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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탐쓴(Tomsson) - META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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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42: 탐쓴(Tomsson) - META FICTION

 

[ 과시가 필요하지 않은 담백한 증명 ]

 

 

힙합, 한국에 오다

 

아프로아메리칸(Afro-American) 문화에서 출발한 힙합은, 한국에 들어오면서 끊임없이 본토 미국의 힙합과 비교를 당해야 했다. 처음엔 랩이라는 음악적 양식만 한국에 가져오는 것부터 출발했지만, 세월이 흐르며 그것에만 만족할 수 없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랩뿐만 아니라 힙합의 문화까지 가져오길 원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본토 힙합 특유의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요소들이 서서히 한국 힙합 속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현재 Diss, Swag, Flex 등의 단어들로 대표할 수 있는 것들을 뜻한다. 상대방이 마음에 안 들면 거침없이 욕하고, 자기가 멋 내고 싶은 대로 멋 내고, 자랑하고 싶은 거 있으면 자랑하는, 그런 힙합 특유의 솔직함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누군가는 한국 힙합에 대해 커져가는 돈 벌이 돈 돈 돈 벌이 워!”라고 말했고누군가는 한국 힙합에 대해 힙합은 원래 그런 게 아닌데막 총 쏘고 대마초 빨고 해야 개간지인데.”라고 말했다랩으로 돈을 떼로 벌 수 있다고 과시하는 방식은 누군가에겐 동경이 되겠지만누군가에겐 질투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자수성가는 분명 최고의 가치다그런데 우리나라처럼 자수성가 모델이 부족한 현실에서는래퍼들의 돈 자랑이 이런 식으로 들릴 수 있다. “너희들이 안 되는 건모두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야노오력을 하란 말이야노오오력!” 한국의 많은 래퍼들이 “Started from the bottom”을 외쳤지만빈부격차 및 치안이 미국에 비해 안정적인 이 나라에선 “Bottom(밑바닥)”이라고 해봐야 너나 나나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게 문제다미국처럼 게토(Ghetto)”라는 이름의 무법지대에서 자란 것도 아니고가난이라고 해봐야 재벌 2세가 아닌 젊은이들끼리 비슷하게 다 겪어본 일들을 두고 말하는 것 아니던가아프로아메리칸 래퍼들처럼마약과 총격전이 난무하는 게토에서 시작해백만장자 래퍼가 되어 게토를 완전히 벗어난 이야기만큼 감동적으로 와 닿지가 않는다는 얘기다. “힙합은 원래 그런 게 아닌데막 총 쏘고 대마초 빨고 해야 개간지인데.”라는 말도 마찬가지다한국의 안정된 치안은 내버려두고 미국 게토의 비극을 따라하자는 그런 얘기처럼 들려서 말이다.

 

 

▲ “ILLIONAIRE RECORDS”가 2014년 발표한 노래 “연결고리” 뮤직비디오. 한국의 힙합에서 Flex를 유행시키는 데  “ILLIONAIRE RECORDS”가 가장 큰 공을 세웠다고 볼 수 있다.

힙합 특유의 솔직함에 매료된 사람들 중에, Diss, Swag, Flex 등이 Self-made(자수성가)라는 맥락 안에서 등장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아무 맥락도 없이 오직 과시하는 것만 집중하는 일부 몰지각한 래퍼들 때문에, 힙합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존재하는 것 같다. 그러나 힙합은 원래 그런 음악이 아니다. 힙합 특유의 과시하는 문화 역시, Self-made라는 맥락 안에서 탄생한 것이며, Self-made라는 맥락이 함께할 때, 비로소 힙합 특유의 솔직함이 제멋을 뽐낼 수 있는 것이다. 솔직하기만 하고 맥락은 없다면, 그것은 무례나 폭력에 불과할 뿐이다

 

 

자신의 목소리로 힙합을 말하다

 

물론 본토 힙합의 문화를 한국으로 들여오면서, 힙합 특유의 솔직한 문화가 많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뺏는데 성공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에서 오는, 이토록 어색한 지점들이 발생했다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이런 현실에서 한국 힙합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본토 힙합 특유의 솔직함을 내려두고, 상투적인 사랑노래나 쓰면 해결될까? 그럼 힙합의 문화를 빼고 음악적 양식만 가져오던 90년대 초반과 전혀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이런 한국 힙합의 현실 속에서 탐쓴이 내뱉는 이런 가사는 의미심장하다.

