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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스페셜

시티팝(CITY POP) 입문에 딱 좋은 명반 BEST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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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스페셜 13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전성기를 맞이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어떤 시기를 전성기라고 말할까? 명예나 재산만이 풍족한 시기를 진정한 전성기라 부를 수 있을까? 나는 그 무엇보다 정서적으로 가장 풍족한 시기가 진정한 전성기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명예나 재산이 풍족하면, 정서적으로도 풍족해지기 쉬우니, 이 두 전제가 완전 상반된 말은 아닐 것이며 오히려 통한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명예와 재산이 풍족해도, 정서적으로는 풍족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으니, 이런 구분은 마땅히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 명예, 재산, 정서. 이 세 가지 모두 풍족한 상태라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절정의 전성기라고 칭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전성기를 지금 맞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전성기를 만끽하느라 여념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성기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그것도 그 전성기가 먼 옛날 얘기처럼 느껴지는 사람이라면, 전성기에 대해 추억할 때 어떤 감정이 들까.

 

최근에 “시티 팝(CITY POP)”이라는 음악 장르가 사람들 사이에서 나름 입소문을 타고 퍼지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만의 이야기는 아니고, 이미 외국에도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다. “시티 팝”이란 일본에서 1970년대 후반에 일어나기 시작하여 1980년대 후반까지 약 10년 동안 흥했던 장르다. 시티 팝의 음악적 특성을 단 몇 마디로 정확하게 정의하기란 어려운 일인데, 시티 팝이라는 장르 자체가 그 안에서 이미 그 당시까지 발전해있었던 여러 장르를 포함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시티 팝은 재즈(Jazz), 펑크(Funk), 디스코(Disco), 소울(Soul), 신스팝(Synthpop), 록(Rock), 심지어 클래식(Classic)까지 다채로운 음악성을 내포하고 있다. 다만, 장르에 팝(Pop)이라는 단어가 붙는 만큼 이 모든 장르를 섞되, 대중의 요구에 맞게 귀에 잘 박히는 멜로디를 넣거나, 곡 구조를 간소화시키는 등의 어느 정도 가공을 거친다. 시티 팝에는 여러 장르가 이미 내포되어 있어, 그 장르가 표현하고자하는 바를 추측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시티 팝이라는 단어가 탄생하게 된 배경을 잘 살펴보면, 시티 팝이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제 시티 팝 입문에 좋은 음반 5개를 소개할 것이다. 이 음반들을 잘 살펴보며 시티 팝이란 어떤 것인지를 알아보자.

    


 

■ 오오누키 타에코(大貫妙子, Taeko Ohnuki) - SUNSHOWER (1977)

시티 팝이 흥했던 시기를 잘 살펴보면, 일본의 경제 발전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시티 팝이 가장 흥했던 80년대 중반과 후반을 살펴보면, 일본의 “버블경제” 시기와 딱 맞물리는 걸 발견할 수 있다. 버블경제 시기 일본의 위상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자료가 있다. 일본 버블경제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88년도 “주식 시가 총액 기준 세계 50대 기업 순위”를 보면 그 중 과반인 33개 기업이 일본 기업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인들의 경제 수준이 높아지면서, 덩달아 문화 및 예술에 관한 요구사항도 날로 수준이 높아졌는데, 대중음악 분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 버블경제의 막강한 자본은 음악 수준을 높이기 위한 여러 다양한 시도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 시도에 실패해도 잃을 게 별로 없을 정도로 막강한 자본이었으니 말이다. 80년대 일본에서 이런 음악적 시도들이 성행하기 전에, 이런 시도가 일어날 수 있게 초석을 다진 아티스트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오오누키 타에코”다.

