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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쥬디 앤 마리(JUDY AND MARY) - THE POWER SOUR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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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13: 쥬디 앤 마리(JUDY AND MARY) - THE POWER SOURCE


[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경험은 언제나 즐겁다 ]



■ 대전액션게임에 미소년 보스?!


중학생 무렵에 한참 좋아하던 게임 캐릭터 한 명이 있다. 그의 이름은 “진숭수”다. 이 진숭수라는 캐릭터는 굉장히 독특한 설정을 가지고 있다. 일단 외형은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로 중성적인데 일단 설정 상 남자다. 얼굴은 꽤 예쁜 미소년인데, 무려 “아랑전설3”라는 게임의 최종보스로 등장한다. 그리고 그의 쌍둥이 형인 “진숭뢰”는 숨겨진 보스다. “아랑전설3”라는 건 “더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와 “메탈 슬러그” 시리즈로 유명한 게임 회사 “SNK”에서 만든 대전액션게임이다. 그런데 대전액션게임의 최종보스라고 한다면, “스트리트 파이터”의 “베가”나 “더 킹 오브 파이터즈”의 “루갈”처럼 덩치 크고, 무섭게 생긴 중년 아저씨들이 대부분인데, 미소년 최종보스라니.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14세 미소년 몸속에 천 년이 넘은 조상의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설정도 신선했다.


진숭수를 좋아했던 건 그의 아리따운(?) 미모(?)도 한 몫 하지만 역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상식을 깨는 그의 설정들 때문이었다. 그가 지닌 설정들은 확실히 다른 캐릭터들이 가진 진부한 설정들과는 달라도 많이 달랐다. 물론 대전액션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치고 상식을 깨지 않는 설정을 지닌 평범한 캐릭터 따위 없지만, 진숭수는 미소년이면서도 최종보스라는 게 너무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최종보스에 대한 고정관념이 진숭수로 인해 완전히 깨져버린 것이다.


내 안에 고정관념이 깨지는 경험을 하는 건 언제나 즐겁다. 그건 마치 고정관념이 벽처럼 막혀있어서 갈 수 없었던 세계가 벽이 무너지며 갈 수 있게 되는 느낌과도 같다. 그 세계는 새롭고 놀라운 세계다. 그렇게 내 생각의 지평이 넓어지고, 생각의 지평이 넓어지면서 남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혜안이 형성된다. 그래서 고정관념이 깨지는 건 즐겁다. 이번 편에서 소개할 밴드도 그런 밴드다. 나의 고정관념을 타파한 그런 밴드라는 얘기다. 록 밴드라고 하면,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어떤 정형화된 이미지가 있기 마련이다. 그 이미지란 파괴적이고, 퇴폐적이고, 어딘가 땀 냄새가 물씬 풍겨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편에서 소개할 밴드는 그런 이미지와는 전혀 무관한 밴드다. 그 밴드는 일본의 록 밴드 “쥬디 앤 마리(JUDY AND MARY)”다.

   


  

▲ 진숭수

  

  

■ 바람의 검심


내가 쥬디 앤 마리를 처음 알게 된 계기는 일본 TV 애니메이션 “바람의 검심”을 통해서였다. 지난 편들에서도 여러 번 얘기했듯이 내가 학창시절엔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굉장히 좋아하는 이른 바 “오타쿠”였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중에 하나가 “바람의 검심”이었다. 처음에 그 애니메이션을 접하게 된 건, 우리나라의 애니메이션 전문 케이블 TV 채널을 통해서였다. 거기선 한국어로 가사가 번안된 오프닝 주제가를 송출했는데, 그 노래가 워낙에 좋아서 원곡을 듣고 싶었다. 그 노래가 바로 쥬디 앤 마리의 “そばかす(주근깨)”였다. 그 노래를 들으면서, 격렬한 펑크 록 사운드를 뿜어내는 도입부 연주와는 달리 애잔한 감성을 뽑아내는 멜로디와, 애잔한 멜로디와는 상반되게 해맑은 목소리로 노래하는 보컬 등에 크게 감명을 받았다.


그러나 내가 쥬디 앤 마리의 음악을 본격적으로 듣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년이 더 흐른 후였다. 그러니까 쥬디 앤 마리의 “そばかす(주근깨)”를 처음 접한 건 고등학생 1학년 때였고, 쥬디 앤 마리의 다른 노래들을 듣게 된 건 스무 살 때였다. 그 사이엔 쥬디 앤 마리를 그저 바람의 검심 오프닝 주제가 만든 밴드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스무 살이 되어서 갑자기 옛날이 생각이 나서 그 노래를 다시 틀었는데, 문득 이 밴드의 다른 노래도 한 번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쥬디 앤 마리 베스트 앨범을 틀었다. 나는 그 앨범을 듣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는 건 아니고, 사실 그 당시엔 그저 그랬다. 오히려 “motto”를 들었을 땐, 정신없는 펑크 록 연주 속에 애기 목소리로 내지르는 보컬이 부조화로 느껴져서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물론 지금은 이 곡을 무척 좋아한다.)


