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생명반 에세이

긴난보이즈(銀杏BOYZ, Ging Nang Boyz) - 君と僕の第三次世界大戦的恋愛革命(너와 나의 제3차 세계대전 연애혁명)

반응형

 

인생명반 에세이 33: 

긴난보이즈(銀杏BOYZ, Ging Nang Boyz) - 

第三次世界大戦的恋愛革命(너와 나의 제3차 세계대전 연애혁명)

 

[ 서툴러서 더욱 아름다운 청춘 ]

 

 

■ 은행나무 소년들

 

때는 2018217, 내가 평소 즐겨듣는 밴드 초록불꽃소년단의 멤버 조기철씨의 생일이었다. 자신의 생일을 맞아, 그 다음날 18일에 망원동 클럽 샤프(Club SHARP)”에서 긴난보이즈(銀杏BOYZ)” 블루레이 상영회를 한다는 소식이 페이스북을 통해 전해졌다. 긴난보이즈라면, 초록불꽃소년단 정규 1집 앨범 1번 트랙에 실린 노래 은행나무 소년들에 잠깐 언급되었던 그 밴드 아니던가. 사실 그것 외엔 긴난보이즈에 대해 알고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왠지 예감이 좋았다. 내가 델리스파이스(Deli Spice)”의 노래 항상 엔진을 켜둘께를 통해 스미스(The Smiths)”를 알고 인생밴드가 된 것처럼. 그 자리에 그 노래 작사를 맡은 조기철 본인도 참석한다니, 그와 함께 긴난보이즈의 영상을 본다면 분명 긴난보이즈에 대해 많은 걸 알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페이스북으로 그에게 상영회에 가도 되냐고 물었고, 그로부터 와도 된다는 답변을 받았다.

 

조기철 씨는 나를 처음에 어색하게 대하는 것 같았는데, 상영회의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면서, 나에게 저번 초록불꽃소년단 정규앨범 리뷰 써준 것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내가 다 민망해질 정도로 깊은 감사를 표하셨다. 나는 조기철 씨 옆에 앉아서 그가 상영회에 상영되는 라이브 영상에 대해 여러 해설을 해주는 걸 들었다. 그 해설엔 당연히 그 영상의 주인공인 긴난보이즈에 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솔직한 감상을 얘기하자면, 그 라이브 영상은 확실히 초심자나 입문자용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철저히 긴난보이즈 코어팬들을 위한 영상 같아 보여서, 내게는 좀 부담스러운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게, 긴난보이즈 이 사람들이 영상물을 제작한답시고, 펑크 공연장의 현장 느낌을 한껏 살리기 위한 의도라면서, 자기네들이 연주하는 곡의 멜로디라인이 다 뭉개질 만큼 조악한 레코딩을 담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상영회가 참 재밌었다. 다른 게 아니라, 그 영상을 보며 꿈꾸는 표정을 짓는 조기철 씨의 모습을 보는 게 재밌었기 때문이다.

 

 

▲ 초록불꽃소년단 앨범 “GREENROOM”  1번 트랙 “은행나무 소년들”

그 영상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긴난보이즈의 보컬인 미네타 카즈노부(峯田和伸)”가 팔을 쭉쭉 뻗어가면서 눈물 콧물 땀 침까지, 자기 몸에 있는 수분은 전부 다 뽑아내려는 기세로 절창하는 모습이었다. 진짜 과장을 좀 보태자면, 오줌까지 지릴 기세였다. 극한의 감정이입이 아니면 내뿜을 수 없는 극한의 무대매너였다. 물론 몸에서 온갖 수분을 다 뿜어내는 그런 모습이 고와보일 리가 없다. 오히려 더러워 보이는 게 정상일 텐데, 미네타 카즈노부가 무대 위에서 그러고 있으니, 이상하게 멋있어 보였다. 저렇게 노래에 깊게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는 게, 노래를 위해 자신의 말끔한 모습마저 박살내버리는, 노래에 모든 걸 다 바친 진정한 뮤지션처럼 보였다. 그 모습이 마치 조기철 씨가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모습과 닮아보였다. 그래서 나는 옆에 앉은 조기철 씨에게 말했다. “저분 노래하는 모습이 기철 씨랑 닮았어요.” 그러자 조기철 씨는 이렇게 답했다. “어휴, 그건 저에게 있어서 최고의 칭찬입니다.” 저렇게 눈물 콧물 땀 침 다 뿜어가며 더러운 꼴을 한 사람을 닮았다 그러는데, 그걸 놓고 최고의 칭찬이라니. 역시 이 사람은 변태가 틀림없다. 그래서 내가 이 사람의 팬인 거지만.

