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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허클베리핀(Huckleberry Finn) - 18일의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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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27:  허클베리핀(Huckleberry Finn) - 18일의 수요일


[ 남다른 삶이란 얼마나 비루한 것인가 ]



■ 허세


록(Rock)은 대한민국 땅에서 단 한 번도 주류 장르로 자리 잡은 적이 없다. 조용필과 서태지가 각각 록을 시도하며, 록을 대중음악의 주류로 끌어올리려 시도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대중은 록을 좋아한 게 아니라, 그저 조용필과 서태지를 좋아했을 뿐이었다. 록의 세계적인 최전성기였던 60년대와 70년대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행한 장르는 트로트였고, 80년대 우리나라에선 비로소 발라드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으며, 90년대 들어서선 우리나라에서 댄스와 힙합이 주류였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록 리스너로서 살아간다는 건 다른 나라에서 록 리스너로 살아가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든 일이다. 심지어 록 리스너들에게 “허세나 부리려고 일부러 록 같은 이상한 음악이나 듣는다.”는 비난이 가해지는 것도 일상다반사다. 록을 듣는다는 건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존중 받기 힘든 취향이다.


물론 허세를 부리기 위해 남들은 잘 듣지 않는 음악을 일부러 찾는 사람들이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록을 듣는 사람 모두를 그런 사람으로 단정 짓는 건, 진심으로 록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가혹하다. 음악이란 21세기 현대 사회에서 사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록 음악을 듣는다는 건, 그 자체로 남다른 음악 취향을 가지게 됨을 의미한다. “남다르다”는 말은 수많은 경우에 “특별하다”라는 말과 동일시된다. “특별하다”라는 말은 주로 긍정적인 상황에 사용된다. 많은 경우에 “특별한 사람”이란 방대한 재산과 명예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말과 동일시된다. 실제로 광고, 영화, 만화, 다큐멘터리 등등 수많은 미디어에서 남다른 사람은 곧 특별한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많이 내세운다. 자기네 제품이나 미디어를 이용하면 남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는 고전적이고 상투적인 마케팅 수단이다. 실제로 이런 식의 마케팅은 잘 먹힌다.

  

  

   

▲ 허클베리핀(Huckleberry Finn) 현 멤버들. 좌측부터 성장규(기타), 이소영(보컬, 정규 2집부터 지금까지 활동 중), 이기용(기타, 유일한 원년멤버)


남다름은 곧 특별함인가? 사회는 록 리스너들을 허세나 부릴 줄 아는 별종 취급하는데, 그들이 특별한 사람으로 대우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는가? 사실 록 음악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이나 비디오 게임에 남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도 비슷한 멸시가 가해진다. 남다른 사람들은 실생활에선 미디어에서 포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남다른 사람은 “특이한 사람” 취급 받을지언정, “특별한 사람”으로 대접 받지는 않는다. 남다른 사람이 특별한 사람으로 격상되는 건 미디어에 노출된 극소수 사례일 뿐이다. 이런 극소수 사례를 필요 이상으로 부풀리는 것이 미디어가 현재 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극소수 특별한 사람을 따르는 다수의 취향은 전혀 남다르지 않다. 이들은 흔히 “대중”이라고 불린다. 대중은 특이하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그러나 대중은 소수의 특별한 사람을 따른다.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실생활에서 남다른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건, 대중의 멸시나 받는 비루한 생활을 의미하는 건데 말이다.



