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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스페셜

더 이상 혁명과 반항을 노래하지 않는 세대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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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명반 스페셜 14 ]

 

 

예술은 시대를 반영한다. 따라서 예술은 시대의 거울이며, 사회의 대변자다. 요즘 들려오는 음악들이 어떤 음악인지를 보면,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요즘 음악보다는 예전 음악을 위주로 청취 생활을 하는데, 그게 요즘 음악을 싫어해서라기보다도, 요즘 음악은 예전 음악에 비해 심심하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 댄스 음악의 편곡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록 음악이 넘볼 수도 없을 만큼 복잡한 편곡 체계로 무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상 악기이긴 하지만, 록 음악보다도 훨씬 많은 수의 악기가 투입되고, 사운드도 훨씬 다채롭다. 다만, 악기 하나를 연주하면서 뽐내는 기교나, 구성의 흐름을 놓고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런데 사운드를 여러 결로 중첩시켜 매력적인 사운드를 뽑는 기술만 놓고 보면, 댄스 음악이 결코 단순한 음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음악의 가치를 작곡과 사운드로만 놓고 보면, 댄스 음악은 결코 록에 뒤지지 않는 음악임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나는 요즘 가장 유행하는 댄스 음악이나 얼터너티브 알앤비(Alternative R&B)를 듣다 보면, 심심하다는 느낌을 떨쳐낼 수 없다.

 

왜 그런지 숙고해보았다. 음악의 가치를 사운드 외적인 것까지 넓혀보니 답이 나왔다. 내가 주력으로 삼고 싶은 건, , 소설, 에세이 등, 개인의 삶과 사회를 다루는 문예 분야다. 단지 내가 음악에 관한 글을 쓰는 건, 평소 음악을 워낙 좋아하다보니, 내가 쓰는 문예적 에세이의 영역을 음악과 연계지어서 진행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공부와 연구도 문예 쪽으로 많이 했는데, 그러다보니 나는 음악에 가치를 둘 때, 사운드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사운드를 통해 청자에게 호소하는 메시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내가 쓴 인생명반 시리즈들을 유심히 읽어왔던 독자들은 모두 내가 말하는 게 뭔지 대충이 감이 올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뭐냐, 요즘 나오는 음악들은 메시지 측면에서 내 마음에 호소하는 바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얘기다. 사운드는 충분히 훌륭하나, 그 사운드와 함께 따라오는 가사나 메시지 등이 내 마음에 깊게 다가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래서 요즘 음악은 심심하다.

 

 

▲ 커트 코베인(Kurt Cobain) , 그가 죽고 나서 세상에는 록이 죽었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내 주장이 절대적으로 옳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이건 단지, 나의 삶과 취향에 관한 이야기에 불과하다. 나는 음악에 우열을 가리고 싶지 않다. 솔직히 록보다 댄스 음악이나 알앤비가 전하는 메시지가 내 마음에 더 깊게 다가오면, 록을 버리고 타 장르를 좋아했지, 왜 내가 록만 이렇게 편애하면서, 시대에 뒤처진 똥고집이나 부리고 있겠는가. 록은 분명 시대가 끝난 장르이긴 하지만, 록 음악만이 전할 수 있는 특별한 호소가 분명히 있기 때문에, 내가 이토록 아직도 편애하고 있는 거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반평생을 반항이라는 가치에 간절함을 두고 살아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댄스 음악이 반항을 노래하는가? 그런 댄스 음악도 있기야 있겠지만, 댄스 음악의 스테레오타입을 떠올릴 때 제일 먼저 떠올리는 가치가, 누구라도 반항은 결코 아닐 것이다. 반면 록은 어떤가. 반박의 여지가 없지 않은가. 댄스 음악이 주로 전하는 메시지는 일탈과 유희지, 결코 혁명과 반항이 아니다. 일탈과 반항은 얼핏 닮은 것 같아도, 드러내는 범위나 깊이가 다르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혁명과 반항을 노래하지 않는 요즘 음악을 심심하다고 느끼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내 삶과 취향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다.

