몬스타” 리메이크

■ 덤벼라, 건방진 세상아

달빛요정은 자신의 음악을 “포크 비슷한 음악”이라고 칭한 바 있다. 그만큼 가사가 뚜렷하게 전달되는 게 그의 음악이 지닌 특징인데, 그의 음악을 들여다보면 흔히 생각하는 포크(Folk)와는 많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오히려 그의 음악은 록(Rock)에 가깝다. 그것도 그가 청춘을 보낸 90년대에 유행하던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을 닮았다. 패배자 정서를 록 특유의 강력한 연주와 함께 전달한다는 점이 특히 닮았다. 90년대 그 시절 록 음악과 달빛요정 음악의 차이를 가려보자면 역시, 뚜렷하게 잘 들리는 그의 가사를 들 수 있다. 가사의 내용도 난해하거나 몽환적인 느낌 없이, 지극히 현실과 일상에 맞닿은 얘기들을 하고 있다. 이 가사에 맞춰 멜로디도 단순하고 귀에 쏙쏙 박히는 구조로 이루어져 가사에 호소를 더한다.

 

이런 특징은 이 앨범 전체적으로 드러나는데, 2번 트랙 “나의 노래”는 이 앨범의 과반을 차지하는 패배자 정서와는 결을 달리한다. 여기선 달빛요정이 활기 넘치고 강력한 연주와 함께 세상을 감히 “건방진 세상”이라고 칭하며 이렇게 선언한다.

 

“붙어보자, 피하지 않겠다. 덤벼라, 세상아.”

 

모든 걸 쳐부술 각오로 질주하던 연주는 거친 록 음색을 유지한 채로 조금 잦아드는데, 3번 트랙 “치킨런”의 등장이다. 앞에선 그렇게 용감하게 돌진했는데, 다음 트랙에선 바로 “그래, 알았어. 그냥 찌그러져 있을게”라니, 이렇게 비굴할 수가 있나. 여기서 청자는 전 트랙과 선명한 대비를 이루며, 더욱 처절하게 발하는 달빛요정의 패배자 정서를 느낄 수 있다. 이미 충분히 비굴하고 구질구질한데, 다음부터 더욱 비굴하고 구질구질한 노래들이 이어진다.

 

 

▲ 3번 트랙 “치킨런”

4번 트랙 “도토리”는 발표 당시, 싸이월드 측의 부당한 음원 수익 정산을 폭로했다며, 화제가 된 적이 있는 곡이다. 달빛요정에게 음원 수익을 일반 화폐 대신, 싸이월드 사이트 내에서만 통용되는 가상 화폐 ‘도토리’로 정산한 사건이 벌어졌다고 난리가 났었는데, 정말 이런 사건이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자서전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달빛요정이 싸이월드 까려고 만든 노래는 맞다. 달빛요정은 싸이월드 특유의 과시하며 허세부리는 문화가 그렇게 싫었다고 한다. 요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인스타그램 문화와 대응할 만하다. 소셜 미디어 조상으로 불리는 싸이월드에서도, 누가 더 부유하고 행복한지 경쟁이라도 하듯 과시하는 소셜 미디어 특유의 문화가 이미 있었던 거고, 달빛요정 자신의 노래는 그런 문화에 어울리지 않는다며 자조하는 노래가 바로 “도토리”였던 것. 자기 노래가 싸이월드 배경음악으로 쓰이느라 발생한 푼돈 따위, 받아봤자 기쁘지도 않다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다.

 

“무겁고 안 예쁘니까 뭘 해도 마찬가지. 주는 대로 받아먹는 게 뼛속까지 익숙해도, 아무래도 이건 좀 짜증나.”

 

록 연주를 치우고, 통기타로 천천히 담담하게 자신을 자조하다가, 5번 트랙 “고기반찬”에선 통기타를 좀 더 빠르게 갈기며, 돈 많이 벌어 고기반찬 먹게 해달라고 세상을 향해 닦달한다.

