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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 Bad Wit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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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29: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 Bad Witch

 

[ 지난 영광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만이 새로운 영광을 얻을 수 있다 ]

 

 

■ 내가 예수보다도 숭배하던 뮤지션

 

지금으로부터 9년 전, 이 계절이었다. 교회를 다니던 내가, 예수보다도 숭배하던 나의 구세주를 영접할 수 있는 시간이 왔던 것이다.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의 두 번째 내한 공연이 “서태지컴퍼니”에서 주최하는 록 페스티벌인 “ETP페스트2009”를 통해 펼쳐졌다. 2007년 첫 번째 내한공연 당시엔 내가 나인 인치 네일스라는 밴드의 존재 자체를 몰랐던 때였다. 하필 첫 내한 공연 이후에 내가 그를 알게 되어, 언제 또 내한 공연 올려나 목이 빠지게 기다리던 차였다. 어쩌면 두 번째는 없는 게 아닐까 싶어 좌절에 빠져있을 때쯤, 가뭄의 단비처럼 두 번째 내한 공연 소식이 들린 것이었다. 나는 평소 록을 좋아하던 사촌 형과 함께 그 공연에 참석했다. 트렌트 레즈너(Trent Reznor)의 목소리는 10km를 넘는 거리를 땡볕아래 걸으면서 마시는 물보다도 훨씬 더 촉촉하게 내 영혼을 적셨다. 세션 멤버들이 연주하던 악기들에선 그 공연보다도 더 황홀한 세계를 꿈꿀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이 뿜어졌다. 그 기억은 아직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 때, 내 나이 열여덟이었다.

 

그러나 내 인생은 열아홉 여름부터 큰 전환점을 맞게 된다. 나인 인치 네일스의 두 번째 내한 공연에서 “Heresy”의 후렴구 가사인 “God is dead”를 목청껏 따라 부르던 내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지한 신앙을 가져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이다. 2013년에는 나인 인치 네일스의 세 번째 내한 공연이 있었는데, 나의 종교적 신념 때문에 갈 수 없었다. 내 마음은 이미 나인 인치 네일스로부터 많이 떠나버렸다. 그러다가 나의 완고했던 종교적 신념이 어느 정도 누그러진 2016년에는 옛 연인의 SNS를 염탐하는 마음으로, 2013년에 발표한 정규 8집 앨범 “Hesitation Marks”를 들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나의 종교적 신념도 그렇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나인 인치 네일스에 대한 애정이 식기도 했다. 그 자리를 다른 여러 밴드들이 채우고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신보를 들으면서도 설렘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나의 구세주 나인 인치 네일스는 이제 옛말이 되었나 싶었던 순간이었다. 무엇보다 이전에 비해 판이하게 달라진 음악적 색깔도, 설렘을 다시 불러오지 못하게 만든 원인 중 하나였다.

 

“Hesitation Marks”를 듣던 중에, 나인 인치 네일스가 3부작 앨범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얘길 들었다. “Not The Actual Events”라는 EP 앨범이었다. 이 앨범 같은 경우엔 전작으로 나온 정규 8집보다 훨씬 흥미로운 사운드를 담고 있었다. 그 흥미로운 사운드에 이끌려, 예전에 가졌던 나인 인치 네일스에 대한 열광적인 마음을 다시 끌어올려볼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미 내 마음엔 다른 밴드들이 열심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역부족이었다. 결국 그 EP도 오래 듣지 않고 내 기억 구석에 박히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2017년에 3부작 중 두 번째 작품인 EP “ADD VIOLENCE”가 발표되었지만, 그 마저도 나의 잠깐의 흥미를 끌었을 뿐, 열광시키는 정도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물론 두 작품 모두 음악성을 따지고 보면 훌륭한 작품들이었지만, 이상하게 내 마음이 끌리지 않았다.

