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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아이유(IU) – 꽃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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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6: 아이유(IU) – 꽃갈피


[ 옛것에 대한 경외를 품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사람은 영원 속을 산다 ]



■ 황야의 이리


“영원을 추구하는 자, 꼰대가 되지 말지어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황야의 이리”를 읽고 나서, 그 책의 교훈을 깊이 생각한 후에, 머릿속에서 번개처럼 울려 퍼진 한 문장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하리 할러는 재즈를 음악 같지도 않은 음악이라 생각하고, 재즈가 울려 퍼지는 댄스파티라거나, 재즈를 틀어주는 축음기 등, 그 당시 최신 문물들을 모두 경멸하는 인물이다. 그런 하리 할러가 어느 날, 자신의 환상 속에서 자신이 존경하는 음악가인 모차르트를 만나게 된다. 그런데 모차르트는 축음기를 만지작거리며 즐겁고 흡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리 할러는 그런 모차르트를 이해할 수 없었다. 축음기는 음악 같지도 않은 음악인 재즈나 시끄럽게 틀어대는 최신 문물 중에서도 가장 쓰레기 같은 물건이거늘. 축음기를 가지고 놀며 희희낙락하는 모차르트라니, 하리 할러가 존경하던 모차르트의 모습이 전혀 아니었다. 하리 할러는 그런 모차르트의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하며, 왜 그런 쓰레기 같은 물건을 가지고 노느냐고 모차르트를 나무란다. 하리 할러의 격분한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차르트는 신나게 축음기를 가지고 논다.


하리 할러는 자신이 영원한 것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믿으며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가 모차르트의 음악이나 괴테의 문학과 같은 옛것들을 동경하는 것은 그가 영원을 추구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는 최신 문물에는 배타적이었다. 이 소설이 발표된 1927년엔 재즈가 최신 음악이고, 축음기가 최신 기기였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재즈는 이제 모차르트와 같은 고전 음악의 반열에 들었고, 축음기를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지금은 어떤 시대인가. 재즈와 축음기의 시대는 진즉에 다 지나가고, 록이 등장했으며, LP와 CD가 등장했고, 이젠 록의 시대도 지나가고, LP와 CD는 디지털 음원에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 시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을 지금 21세기의 사람들이 읽으면, 왜 재즈 같은 고급 음악을 저토록 경멸하는지, 축음기가 도대체 뭐가 나쁘다는 건지, 하리 할러를 이해하는 데에 조금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재즈를 EDM으로 바꿔서 대입하고, 축음기를 스마트폰으로 바꿔서 대입하면, 이 소설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수월할 것이다. 이들 사이에는 “한 시대를 풍미한 최신 문물”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기 때문이다.


아이유 음반 얘기하는데, 시작부터 갑자기 왜 헤르만 헤세 소설 얘기를 꺼내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반응도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이유는 아이유가 주연으로 나온 드라마 “프로듀사”에서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을 읽었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다. 이번에 소개할 아이유의 음반 “꽃갈피”가 헤르만 헤세의 소설 “황야의 이리”가 주는 교훈과 일맥상통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 "꽃갈피" 앨범 표지 촬영 현장을 담은 영상



■ 최신 문물의 상징, 전설들을 향해 당돌하게 나아가다


다시 헤르만 헤세 소설 “황야의 이리”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하리 할러는 옛 시대의 위대한 인물들을 존경하는 것이 영원을 추구하는 것이라 믿었는데, 알고 보니 모차르트는 하리 할러가 생각하는 것처럼 옛 시대의 위인이 아니었다. 모차르트 또한, 그가 살았던 시대에선 최신 문물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리 할러는 축음기를 가지고 노는 모차르트에게 환멸을 느낀 것이었다. 영원을 추구하는 것이 옛것들에게만 경외심을 가지고 숭상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소설 “황야의 이리”에선 이토록 충격적인 비유법으로 전달하고 있었다. 결국 이 소설이 내게 주는 교훈이 바로 이것이었다.


