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명반 에세이 40: 청년폭도맹진가
조선펑크 궁극의 명반
■ 펑크를 조선으로 끌고 온 힘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가 첫 번째 정규앨범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를 발매하며 런던 펑크(London Punk)의 부흥을 알리던 때가 1977년이었다. 섹스 피스톨즈의 음반은 음악을 넘어서, 당시 런던 청년들이 꿈꾸던 이상향의 과격한 발현이었다. 거대 권력에 의해 억눌린 심정을 과격한 음악으로 발산했던 것이다. 그토록 과격한 음악이 아니고선, 이토록 오랫동안 억눌린 마음을 도무지 위로할 수 없었던 그들이었다. 정부에 실망한 그들은 섹스 피스톨즈를 따라 “I am an anti-Christ. I am an anarchist.(나는 적그리스도요. 나는 무정부주의자로다.)”라는 문장을 나불대며, 영국의 국교와 정부에 대한 심한 반발을 드러냈다. 그렇게 섹스 피스톨즈의 노래는 영국 국민들이 거대권력에 저항하는 한 수단이 되었다. 세월이 흘러, 영국 섹스 피스톨즈의 악명(?)은 미국까지 전해져, 1988년 미국의 메탈 밴드 메가데스(Megadeth)가 이 노래를 커버하기에 이른다. 그것도 가사의 “UK(영국)”을 “USA(미국)”으로 악랄하게 바꿔가면서까지.
대한민국에도 물론 정부와 사회에 대해 격렬한 증오를 품고 있는 시민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과격한 욕지거리 섞인 노래로 그 분노를 표현하기엔, 대한민국 사회는 충분히 성숙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정부를 욕지거리 섞어가며 비판하는 노래가 쏟아질 동안에, 우리나라에선 노래 한 곡 잘못 불렀다고 목이 날아갈 것을 우려해야 했으니까. 민주화 운동 투사들의 피를 막대하게 바치고 나서야, 시민에 대한 억압은 조금 수그러들었고, 그때서야 시민들의 정부에 대한 비판이 허용되었다.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나서도, 정부에 대한 환멸을 지속적으로 느끼던 이들은, 이제는 정부에 대해 악랄하게 비판을 퍼부을 수 있는 때라는 걸 깨닫게 된다. 군사정권의 경직된 분위기에 억눌렸던 그들은, 오래 억눌린 만큼 음악도 더욱 거칠게 변해갔다. 이런 기운을 가장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은 역시 인디밴드들이었다. 첫 시작을 끊은 것은 “크라잉 넛(Crying Nut)”이었다. 1996년 “말달리자”로 기성세대가 정해놓은 규범들을 모두 거부하겠다는 과격한 메시지를 펑크(Punk)로 풀어낸 이 노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빠르게 번져나갔다. 이 메시지에 좀 더 적극적으로 정치색을 입힌 밴드가 바로 “노브레인(No Brain)”이었다.
“문민정부 좆 까는 소리. 문민정부란 그 소리는 개한테나 줘버려라. 씨발 청와대. 씨발 노동부. 씨발 안기부.”
노브레인이 발표한 노래 “아주 쾌활한”의 일부분이다. 98년 2월까지 대한민국을 쥐고 있던 김영삼 정권에 대한 강한 반발을 드러낸 곡이다. 이 노래가 처음 실린 EP 음반 “청춘 98”은 1999년에 발매되었다. 이때는 이미 김대중 정권으로 넘어갔을 때지만, 이때도 김영삼 정권의 영향력이 많이 남아있었을 때였으니, 김영삼 정권에 대한 반발심이 식지 않은 게 당연할 일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일개 록 밴드가 특정 거대 권력에 대해 이토록 노골적으로 반발을 드러낸다는 건,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야말로 런던 펑크가 대한민국 땅으로 도착한 최초의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브레인은 곧이어 뜻이 맞는 대한민국 청년들을 여럿 모아 스스로 “조선펑크”라는 이름을 붙이기에 이른다.