  

  

▲ 여기에 대문짝하게 찍힌 "NINE INCH NAILS"라는 글자를 보고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2018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

 

나는 2017년 6월 무렵부터 교회에 발길을 완전히 끊었고, 교회에 발길을 끊은 기념(?)으로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의 음악을 마음 놓고 실컷 듣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의 최애 밴드는 마릴린 맨슨이 되어버렸는데, 그렇게 마릴린 맨슨에게 푹 빠져서 살던 도중에 놀라운 소식을 접하게 된다. 나인 인치 네일스가 “2018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을 통해 네 번째 내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이었다. 이미 마음이 저 멀리 떠나버렸어도, 한 때 내가 숭배하던 뮤지션인데, 맞이하러 안 갈 수가 없었다. 어쨌든 내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사실 나인 인치 네일스는 2009년, 내한 공연 직전에 은퇴선언을 한 적이 있다. 나인 인치 네일스의 유일한 멤버인 트렌트 레즈너가 “이번 투어 이후로 나인 인치 네일스 이름을 달고 음악 활동을 하는 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는 4년 만에 이 선언을 번복하고 새 앨범을 냈다. 2016년엔 자신의 프로듀서였던 애티커스 로스(Atticus Ross)를 나인 인치 네일스의 새 멤버로 맞이해, 지금껏 둘이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래서 나는 2009년 당시 공연을 보고 난 후, ‘십 년 정도 후에는 트렌트 레즈너가 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나인 인치 네일스로서 공연을 하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다행히 내가 나인 인치 네일스 공연을 다시 보는 데에 10년까진 안 걸린 셈이다. 그가 은퇴하고 몇 개월이 흐른 후, 뒤늦게 나인 인치 네일스의 음악을 알았다며, 네이버 팬카페에 놀러오는 사람들을 보며 안쓰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승천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바라본 직후, 마침내 비어버린 그의 자리를 바라보는 제자들의 심정이 이런 건가 싶다. 예수의 밝은 빛과는 좀 다른 의미이긴 해도, 아무튼 그토록 찬란하게 빛나던 자리였는데, 그걸 다시 볼 수 없다는 게 좀 서글펐다. 그런데 그런 서글픔을 마침내 해소할 수 있는 기회가 오게 된 것이었다.

 

네 번째 내한 공연 소식과 더불어 3부작의 마지막 앨범으로서 정규 9집 “Bad Witch” 발매 소식도 같이 들렸다. 마침 펜타포트가 열리기 직전인지라 새 앨범과 함께 네 번째 내한 공연을 즐기기에 딱 알맞은 타이밍이었다. 그렇게 내한 공연을 기다리던 중, 6월 22일 드디어 “Bad Witch”가 발매되었다. 사실 디지털 싱글로 선공개된 “God Break Down The Door”를 통해 좋은 인상을 받고, 신보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이고 있었던 때였다. 그런데 의외로 그 신보는 내가 기대했던 것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 사운드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싱거웠다. 정규앨범인데도 30분에 그치는 러닝타임마저도 이 앨범을 “싱겁다”고 느끼게 만드는 데에 일조한 것 같았다. 나는 결국 그 앨범을 몇 번 듣고, 내 기억 속에 처박아버렸다. 그러고 한 달 넘게 안 들었던 것 같다. 이제 내가 예전에 나인 인치 네일스에게 품고 있던 열광적인 마음은 영영 다시 올 수 없는 건가 싶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던 예전 앨범들에게서 셋리스트가 많이 나올 테니, 그거나 기대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 1번 트랙 “Shit Mirror”

  

 의외의 순간에 다가온 감동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것은 나인 인치 네일스의 공연을 하루 앞둔 8월 10일에 벌어진 일이다. 나는 부산에서 대구로 가는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었다. 열차 안에서 심심해진 나는 “내일 나인 인치 네일스 공연인데 신보나 들어볼까.”하는 심드렁한 마음으로 “Bad Witch”를 재생했다. 그런데 거기서 기적이 일어났다. 아무리 들어도 친해지지 않던 신보가 갑자기, 첫 트랙부터 내 귀뿐만 아니라 내 가슴까지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뒤늦게 알아버린 신보의 진가에 놀라면서도 한 편으로는 공연 하루 전날에라도 그 진가를 깨달아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나의 두 번째 나인 인치 네일스 공연을 9년 전 그 때 못지않게, 아니면 그 이상으로 더 풍요롭게 즐길 수 있겠다는 기대까지 하게 되었다.

