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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 -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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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11: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 -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

 

최악의 밴드가 탄생시킨 최고의 명반

  

■ 트럼프를 디스한 에미넴

지난 10월 11일 에미넴은 “2017 BET 힙합 어워드”에서 트럼프를 비판하는 랩을 선보였다. 이를 통해 평소 트럼프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수많은 미국인들은 환호했다. 사실 미국인들만 환호한 건 아니었다. 미국의 대통령은 세계 최강국의 최고 지도자이니 만큼, 세계 모든 나라의 최고 관심사 중에 하나다. 미국 대통령의 행보 하나, 하나가 세계 곳곳 섬세한 곳까지 그 영향력이 파고들기 때문이다. 요즘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많아질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에미넴은 자신의 장기인 랩으로 트럼프를 “디스”한 것이었다.

 

우리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옛날부터, 예술이라고 하는 것이 대중 사이에 스며들기 시작한 그때부터, 서민들의 가려운 곳 긁어주고, 답답한 곳 풀어주는 일은 예술가들의 주요 임무였다. 예술가가 아닌 사람들은 미처 말하지 못하고, 미처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예술가들이 대리로 표현해줌으로써, 사람들을 환호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랩은 가사 전달에 특화된 음악적 요소로써 누군가를 비판할 때 더없이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랩퍼들 중에서도 “Rap God”이라 불리는 에미넴이 자신의 실력을 아끼지 않고 기꺼이 랩으로 트럼프를 깠으니, 트럼프에게 불만을 품고 있던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는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런 에미넴의 “사이다” 행보를 보면서, 딱 떠오른 록 밴드가 있다. 록과 힙합은 지금 보면 너무나 멀리 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음악적으로는 접점이 없을지라도, 힙합은 분명 록의 정신적인 측면에선 어느 정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본 글을 통해서 소개할 밴드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면, 에미넴의 트럼프 디스 행보와 록 음악이 전혀 다른 것이 아님을 단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소개할 록 밴드의 이름은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다.

 

 

▲ 에미넴이 프리스타일 랩으로 트럼프를 디스하는 것을 담은 영상

■ 록 음악 역사상 최악의 밴드

유명한 록 밴드치고, 큰 사고를 치지 않은 밴드 찾기가 참 힘들지만, 섹스 피스톨즈의 경우는 좀 차원이 달랐다. 1975년에 결성한 섹스 피스톨즈는 무려, 영국 TV 역사상 최초로 “Fuck”이라는 단어를 송출하게 만든 장본인이 속한 밴드이기도 하고, 가사에도 그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Fuck”이라는 단어를 넣은 밴드다. 이 밴드의 베이시스트였던 “시드 비셔스(Sid Vicious)”는 공연 도중에 관객과 싸움이 붙어 자신의 기타로 관객을 폭행하기도 했고, 그들이 일으킨 사건 사고만 놓고 보면 그들은 록 음악 역사상 최악의 밴드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늘 파격적인 사운드와 충격적인 비주얼로 사람들의 문화를 뒤흔든 록 밴드들이지만, 섹스 피스톨즈만큼 미친 방법으로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낸 밴드는 없었다. 언제나 베트남전 반전 운동을 펼치는 등 사회에 맞선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기성세대들의 낡은 사고방식을 조롱하는 록 밴드들이었지만, 섹스 피스톨즈는 좀 더 노골적이었다. 섹스 피스톨즈는 사회를 비판하는 걸 넘어서서 사회를 향해 욕을 퍼부었고, 기성세대를 조롱하는 걸 넘어서서 대놓고 기성세대를 공격했다. 선배 록 밴드들은 사회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어떤 대의를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라는 게 조금이라도 보였다면, 섹스 피스톨즈는 그런 대의를 실천하고자 하는 의식이 애초부터 없었다. 그들의 음악과 비주얼 그리고 그들의 “막장” 행보들은 그저 그들이 싫어하는 거라면 정치든 사회든 문화든 예술이든 뭐든지 욕부터 하고 보는 그들의 더러운 성질머리에서 나온 것뿐이다.

 

이런 “막장” 밴드지만, 지금은 “펑크 록(Punk Rock)”이라는 음악 장르를 논할 때, 절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전설적인 밴드로 평가 받고 있다. 그만큼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그들의 콘셉트나 막장 행보 보다는 그들의 음악이었다는 얘기다. 이 “막장” 밴드가 어떻게 해서 전설의 록 밴드가 될 수 있었을까. 지금부터 그들의 거부할 수 없는 위험한 매력을 파헤쳐보자.