 

그녀가 77년에 발표한 앨범 “SUNSHOWER”는 그녀의 두 번째 정규앨범이다. 나는 이 앨범을 시티 팝을 발명한 앨범이라고 칭하고 싶다. 이 앨범 4번 트랙에 실린 “都会(도회)”라는 곡은 그녀의 대표곡으로 뽑히는데, 시티(City) 팝이라는 말과 잘 어울리지 않는가? 저 도회라는 곡 자체가 시티 팝의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곡 중에 하나다. 시티 팝 안에 그토록 많은 장르들이 내포되어 있음에도, 시티 팝 안에서 공통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데, 그것은 도시의 화려한 풍경을 묘사한 것 같은 분위기가 나온다는 점이다. 이 도회라는 곡은 재즈를 기반으로 팝의 쉬운 멜로디와 신스팝의 실험적인 사운드가 결합한, 크로스오버 색깔이 짙은 곡이다. 전체적으로 경쾌하면서도 끈적끈적한 분위기를 사운드를 통해 내고 있는데, 도시의 활기찬 사람들과 넘쳐나는 건물, 넘쳐나는 불빛들을 상기시킨다. 그러나 이 곡은 도시의 밝은 면을 묘사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곡의 후반엔 곡의 한 구간이 반복되면서, 가사 또한 한 구절만 반복되는데, 그 가사를 들여다보면 처연한 감성이 가슴에 스며들어온다. “その日暮らしは止めて 家へ帰ろう一緒に(그런 쓸데없는 짓은 그만두고 집에 돌아가자 같이.)”

  

  

▲ 4번 트랙 “都会(도회)”

이 앨범은 시티 팝의 기념비적인 곡인 “도회”가 실려 있다는 것 외에도, 여러 위대한 면들을 갖고 있다. 이 앨범의 모든 곡은 오오누키 타에코 본인이 직접 작사 작곡 했으며, 편곡은 세계적인 영화음악 감독으로 유명한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 Ryuichi Sakamoto)”가 담당했다. 사카모토 류이치는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ellow Magic Orchestra)”라는 신스팝 팀에서 활동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일본 신스팝은 물론이고, 세계 신스팝이 주목하는 밴드였다. 그런 만큼 이 앨범에선 신디사이저를 이용한 여러 실험적인 사운드를 만나볼 수 있다. 그런 측면이 가장 잘 드러나는 트랙으로서 6번 트랙 “Law Of Nature”와 9번 트랙 “Sargasso Sea” 그리고 10번 트랙 “振子の山羊(진자의 산양)” 이 세 트랙을 들 수 있다. 6번 트랙은 신디사이저 사운드와 재즈 기타 사운드가 서로 대결하듯 으르렁거리는 모습이 일품이다. 9번 트랙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요한 듯 몽환적인 사운드가 청자의 주의를 이끌며, 10번 트랙과 마치 한 곡인 것처럼 이어지는데, 10번 트랙의 곡 구조는 “프로그레시브 록(Progressive rock)”을 연상시킬 정도로 극적이고 다채롭다. 한 곡 안에 클래식, 재즈, 록, 신스팝, 이 모든 장르를 다 느낄 수 있으며, 웅장함과 신비로움이 공존하는 놀라운 곡이다.

 

트랙리스트

1. Summer Connection

2. くすりをたくさん(약을 잔뜩)

3. 何もいらない(아무것도 필요 없어)

4. 都会(도회)

5. からっぽの椅子(빈 의자)

6. Law Of Nature

7. 誰のために(누구 때문에)

8. Silent Screamer

9. Sargasso Sea

10. 振子の山羊(진자의 산양)

   


 

■ 야마시타 타츠로(山下達郎, Tatsuro Yamashita) - FOR YOU (1982)

