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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라디오헤드(Radiohead) - OK Compu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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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10: 라디오헤드(Radiohead) - OK Computer

 

[ 극도의 우울함은 광기를 동반한다 ]

 

 

■ 록 좋아한다면서 라디오헤드를 모른다고?

 

이건 내가 학교 기숙사에 살던 고등학생 1학년 때의 얘기다. 어느 날 나는 갑자기 사라진 MP3 플레이어를 놀란 마음에 열심히 찾고 있었다. 결국 나오지 않아서 좌절했다. 며칠 후에 같은 남학생 기숙사에 사는 3학년 선배가 나를 찾아왔다. 그 선배는 내 MP3 플레이어에 왜 그렇게 들을 노래가 없냐고 핀잔을 주며 그 MP3 플레이어를 내게 돌려줬다. 그 선배는 내 MP3 플레이어를 잠깐 다시 보더니, 잠시만 더 만져볼 수 있겠냐고 물었다. 나는 그러라고 했다. 그 선배는 내 MP3 플레이어를 만지작거리더니, 음흉한 말투로 “야 근데 이거 진짜 예쁘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선배의 음흉한 말투를 듣고 안 좋은 예감을 느꼈다. 그 선배는 내게 그걸 돌려주고 유유히 자기 방으로 사라졌다.

 

며칠 후, 내가 수업을 모두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가고 있을 때였다. 그 3학년 선배가 나를 부르더니, 나를 옆에 앉혀놓고 다짜고짜 그 MP3 플레이어를 달라고 말했다. 나는 너무 황당했다. 아무리 기숙사 내에서 군대 선임보다도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기숙사 선배였다지만,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도를 지나친 부탁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사준 선물이라 안 된다고 말했다. 그 선배는 몇 번이고 계속 되물었다. 난 계속 안 된다고 말했다. 결국 그 선배는 짜증을 내며 내게 가라고 말했다. 나는 후환이 두려웠지만, 다행히도 그 일을 가지고 그 선배가 내게 특별히 보복을 하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확실히 그 MP3 플레이어는 내가 지금 생각해도 디자인이 꽤 잘 나온 기기였다. 지금은 당연히 단종이 된 “삼성 YEPP YP-U3”라는 제품이었다. 흰색 몸체에 손바닥의 반도 안 차는 작은 크기와 납작한 두께가 꽤 날렵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느낌을 줬다. 용량도 당시 기준으로 4GB 라는 넉넉한 용량을 자랑했다. (필자 아재 인증) 내가 지금 생각해도 그 물건은 그 선배가 충분히 예쁘다고 할 만한 기기였다.

 

 

▲ 라디오헤드(Radiohead) 멤버들. 좌측부터, 필 셀웨이(Phil Selway, 드럼), 톰 요크(Thom Yorke, 보컬), 조니 그린우드( Jonny Greenwood, 리드 기타), 에드 오브라이언( Ed O'Brien, 리듬 기타), 콜린 그린우드( Colin Greenwood, 베이스 기타)

어느 날 평소 잘 알고 지내던 2학년 선배들이 자기네 방으로 나를 초대했다. 내가 3학년 선배에게 내 MP3 플레이어를 뺏길 뻔했다는 소식을 어떻게 들었는지, 나보고 그런 일을 당하고 괜찮으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그들에게 전했다. 그러자 그 방에 있던 2학년 선배 둘 중에 발라드 부르는 걸 좋아하는 한 명이 “도대체 너 무슨 음악을 듣기에 그 선배가 MP3에 들을 게 없다고 그러냐?”라고 내게 물었다. 나는 록 음악을 주로 듣는다고 말했다. 그 둘은 놀랐다. 발라드 부르는 걸 좋아하는 그 선배는 내게 무슨 밴드를 듣느냐고 말했다. 나는 내가 듣는 밴드들을 말했다. 그러자 그 옆에 힙합 좋아하는 선배가 혹시 “라디오헤드(Radiohead)”를 아느냐고 물었다. 나는 한참 록 음악에 입문하던 중이라 라디오헤드를 몰랐다. 그래서 그냥 솔직하게 모른다고 그랬다. 그러자 그 둘이서 실컷 낄낄대면서 나를 록 음악 듣는다고 말하는 애가 라디오헤드도 모른다고 비웃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두 선배도 나를 비웃을 입장은 아니었다. 왜냐면 내가 듣는 밴드들을 열거하면서 “퀸(Queen)” 듣는다고 말했을 때, 그 선배들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퀸? 그게 뭐야?” “몰라.”

