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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키치스(The Kitsches) - The Kitsc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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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28: 키치스(The Kitsches) - The Kitsches


[ 아직 풀리지도 않은 우리의 분노를 함부로 낡았다고 하지 말라 ]



■ 펑크의 역설


“커트는 유투와 알이엠을 좋아했고 ‘스미더린스(Smithereens)’가 정말 훌륭한 그룹이라고 입이 마르도록 이야기했다. 그러나 대중적으로 인기 끄는 곡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펑크의 규율을 깨뜨릴까 봐 버즈 오스본 앞에서는 그 유명한 밴드들이 자신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말하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중략...) 커트는 펑크 록이 해방 음악의 한 장르이며 자유의 장르라고 일컬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체의 스타일과 규범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것은 펑크 록이 맞서서 저항하려고 했던 기성세대의 관습보다 더 심하게 제약을 가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도 깨달았다.”


위는 록 밴드 너바나(Nirvana)의 프론트 맨 커트 코베인(Kurt Cobain)의 평전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커트 코베인은 소년 시절 펑크 밴드들을 쫓아다니며 그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다. 그들을 동경하며 닮고자 했다. 위 인용부는 펑크(Punk)도 오랜 시간을 지나오며, 꼰대에게 저항하고자 생긴 펑크가 오히려 꼰대들보다 더 꼰대처럼 변해버린, 펑크의 모순을 발견하여 실망하는 커트 코베인의 모습을 담은 대목이다. 커트 코베인의 이런 경험은 훗날 그의 음악이 펑크나 메탈(Metal)이라는 단어로는 정의할 수 없는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이라고 불리게 된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21세기가 어떤 시대인가. 이젠 얼터너티브 록이라는 말도 화석처럼 받아들여지는 시대다. 록(Rock)이라는 장르 전체가 주류에서 밀려나버린 이 시대에, 펑크니 메탈이니 얼터너티브니 그런 거 따질 겨를이 어디 있는가. 펑크의 저항은 물론이고, 커트 코베인의 또 다른 저항마저도 의미가 퇴색해버린 지금, 록의 저항정신은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20세기 이후로 급격히 발달한 과학기술과 미디어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대중음악의 판도를 빠르게 바꿔나갔다. 그러자 어떤 현상이 생겼는가. 예술은 언제나 당대의 시대정신과 호흡했다.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20세기 이후에 등장한 대중음악에도 분명히 그런 흐름은 있었다. 그러나 그 이전 시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하나의 시대정신이 끝나기도 전에 너무 빨리 새로운 장르가 등장해서 이전의 장르를 뒤덮었다는 것이다. 즉 다른 말로 하자면, 해결되지도 않은 미완성의 분노가 아직, 이전에 생긴 장르에 남아있다는 것이다. 사이키델릭 록(Psychedelic rock)이 부르짖던 반전(反戰)이니 평화니 성(性)개방이니 그런 것들이 다 이뤄지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펑크가 튀어나와서 기성 록 밴드는 다 이미 낡았다고 욕을 하질 않나, 펑크가 기성세대에게 제대로 받아들여지기도 전에, 얼터너티브가 튀어나와 그런지(Grunge)니 뭐니 하면서 펑크를 낡은 음악으로 만들었다.

  

  

 

▲ “너바나(Nirvana)”의 미공개곡 모음집 앨범 “Incesticide” 수록곡 “Sliver” 뮤직비디오

  

  

