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명반 에세이 44: 쏜애플(THORNAPPLE) - 이상기후
[ 자해하며 흘린 피로 쓴 이방인의 시 ]
* 이번엔 특별히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소설 형식으로 음반에 대한 감상을 적어봤습니다. 이것은 저의 감상에 바탕을 두고 지어낸 허구일 뿐이며, 실존하는 인물이나 단체와 연관이 없음을 알립니다. 따라서 이 글은 누군가를 옹호하거나 공격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님을 밝힙니다.
난민이 되어 사랑의 세계에 도착한 그는 외국어를 배우듯 그들의 방언을 배웠다. 이방인은 어느 날, 그 궁전이 아름답더라 말하는 그들의 말을 들었다. 사랑의 세계의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향이자 생명의 근원인 그 궁전을 아름답다 찬양하였다. 혐오의 세계에서 온 난민이자 이방인이었던 그는 사랑의 세계에 살고 있는 그들의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방인은 생각에 잠겼다.
그 궁전이라면, 인류의 고향, 생명의 근원인 그곳을 말하는 건가? 고향은 전혀 아름답지 않은데, 생명은 전혀 아름답지 않은데, 그 궁전이 대체 뭐가 아름답단 말인가. 내가 살던 고향인 혐오의 세계는 모든 것이 추악하고, 모든 생명이 죽음만을 찬양했다. 그런데 고향이 아름답다고? 생명이 아름답다고? 무슨 헛소리들을 하는 거야.
이방인은 자신이 살던 혐오의 세계가 싫어서 사랑의 세계로 도망친 사람이었다. 그러나 도망치듯 도착한 그곳에서 평화롭게 정착하는 건 어렵기만 했다. 이방인을 둘러싼 모든 언어가 그를 더욱 난해한 심정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랑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은 그 이방인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이방인은 곧 고독한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고독은 이방인에게 자기혐오와 자해를 가르쳤다. 이방인은 고독의 우등생이었다. 이방인은 자해를 반복하다 결국 자살을 결심한다. 하지만 죽음은 아직 이방인을 반기지 않았다. 이방인은 죽음이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것임을 실감했다. 차라리 자신을 고독으로 이끈 그 난해한 사랑의 언어들을 다시 배우는 게 훨씬 낫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이렇게 읊조렸다.
“나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아.”
이방인은 다른 결심에 이르렀다. 나의 버릇인 자해를 통해 시를 쓰리라. 나의 피로 시를 써, 나의 고통을 사람들에게 알리리라. 그래야 내가 억울함을 거두고 편히 잠들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그는 자해를 하며 흘린 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자신이 쓴 시를 자신만 본다면 억울함을 해소할 수 없으리라. 그는 자신의 피로 쓴 시들을 남들 앞에 공개했다. 사람들은 시에서 풍기는 피 비린내에 기괴함을 느끼면서도, 그 시가 뿜어내는 깊은 애수에 매료되었다. 사람들은 이방인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방인이 피로 시를 쓰는 동안, 자신의 피 묻은 애수에 깊게 공감해주는 연인이 생겼다. 이방인은 비록 사랑에 서툴었지만, 그의 연인은 이방인의 서툰 사랑마저도 좋아했다. 이방인은 그런 자신의 연인이 좋았다. 이방인은 아직 자신의 연인이 전해주는 온기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어쨌든 봄은 이방인의 공기에 도달했다. 이방인과 연인의 “시퍼런 봄”이 시작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방인과 그의 연인이 이별에 이르게 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방인은 아직 그들의 언어에 서툴었는지, 결코 해선 안 될 말실수를 그들 앞에서 하고 말았던 것이다. 사랑의 세계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찬양하는 그 궁전을 모독했다는 죄목이었다. 이방인의 말실수는 사랑의 세계에 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일으켰고, 그들은 이방인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이방인은 자기 때문에 연인마저 공격당하는 걸 원치 않았다. 이방인은 결국 연인에게 결별을 선언하고, 자신을 공격하는 사람들로부터 달아났다. 자해를 하는 것처럼 시를 쓰는 것마저도 버릇이 되어버린 그는, 도망치는 도중에 자신의 연인을 그리워하며 이런 시를 남긴다.
