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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초록불꽃소년단(Green Flame Boys) – GREEN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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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4: 초록불꽃소년단(Green Flame Boys) – GREENROOM

 

[ 소심한 소년의 우렁찬 진심이 묻어나는 뜨거운 고백 ]

 

 

■ 끔찍한 혼종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

 

겉으로는 소심해 보이는 사람이 알고 보면, 속으로는 그 누구보다 우렁찬 외침을 품고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가? 여기, 그 사실을 음악으로 믿게 만드는 밴드가 있다. 2017년 6월 17일, 자신들의 첫 번째 정규앨범을 발표한 펑크 록 밴드 “초록불꽃소년단”의 이야기다.

 

초록불꽃소년단, 그들은 첫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다. 일단 페이트쨩이 그려진 다키마쿠라를 안고 다니는 푸짐한 형님들을 연상시키는 싱글의 표지부터가 심상치 않고, 막상 음악을 까보니, 표지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드는 뜨겁고 과격한 정통 펑크 록이 튀어나와 더욱 수상하다. “나는 그 애가 좋아. 어떻게 하면 그 애랑 섹스를 할까.”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는 가사는 정말이지 골 때린다. 아무래도 이 밴드는 제정신이 아닌 거 같다!

 

그들이 발표한 첫 번째 정규 앨범은 그런 정신 나간 초록불꽃소년단의 음악세계를 더욱 충실히 반영한다. 역시 이 인간들은 제정신이 아니다! 그야말로 여자들이 싫어하는 남자의 표본 같은 그런 음악이다. 위에서 말한 푸짐한 형님들이나 부를 것 같은 괴상하고 변태적인 가사에, 여자들이 딱 싫어하는 크라잉넛, 노브레인 형식의 막나가는 펑크 록 사운드라니, 요즘말로 “끔찍한 혼종”의 탄생이다. 아아, 그런데, 난 왜 이리 이 밴드가 좋은 걸까.

 

휠체어타고 여자들의 번호를 따거나, 한국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 순수 한국어로만 여자 번호를 따거나, 스님처럼 분장하고 여자 번호를 따는 등, 여자들이 정말 번호를 안 줄만한 상황을 일부러 만들고 여자들 번호를 당당하게 몇 십 개를 따내는 영상을 만드는 남자들이 있다. 실제로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유튜버고, 유튜브에서 영상도 볼 수 있다! (독자들에겐 미안하지만, 영상은 알아서 찾아보길 바란다. 아무래도 음악 소개를 해야 하다 보니, 음악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 초록불꽃소년단의 대표곡인 "체리보이"부터 먼저 들어보자.

 

▲ "소심한 소년의 울음소리가 들리십니까. 소심한 소년의 기타소리가 들리십니까."라고 묻는 첫 소절이 인상적인 이들의 또 다른 대표곡 "그저 귀여운 츠보미였는 걸" 라이브영상

내가 저 남자들 얘기를 왜 했냐면, 이런 얘기를 하고 싶어서다. 뭐든지 당당하면 멋있어 보인다는 말이 있다. 저 남자들은 화술도 화술이지만, 그 멋진 화술도 당당함이 없다면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여자들은 그 남자들의 당당함에 번호를 내주고 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런 끔찍한 혼종이 이토록 멋있어 보이는 건, 초록불꽃소년단이 자신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에 당당하다는 점이다. 그들 스스로도 잘 알 것이다. 이런 끔찍한 혼종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 수는 없다는 것을. 하지만 그들은 의외의 선전을 하고 있다. 그들은 이미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고, 그 증거로 온라인으로 판매한 정규 1집 CD는 1차 완판을 기록했다. 끔찍한 혼종이라고 부를만한 그들의 색깔은 그들의 당당한 특색으로 청자들에게 각인되었다. 아아, 역시 당당하면 끔찍한 혼종도 이토록 멋진 특색으로 보일 수 있는 거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여자들에게도 은근히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역시 남자의 매력은 당당함이다.

