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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 - Holy Wood (In the Shadow of the Valley of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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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31: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 - Holy Wood (In the Shadow of the Valley of Death)

 

루시퍼의 관점에서 새로 쓴 어둠의 성경

 

■ 신에게 반항하는 자

“존 밀턴(John Milton)”이 1667년에 발표한 대서사시 “실낙원(Paradise Lost)”은 그 당시까지 개신교도들이 갖고 있던 세계관에 대해 잘 설명해주고 있다. 여기에 따르면, 루시퍼란 하나님에 가장 가까운 존재였지만,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우월하다고 생각해, 하나님의 영광을 뺏으려 했던 자다. 결국 루시퍼는 하나님에게 패하고 하나님에 의해 불구덩이로 떨어진다. 루시퍼는 하늘에서 종노릇하느니 차라리 지옥에서 대장 노릇하겠다고 생각해, 지옥의 왕이 된다. 그리고 루시퍼는 하나님에게 계속 대항할 목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인 아담과 이브를 선악과를 먹도록 꾀어낸다. 이로부터 루시퍼는 지상에 시기와 다툼, 전쟁, 죽음을 가져오는 존재가 되었다. 신약성서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가 지상에 왔고, 그가 흘린 희생의 보혈에 의해 아담의 원죄를 씻어 영생을 얻는 자들이 생겨났다. 세월이 백년, 이백년, 천년이 흘러, 기독교는 세계적으로 퍼져나갔다. 그러나 아담의 후손들이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건 아니었다. 그 중에는 아직 원죄를 씻지 않고, 루시퍼의 편에 선 자들이 있었다. 20세기말에 이르자, 아담의 후손 중에는 이렇게 선언한 사람마저 생겨났다.

 

“우리는 루시퍼의 길을 설파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내년에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다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 나갈 것이다.”

 

이 선언의 주인공은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이다. 마릴린 맨슨은 1996년에 발표한 자기 밴드의 정규 2집 앨범 이름을 “Antichrist Superstar(적그리스도 슈퍼스타)”로 짓고, 기독교를 기반으로 세워진 미국 사회를 실컷 조롱했다. 당연히 미국의 기독교인들에게 마릴린 맨슨은 곱게 보이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마릴린 맨슨을 비난하며 자신의 도시로 공연을 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고 설파하고, 마릴린 맨슨 공연장에 나타나 공연 반대 시위를 했다. 그러나 마릴린 맨슨의 인기는 날이 갈수록 높아져만 갔다. 마릴린 맨슨 밴드가 98년에 발표한 정규 3집 앨범 “Mechanical Animals”는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멈출 줄 몰랐던 마릴린 맨슨의 인기 고공행진은 미국 기독교인들의 저지로는 역부족이었다. 누가 이 돌풍을 막을 수 있었을까. 

 

그런데 그 돌풍은 의외의 상황 때문에 멈추게 된다. 99년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선 총기 난사가 벌어져, 수많은 무고한 학생들이 사상을 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데 문제는 사건 주동자가 마릴린 맨슨의 열성팬이라는 소문이 알려진 것이었다. 훗날 이런 얘기가 보수 세력의 날조였다는 것이 드러났지만, 그 당시 미디어는 마릴린 맨슨이 총기 난사 사건을 부추겼다고 몰아세웠다. 수많은 대중은 미디어의 이런 선동에 놀아났고, 마릴린 맨슨에 대한 비난은 전례 없을 정도로 거세게 몰아 닥쳤다. 결국 마릴린 맨슨은 남은 투어를 모두 취소하고, 다음 앨범 준비에 들어가야만 했다. 마릴린 맨슨이 2000년에 발표한 네 번째 정규앨범 “Holy Wood (In the Shadow of the Valley of Death)”는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 4집 당시 멤버. 좌측부터, 진저 피쉬(Ginger Fish, 드럼), 마돈나 웨인 게이시(Mandonna Wayne Gacy, 키보드), 마릴린 맨슨(보컬), 존 5(John 5, 기타), 트위기 라미레즈(Twiggy Ramirez, 베이스)