 

■ 갈수록 짙어지는 패배자 정서

달빛요정은 3집 이름을 “Goodbye Aluminum”이라고 정한 이유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이 낯선 조합의 제목은 고교야구에서 알루미늄 배트의 사용이 사라짐을 아쉬워하며 만들어진 것으로, 달빛요정에게 알루미늄 배트란 순결한 아마추어리즘을 의미하는, 처음 산 기타와 같은 순수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 앨범에서 가장 잘 설명하는 곡이 6번 트랙 “스무살의 나에게”라고 본다. 어쩌면 앨범과 동명 트랙인 1번 트랙보다도 훨씬 이런 맥락을 잘 설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6번 트랙에선 다시 강력한 록 연주가 등장하는데, 그 어느 때보다 공격적이고 격렬한 연주를 들려준다. 이런 연주를 온통 과거의 자신을 꾸짖는데 사용한다. 순수하고 치기 어리던 과거의 자신이 이토록 처절한 지금의 자신을 낳았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젠 그런 순수하고 치기 어린 과거를 철저하게 손절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가사만 봐도 충분히 아픈데, 과격한 연주는 이런 가사를 더욱 아프게 느끼도록 만든다.

 

“가지려 하지 마. 다 정해져 있어. 세상에 주인공은 네가 아냐. 이 멋진 세상을 그냥 받아 들여. 어차피 넌 이 세상의 주인공이 아냐.”

 

 

▲ 9번 트랙 “나를 연애하게 하라” 라이브 영상

격렬하던 록 연주는 조금 가라앉는 모양으로 변해 7번 트랙 “길동전쟁 2”로 이어진다. 가라앉았지만 차분하진 않은 무겁고 벅찬 느낌의 연주로 곡의 정서를 전달한다. 2집에 “길동전쟁”이라는 노래가 있었는데, 자신이 서울 강동구 길동 방위로 복무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만든 노래였다. 방위 복무가 끝난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며, 그때보다 더욱 비참해진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는 노래가 “길동전쟁2”다. 여기서 신용불량자 얘길 하는 걸 보면, 1집 만드느라 신용불량자가 되었는데, 3집을 만들 당시까지도 신용불량자 신분을 벗어나지 못한 달빛요정의 처지를 알 수 있다.

 

잔잔한 피아노 연주가 덩그러니 홀로 놓이며, 8번 트랙 “내가 뉴스를 보는 이유”가 시작된다. 피아노 연주가 달빛요정의 무료한 일상을 묘사하다가, 뉴스를 묘사하는 부분이 되면 강력한 록 연주로 변한다. 록 연주와 함께, 달빛요정은 여성 아나운서의 미모를 극찬한다.

 

“그 다음날 그리고 그 다음 날도, 매일 저녁 아홉 시만 되면, 나는 뉴스를 보네. 알고 봤더니, 세상은 너무도 복잡하고 어렵더군. 그러나 나는 그 여자가 너무 예뻐서 뉴스를 보는 걸. 암만 봐도 너무 예뻐. 그녀 때문에 이 세상은 너무도 아름다워.”

 

이런 제목과 가사를 처음 보면, 뭐 이런 사소한 얘기를 노래로 만들었나 싶어서 웃기다. 그런데 두 번째 이 노래를 들으면, 웃긴 제목과 가사 뒤에 지독한 고독이 느껴진다. 영화 “올드보이”가 생각날 정도다. 주인공이 사설 감옥에 갇혀 오래 사람을 만나지 못해, TV에서 노래하는 가수를 보며 자위를 하는 그 장면이 생각난다. 세 번째 들으면, 제 아무리 복잡하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아나운서의 미모를 통해서라도 어떻게든, 희망을 만들어 보려는 달빛요정의 삶에 대한 질긴 의지가 느껴져, 이 노래를 듣는 내 마음이 밝아지는 걸 느낀다.