 자신의 취향을 지킨다는 건 얼마나 외로운 일인가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면 “인싸”가 되어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다. 반면, 남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으면 좀처럼 친구 사귀기가 쉽지 않다. 남다른 취향을 가진 “아싸”들이 그걸 모르진 않는다. 그런데 남다른 취향을 가진 그들이, 그런 외로움을 모두 감수하면서도 왜 자신의 취향을 고집하겠는가. 취향이란 “진심”을 동반해야 한다. 진심은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만큼 귀중한 걸 의미한다. 음악취향이라는 게 사소해 보일지언정, 음악은 사람의 생활에 있어서 가장 밀접한 위치를 가지고 있는 매체다. 자기 취향에 맞지 않는 음악만 들으며 사는 삶이란, 자신의 진심을 바칠 수 없는 삶에 목숨을 바치는 것과 같다. 이토록 소중한 취향을 단지, 자신과 진심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 대화가 잘 통하는 척 연기하는 삶을 위해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이토록 취향이란 개인에게 있어서 소중한 것이거늘. 사회엔 자신과 취향이 다른 사람을 너무 쉽게 얼간이 취급하는 사람들이 많다. 얼간이 취급하지 말고, 차라리 무시하고 신경 끄는 게 더 좋을 텐데.

  

  

 

▲ 1번 트랙 “보도블럭” 뮤직비디오

  

남다른 음악취향 때문에 친구를 쉽게 사귈 수 없는 사람에겐 그저, 음악이 가장 좋은 친구다. 남다른 취향을 가진 이들에게 남다른 음악을 연주하는 밴드를 발견하는 건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 또한 고등학생 시절, 록에 심취해 있느라 학우들로부터 “왜 우리나라 최신 유행 가요를 많이 듣지 않느냐”고 핀잔을 받던 사람이었다. 그 당시 나에게는 한국 록 음악에 대한 갈망이 컸었다. 이건 흔히 말하는 “국뽕”과는 다르다. 비유하자면, 나랑 사상이나 성격도 비슷하고, 취향까지 비슷해서 말이 너무 잘 통하는 사람이 인터넷에 있는데, 그 사람이 인터넷 밖으로 나와,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같이 살면 좋겠다고 바라게 되는 그런 의미다. 그래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음반리뷰” 서적을 통해 한국 록 명반을 찾는데 도움을 받기도 했다. 그 서적을 들춰보던 와중에 보석 같은 밴드를 알게 된다. 이번에 소개할 “허클베리핀(Huckleberry Finn)”이 그 주인공이다.


허클베리핀에 대한 첫인상은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그들의 정규 1집 앨범 “18일의 수요일”을 구입해, 1번 트랙 “보도블럭”을 처음 재생했을 때였다. 록 밴드 특유의 강렬한 사운드를 기대했던 나는 도입부의 나른한 사운드를 참을 수 없었다. 1분이 넘어가도록 그런 식으로 사운드가 일관되니 더 이상 못 참겠어서, 다른 곡으로 넘겨보지도 않고 앨범을 꺼버렸다. 그렇게 그 앨범을 처박아두고 몇 달을 지내다가 문득, 그 앨범이 내 귀에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적어도 2번 트랙까지는 들어보라니까.” 앨범의 속삭임을 거절할 수 없었다. 나의 태도가 성급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자 1번 트랙에서 놀라운 반전을 발견했다. 1분 26초에 이르자, 사운드가 급격히 과격하게 변하며 분위기를 뒤집었던 것이다. 그에 따라 포효하는 보컬의 절규가 어우러져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전에 나온 잔잔한 사운드는 그저, 나중에 등장할 웅장한 사운드를 위한 대비 효과였다는 걸 깨달았다. 난 그 자리에서 2번 트랙은 물론이고 마지막까지 경청했다.

  

  

   

▲ 정규 1집 당시 보컬 “남상아” 현재는 “3호선 버터플라이(3rd Line Butterfly)” 보컬로 유명하다. 본 사진은 허클베리핀 정규 4집 발매 축하공연에 참여했을 때 모습이다.