■ 격심해진 마릴린 맨슨의 분노

마릴린 맨슨은 이런 미디어와 대중의 맹공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미디어와 대중의 비난은 마릴린 맨슨을 매장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그를 더 분노하게 만들고, 더 난리치게 만들었다. 마릴린 맨슨은 자신의 밴드와 함께 모든 역량을 쏟아 부어 새로운 앨범을 발표했다. 사실 마릴린 맨슨은 3집에서는 적그리스도 캐릭터를 내세우지 않았다. 그러나 마릴린 맨슨을 비난하는 세력이 커지고, 특히 기독교 세력에서 비난이 훨씬 더 커지면서, 마릴린 맨슨은 다시 적그리스도가 되기로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4집에서는 2집보다 훨씬 짙은 적그리스도 색채를 띠게 된다. 짙어진 적그리스도 색채는 앨범 제목과 표지에서부터 드러난다. 표지를 보면 마릴린 맨슨 본인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십자가 모양으로 팔을 뻗고 있는 게 보인다. 얼굴은 지극히 흉측하게 일그러져있고, 몸 또한 썩어문드러지는 것 같은 모양이다. “십자가”를 상징으로 사용하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조롱으로 보인다. 그리고 “Holy Wood(신성한 목재)”라는 제목을 보자. 왠지 “Holy Bible(성경)”을 살짝 비튼 제목으로 보이는데, 성경을 “Bible(책)”으로조차 취급할 수 없는 “Wood(목재)”에 불과하다며 성경을 격하시킨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의 성기만 겨우 가린 옷차림, 성경 불태우기, 자해 등의 자극적인 퍼포먼스들을 보면, 마릴린 맨슨이 요즘 말하는 “관종”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릴린 맨슨은 그저 대중의 관심이나 끌어 모으려는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적그리스도 행세를 하는 게 아니다. 마릴린 맨슨이 음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알려면, 그의 가사를 유심히 들여다 봐야한다. 특히 노래 하나의 가사를 볼 게 아니라, 그의 앨범 전체를 소설을 읽듯이 봐야한다. 앨범을 하나의 유기체로써 그 앨범에 수록된 전곡의 가사를 유심히 살펴야 한다. 그는 앨범의 유기성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아티스트고, 그의 메시지는 노래 하나보다는 앨범을 통해 훨씬 더 잘 전달되기 때문이다. 특히 마릴린 맨슨은 이 정규 4집 앨범을 발표하면서, 이 앨범이 지난 두 앨범과 스토리가 연결되는 앨범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니까 지난 2집, 3집과 함께 3부작(Trilogy) 앨범인 셈이다. 다만 스토리라인이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 역순으로 이어진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이번에 소개할 4집 앨범이 스토리텔링 측면에서 2집과 3집의 근원인 셈이다.

 

마릴린 맨슨이 음악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일단 지난 앨범들의 주제가 무엇이었는지부터 살펴보자. 정규 2집 “Antichrist Superstar”는 앨범 제목처럼 적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다. 적그리스도의 탄생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기독교가 주류를 이루는 미국 사회의 병폐를 지적했다. 실제로 그 앨범에 실린 가사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미국 사회의 병폐 그 중심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마릴린 맨슨에 열광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극적인 퍼포먼스에 이끌려간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를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날카로운 비판 의식에 더 많이 끌렸으리라 생각해 본다. 정규 3집 “Mechanical Animals”에서는 미디어가 대중을 어떻게 현혹하고 선동하는지에 관한 얘기를 한다. 미디어를 마약처럼 소비하고 그에 의존하는 대중과, 미디어에 의해 부와 명예를 얻었지만 역설적으로 미디어에 의해 망가지는 스타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디어의 폭력성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렇다면 이번에 소개할 4집 앨범은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2집과 3집 스토리의 근원이 되는 앨범이니만큼 2집과 3집의 주제를 합친 것 같은 메시지를 품고 있다.