 미완의 분노는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이런 급격한 변화에 대해 펑크와 얼터너티브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건 급격한 미디어의 발달에 책임이 있다고 보는 게 더 맞을 것이다. 급격한 미디어의 발달은 20세기 이전에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을 예술의 홍수 속으로 밀어 넣었다. 20세기 이후 세대는 그전 세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예술을 접하게 되었다. 예술 창작의 형식도 그만큼 간소화 되어, 불어난 수요에 못지않게 공급도 급격히 늘었다. 그러니 특정 예술 양식에 쉽게 질리고, 쉽게 새로운 것을 추구하게 된다. 예술의 새로운 장르가 이토록 이상하리만치 빠르게 등장하고 쇠퇴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데 이런 급격한 변화가 당연한 결과였다고 한들, 이런 식의 결론이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 주는 건 아니다. 위에서 말했듯, 이전 장르에서 미처 다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21세기가 된 지금도 여전히 잔존한다. 그렇기에 누군가는 여전히 펑크의 어법으로 기성세대에 대한 저항을 노래해야 마땅하다. 펑크가 낡은 음악 취급 받았기에, 펑크를 노래하는 밴드가 점차 들어드는 추세이긴 하다. 그래도 누군가는 계속해서 해야 한다. 펑크를. 기성세대를 향한 신세대의 분노는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가장 직설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게 여전히 펑크뿐이기 때문이다. 미완의 분노는 어디를 향해야 하는가. 그것이 향해야 할 곳은 여전히 펑크다. 펑크의 분노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펑크의 분노가 끝나지 않았다고 한들, 낡은 음악 취급 받게 된 요즘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펑크 밴드들은 이런 역설을 맞이하지 않고선, 자신들의 정체성을 지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위에서 커트 코베인이 느꼈던 “기성세대의 관습보다 더 심하게 제약을 가하는” 펑크의 모순은, 아직 끝나지 않은 자신들의 분노를 지키려는 방어 기제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어쩔 수 없는 방어 기제라고 한들, 그 정도가 지나치면 이 또한 펑크 정신에 위배되는 더 큰 모순을 초래하는 일이리라. 결국 균형을 잘 잡는 게 중요하다. 펑크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꼰대”가 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펑크가 지속적인 호소력을 유지할 수 있다. 꼰대들을 죽이자고 해놓고 본인들이 꼰대가 되면 안 되니까.

   

  

 

▲ 10번 트랙 고독EP “Tonight, You Will Be Rejected” 수록곡 “회색분자 (Fence Sitter)”, Assassination Squad 스플릿 앨범 3번 트랙 수록곡 Fuck Old Generation” 라이브 영상.

  

 

 싸구려 밴드


여기, 펑크의 권위와 질서를 부정하며 자신들을 기꺼이 “싸구려”로 칭한 밴드가 있다. 2017년 5월에 자신들의 첫 정규앨범을 낸 “키치스(The Kitsches)”에 관한 얘기다. 이 앨범은 밴드와 동명으로 제목이 지어졌다. 이런 식으로 밴드 이름을 앨범이름으로 내거는 건, 밴드 이름과 앨범, 두 가지 모두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밴드 이름은 영단어 “Kitsch”를 복수형으로 바꾸고, 앞에 강조의 의미로 “The”를 붙인 형태로 이뤄져있다. “Kitsch”라는 말은 우리말 중에서 완벽히 대체할 단어가 없다. 그래도 굳이 우리말로 풀이를 해보자면, “아류작”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아류작이라는 말 자체가 작품을 깎아내릴 때만 쓰지, 절대 칭찬할 때 쓰는 단어가 아니다. 즉, 베낀 티가 물씬 풍기는 싸구려 예술이라는 얘기다.


옛날 느낌도 의도적으로 내면 “복고풍”이라는 말과 함께, 다른 의미의 세련미로 받아들여진다. 즉 저 “키치(Kitsch)”라는 것도 일부러 표방하면 또 다른 유머, 또 다른 세련미가 된다. 키치스의 음악을 듣다 보면, 이런 매력에 빠지게 된다. 게다가 영단어의 강조형인 “The”까지 붙였으니, 반박의 여지가 없는 의도적인 작명인 셈이다. 의도적으로 키치를 이용해 청자들에게 호소하는 것이 그들의 음악이다. 키치스가 연주하는 사운드와 부르짖는 가사들은 딱히 새로운 게 아니다. 그저 예전부터 펑크 밴드들이 늘 하던 것들의 반복에 불과하다. 대중의 몰개성과 기성세대의 관념을 쳐부수자는 뭐 그런, 뻔하고 뻔한 것들 말이다. 하지만 본인들도 이런 게 진부하다는 건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본인들 밴드명도 그렇게 지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뻔한 사운드, 뻔한 메시지들인데도 도무지 싫지가 않다. 오히려 내가 펑크를 통해서 감명 받은 요소들의 종합 선물 세트처럼 느껴져서 열광하게 된다. 키치스의 이런 어법은 펑크의 특성을 살리되, 꼰대는 되지 않는 영리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 제 3 회 천하제일 펑크대회 키치스 인터뷰