 

 

 긴난보이즈를 본격적으로 만나다

 

나는 그 때, 클럽에서 하는 상영회치곤 분위기가 좀 썰렁해 보이기도 하고, 기철 씨 생일 파티 겸 하는 상영회라 그러니까 계속 빈손으로 앉아있기도 좀 어색했다. 그래서 맥주를 500ml 40캔을 사들고 왔다. 5만원 어치였다. 내게는 좀 부담되는 가격이었지만, 초록불꽃소년단에 대한 애정이 내게 그 돈을 쓰게 만들었다. 내가 맥주를 사 들고 오자,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조기철 씨 포함 그 안에 있던 여러 사람들이 내가 사온 맥주를 즐겁게 마시는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또 그 계기로 초록불꽃소년단 멤버들과 어색함을 깨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상영회가 끝나가면서도 내가 사온 술이 많이 줄지 않았단 것이었다. 많이 마실 줄 알고 많이 사온 것이었는데, 그 다음날이 아무래도 월요일이다 보니, 아무리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도 다음날 준비하려고 조절하며 마실 게 분명했다. 내가 그것까진 생각을 못했던 게 실수였다. 상영회가 끝나는 분위기가 보이자 조급한 마음을 갖게 된 나는, 내가 사 온 맥주, 나라도 많이 마시자 싶어서, 내 주량도 생각하지 않고 빠르게 마구 마셔댔다. 물론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거기 남겨져있던 소주를 같이 마신 게 화근이었다. 게다가 나는 그 때까지 술 때문에 고생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어서, 내 주량에 대한 자만심도 있었다. 그래서 더 무리했다. 상영회가 끝나자마자, 나는 그 자리에서 바로 쓰러졌다. 멀어지는 내 의식 사이로, 내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의 걱정 섞인 목소리들이 들렸다.

 

 

▲ 이 앨범 출시 당시 긴난보이즈(銀杏 BOYZ) 멤버들. 미네타 카즈노부(峯田和伸, 보컬), 친 나카무라(チン 中村, 기타), 아비코 신야(安孫子真哉, 베이스), 무라이 마모루(村井守, 드럼)

더 이상은, 자세히 얘기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중요한 내용도 아니고. 무엇보다 내가 내 흑역사를 적는 게 싫다. 그래도 그 때의 심각성을 간단하게라도 설명하자면, 이게 내가 술로 만든 최악의 흑역사가 되었다. 문자 그대로, 나는 목숨의 위협까지 느꼈다. 어머니의 피나는 노력으로 회사엔 겨우 출근했지만, 출근하고 나서도 술병 때문에 제대로 업무를 볼 수 없었고, 결국 조퇴했다. 조퇴는 기분이 좋았지만, 그 기분이 내 몸 상태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조기철 씨에겐 페이스북으로 간단하게나마 사과를 전했다. 그분은 흔쾌히 사과를 받아주셨다. 내 술병은 거의 2주 동안 지속되었다. 나는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지금은 잘 마시지만. 그런 폭동을 벌이고서, 술병이 거의 나을 때 즈음, 긴난보이즈의 음악을 더 깊게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그들이 어떤 노래를 하기에, 미네타 카즈노부를 포함한 다른 멤버들이 그렇게 극한의 무대매너를 뽐내는지 알고 싶었다. 그렇게 조악한 음질 속에서도, 긴난보이즈의 무대매너는 그들의 음악을 다시 찾아보게 만들기에 충분히 강렬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일본 아마존을 통해 다짜고짜 구입한 앨범이 第三次世界大戦的恋愛革命(너와 나의 제3차 세계대전 연애혁명)”ドアー(도어)” 이렇게 두 CD였다. 긴난보이즈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초록불꽃소년단이 자주 커버하는 “BABY BABY”가 이들의 노래라는 것 외에는. 사실 일본에선 슈퍼밴드지만, 국내에선 인지도가 제로인 밴드라, 한국어로 된 정보를 접하는 게 힘들었다. 하지만 초록불꽃소년단이 그토록 사랑하는 밴드라면, 이런 식으로 CD를 사도 돈이 전혀 아깝지 않겠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실현되었다. 두 앨범 중에 특히 第三次世界大戦的恋愛革命(너와 나의 제3차 세계대전 연애혁명)”쪽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이 글에선 이 앨범을 소개해보려 한다.

