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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존 레논(John Lennon) - John Lennon/Plastic Ono B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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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41: 존 레논(John Lennon) - John Lennon/Plastic Ono Band

 

고독한 혁명을 노래하다

 

■ 홀로서기

직장도, 종교도, 가족까지도 버리고 경기도에서 대구로 왔다. 대구는 나의 가장 괴로웠던 사춘기와 나의 가장 행복했던 유년시절이 공존하는 장소다. 대구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대구에서 꽤 오래 살았었다. 대구에 오면서 나는 추억의 냄새를 맡으러 내가 살았던 곳 주변을 돌아다녔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은 남구인데, 내가 어릴 적에 오래 살았던 곳은 달서구다. 이 때문에 남구와 달서구는 같은 대구지만 내게는 무척 다르게 느껴진다. 내게 남구가 철저한 현실의 공간이라면, 달서구는 영원히 과거 속에 박제된 장소처럼 느껴진다. 달서구에 갈 때마다 추억이 내 옆에 앉아 숨을 쉬는 것 같다. 그 숨이 늘 좋게 느껴지는 건 아니지만, 돌아갈 수 없는 시절에 대한 갈망이 기분 나쁜 추억의 숨마저도 달콤하게 만들어버린다. 계명대학교 성서캠퍼스, 성곡중학교, 성지초등학교, 와룡공원 등 내 추억이 깊게 스며든 장소 근처를 가면, 추억이 내 어깨를 두드리는 것 같다.

 

돌아보면, 내 인생에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순탄하지만은 않은 인생이었다. 누구의 인생이든 순탄한 인생이 어디 있겠냐만. 내가 대구에 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다. 내 사춘기가 힘들어진 건 아마 이 때문일지도 모른다. 부모님이 이혼했다는 사실은 크게 문제가 아니었으나,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 후에도 서로를 격렬하게 욕하는 모습이 문제였다. 사랑해서 결혼했을 텐데, 사실 결혼 생활 중에 서로가 가진 애정을 자식들 앞에서 과시한 적도 있었는데, 사랑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이 때 처음 배웠던 것 같다. 이토록 아픈 기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달서구로 버스를 타고 가면서 그 기억을 곱씹어보고 싶은 건, 어리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독보적 감성을 다시 갖고 싶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되돌리고 싶은 인생의 길에 대한 갈망 때문인 걸까, 잘못 살아온 것 같은 기분을 달래고 싶은 걸까. 모르겠다. 예전엔 가족도 친척도 대구에 많이 살았는데, 지금은 아무도 대구에 살지 않는다. 나만 대구에 살고 있다. 대구엔 오직 나와 내 추억만 살고 있다.

 

 

▲ 7번 트랙  “Love” 뮤직비디오

모든 걸 버리고 대구로 오고 나서, 유난히 존 레논의 노래가 많이 듣고 싶어졌다. 사실 20대 초반부터 존 레논을 좋아했다. 비틀즈(The Beatles)보다도 더. “Imagine”이나 “Love”, “Oh My Love”, “Starting Over”, “Glow Old With Me” 등의 노래들을 좋아했다. 돌아보면 그가 부르는 사랑노래 위주로 좋아했던 것 같다. 그래서 정규앨범을 듣지는 않았다. 정치적 철학적 메시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존 레논의 사상이 그렇게 와 닿지도 않고.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들었던 “God”의 가사들이 머리를 맴돌았다. 모든 걸 버리고 대구로 오면서 “God”을 듣고 있으니, 왠지 내가 존 레논과 하나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 특히, 내가 종교를 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다.

 

 

■ 고독한 혁명가

존 레논에게 있어, 절친한 사이였던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와의 불화, 그리고 그것이 비틀즈 해체로 이어진 과정은, 자신의 살점 뜯겨나가는 것보다 더 아픈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고독한 시간을 보내던 존 레논은 이 고독을 음악으로 풀어놓는다. “God”의 가사엔 “I don’t believe”라는 문장이 열다섯 번 등장하는데, 예수, 부처, 엘비스 프레슬리 등 온갖 위대한 것들을 다 믿지 않는다고 말하다가, 마지막에 비틀즈를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비틀즈를 온갖 위대한 것들을 다 제치고 가장 마지막에 놓은 걸 보면, 비틀즈의 해체가 존 레논에게 얼마나 큰 상심이자 환멸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누군가는 자신이 무엇을 안 믿는 것에 관하여 자랑하듯 말하지만, 존 레논의 목소리에선 그런 자랑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깊은 곳에 있는 처량함을 굳이 꺼내다니, 얼마나 비참했으면 그랬을까 싶다. 단순히 자신의 사상을 주장하려는 게 아닌, 믿었던 것들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하는 것 같다. 이런 가사를 담백하게 뱉어내는 그의 목소리는 이런 분노가 오래된 것임을 보여준다.