 

“I gotta get that paper. 잠시 나 이외 소리는 내려줘. 해줘 집중. 돈을 얘기 하는 것부터 시작해, 다음 차, 그 다음 집, 여자까지 그들의 절차 이룬 작사. 과연 내가 하고픈 게 저런 걸까.”

 

첫 트랙부터 이런 얘기를 하는데 어찌 이 앨범에 집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탐쓴이 이번에 발표한 정규 2집 앨범 1번 트랙 “Paper, Money, Fun”이다.

 

 

▲ 2번 트랙  “Nobody Know (Feat. UD)” 뮤직비디오.

그런 의미에서, “탐쓴의 등장은 한국 힙합계에 던지는 의미가 깊다. 탐쓴은 올해 7, 자신의 두 번째 정규앨범 “META FICTION”을 발매했는데, 탐쓴은 이미 20175월에 첫 번째 정규앨범 “PULP FICTION”을 발매하며 자신의 훌륭한 랩 스킬과 거친 언어들을 뽐낸 적이 있었다. 이번 앨범에선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탐쓴이 이번에 발표한 앨범의 최고 성과는, 랩 스킬에 대한 증명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한국 힙합계에서 힙합의 맥락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래퍼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증명해낸 것이다. 그렇다. 이제는 스킬에 대한 증명은 이미 끝났고, 힙합을 제대로 깊이 이해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으로 진보한 셈이다. 이 앨범을 자세히 살펴보며, 탐쓴이 이룬 성취들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앨범 이름에서부터 이 앨범이 드러내고자 하는 메시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메타픽션(metafiction)”이라는 단어를 우리말샘사전에서 찾아보면 이런 풀이가 나온다. “작가가 자신의 글을 되돌아보며 의심하고, 환상이나 상상을 가하는 등 글쓰기 행위에 대한 자의식이 드러나는 서술.” 이에 따라, 이 앨범에 수록된 가사들 중에는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려는 자아성찰 성격이 짙은 서술이 많다. 우선 2번 트랙 “Nobody Know (Feat. UD)”에서 Take this now. Take this from Pulp Fiction.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이전 앨범을 언급하는 것부터 시작한다Tactic 따라 틱틱 대는 평가는 한 데 모아 just pass. 한숨을 쉬듯 많이 쉬었던 내 혓바닥 메가폰. 도돌이표처럼 한 턴 돌아 다시 뱉어 남의 거 대신 택한 건 내 각본.이라고 말하며, 자신의 독창성을 주장한다. 2번 트랙에서 질주하는 비트에 자신감을 드러내던 탐쓴은, 3번 트랙 “before 01 track (interlude)”를 거쳐, 조금은 차분해진 목소리로 자신이 이룬 성취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뤄졌는지 담담하게 얘기한다.

 

 

▲  5번 트랙 “The Time” 정규 2집 앨범 공개 전에 디지털로 선공개된 곡.

 

메타픽션

 

4번 트랙 “Shhh”6번 트랙 낙서에선 자신의 어린 시절을 담백하게 늘어놓으며, 청자를 향해 친근하게 다가간다. 어두운 비트 위에 침착한 목소리로 늘어놓는 랩에는, 청자가 탐쓴의 어린 시절에 공감하게 만드는 특별한 힘이 있다. 무엇보다 귀를 기울이게 만드는 가사가 호소를 불러일으키는 주요한 요소다.

 

기형적으로 가졌던 나의 직업병. 가사를 얼만큼 써내려 갈까이었고, 자연히 성적은 내려가. 그 대신에 잘 연결이 되듯 예술의 맛을 기어코. 알아, 알아, Shit 알아버리고 말았지, 그게 내 인생의 반환. 큰 기준에서 그건 확실히 타락, 여기가 한국이 아니었다 해도 말이야.”

 

자신의 출신을 탓하지 않고 담백하게 타락을 인정하는, 이처럼 솔직한 고백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있을까.

 

눈물이 많아도 잘 울지 않는 척, 부모님 가족 앞에 서면 원래 시크했던 아들. 열등감이 심해서 매일 상처받아도 어쩌면 누구보다 자신감을 과시하는 말투. 너무 여려서 뚝하면 가슴 찢겨도 남자는 그래야만 함에 익숙해진 사람. 사람을 너무 믿어서 간 쓸개 다 내주고 결국 다시 받아온 건 모욕뿐인 사람. 사랑에 미쳐서 나 몰래 외도할 때 너를 위한 랩 가사를 밤새 쓰고 있던 사람. 외로움 느끼면서 혼자였을 할머니께 전화 한 통 안 드리곤 후회하는 사람.”