 

■ 나약함을 노래하는 것도 저항이 될 수 있다

예쁜 아나운서를 보니, 예쁜 연애에 대한 소망도 샘솟았는지 9번 트랙에선 “나를 연애하게 하라”면서, 세상을 향해 자신에게 연애를 허락해달라며 애원한다. 10번 트랙 “달려간다”에선 그 애원이 이뤄진 풍경을 묘사하며 환기를 시도하지만, 11번 트랙 “모든걸 다 가질순 없어”에선 다시 이별을 묘사하며, 강력한 록 연주로 자신의 아픔을 어떻게든 덮으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렇게 달빛요정이 앨범에서 묘사하던 패배자 정서는 12번 트랙 “요정은 간다”에서 절정에 이른다. 아마 이 앨범 수록곡 중에 가장 부드럽고 풍부한 연주를 들려주는 곡일 텐데, 그 부드럽고 풍부한 연주를 모두 자신의 청승을 부각시키는 데 사용하고 있다.

 

 

▲ 12번 트랙 “요정은 간다”

“내가 세상을 비웃었던 것만큼 나는 더 초라해질 거야. 아무래도 좋아, 나는 내 청춘을 단 하나에 비쳤을 뿐. 그저 실패했을 뿐. 그저 무모했을 뿐. 난 잊혀질 거야. 지워질 거야. 모두에게서 영원히. 난 노래할거야, 어디에서든 혼자서 가끔 이렇게, 아무도 몰래.”

 

그는 자신의 활동명이 너무 긴 탓에 영문 이름을 짓기 힘들 것 같다며, 자신의 영문 이름이 “Rock Will Never Die”가 되면 좋겠다고 말한 적 있다. 이토록 그는 록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강력하고 활발한 록 연주와 그의 나약한 가사는 얼핏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게 저항의 음악이라고 불리는 록이라고 할 수 있나. 그러나 어색함은 잠시, 두 요소가 빚어내는 찬란한 역설에 서서히 마음을 뺏긴다.

 

이런 구질구질하고 답답하고 나약한 가사들이 어떻게 저항이 될 수 있을까. 아니, 오히려 구질구질하고 답답하고 나약하기에 저항인 거다. 노예에겐 힘들다는 말도 아프다는 말도 허용되지 않는다. 자신의 어려움과 아픔을 솔직하게 표출하는 것, 그것은 내가 노예가 아니라는 걸, 내 삶의 주체가 나라는 걸, 세상 무엇보다 나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세상 앞에 당당히 외치는 것이다.

 

정부는 우리의 슬픔을 검열하고, 기쁨만을 강요한다. 정부 입장에선, 우리가 힘들든 아프든 더욱 많은 노역을 해내야 이득이기 때문이다. 정부에겐 아픔과 슬픔 같은 노역에 방해되는 감정들은 필요 없다. 정부가 시민을 착취해도 시민들은 기뻐야 한다. 그래야 정부를 차지하신 저 높으신 분들 삶이 더욱 윤택해질 테니까. 그렇기에 우리의 아픔과 슬픔을 솔직하게 표출하는 건, 그 무엇보다 격렬한 저항이 될 수 있다.

 

이 가사들이 구질구질하고 답답하고 나약하게 느껴지는 건, 세상이 딱 우리에게 허락한 만큼만 아프다고 말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가 노래하는 가사는 세상이 허락하든 말든 자신의 아픔에 한껏 솔직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토록 구질구질하게 느껴지는 거다. 그의 가사가 구질구질해질수록, 그가 표출하는 솔직함은 빛을 발한다. 그 누구도 밝혀주지 못했던 내 마음의 상처들이 그의 가사와 함께 빛난다. 드러나지 않은 상처는 치유 받을 수 없다. 상처가 드러날 때, 그것은 치유 받을 수 있다.