 


2019 코첼라 라인업

 

최근 전미 최대 음악 페스티벌인 코첼라(COACHELLA Vally Music And Art Festival)”2019년 라인업이 공개되었다. 나는 이 페스티벌의 라인업을 보고, 기대보다는 한숨을 뿜었다. 전미 최대 음악 페스티벌에 헤드라이너를 선 록 밴드가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코첼라의 헤드라이너라고 할 수 있는, 날짜별 라인업의 둘째 줄까지 차지한 팀은 총 23. 여기서 록 밴드는 테임 임팔라(Tame Impala)”“The 1975”, “위저(Weezer)”까지 딱 세 팀뿐이다. 록이라는 범위를 신스팝(Synthpop)까지 넓히면 처치스(CHVRCHES)”까지 네 팀이다. 하지만 The 1975나 처치스는 록보다는 댄스 음악의 공식에 더 충실한 팀들이므로 논외로 둬야할 것 같다. 실질적으로 록 밴드는 두 팀에 불과한 셈이다. 헤드라이너 전체를 놓고 보면, 대중음악의 여러 장르가 골고루 분포되어 꽤 바람직해 보인다. 이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들을 잘 살펴보면, (Hip)을 추구하는 것 같으면서도, 트렌드를 최우선으로 추구하고 있다는 게 한 눈에 보인다. 트렌드로 가득 찬 이 헤드라이너 명단을 살펴보면, 여기에 혁명과 반항의 메시지는 거의 실종된 것처럼 보인다. 1969년에 미국 뉴욕 주에서 펼쳐진 세계최대 음악 축제인 우드스톡 페스티벌(Woodstock Music & Art Fair)”에서, 평화를 갈망하는 혁명의 메시지가 가득 찼던 것과는 대비를 이룬다.

 

 

▲ 2019 코첼라 라인업. 블랙핑크 외에 한국 뮤지션으로, 혁오, 잠비나이, 두 팀이 참가한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헤드라이너 명단에 K-POP 걸그룹 블랙핑크(BLACKPINK)”가 있다는 점이다. 나는 사실 이 현상을 보고선 한국인으로서 긍지를 느끼기 보다는, 개탄스러운 마음이 앞섰다. 블랙핑크나 K-POP을 싫어해서라기 보단, 이 현상을 통해 이 시대에 널리 퍼진 메시지가, 혁명이나 반항과는 확실히 멀어졌다는 걸 확인사살 당하듯이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개탄스러운 마음은 시대나 세계에 대한 개탄이라기 보단, 나 자신에 대한 절망에서 우러나온 것에 더 가까웠다. 이 세상엔 아직도 혁명해야 하고 반항해야 할 것이 많이 남아있다고, 나는 솔직히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이 시대 전체를 아우르는 메시지는 확실히 그것들과는 멀어졌다. 나라는 사람이 점점 시대와 멀어지는 느낌을 받으며 고독이 몰려오면서 우러나온 개탄이었다. K-POP 스타 블랙핑크가 코첼라 헤드라이너로 서게 된 현상이 이를 명확하게 설명한다. 블랙핑크가 어떤 그룹인가. 힙합을 기반으로 댄스 음악을 하는 그룹이다. 댄스 음악의 메시지는 위에서 이미 설명했다. 그렇다면 힙합은? 올드스쿨 힙합은 확실히 록과 메시지 측면에서 공유하는 면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서 힙합이 어떻게 변했는가. 지나가는 초등학생 몇 명을 붙잡고 요즘 힙합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가 뭐냐고 물어봐라. 확실히 혁명이나 반항보다는, 자랑과 경쟁을 더 많이 떠올리지 않을까?

 

 

K-POP은 반항의 대척점

 

댄스 음악과 힙합이 전하는 메시지보다도, 블랙핑크는 K-POP 그룹이니, K-POP이 전하는 메시지를 살펴보는 게 더 중요할 것이다. K-POP을 놓고 보면, 확실히 혁명이나 반항과는 대척점에 위치한다. K-POP의 주요한 메시지는 순종과 노력이다. 가사와 사운드에서 그것을 직접적으로 전달하지는 않지만, K-POP 스타들의 삶이 그것을 증명한다. 음악이란 사운드도 중요하지만, 뮤지션의 삶이 음악을 완성하는 법이다. 누군가 한 뮤지션의 음악을 즐기게 되면, 그 음악을 부르거나 만든 뮤지션의 삶까지도 관심을 갖고 사랑하게 되는 건 당연하다. 따라서 청자는 그 뮤지션의 삶과 함께 음악을 해석하게 되고, 그렇게 음악은 뮤지션의 삶과 함께 완성에 이른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아이돌이라 불리는 걸그룹이나 보이그룹이 어떤 삶을 거쳐서 세상에 나오는지 익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삶은 확실히 혁명이나 반항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오히려 기성세대가 구축해놓은 시장 안에서, 기성세대가 요구하는 방식에 순종하고 노력하여 부와 명성을 얻는다. 이런 K-POP 스타들의 삶과 음악이 곁들여져, K-POP이 전하는 순종과 노력의 메시지가 완성되고, 그걸 청자들이 흡수하게 되는 셈이다.