 

사람들이 생각하는 래퍼들의 스테레오타입과는 전혀 다른 이런 여린 고백은 또 어떠한가. 탐쓴에게 있어 랩이란 남들 위로 올라서려는 수단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솔직하게 풀어낼 수 있는 통로였던 셈이다. “낙 낙 낙 낙 낙서라는 말을 반복하는 낙서의 훅(Hook)을 보면 낙 낙 낙이라는 게 “Knock Knock Knock”이라고 들리기도 하는데, 왠지 여기서 랩이라는 수단으로 세상의 문을 두드리는 탐쓴의 모습이 연상된다.

 

 

▲  6번 트랙 “낙서” 정규 2집 앨범 공개 전에 디지털로 선공개된 곡.

6번 트랙 낙서를 지나고 나면, 7번 트랙 귀가 (skit)”에서 들리는 기차 소리는 청자를 8번 트랙 동대구역으로 데려간다. 여기서 탐쓴은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래퍼로서 자신의 가장 솔직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나는 대구의 인디뮤지션들을 조명하는 웹진 빅나인에 참여 중인데, 여기서 나온 이야기 중에 이런 얘기가 있었다. 대구라는 공간이 음악 속에 잘 드러나야 진정한 대구 로컬 뮤직이라는 얘기였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노래만큼 대구라는 공간이 가장 잘 드러난 가사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모두들 노래로 나라 욕은 잘 하지만, 자신의 거주 동네에 대해선 좋은 말만 노래에 넣기 바쁘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이렇게 예쁜 풍경도 있고,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도 있고, 맛있는 음식도 많고, 재밌는 사투리도 있다! 노래를 통해 자기 동네를 얘기하는 건 딱 이 정도에 그친다. 그런데 이걸로는 대구라는 공간을 타 지역 청자들에게 각인시키기엔 부족하다는 얘기다. 대구라는 공간을 타 지역 청자들에게 확실히 각인시키려면, 그것보다 더욱 깊은 사연과 효과적인 호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구 래퍼 탐쓴

 

8번 트랙 동대구역에서 탐쓴은 대구 힙합을 향해 사람들이 가진 편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실 여기는 누구에게는 그저 아류. 나는 편견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연어.”

 

탐쓴은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래퍼지만, “내 혀엔 감겨있지 태극기라고 말할 정도로, 활동 영역을 전국으로 넓히고 싶은 욕심이 큰 래퍼다. 그에 따라 그는 동대구역을 통해 서울로 올라가는 일상을 반복한다. 그렇게 서울에서 대구 래퍼에 대한 편견들을 마주하고 힘들었노라고 털어놓는 부분이다.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도 가사 작성을 멈추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탐쓴의 모습에서, 멋진 열정보다는 장거리 이동의 고단함이 먼저 느껴져 안쓰러움까지 느껴질 정도다. 훅에 들어간 가사 칙칙폭폭은 진지한 노래에서 동요 같은 느낌이 들어 우습게 느껴질 수도 있는데, 이런 가사의 흐름 안에서 칙칙폭폭을 음미하면, 기차 안에서 깊은 애수를 곱씹는 탐쓴의 모습이 보이며 곡에 더욱 몰입하게 된다.

 

 

▲  11번 트랙 “T.I.I (Feat. BORN-KIM)” 정규 2집 앨범 공개 전에 디지털로 선공개된 곡.