야마시타 타츠로는 시티 팝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야마시타 타츠로가 프로듀서로서 여러 시티 팝 아티스트를 길러낸 것도 그러하거니와,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도 가히 천재적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타, 베이스, 신디사이저, 드럼까지 각종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건 물론, 이런 악기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여러 장르에 대한 해박한 지식까지 갖추고 있어, 시티 팝 특유의 크로스오버 색채를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아티스트였다. 그야말로 시티 팝의 아버지인 셈. 아메리칸 팝이라고 한다면, 그 당시 음악적 선진문물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데, 야마시타 타츠로는 아메리칸 팝을 가장 잘 이해하는 일본인 아티스트로 평가된다. 80년대 일본은 날로 높아지는 경제규모에 따라, 대중음악을 소비하는 계층도 음악적 선진문물을 원했는데, 야마시타 타츠로는 이런 80년대 일본이 받아들이기에 가장 적합한 아티스트였던 것이다. 그는 이런 자신의 놀라운 음악적 능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름을 직접 딴 앨범도 여럿 발표했는데, 그가 82년에 발표한 “FOR YOU”는 그의 대표작으로 가장 많이 거론된다.

 

 

▲ 7번 트랙 “LOVELAND, ISLAND” 뮤직비디오

앨범의 수록된 곡들을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된 특징을 발견할 수 있는데, 곡 전개에 있어서 특정 구절을 자주 반복한다는 점이다. 멜로디 라인이 상당히 단순하다는 걸 알 수 있는데, 반면에 사운드 측면에서는 정교하고 웅장한 면모를 많이 보인다. 이런 역설적 곡 구조로 청자의 흥을 잔뜩 돋우고, 각 곡들의 주목도를 높였다. 1번 트랙 “SPARKLE”은 쫄깃쫄깃한 펑크 리듬이 웅장한 브라스 연주와 곁들여져 청자의 흥을 잔뜩 돋우고, 2번 트랙 “MUSIC BOOK”은 좀 더 여유로운 연주로 청자의 감상을 집중시키고, 3번 트랙 “INTERLUDE A Part I”은 정교하게 짜인 아카펠라로 곡의 포문을 열며 청자에게 새로운 감각을 선사한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4번 트랙 “MORNING GLORY”는 감상적이고 부드러운 선율이 청자에게 휴식을 선사한다. 5번 트랙에서 다시 아카펠라가 등장하고, 6번 트랙 “FUTARI”는 피아노 연주가 고요하게 깔리며 그 전보다 훨씬 편안한 감각을 선사한다. 종종 터지는 웅장한 사운드가 감정의 깊이를 더한다. 7번 트랙 “LOVELAND, ISLAND”는 쫄깃쫄깃한 디스코 리듬과 상쾌한 피아노 연주의 조화가 돋보이는 곡으로서, 이 앨범의 대표곡으로 뽑힌다. 9번 트랙 “LOVE TALKIN '(Honey It 's You)”는 경쾌한 리듬 속에 드러나는 야마시타 타츠로의 가창력을 한껏 체험할 수 있는 곡이다.

 

트랙리스트

1. SPARKLE

2. MUSIC BOOK

3. INTERLUDE A Part I

4. MORNING GLORY

5. INTERLUDE A Part II

6. FUTARI

7. LOVELAND, ISLAND

8. INTERLUDE B Part I

9. LOVE TALKIN '(Honey It 's You)

10. HEY REPORTER!

11. INTERLUDE B Part II 

12. YOUR EYES

  


   

■ 마미야 타카코(間宮貴子, Takako Mamiya) - LOVE TRIP (1982)

마미야 타카코는 솔로가수로서 정규앨범 하나만 내고 조용히 음악 활동을 그만둔 비운의 아티스트다. 하지만 이 앨범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자신의 위대함을 뽐낼 수 있는 거 같다. 1981년은 일본의 버블경제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라고 많은 학자들이 그렇게 보고 있는데, 이 앨범은 바로 그 이듬해 나온 앨범이다. 일본의 막강한 경제력이 음악까지 얼마나 강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앨범이다. 성공이 보장되지 않은 한 아티스트에게 이런 것들까지 쏟아 부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화려한 편곡과 고급 연주가들을 많이 투입했다. 앨범 전체가 정통 재즈 사운드를 바탕으로 했음에도 신디사이저 사용에 거리낌이 없는 실험적인 면모까지 보여준다. 고급 연주가들이 벌이는 정교한 연주에, 팝 특유의 귀에 잘 꽂히는 멜로디, 신디사이저를 이용한 신선한 사운드 메이킹과, 마미야 타카코의 담백한 가창력까지, 이 모든 걸 놓치지 않는 치밀함에 새삼 자본의 힘을 실감하게 된다.