   

  

 마크 트웨인을 닮은 밴드


허클베리핀이라는 밴드명은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의 작품 “허클베리 핀의 모험(The Adventures of Huckleberry Finn)”을 떠올리게 한다. 마크 트웨인은 각종 사회계층에 대한 비판에 풍자를 한껏 곁들인 작품 세계로 유명하다. 블랙 코미디(Black comedy)의 선구자 정도 되는 작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마크 트웨인이 내뱉는 코미디는 마냥 웃기지만은 않다. 그의 코미디는 폭소라기보다 날카로운 냉소에 가까우며, 유쾌함보다는 씁쓸함이 먼저 와 닿는다. 허클베리핀은 자신의 밴드명에 걸맞은 “값을 하는” 밴드라고 할 수 있다. 허클베리핀은 코미디 밴드다. 그러나 그들의 코미디는 대중을 상대로 폭소를 자아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자기네들끼리 이해하고 자기네들끼리 웃는 그런 코미디에 더 가깝다. 그들의 코미디는 애초에 폭소보다는 냉소를 전제로 깔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음악이 코미디라 할지라도 웃긴 느낌보다 씁쓸한 느낌이 먼저 와 닿는 것이다.


그들이 98년에 발표한 앨범 “18일의 수요일”은 첫 정규앨범답게, 밴드의 이런 특성을 가장 잘 반영한 앨범이다. 사실 내가 고등학생 때 이들의 음악을 좋아했던 건, 한국에서 흔하게 접할 수 없는 너바나(Nirvana) 같은 “그런지 록(Grunge rock)”이라서 그랬다. 내가 스무 살이 된 이후에, 이들의 음악을 코미디라고 이해한 순간, 이들의 음악에서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음악에 냉소적 요소가 도드라지는 현상은 너바나를 비롯한, 픽시스(Pixies), 소닉 유스(Sonic Youth) 등의 다른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 밴드들에게서도 드러난다. 허클베리핀이 “18일의 수요일”을 통해서 노래하는 화자들은 모두, 사회로부터 외면 받고 잊혀진 “남다른 존재”들이다. 이 남다른 존재들이 뱉어내는 언어는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애수에 찬 하루를 반복하며 애수가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다. 애수가 당연한 것이 되었기에, 애수마저도 코미디로 쓰게 된 것이다. 앨범 제목부터가 이런 냉소를 잘 드러낸다. “13일의 금요일”마다 불길한 일이 벌어진다는 서양 속설을 패러디한 걸로 보인다. 뭔 유별난 일이라도 벌어질 것 같지만, 실은 아무것도 아닌 시시한 날을 의미하는 것 같다. 이 앨범 속 화자들에 대한 은유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 7번 트랙 “갈가마귀” 2008년 EBS 스페이스 공감 라이브영상. 정규 2집부터 참여한 “이소영”의 보컬로 감상해보자.

  

이들의 음악이 어째서 코미디인가? “첫번째 곡”이라는 제목을 가진 곡을 트랙 1번이 아닌, 2번에 배치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여기서부터 1번 트랙이 첫 번째 곡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통념에 냉소를 내뿜는다. 보컬이 “오래전 읽던 책들은 답답한 말만 내뱉고, 허공에 고갤 묻으면 입속엔 가득 흙먼지.”라는 가사를 읊는 동안, 펑키(Funky)한 기타연주가 냉소에 힘을 싣는다. 3번 트랙 “당당”은 허클베리핀 특유의 냉소가 한껏 표출되는 곡이다. 장난스러운 느낌의 기타리프로 곡의 포문을 열면, 보컬이 어른을 어설프게 따라하는 소년의 목소리처럼 “하나님, 부처님”을 외치거나, “우후 욕을 아하 해버릴래.”라고 외친다. 5번 트랙 “Huckleberry Finn”은 또 어떠한가. 편안한 연주 위에 덧씌워지는 불안한 기운, 거기에 “목이 쉰 채로 온종일 짓던 외로운 개는 죽었지.”라는 처절한 가사를 쉽게 뱉는 보컬까지. 앨범 곳곳에서 코미디를 만날 수 있다. 다만, 그다지 웃기진 않다. 청자에게는 오히려 일상이 되어 가슴 깊숙한 곳에 박힌 오랜 분노를 떠올리게 만든다.