탐쓴이 노래하는 대구란, 그저 사랑하는 나의 아름다운 고향이 아닌, 삶의 희로애락이 뒤섞인 애증의 공간이다. 자신의 거주지란 삶과 가장 밀접한 곳이다. 삶이라는 게 원래 기쁜 일과 슬픈 일이 한 데 섞이는 것이거늘, 자신의 삶과 가장 가까운 공간이 어찌 좋기만 하겠는가. 오히려 거주지에 사는 기간이 오래될수록 좋다는 느낌보단, 지겹다는 느낌을 일상적으로 느끼는 게 당연하다. 그러니 자신의 거주지에 대해 좋은 말만 늘어놓는 노래들이 호소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데 탐쓴은 자신의 거주지 대구에 대해 애()뿐만 아니라, ()까지도 솔직하게 드러내며, 대구라는 공간에 대한 호소를 극대화시켰다. 16번 트랙 반월당은 사실 가사를 보면 반월당에 대한 특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술에 취한 상태로 바라보는 대도시의 밤거리를 묘사했다는 생각 외엔 들지 않는다. 그런데 탐쓴은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장소인 반월당 안에서 보컬 “UD”와 함께 Feel like I'm stranger.를 반복해서 읊조린다. 가장 익숙한 장소마저도 낯설게 변해버리는 기분이라니, 이토록 철저한 고독은 반월당이라는 장소를 완전히 새로운 풍경으로 바꿔놓는다. 이런 고독과 외로움에 공감하는 청자들은 가사에 반월당에 대한 언급이 없어도, 그저 제목 때문에 반월당을 생각하게 된다. 탐쓴으로 하여금 이런 가사를 쓰게 만든 반월당이란 대체 어떤 곳일까.

 

탐쓴이 대구를 향해 애수 섞인 목소리만 내뿜는 건 아니다. 이 앨범 전체를 통틀어 넘버원 킬링 트랙이라 할 수 있는 13번 트랙 “053 remix”를 보자. 원래 원곡이 있지만, 빵빵한 피처링으로 원곡과는 전혀 다른 희열을 선사한다. 평소에 힙합 좀 많이 들었다 싶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름들이 보일 것이다. “MINOS(마이노스)”는 현재 2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대구 힙합 공연 시리즈 힙합트레인의 초창기를 이끌었던 인물이고, “MC META(엠씨 메타)”드렁큰 타이거와 함께 한국 힙합 1세대를 논할 때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인물이다. 두 래퍼 모두 현재는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 중이지만, 여전히 자신의 출신지 대구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고 대구 래퍼 탐쓴과 함께 했다. 탐쓴은 이 위대한 두 래퍼 앞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뱉는다.

 

대구에서 빚어 댄 시가 내 수식어를 대표로 치장. 고맙지만 방송 안 탄 난 Title을 거부했어. 난 한국 rapper, but 불러준다면 내 주둔지인 여기를 신나게 대펴 100%.”

 

 

▲ 8번 트랙  “ 동대구역 ” 가사 비디오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진정한 Self-made

 

마이노스의 랩이 훌륭하다는 것은 당연한 얘기니 따로 말해봐야 소용없을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건, 마이노스가 랩에 경상도 사투리를 자연스럽게 섞으며, 표준어로 랩을 구사할 때보다 훨씬 독특한 멋이 우러난다는 점이다. 이에 질세라, 탐쓴도 랩에 경상도 사투리를 섞으며 자신의 랩 스킬을 드러낸다. 그런데 여기서 최고봉은 엠씨 메타다. 그는 이미 디제이 렉스와 함께 2011년에 발표한 무까끼하이 (Yes Yes Y'all)”이라는 노래를 통해 경상도 사투리 랩을 구사했었다. 이로 인해 청자들로부터 진정한 코리안 싸우쓰 힙합이라는 칭송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 “053 remix”에선 한층 더 향상된 사투리 랩을 선보인다. 사투리 억양을 좀 더 말하는 느낌에 가깝게 변형시켜, 그야말로 사투리 그 자체가 훌륭한 랩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다. 말만 해도 그것이 그대로 랩이 되는 경지는 아프로아메리칸들만 되는 게 아니다. 여기 한국에도 그런 경지에 오른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바로 엠씨 메타라는 걸 증명하는 부분이다.

 

마이노스, 엠씨 메타, 이 두 선배 래퍼들처럼 서울에 올라가 성공하는 것도 훌륭한 길이겠지만, 탐쓴은 왠지 대구에 남기로 결정한 것처럼 보인다. 그가 왜 계속 대구에 남아 있는지 자세한 사정은 이 앨범에서 얘기하지 않지만, 그를 보고 있으면 자기 자리를 그대로 지키는 것도 또 하나의 멋이라는 생각이 든다. 12번 트랙 장소만 다를 뿐에서는 피처링을 맡은 “MAANSOO(만수)”와 함께 거친 언어로 사회 비판에 나선다. 이 사회 비판 트랙에서 의외로, 어렴풋이 탐쓴이 서울로 가지 않고 대구에 남아 있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탐쓴은 훅에서 이렇게 말한다.