 

일단 1번 트랙 “Shit Mirror”를 보자. 단순한 리듬 위에, 나인 인치 네일스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디스토션 잔뜩 먹힌 기타 사운드가 얹어진다. 댄서블한 비트 위에 몸을 맡기다 보면, 나인 인치 네일스가 뿜어내는 낯선 사운드에 흠뻑 젖게 된다. 2번 트랙 “Ahead of Ourselves”는 1번 트랙의 여운을 맛볼 새도 없이, 바쁘게 치고 들어온다. 1번 트랙과 리듬이 비슷한 듯 좀 더 빨라진 느낌이다. 거기에 좀 더 날카로워진 사운드 질감이 새로운 분위기를 이끈다. 1번 트랙과 2번 트랙이 이어지면서 점점 고조되던 흥분은 3번 트랙 “Play The Goddamned Part”에 들어서며 무너진다. 흥분은 무너지고 그 위에 서서히 긴장이 쌓여간다. 긴박하게 중첩되는 낯선 비트들은 위태롭게 집합을 이룬다. 그 집합이 한계에 이르자 비트는 다시 해체되고, 해체된 비트는 전보다 더 위태로운 모습으로 다시 중첩된다.

 

4번 트랙 “God Break Down The Door”는 3번의 위태로움을 모두 날려버리는 듯, 강렬한 사운드로 청자를 압도한다. 혼돈에 가득 찬 것 같으면서도 그 안에서 나름의 체계를 갖춰가는 모습이 마치 블랙홀 같다. 블랙홀 같은 사운드로 이전 트랙에 잔존하던 모든 흥분과 긴장을 다 날려버리고, 새로운 혼돈을 창조한다. 나인 인치 네일스가 창조한 낯선 혼돈 속에 속수무책 빨려 들어가다 보면, 어느새 다른 차원을 맞이하게 된다. 혼돈이 잦아들고 다시 긴장감이 찾아온다. 5번 트랙 “I'm not From This World”의 등장이다. 이 트랙에선 계속해서 프로펠러 돌아가는 것 같은 소리가 반복되는데, 그 반복되는 소리 위에 온갖 낯선 사운드가 중첩된다. 이건 음악을 넘어서 어떤 풍경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묘사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 풍경이 어떤 식으로 생각하든 결코 익숙한 풍경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블랙홀의 끝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묘한 풍경이 펼쳐질 것만 같다.

   

   

▲ 4번 트랙 “God Break Down The Door”

 

 광기가 휩쓸고 간 황량한 풍경

 

6번 트랙 “Over And Out”에선 5번 트랙에서 묘사한 기묘한 풍경이, 어느 정도 안착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그 세계는 여전히 불안에 가득 차 있다. 공중을 이리저리 부유하는 온갖 낯선 소리들은 청자를 더 큰 불안 속으로 다시 빨려들게 한다. 청자가 미처 인식하기도 전에 온갖 소리들이 잔뜩 중첩되고, 청자가 겨우 소리의 중첩을 인식하자마자, 소리들은 더 이상 중첩될 자리가 없다는 듯이 흩어진다. 흩어진 소리 사이로 트렌트 레즈너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도 뚜렷하게 울려 퍼진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Time is running out. I don’t know what I’m waiting for.

 

시간은 흘러가네. 나는 뭘 기다리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이 가사는 셀 수 없이 많은 반복을 거듭한다. 부유하는 불안들 사이로 이 가사를 반복하는 트렌트 레즈너의 목소리를 음미하며, 나는 이것이 트렌트 레즈너가 최근에 만드는 음악들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핵심 주제임을 통감했다.