 

 

▲ 3번 트랙 “真夜中のジ ョーク(한밤 중의 조크)”

이 앨범은 앨범 제목에 맞게, 콘셉트 앨범의 면모를 많이 보인다. 이 앨범에 실린 곡 전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떠나는 여행,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에 품고 떠나는 여행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1번 트랙 “LOVE TRIP”을 마지막 10번 트랙에서 제목을 “WHAT A BROKEN HEART CAN DO”로 바꾸고 가사를 영어로 바꿔 똑같은 곡을 다시 수록한 면을 보면, 확실히 콘셉트 앨범의 면모가 강하게 드러난다. 아마 이 앨범이 여기서 소개하는 다섯 앨범들 중에 가장 부드럽고 얌전한 성향의 앨범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만큼 여행의 여유로운 느낌, 편안한 휴식 같은 느낌을 잘 전달해주는 앨범이라 할 수 있다. 여행도 그저 여행이 아닌 해외로 일주일 이상 장기체류하면서 너그럽게 즐기는 여행을 떠올리게 만든다. 지금이야 일본 젊은이들이 워낙 해외여행을 가지 않아서, 정부에서 해외여행 지원까지 해 줄 정도라고 하지만, 80년대 일본에선 해외여행이 지극히 유행이었다. 해외여행을 좋아하던 80년대 일본인들의 정서가 잘 스며든 앨범이 바로 이 앨범이라 할 수 있다. 이 앨범에 깃든 특유의 정교한 연주와 담백한 가창력이, 정규앨범을 단 한 장만 내고 사라진 아티스트의 앨범임에도, 2018년 현재까지 몇 차례 재발매를 거치며 재조명 받게 만든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트랙리스트

1. LOVE TRIP

2. ニーズ・レストラン(차이니즈 레스토랑)

3. 真夜中のジョーク(한밤 중의 조크)

4. 哀しみは夜の向こう(슬픔은 밤의 저편)

5. ALL OR NOTHING

6. 渚でダンス(물가에서 댄스)

7. ONE MORE NIGHT

8. モーニング・フライト(모닝 플라이트)

9. たそがれは銀箔の…(해질녘은 은박의…)

10. WHAT A BROKEN HEART CAN DO

 


   

■ 타케우치 마리야(竹内まりや, Mariya Takeuchi) - VARIETY (1984)

야마시타 타츠로를 시티 팝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아티스트라고 말하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거기엔 그가 타케우치 마리야의 남편이라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타케우치 마리야는 수많은 시티 팝의 여성 가수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존재였다. 그녀의 정규 7집 앨범 “VARIETY”는 그녀의 오랜 커리어에도,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하며 그녀가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다. 그녀는 82년 야마시타 타츠로와 결혼하였으며, 이 앨범은 그후 84년에 나온 앨범인데, 그래서 그런지 야마시타 타츠로와의 조화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작사 작곡을 타케우치가 맡고, 편곡을 야마시타가 맡는 식으로 앨범 제작이 진행되었고, 이는 타케우치 마리야의 색깔과 야마시타 타츠로의 색깔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훌륭한 음악성을 자아냈다. 야마시타 타츠로가 사운드 메이킹에 상당히 깊이 관여했음에도, 야마시타 타츠로의 앨범과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타케우치 마리야의 유려한 감수성과 그것에서 나오는 부드러운 선율, 거기에 야마시타 타츠로의 웅장한 사운드와 천재적인 편곡까지, 청자에게 단 한 순간도 놓칠 수 없는 놀라운 음악들을 선사한다.