 

 

■ 멍청하고 솔직한 나의 러브송

 

이제부터 이 앨범의 구성을 본격적으로 살펴보며, 이 끔찍한 혼종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을 하나하나 파헤쳐보자. 이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두 가지 가장 큰 주제는 사랑과 청춘이다. 그리고 그 두 가지를 이어주는 하나의 키워드는 진심이다. 그들의 음악에는 가식이 전혀 없다. 가식 없이 뜨겁고 직진적인 그들의 연주는 괴상하고 변태적인 가사들에게 독특한 호소력을 부여한다.

 

그들이 부르는 사랑노래들을 살펴보자. 2번 트랙 “L.O.V.E. 밤페이군”은 일본 만화 “오! 나의 여신님”에 나오는 캐릭터를 소재로 가사를 쓴 노래다. 만든 사람의 실수로 감정이 생겨버린 전투 로봇에 관한 얘기인데, 그 로봇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투쟁하겠다는 노래다. 시작부터 바쁘게 연주되는 드럼 소리가 청자들의 귀를 사로잡고, 쫀득한 베이스라인과 파워풀한 기타 연주가 능글맞게 끼어든다. 목이 터져라 “밤페이군”을 외치는 메인 보컬과 뒤따라오는 코러스가 흥겨움을 더한다. “좋아하는 그 애를 위해, 내 목숨도 상관없어요.”라는 가사에 딱 맞는 흥겨우면서도 치열한 사운드가 곡의 주제를 온몸으로 실감하게 만든다.

 

그 뒤에 있는 트랙으로 가면 소심한 소년 3부작을 만날 수 있다. 내가 명명한 소심한 소년 3부작은 3번 트랙 “동정★”과 4번 트랙 “중학생” 그리고, 7번 트랙 “그저 귀여운 츠보미였는걸”을 말한다. “동정★”은 동정 주제에 당당하게 자기는 동정이 좋다며 목이 터져라 외쳐대는 노래다. 처음부터 끝까지 전력으로 질주하는 뜨거운 사운드가 동정이 좋다고 외쳐대는 가사에 강제적인 설득력을 부여하는 재밌는 곡이다. 4번 트랙 “중학생”은 자신이 평소 눈여겨보던 여자애가 자신에게 장난으로 좋아한다고 말하는 걸 듣고 충격 받은 한 남학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꿈에서 그 여자애를 보고 몽정을 하는 이야기도 담고 있는데, 공격적인 사운드가 가사 속 화자의 자괴감을 잘 표현하고 있다.

 

 

▲ 2번 트랙 “L.O.V.E. 밤페이군” 라이브 영상

7번 트랙은 앞서 발표한 싱글의 표제로 쓰일 정도로 초록불꽃소년단을 대표하는 곡이라고 할 수 있다. 반장에게 PMP를 빌려주고 나서 반장에게 거기에 야동이 들어있다는 걸 들켰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애한테 그 소문이 닿으면 어떻게 하냐며 걱정하는 소심한 남학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힘이 넘치면서도 서정성을 살린 연주가 스토리텔링에 힘을 실어준다. 이 곡은 5분 30초가 넘어가는 긴 시간을 자랑하는 곡인데, 빈틈없는 사운드와 구성이 긴 시간을 전혀 지루하지 않게 만든다.

 

그 다음으로는 소심한 소년의 우렁찬 진심이 묻어나는 뜨거운 고백 3부작이 이어진다. 8번 트랙 “오예! 나를 꼭 껴안아줄래”와 10번 트랙 “닿아라, 나의 사랑 노래 너의 마음까지 부디 닿을 수 있기를”과 마지막 14번 트랙 “체리보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앞서 소개한 트랙들처럼 뜨겁고 힘찬 사운드는 여기 고백 3부작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이 밴드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가식이 전혀 없는 솔직한 가사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사랑 고백 노래들에서 가사의 매력이 가장 잘 드러난다. 8번 트랙에 “그 아이의 귀여운 가슴에 나의 얼굴을 파묻고 싶어.”라거나, 10번 트랙 “귀엽고 야한 그 애의 얼굴, 너무나도 사랑스럽다.”라거나, 14번 트랙에서는 저 위에서 언급한 “어떻게 하면 그 애랑 섹스를 할까.”라는 가사가 나온다. 정말이지 골 때릴 정도로 솔직한 가사고, 솔직함이 도를 지나쳐 너무 막나가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이 밴드는 결국엔 그들 특유의 당당함과 뜨거운 사운드로 그 모든 것을 “멍청하고 솔직한 나의 러브송”으로 멋지게 승화시킨다.