 

확실히 트렌트 레즈너는 변했다. 그 자신의 변화는 곧 만드는 음악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지독한 완벽주의자라서 자신 이외에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음악에 개입하는 걸 무척 싫어했던 트렌트 레즈너가, 애티커스 로스라는 음악적 동반자를 맞이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더 이상 예전의 트렌트 레즈너가 아니다. 예전의 트렌트 레즈너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특유의 완벽주의로 자신의 섬뜩한 자기혐오를 온갖 과격한 사운드 속에 버무리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젠 그런 트렌트 레즈너의 모습은 없다. 사실 정규 4집 “With Teeth”부터 그런 모습이 사라질 기미가 보이긴 했다. 그런데 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나서는 그런 모습이 말끔히 사라진 것 같다. 음악적 지향점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완전히 색다른 감성을 노래하는 건 아니다. 감성의 질감이 좀 바뀌었다고 해야 할까. 예전에는 광기에 지배당한 자신의 감성을 표현했다면, 은퇴 선언 번복 후에 발표하는 음악들은, 광기가 휩쓸고 간 황량한 감성의 풍경을 묘사하고 있다. 예전의 감성과 달라 보이지만, 어쨌거나 예전 감성의 연장선인 셈이다.

   

  

▲ 6번 트랙 “Over And Out”

트렌트 레즈너는 그런 황량한 감성의 대지를 관조하듯 노래한다. 그리고 그러한 감성의 대지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우주를 바라본다. 그것이 곧 그의 음악이 된다. 그의 음악적 동반자인 애티커스 로스는 마치 트렌트 레즈너의 감성을 비춰주는 거울 같다고나 할까. 우리가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다듬듯이, 트렌트 레즈너는 자신의 음악적 동반자를 통해 자신의 음악과 그 안에 들어간 감성을 더욱 잘 다듬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나인 인치 네일스의 음악은 그 이전에 비해 과격함은 많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정교함이 들어선 느낌이다. 그 정교함이 향하는 것은 삶의 난해함이다. 사람은 곧 우주다.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건 우주를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사람의 내면은 광활하며, 그래서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욱 난해하기도 하다. 사람의 내면이 빚어내는 삶의 난해함, 그것에서 오는 온갖 불안. “Time is running out. I don’t know what I’m waiting for.”라는 문장이 관통하는 건 바로 그 지점이다. 이것을 깨닫자, “Hesitation Marks”와 “Not The Actual Events”, “ADD VIOLENCE”까지 모두 뛰어난 앨범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이들을 재평가하게 되었다.

 

  

 그를 다시 맞이할 땐 내가 좀 더 준비되어 있기를

 