 

무엇보다 이 앨범을 주목해야 할 가장 큰 이유라면, 이 앨범이 “プラスティック・ラブ(플라스틱 러브)”가 수록된 앨범이라는 것이다. “플라스틱 러브”가 어떤 곡인가. 현재 시티 팝을 다시 주목 받게 만드는 데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 곡이다. 물론 이 곡과 관련해서 최근에 국내 모 가수와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진 탓도 있지만, 이런 음악적으로 불미스러운 일들이 늘 그러하듯, 원곡으로 지목되어 연루된 곡이 오히려 탁월한 음악성에 주목 받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플라스틱 러브” 또한 그런 곡이며, 사실 이 곡은 유튜브에서 최근 몇 개월 동안 원인 모를 현상으로 인해 가파르게 조회수가 증가하고 있다. 현재 이 곡의 최대 조회수는 2000만이 넘은 상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 사건의 연루된 곡이 어떤 건지 유튜브에서 찾아보려다 사태가 세계적으로 번진 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이 앨범의 30주년 기념으로 나온 CD에서는 “플라스틱 러브”의 위대함을 미리 예견했는지, 같은 곡의 리믹스 버전을 두 개나 보너스 트랙으로 넣고, 그것도 모자라 MR까지 수록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 2번 트랙 “プラスティック・ラブ(플라스틱 러브)” 뮤직비디오

어쩌다 “플라스틱 러브” 얘기만 길어졌는데, 사실 이 앨범은 그 곡 하나만 놓고 가치를 평가하기엔 무척 아까운 앨범이다. 이 앨범은 제목처럼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고 있고, 그만큼 다양한 분위기의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1번 트랙 “もう一度(한 번 더)”는 경쾌하고 웅장한 사운드가 앨범의 포문을 연다. 웅장한 사운드 속에 곁들여진 타케우치 마리야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웅장한 사운드에 감미로운 감성을 곁들였다는 점은 마치 “존 레논(John Lennon)”의 대표곡 중 하나인 “Starting Over”를 떠올리게 만든다. 4번 트랙 “ONE NIGHT STAND”와 5번 트랙 “BROKEN HEART”는 소울의 영향이 강하게 느껴지는 부드러운 곡이다. 특히 5번 트랙은 가사가 영어인데다, 그녀의 깊은 음색, 세련된 사운드가 어우러져, 일본 노래가 아닌 미국 노래처럼 느껴질 정도다. 6번 트랙 “アンフィシアターの夜(대강당의 밤)”에서는 강렬한 록 사운드를 시도했고, 9번 트랙 “水とあなたと太陽と(물과 당신과 태양과)”에서는 청량한 느낌의 정통 재즈를 구사한다. 마지막 11번 트랙 “シェットランドに頬をうずめて(셰틀랜드에 뺨을 파뭍고)”에선 웅장하면서도 부드러운 클래식 교향곡 사운드와 함께 그녀의 목소리가 깊이 있게 스며드는 걸 들을 수 있다.

 

트랙리스트

1. もう一度(한 번 더)

2. プラスティック・ラブ(플라스틱 러브)

3. 本気でオンリー・ユー(진심으로 온리 유)(Let's Get Married)

4. ONE NIGHT STAND 

5. BROKEN HEART 

6. アンフィシアターの夜(대강당의 밤)

7. とどかぬ想い(닿지 못할 마음)

8. マージービートで唄わせて(머지비트로 노래해줘요)

9. 水とあなたと太陽と(물과 당신과 태양과)

10. ふたりはステディ(두 사람은 스테디)

11. シェットランドに頬をうずめて(셰틀랜드에 뺨을 파뭍고)

 


   

■ 자드(ZARD) - HOLD ME (1992)