 

 

▲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 멤버들. 좌측부터 시드 비셔스(Sid Vicious - 베이스), 스티브 존스(Steve Johns - 리드기타), 조니 로튼(Johnny Rotten - 보컬), 폴 쿡(Paul Cook - 드럼)

■ 최악의 록 밴드를 전설로 만들어 준 단 한 장의 앨범

섹스 피스톨즈의 음악에 대해 논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앨범이 하나 있다. 그건 그들이 77년에 발표한 정규앨범 1집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다. 사실 그들의 음악을 논할 때, 이 앨범을 논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 앨범이 그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정규앨범이기 때문이다. 대체 이 앨범 안에 무엇이 들어 있기에 사람들이 그들을 전설이라고 칭하는 걸까.

 

사실 섹스 피스톨즈에겐 “전설”이라는 칭호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왜냐면 그들부터가 “전설”들을 혐오했기 때문이고, 애초에 그들은 전설이 될 생각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앨범 안에 들어있는 음악들을 들어보면, 어떤 이는 정말 볼품없는 음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들은 그 당시 활동하던 록 밴드들에 비하면 정말 형편없는 연주 실력을 갖고 있었다. 물론 그들도 나름 프로다 보니, 웬만한 아마추어들보단 연주 실력이 좋았지만, 그 당시 활동하던 퀸,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등을 생각하면 정말 “형편없다”라는 말이 딱 맞다. 그런데 이 밴드의 보컬인 “조니 로튼(Johnny Rotten)”은 이 위대한 밴드들을 노골적으로 겨냥하며 “다 늙은 공룡 밴드”라고 실컷 까댔다. 안 그래도 형편없는 연주실력을 가진 섹스 피스톨즈에서 어떻게 보면 음악적으로 가장 민폐가 되는 인물이 도대체 무슨 패기로 이렇게 대형 밴드들을 깠던 걸까.

 

그들의 막장 행보와 형편없는 연주 실력에 대한 편견을 다 걷어내고, 일단 순수하게 접근하면 의외로 그들이 왜 전설이라 불리는지 1번 트랙 “Holiday in the Sun”부터 수긍하게 된다. 아무렇게나 갈겨대는 기타와 노래를 부르는 건지 그냥 욕이나 뱉어내는 건지 도무지 구별이 안 되는 보컬과 정신없이 울려대는 심벌, 막나가는 베이스까지. 그들의 연주는 분명 형편없지만, 뭐랄까 형편없기 때문에 그들의 패기가 훨씬 더 돋보이는 거 같다. 그들의 패기는 그들 자신의 연주 실력에 결코 기대지 않는다. 그들은 화려한 연주 실력 없이도 그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거침없이 마구 표출한다. 그들에겐 화려한 연주 실력은 없었지만, 그 어떤 밴드보다 압도적인 패기를 가지고 있었고, 그 패기는 그 전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신선한 음악을 만들어냈다.

 

 

▲ 2번 트랙 “Bodies”

그들의 패기는 1번 트랙부터 마지막 12번 트랙 “EMI”까지 도무지 그치질 않는다. 가사를 살펴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욕밖에 안 한다. 대표적으로 2번 트랙 “Bodies”는 “Fuck”이라는 노골적인 단어를 써가면서 어쩔 수 없이 낙태를 택하는 가난한 노동자계급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6번 트랙 “God Save the Queen”은 70년대 영국의 어려운 경제 사정에도 불구하고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행진 행사를 이어가는 영국 황실을 조롱하는 곡이고, 8번 트랙 “Anarchy in the UK”는 이렇게 나라가 계속 망가질 바에는 차라리 무정부 상태의 혼돈 속으로 빠지는 게 더 낫겠다고 영국 정부를 욕하는 곡이며, 마지막 12번 트랙 “EMI”는 자신들의 음반을 내주려다가 결국엔 자신들을 쫓아낸 영국 최대 대형 음반사 “EMI”를 까는 곡이다.

 

그들은 연주 실력이 형편없어서 그런지, 연주 스타일이 굉장히 단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마치 하드 록 밴드들처럼 빠르고 강력한 사운드를 내려고 한다. 그러자 그들의 음악은 단순하기 때문에 오히려 록 음악 특유의 직진성과 과격함이 더 많이 살아나는 음악이 된 것이다. 의외의 순간에 의외의 방법으로 탄생한 의외의 신선함이다. 이런 음악은 분명 그들의 압도적인 패기가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섹스 피스톨즈는 대형 록 밴드들의 화려한 연주 실력 앞에도 기죽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낡은 밴드라고 욕하며, 자신들이 얼마나 신선한 음악을 할 수 있는지 직접 결과물로 선보였다. 그들의 음악은 분명 이전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신선한 음악임에 틀림없었다.