아이유는 자신의 앨범 “꽃갈피”에서 마치 옛것들을 숭상하는 하리 할러처럼, 옛 뮤지션들에 대한 경외심을 잔뜩 품고, 그들의 노래를 수록했다. CD의 사망선고가 내려진 2014년에, LP와 CD가 대한민국 주류 음악 시장을 차지하던 그 시대의 노래들을 다시 소환한 것이다. 하지만 아이유는 어쩌면 하리 할러보다 훨씬 현명했는지도 모른다. 최신 문물을 배척하는 하리 할러와는 다르게, 아이유는 최신 문물의 상징과도 같은 자신의 특성을 영민하게 이용하여, 옛 노래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다. 아이유는 단 티끌만큼의 주저함도 없이, 옛 노래들에 최신 문물을 잔뜩 배운 자신의 창법을 입힌다. 아이유와 함께한 편곡자들과 연주자들은 옛 노래들이 최신 문물의 상징과 같은 아이유의 목소리와 잘 어울리도록 만드는 데에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이 앨범의 수록곡들을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일단 이 앨범에 실린 노래들의 원곡 가수들을 살펴보면 참으로 경이롭다. 조덕배, 김광석, 김완선, 이문세, 김창완, 김현식, 클론. 여기 열거된 인물들 모두 한 명, 한 명, 이름을 언급할 때,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그런 이름들이다. 하리 할러가 모차르트를 숭상하듯, 어떤 이들에겐 저 가수들이 숭상해 마지않는 그런 위인들과 같은 가수일 것이다. 그에 비해 아이유는 아직 현재를 살아가는 최신 문물의 상징일 뿐이지 않은가. 제 아무리 아이유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겐 우러러보게 되는 톱스타일지라도, 아이유는 아직 전설이라 불리기엔 한참 설익은 느낌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아이유는 무모한 도전을 감행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유는 저 “전설”들의 앞으로 당돌하게 나아간다. 전설들의 앞으로 나아가는 그녀의 걸음은 당차고 여유롭다. 너무 여유로워서, 그녀의 도전이 전혀 무모해 보이지 않는다. 결과는 역시나 성공적이었고, 대중은 그녀의 노래에 열광했다. 당연한 결과였다.

 

 

 

▲ 1번 트랙 "나의 옛날이야기" 공식 뮤직비디오



■ 아이유의 목소리로 새 옷을 입은 노래들


1번 트랙 “나의 옛날이야기”는 기타 연주가 잔잔하고도 비장하게 깔리며, 탁성으로 자신의 감성을 담담하게 풀어내는 조덕배의 원곡과는 꽤 분위기가 다르다. 비장했던 원곡의 악기 편성은 피아노를 중심으로 좀 더 세련되고 예쁘게 변했다. 아이유의 목소리는 담담함보단 좀 더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애절함을 뿜어낸다. 그러나 원곡 특유의 섬세하고 애잔한 느낌은 그대로 가져왔다. 원곡의 느낌과 아이유의 목소리가 아름답게 공존한다. 2번 트랙 “꽃”은 김광석 2집에 실린 노래를 재해석한 곡이다. 김광석의 원곡은 클래식 가곡 같은 느낌이 강했는데, 아이유의 노래에서는 좀 더 화려하고 다채로운 편곡이 더해졌다. 플라멩코 풍의 기타 연주가 중심이 되었고, 그 뒤로 현악 오케스트라 연주가 화려하고 웅장하게 울려 펴진다. 여기서 아이유의 목소리는 비장함을 내뿜으며 웅장한 악기 연주들을 능숙하게 조율한다.