  

  

▲ 2번 트랙  “SKOOL KILL” 라이브영상.

 

 청춘 펑크

 

일본에는 청춘 펑크(靑春PUNK)”라는 말이 있다. 청춘펑크의 음악적 정의가 뭐냐고 묻는다면, 답하기가 애매하긴 하다. 그러나 엄연히 이 단어를 음악 장르로 규정해, 밴드가 자진해서 전면에 내세우는 경우가 일본에는 꽤 많다. 이 밴드들의 특징을 잘 조합해보면, 강렬한 펑크 음색에 청춘의 뜨겁고 아련한 감성을 섞는다는 공통점이 드러난다. 사실 펑크(Punk)”라는 장르를 잘 들여다보면, 이보다 더 청춘에 가까운 장르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둘은 많은 부분을 공유한다. 음악 작법이나 연주 측면에서 장성한 성인에 비유할 수 있는 메탈(Metal)”에 비하면, 펑크는 지극히 서툴고 아무렇게나 갈겨대는 것처럼 들리는 게 꼭 덜 자란 애송이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그런 덜 자란 애송이 같은 느낌이 펑크의 가장 큰 매력 아니겠는가. “무식하면 용감하다.”라는 말이 있는데, 때론 무식해서 용감한 사람들이 세상에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다. 이것저것 다 따지고 재는 건 용기가 아니니까. 펑크는 그런 순수하고 뜨거운 용기를 떠올리게 하는 면이 분명히 있다. 아직 세상을 덜 겪었기 때문에, 그래서 더 순수하고, 그래서 더 혈기 넘치고, 그래서 더 가슴이 뛰는 면이 있다. 청춘만이 뿜어낼 수 있는 특유의 에너지가 분명히 존재하고, 펑크는 그런 에너지를 분출하기에 딱 맞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긴난보이즈는 청춘펑크 특유의 에너지를 훌륭하게 발산하는 것으로 유명한, 청춘펑크의 대표적인 밴드다. 긴난보이즈는 고잉스테디(GOING STEADY)”라는 밴드를 전신으로 두고 있는 밴드로서, 고잉스테디에서 미네타 카즈노부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모두 탈퇴하고, 미네타 카즈노부를 중심으로 새로운 멤버들을 영입해 꾸린 밴드다. 고잉스테디는 나름 팬층이 두터웠던 소위 잘 나가는 밴드였다. 인기에 힘입어 정규앨범도 두 장이나 냈었다. 그러다 멤버들이 모두 나가고 긴난보이즈가 새로 탄생한 것이었다. 그런데 고잉스테디 시절 발표해둔 싱글들 중에 고잉스테디 정규앨범에 실리지 않았던 곡들이 있었는데, 미네타 카즈노부는 그것들이 그런 식으로 남겨지는 게 아쉬웠는지, 긴난보이즈로서 2005년에 처음 발표하는 정규앨범인 第三次世界大戦的恋愛革命(너와 나의 제3차 세계대전 연애혁명)에서, 고잉스테디 시절 발표한 싱글들을 몇 개 집어넣었다. 물론 고잉스테디 시절 느낌을 살짝 빼고, 긴난보이즈 느낌으로 다시 만들어서 말이다이 앨범은 2집 ドアー”와 함께 동시에 발매 되긴 했지만두 앨범의 색은 확연히 다르다필자는 멜로디라인이 좀 더 부드럽게 뽑힌 1집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무엇보다 “BABY BABY”가 수록된 앨범이기도 하고물론 “BABY BABY”는 고잉스테디 시절 이미 발표한 노래이긴 하지만나에겐 긴난보이즈의 강렬한 첫인상이 된 곡이다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긴난보이즈 정규 1집 앨범 第三次世界大戦的恋愛革命(너와 나의 제3차 세계대전 연애혁명)”에 대해 알아보자.