 

 

▲ 블랙핑크 EP “SQUARE UP” 표지

아이돌 그룹도 가끔 자극적이고 강인한 이미지를 드러내려 혁명과 반항을 노래한다. 하지만 그것조차 기획사의 철저한 통제 아래에서, 딱 허락된 만큼의 반항만 발산하는 것에 불과하다. 록 밴드들이 발산하는 반항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렇다. 한국의 K-POP 스타들은 자신들이 드러내는 콘셉트나 복장, 얼굴, 몸매, 사생활, 심지어 말투까지, 기획사의 철저한 계획아래 선발되고 만들어진다. 그들은 자신들이 속한 기획사에 순종하면 할수록, 기획사로부터 더 많은 포상을 받을 수 있다. 이게 K-POP 시장이 돌아가는 원리다. 물론 기획사에서 이런 이미지를 타개하기 위해, 작사 작곡이 가능한 멤버를 팀에 집어넣기는 하지만, 이것마저도 기획사의 통제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이뤄진다. 결국, 아이돌은 기획사의 통제에 잘 순종해야 성공한다는 공식은 변함이 없다. K-POP이 아무리 우리나라 경제에 효자 효녀 노릇을 한다고 해서, 이런 진실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 K-POP에도 물론 자아가 뚜렷한 싱어송라이터들이 있지만, 세계인 대다수가 K-POP에 대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게 아이돌 그룹이라는 건 분명하다.

 

순종과 노력이 나쁜 건 아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상황에서 추구해야 마땅한 좋은 가치이므로, K-POP이 전하는 메시지는 오히려 좋은 메시지로 보는 게 마땅할 것이다. K-POP 스타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생사를 넘나드는, 인간으로선 도저히 견디기 힘든 수준의 노력을 거쳐 음악계 정상에 선 사람들이다. 존중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가 바뀌는 건 아니다. K-POP 스타가 되길 원하는 사람들은 이미, 자신들이 추종하는 그 스타들을 따라, 기꺼이 기획사의 충실한 종이 되길 갈망한다. 그렇게라도 막대한 명성과 돈을 얻고 싶어 한다. 그들에겐 자아를 드러내는 것보다도,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게 우선이다. 많은 사람들의 환호를 받을 수만 있다면, 음악 속 메시지를 고민하며 자아를 드러내는 건 조금 꺾어도 된다. 그들에겐 기획사에 순종하는 게 최우선이기 때문이다. 그게 K-POP 스타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이 최우선으로 여기는 가치다. 그리고 이런 K-POP이 세계적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심지어 미국의 음악 축제에서도 헤드라이너를 서는 현상을 보면, 이 세계가 그리고 이 시대가 무슨 메시지를 가장 갈망하는지 더 명확해진다.

 

 

▲ 마릴린 맨슨은 이 노래를 통해 “록은 죽었다”라고 선언했다.

록은 죽지 않는다. 다만 록의 시대는 죽었다.

 