“이게 뭐야, 나 사람의 말을 기껏 배웠는데. 어째서 넌 아무 말도 없나. 이게 뭐야, 나 이제야 너를 만났다 했는데. 꾸물거리는 몸속에 너를 가득 안고서, 달아나는 중. 달아나는 중.”
이방인은 아무도 없는 낯선 숲에서 숨을 고르며 또 다른 시를 썼다. “백치”라는 시였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는 시였다. 이방인이 시를 쓰는 동안, 거짓말처럼 그의 앞에 연인이 다시 나타났다. 이방인이 이별을 고하고 떠났던 그 사람 말이다. 둘은 다시 만난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서로를 껴안았다.
이방인은 여전히 연인의 안전을 걱정했기 때문에, 이것이 마지막 밤이라는 말을 연인에게 전한다. 둘은 낯선 숲, 달빛 아래에서 서로 껴안고 마지막 밤을 보냈다. 이방인은 연인을 다시 만나 기쁘기도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론 연인을 향한 걱정이 심해져서 괴로울 지경이었다. 그는 절정에 이르러 연인을 향해 이렇게 외쳤다.
“그만, 그만, 나를 못 살게 해. 오늘만큼은 참을게. 그러니 부디 내일은 살아나지 말아줘.”
이방인이 도망치기를 계속하다 도착한 곳은 사랑의 세계도 아니고, 혐오의 세계도 아닌, 다른 세계에 있는 사막이었다. 이방인이 밤을 새워 헤매는 동안 사막에 아침이 밝아왔고, 해는 사막에 열기를 더했다. 이방인은 사막의 열기를 곱씹고 있으니, 왠지 사랑의 세계에 처음 도착했던 일이 떠올랐다. 그랬다. 고독에 익숙해진 이방인에겐 연인과 나눈 사랑의 순간들이 모두 “낯선 열대”였다.
어느 새, 사막에 적막한 밤이 찾아왔다. 연인과의 추억을 곱씹으며 방황하던 이방인은, 사막의 한 구석에 틀어박혀 메마른 추위에 신음했다. 그는 몸을 움츠리고서 자신만의 “암실”로 끊임없이 침잠했다. 이방인은 숨이 끊어질 것 같은 고독과 추위에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해는 다시 밝았고, 다시 돌아오는 열기에 이방인은 어지러워 쓰러졌다. 시야가 흐려지는 이방인의 눈에는 사막의 모든 것이 “아지랑이”로 보였다. 이방인은 갑자기 살고 싶어졌다. 그래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려고 목소리를 내려는데, 목에서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마지막 숨까지 꺼지고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떠보니 낯선 사람의 집이었다. 사막을 우연히 스쳐 지나던 나그네에게 구조된 것이었다. 이방인은 그 나그네의 집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 기운을 차린 후, 자신이 원래 살던 사랑의 세계로 돌아가기로 다짐했다. 이방인은 나그네에게 감사를 전하고 길을 나섰다. 이방인은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도중, 이런 말로 시작하는 시를 썼다.
“이제는 사막을 헤매이지 않으리.”
사랑의 세계에 돌아온 이방인은 다시 자신에게 공격을 가하던 사람들을 마주했다. 동시에, 자신의 시를 좋아하던 사람들이 여전히 자신을 그리워하고 있었음도 깨달았다. 이방인은 방황하던 시절에 썼던 시들을 다시 그들 앞에 보이기로 결심했다. 그 시들을 모은 시집의 이름을 “이상기후”라 정했다. 그가 혐오의 세계를 떠나서 마주한 모든 순간들이 그에겐 비정상적인 날씨처럼 느껴졌기에. 그는 곧 시집 발표를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방인의 자기혐오는 워낙 깊은 것이었는지, 그는 다시 남들 앞에서 생명의 궁전을 모독하는 발언을 하였고, 그는 다시 사람들로부터 달아났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이방인이 다시 돌아올 것을 기대했다. 자기혐오에만 빠져 있기엔 그가 쓰는 시들이 그 누구도 쓸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것들이었기에. 그의 시를 읽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이들이 아직 그곳에 많이 남아 있었기에.
트랙리스트
1. 남극
2. 시퍼런 봄
3. 피난
4. 백치
5. 살아있는 너의 밤
6. 낯선 열대
7. 암실
8. 베란다
9. 아지랑이
10. 물가의 라이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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