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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김광석(Kim Kwang-seok) - 다시부르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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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2: 김광석(Kim Kwang-seok) - 다시부르기 I

 

우리가 그의 노래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이유

 

■ 그들의 인생은 곧 노래였다

그 어떤 현학적이고 화려한 수식어보다, 듣는 이의 가슴으로 이해해야 더 와 닿는 그런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이 있다. 그들의 노래는 마치 기술을 뛰어넘어 진정 가슴으로 부르는 것만 같다. 아니 어쩌면 가슴으로 부른다는 표현은 그들에게 무척 상투적이고 진부할 수도 있겠다. 그들은 그들의 인생 그 자체가 노래다. 그들은 그들이 부르는 노래가 곧 그들의 삶이 되고, 그들의 삶이 곧 노래가 되는 그런 가수들이었다. 어쩌면 가수라는 호칭조차도 그들에겐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노래를 부른다는 일은 가수라는 직업적 호칭을 떠나서도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을 테니까. 그들의 노래를 듣는 이들도 그들의 노래가 노래를 넘어서 마치 우리 가슴에 직접적으로 말을 건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테니까.

 

내겐 최근에 알게 된 에이미 와인하우스가 그런 가수로 느껴졌고, 훨씬 전에는 프레디 머큐리가 그런 가수로 느껴졌다. 이 둘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들은 그들의 전성기를 좀 더 누릴 수 있었을 텐데도, 부득이한 사정으로 우리의 기대보다 훨씬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정말 안타깝게도, 그리고 정말 고맙게도, 우리나라에도 이런 가수가 한 명 있었다. 그의 이름은 “김광석”이다.

 

■ 록 음악이 아니었지만

내가 김광석을 처음 알게 된 것은 고등학생 때였다. 이 글 전에 나인 인치 네일스의 앨범에 대한 글을 쓰면서도 밝힌 얘기지만, 그 당시의 나는 무척이나 감성적으로 세상에 대한 분노와 자기혐오로 똘똘 뭉쳐서, 서슬파란 날이 잔뜩 선 사람이었다. 그 시절에 내가 듣는 음악들은 주로 나인 인치 네일스를 필두로, 너바나, 섹스 피스톨즈 등의 과격한 록 음악들이었다. 내 플레이 리스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워낙 강력하고 과격한 록 음악으로만 채워져, 다른 음악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음반리뷰”라는 책을 통해서 김광석의 이름을 접하게 되었다. 사실 그 전부터 김광석이라는 가수의 이름을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인터넷으로 알고 지내던 형이 김광석의 노래를 소재로 단편 만화를 그린 적이 있기 때문에, 김광석이라는 이름이 전혀 생소한 것은 아니었다. 그 만화의 느낌이 꽤 애잔하고 여운이 남았기 때문에 김광석이라는 이름이 내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 있기는 했었다. 그 만화가 김광석의 노래를 본격적으로 접하게 된 계기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내게 어떤 도움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 만화가 아니었다면, 그 책에서 김광석의 이름을 접하고도 한 번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테니까. 아무튼 나는 그 책에서 김광석의 이름을 접하고 나서, 도대체 김광석이란 어떤 가수이기에 그 만화 그린 형도 그렇고, 이 책에서도 그렇고, 이토록 극찬을 하는 걸까. 그게 참 궁금했다.

