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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델리스파이스(Deli Spice) - D

인생명반 에세이 46: 델리스파이스(Deli Spice) - D

 

우울 속에서 찾은 유토피아

 

■ 가장 좋아하는 앨범과 가장 자주 듣는 앨범

음악을 듣다 보면, 한 뮤지션 혹은 밴드에 심취하게 되는 경우가 있고, 그러다보면 그 뮤지션이 발표한 모든 곡, 모든 앨범을 듣겠다는 일념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게 그 뮤지션의 여럿 앨범들 중에서 내가 특히 좋아하는 앨범이 생기게 된다. 대게는 그 뮤지션의 앨범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 그 뮤지션의 앨범 중에 가장 자주 듣는 앨범이 된다. 그런데 가끔, 내가 그 뮤지션의 앨범 중 가장 좋아하는 앨범과, 그 뮤지션의 앨범 중 가장 자주 듣는 앨범이 갈리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의 경우, 가장 좋아하는 앨범은 “The Downward Spiral”이고, 가장 자주 들었던 앨범은 “The Fragile”이다. 한국 인디밴드 허클베리핀의 경우, 가장 좋아하는 앨범은 “18일의 수요일”인데, 가장 자주 들었던 앨범은 “나를 닮은 사내”다.

 

이번에 소개할 밴드 “델리스파이스”도 마찬가지다. 가장 좋아하는 앨범은 정규 3집 “슬프지만 진실”이지만, 가장 자주 들었던 앨범은 “D”다. 이렇게 한 뮤지션에 대해 가장 좋아하는 앨범과, 가장 자주 듣는 앨범이 갈리는 이유는 아무래도 음악성 영향이 가장 큰 것 같다. 나에게 도무지 지울 수 없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에 그 앨범을 가장 좋아하는 앨범으로 뽑지만, 그 강렬함이 때로는 부담이 되기도 하고, 그 강렬함이 반복청취로 인해 무뎌지는 게 싫기도 하니까, 그 강렬함을 아껴서 느끼고 싶기도 하고, 주로 이런 이유로 가장 좋아하는 앨범임에도 자주 듣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자연스레 가장 자주 듣는 앨범은 그에 비해 편안한 음악성을 지닌 앨범이 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번에 소개할 밴드, 델리스파이스도 그렇다. “슬프지만 진실”은 분명 내가 델리스파이스 앨범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앨범임이 확실하지만, 지나치게 직설적인 화법으로 우울과 절망을 노래하기 때문에, 자주 들으면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그에 비해 이번에 소개할 앨범 “D”는 좀 더 은유적으로 부드럽게 표현하고 있어서, 자주 듣기에 적합하다.

 

내가 한참 델리스파이스를 좋아하던 때는 열여덟 살 때였는데, 그 때는 내 인생 최악의 우울증을 경험하던 시기로서, 매일 자살충동을 머리에 채우고 살았었다. 하지만 엄격한 부모와 자살충동을 죄악시 여기는 10년 전 사회 분위기 때문에, 어디 가서 이런 얘기를 쉽게 꺼낼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고, 병들어가는 내 마음을 위로해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음악뿐이었다. 사람은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아픔을 나눠 갖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거기에서 위로를 얻고는 한다. 내게는 우울한 음악을 듣는 것이 그런 식의 위로 수단이었다. “난 이제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 더 이상.”이라거나 “겁탈하듯 엄습하는 공포를 들으며, 막힌 상자 속 안에서 거룩한 그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려. 난 오늘도 기다려.”라고 말하는 앨범 “슬프지만 진실”은 자살충동으로 가득 찬 내 마음을 정확하게 대변했지만, 때론 지나치게 정확해서 내 마음이 다 발가벗겨지는 것 같은 수치심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 수치심을 피하기 위해 조금 덜 직설적인 앨범 “D”를 많이 들었다.