  

 

▲ 4번 트랙 “トラッシュ(트래시)”

 

 청춘의 추악함까지 모두 솔직하게 표현하는 앨범

 

이 앨범은 청춘펑크의 대표 밴드다운 매력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앨범이다. 원래 고잉스테디부터가 청춘펑크 밴드로 유명한 밴드였으니, 고잉스테디의 이런 면을 잘 계승한 셈이다. 이 앨범을 듣고 있자면, 전설의 일본 펑크 밴드 블루 하츠(THE BLUE HEARTS)”의 노래 한 소절이 떠오른다

 

パンク・ロックがきだ 中途ハンパな気持ちじゃなくて ああ やさしいからきなんだ パンク・ロックがきだ

 

나 펑크록을 좋아해. 장난 아니고 진지하다니까. 아아 상냥하니까 좋아한다고. 나 펑크록을 좋아해.”

 

거칠고 날카로운 음색이 난무하는 펑크록이 어떻게 상냥하게 느껴질 수 있을까. 그런데 블루 하츠의 이런 말도 안 되는 가사가, 이 앨범을 들으면 믿을 수 있게 된다. 오히려 거칠고 날카롭기 때문에 더 상냥하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다는 걸, 이 앨범은 알려준다. 사실 나는 이 앨범에 대한 글을 쓰는 게 조심스럽고 두렵다. 내가 좋아서 앨범 감상문을 쓰는 것이긴 하지만, 이런 감상문을 남기는 것조차도 때론 해당 앨범과 뮤지션에 대한 결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는 거다. 오히려 나의 글로 인해, 그들의 음악과 앨범의 가치가 훼손되는 건 아닐지 걱정된다는 거다. 특히 이렇게 극한의 감정을 끌어내는 음악일 경우에는 더욱 그런 느낌이 강해진다. 그만큼 이 앨범은 들을 때마다 많은 걸 떠올리게 만들고, 복잡한 심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만큼 이 앨범이 청자에게 전하는 호소가 깊다는 얘기다. 이 앨범은 겉으로는 격렬한 펑크 음색으로 무장하고 있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것이 드러내는 감정의 깊이가 남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다.

 

2번 트랙 “SKOOL KILL” 얘기부터 먼저 해야겠다. 사실 이 노래 가사를 보면, 이런 걸 소재로 써도 되나 싶은 생각을 넘어서서, 내가 이런 노래를 들어도 되나 싶은 회의까지 들 정도다. 한 소년이 자기가 다니는 학교에서 한 소녀를 알고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보아하니 짝사랑인 거 같다. 그 소녀를 열렬히 짝사랑하는데도, 용기도 없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쩔쩔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은 안 내려졌는데 열렬한 마음만 앞서다 보니, 결국 이 소심한 소년은 그 소녀의 물건을 훔치는 추태를 벌이고 만다. 그러면서 자기는 스토커나 그런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고 비겁하게 항변한다. 가사만 보면 이런 추잡한 가사가 또 있을까 싶다. 그런데 이 곡에서 흘러나오는 격렬한 펑크 음색과 미네타 카즈노부의 절창과 함께 가사를 음미하면, 가사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물론 이 소년의 행각을 옹호해선 안 되겠지만, 긴난보이즈가 뿜어내는 음색은, 이 소년의 온갖 복잡한 심정을 다 노출한다. 이 소년은 겉으론 항변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소녀에게 제대로 다가가지도 못하고 비겁한 일을 벌인 자신에 대한 자기혐오와, 그 지독한 자기혐오 속에서도 견디기 힘들 정도로 들끓는 소녀를 향한 연심이 흐르고 있다. 거친 펑크 음색이 긴난보이즈에겐 호소의 수단으로 쓰인 셈이다.

 

 

▲ 2번 트랙 “SKOOL KILL” PV. 사실 말만 PV지 PV 같지도 않다. 해당 노래는 배경에 깔린 오디오에서만 희미하게 흘러나와 잘 들리지도 않는다. 아무래도 노래 홍보보단 개그(?)에 더 집중한 모습이다.