보컬 정재현은 발리안트(Valiant)와 가진 인터뷰에서 키치스에 관해 “하드코어 펑크(Hardcore punk)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고, 그냥 펑크 음악을 하려고 했는데 빠른 게 좋아졌고, 빠른 게 좀 더 재밌고, 꼴리고.”라고 밝혔다. 이렇게 말한 것치고는 한 곡이 2분 30초를 넘지 않는다는 하드코어 펑크의 불문율을 철저히 지키고 있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이런 하드코어 펑크의 불문율을 지키는 것도, 하드코어 펑크가 발생하게 된 가장 원초적인 지점을 찾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모든 장르의 탄생이 그러하듯, 음악이 먼저 나오고 나중에 장르가 나온 거지, 장르가 먼저 나오고 음악이 나중에 나온 경우는 절대 없다. 하드코어 펑크의 시초라는 불리는 밴드들도, 자신들이 하는 음악이 하드코어 펑크라고 불리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냥 자기들은 펑크를 하고 싶었는데, 어쩌다보니 자기들 음악이 그렇게 불리게 된 것이다.

  

  

 펑크의 특징을 극대화


키치스는 첫 정규앨범 이전에, 한 장의 EP와 두 장의 스플릿 앨범을 냈고, 수많은 라이브 무대를 가지며 이미 확고한 지지층을 얻은 밴드다. 그들의 첫 정규앨범은 이런 확고한 지지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앨범이다. 자신들의 밴드명을 앨범명으로 내건 만큼, 이 앨범은 이때까지 보여줬던 키치스의 음악적 특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위에서 말했듯, 키치스는 펑크를 하려고 했지만, 어쩌다보니 하드코어 펑크가 된 밴드다. 즉, 그들의 음악은 하드코어 펑크의 가장 원초적인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초기 하드코어 펑크 밴드들도, 펑크의 과격함과 간결함을 극대화시키려는 노력으로 더 강한 연주, 더 빠른 연주를 택하게 된 것일 터. 2분 30초도 안 되는 짧은 곡 길이도 이런 특성을 조금이라도 더 잘 반영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키치스는 이제 어느 정도 정형화가 되어버린 하드코어 펑크라는 음악을 바탕으로, 그 특성을 더욱 과장하고 원색적으로 만들었다. 밴드명처럼 “키치”스러운 작법인 셈이다.


사실 이들의 음악을 듣다 보면, 이런 걸 펑크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멤버 각 개인의 음악적 역량이 비범함을 느끼게 된다. 일단 보컬만 들어봐도 꽤 잘 숙련된 브루털 창법(Brutal voice)을 구사하는 걸 알 수 있고, 기타는 정확한 피킹으로 음의 뭉개짐 없이 날카로운 음색을 일관되게 유지한다. 이런 비범한 보컬과 기타와 함께, 사운드의 바탕을 탄탄히 쌓는 베이스와 드럼의 솜씨도 심상치 않다. 이런 비범한 음악적 역량에도, 자신들의 음악을 “키치”라고 칭하다니, 과연 펑크 밴드다운 작명 센스다.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적 역량을 그저 펑크의 과격함과 간결함을 극대화시키는 데에만 쏟고 있다. 곡 길이가 워낙 짧아서 그 흔한 화려한 기타솔로도 찾아볼 수 없다. 이런 특성들 때문에, 이들의 음악을 몇 번 안 들으면, 곡들이 다 비슷하게 들린다.

  

  

 

▲ 4번 트랙 “권위와 질서”

 

이들의 이런 특성은 호불호가 심각하게 갈릴 수 있다. 그냥 호와 그냥 불호도 아니고, 극호와 극불호. 중간 지점은 없다. 곡들이 다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다고 지적하긴 했지만, 이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만약에 A라는 곡을 듣고 감명을 받았다고 치자, 그럼 사람의 심리라는 게 A와 비슷한 다른 곡을 찾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키치스는 곡이 다 비슷하니, 키치스의 한 곡에 감명을 받으면, 다른 수십 개의 곡들에게도 똑같은 감명을 받게 되는 것이다. “와, 그 곡도 좋았는데, 그 곡과 비슷한 곡이 이렇게 많단 말이야? 아 너무 행복해.” 이렇게 된다. 게다가 듣다 보면, 곡들 간의 미묘한(?) 차이를 알게 되는 깨알 같은 재미도 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통해 “우리 음악이 싫으면 듣지 마! 좋아할 사람만 좋아하라고!” 이렇게 항변하는 것 같다. 철저한 언더그라운드 정신을 바탕으로 음악을 하는 기존의 하드코어 펑크 밴드들을 무척 닮았다.



