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명반 에세이 7: 자드(ZARD) - 永遠(영원, Eien)
[ 온기가 그리워 그녀의 목소리 속을 거닐었다 ]
■ 누군가의 죽음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말해준다
얼마 전, 마광수 전 연세대 교수 사망 소식으로 한국 사회 내에서 말이 많았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그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매우 안타까워하였다. 살아생전엔 대학 교수 신분에 야한 소설이나 쓴다는 이유 하나로 여러 사람에게 욕을 먹고, 멸시를 당하던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그의 사망 소식이 들려오면서, 사람들이 그를 대한민국의 개방적인 성 관념을 위해, 표현의 자유를 위해,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싸운 열혈 투사 혹은 시대를 잘못 타고난 천재 예술가 등으로 재평가하게 된 것이다. 물론 한국 사회가 좀 더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방향으로 흐르면서, 마광수 교수에 대한 재평가가 조금씩 이뤄져 온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죽음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영웅으로 더 많이 추앙하도록 부추긴 것도 사실이다.
이처럼 누군가의 죽음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되돌아보게 하고, 그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모차르트나, 빈센트 반 고흐만 하더라도, 살아선 가난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했는데, 그들이 죽고 나서 오히려 그들의 작품이 재평가를 받아 수억대의 가치를 가지게 된 것이 그 예다. 어쩌면 사람은 삶보다도 죽음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더욱 널리 알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이건 굉장히 서글픈 일이다. 그러나 위대하게 살다간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내일을 살아갈 희망과 용기를 조금이라도 얻어가며 살 수 있는 것 아닐까. 위대한 사람들의 죽음이 고귀하게 여겨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20세기에 주로 활동하던 뮤지션들에게도 이런 경우가 많이 발견된다. 존 레논,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 프레디 머큐리, 커트 코베인, 에이미 와인하우스, 등등... 안타깝게 요절한 천재 뮤지션들의 이름을 대라면 끝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유재하, 김현식, 김광석 등이 있지 않은가.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천재 뮤지션들은 하나같이 병으로든, 사고로든, 술이나 약물로든, 살해당하든, 자살로든, 불행한 일로 요절하게 되니 말이다. 이 글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뮤지션도 바로 그런 사람이다. “자드(ZARD)”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90년대를 휩쓸었던 일본의 전설적인 여가수 “사카이 이즈미(坂井泉水)”에 관한 이야기다.
▲ 사카이 이즈미(坂井泉水)
■ 사카이 이즈미, 그녀의 이름이 내 가슴에 오기까지
이상하게도 나는 자드 혹은, 사카이 이즈미라는 이름을 그녀가 살아생전엔 전혀,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내가 전에 운영하던 블로그의 이웃들이 그녀의 사망 소식을 호들갑을 떨며 전하는 것이었다. 내가 전에 운영하던 블로그는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을 주로 다루는 블로그여서, 그 당시 내 이웃들도 매나 그런 것들을 다루는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들이었다. 사카이 이즈미는 자드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면서 수많은 명곡들을 남겼는데, 그 중에서도 애니메이션에 사용된 노래가 많았다. 그래서 그 당시 내 이웃들이 그렇게 그녀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지금도 물론 국내 사람들에게 J-POP은 상당히 생소한 장르지만, 그 당시엔 지금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진 않았다. 그렇게 J-POP이 생소하던 시절에, 사람들이 J-POP을 알게 되는 거의 유일한 통로는 자기가 즐겨보는 일본 애니메이션 혹은 일본 드라마, 영화 등에 사용된 노래들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이었다. 자드는 일본 가수들 중에서도 유독 애니메이션과 드라마, 영화, CF 등에 자신의 노래를 많이 내보내는 편이었는데, 그래서였는지 그녀는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일본 가수 중 한 명이었다. 자드는 살아생전에 신비주의 전략의 일환으로, 직접적인 방송 출연이나 콘서트를 극도로 자제하고, 애니메이션이나 CF 등에 자신의 노래를 많이 내보내는 식으로 주로 홍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렇게 한국에 친숙한 일본 가수였는데, 사고사로 안타깝게 요절했다는 소식이 들려왔으니, 블로그 이웃들의 호들갑이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유명했는데, 그 당시에 나도 일본 가수 이름 꽤나 안다고 자부했는데, 그 때까지도 자드를 몰랐다는 게 참으로 모순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그녀의 죽음 직후에는 그녀의 노래를 전혀 듣지 않았다. 평소 관심도 없어서 들어볼 생각도 없었고. 내가 그녀의 노래를 듣게 된 건 이상하게도 그녀가 죽은 지 몇 년이 더 지난 후였다. 그녀의 사망 소식이 들린 땐, 내가 중학생이었는데, 그녀의 노래를 처음 듣게 된 건 고등학생 때였다.