3번 트랙 あのミリでもちょっかいかけたら(그 애한테 1밀리라도 다가가면 전부 죽일 테다)”2번 트랙과 같은 용법이 쓰였다. 제목부터 살벌한 이 노래는, 한 소년이 자신이 좋아하는 소녀가 먼 곳으로 이사 가는 것에 대해 슬퍼하는 내용이다. 이 노래 속 소녀는 아무래도 어머니가 새 남편을 맞아들인 거 같은데, 그 소녀의 새 아버지가 될 사람 때문에 소녀가 이사를 가도록 결정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 소녀를 사랑해서 그녀와 헤어지고 싶지 않은 소년은 이 사실에 지극히 분노해, 그녀의 새 아버지가 될 사람을 죽이고 싶다고 외치는 내용이다. 아무리 그녀가 좋아도 그렇지, 헤어지기 싫다고 사람을 죽여버리고 싶다니, 도가 좀 지나치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긴난보이즈는 역시 특유의 음색으로 호소하고, 노래에 설득력을 더한다. 4번 트랙 トラッシュ(트래시)”는 가사만 보면 애인을 원하는 소년의 평범한 넋두리처럼 보이지만, 제목과 이 트랙까지 닿는 과정을 잘 들여다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위에 트랙들이 모두 같은 화자는 아니겠지만, 왠지 가사와 곡 분위기에서 저 위에 노래들 속에 등장하는 화자와 비슷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가? 왠지 긴난보이즈는 이 노래를 통해, 저 화자들이 자기 자신이 쓰레기(Trash)라는 걸 이미 잘 깨닫고 있음을 말하려는 것 같다.

 

 

 우리는 모두 서툰 청춘을 지나왔기 때문에

 

청춘은 정말로 아름답기만 한 것일까. 아니 오히려, 사람들이 청춘은 아름답다며 말버릇처럼 얘기하는 건 추억 보정일 수도 있다. 청춘은 오히려 추악하다. 많은 것에 대해 서툴기 때문에, 서툰 만큼 추악한 언행도 많이 벌이는 게 청춘이다. 세상을 사는 게 서툴기 때문에 방황도 그만큼 많이 할 수밖에 없는 게 청춘이다. 철 좀 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청춘이 다 지난 사람에게 청춘처럼 사는 것은 사회가 용납하지 않는다. 물론 청춘이라고 모든 추태와 악행을 다 용서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청춘에 대해 세상이 좀 더 관대한 건 사실이다. 누구나 청춘이라서 겪을 수밖에 없는 서툰 인생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청춘의 가치에 대해 극찬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청춘만 겪을 수 있는 설렘과 열정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비록 그 설렘과 열정이 서툰 인생에 둘러싸여 있더라도, 오히려 서툴고 낯설기 때문에 겪을 수 있었던 설렘과 열정이라는 것도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그 모든 서툰 인생에도 불구하고 청춘을 최고의 가치라 부르는 걸 마다하지 않는다. 긴난보이즈의 이런 추잡한 가사들이 아름다운 노래가 될 수 있는 건, 청춘의 서툰 모습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긴난보이즈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청춘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을 넘어서서, 진짜 지금도 청춘으로 살고 있는 느낌을 준다.

 

 

▲ 9번 트랙 “BABY BABY”

그렇다고 이 앨범이 청춘의 서툰 모습이나 추악한 모습만 노출하는 건 아니다. 청춘이기 때문에 더욱 아름다운 순간들도 함께 노출한다. 그래서 이 앨범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7번 트랙 もしもくならば(만약 네가 울면)”에선, 앞으로 펼쳐질 견디기 힘들 시련들은 전혀 따지지 않고, 마땅히 사랑하는 사람의 아픔을 나눠 갖겠다는 굳은 의지가 보인다. 9번 트랙 “BABY BABY”는 뚜렷하고 부드러운 멜로디라인과 강렬한 펑크 사운드가 격렬히 대치를 이루는, 긴난보이즈의 확고한 대표곡이다. 11번 트랙 “YOU & I VS. THE WORLD”는 세상에서 마주할 온갖 시련 앞에서도 굴하지도 않고, 자신들의 사랑을 지켜내겠다는 다짐을, “BABY BABY”(Pop)” 용법으로 탁월하게 표현한 명곡이다. 8번 트랙 けて性春(달려나가자 성춘)”은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하겠다는 용암처럼 뜨거운 고백이다. 지칠 줄 모르고 격렬한 음색을 뿜어내는 악기들과 미네타 카즈노부의 절창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뜨거운 마음을 호소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아니, 오히려 가끔은 그게 너무 넘쳐서 부담스럽기도 하다. 그런데 약간 부담스러운 그런 느낌이 오히려 이 곡의 매력이다. 