그렇게 쥬디 앤 마리를 좀 특이한 밴드 정도로만 여기며 지내다가, 2016년이 되면서 갑자기 쥬디 앤 마리 음악을 다시 듣고 싶어져서, 전에 들었던 베스트 앨범을 다시 찾게 되었다. 그런데 다시 찾게 된 쥬디 앤 마리의 음악은 당혹스러움보단 새로움으로 다가왔다. 아무래도 그동안에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어진 덕인 거 같다. 한국에서 정식 라이센스를 받은 쥬디 앤 마리 베스트 앨범은 총 두 종류인데, 내가 처음에 들은 베스트 앨범으로도 모자라, 다른 베스트 앨범을 보며, 그 전에 들었던 베스트 앨범에 없는 곡들을 따로 골라 듣기도 했다. 그래도 모자라서, 결국 국내에서 구하기도 힘든 정규앨범까지 어렵게 중고로 구해가며 그렇게 점점 쥬디 앤 마리에 빠져들었다.

 

 

 

▲ 일본 TV 애니메이션 "바람의 검심" 1기 오프닝 영상



■ 상큼발랄 귀여운 록 밴드


쥬디 앤 마리에 점점 빠져들면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그건 내가 쥬디 앤 마리에 대해 생각하던 것보다 쥬디 앤 마리가 일본 대중음악 역사에 끼친 영향력이 훨씬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94년 첫 번째 정규앨범을 낸 쥬디 앤 마리는 처음 나왔을 당시만 하더라도 일본 대중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만 해도 일본 록 밴드 중에 소녀감성을 대변하는 귀여운 음색과 가사로 노래하는 여성 보컬이 아예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쥬디 앤 마리의 보컬 “유키(YUKI)”가 최초로 그 역할을 해냈다는 것이다. 그 당시엔 모두 성숙한 여인상을 노래하는 여성 보컬들뿐이었는데, 유키가 일본 여성 록 보컬 역사에 새로운 획을 그은 것이었다. 지금이야 격렬한 펑크 록 연주에 귀여운 여성 보컬을 얹는 게 일본 대중음악의 어떤 전형처럼 되었지만,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이런 보컬이 전혀 없었기에 쥬디 앤 마리는 그만큼 신선한 충격이었다.


보컬 유키뿐만이 아니라, 각 멤버들의 탄탄한 연주 실력과 재치 있는 작곡 센스도 유키의 보컬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쥬디 앤 마리는 훌륭한 음악성과 유키의 스타성을 등에 업고 인기 고공행진을 이어가며 일본 최정상 록 밴드로 등극하게 된다. 결국 그들은 97년에 발표한 네 번째 정규앨범인 “THE POWER SOURCE”로 일본 오리콘 앨범 차트 1위에 오른다. 오늘 소개할 앨범도 바로 이 앨범이다. 쥬디 앤 마리는 총 여섯 개의 정규앨범을 냈는데, 여섯 개 모두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균등하게 훌륭한 퀄리티를 가진 앨범들이라, 어느 앨범이 가장 명반인지 딱 하나 뽑기가 애매하다. 그래도 그나마 네 번째 정규앨범이 쥬디 앤 마리의 최대 히트 앨범이기도 하고, 쥬디 앤 마리의 시그니처 송이라고 할 수 있는 “そばかす(주근깨)”가 수록되어 있기도 하기에, 이 앨범을 소개할까 한다.



■ 쥬디 앤 마리 인기의 절정, 절정의 음악성


쥬디 앤 마리의 네 번째 정규앨범은 그야말로 쥬디 앤 마리의 음악적 색깔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쥬디 앤 마리의 가장 격렬한 사운드와 가장 애잔한 감성을 담고 있다. 1번 트랙 “BIRTHDAY SONG”부터 폭발적인 사운드가 청자의 주목을 끈다. 뒤이어 유키의 소녀스러운 귀여운 목소리가 부드럽게 곡을 감싼다. 1번 트랙의 흥겨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2번 트랙 “ラブリーベイベー(러블리 베이비)”가 분위기를 한층 더 흥분된 광란의 장으로 인도한다. 3번 트랙 “そばかす(주근깨)”에서는 분위기가 애잔한 쪽으로 전환된다. 흥겨운 느낌과 어딘가 애잔한 느낌이 섞여서, 해맑은 미소 위에 고요히 흐르는 한 방울의 눈물을 떠올리게 한다.