 

돌아가다가 날마다 돌아가다 도니까, 학교판이 금뱃지판 힙합판 노름판이 다 똑같은 것 같아. (장소만 다를 뿐.) 다 똑같은 것 같아. (장소만 다를 뿐.) 역시, 역시.”

 

홍대에 대한 환멸을 노래하는 부분은 이외에도 더 있다. 9번 트랙 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한 저기 덜떨어진 홍대 바닥 깔린 애들. 바퀴벌레 모아 놓은 거리 부심 빼꼼. 힙합이 유행이라 발만 담군 3류 폐급. . 공부가 싫은 애들이 뭉쳐서 만든 테두린 꿈이란 이름을 방패 삼고 do the fuck rap 너무 쉽게 달아 가슴팍에 달린 꼬리표는 개나 소나 real fucking artist. . 화만 낼 줄 알고 얘네는 죽어도 절대 내지 않지 CDLPEP까지 아직. 완성의 반에 반도 못 접근한 발칙한 속이 원하는 건 결국 여자거나 관심.”

 

 

▲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감독의 출세작  “ 펄프 픽션 (Pulp Fiction)”의 예고편

15번 트랙 “Quentin”에서는 자신의 롤 모델인 영화감독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에 대해 노래한다. 쿠엔틴 타란티노는 1994년 발표한 펄프 픽션(Pulp Fiction)”을 통해 영화계의 거장으로 올라섰다. 그는 특유의 B급 감성과 파격적인 스토리 전개 방식으로 관객과 평단을 경악시켰고, 그의 영화 펄프 픽션은 지금까지 기억되는 클래식 영화로 남게 된다. 탐쓴은 이 노래에 깔린 부드러운 듯 웅장한 비트 위로, 자신도 자신만의 영화를 찍고 싶다고 얘기한다. 그 영화는 영상으로 찍는 영화라기보다 랩을 통해 이야기하는 자신의 삶이다. 다시 1번 트랙 “Paper, Money, Fun”으로 돌아가 보자.

 

나의 시, 나의 삶, 나의 입, 여전히 그 때 그대로 원해 난 classic. 독 타 놓을 기준, 그딴 건 애초에 없었지. 근데 여기는 기준을 맹신했고, 그 때 꼬마의 눈이 응시했던 것은 재미, 그 재미는 전율. 그게 내 창작의 샘이지.”

 

진정한 의미의 Self-made란 결국, 돈과 명예를 얻는 것을 떠나서,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같다. 클래식이 되는 건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한 것이지, 자신의 무대가 어디인지가 더 중요한 게 아니기에, 그는 여전히 자신의 땅 대구에서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가는 게 아닐까.

 

 

탐쓴이 얘기하는 힙합의 본질

 

내가 탐쓴을 페이스북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던 일을 떠올려본다. 대구에서 활동하며 정규앨범을 두 장 째 냈다는 것에 일단 놀랐고, 디지털 음원이 시장의 주류로 올라선 지금, 7월에 피지컬 CD 음반만 먼저 선공개하고, 디지털은 11월에 따로 공개하겠다는 그의 선언에 다시 놀랐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힙합을 그렇게 자주 듣지 않는다. 나도 좋아하는 힙합 곡 몇 개가 있긴 하지만, 내 청취생활에 차지하는 비중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런데, 대구라는 변방의 도시에서, 꿋꿋이 힙합으로 독보적인 행보를 보이는 이런 뮤지션을 보니,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홀린 듯이 그가 대명동 공연장에서 펼치는 정규 2집 발매공연에 참석했고, 그 공연에서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공연에 게스트로 출연한 래퍼 “FANA(화나)”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자신이 우울증으로 고생하고 있기 때문에 공연에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 많이 들었지만, 자기는 탐쓴처럼 Self-made하는 사람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이 자리까지 무사히 나올 수 있었다고. 그 어떤 음악 장르보다도 뮤지션의 행보에 진정성을 많이 요구하는 장르가 힙합이니 만큼, 진정성은 힙합 뮤지션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내가 콘서트를 보며 느낀 탐쓴은, 그 진정성만큼은 확실히 획득한 래퍼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이건 곧 현장에서 바로 CD를 구매하게 만든 동기가 되었다.