■ 조선펑크 궁극의 명반이 탄생하다
노브레인의 과격한 정부 비판은, 과격한 겉모습과는 다르게,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 정부의 성숙을 상징하는 하나의 지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시민들은 여전히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이 땅 어디엔들 정의란 것이 있기나 하더냐. 언제나 세상이란 가진 자들의 편에 서 있더라. 힘의 논리 앞에 나의 권리 따윈 정말로 하찮은 것일 뿐이네. 법이란 언제나 힘 가진 자들의 든든한 몽둥이 노릇을 하더군.”
이것은 노브레인의 정규 1집 앨범 “청년폭도맹진가”의 수록곡 “이 땅 어디엔들”의 가사다. 이 가사는 정확히 그 당시 대한민국 시민들의 한탄과 일치했다. 아니, 당시뿐이랴. 슬프게도 이 가사는 지금도 유효하다. 그렇다. 지금부터 얘기하려는 게, 이 노래가 실린 음반에 관한 얘기다. 이것은 마땅히 바뀌어야 하지만, 아직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이상하게 고전으로 취급 받고 있는 음반에 관한 이야기다.
때는 2000년, 새천년 기운에 국민 모두가 희망에 들뜨던 시기였다. 그런데 이런 국민들의 분위기에 역행이라도 하듯, 년도 숫자만 바뀌었지, 대한민국 사회가 도대체 뭐가 바뀌었냐고 술 취한 목소리로 소리치는 이들이 있었다. “좆 까라 밀레니엄, 이 땅에 미래는 없다.”라는 문장을 혀가 잔뜩 꼬인 목소리로 뱉어대는 노래 “Viva 대한민국”의 한 구절이다. 이 역시 노브레인의 정규 1집 앨범 “청년폭도맹진가”의 수록곡 중 하나이며, 딱 대한민국 국민들이 밀레니엄의 희망에 가득 차 있을 때, 그 흐름에 역행이라도 하듯 내놓은 음반이다. 새천년이 밝은 그 해로부터 19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아직도 좆 같다는 걸. 우리에겐 아직도 노브레인의 격렬한 분노가 필요하다는 걸. 그래서 아직도 노브레인이 내놓은 “청년폭도맹진가” 앨범이 명반으로 느껴진다는 걸. 결국 그들의 분노는 옳았고, 우리는 아직도 그들의 분노에 동감한다.
이 앨범이 얼마나 대단한 앨범이냐면, 여러 수식을 붙여도 모자랄 것이다. 물론 이 앨범을 만든 장본인들은 이런 수식들에 심한 거부감을 드러낼 것이 당연하겠지만. 앨범을 듣는 입장에선 대단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일단, 노브레인이 이 앨범을 발표하면서 조선 땅에서 펑크 좀 한다고 설치는 인간들 모두의 유일신으로 올라섰다고 하면 좀 과장일까? 아니, 나는 과장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적어도 그들은 조선 땅에서 런던의 펑크 정신을 가장 잘 이어받은 밴드였다. 이어받기는 무슨, 그런 표현도 모자라다. 그야말로 이 앨범은 런던으로부터 펑크를 훔친 대사건이었다. 펑크를 대한민국에 현지화한 걸로 모자라서, 펑크가 원래 조선 땅에 있었던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만든 앨범이었다. 그만큼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시민의 분노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는 앨범이었다. 노브레인 외에도 여러 펑크 밴드들이 한국 땅에 있었지만, 그 어떤 밴드도 이 만큼 적절하게 대한민국 시민의 분노를 대변해주지 못했다. 심지어 노브레인 본인들조차도 이후에 내놓은 앨범들이 이 첫 정규앨범의 아성에 미치지 못했다. 이렇게까지 이야기를 해야 겨우 이 앨범의 위대함에 발이라도 조금 담기는 느낌이다.