 

 

▲ 김광석

그 형이 그린 만화 덕분인지, 록 음악이 아닌데도 김광석의 노래를 듣기 시작한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그 형이 그린 만화가 내게 주었던 그 애잔하고 여운 깊은 느낌이란, 내가 오랫동안 갈망하던 것이었던 것 같다. 내가 직접 접하게 된 김광석의 노래는 충격 그 자체였다. 아니, 충격이라는 단어조차도 너무 작위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나는 그의 노래에 자연스럽게 흡수되었다. 그의 목소리는 곧 내 목소리였고, 그가 내뿜는 감성이 곧 내 감성이었다. 그 때 내가 처음으로 들었던 김광석의 음반은 “다시 부르기 I”이었다. 그 형이 그린 만화에서 나온 노래가 “사랑했지만”이었고, 책에서 그 노래가 그 앨범에 수록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위에서 언급한 김광석 노래를 소재로 그린 만화를 보려면 여기를 클릭

 

■ 다이아몬드가 된 거친 원석 같았던 김광석의 노래들

이 앨범에 대한 객관적인 설명은 오히려 이 앨범에 대한 참된 평가를 내리는 데에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최소한의 객관적 설명만을 하려고 한다. 지금부터 소개하려는 앨범 “다시 부르기 I”은 1993년에 김광석이 발표한 앨범이다. 이 앨범은 김광석이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라는 민중 포크 노래패부터 시작해서 친구들끼리 결성한 발라드 그룹 동물원, 그리고 자신의 솔로 정규 앨범 1집, 2집을 모두 거쳐 온 자신의 음악적 커리어를 정리한 앨범이라고 간단히 정의할 수 있다. 일종의 베스트 앨범이나 다름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단순한 베스트 앨범과는 개념이 조금 다르다. 이 앨범에는 김광석 자신이 불렀던 노래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과 그에 따른 변화들이 담겨있다. 일단 조동익이라는 훌륭한 편곡자로 인해 더욱 김광석의 목소리에 맞게 세련되게 변한 편곡이 그 첫 번째 변화일 것이고, 두 번째는 이게 더 중요한 사실일 텐데, 김광석의 발전한 가창력으로 더욱 깊어진 호소력이다.

 

김광석은 솔로 앨범 1집, 2집 때만 하더라도, “다시 부르기 I”에서 들을 수 있는 것처럼 그렇게 안정적인 호흡이나 음정을 구사하지는 못했다. 물론 김광석은 애초에 그런 걸로 승부를 보는 가수가 아니기 때문에, 그 때의 노래는 그 나름대로 날것의 매력이 물씬 풍기는 것이 사실이다. 어쨌든 김광석 본인도 자신이 가수로써의 기술적 역량이 이전보다 발전했다는 것을 의식했는지, 자신의 노래를 다시 녹음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던 것 같다. 그 결과물은 성공적이었다. 청자들은 그의 노래를 들으며, 불안한 호흡과 음정으로 인해 몰입에 방해를 받는 일이 더 적어져, 그의 노래를 통해 좀 더 호소력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 우리의 삶에 가장 깊게 침투하는 노래

이 앨범의 가장 큰 장점은 역시 트랙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솔직히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베스트 앨범보다는 이 앨범이 차라리 김광석 입문작으로 더 알맞다고 말하고 싶다. 그만큼 트랙리스트가 알차다. 이 앨범에 실려 있는 노래들은 모두 김광석 노래 중에서도 애청 리스트에 빠지지 않고 올라오는 곡들이 대부분이고, 그리고 무엇보다 김광석 사후에 발표된 베스트 앨범을 보면, 이 앨범의 트랙리스트에서 곡을 상당수 가져왔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 김광석 콘서트 실황 영상 중에서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는 장면

특히 대한민국 성인 남성이라면, 1번 트랙 “이등병의 편지”에서부터 이 앨범이 가지는 의의에 대해 격한 공감을 할지도 모른다. 고등학생 시절에 접해도 그 호소력이 절절하게 느껴질 정도였는데, 군 입대를 앞두고 있거나, 군을 이미 제대한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절절하게 와 닿을까. 고등학생 시절에 이 노래를 들으면서, 군 입대를 앞둔 사람의 심정이 어떤 것인지 상상하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그의 노래를 들으면서 쉽게 그런 것들을 상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역시, 김광석의 목소리 덕분이었다.