 

 

▲ 델리스파이스 멤버들. 좌측부터 윤준호(베이스), 김민규(기타), 최재혁(드럼)

■ 자살은 죄인가

“슬프지만 진실”은 자살 직전의 상황을 맞이한 사람의 심정을 담은 앨범이라면, 그 다음 앨범 “D”는 왠지 그 전 앨범의 화자가 자살에 성공해, 천국으로 날아가며 읊조리는 말들을 받아 적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밴드가 이런 걸 의도했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 두 앨범을 가장 사랑하고 가장 많이 듣던 시기를 생각해보면, 이런 식으로 생각이 이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다. 자살한 사람이 천국에 갈 수 있을까? 자살은 동서고금 자기 자신을 살인하는 죄라고 규정된다. 자기 자신을 살인한 사람이 천국에 간다?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자살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 입버릇으로 하는 말이 있다. 죽고 나면 모든 게 편해질까. 사람들은 자살을 죄라고 부르지만, 그래서 자살하는 사람은 천국이 아닌 지옥에 간다고 말하지만, 자살을 꿈꾸는 사람 대부분은 자신이 죽고 나서 천국에 가길 원한다. 적어도 지옥에 가길 원하는 사람은 없다. 이번 생을 떠나서 더욱 괴로운 곳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음에 가게 될 곳이 사후세계든, 온전한 무(無)가 되었든, 그곳은 이번 생보다 더욱 편안한 장소에 대한 갈망으로 이뤄져 있을 것이다.

 

이 앨범에 있는 곡들은 대게 밝은 음색과 활기찬 멜로디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진행하는 보컬이나 가사를 들여다보면 오히려 음울하다. 1번 트랙 “뚜빠뚜빠띠”는 귀여운 동요 느낌 제목과는 다르게, 가사를 보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젊은 시절에 대한 회한을 잔뜩 담은 곡이다. 이 곡 전체를 지배하는 밝은 음색이, 여기서 메인 보컬을 맡은 “김민규”의 심드렁한 목소리와, 회한을 말하는 가사와 결합하며 묘한 역설을 형성한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기차가 내 앞을 스쳐 지나는데, 그 기차가 오로라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니,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게 된다. 그러다 저 기차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걸 문득 깨닫고 슬픔을 마주하는 느낌이랄까. 하필이면 저 기차가 나의 지난 젊음을 향해 날아가는 기차였다니, 저 기차를 붙잡고 싶어도 이젠 저 오로라 너머로 사라져버렸으니, 영영 저 기차를 잡을 수도 없게 되어버렸다.

 

2번 트랙 “항상 엔진을 켜둘께”는 떠나간 기차를 향해 상심에 빠진 친구에게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으며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하는 느낌이 든다. 그렇게 친구와 함께 길을 떠나니 어느새 3번 트랙 “안녕 비밀의 계곡”에 이르렀다. 여기서 “안녕”이란 만남을 뜻하는 말보다는 이별을 뜻하는 말로 더 자주 쓰인다. 물론 제목은 비밀의 계곡을 만났다는 의미지만, 그 비밀의 계곡에 이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야만 했다는 걸 말하는 게 이 노래다. 그러므로 가사에선 이별의 의미로 “안녕”이라는 단어가 많이 쓰인다. 이 앨범의 전반적인 특징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도 밝은 음색과 심드렁한 목소리의 결합이 이뤄진다. 메인 보컬이 “김민규”에서 “윤준호”로 바뀌었는데도 말이다.

 

“내가 아끼던 빈티지 501의 낡은 닥터마틴 안녕. 안녕. 하굣길에 기웃거리던 우리 동네 작은 레코드숍 모두 모두 안녕. 오후만 있던 일요일의 홍대 앞 안녕. 보고픈 회원들 모두 안녕. 질리도록 늘 새로웠던 그날의 음악이여 안녕. 모두 잘 지내요.”