나인 인치 네일스의 네 번째 내한 공연은 멋졌다. 그러나 내 마음에 조금의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그 아쉬움의 출처를 찾으려 밤새도록 숙고했다. 나인 인치 네일스는 분명 완벽한 공연을 선보였다. 트렌트 레즈너의 컨디션은 최고였고, 무대매너 측면에서도 대단했다. 밴드가 뿜어내는 사운드는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정도였다. 환상적인 조명은 이 모든 것을 뒷받침하기에 충분했다. 나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One more song!”을 외쳤지만, 그에 응답하지 않은 모습마저도 완벽했다. 그런데도 나는 왜 아쉬웠을까. 숙고 끝에 나는 몇 가지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일단 그의 달라진 무대였다. 그의 두 번째 내한 공연만 하더라도, 기타, 베이스, 드럼, 보컬, 이렇게 네 가지 록 밴드의 전통적 악기 구성이 잘 드러나는 무대였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선 록 밴드의 전통적 악기 구성은 조금 후퇴하고, 그 자리엔 더 많은 사운드 프로그래밍과 이펙터가 자리하게 되었다. 그런 풍경은 흡사 그 자리를 록 밴드 공연이 아닌 EDM 공연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나인 인치 네일스의 공연은 완벽했다. 팬이라면 왜 모르겠는가. 트렌트 레즈너가 얼마나 지독한 완벽주의자인지. 트렌트 레즈너는 그가 표현하고자 했던 모든 것을 다 표현했다. 단지 준비가 덜 된 건 나였다. 그의 음악적 변화는 알아챘으면서, 그의 무대에 벌어질 변화는 왜 미리 알아채지 못했을까. 나는 아둔하게도 두 번째 내한 공연에서 봤던 풍경만 기대했기에, 이번 공연을 좀 더 풍요롭게 즐기지 못했던 것 같다. 마땅히 기대해야 할 바를 기대한 게 아니라, 내가 기대하고 싶은 것만 기대했기 때문에, 내게 공연이 덜 풍요로웠던 것이다. 트렌트 레즈너. 그는 언제나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하는 데에, 자신의 완벽주의를 쏟아 부었다. 그의 음악적 변화와 무대의 변화는 그의 완벽주의자적 면모에서 비롯된 것이다. 결코 얄팍한 상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 좌측부터, 애티커스 로스(Atticus Ross), 트렌트 레즈너(Trent Reznor)

그는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좀 더 완벽히 표현하기 위해, 어쩌면 “록(Rock)”이라는 꼬리표조차도 거추장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붙은 “인더스트리얼 록(Industrial Rock)”이라는 말조차도 성가시게 생각했던 그인데, “록”이라는 꼬리표를 버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사실 정규 5집 “Year Zero”부터 록이라는 범위에서 벗어난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창조하려는, 그의 음악적 환골탈태는 예정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여러 장르의 음악에 골고루 애정을 쏟으려 노력하지만, 늘 록에 대한 편애를 멈출 수 없는 나에겐, 나인 인치 네일스의 이런 변화는 조금 서운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애초에 나인 인치 네일스를 “록”이기 때문에 좋아한 건 아니었다. 나는 록보다도 나인 인치 네일스 그 자체를 훨씬 더 좋아했다. 그렇기에 조금 서운할지라도, 그런 변화가 나인 인치 네일스가 표현하고자 하는 음악세계에 더 가깝게 다가서는 일이라면, 당연히 환영한다. 보통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자신이 있던 자리에 안주하고 싶어 하는데, 트렌트 레즈너에게 해당하는 말은 결코 아닌 것 같다. 50대 중반의 트렌트 레즈너가 어쩌면 20대인 나보다도 훨씬 정신적으로 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나는 바란다. 내가 그를 다음에 만날 땐, 그를 위해 좀 더 준비되어 있기를.

   


트랙리스트

 

1. Shit Mirror

2. Ahead of Ourselves

3. Play The Goddamned Part

4. God Break Down The Door

5. I'm not From This World

6. Over And Out


   

■ 짧은 뒷얘기

 

이 앨범은 3부작 앨범으로서, “Not The Actual Events”와 “ADD VIOLENCE” 앨범과의 연관성을 가진다. 그렇기에 지난 두 앨범과의 연관성을 생각하며 감상한다면, 음악에 대한 좀 더 풍요로운 해석이 가능해진다. 이 세 앨범에 대한 해석은 뮤지션 측에서도 그렇고, 팬덤에서도 그렇고, 정확하게 내놓은 바가 없다. 다만, 수많은 팬들이 3부작 앨범들을 하나의 시뮬레이션 장치에 갇힌 사람의 이야기를 콘셉트 삼은 걸로 보고 있다. 이것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다루고 싶었지만, 이 얘기까지 하면 글이 너무 길어질까봐 이만 줄이도록 하겠다. 기회가 된다면 3부작 전체를 조명하는 글을 따로 작성해보고 싶은 심정은 있다.

    


같이 보면 좋은 기사

 

▲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 Year Zero

 

 

▲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 The Downward Spiral

 

 

▲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 The Frag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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