■ 우리에겐 아직도 펑크가 필요하다


이들의 음악에 “극호”하게 되는 요소란 무엇일까? 보컬은 지극히 거친 음색을 내고 있는데, 메탈 밴드라면 기타도 두 대고, 톤도 굵어서, 거친 보컬이 어느 정도 사운드와 조화되며 중화되는 느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펑크라서 기타도 한 대고, 기타 톤도 굵지 않고 날카롭다. 거친 보컬이 고막을 향해 퍼붓는 맹공이 훨씬 잘 들리는 셈이다. 기타도 날카로운 톤을 일관되게 쏟아내고, 베이스와 드럼은 이런 사운드를 더욱 부추긴다. 쉬지 않고 거칠고 날카로운 사운드를 때려 박는다. 고막을 감싸는 느낌이 아니라, 고막을 직접 쑤시는 것 같은 고통마저 느껴진다. 그런데 펑크라는 게 원래 그런 거다. 펑크는 원래 음악적 심미성을 추구하는 게 아니다. 더욱 거칠고, 더욱 과격해야 펑크다. 이런 펑크의 원초적 특성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키치스의 음악에 열광할 수밖에 없다. 펑크가 주는 가장 원초적이고 과격한 자극. 키치스는 이런 자극에 지극히 충실한 밴드다.


이왕 앨범 얘기가 나왔으니까 곡들에 대해 얘길 해야겠다. 1번 트랙 “촉매제”나 3번 트랙 “Celebrity”, 7번 트랙 “Message from Paul Weller”, 8번 트랙 “멍청한 새끼들”은 1분도 안 되는 지극히 짧은 길이에도,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곡들이다. 4번 트랙 “권위와 질서”는 백 보컬과 메인 보컬이 “권위와 질서, 좆 까!”를 주고받으며 청자를 강력하게 선동하는데, 이게 묘한 중독성을 자아낸다. 5번 트랙 “인간성 결여”에서는 “Fucking class”라는 말을 난사하며 학교 폭력 문제를 지적한다. 마지막 10번 트랙 “고독”은 본 앨범 수록곡들 중에 유일하게 2분이 넘는 곡이며, 키치스 노래 전체에서 유일하게 슬로우 템포에 맞춰 노래하는 보컬을 발견할 수 있다. 키치스 곡으로서는 흔치 않은 구성이라, 흔치 않은 호소력을 발견할 수 있다. 곡 후반엔 베이스 소리만 덩그러니 남아서 엉망으로 찢어발겨진 보컬을 부각시키는데, 결국엔 베이스마저도 사라지고 보컬만 남을 땐, 곡 제목인 “고독”을 실감하게 만든다. 삶의 고단함을 어떤 포장도 없이 있는 그대로 노출하는 솔직함마저 느껴진다.

   

  

 

▲ 10번 트랙 “고독”

  

사실 이 앨범은 정규앨범인데도, 전체 러닝타임이 13분 11초에 그친다. 전에 “에고펑션에러(Ego Function Error)” 앨범 리뷰하면서 EP인데도 러닝타임이 50분을 넘는 정규앨범 급이라며 말했던 것과는 완전히 상극인 셈이다. 그런데 에고펑션에러의 사례보다 이런 사례가 어찌 보면 훨씬 위험하다. 서태지가 솔로로 정규앨범을 냈을 때 정규앨범 러닝타임이 무슨 30분도 안 되냐며 혹평 들은 사례만 봐도, 이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그런데 키치스는 이런 사실에 대해 별 신경을 안 쓰는 것 같다. 정규앨범 길이에 관한 비판이 들어와도 그저 웃어넘길 것 같다. 그들은 권위와 질서를 파괴하는 펑크 밴드이기 때문이다. 정규앨범이 반드시 30분을 넘어야 한다는 관습 따위, 그들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정말 이런 깨알 같은 부분까지 “펑크”로 채울 정도로 펑크 정신이 투철한 이들이다. 펑크가 아직도 이렇게 놀라운 자극을 줄 수 있는데, 펑크가 낡았다고 함부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키치스의 음악을 듣다 보면, 우리에겐 아직도 지극히 펑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된다. 펑크가 낡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향해, TV드라마 “야인시대”의 주인공인 “김두한”의 대사를 인용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개소리 집어 쳐!”

   


트랙리스트


1. 촉매제

2. Same History, Realize

3. Celebrity

4. 권위와 질서

5. 인간성 결여

6. Fake Friends

7. Message from Paul Weller

8. 멍청한 새끼들

9. 증오는 짐이다

10.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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