 

 

■ 라디오헤드 니들이 그렇게 대단해?

 

나는 그 선배들이 나를 라디오헤드 모른다고 비웃은 일이 너무 굴욕적이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모를 수도 있는 걸 가지고 꼭 그렇게 비웃어야 됐었냐고 속으로 그들에게 실컷 항변했다. 나는 보나마나 발라드, 힙합이나 듣는 인간들이 듣는 밴드라면 필시 시시한 밴드일 거라고 확신했다. ‘보나마나 별 록 같지도 않은 말랑말랑한 사운드 내면서, 피곤에 절은 나른한 멜로디나 주절주절대는, 모던 록 말라깽이들이겠지!’라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나는 섹스 피스톨즈나 나인 인치 네일스, 마릴린 맨슨 같은 강력하고 과격한 사운드를 내는 밴드들을 좋아했고, 그게 진정한 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도 사실 그 땐 멸치 몸매에 안경 쓰고 여드름 많이 난 비루한 생김새를 가졌으면서 말이다.

 

인터넷에 라디오헤드를 검색해보니, 내가 예상했던 대로 그들의 겉모습은 내가 딱 예상한 모던 록 말라깽이들이었다. 나는 역시 그들의 음악도 내가 예상하는 바로 그런 말랑말랑한 음악일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그들의 최고 명반이라 불리는 “OK Computer”를 먼저 들어보기로 결심했다. 그들의 최고 명반을 듣고 라디오헤드를 완전 비웃어줄 생각이었다. 라디오헤드를 비웃으며 날 비웃었던 선배들의 비루한 음악 취향을 비웃어줄 생각이었다. 그따위 비루한 음악 취향으로 나의 고귀한 음악 취향을 평가한 그들에게 심판을 내릴 생각이었다.

 

 

▲ 2번 트랙 “Paranoid Android” 뮤직비디오

그런데 1번 트랙 “Airbag”을 듣고, 내 심장이 강하게 떨리는 걸 느꼈다. 물론 내가 예상했던 대로, 말랑말랑한 모던 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음악이었지만, 뭔가 신선한 충격이 느껴졌다. 그들이 만들어낸 사운드는 내가 그때까지 전혀 들어보지 못한 색다른 느낌이었다. 몽환적인 기타 연주와 나른한 “톰 요크(Thom Yorke)”의 목소리가 내 핏줄을 타고 내 온몸을 지배하는 느낌이었다. 내 모든 감성이 그들의 연주와 함께 허공을 유유히 흐르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 라디오헤드에게 질 수 없었다. 아직은, 아직은 그래도 뭔가 부족했다. 내가 들었던 다른 밴드에게 받은 충격에 비하면 뭔가 부족했다. 그러나 나는 2번 트랙 “Paranoid Android”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도입부의 잔잔하면서도 비장하게 울려 퍼지는 어쿠스틱 기타 연주는 내 심장을 관통했다. 톰 요크의 목소리는 어눌하게 떨리면서도 어딘가 광기에 젖은 듯이 느껴졌다. 비장한 광기가 곡 전체를 지배하면서, 내 감성까지 적셔왔다.

 

그러다 갑자기 브레이크가 걸린 듯이 강한 일렉트릭 기타 소리가 터지더니, 곡이 급작스럽게 과격해지는 것을 느꼈다. 과격해진 악기 연주에도 지지 않고 곡을 능숙하게 조율하는 톰 요크의 광기에 젖은 목소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톰 요크의 목소리가 물러나고, 참았던 광기를 한 번에 터뜨리듯 일렉트릭 기타의 연주가 한참 동안 불을 뿜는다. 깊은 광기로 인해 파괴되어 황량해진 도시를 바라보듯이 곡은 다시 슬프고 비장한 곡조를 뿜어낸다. 그리고 일렉트릭 기타는 다른 악기들과 함께 다시 광기에 젖어 실컷 불을 뿜으며 끝난다. 흡사 퀸의 “Bohemian Rhapsody”를 듣는 것처럼 한 곡 안에서 다양하게 전개되는 곡의 파격 진행이 인상 깊었다.