계기가 참 특이하다. 고등학생 때 나는 국내 인디밴드 중에 “델리스파이스”를 참 좋아했다. 델리스파이스 멤버 중에 “김민규”라는 분이 계셨는데, 팬심에 그분의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들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거기서 우연히, 그분도 사카이 이즈미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을 쓴 걸 봤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 중 한 분인 김민규 님도 자드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걸 보니, 그녀의 노래를 들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 들었던 노래는 “Don’t you see!”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 노래를 처음 듣자마자, 그 노래는 내 마음 속에 각인처럼 남게 되었다.
■ 그녀의 따뜻한 감성과 목소리가 그리워지다
“Don’t you see!” 그 노래를 알고 나서, 그녀의 베스트 앨범을 찾아 듣기도 했고, 몇몇 다른 노래들이 좋아지기도 했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않았다. 자드라는 이름을 가슴 깊숙한 곳에 처박아두고 지내다가, 몇 년이 더 흘렀다. 어느새 나는 스물셋이 되어, 군 입대를 앞두게 되었는데, 남들보다 늦게 가는 군대에 마음이 적지 않게 심란해진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사카이 이즈미의 따스한 목소리가 떠오른 건 어쩌면 필연이었다. 내가 다시 찾은 그녀의 목소리는 내 마음을 한층 더 부드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내가 심란한 가운데에서도 무사히 군 입대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그녀의 목소리 덕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목소리는 내 군 생활 중에도 큰 위안을 주었다. 군대에 들어가면, 아이돌 걸그룹에 전혀 관심이 없던 사람도, 열성팬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100% FACT다. 나도 그랬으니 이 말에는 도무지 반박의 여지가 없다. 아무래도 사회와 격리된 공간에서 힘든 군 생활을 하는 도중에, 사회의 향수를 가장 잘 느끼게 만들어주는 건 그들일 테니까. 남자들에게 사회생활의 의미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건 역시 여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가장 깊이 위로한 건 언제나 사카이 이즈미의 목소리였다. 군 생활 내내 그녀의 노래만큼 열심히 들었던 노래는 또 없을 것 같다. 생활관이 소등되고 나서 취침 전에 1시간 정도 CDP로 들었던 그녀의 노래는 군 생활 동안 내게 허락된, 거의 유일하고 온전한 정서적 자유였다. 그녀의 노래를 듣는 동안엔 모든 걱정이 사라지고, 슬픔이나, 기쁨, 그리움, 모든 따스한 정서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처음엔 베스트앨범만 군대에 들고 갔는데,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정규앨범까지 구하기에 이르렀다.