3번 트랙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는 신스팝의 느낌이 강하게 나는 김완선의 원곡에 비해, 재즈의 유려하고 세련된 느낌이 조금 가미되어 색다른 느낌을 준다. 그러나 정통 재즈가 아니라, 현대적 일렉트로닉 용법을 조금 섞어서 독창적인 장르의 음악으로 탄생했다. 기계적 특수효과가 더해진 아이유의 목소리가 아카펠라처럼 울려 퍼지는 것이 톡톡 튀는 매력을 선사한다. 4번 트랙 “사랑이 지나가면”은 앞선 트랙들에 비해, 원곡의 느낌을 가장 많이 살린 곡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아이유의 노래가 이문세의 노래보다 좀 더 역동적으로 변했다. 어쨌든 4번 트랙은 원곡과 같은 정통 발라드 음악으로 표현되었다. 정통 발라드에서 매력이 두드러지는 아이유의 역량을 확인하기에 더없이 좋은 트랙이다.



■ 깊고 진한 감성으로 원곡을 여유롭게 감싼다.


4번 트랙처럼, 아이유의 감성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곡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6번 트랙 “여름밤의 꿈”이다. 이 곡은 이 앨범 전체에서 가장 단순한 편곡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다른 게 아니라, 사용된 악기가 피아노 딱 한 대뿐이다. 걸걸하고 육중한 음색을 가진 김현식의 원곡이 아이유의 맑은 미성으로 어찌 표현될까, 원곡을 아는 사람들은 의구심을 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아이유는 “나의 옛날이야기”에서도 그랬듯이, 이 노래를 완벽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에 성공한다.


피아노 단 한 대만 사용한 편곡은 이런 아이유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원곡도 사실 그다지 역동적인 곡 구조를 가진 노래가 아닌데, 안 그래도 얌전한 원곡을 더 얌전하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화려하고 웅장한 악기 연주가 뒷받침되어, 성량도 크게 질러주고, 고음도 드라마틱하게 펼쳐져야 아무래도 가수 입장에서 역량 뽐내기가 수월한데, 이렇게 되면 가수 입장에선 자신의 가창 기술을 뽐내기에 제한이 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이유는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좀 더 촘촘하고 섬세하게 만들어, 얌전한 노래를 전혀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이런 건 감성이 받쳐주지 않으면 결코 불가능한 건데, 그만큼 아이유의 감성이 깊고 진하기 때문에 이런 것도 가능한 것이다. 아이유의 목소리에 실린 깊고 진한 감성에 속수무책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게 만드는 놀라운 곡이다.

  

 

 

▲ "꽃갈피" 앨범 티저, 3번 트랙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를 잠깐 감상할 수 있다.



■ 영원을 추구한다는 건, 옛것만 추구하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


선배 가수 김창완과의 협업으로 화제가 된 5번 트랙 “너의 의미”는 이 앨범이 가지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편곡에 있어서도 딱히 일부러 21세기의 음악처럼 느껴지게 하려는 시도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20세기로 회귀한 것 같은 편곡이 이색적이다. 여기에 조심스레 살포시 얹어지는 아이유의 목소리가 정겹다. 아이유가 한참 곡을 이끌다가, “대선배” 김창완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김창완과 아이유가 한 소절씩 사이좋게 주고받고, 마침내 그 둘의 목소리가 어우러지는 부분에선, 20세기와 21세기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 같은 묘한 감상을 자아낸다. 이 노래 안에선 “요즘 노래는 다 들을 게 없어.”라고 말하는 꼰대 선배도 없고, “옛날 노래는 다 촌스러워서 못 듣겠어.”라고 말하는 까칠한 후배도 없다. 이런 기성세대와 신세대의 만남은 7번 트랙 “꿍따리 샤바라”에서도 이어진다. 바쁘고 힘찬 분위기의 댄스곡이었던 클론의 원곡과는 다르게, 하와이 풍의 나른한 우쿨렐레 연주가 돋보이는 편곡으로 변신한 점이 흥미롭다. 랩 대신 느린 독백으로 대체된 클론의 목소리 또한 재밌다.