■ 런던으로부터 펑크를 훔친 대사건
이 앨범이 어떤 식으로 대한민국 시민들의 분노를 대변했는지, 본격적으로 파헤쳐보자. 이 앨범은 볼륨이 꽤 큰 앨범이다. 무려 2CD로 이뤄져있다. 각 CD마다 뚜렷한 색을 지니고 있어, 같은 앨범이면서도 CD마다 다른 앨범으로 취급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다른 색이 하나의 앨범으로 취급되며 느낄 수 있는 메시지도 분명히 있다. 우선 각 CD를 살펴보면, CD마다 이름 따로 붙여진 걸 확인할 수 있다. CD1은 “난투편” CD2는 “청춘예찬편”이라고 되었다. CD1은 이름처럼 과격한 하드코어 펑크(Hardcore Punk)를 주로 담고 있고, CD2는 상대적으로 듣기 편한 스카 펑크(Ska Punk)를 주로 담고 있다. 하드코어든, 스카든, 둘 중에 하나도 제대로 다루기 힘들 텐데, 이 두 가지를 모두 능숙하게 다루는 노브레인의 역량을 확인하고 있노라면, 그 능력에 경악스러울 정도다. 그 두 CD를 이어서 들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는 점에서도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우선 CD1 “난투편”을 보자. 1번 트랙 “날이 저문다”의 시작을 담당하는 기타 연주부터 피가 끓게 만든다. 그 뒤로 악기들이 하나둘 끼어들고, 보컬이 가사를 뱉는 순간 머리에 희열이 솟구치는 것 같다. 2번 트랙 “애국가”를 보자. 애국가를 부를 때 마땅히 가져야 할 엄숙하고 정중한 자세는 어디로 갖다 버렸는지, 어설픈 성악가 흉내나 내면서 마지막엔 그 흉내마저 집어치우고 목을 실컷 긁어댄다. 정말이지 국가에 대한 예의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불손한 애국가를 부른다. 3번 트랙 “청년폭도 맹진가”에선 이들의 불손한 태도가 좀 더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초반 1분엔 군가처럼 위풍당당하게 울려 퍼지더니, 보컬이 목을 실컷 긁으며 소리를 지를 때, 그 뒤로 성난 기타가 불을 뿜는다.
“펄펄 끓는 젊은 피가 거꾸로 솟을 적에, 푸르게 날이 선 칼끝에는 검광이 빛난다. 그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세상을 뒤집어엎을 날을. 그날 밤은 바로 오늘 밤 영광 아니면 죽음뿐이다.”
이 가사와 함께 질서정연한 군가 같던 곡이 점점 무질서 폭동 같은 곡으로 변해간다. 거대 권력을 모두 뒤엎어버리겠다는 살벌한 다짐을 펑크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다.
자본주의를 부추기는 미디어의 행태를 비꼬는 4번 트랙 “티브이 파티”를 지나, 하드코어 펑크의 격렬한 비트가 폭풍처럼 몰아닥치는 5번 트랙 “호로자식들”을 거치면, 6번 트랙 “십대 정치”가 등장한다. 이 곡은 필자가 본 앨범 “난투편”에서 가장 좋아하는 트랙으로서, 펑크 밴드임에도 펑크라는 테두리에 구속되지 않고, 폭넓은 음악적 실험을 시도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트랙이다. “빌어먹을 꼰대들을 죽여라.” 이 한결같은 살벌한 문장. 거기에 능청스럽게 날뛰는 악기들은 얼마나 내 마음을 들뜨게 만드는지. 그러다 가사가 빠지고, 드럼과 베이스도 서서히 몸짓을 얌전하게 뺀다. 그 와중에 기타만 광기 넘치는 춤사위를 펼친다. 멀쩡한 정신에 잘 정돈된 춤사위가 아닌, 술에 잔뜩 취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휘갈기듯 추는 춤사위인 것이다. 그러나 흐려진 정신 속에서도 숙련자의 품격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어느 순간엔 베이스와 드럼도 기타의 능숙한 솜씨에 빠져서, 완전히 자리를 비켜주는 순간이 온다. 망나니의 칼춤 같은 살벌한 연주가 흐르다가, 드럼과 베이스가 다시 끼어드는데, 이번엔 다 같이 한바탕 미친 춤사위를 펼친다. 연주가 다시 절정에 이르자마자 곡이 끝난다. 기타리스트 “차승우”의 솜씨도 그렇지만, 멤버들이 두루 갖춘 합이 돋보이는, 펑크 밴드로선 이례적인 놀라운 연주력을 선보인다. 이 앨범의 일관된 메시지를 보자면, 이런 놀라운 연주 역시, 대한민국 정치계를 향한 욕지거리의 일종인 것이다.