 

 

■ 겉으로 소심하다고 해서 속까지 소심하지는 않다

 

이렇게 유쾌하게 자신들의 사랑을 고백하는 그들도 나름의 진지한 면모가 있다. 물론 사랑 노래를 할 때도 진지하기는 했지만, 그들의 진지함을 한층 더 잘 드러내는 트랙들이 있다. 그들이 노래하는 청춘을 들어보자. 처음엔 느린 기타 솔로로 시작해서 갑자기 폭발하듯 빨라지는 곡 1번 트랙 “은행나무 소년들”은 앞서 발표한 싱글에서는 엿볼 수 없었던, 초록불꽃소년단의 사뭇 진지한 서정성을 만날 수 있다. 영어 표현을 일부러 한글로 어설프게 적어놓은 5번 트랙 “아돈워너다이”는 장난스러워 보이는 제목과는 달리, 그들의 가장 처절한 감성과 가장 치열한 인생의 싸움을 노래한다. 거칠게 긁어대는 기타 소리가 곡의 시작에 비장함을 깔아놓는데, 곧 깔리는 기타의 초고음이 곡의 진행에 가공할 폭발력을 부여한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아. 하지만 우리 인간의 마음은 너무나 쉽게 부숴져.”라는 가사와 폭발적인 밴드 연주가 어우러져 청자들에게 깊은 호소력을 안겨준다.

 

비장하고 진지한 곡들 외에도, 사랑 고백하는 곡들에 사용했던 사운드로 청춘들에게 뜨겁고 진심어린 위로를 전하는 곡들도 앨범에 수록되었다. 6번 트랙 “Eastern Youth”를 듣다보면 딱 봐도 청춘을 노래하기엔 좀 연식이 있어 보이시는 분들이, 왜 그렇게 청춘을 목이 터져라 외치는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확실히 그들은 6번 트랙으로 그들이 청춘을 노래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그들의 폭발력 가득한 연주로 호소력 있게 전달한다. 연주는 웅장하고 폭발적인 것에 비해, 보컬은 비교적 담담하게 가사를 풀어낸다. 치열한 사운드 위에 얹어진 담담한 보컬이 치열한 삶 위에 살포시 얹어지는 아름다운 청춘을 잘 표현하고 있다. 이 노래를 듣다 보면, 그 어떤 시련이 와도 청춘을 결코 잃지 않겠다는 화자의 굳은 다짐이 느껴져 가슴이 나도 모르게 뜨거워진다.

 

 

▲ 8번 트랙 "오예! 나를 꼬옥 껴안아줄래" 뮤직비디오

 

▲ 11번 트랙 “보라색 하늘” 뮤직비디오

이런 초록불꽃소년단 특유의 호소력은 9번 트랙 “Plz Boys Don’t Cry”와 11번 트랙 “보라색 하늘” 그리고, 12번 트랙 “소년”과 13번 트랙 “Song For Young” 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특히 “술을 먹고 주차장에서 자도, 남의 차를 타다 사고가 나도, 언제나 내 곁엔 네가 있으니까, 나는 이렇게 노래해.”라는 9번 트랙의 가사나, “모두가 떠나버린 이 방, 나 홀로 자위를 하고 있네.”라는 11번 트랙의 가사는, 파격의 수준을 넘어 황당하기까지 한데, 그만큼 그들은 청춘이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마음 가장 깊숙한 곳까지 위로하려는 열망으로 가득하다는 뜻일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그렇듯이 일단은 그들 스스로의 청춘을 위로하기 위해 이런 곡들을 썼겠지만, 듣다 보면 정말 그들의 호소력에 속수무책으로 넘어가게 되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초록불꽃소년단의 음악은 현실에선 다소 무력하고 소심해 보이는 청춘들에게도 뜨겁고 간절한 열정이 있음을 일깨워준다.