 

■ 그들이 전설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들은 전설이 되길 거부했지만, 그들은 전설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따로 있다. 그들이 다른 전설들에겐 볼 수 없는 특별한 멋을 가지게 된 이유는, 그들이 다른 전설과는 다르게, 이 모든 것을 계획하지도 않았고, 의도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이 전설로 불리게 된 건 그들을 둘러싼 외부 요인도 크게 한 몫 하는데, 위에서 언급했듯이 그들이 활동한 70년대 영국은 지극히 혼란에 휩싸인 사회였기 때문이다. 특히 금융 위기로 IMF에서 관리가 들어갔을 정도였다. 97년 우리나라도 비슷한 위기를 겪어서,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정적인 사회적 파장이 얼마나 클지 대충 감이 올 것이다.

 

 

▲ 6번 트랙 “God Save the Queen” 뮤직비디오

 

▲ 8번 트랙 “Anarchy in the UK” 뮤직비디오

찢어진 옷과 기괴한 모히칸 헤어로 대표할 수 있는 “펑크 패션(Punk Fashion)”을 유행시킨 것도 그렇고, 욕이나 해대며 시끄러운 소리나 꽝꽝 울려대는 음악을 유행시키게 된 것도, 자신들의 최대 히트곡인 “Anarchy in the UK”를 작곡한 베이시스트 “글렌 맥트록(Glen Matlock)”을 해고하고, 그 자리에 베이스 기타에 영 소질이 없는 마약 쟁이 “시드 비셔스(Sid Vicious)”를 베이시스트로 영입해서 그를 펑크의 아이콘으로 만든 것도, 이 모든 게 그들이 전설이 되고자 했던 의도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었다.

 

이 모든 일은 그저 그들이 사회를 향해 욕이나 퍼붓기 위해 했던 일이지, 어떤 대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 점이 역설적으로 그들을 순수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게 혼란스러운 70년대 영국 상황과 딱 맞아떨어져, 섹스 피스톨즈를 지켜보는 모든 사람들에게 특별한 희열을 선사했던 것이다. 섹스 피스톨즈의 음악과 행보, 그 모든 것이 70년대 영국의 혼란을 거울마냥 그대로 비춰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당시 사람들은 섹스 피스톨즈를 좋아함으로써, 자신들이 겪고 있는 사회로부터 오는 혼란이 얼마나 큰지 표출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그래서 시드 비셔스가 술과 마약에 잔뜩 취한 상태로 무대에 오르거나, 무대 위에서 자해를 하거나 하는 식의 막장 무대 매너를 펼치고, 찢어진 옷을 입고 괴상한 모히칸 헤어를 만든 파격적인 비주얼과 밴드의 형편없는 연주실력 등을 선보여도, 이 모든 게 70년대 영국인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이다. 섹스 피스톨즈의 대의를 위한 의도조차 없는 순수한 욕 짓거리가 그 당시 영국인들에게 더 없이 호소력 있게 다가왔을 것이다. 2017년의 우리가 트럼프를 디스하는 에미넴을 보며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 시드 비셔스와 조니 로튼

그런 의미에서 섹스 피스톨즈 같은 밴드는 그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로도 없었다. 운도 실력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섹스 피스톨즈는 적재적소의 시기에 등장해 천운을 타고난 최고의 밴드였다. 그 어떤 밴드도 섹스 피스톨즈 만큼 순수한 욕 짓거리를 할 수 없었으며, 그 어떤 밴드도 섹스 피스톨즈 만큼 신선하지 않았고, 그 어떤 밴드도 섹스 피스톨즈 만큼 패기 있지 못했다. 섹스 피스톨즈 이후에 나온 수많은 록 밴드들이 섹스 피스톨즈의 영향을 받아, 더욱 과격해지고, 더욱 사회 비판에 활발해졌지만, 그 어떤 밴드도 섹스 피스톨즈 같을 수는 없었다. 섹스 피스톨즈의 음악은 예술가가 가려운 곳 긁어주고, 답답한 곳 풀어주는 역할을 충실히 해낼 때, 그를 지켜보는 이들이 얼마나 큰 희열을 느낄 수 있는지 깨닫게 하는 가장 원초적인 힘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유일한 정규앨범은 그런 원초적인 힘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명반이다. 최악의 밴드가 탄생시킨 최고의 명반이 아닐 수 없다.

 


트랙리스트

1. Holidays In The Sun

2. Bodies

3. No Feelings

4. Liar

5. God Save The Queen

6. Problems

7. Seventeen

8. Anarchy In The U.K.

9. Sub-Mission

10. Pretty Vacant

11. New York

12. E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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