 

여기서 재밌는 건 이 노래의 제목인데, 이건 일본식 말장난이다. 일본어로 청춘(靑春)”성춘(性春)”은 발음이 세이슌으로 같다. 섹스는 이 앨범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소재 중 하나인데, 이런 말장난이 청춘이라 불리는 시기가 성적으로 가장 꽃피는 시기라고 말하는 것 같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특히 수컷들은 말이다, 발정이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에는 자신의 성욕을 제대로 조절하기가 힘들다. 머릿속으로 섹스하고 싶다는 생각을 숨 쉬는 것보다 많이 하게 된다. 그런데 육체와 생각은 같이 갈 때가 많다. 사실 생각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육체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다. 청춘 특유의 통제 불능 뜨거운 사랑은, 성욕과 연관되어 우러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청춘의 사랑은 그들의 주체하기 힘든 격렬한 성욕을 많이 닮아있다. 그래서 어른들은 성욕이 줄어든 만큼 사랑에 목숨 걸기를 주저한다. 이런 걸 보면 가벼운 말장난처럼 보이던 게, 탁월한 통찰이 담긴 깊은 해학으로 느껴진다. 이 노래는 고잉스테디 시절 노래지만, 이 앨범에선 특별히 쥬디 앤 마리(JUDY AND MARY)”의 보컬 유키(YUKI)”가 귀여운 목소리로 피처링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 12번 트랙 “若者 たち(젊은이들)” 라이브영상. 위에서 언급한 상영회에서 나온 영상의 음질이 딱 이런 느낌이었다.

  

 청춘이 끝나도 청춘은 여전히 소중하다

 

이 앨범은 제목과는 달리, 청춘의 연애 얘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1번 트랙 日本人(일본인)”은 일본에 살고 있는 자신들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찰을 해학적으로 담았다. 6번 트랙 なんて悪意ちた平和なんだろう(이 얼마나 악의에 찬 평화일까)”에서는, 평화를 누리는 선진국들의 역사 이면엔 온갖 추악함이 넘실댄다는 불편한 진실을 해학으로 담았다. 12번 트랙 若者たち(젊은이들)”에서는 버블경제가 무너지고 일본에 드리운 어둠을, 일본의 젊은이들이 일어나 물리쳐야 한다는 격렬한 의지를 외친다. 어른들에 비해 아직 두려운 일을 덜 겪은 청춘들인지라 그래서 더 용감한, 사회를 향한 청춘들의 강렬한 외침인 것이다.

 

하지만 청춘은 영원할 수 없다. 누구나 청춘이 끝나는 시기를 피할 수 없다. 슬프게도, 이 앨범은 청춘이 끝남을 예감하는 사람들의 슬픈 초상까지 담았다. 10번 트랙 漂流教室(표류교실)”은 고등학교 졸업식 현장을 담은 곡이고, 13번 트랙 青春時代(청춘시대)”는 멋지다고 생각했던 청춘의 사람들이, 청춘을 지나면서 현실에 찌든 모습이 된 안타까움을 노래한다. 그 사람들의 청춘이 얼마나 멋졌는지 회상하던 사람이, 지금 현실과 대조하며 자신의 청춘이 이미 끝난 걸 깨닫는다. 무엇보다 내가 여기서 뽑는 최고의 곡은 마지막 트랙 東京(도쿄)”.

  

이 곡은 느리고 단조로운 구성을 가진 곡임에도, 9분 가까이 되는 대곡이다. 사실 13번 트랙 青春時代(청춘시대)”도 비슷한 구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728초라는 엄청난 길이를 자랑한다. 그런데 13번도 그렇고, 14번도 그렇고, 들으면서 지루하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빨리 끝나는 기분에 아쉬울 정도다. 그도 그럴 것이, 청춘에 대한 회상은 아무리 시간을 많이 쏟아도 모자란 것일 텐데, 이 두 노래가 청춘에 대한 향수를 깊게 자극하기 때문이다. 청춘이란 누구에게나 마음의 고향일 테니까. 고향이 지겨운 사람이 있겠는가.