자드가 아무리 국내에서 유명한 일본 가수라지만, 우리나라에 일본 음악이 정식으로 수입되기 전인 90년대를 위주로 활동하던 가수다 보니, 국내 음원 사이트들에도 정규앨범 음원이 전혀 서비스되지 않았고, 그녀의 정규앨범 CD 구하기가 수월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사카이 이즈미 때문에 난생처음 일본 음악 CD 구매대행 사이트도 이용해봤다. 구매대행 사이트에서 산 앨범들은 역시, 국내에 정식 수입되는 음반들에 비해, 세 배 이상 비싼 가격을 자랑했다. 그래도 그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였다. 물론 어둠의 경로로 그녀의 노래 음원을 무료로 구할 수도 있었겠지만, 왠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 1번 트랙 "永遠(영원)" 뮤직비디오
■ 후기 자드를 꽃피운 절정의 음악성
내가 사카이 이즈미의 정규앨범들 중에서도 가장 많이 들었던 앨범은 그녀가 1999년에 발표한 여덟 번째 정규앨범 “永遠(영원)”이었다. 흔히 자드의 시그니처 앨범을 뽑으라면 그녀가 93년에 발표한 네 번째 정규앨범 “搖れる想い(흔들리는 마음)”을 많이 뽑는데, 개인적으로는 가장 작품성이 풍부하고 완성도 높은 앨범을 뽑을 때, “永遠(영원)” 앨범을 뽑는다. 내가 왜 이 앨범을 가장 높은 완성도와 깊은 작품성을 가진 앨범으로 평하는지 지금부터 조금씩 얘기해 보도록 하겠다.
일단 이 앨범을 얘기하기 전에 지난 앨범들부터 조금씩 변화한 사카이 이즈미의 음색에 관해 얘기하지 않을 수 없겠다. 사카이 이즈미는 3집, 4집, 5집에선 하이톤의 맑고 투명한 음색을 주로 구사하였다. 그런데 6집에 들어서서, 자신의 음색을 살짝 어둡고 깊은 톤으로 변화시키기 시작했는데, 사카이 이즈미의 변화가 7집에 들어서서 과도기의 절정을 맞이했다. 그리고 “永遠(영원)” 앨범에 들어서서 비로소 후기 자드의 음색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이후로도 자드는 정규앨범 세 개를 더 내면서 롱런했고, 롱런하는 내내 일본 가요계 정상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뮤지션이 변화의 길을 걷는 걸 그리 달갑지 않게 여기는데, 그럴지라도 롱런하는 뮤지션에게 변화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고인 물은 썩고,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말이다. 일부의 팬을 잃더라도 계속해서 새로운 팬을 영입하려면, 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인 셈이다. 자드의 음색이 변해서 자드의 팬을 그만두는 사람도 분명 몇몇 생기긴 했지만, 자드는 변화를 통해 롱런할 수 있었다. 그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 변화가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알려주는 앨범이 바로 본 작 “永遠(영원)”이다. 실제로 당시 오리콘 차트에서도 앨범 차트 1위에 이름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 2번 트랙 “My Baby Grand∼ぬくもりが欲しくて∼(따스함이 필요해서)” 뮤직비디오
■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면서도 독보적인 음색을 지키는 뚝심
이 앨범이 훌륭한 또 다른 이유는 앨범 안에 있는 다양한 분위기의 다양한 장르를 사카이 이즈미가 모두 자연스럽게 소화한다는 점이다. 1번 트랙은 잔잔하고 진지한 발라드인데, 2번은 한층 템포가 올라간 밝은 노래고, 3번에서 다시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았다가, 4번 트랙에선 갑자기 헤비메탈이 나오질 않나, 5번 트랙은 아예 프로그레시브 록이다. 6번 트랙에 들어서면 보사노바 리듬을 얹은 재즈 피아노 연주가 부드럽게 깔리고, 7번 트랙에선 업 템포의 록이 등장한다. 8번 트랙에선 처절한 감성을 내뿜는 근엄하면서 격렬한 록 발라드가 이어진다. 9번 트랙은 다시 업 템포의 밝은 분위기를 가진 록 넘버가 등장하고, 10번에선 다시 차분한 발라드가 등장한다. 11번 트랙은 활기찬 느낌의 록 넘버가 다시 나오고, 12번 트랙은 70년대 아바(ABBA) 노래를 떠올리게 만드는 복고적인 편곡이 돋보이는 곡이다. 마지막 13번 트랙은 비장하고 어두운 느낌이 들면서도 어딘가 애잔한 느낌의 진지한 발라드가 다시 등장한다.