 

가사에서 이별을 고하는 대상이 워낙 구체적이고 정확해서, 노래 속 화자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기 위해 정말 많은 결심을 했다는 걸 가늠하게 만든다. 노래는 전체적으로 힘찬 브라스 연주를 통해 모험의 박진감 넘치는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심드렁한 목소리로 이별을 말하는 가사를 듣고 있자면, 힘찬 브라스 연주와 대비되는 비참한 화자의 심정을 느낄 수 있다. 연주가 차분해지고 보컬이 잠시 김민규로 전환되며 “이제 난 떠나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라고 읊조리는 부분은 이 노래 속 화자의 여행이 결코 유쾌한 것이 아님을 드러낸다.

 

 

▲ 2번 트랙 “항상 엔진을 켜둘께”

■ 그리움이라는 병

다음에 이어지는 4번 트랙 “Y.A.T.C.”와 5번 트랙 “동병상련”에서는 좀 더 차분한 분위기로 이어지며, 이 앨범이 드러내고자하는 정서를 더욱 본격적으로 드러낸다. 당시 델리스파이스 드러머였던 “최재혁”이 작사, 작곡, 보컬을 맡은 4번 트랙 “Y.A.T.C.”를 먼저 보자.

 

“다 사라지기를 바랐어. 내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 널 만나고 뒤늦은 내 후회는 돌이킬 수 없니. 하지만 잊지는 않겠지. 술 취한 내 목소리 듣고 나면, 얘기하던 그 밤도. 순수함을 외친 적 없어. 사랑이란 말이 다 뭐야. 하루하루 살았을 뿐, 그 안에 네가 있었겠니. 하지만 잊지는 않겠지. 술 취한 내 목소리 듣고 나면, 얘기하던 그 밤도.”

 

절에선 온갖 현학적인 은유들을 늘어놓으며 “사랑”이라는 말을 부정하지만, 후렴부에선 결국 자신이 떠나보낸 그 사람에게 단순한 호감 이상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며 고백한다. 오래 참아온 말을 겨우 뱉어내는 것 같은 이런 모습은 꽤 처량하다. 그러나 이런 고백조차도 지난 시절을 되돌릴 수 없음에, 고백은 오히려 더 큰 회환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 연주와 보컬은 처음부터 끝까지 담백하게 진행되지만, 서서히 곡이 흐려지는 듯 갑작스럽게 끝맺는 모습은 왠지 화자의 비참한 심정을 그대로 노출하는 것 같다.

 

“언제까지나 내 곁에 함께 있어줄 것만 같았던 나의 친구. 우리는 서로가 같은 병을 앓아서 함께 아픔 나눌 거라 믿었지. 이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을 거라 굳게 믿었던, 그 친구 하루는 이렇게 말했지. 이젠 그 병이 다 나았노라고.”

 

위에 인용한 가사는 다음 트랙 “동병상련”의 가사다. 오랜 시간 절친한 사이로 지냈지만 결국, 서로 다른 인생의 길을 걷게 된 친구를 향해 원망 섞인 작별의 인사를 건네는 곡이다. “병”은 둘을 만나게 하고, 둘을 친해지게 만들었지만, 병이라는 것은 낫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기에, 결국 나보다도 먼저 병이 나아버린 친구 때문에 슬퍼지는 심정을 다루고 있다. 그 병이란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마땅히 어른이 되어야 하지만, 늦은 나이에도 어른이 되지 못하는 병이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어른이 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친구가 앓는 병이 나은 것은 분명 축하해야할 일이지만, 그보다는 그 친구가 나를 떠났다는 사실이 더욱 강하게 다가와 결국 슬픔이 되는 역설적 심정을 노래했다.