사실 자드를 시티 팝 아티스트로 분류하는 건 그다지 일반적인 분류가 아니다. 시티 팝은 일본 쇼와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이고, 자드는 헤이세이 시대를 대표하는 아티스트이기 때문이다. 조선에 왕이 있었을 땐 왕에 따라 연호를 붙이듯이, 일본은 지금까지도 왕이 있어 현대까지도 연호를 쓴다. 1926년부터 1989년 1월 7일까지의 연호는 “쇼와(昭和)”라고 하고, 89년 1월 8일부터 2019년 4월 30일까지 연호는 “헤이세이(平成)”라고 한다. 버블경제는 1990년에 최고치를 찍고, 이듬해부터 가파르게 추락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92년에 버블경제는 완전히 붕괴되었다는 진단을 받게 된다. 쇼와 시대가 끝나면서, 버블경제도 같이 끝나게 된 셈이다. 그래서 일본인들에겐 쇼와 시대란 영광의 시대로 기억된다. 헤이세이 시대는 쇼와 시대에 비해 각박해진 현실을 의미한다. 그야말로 시티 팝 아티스트들과 자드는 상징하는 연호자체가 다른 셈인데, 그럼에도 자드의 앨범을 시티 팝 소개란에 넣은 이유를 설명하자면, 나는 이 앨범이 나온 년도를 주목하라고 말할 것이다. 92년, 딱 버블경제가 붕괴 판정을 받은 그 해이지 않은가.

 

이 앨범은 자드의 세 번째 정규앨범으로서, 오리콘 차트 2위까지 올라 자드의 이름을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각인시킨 앨범이다. 사실 자드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 듯이 1집과 2집 시절엔 밴드였다. 그러다 2집 활동이 끝나고 보컬 “사카이 이즈미(坂井泉水)”를 제외한 나머지 모든 멤버들이 탈퇴하며, “자드=사카이 이즈미” 공식이 설립되었다. 사카이 이즈미는 밴드 시절엔 밴드답게 록 음악을 주로 구사하는 아티스트였으나, 이제는 진정 솔로 아티스트가 되었으니, 음악적으로 변신이 필요했다. 아무리 버블경제가 종말 판정을 받았다지만, 이때만 하더라도 시티 팝은 여전히 일본 대중음악에 영향을 어느 정도 미치고 있었다. 거의 끝물이긴 했지만. 아무튼 자드는 시티 팝으로 음악적 변신을 시도했고, 이 앨범은 그렇게 시티 팝 끝물의 느낌을 잘 전달해주는 상징적인 앨범이 되었다. 시티 팝의 끝물을 보여주는 앨범이기도 하지만, 일본 대중음악이 시티 팝에서 새로운 트렌드로 옮겨가는 과도기적 모습을 잘 보여주는 앨범이기도 하다. 이후 자드는 시티 팝의 색채를 걷어내고 새로운 음악 스타일을 구사하게 되지만, 이 앨범 한정으로 시티 팝의 색채가 잘 드러나고 있다.

 

 

▲ 자드 공식 트리뷰트 밴드 “SARD UNDERGROUND”가 2020년 “眠れない夜を抱いて(잠 못드는 밤을 안고)”를 커버한 무대

사실 시티 팝이라고 한다면, 위에도 잔뜩 적었듯이 경쾌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앨범에는 버블경제가 붕괴된 일본의 암울한 현실을 반영하듯, 구슬픈 멜로디들이 자주 등장한다. 시티 팝의 크로스오버 색깔을 구슬픈 감정을 표현하는 데 쓰는 걸 많이 확인할 수 있는데, 대표적으로 3번 트랙 “サヨナラ言えなくて(잘 가라고 말할 수 없어서)”와 6번 트랙 “Dangerous Tonight” 그리고 7번 트랙 “こんなに愛しても(이렇게나 사랑하는데)” 8번 트랙 “Why Don't You Leave Me Alone”을 예로 들 수 있다. 하지만 어두면만 있는 건 아니고 기존의 시티 팝이 지향하던 활기찬 분위기도 어느 정도 계승하고 있다. 이런 특성을 반영하는 곡은 1번 트랙 “眠れない夜を抱いて(잠 못 드는 밤을 안고)”와 4번 트랙 “あの微笑みを忘れないで(그 미소를 잊지 말아요)” 5번 트랙 “好きなように踊りたいの(맘껏 춤추고 싶어)” 등이 있다. 나는 여기서 10번 트랙 “遠い日のNostalgia(먼 날의 노스탤지어)”를 주목하고 싶다. 시티 팝을 주제로 이 글을 쓰다 보니, 이 노래가 마치 이젠 다 무너지고 없어져버린 버블경제 시절의 일본을 추억하며 노스탤지어를 느끼는 감정을 표현한 노래처럼 느껴진다. 그런 일본의 상황을 연애라는 감정에 빗대어 은유로 표현한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작사를 맡은 사카이 이즈미가 그런 것까지 의도했을 리는 전혀 없겠지만, 그냥 그런 생각들이 든다.