이렇게 하나의 앨범에 여러 가지 정서와 그만큼 여러 가지 장르의 음악이 마구잡이로 등장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카이 이즈미의 목소리는 이 모든 것을 균형 있게 조율한다. 모름지기 가수라면 자신이 맡은 장르에 충실해서 노래 부르기도 쉽지 않은데, 이 모든 장르에도 위화감 없이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사카이 이즈미의 능력에는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본래 이전 앨범들에서도 여러 가지 장르적 변화를 꾀한 흔적이 역력했지만, 이토록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난 앨범은 없었던 것 같다. 이런 장르적 변화는 다음 앨범인 “時間の翼(시간의 날개)”에서 평생 록 스타일의 음악이나 발라드만 부르던 사카이 이즈미가, 댄스곡을 부른다거나, 랩을 한다거나, 듀엣을 부른다거나 하는 그런 더욱 적극적인 형태로 드러나게 된다. 이 앨범이 아니었더라면 자드는 다음 앨범에서 그만큼의 다양한 변화를 취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 더욱 깊어진 음색만큼이나 더욱 깊어진 그녀의 감성 표현
하지만 역시 이 앨범이 가장 빛나는 이유는, 더욱 깊어진 음색만큼이나 더욱 깊어진 그녀의 감성 표현에 있다. 앨범과 동명곡인 1번 트랙 “永遠(영원)”에서부터 그녀의 변화한 음색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잔잔한 기타연주는 깊은 그녀의 음색과 불가분의 관계로 느껴질 정도로 잘 어울리며, 2번 트랙 “My Baby Grand∼ぬくもりが欲しくて∼(따스함이 필요해서)”는 밝은 업 템포의 곡이지만, 깊어진 그녀의 음색이, 밝은 느낌의 악기 연주 속에서도 어딘가 애잔한 느낌을 더해주며, 곡에 묘한 감상을 자아낸다.
그녀의 깊은 음색이 밝은 악기 연주와 어우러지는 것이, 노래 주제와 참으로 잘 어울린다고 할 수밖에 없다. 2번 트랙의 가사를 잘 살펴보면 내용이, 쓸쓸할 때는 거리를 걸으며 따스함을 느껴보려 노력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쓸쓸하지만 그래도 겨우 기운을 차리려고 하는 사람의 심정을 표현해야 하는 곡인데, 마냥 밝기만 해선 안 되는 것이다. 마냥 밝기만 해선 안 되지만, 그래도 다시 기운 차리고 힘차게 살아가려는 진취적인 다짐을 담은 곡이라, 밝음을 절대 잃어선 안 되는, 그런 복잡한 정서를 표현해야 하는 셈이다. 그런데 사카이 이즈미는 자신의 음색이 가진 특성을 살려, 그 복잡한 정서를 너무도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표현한다.
▲ 8번 트랙 “GOOD DAY” 뮤직비디오
그녀의 음색이 가진 특색은 보사노바 리듬의 재즈 넘버인 5번 트랙 “遠い星を數えて(먼 별을 헤아리며)”에서도 잘 드러난다. 3집부터 5집까지의 자드라면 전혀 상상도 못할 느낌의 곡인데, 더욱 깊어진 음색 덕분에 이런 진지한 재즈 트랙에도 목소리가 자연스레 녹아든다. 5번 트랙의 경우에는 자드가 전에는 전혀 시도하지 않았던 장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자드의 변화한 음색이 아니었더라면, 이런 장르에 시도하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을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트랙은 8번 트랙 “GOOD DAY”다. 좋은 날이라는 뜻을 가진 제목과는 다르게, 역설적으로 매우 슬픈 노래다.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며, 후회의 감정을 절절하게 토해내는 노래다. 처음에는 잔잔하게 시작했다가, 후렴구에선 갑자기 폭발하듯 곡의 음이 극도로 높아진다. 곡 후반부에선 사카이 이즈미와 일렉트릭 기타 연주가 자웅을 겨루듯 서로 으르렁 대는 모습까지 포착된다. 사카이 이즈미가 낼 수 있는 음역의 극한을 끌어올린 노래이니 만큼, 그 감성도 더욱 절절하게 와 닿는다. 하지만 사카이 이즈미의 깊은 음색이 높은 음역에도 억지스러운 느낌이나, 부담스러운 느낌을 전혀 주지 않고, 그녀가 내뱉는 감성에 자연스레 젖어들게 만든다. 폭발하는 감정을 겨우 절제하려 전력을 다하는 여인의 처량한 모습이 머릿속에 자연스레 떠올라 서글픈 감정을 유발하는 곡이다. 하지만 슬픈 노래는 슬플 때 들으면 오히려 가장 크게 위로가 된다고, 이것이 사카이 이즈미가 줄 수 있는 극한의 위로인가 싶기도 하다.