마침내 이 앨범의 모든 곡을 살펴본 이 지점에서, 다시 소설 “황야의 이리”의 교훈을 떠올린다. 영원을 추구한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영원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옛것에 대한 경외심을 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왜냐면 예전부터 지금까지 오랫동안 살아남은 것일수록 앞으로도 영원히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건, 도무지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원을 추구함에 있어서 옛것을 숭상하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일 텐데, 그렇다면 왜 우리는 영원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옛것을 숭상하고 경외하면서도, 최신 문물에게 배타적인 태도를 가지면 안 되는 걸까? 영원의 진정한 뜻은 옛날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원은 오히려 예전에도 존재했고, 앞으로도 존재하게 될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앞으로도 존재하는 것”도 예전에 존재했던 것만큼이나 중요하다는 얘기다.


하리 할러가 21세기에 재즈가 고급 음악으로 칭송받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이처럼 우리는 하리 할러처럼 지금의 문물 중에 어느 것이 후대 사람들에게 위대한 것으로 칭송 받게 될 것인지 모른다. 우리 중 그것을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 최신 문물을 함부로 배척하는 것은 영원을 추구하는 사람으로서 어리석은 일이다. 물론 최신 문물에 지나치게 물들어가는 것도 경계해야겠지만, 영원을 추구하는 사람은 옛것을 숭상함과 동시에, 적어도 최신 문물을 배척하지는 말아야 하는 것이다. 오히려 최신 문물을 부지런히 배우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이 영원을 추구하는 사람의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 5번 트랙 "너의 의미" 공식 뮤직비디오



■ 전설을 동경하는 자는 전설을 닮아간다


옛 전설들의 노래를 최신 문물의 상징과도 같은 여가수가 재해석했을 때, 얼마나 아름다운 결과물이 탄생했는지를 느껴보라. 이 앨범 “꽃갈피”에는 영원의 미학이 오롯이 담겨있다. 이 앨범은 21세기의 시대적 상징으로 떠오른 여가수가 20세기의 노래들을 불러, 그 시대의 문화와 감성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에 집중했다. 이 점이 바로 다른 리메이크 앨범들은 가지지 못한 “꽃갈피”가 가진 차별성일 것이다. 이러한 “꽃갈피”의 상징적 차별성은 가수 아이유에게 영원성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그녀는 이 앨범 이후로, 자신의 앨범에 자신이 작사, 작곡한 노래의 비중을 높이고, 직접 프로듀서가 되기도 하는 등, 자신의 아티스트적인 면모를 더욱 적극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런 그녀의 시도는 항상 성공을 거두었다. 전설을 동경하는 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전설을 닮아가는 법이니까.


그녀는 최근에 낸 정규 4집 앨범 “Palette”를 통해, 자신의 다짐을 더욱 굳게 다진 바 있다. 1번 트랙 “이 지금”에서는 미래보다 빛나는 순간은 다름 아닌 지금 이 순간이라는 메시지를 경쾌하게 던진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니, 지금에 충실하면 자신의 인생이 더욱 빛날 것이라며, 잡히지 않는 미래 때문에 지금의 소중한 순간을 놓치지 말자고 말한다. 한 편, 타이틀곡인 2번 트랙 “팔레트”에선 지난 세월의 자신을 돌아보고, 그 땐 참 좋았다며 과거의 자신의 모습에 흡족함을 표현한다. 그러나 그녀는 과거에만 머무르지는 않는다. 그녀는 오히려 스물다섯이 된 자신의 모습도 썩 나쁘지는 않다며, 앞으로도 이런 날이 계속되면 좋겠다고 노래한다. 이처럼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유일한 연결고리는 바로 이 지금, 이 순간이다. 과거나 미래보다 지금에 충실하며 살겠다는 그녀의 다짐은 그녀를 계속해서 영원을 향하는 길로 인도할 것이다. 이제 그녀는 영원을 향한 또 다른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트랙리스트


1. 나의 옛날이야기

2. 꽃

3.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4. 사랑이 지나가면

5. 너의 의미 (feat. 김창완)

6. 여름밤의 꿈

7. 꿍따리 샤바라 (feat. 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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