 

트랙리스트

1. 眠れない夜を抱いて(잠 못드는 밤을 안고)

2. 誰かが待ってる(누군가가 기다리고 있어)

3. サヨナラ言えなくて(잘 가라고 말할 수 없어서)

4. あの微笑みを忘れないで(그 미소를 잊지 말아요)

5. 好きなように踊りたいの(맘껏 춤추고 싶어)

6. Dangerous Tonight

7. こんなに愛しても(이렇게나 사랑하는데)

8. Why Don't You Leave Me Alone

9. 愛は眠ってる(사랑은 잠들어있네)

10. 遠い日のNostalgia(먼 날의 노스탤지어)

11. So Together

 


 

▲ 스트리머 “소니쇼” 영상. 대치동 졸부 엄마 흉내라며, BGM으로 “플라스틱 러브”를 사용해 분위기를 연출했다.

■ 현대인들이 시티 팝에 열광하는 이유

서두에서 전성기를 회상하는 사람의 심정이 어떨 것인가에 관한 얘길 했다. 내가 시티 팝을 소개하며 그 얘길 왜 했냐면, 시티 팝이야 말로 사람이 자신의 지나버린 전성기를 떠올리며 감상에 젖기에 딱 좋은 음악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내가 만약 시티 팝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시티 팝이라는 장르에 그다지 흥미를 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티 팝은 이제 옛날 음악이 되어버렸다. 옛날 음악치고는 굉장히 세련됐다는 점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시티 팝은 21세기가 된 현재에는 과거 속에 박제된 음악이 되었다. 그 점 하나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를 음미하게 만드는 특성을 만드는 것 같다. 나 외에 시티 팝을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시티 팝은 상술했듯, 여러 장르의 크로스오버 성격을 가지고 있어, 정확히 정의하기 어려운 장르다. 그러나 시티 팝은 어떤 걸 듣든지 간에, 버블경제 시절 일본이 가지고 있던 화려한 도시의 모습과, 풍족한 일본인들의 삶을 떠올리게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이제 그 시절은 끝난 과거의 일이 되었고, 그 시절의 일본을 생각하는 건, 한 사람의 인생에 깃든 전성기를 추억하는 면과 닮아있다. 사람이 지난 전성기를 추억할 때 어떤 감정을 느낄까. 행복함에 젖으면서도 다른 한 편으론 그런 시절이 다시 올까 싶은 불안이 섞인, 그런 희로애락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일 것이다. 21세기의 시티 팝은 바로 이런 복잡한 감정을 대변하는 음악이 되었다. 도시는 화려한 겉모습 뒤에, 고독의 향기를 물씬 품고 있다. 멀리서 보면 화려하지만, 들여다보면 구슬픈 도시의 삶. 그런 도시의 삶을 살아가며 자신의 전성기를 추억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시티 팝은 계속 그런 사람들 곁에 머무르며 그들을 위로할 것이다. “その日暮らしは止めて 家へ帰ろう一緒に(그런 쓸데없는 짓은 그만두고 집에 돌아가자 같이.)”라고 구슬프게 노래하는 오오누키 타에코의 목소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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