 냉소와 함께 전해지는 위로


이 앨범은 지극히 냉소적이기에 오히려 위로가 되는 그런 앨범이다. 이들의 음악을 자기들끼리 이해하고 자기들끼리 웃는 그런 음악이라고 칭했는데, 이 “자기들”에 청자 본인이 포함되었을 때 느끼는 통쾌함이 있다. 이들의 코미디는 우울과 분노를 워낙 오래 품고 있어 일상 속에 깊이 스며든 사람이어야 이해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울이나 분노 등의 감정을 빨리 풀거나 잊어버리지, 그것을 오래 가슴 속에 품고 살지는 않는다. 그러나 선천적으로든 후천적으로든 예민한 성격을 가지된 사람들이 있다. 이런 예민한 사람들에게는 분노나 우울을 해소한다는 게 남들처럼 쉽지가 않다. 이런 예민한 사람은 분노가 수그러들기도 전에 다른 분노가 덧입혀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마음의 여유를 온통 우울함에 뺏기게 된다. 이 지경에 이르면, 유머코드도 자연스레 우울한 냉소 쪽으로 흐르기 마련이다. 허클베리핀은 바로 이 지점을 코미디로 노래한다. 그러니 허클베리핀이 풍기는 정서에 공감하는 게 큰 통쾌함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코미디의 느낌은 살짝 뒤로 물러나고, 좀 더 진지한 폭발력을 내세운 트랙들도 이 앨범에 수록되었다. 사람들이 갖고 있는 분노와 우울함에 호소하는 강력한 트랙들이다. 4번 트랙 “불을 지르는 아이”는 처음부터 잔뜩 일그러진 기타 사운드가 불을 뿜듯 등장한다. 그와 함께 보컬은 가사를 비장하게 읊는다. 잠시 후 드럼이 분위기를 깨고, 베이스 기타까지 합세해 곡의 광기를 더한다. 광기는 그칠 줄 모르고 점점 격렬해지는데, 광기가 최고조에 닿을 때쯤, 갑작스레 광기가 수그러들며 곡이 끝난다. 7번 트랙 “갈가마귀”는 이 앨범에 실린 곡들 중 가장 무겁고 끈적끈적한 사운드를 내뿜는다. 끈적끈적한 사운드는 점차 과격함을 더해가고, 더해지는 과격함 만큼, 보컬도 한껏 일그러진 목소리로 분노를 표출한다. 서서히 중첩되는 과격함이 곡에 호소력을 부여한다.

 

   

 

▲ 11번 트랙 “죽이다” 라이브 영상. “3호선 버터플라이”와 함께 했다.

  

11번 트랙 “죽이다”는 내가 허클베리핀의 모든 커리어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인데, 록 음악 특유의 격정적인 느낌을 사랑하는 사람이면, 이 곡을 듣고 전율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고요함 속에 서서히 임하는 굉음이 시작부터 단단한 비장미를 선보인다. 갑자기 연주가 바쁘게 흐르더니, 어느새 폭발하듯 과격한 연주가 흐른다. 비장함과 과격함 사이에서 능숙하게 사운드를 조율하는 연주가 청자를 전율하게 만든다. 뭘 죽였는지는 상세히 알 수 없어도, 그것이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님을, 오히려 참을 수 없을 만큼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왔던 분노에 의한 것임을 짐작하게 만든다. 이 곡을 들으며 느끼는 전율은 사운드의 훌륭함을 느끼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내 안에 이토록 광기어린 분노가 자리하고 있었음을 깨달았을 때 느끼는 전율이다. 게다가 이런 나의 분노를 모두 이해하는 것 같은 음악이라서 느끼는 전율이기도 하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간다는 외로움