 

 

 

▲ 7번 트랙 “くじら12号(고래 12호)” 라이브 영상



 

▲ 10번 트랙 “The Great Escape” 라이브 영상


4번 트랙 “KISSの温度(키스의 온도)”는 3번 트랙보다 훨씬 차분해진 연주와 멜로디로 청자를 잠시 휴식시킨다. 휴식이 지루해지기도 전에 5번 트랙 “Happy?”가 등장해, 청자를 다시 한 번 광란의 장으로 인도한다. 6번 트랙 “Pinky loves him”에선 4번 트랙처럼 다시 차분해진다. 광란의 곡에서도, 차분한 곡에서도, 안정된 음악적 역량을 뽐내는 각 밴드 멤버들에게 감탄하게 된다. 다음은 내가 베스트 앨범을 통해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곡 중에 하나가 등장한다. 7번 트랙 “くじら12号(고래 12호)”의 등장이다. 이 곡은 쥬디 앤 마리의 여러 곡들 중에서도 밴드 음악으로서의 특징을 가장 잘 살린 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밴드 내의 각 포지션이 공평하게 역량을 발휘하며 조화를 이루는 곡이다. 통통 튀는 그루브가 살아있는 베이스기타, 기발하고 재치 있는 사운드를 뿜어내는 리드기타, 곡의 흥겨운 리듬을 여유롭게 터치하는 드럼, 곡에 상큼하고 발랄한 느낌을 불어넣는 보컬까지 완벽하다.


8번 트랙 “クラシック(클래식)”은 3번 트랙과 비슷하게 흥겨운 느낌이면서도, 그 곡의 애잔한 느낌을 더욱 부각시킨 곡처럼 느껴진다. 이 곡에서 유키의 보컬은 자신의 보컬이 귀여운 하이 톤 음색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클라이맥스에서 애절한 감정을 한껏 뿜어낸다. 보컬의 감정을 완벽하게 보좌하는 탁월한 밴드 연주도 일품이다. 9번 트랙 “風に吹かれて(바람에 날리는)”에서는 흥겨운 사운드를 선보이면서도 8번 트랙보다 좀 더 편안하고 여유로워진 느낌이 든다. 그렇게 지루할 틈도 없이 아홉 개의 트랙을 모두 돌고나면, 벌써 마지막 10번 트랙이다. “The Great Escape”는 이 앨범에 들어있는 그 어떤 곡들보다도 가장 직진성이 강하고 힘찬 사운드를 들려준다. 마치의 그들의 전용 행진곡처럼 느껴진다.



■ 귀여움과 광란의 분위기가 공존하는 이토록 신선한 로큰롤이라니!


소녀 같은 귀여운 하이 톤 목소리와 광란적인 펑크 록 사운드의 조화는 처음에는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낯설다는 것은 때로는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라는 의미와 통하기도 한다. 이 밴드가 가진 독특한 매력에 한 번 빠져들면, 그 독보적인 매력에서 도무지 헤어 나오기가 힘들어진다. 이 앨범은 그들의 이런 독특한 음악적 색채를 극도로 원색적이게 만든 앨범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운드도 쥬디 앤 마리의 그 어떤 앨범들보다도 시끄럽고 요란하며, 보컬 유키의 목소리도 그 어떤 앨범들보다 짱짱하게 울려 퍼진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색채를 원색적으로 드러냄으로써 그들의 음악을 완성시켰고, 그들의 전성기를 성공적으로 연장시켰다. 그래서 쥬디 앤 마리의 음악을 알기 위해 이 앨범만큼 좋은 것이 없다. 물론 다른 앨범들도 저마다 개성이 살아있는 명반들이다.




▲ 쥬디 앤 마리 멤버틀, 좌측부터 온다 요시히토(恩田快人 : 베이스), 이가라시 코타(五十嵐公太 : 드럼), 유키(YUKI : 보컬), 타쿠야(TAKUYA : 기타)


이 앨범을 들으면, 왜 어린 소녀 같은 하이 톤 여성 보컬과 광란적인 펑크록 사운드의 조화가 J-POP의 한 전형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다. 그만큼 쥬디 앤 마리의 음악이 뿜어내는 매력이 엄청났다는 증거일 것이다. 쥬디 앤 마리의 성공으로 그들을 계승한 여러 여성 보컬 록 밴드가 등장했지만, 쥬디 앤 마리의 아류로 그저 그렇게 잊히고 말았다. 그들의 네 번째 정규앨범을 들으면, 역시 원조는 달라도 뭐가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단 나만 하더라도 록 음악이란 무조건 과격한 아저씨들이 목소리 굵게 뿜어가며, 어둡고 육중한 기타 톤이 꽝꽝 울려줘야 진짜배기 록 음악이라고 생각했는데, 쥬디 앤 마리를 듣고 나선 록 음악이 이렇게 귀엽고 상큼해도 충분히 록 음악으로서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 록 음악에 대해 어떤 전형적인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쥬디 앤 마리의 네 번째 정규앨범 “THE POWER SOURCE”를 추천하고 싶다. 이 앨범을 듣는 사람들이 이 앨범을 통해 록 음악에 대한 더욱 다양한 스펙트럼을 느끼고, 더욱 풍요로운 음악 생활을 하면 좋겠다.

   


트랙리스트


1. BIRTHDAY SONG

2. ラブリーベイベー(러블리 베이비)

3. そばかす(주근깨)

4. KISSの温度(키스의 온도)

5. Happy?

6. Pinky loves him

7. くじら12号(고래 12호)

8. クラシック(클래식)

9. 風に吹かれて(바람에 날리는)

10. The Great Esca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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