물론 자드는 지난 앨범들에서 보여준 밝은 정서를 표현하는 능력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10번 트랙 “少女の頃に戾ったみたいに(소녀시절로 되돌아간 것처럼)”은 발라드 넘버지만, 8번 트랙처럼 정서가 처절하진 않고, 오히려 밝은 느낌의 곡이다. 이런 곡에선 자신의 음색을 어린아이처럼 살짝 바꿔서 밝은 정서를 전달한다. 그녀의 소녀감성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는 트랙이다. 11번 트랙 “息もできない(숨도 쉴 수 없어)”는 그녀가 이전까지 계속해오던 밝은 정서의 업 템포 록 넘버다, 여기서도 여전히 변치 않는 그녀의 감성을 만나볼 수 있다. 혹시나 이 앨범으로 자드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이 11번 트랙을 듣고, 이게 바로 자드가 그 이전부터 계속하던 음악이라고 생각하면 딱 맞을 것이다.
▲ 자드 "永遠(영원)" 앨범 뒷 표지
■ 영원을 노래한 따스한 목소리
또 하나 이 앨범을 더욱 빛나게 하는 요소는 역시 사카이 이즈미 자신이 직접 쓴 가사에 있다. 이 앨범 전곡의 가사를 그녀가 다 쓴 만큼, 이 앨범에는 그녀의 감성이 짙게 묻어나온다. 한참 SBS에서 방영하는 “K-POP 스타”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유행할 때, 박진영이 가수는 마땅히 노래를 말하듯이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박진영은 그 말을 꽤 여러 번 반복하며 강조했었는데, 그런 박진영의 기준에서는 사카이 이즈미야 말로 가장 그 기준에 잘 부합하는 가수가 아닐까. 무엇보다 자드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거의 모든 노래가 사카이 이즈미 본인이 가사를 썼기 때문에 더욱 그 기준에 잘 맞을 수밖에 없다. 본인이 가사를 썼기 때문에, 그 가사를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그 누구보다 본인이 가장 잘 알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런 자드 노래의 특성은 청자들에게 그대로 전달될 수밖에 없고, 아무리 일본어를 모르는 외국인 청자일지라도, 그런 감성 표현을 다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말이라는 건 그 의미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아도, 그 언어 자체가 말하는 사람의 감성과 목소리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사까지 직접 써가며, 청자들에게 자신의 감성과 진심을 전달하려고 했던 가수가 지금은 우리 곁을 떠나고 없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내가 자드를 한참 좋아하게 되었을 때, J-POP 좋아하는 내 친구 중 한 명에게 자드 얘기를 했더니, 그 친구가 자기는 더 이상 자드 노래를 듣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가 자드 노래를 왜 안 듣느냐고 물어보니 그 대답이, 그녀가 세상을 갑작스레 떠났던 그 때가 자꾸 떠올라 너무 슬퍼서 못 듣는다고 말했다. 사실 나는 그 말을 듣기 전까진 그녀를 잃은 사람들의 슬픔이 얼마나 컸을지 가늠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오히려, 그녀가 떠나고 나서 한참이 흐른 후에야 그녀의 노래를 좋아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내가 그 친구에게 그걸 물었을 땐, 새로 알게 된 가수를 얘기하듯 발랄한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너무 슬퍼서 자드 노래를 못 듣는다는 그 친구의 말을 접하고, 꽤 창피한 마음이 솟구쳤었다. 너무 창피해서 “그래도 사카이 이즈미는 세상 사람들이 계속 자기 노래를 즐거운 마음으로 들어주길 더 바랄 걸!”이라는 말을 뱉었는데, 그래도 내 마음에 창피함은 전혀 가시질 않았다.