 

 

■ 펑크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다

 

이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펑크(Punk)의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펑크 록은 처음 시작부터 아주 격정적이었다. 섹스 피스톨즈와 클래쉬는 사회를 향해 날이 잔뜩 선 살벌한 비판들을 음악을 통해 표출했다. 그에 비해 몇 년이 흐른 다음에 등장한 그린데이나 오프스프링 같은 네오 펑크라 불리는 펑크의 후배들은, 사회보다는 그들 자신의 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섹스 피스톨즈의 창립 멤버인 존 라이든은 그들을 애송이들이라고 부르면서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어쩌면 네오 펑크 밴드들, 그들이 옳은 것일 수도 있다. 펑크의 시작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그들의 시작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성역들과 우상들을 쳐부수는 것부터 시작했다. 기성세대의 도덕 표준과, 정치, 연예, 심지어 종교까지도 모두 펑크의 적이었다. 그렇다면, 네오 펑크로 정의된 그들이 어떤 면에서 옳은 것일까? 펑크 록 밴드라면 사회 비판에 가장 앞장서야 하고, 자기 얘기는 자제해야 한다는 펑크의 성역을 깨버리고, 새로운 펑크를 재탄생시켰다는 점일 것이다. 성역이 존재하는 펑크는 펑크가 아니고, 변화하지 않는 펑크는 펑크가 아니라는 것을 그들이 이미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초록불꽃소년단도 마찬가지다. 우선 대한민국에서 처음 펑크를 유행시킨 크라잉넛과 노브레인 같은 선배 밴드들을 보면, 그들은 마치 한국의 클래쉬와 섹스 피스톨즈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사회 비판에 가장 앞장서는 음악을 했고,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초록불꽃소년단은 저 두 선배 펑크 밴드와는 꽤 차이를 보인다. 초록불꽃소년단은 사회라는 거시적인 것보다 청춘과 사랑이라는 좀 더 내밀하고 미시적인 것들을 노래한다. 그러면 크라잉넛과 노브레인의 펑크만 펑크고, 초록불꽃소년단의 펑크는 펑크가 아닌 걸까? 역시 초록불꽃소년단도 펑크이며, 그것도 펑크 정신에 아주 투철한 펑크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 앨범 발표 당시 초록불꽃소년단. 좌측부터 양정현(베이스), 고석진(드럼), 조기철(보컬), 윤동현(기타). 2018년 11월 현재는 드러머 자리에 "이우진"이 들어감.

그들은 펑크가 어떤 식으로 사람의 마음에 호소력을 전달하는지 잘 알고 있고, 그것을 영민하게 이용하는 밴드다. 펑크의 호소력은 남들이 쉽게 잘 꺼내지 않는 말들을 거침없이 날것 그대로 표출하는 것에 있다. 그렇게 펑크는 신세대들에게 반골정신을 심었고, 그렇게 신세대들은 기성세대와 과격하게 맞서 싸울 힘을 펑크를 통해 얻었다. 초록불꽃소년단은 펑크 특유의 호소력을 사랑과 청춘의 이름으로 사용했고, 그것은 훌륭한 결과물로 탄생했다. 역시 펑크에는 성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 특유의 “끔찍한 혼종”으로 증명했다. 초록불꽃소년단이 다소 침체되어 있던 대한민국 펑크 록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을 것이라고 기대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트랙리스트

 

1. 은행나무 소년들

2. L.O.V.E 밤페이군

3. 동정★

4. 중학생

5. 아돈워너다이

6. Eastern Youth

7. 그저 귀여운 츠보미였는 걸

8. 오예! 나를 꼭 껴안아줄래

9. Plz Boys Don't cry

10. 닿아라, 나의 사랑 노래 너의 마음까지 부디 닿을 수 있기를

11. 보라색 하늘

12. 소년

13. Song For Young

14. 체리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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