■ 조선펑크의 매력은 역시 가사
영어로 된 분노는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분노를 충분히 대변할 수 없다. 분노라는 것은 대게 즉흥적인 것이고 폭발적인 것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외국어로 분노를 표출하기는 힘든 게 사실이다. 다른 음악 장르라면, 우리나라 사람이라도 외국어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겠지만, 펑크 같은 날것 그대로의 분노를 표출하는 장르는 역시 영어보다는 우리의 모국어인 한국어가 훨씬 좋을 것이다. 이 앨범이 런던으로부터 펑크를 훔쳤다고 표현할 수 있는 건 이 지점이다. 이 앨범에 실려 있는 가사들을 음미하다 보면, 시대의 분노, 한국인의 분노가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이 앨범에 실린 노래치고 가사가 훌륭하지 않은 노래는 없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칭찬하고 싶은 노래는 이것이다. 8번 트랙 “잡놈 패거리”를 소개한다. 이 노래의 가사를 듣고 있으면 피가 끓는 것 같다.
“저 거친 광야를 향해 오줌을 갈기리라. 우리는 잡놈 패거리. 가진 것이 없노라. 깡소주 댓병에 분노를 삼키리라. 우리는 벼랑 끝의 아이들. 잃을 것도 없노라.”
이 가사를 외치는 보컬 “이성우”의 목소리를 들어보라. 목소리의 기본이 브루털 창법으로 굳어진 것 같은 목소리는, 정부를 향해 정말로 오줌을 갈겨버릴 것 같은 살벌한 기운을 내뿜는다.
“우린 아무 것도 잃을 게 없네. 우린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네. 우린 아무 것도 잃을 게 없네. 우린 아무 것도 겁낼 게 없네.”
차승우가 너덜너덜해진 성대로 막 질러대는 이 가사를 음미해보라. 가진 것마저도 뺏기고 또 뺏겨서 남은 건 분노밖에 남지 않은 처절한 신세가 느껴지지 않는가.
CD2 “청춘예찬편”을 보자. 1번 트랙 “성난 젊음”은 신나는 스카 리듬으로 곡을 시작한다. 하지만 가사를 들어보면, 신나는 리듬과는 달리 꽤 진지한 성찰을 만날 수 있다. 밴드 “너바나(Nirvana)”의 멤버인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은 이렇게 말했다. “젊은 날의 의무는 부패에 맞서는 것이다.” 이런 커트 코베인의 말에 응답이라도 하듯, 노브레인은 이렇게 부르짖는다.
“그대 이름은 성난 젊은이, 뒤틀린 세상의 맞선.”
뒤이어 나오는 트랙 4번 트랙 “너 자신을 알라”에서도 신나는 리듬은 이어지지만, 여기서도 진지한 가사를 놓치지 않는다. 그 진지함 속에는 분노가 느껴지면서도, 그보다 더 깊은 애수마저 서려있는 걸 느낄 수 있다. 그래, 스카(Ska)라는 건 원래 노동자들의 설움을 달래주던 음악이었지. 스카의 신나는 리듬 속에 가려진 알몸을 보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 애수에 가득 찬 알몸을. CD2에서는 분노에 가득 찬 혁명가의 모습만 보여주는 것이 아닌, 세상과 싸우는 것에 지쳐 위로를 갈망하는 심정도 그려낸다. 나는 분명 세상과 싸우고 있는데, 아무도 나의 치열한 싸움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은 고독이 밀려올 때, 그 때 지독하게 위로를 갈망해도 아무 것도 나를 위로해 줄 수 없음을 깨달을 때, 한숨처럼 밀려오는 노랫말들이다. 2번 트랙 “제발 나를”에서 이렇게 말하는 화자의 심정을 음미해보자.
“솔직히 말하면 나도 이젠, 두려움을 견딜 수 없어. 서슬파란 칼로 어서 나를 사정없이 난자해주오.”