 

6번 트랙 “Still Falls The Rain”은 가사가 영어로 되어 있다. 가사를 이루는 언어가 바뀐 것처럼, 곡의 분위기도 전 두 트랙에 비해 활기찬 느낌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왠지 이들이 마주하는 슬픔의 시련이, 아직 끝나지 않고 내리는 비처럼 계속 흐르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 같아, 마냥 유쾌하게 들리지는 않는다. 밝은 곡 분위기 속에서도 희미하게 다가오는 우울한 느낌은 7번 트랙 “악몽”을 통해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지극히 느린 곡 진행과 늘어지는 김민규의 목소리가 종말을 맞이한 세상의 참상을 드러내는 것 같다. 그 종말이란 거시적인 의미보다는 사적인 정신세계의 종말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믿었던 모든 가치와 인관관계가 무너진 내 정신세계의 종말. 이 곡은 크게 두 가지 구성으로 이뤄져있는데, 느리게 진행되는 전반부와, 갑작스레 분위기가 전환되며 곡이 빨라지는 후반부, 이렇게 두 가지다. 전반부는 앞서 묘사했듯 종말을 맞이한 정신세계이고, 후반부는 전반부에서 펼쳐진 악몽에서 깨어나 다시 현실을 마주는 심정을 담았다. 이 곡은 내가 이 앨범을 좋아하게 된 가장 큰 계기를 준 곡으로서, 휴일에 이 앨범을 듣다 잠에 빠진 적이 있는데, 마침 이 곡이 흘러나올 즈음에 깨어나, 이 곡이 평소와 다르게 들렸던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이 곡을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

 

 

▲ 킴 칸스(Kim Carnes) “Bette Davis Eyes”

 

▲ 12번 트랙 “Bette Davis Eyes”

■ 내게는 언제나 낯선 세상

8번 트랙 “화성으로 가는 로케트”는 연주곡으로서, 세상에서 맞이한 모든 환멸에 지쳐 화성까지 날아가고 싶은 사람의 심정을 담은 것처럼 경쾌한 듯 몽환적이다. 그렇게 로케트가 청자를 이끄는 곳은 9번 트랙 “한길”이다. 꿈속에서 만난 친구에 관한 얘기인데, 로케트 타고 멀리 간 곳에서도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놓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에 애틋한 기분이 든다. 10번 트랙 “낯선 아침”은 제목에 충실한 가사를 갖고 있다.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맞이하는 모든 하루가 코즈믹 호러(Cosmic Horror)이며, 자신이 맞이하는 세상이 이미 디스토피아일 것이다. 이런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언젠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몰려오는 아침이 있을 텐데, 그 두려움을 느린 곡 진행과 몽환적인 사운드 속에 담아냈다.

 

곧 이어지는 11번 트랙 “Doxer”는 이 모든 이별, 그리움, 환멸, 두려움에 지쳐 쓰러진 사람이 누워서 읊조리는 말 같다. 델리스파이스 곡에선 드물게, 김민규와 윤준호의 공동작업이 이뤄진 곡이며, 윤준호가 곡을 쓰고, 김민규가 작사와 보컬을 맡았다. 참고로 트럼펫은 드러머인 최재혁이 맡았다. 원래 Boxer가 표기에 맞지만, 앨범 제목인 “D”에 맞춰서 “Doxer”로 지었다고 한다. 필자가 이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그런 것치고는 곡이 상당히 심심하고 지루한 느낌이다. 그런데, 가끔은 일부러 심심하고 지루한 것에 빠져들고 싶을 때가 있지 않나. 모든 자극적인 것들에 질릴 때 말이다. 차라리 이런 심심하고 지루한 것에 일부러 빠지는 게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거다. 이 앨범의 흐름에도 잘 맞고 말이다.