이렇듯 허클베리핀의 앨범 “18일의 수요일”은 코미디와 진지한 폭발력이 교차되며 청자에게 호소한다. 그들의 호소란 남다른 삶이 가지는 비루함에 관한 것이다. 그들의 음악은 남다르다. 특히 좁은 한국 록 시장 내에서도 펑크(Punk), 메탈(Metal), 브릿팝(Britpop) 이렇게 세 분야로 철저히 나눠져 있는데, 허클베리핀은 이 셋 중에 어느 한 곳에도 머물 수 없는 밴드다. 그만큼 독창적인 음악이라는 말이기도 하지만, 이것은 그만큼 낯선 음악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낯설게 취급 받고 싶은 존재가 어디에 있겠는가. 낯선 취급을 받는다는 건 친구가 적음을 의미한다.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게 될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아무리 독특한 존재라 할지라도 지지자는 늘 있는 법이다. 단지 다른 흔한 존재들에 비해 지지자를 찾기 힘들 뿐이지. 그러나 어렵게 얻은 지지는 쉽게 잃지도 않는 법이다.


남다른 존재들은 언제나 비루하게 살아간다. 친구도 없이, 명성도 없이, 가난하게 그렇게. 그러나 뮤지션들은 자신의 비루한 처지보다는 화려함에 관해 더 많이 얘기한다. 아무리 삶이 비루하더라도 화려한 삶을 동경하는 게 인간의 본능이니까. 그렇게 남다름에서 오는 비루함을 얘기할 뮤지션은 점점 적어진다. 허클베리핀은 남다른 음악을 연주하지만, 자신들의 화려함을 뽐내지 않는다. 그저 남다른 삶이 겪는 비루함을 솔직하게 풀어내며, 비루한 삶을 통해 얻은 분노와 우울함을 연주할 뿐이다. 그 우울함이 오래되어 유머의 영역까지 뻗치게 된 비루한 삶의 극치를 노래한다. 이런 음악을 연주하는 본인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음악이 잘 먹히지 않는다는 걸. 특히 한국 땅에서는 더더욱. 그러나 그들은 묵묵히 자신들의 음악을 완성시켰다. 그런 뚝심의 결과가 “18일의 수요일” 앨범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사실 뚝심이라는 표현을 쓰는 게 민망하게 느껴질 정도로, 그들이 내뿜는 정서는 인위적이지 않다. 이런 느낌의 음악을 찾는 사람은 무척 적겠지만, 이런 음악까지 찾게 될 정도로 오랜 우울함에 잠식된 사람이라면, 이 앨범이 가뭄의 단비처럼 촉촉하게 마음에 스며들 것이다.

  

   

 

▲ 허클베리핀의 대표곡으로 흔히 뽑히는, 2집 "나를 닮은 사내" 1번 트랙 수록곡 "사막"의 라이브 영상.

  

이래서 평론가들의 역할이 중요하는 얘기다. 대중의 취향에 쉽게 영합하지 않고, 완성도와 독창성 위주로 작품을 평가하며, “알 만한 사람들”끼리의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것. 그것이 평론가들의 주된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이 있기에 이런 남다른 음악이 조금이나마 광명을 볼 수 있는 것이니까. 그들이 있기에 남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은 가뭄의 단비 같은 기쁨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음악을 연주하기 위해 투쟁하는 모든 뮤지션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있다. 당신들의 남다른 투쟁이 있기에, 비루한 남다른 인생들은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비루한 인생들이 무슨 힘이 있어서, 당신들의 인생을 비루함에서 건져낼 수 있겠냐만, 이걸 기억해주면 좋겠다. 당신들의 음악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걸. 당신들의 음악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트랙리스트


1. 보도블럭

2. 첫번째 곡

3. 당당

4. 불을 지르는 아이

5. Huckleberry Finn

6. 풀

7. 갈가마귀

8. 사마귀

9. Teacher Says?

10. Work

11. 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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