 

 

▲ 5번 트랙 “고기반찬” 라이브 영상

■ 달빛요정의 노래를 듣는 나는 행운아

앨범의 마지막 13번 트랙 “칩거”를 보자. 힘든 상황에 밖으로 나갈 용기를 잃고 집안에 틀어박히게 되었다는 의미로 노래 제목을 “칩거”라고 지었을 터. 하지만 달빛요정은 “푸른 하늘에 찬란히 빛나는 햇살의 아름다움을 알고 있”다는 이유로 하나로, 모든 게 좋아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기엔 충분하다고 말한다. 이런 가사를 음미하고 있으면, 가사의 의미가 좀 바뀌는 걸 느낀다. 집이란 본래 쉬기 위한 곳이다. 따스하고 포근한 공간이다. 내 삶이 어느 순간 모두 좋아지는 그때, 집과 바깥의 경계가 허물어지며, 내 삶이 온통 포근하고 따스할 때, 나는 하늘의 축복이 지어준 집에 들어가는 기분일 터. 그 집에서 나오고 싶지 않게 될 터. 이 앨범과는 상관없다는 의미로 괄호 안에 “Bonus Track”이라는 문구를 넣었겠지만, 이런 흐름이라면 14번 트랙 “사나이”도 이 앨범과 퍽 잘 어울린다.

 

그는 구질구질하고 비참한 자신의 처지를 노래했지만, 어쩐지 그의 노래를 듣고 나면 힘이 솟는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그의 노래가 내 상처를 비춰주기 때문이다. 그의 노래가 내게 치유를 선물한다. 그가 노래한 햇살처럼 찬란히 나를 격려하고, 그의 이름이 지닌 달빛처럼 은은히 나를 위로한다. 그가 1집 수록곡 “행운아”에서 노래하던 “알 수 없는 그 어떤 힘”이라는 것, 나는 그 힘의 정체를 알고 있다. 그것은 달빛요정의 노래다. 이토록 처절한 자신의 처지를 노래하는 중에도, 그의 노래는 자신을 당당하게 만들어주는 무기였던 거다.

 

그가 “축배”라는 곡을 만들 수 있었던 것도, 자신의 노래가 자신을 꿈꾸게 만들었기에 가능했다. 그는 자신이 잊히고 지워질 거라며 노래했지만, 그는 아직도 잊히지 않았고 지워지지 않았다. 이 노래가 나온 지 십 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오히려, 트위치 방송에서 꾸준히 축배를 노래해주고 있지 않은가. 그의 노래 덕분에 나는 언젠가 이 모든 상황을 뒤집을 홈런을 꿈꾸며 살아갈 수 있다. 그 홈런으로 내 상황을 역전시킬 그날에 내 마음은 축배를 노래하리라. 아니, 때론 그의 노래를 듣는 순간 그 자체가 이미 축배다. 사람들이 그가 노래하는 축배를 이토록 즐겨 찾게 된 것도, 그의 목소리에 담긴 이런 힘을, 이 모든 구질구질한 상황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을 느꼈기 때문이 아닐까.

 

 

▲ 정규 1집 수록곡 “행운아”

나는 요즘 현실의 벽에 부딪혀 더 이상 작가로 살아갈 수 없으면 어쩌나, 걱정하고 두려워지는 때가 많아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달빛요정의 노래를 들으며, 그의 삶을 생각한다. 신용불량자 신세에도 진심을 담아 노래하길 멈추지 않았던, 음반을 꾸준히 만들고 발표하던 그를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다시 작가로서 내가 살고 싶은 삶을 만들어갈 용기를 얻는다. 자신이 살던 집이 밤처럼 캄캄한 지하에 있어서, 이걸 자조하는 의미로 “달빛요정”이라고 지었다는데, 그런 자조가 결국 그를 진정 요정으로 만들었다. 사람은 죽어도 요정은 죽지 않으니, 그의 노래는 요정이 되어 영원히 우리 곁을 지킬 것이다. 고마워요, 달빛요정.
 


트랙리스트

1. Goodbye Aluminum

2. 나의 노래

3. 치킨런

4. 도토리

5. 고기반찬
6. 스무살의 나에게

7. 길동전쟁 2

8. 내가 뉴스를 보는 이유

9. 나를 연애하게 하라

10. 달려간다

11. 모든걸 다 가질순 없어

12. 요정은 간다

13. 칩거

14. 사나이 (Bonus Tr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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