 

 

▲ 4번 트랙 “Working Class Hero” 뮤직비디오

존 레논은 흔히 평화주의와 자본의 평등을 부르짖는 혁명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강한 혁명가 이미지 이면에는 이토록 처절한 사연을 담고 있다. 그가 부르짖는 혁명의 메시지가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긴 존 레논의 처량한 사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직접 “밥 딜런 스타일 곡”이라고 밝힌 노래 “Working Class Hero”는 사상에 사연을 더해 메시지가 힘을 얻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God”과 “Working Class Hero”가 수록된 앨범 “Plastic Ono Band”는 1970년에 나온 존 레논 솔로로서 첫 정규앨범이다. 그런 만큼 비틀즈의 해체로 상심을 겪는 존 레논의 치유과정을 담고 있다. 첫 트랙과 마지막 트랙을 자신의 애증의 대상인 어머니에 대한 얘기로 배치하면서 수미상관을 이뤘다. 1번 트랙 “Mother”에서는 “Mother”를 목이 터져라 부르짖는 존 레논의 애절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의 갈라진 목소리에서 하나의 마음에 애정과 증오가 갈라져 나오는 걸 느낄 수 있다. 11번 트랙 “My Mummy's Dead”는 소년 시절 너무 빨리 어머니를 떠나보낸 상심을 담담하게 노래한다. 그 담담한 목소리에서 오래된 슬픔을 느낄 수 있다. “가을방학”의 노래 “종이우산”의 가사 한 구절이 떠오른다. “이젠 나의 일부가 되었네. 내 오랜 상처들.” 물론 존 레논 쪽이 상처를 표현하는 방법이 훨씬 담백하다.

 

환멸과 아픔을 반복하는 인생이지만, 인생이 늘 그런 것으로만 채워지는 건 아니라는 듯, 사랑에 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는다. 2번 트랙 “Hold On”은 상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괜찮아질 거라고, 내 사랑 요코와 함께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한다. 느리고 묵직한 느낌의 연주가 찰랑이듯 펼쳐지는데, 시련들 앞에서 자신을 위로하며 묵묵히 걸어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7번 트랙 “Love”는 피아노와 기타 연주가 잔잔하게 흐르는 가운데, 담백한 목소리로 사랑을 정의하는 가사를 읊조린다. 그가 노래하는 사랑이란 잠깐의 황홀이 아닌 영속적인 평화 같다. 9번 트랙 “Look At Me”는 “Love”보다도 더욱 간결하게 사랑을 속삭인다. 그야말로 속삭인다는 표현이 딱 맞다 느껴질 정도로 담백한 곡이다. 그가 부르는 사랑노래는 언제나 이런 영속적인 평화가 느껴진다.

 

 

▲ 10번 트랙 “God”

■ 두 얼굴의 존 레논

반면, 격렬한 로큰롤 리듬으로 독설을 내뱉는 3번 트랙 “I Found Out” 같은 곡도 있다. 이런 로큰롤 리듬은 8번 트랙 “Well Well Well”에서도 이어진다. 피아노 연주가 긴박한 느낌으로 울려 퍼지는 6번 트랙 “Remember”도 별미다. 그러고 보면, 존 레논에겐 참 다양한 모습이 있다. 평화와 평등을 부르짖는 혁명가 존 레논이지만, “The dream is over.(꿈은 끝났어.)”라는 문장을 가사 맨 마지막에 배치한 노래 “God”에서는 왠지 짙은 염세주의까지 느껴진다. 그는 다양한 모습을 가진 사람답게, 앨범 안에 음악도 정말 다양한 느낌으로 이뤄져있다. 존 레논의 이런 다양한 내면이 독보적인 음악 표현으로 전이된 느낌이다. 혁명가 존 레논의 껍데기를 한풀 벗기면, 세상이 아닌 오히려 한 개인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만든다. 사람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존 레논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사람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고, 이해가 넓어지는 만큼 사람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작가 “이석원”은 저서 “보통의 존재”에서 이렇게 썼다.

 

“저는 하루하루가 희망으로 넘쳐흐른다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로 의아한 생각이 들어요. 희망이란 절망 속에서 생기는 것인데 저렇게 희망만이 가득한 사람의 희망이란 대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하지만 존 레논이 노래하는 희망은 뭔가 다르다. 그는 절망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고, 그 절망을 탁월하게 표현할 줄 아는 뮤지션이기 때문이다. “God”의 가사엔 이런 구절이 있다.

 

“I was the Walrus but now I'm John.

 

나는 월러스였지만 지금은 존이야.”

 

여기서 “월러스”란 존 레논의 어릴 적 별명을 뜻한다. 이제 나는 더 이상 꿈꾸는 아이가 아니고 현실을 마주하는 어른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것 같아, 들을 때마다 가슴에서 뜨거운 게 올라오는 구절이다. “And so dear friends, You just have to carry on.(그러니 친구여 자네는 그저 가야 해.)”라는 문장이 이어지고 “The dream is over.”라는 문장으로 끝을 맺는 이 노래란 얼마나 깊은 절망을 담고 있는가. 그럼에도 존 레논은 혁명을 통한 희망과 사랑에 대해 노래하길 멈추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노래하는 희망과 사랑은 깊게 와 닿는다.

 

어쩌면 내가 대구에서 달서구로 자주 추억의 냄새를 맡으러 가는 건, 아마 이런 존 레논과 같은 기분을 느끼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닐까. 절망 섞인 추억이지만 나는 그 속에서 희망을 보고 싶었던 걸까. 나도 존 레논처럼 자신이 믿었던 모든 것으로부터 배신당하는 일이 있어도 계속 희망과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존 레논의 앨범 “Plastic Ono Band”를 들으며 해답을 찾아본다. 그가 느꼈을 절망에 공감하면서.

 


트랙리스트

1. Mother

2. Hold On

3. I Found Out

4. Working Class Hero

5. Isolation

6. Remember

7. Love

8. Well Well Well

9. Look at Me

10. God

11. My Mummy's D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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