■ 펑크엔 신도 우상도 없다
이토록 절절하게 분노와 애수를 토해내던 노브레인도 나름 웃긴 장면을 연출해냈는데, CD2 8번 트랙 “전자 펑크 리믹스 메들리”에서 그 장면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곡은 정규 1집 이전에 노브레인이 발표했던 노래들을 뽕짝 사운드에 녹여낸 곡이다. 젊음의 상징인 펑크가 기성세대의 상징인 뽕짝으로 재탄생되는 순간이다. 이 얼마나 모순에 가득 찬 순간이란 말인가. 이것은 어쩌면 기성세대를 실컷 조롱하는 가사를 기성세대의 음악으로 전하며, 기성세대를 훨씬 적나라하게 조롱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 혹은, 자신들도 지금은 이렇게 젊은 혁명가 행세를 하고 다니지만, 언젠가 자신들도 결국 기성세대가 될 수밖에 없다는 씁쓸한 사실을, 블랙코미디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노브레인이 이 곡으로 표현하려는 게 무엇이었든, 이 곡을 들으면 확실히 웃음이 터지게 되어있다. 진행자는 마치 칠순잔치 현장이 눈앞에 펼쳐지는 느낌마저 들게 만들고, 펑크 보컬이 구성지게 트로트를 부르는 모습에 웃지 않을 수가 없다. 9분 34초라는 긴 시간 동안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노래 들으며 정신없이 웃다보면 어느새 노래가 끝나있는 느낌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감탄 없이 들을 수 없는 이 앨범을 내놓고, 노브레인은 변화의 길을 걸었다. 차승우는 노브레인을 탈퇴했고, 그는 탈퇴 후에 다시는 펑크를 하지 않았다. 차승우가 탈퇴한 노브레인은 차승우가 있던 시절의 모습을 완전히 벗어버렸다. 분노와 저항의 메시지보다는 꿈과 사랑 등을 노래하는 그런 노브레인이 되었다. 본래 분노는 오래 품기 힘들고, 싸움이란 하면 할수록 지치는 것이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그건 분노도, 싸움도, 마찬가지다. 펑크는 원래 권력을 무너뜨리기 위해 태어났다. 펑크의 목적은 신을 부정하고 우상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러니 이 앨범 하나로 조선펑크의 아이콘, 조선펑크의 유일신이 된 노브레인이 변화하는 것은, 펑크 밴드로서 당연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세월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많이 흘러버렸고, 차승우와 노브레인은 이미 각자의 자리에서 확고한 업적을 이뤄냈다. 과거엔 노브레인에게 다시 그 때로 돌아갈 수는 없겠느냐 묻는 사람이 많았지만, 이젠 그런 요구를 하는 사람이 도리어 세련된 자세가 결여된 사람으로 취급 받을 만큼 세월이 많이 흘렀다. 지금으로서 최선이라면, “청년폭도맹진가” 앨범 속에 여전히 그 시절의 노브레인이 생생하게 살아있음에 감사하는 것이다. 지금은 그 시절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없겠지만, 나는 여전히 이 앨범을 들으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주먹이 쥐어진다. 허공을 향해 욕지거리를 하고 싶어진다. 세상을 뒤엎어버리고 싶어진다. 여기에 든 음악은 녹음에 불과하지만, 내가 이걸 들으며 느끼는 감정은 진짜다. 거기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부패한 박근혜 정권에 맞서 촛불들이 들고 일어났지만, 여전히 이 땅의 국민들은 부패한 권력에 신음하고 있다. 세상에 대해 좆같다고 느끼는 감정이 해소되지 않았다. 이런 좆같은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면, 조용히 이 앨범을 꺼내 듣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외친다. 씨발새끼들 전부 다 뒤졌으면.
트랙리스트
CD1 난투편
1. 날이 저문다
2. 애국가
3. 청년폭도 맹진가
4. 티브이파티
5. 호로자식들
6. 십대정치
7. Viva 대한민국
8. 잡놈 패거리
9. 98년 서울
10. 정열의 펑크라이더
CD2 청춘예찬편
1. 성난 젊음
2. 제발 나를
3. 생기 없는 모습
4. 너 자신을 알라
5. 이 땅 어디엔들
6. 바다 사나이
7. 청춘은 불꽃이어라
8. 전자 펑크 리믹스 메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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