 

 

▲ 탐쓴 정규 1집 “PULP FICTION” 수록곡 “BITE TWICE” 뮤직비디오

음반은 내가 이것을 명반으로 여기기에 충분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이렇게 힙합 음반에 강한 인상을 받아본 적이 없다. 전에 쓴 글을 통해, 재키와이 앨범을 명반으로 칭송하긴 했지만, 나는 오히려 탐쓴의 정규 2집 앨범을 나의 첫 번째 힙합 명반으로 세우고 싶다. 이 앨범만큼 나에게 힙합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앨범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디지털 음원 공개에 앞서, 피지컬 CD 먼저 공개하는, 어떻게 보면 시대에 뒤처진 행보를 보였다. 그 안에 들어 있는 음악들도 붐뱁(Boom Bap)” 비트의 비중이 높아, 현 트렌드에서 살짝 벗어난 음악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쓴은 오히려 이런 음악적 행보들을 자신의 독창성으로 삼았고, 시대를 역행하는 행보들을 역이용해서 자신이 클래식이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임을 효과적으로 증명했다. 이 앨범은 17 트랙에 54분으로 볼륨이 꽤 있는 앨범이다. 그럼에도 이 앨범은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다양한 음악적 색깔을 뽐내면서도 하나의 흐름을 놓지 않는다. 정규앨범의 미학에 지극히 충실하다. “Ohio Fish” “Cash Note” “Amonight” “권디엘” “PE2NY” 이렇게 소개된 비트메이커들 및 프로듀서의 능력이 드러난 부분이다. 이들의 능력이 없었다면 이런 명반은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피지컬 앨범을 선공개해서, 정규앨범 전체를 듣도록 유도했던 건, 자신의 앨범을 명반으로 여기는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다.

 

탐쓴은 1번 트랙에서 이런 얘기도 한다.

 

그 본질을 만든 소중한 본질을 믿어.”

 

본질을 믿는다고 말하는 만큼, 이 앨범은 힙합의 본질에 다가서는 앨범이라 할 수 있다. 힙합의 진정한 멋은 Diss, Swag, Flex가 아니다. 그것들이 멋있는 것은 그것들을 받치고 있는 본질때문이다. 그 본질이 멋있기 때문에, 그 본질에서 파생된 Diss, Swag, Flex 등이 멋있게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 본질을 잃는다면 이것들은 솔직한 멋이 아닌, 아까도 말했듯이 무례나 폭력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탐쓴은 이런 한국 힙합의 현실 속에서 힙합의 겉모습이 아닌 힙합의 내면에 더욱 집중하기로 결심한 것처럼 보인다. 힙합의 본질은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솔직하게 풀어내는 것이라고. 탐쓴이 이 앨범을 통해 세상에 외치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그렇기에 그 여린 고백들이 멋있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고, 자신에게 야유를 날리는 사람들을 향해 This is it why call u bitch ass.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섹시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 13번 트랙  “053 remix ”

나도 내 글이 클래식이 되길 원한다. 그 점에서 나는 탐쓴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그를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나는 나의 길을 끊임없이 의심했다. 내가 되고 싶은 클래식이라는 게 그저 내 허영심이 만들어낸 허상은 아닐까. 그런데 탐쓴은 오히려 자신을 흥분시키는 것만을 위해 움직인다고 말하며, 자신을 가장 흥분시키는 것이 클래식이라고, 그래서 클래식을 향해 가는 것뿐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그래. 나를 흥분시키는 것을 위해 길을 따른다면, 그것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상관없겠지. 그저 그 길을 향하는 동안 재밌으면 그만이니까. 탐쓴은 고독이라는 게토를 거쳐, 세상을 향해 Hustle하며, 자신을 클래식으로 Self-made한다. 그런 탐쓴의 길이 그가 내뱉는 솔직한 랩을 따라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이 글을 쓰는 내내 엠씨 메타의 외침이 귀를 떠나지 않는다

 

남에 거 하지 말고 네 거 해라. 어이? 탐쓴 맨츄로!”

 

한국 힙합을 대표하는 거장의 보증이니, 여기엔 의심이 필요 없다.

 


트랙리스트

 

1. Paper, Money, Fun

2. Nobody Know (Feat. UD)

3. before 01 track (interlude)

4. Shhh

5. The Time

6. 낙서

7. 귀가 (skit)

8. 동대구역

9. 화

10. 뒷담화

11. T.I.I (Feat. BORN-KIM)

12. 장소만 다를 뿐 (Feat. MAANSOO)

13. 053 remix (Feat. MINOS, MC META)

14. message from compton city (skit)

15. Quentin

16. 반월당 (Feat. UD)

17. I'M 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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