자드 노래를 좋아하고, 사카이 이즈미의 목소리를 좋아하는 세월이 늘어갈수록, 그녀를 잃은 사람들의 아픔을 조금씩 더 많이 이해하게 된다. 나도 가끔은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그녀의 목소리가 뿜어내는 따스함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아서, 그 따스함이 이 세상에 전혀 존재하지 않고, 그녀의 노래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눈물이 맺힐 때도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도 그녀가 그립다. 그렇게 나는 단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을 그리워하게 된다. 그만큼 그녀가 전해주던 감성과 그 목소리가, 그 누구도 가진 적 없는 것이었기에, 그래서 더욱 귀중한 것임을 알았기에,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느끼게 되기에 그러하다. 하지만 반대로 그녀에게 감사하는 마음도 커진다. 그녀가 가수로서 이 세상에 나온 지도 이제 25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그녀의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여전히 그녀의 노래로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고, 힘들 때는 위로 받는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녀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예쁘고 아름다운 노래들을 잔뜩 남기고 떠나줘서 너무 고맙다고. 그렇게 그녀에게 전하고 싶다.
▲ 자드 25주년 기념 베스트 앨범 앞 표지
사카이 이즈미는 사진들을 보면 알겠지만, 누가 봐도 절세미인의 얼굴이다. 나이 40이 넘은 상태에서도 20대의 얼굴과 몸매와 피부를 거의 그대로 유지했는데, 놀랍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사카이 이즈미의 사진을 별로 자주 들여다보지 않는다. 가끔 들여다 볼 때는 이성을 바라볼 때의 “아, 예쁘다.” 이런 감상보다는 뭐랄까, 예수님의 성화를 들여다보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의 마음이 되는 것 같다. 그만큼 그녀의 사진을 바라볼 땐, 위인의 사진을 들여다보는 것마냥 엄숙한 마음이 먼저 든다. 그만큼 그녀의 사진을 접할 땐 고마운 마음부터 차오른다는 얘기다. “永遠(영원)” 앨범은 그녀의 노래가 내 인생에 거대한 부분을 차지하게 만든 시작점이 된 앨범이다. 그래서 이 앨범에도 한없이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 앨범의 제목처럼 이 세상에 따스한 위로를 찾는 사람이 존재하는 한, 그녀의 목소리는 영원히 세상에 머물 것이다. 세상에 모든 문명이 사라지고, 새로운 문명이 그 자리에 들어서고, 다시 사라지고, 다시 새로 생기고, 이런 과정이 세상에 반복되어도, 사람이 서로 만나서 사랑하는 모습은 언제나 변치 않고 그 자리에 머물렀다. 그녀가 부른 “永遠(영원)”이라는 제목을 가진 노래는 가사를 잘 살펴보면 사랑노래인데, 흔한 사랑노래처럼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사실 사랑만큼 영원이라는 단어와 잘 어울리는 단어도 드물 것이다. 그녀가 사랑을 노래하며 영원을 이야기한 것처럼, 그녀의 노래가 언제까지나 영원히 세상에 남기를 바란다. 이 세상에 사랑의 따스함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과 같다.
트랙리스트
1. 永遠(영원)
2. My Baby Grand∼ぬくもりが欲しくて∼(따스함이 필요해서)
3. WAKE UP MAKE THE MORNING LAST∼忘れがたき人へ∼(잊혀지지 않는 사람에게)
4. Brand New Love
5. 運命のル-レット廻して(운명의 룰렛을 돌리며)
6. 遠い星を數えて(먼 별을 헤아리며)
7. 新しいドア∼冬のひまわり∼(새로운 문∼겨울의 해바라기∼)
8. GOOD DAY
9. I feel fine, yeah
10. 少女の頃に戾ったみたいに(소녀시절로 되돌아간 것처럼)
11. 息もできない(숨도 쉴수 없어)
12. 風が通り拔ける街へ(바람이 빠져나가는 거리에)
13. フォトグラフ(포토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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