 

그의 창법이 가진 가장 큰 매력은 정직함과 담백함이라고 할 수 있다. 작위적으로 꾸미려고 하지 않는 그의 솔직한 창법이, 노래를 노래라고 느껴지게 하기 보다는 하나의 대화처럼 느껴지게 한다. 이런 김광석의 창법은 마치 김광석이 내 옆에 앉아 “내가 군 입대하기 전에는 이런 기분이었어.”라며 자신의 이야기를 조곤조곤 해 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노래가 노래라면 그것은 음악으로 그저 흘려들을 수 있겠지만, 노래가 더 이상 노래가 아닌 내게 직접적으로 하는 말처럼 느껴지면, 그건 더 이상 거부할 수가 없다. 귀담아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김광석은 훈련소만 마치고 공익으로 군 복무를 했다고 한다.)

 

김광석은 노래를 노래가 아닌 말하듯이 부른다. 김광석은 이런 자신의 창법을 통해서 우리 삶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것들에 관해 얘기한다. 6번 트랙 “슬픈 노래”에서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맞이하는 소소한 슬픔들에 관해 얘기한다. 김광석이 여기서 드러내는 목소리는 마치 우리가 일상적으로 맞이하지만, 너무 일상적이라서 어쩔 수 없이 그저 그렇게 흘려보내는 우리의 감성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듯하다.

 

 11번 트랙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에서는 오랫동안 접어두었던 이루고자 하는 꿈에 대한 열망을 노래한다. 김광석의 목소리에서 이렇게 열정적이고 격정적인 감성이 뿜어져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색다른 매력의 트랙이다. 김광석의 목소리가 가진 매력이 담백함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라서 더욱 반갑다. 뜨거운 감성을 내뿜는 김광석의 목소리는 9번 트랙 “그루터기”와 13번 트랙 “광야에서”와 같은 애국을 노래하는 트랙들에서도 드러난다. 애국을 통해 더 나은 사회를 이룩하고자 하는 거룩한 김광석의 열망이 이런 트랙들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 2번 트랙 “사랑이라는 이유로”

■ 사랑의 아픔과 기쁨을 모두 공평하게 담백한 목소리로 표현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사랑만큼 우리를 아프게 하고, 사랑만큼 우리를 기쁘게 만드는 것이 또 무엇이 있단 말인가?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특히 연애에 관해서는 노래의 소재로써 가장 많이 쓰이고 있다. 다른 주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는 압도적인 수를 자랑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노래가 사랑노래로써 두드러지고 찬사를 이끌어 내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닌데, 그것도 그럴 것이 그 수가 워낙에 많기 때문이다. 워낙에 많은 사랑노래들 때문에 지치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랑노래가 이미 그렇게 많은데, 사랑노래를 가지고 특별한 걸 찾는다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한 일이 될 수 있을까 싶다.

 