 

특히 14번 트랙 東京(도쿄)”는 바쁜 생활 속에 문득, 자신이 잊고 지냈던 가장 뜨거운 시절의 사랑을 회상하는 분위기라서 더욱 애절하다. 특히 이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다면, 그 애절함은 배가 될 것이다. 지난 트랙들의 그 뜨거운 고백들이 한 순간에 東京えてゆく(도쿄의 하늘에 사라져간)”. 그 사랑의 고백들이 회색빛 빌딩숲속에 흩어지는 모습을 보는 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일본어가 부족한 나도, 이 노래에서 가장 애절한 부분인 후렴은 왜 이리 또렷하게 이해할 수 있는지, 마침 미네타 카즈노부가 노래도 참 잘 한다. 느린 곡에서도 온갖 힘을 다 쥐어짜듯 격렬하게 연주하는 친 나카무라(チン中村)”의 기타연주는 또 어떠한가. 이 사람들이 듣는 사람을 아주 미네타 카즈노부처럼 눈물 콧물 다 짜내려고 작정한 거 같다. 노래가 끝나고 희미하게 들려오는 “BABY BABY”의 우스운 음색마저도 애절하게 들린다.

 

 

▲ 14번 트랙 “東京(도쿄)”

이 앨범과 친해지고 나니, 미네타 카즈노부가 눈물 콧물 땀 침 다 흘려가며 더러운 모습으로 노래하는 게, 왜 그리 멋져보였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모습을 통해, 청춘이란 그런 더러운 모습을 하고서라도 지키고 싶을 만큼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초록불꽃소년단이 긴난보이즈를 들으며 함께 흘렸었던 눈물들이라고 노래한 것과, 위에서 언급했던 블루 하츠의 노래 パンク・ロック(펑크록)”의 한 구절을 다시 떠올려본다. 긴난보이즈의 노래는 얼핏 들어보면 미네타 카즈노부의 무대처럼 웃기다. 아니, 무서울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 추악함과 해학 속에는, 청춘의 서툰 모습과 추악함까지 다 끌어안고서라도 청춘을 다시 돌리고 싶다는 애절함이 숨어있다. 얄팍하게 청춘의 아름다운 모습만 쏙 빼먹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긴난보이즈는 추악해서 더 아름답다. 그 추악함에 청춘이라는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더 아름답고 애절하다. 과연, 이들의 웃긴 노래를 들으면서 눈물을 흘릴 만도 하다. 펑크는 거칠다. 거친 만큼 솔직하다. 그 특유의 솔직함 덕분에, 우리는 펑크가 그토록 거친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위로를 받고 상냥함을 느낄 수 있다. 긴난보이즈는 이런 펑크의 미학을 제대로 알고 드러낼 줄 아는 밴드다. 긴난보이즈를 처음 알게 된, 상영회가 있던 그날은, 내 인생 최악의 흑역사를 만든 날이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긴난보이즈의 모습이 그토록 뚜렷하게 남았던 건, 다 이유가 있었던 거다. 아니 오히려, 그런 때라서 긴난보이즈가 더 필요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그런 부끄러운 흑역사를 청춘의 이름으로 상냥하게 보듬어줄 이들이 바로 긴난보이즈였기에.

  


트랙리스트

 

1. 日本人(일본인)

2. SKOOL KILL

3. あの娘に1ミリでもちょっかいかけたら殺す(그 애한테 1밀리라도 다가가면 전부 죽일 테다)

4. 童貞フォーク少年、高円寺にて爆死寸前(동정 포크 소년 코엔지에서 폭사 직전)

5. トラッシュ(트래시)

6. なんて悪意に満ちた平和なんだろう(이 얼마나 악의에 찬 평화일까)

7. もしも君が泣くならば(만약 네가 울면) *

8. 駆け抜けて性春(달려나가자 성춘) *

9. BABY BABY *

10. 漂流教室(표류교실)

11. YOU & I VS. THE WORLD *

12. 若者たち(젊은이들) *

13. 青春時代(청춘시대) *

14. 東京(도쿄)

 

* 고잉스테디 시절 발표했던 곡


 

같이 보면 좋은 기사

 

▲ 초록불꽃소년단 – GREENROOM

 

 

▲ 쥬디 앤 마리(JUDY AND MARY) - THE POWER SOURCE

 

 

▲ 키시단(氣志團, Kishidan) - BOY'S COLOR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