 

12번 트랙 “Bette Davis Eyes”는 이 앨범에서 두 번째로 등장하는 영어 가사 곡이다. 그런데 전에 나온 곡은 밴드의 창작곡이었다면, 이 곡은 커버다. 이 곡은 1974년 재키 디샤논(Jackie DeShannon)의 목소리로 처음 세상에 나왔으며 이지리스닝 팝 색채가 짙은 곡이었다. 1981년에 킴 칸스(Kim Carnes)의 목소리로 다시 나왔다. 이 곡은 원곡에 비해 좀 더 빨리진 리듬에, 당시로선 최첨단 사운드였던 신디사이저를 한껏 입혀 세련된 댄스곡으로 재탄생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곡은 원곡보다는 1981년 킴 칸스 쪽이다. 곡의 내용은 1930년대 최고의 여배우 베티 데이비스(Bette Davis)의 외모가 정말 아름답다고 찬양하는 것이다. 위 두 곡은 여성 보컬이 이끄는 팝 성향의 곡이지만, 델리스파이스의 커버는 부드러운 남성 보컬에 굉음을 이용하여 몽환적인 사운드를 전시하는 슈게이징(Shoegazing)이 얹어졌다. 사랑하는 여인의 눈을 바라보며 그 여인의 눈이 담고 있는 세계 속으로 한없이 빠져드는 느낌을 선사한다. 이토록 혼란과 슬픔에 가득 찬 세상이지만, 사랑하는 연인의 아름다움은 잠시 동안의 피난처가 될 수 있음을 말하는 것 같다.

 

■ 천국은 어디에 있는가

마지막 13번 트랙 “천사의 자장가”는 제목과는 다르게 “나는 법을 알기도 전에 둥지에서 떨어”진 작은 새에게 바치는 슬픈 노래다. 전 앨범의 “고양이와 새에 관한 진실”과 이어지는 느낌의 곡이다. 이렇게 보면, 내가 지난 앨범과 이 앨범을 이어서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고양이와 새에 관한 진실”이 날개가 꺾인 새의 비참함을 드러내는 곡이었다면 “천사의 자장가”는 그 새에게 위로를 전하는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새가 둥지에서 떨어졌다는 건 그 새가 거의 죽었다는 걸 의미하는데, 곡이 갑자기 현악 오케스트라와 함께 웅장해지면서 “힘을 내 작은 새야.”라고 말하는 부분은 왠지 그 새를 향해 안타까운 마음을 쏟아내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새는 결국 죽었는지 “이제 편히 쉬어라. 걱정 근심도 없는 구름마차 타고서.”라고 읊조린다. 이 곡의 제목도 그 새를 천국으로 데려주는 천사가 부르는 자장가라는 뜻인 거 같다. 이 곡은 단순히 새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에 제대로 적응하지도 못하고 먼저 죽음을 맞이하게 된 모든 가련한 자들을 향한 노래라고 할 수 있다.

 

 

▲ 2번 트랙 “항상 엔진을 켜둘께” + 1집 수록곡 “챠우챠우” 2008년 펜타포트 라이브 영상

이 앨범을 듣다 보면, 천국이라는 것이 그렇게 거창한 것도 아니고 그렇게 멀리 있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내 마음에 공감해주고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천국일 텐데.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사소한 천국을 내 인생에 데려오는 것이 그토록 힘들었을까. 그것은 세상이 잘못한 걸까, 아니면 내가 잘못한 걸까. 아무래도 내가 잘못한 것 같은 느낌이 강해질 땐, 탈출구가 달리 보이지 않는다. 정말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내가 꿈꾸는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처럼 느껴진다. 그래도 정말로 그것을 택할 수는 없다. 희망이 없을 때도 희망을 가지는 것이 최선인 것 같다. 음악으로 겨우 내 마음을 달래본다. 그렇게 마음을 달래다 보면, 없던 희망도 조금씩 다시 보이는 것 같다. 비록 그 빛이 희미하기는 하지만, 내게는 그 희미한 빛을 의지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트랙리스트

1. 뚜빠뚜빠띠

2. 항상 엔진을 켜둘께

3. 안녕 비밀의 계곡

4. Y.A.T.C.

5. 동병상련

6. Still Falls The Rain

7. 악몽

8. 화성으로 가는 로케트 (inst.)

9. 한길

10. 낯선 아침

11. Doxer

12. Bette Davis Eyes

13. 천사의 자장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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