하지만 김광석의 사랑노래는 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게 빛이 난다. 김광석의 목소리는 그 어떤 감정이든 솔직하고 담백하게 내뱉는다. 이런 김광석의 특성이 사랑 노래를 부를 때 더욱 두드러진다. 그것이 바로, 김광석의 사랑노래가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많은 사랑노래들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빛나는 이유일 것이다. 어떤 가수는 사랑노래를 부르면서 눈에 띄기 위해, 자신의 창법에 필요 이상의 지나친 기교를 섞는 경우가 있다. 이런 가수들이 넘쳐나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그런 가수들이 넘쳐날수록 사랑노래에 대한 우리의 머릿속 형상은 점점 기괴하고 요란하게 변해간다. 그럴수록 사랑노래가 오히려 사랑의 느낌을 가장 못 표현하는 노래가 되어버리는 역설이 발생하게 된다. 이럴 때가 바로, 김광석의 담백하고 솔직한 창법으로 불리는 사랑노래가 가장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이룰 수 없는 짝사랑에 슬픔을 느끼는 순간을 표현한 3번 트랙 “사랑했지만”부터, 오랫동안 가슴에만 담아두고 있었던 감정을 수줍게 용기 내 밖으로 꺼내는 순간을 묘사한 5번 트랙 “너에게”와, 사랑하는 연인에게 상처 주었던 순간을 후회하며 자신을 성찰하는 10번 트랙 “기다려줘”, 이별의 가장 아프고 처절한 순간을 묘사한 7번 트랙 “거리에서”, 이별 후의 회한의 감정을 절절한 목소리로 표현한 4번 트랙 “그날들”, 지난 사랑에 대한 회한의 감정을 애잔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풀어놓는 2번 트랙 “사랑이라는 이유로”까지, 김광석의 목소리는 사랑의 모든 순간을 공평하게 담백한 목소리로 풀어낸다. 사랑에 기뻐서 필요 이상의 들뜬 목소리가 되지도 않고, 사랑에 슬퍼서 필요 이상으로 고성을 내지르며 울부짖지도 않는 김광석의 목소리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느끼는 소소한 사랑의 기쁨과 슬픔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김광석의 목소리로 불리는 사랑노래가 반가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때론 어떤 가수들의 사랑노래를 듣다보면, 사랑이라는 게 뭐가 그리 특별하고 유난스러워서, 저리들 화려하게만 포장을 하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들이 부르는 가사도 그렇고, 그들이 가사를 표현하는 방법도 그렇고, 너무 유난스러워서 나같이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사람에게는 사랑이 도무지 허락조차 되지 않는 느낌이 들어버리는 것이다. 자기혐오로 가득 찬 고등학생 시절의 나에게 김광석의 담백한 사랑노래가 온몸을 전율하게 만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시절의 나는 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에게는 사랑이라는 것이 도무지 허락되지 않을 것이라는 망상을 좀 했었다. 그런데 김광석이 부르는 사랑노래를 듣고 있으면 왠지, 이런 쓸모없는 나 같은 인간에게도 사랑의 기쁨과 슬픔이 모두 허락되는 것 같은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다.

 

 

▲ 김광석 콘서트 실황 영상 중에서 "사랑했지만"을 부르는 장면, 노래를 부르고 난 후에 곡에 대한 뒷얘기를 늘어놓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 목숨처럼 사랑했던 가수

김광석의 목소리에는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의 깊은 내면을 꿰뚫는 힘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김광석의 노래를 사랑하고 그리워한다. 우리는 모두 특별할 것도 없는, 보잘것없고, 평범한 사람들이니까. 남들에게 특별하다, 남다르다는 말을 자주 듣는 사람들에게도, 내면 깊은 곳에는 자신을 보잘것없이 여기는 감성이 있을 테니까.

 

나에게 김광석은 목숨처럼 사랑했던 가수였다. 그의 노래만큼 내가 삶에서 마주하는 감정들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예술 작품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노래를 듣지 못하게 되는 것은 내게, 내 삶 전체를 부정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그가 노래한 것처럼 내 삶을 섬세하게 표현해줄 수 없었다. 나처럼 유난스럽게 김광석을 좋아하지는 않더라도, 김광석의 노래를 좋아하는 모든 사람의 감정이 이와 비슷할 것이다. 꾸밈없이 가장 솔직한 모습으로 대면해도 아무 부담이 없는 그런 절친한 친구 같은 목소리. 김광석은 그런 목소리로 우리에게 노래하고 대화를 건네는 가수였다. 이 앨범은 내가 김광석의 노래를 목숨처럼 사랑하게 만든 첫 번째 앨범이었다. 그래서 내 인생에서 이 앨범이 가지는 의미는 특별하다.

 


트랙리스트

1. 이등병의 편지

2. 사랑이라는 이유로

3. 사랑했지만

4. 그날들

5. 너에게

6. 슬픈 노래

7. 거리에서

8. 말하지 못한 내사랑

9. 그루터기

10. 기다려줘

11.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12. 그대 웃음소리

13. 광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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