 

 

▲ 6번 트랙 “Karma Police” 뮤직비디오

물론 그 후로는 내가 예상했던 대로, 모던 록 밴드의 말랑말랑한 사운드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의 음악은 뭔가 내가 생각하던 그 이상의 특별함을 보여주었다. 특히 4번 트랙 “Exit Music”에선 톰 요크의 노래를 넘어선 뮤지컬 한 편을 감상하는 것 같은 놀라운 연기를 감상할 수 있다. 노래를 넘어 감정을 완벽하게 표현해야 하는 연기로써 행하는 톰 요크의 보컬은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그밖에도 이 앨범의 대표곡으로 뽑히는 6번 트랙 “Karma Police”와 10번 트랙 “No Surprises”는 모던 록 특유의 나른하고 말랑말랑한 사운드를 그대로 가져오면서도, 록에선 잘 사용되지 않는 건반 악기 사운드와 샘플링 등을 적극 활용하는 등, 특유의 실험정신으로 몽환적인 분위기의 극한을 이끌어낸다.

 

 

■ 나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더욱 넓혀준 그들에게 은혜를 느낀다

 

결국 내 선배들이 옳았다. 나는 비웃음 받아 마땅한 인간이었다. 이런 대단한 밴드를 두고 제대로 들어보지도 않고 속으로 그렇게 과소평가를 하고 비웃었으니 말이다.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 “OK Computer” 앨범은 모던 록 밴드라도 함부로 무시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내게 알려주었다. 나는 완전히 라디오헤드 앞에 무릎을 꿇었다. 특히 음악은 그 어떤 것이든 함부로 비웃어선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물론 라디오헤드는 “OK Computer” 이후 앨범부터는 모던 록이라고 부를만한 음악에서 멀리 떠나 완전히 자신들의 음악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나는 “OK Computer” 앨범을 통해 모든 음악을 좀 더 편견 없이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라디오헤드보다 훨씬 말랑말랑한 “콜드플레이(Coldplay)”도 아무렇지 않게 즐기며, 라디오헤드보다 훨씬 구질구질한 감성을 가진, 원조 모던 록 말라깽이들이라 할 수 있는 “스미스(The Smiths)”의 음악에도 깊이 빠지게 되었다.

 

“OK Computer”를 통해 충격을 받은 이후, 나는 라디오헤드의 다른 앨범들도 들어보면서, 라디오헤드 특유의 우울하면서도 광기에 젖은 감성에 깊이 빠지게 되었다. 살다보면 때론 남에게 화가 나지는 않는데, 어딘가 내 마음이 뒤틀린 것 같고, 살짝 광기에 젖은 거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니까 분노는 거의 느낄 수 없지만, 굉장히 우울하고, 그저 우울하다고만 표현하기엔 애매한 그런 감정이 느껴질 때가 있다. 라디오헤드의 음악은 바로 그런 감성을 건드리는 밴드였다. 누구에게나 하소연하기엔 너무 사소하고, 그렇다고 안에만 담아두기엔 미쳐버릴 것 같은 그런 감성. 라디오헤드의 나른하면서도 광기에 젖은 날카로운 사운드는 이런 감성을 정확하게 표현한다.

 

 

▲ 10번 트랙 “No Surprises” 뮤직비디오

1997년에 발표되어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라디오헤드의 정규 3집 “OK Computer” 앨범은 출시된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이들을 라디오헤드의 음악 세계로 입문하게 만드는 관문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더 나아가 너바나의 “Nevermind” 만큼이나 록 밴드 음악에 입문하게 만드는 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다. 나는 이 앨범이 30주년을 맞이하고, 40주년을 맞이하더라도 여전히 이러한 역할에 충실하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그들이 록 음악과 라디오헤드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갖고 “OK Computer” 앨범을 접한다면, 이 앨범을 통해 웬만해선 그 깊은 충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걸 내가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 앨범을 통해 충격 받길 바란다. 내가 그랬듯이.

 


트랙리스트

 

1. Airbag

2. Paranoid Android

3. Subterranean Homesick Alien

4. Exit Music (For A Film)

5. Let Down

6. Karma Police

7. Fitter Happier

8. Electioneering

9. Climbing Up The Walls

10. No Surprises

11. Lucky

12. The Tour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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