반항과 혁명의 메시지가 음악에서 사라진 이 시대. 이 시대의 신호를 나쁘게만 해석할 수는 없다. 오히려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좋은 신호로 보는 게 옳다. 시대정신이 사라지고, 진정한 개인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의미다. 나 같은 개인주의자에겐 이런 메시지는 분명 환영할만한 것이다. 게다가 이 시대가 혁명보다는 유희를 더 갈망하게 되었다는 건, 록 음악이 유행하던 20세기에 비해, 혁명하고 고쳐야 할 것이 분명히 많이 줄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그만큼 시대가 안정되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소설가 장강명은 장편소설 표백에서,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의 노래 “Rock Is Dead”를 인용하며 이 세대를 향해 이런 진단을 내렸다. 록은 저항의 음악인데, 록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저항해야 할 대상에 이미 다 저항해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저항할 대상이 없어서 록이 죽어버렸다는 그런 진단이다. 록이 죽었다는 얘기가 종종 들려오는 요즘에 딱 어울리는 진단이다. 록은 2000년대 중반까지는 나름 흥했다. 그런데 그 때 록을 즐기던 사춘기 소녀 소년들도 이제는 슬슬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서, 록은 서서히 다른 장르에게 주도권을 넘기게 되었고, 이제는 록이 더 이상 대중음악의 주류가 아니다. 록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세대가 새로운 대중음악의 시대를 열어가게 되었다. 세대가 바뀌고, 시대는 분명 바뀌었다.

 

록이 대중음악의 주류였기에 대중음악의 메시지가 주로 혁명과 반항이었던 시대마저도 같이 막을 내렸다. 물론 요즘도 혁명과 반항을 노래하는 뮤지션들은 많다. 록뿐만 아니라, 다양한 장르에 일정 부분 분포하고 있다. 특히 사운드의 결은 달라도, “포크(Folk)” 계열 음악은 늘 록과 메시지 측면에서 같이 호흡했다. 우리나라에서 록은 크게 유행한 적이 별로 없지만, 운동권 사이에서 양희은의 목소리를 타고 아침이슬이 크게 유행한 것도, 포크 뮤지션이 쏟아진 것도, 시대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포크의 메시지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고, 록과 포크가 아니더라도 타 장르에서도, 다시 말하지만 이런 결을 가진 메시지가 전해진다. 그러나 과거와 지금의 차이를 설명하자면, 확실히 북미나 남미나 유럽이나 호주나 아시아나, 세계 어딜 뒤져봐도, 혁명과 반항의 메시지가 대중음악시장에서 주류를 차지하는 경우는 보기 힘들다는 거다. 애초에 이런 메시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메인이 아닌 인디 음악 시장이나 예전 음악에서 그런 걸 찾지, 요즘 메인스트림에서 그런 걸 찾지 않는다. 주류 대중음악시장에서도 혁명과 반항의 메시지가 넘쳐나던 20세기와는 확실히 달라진 현상이다.

 

 

▲ 블랙핑크 EP “SQUARE UP” 수록곡 “뚜두뚜두” 뮤직비디오. 이런 탁월한 노래 실력, 랩, 댄스, 패션까지 갖추고, YG 엔터테인먼트의 흥행이 보장된 프로듀싱까지 얹어졌으니, 안 좋아하는 게 더 이상할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이런 현상이 개탄스럽다. 시대가 잘못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에서 오는 개탄이 아니다. 그저 나라는 사람이 이런 안정적인 시대에 살아가면서도, 이런 시대조차 못 견디는 지독한 부적응자라는 걸 깨닫는 게 개탄스럽다. 주변 환경이나 사회, 혹은 시대에 적응했다면, 반항과 혁명은 필요 없을 테니까. 물론 시대가 변해도, 시대는 언제나 혁명가를 필요로 한다. 비록 그 역할의 중요성이 시대에 따라 늘거나 줄거나 그런 차이는 있을지라도. 어떤 시대라도 나 같은 부적응자의 비율은 늘 일정하게 존재한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록 음악은 죽지 말아야 한다. 아니, 죽이고 싶어도 못 죽는다. 재즈나 클래식이 그런 것처럼. 록만이 내뿜을 수 있는 특유의 반항적인 정서를 필요로 하는 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늘 존재할 것이고, 따라서 록 음악의 수요는 일정 수준 언제나 존재할 것이다. 그러므로 록은 죽지 않는다. 다만 이건 확실하다. 록의 시대는 죽었다. 록의 시대가 죽으면서, 혁명과 반항의 시대도 죽었다. 이 세대는 혁명과 반항을 부담스럽고 고리타분한 것으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2019년 세계 대중음악이 드러내는 시대상의 현주소다. 솔직히 다르게 말하자면, 혁명과 반항에 체념해버린 세대라고나 할까. 그게 아니라면 21세기에 들어서서, 20세기에 비해 반항과 혁명의 필요성이 정말 줄어든 게 맞는 걸까. 진실은 하늘만이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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