 

 

■ 폭력의 기원을 찾아서

음악적인 측면을 보자. 스토리 측면에서도 2집과 3집을 합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처럼,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2집의 과격함과 3집의 부드러움이 교차되며 앨범의 음악적 흐름을 만들어나간다. 이런 특성 때문에, 혹자들은 2집과 3집에 비해 개성이 부족한 앨범이라고 혹평하기는 하지만, 대다수 마릴린 맨슨 팬들은 4집을 2집과 함께 마릴린 맨슨 최고의 명반으로 뽑는다. 물론 이 앨범은 음악적인 측면만 따로 떼어내서 보더라도 훌륭한 앨범이다. 한 곡 한 곡을 들여다보면, 곡 구조가 상당히 단순한데, 그 단순한 곡 구조 내에서도 여러 시도를 엿볼 수 있다. 단순한 곡들이 연속되면서도 곡이 바뀌면서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때문에 19개 트랙에 68분이라는 긴 재생시간에도 전혀 지루하지 않다. 음악적으로 잘 짜인 앨범이니, 이 앨범의 메시지를 신경 쓰지 않아도 명반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앨범이 전하는 메시지가 뭔지 숙고한다면, 이 앨범에서 드러내는 음악성이 더 와 닿게 된다. 2집과 3집의 공통적인 메시지를 찾아보면, 그 두 가지는 “폭력”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귀결되는 걸 알 수 있다. 서로 사랑하라는 기독교의 가르침과는 달리, 파시즘에 물들어 각종 혐오를 생산하는 미국 기독교 사회. 미디어에 의해 각종 쾌락을 얻었지만, 역설적이게도 미디어에 의해 처절하게 파괴되는 개인. 이 두 가지 폭력의 기원을 찾아가는 것이 이번에 얘기할 4집의 주제다.

 

본격적으로 살펴보기 전에, 이 앨범의 구성을 살펴보자. 2집에서는 트랙을 표기하는 부분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앨범 해석의 실마리를 제공했고, 3집에서는 알파와 오메가라는 두 명의 화자를 대입해 앨범 해석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이번 4집은 트랙리스트를 네 부분으로 쪼갰는데, 2집처럼 I, II, III, 이런 식의 순차적 구성이 아니다. 4집의 네 부분에는 A, D, A, M, 이렇게 네 개의 대문자 알파벳이 적혀있고, 그 알파벳 옆에 따로 부제가 붙는다. 그런데 그 부제들을 이어 붙여 봐도 별 실마리가 나오지 않는 걸로 보아, 2집처럼 순차적 스토리라인은 아니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3집처럼 화자가 확실히 나뉘어져있지도 않다. 그래서 흔히 팬들 사이에서 2집과 3집에 비해 난해한 구성을 가졌다고 평가 받는다. 일단 트랙리스트의 의문점부터 해결하지 않으면, 이 앨범의 전체 스토리라인을 따라가는 데에 적지 않은 장애가 생긴다. 그러니 여기서부터 의문점을 해결해야 한다. 이 트랙리스트를 이해할 수 있는 결정적인 단서는 성경을 보는 것이다. 일단 첫머리 알파벳을 붙이면, ADAM(아담)이 되기 때문에 이 앨범의 스토리를 순차적으로 이해해도 상관없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성경과 비교를 하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일단 성경 얘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알파벳 다음에 붙은 부제들을 살펴보자. 그 부제들은 다음과 같다.

 

A: In the Shadow / D: The Androgyne / A: Of Red Earth / M: The Fallen

 

이걸 아담(ADAM)이라는 이름에 맞게 순차적으로 붙이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만들어진다.

 

In the Shadow The Androgyne Of Red Earth The Fallen

 

정확한 해석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난해한 문장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이 부제들을 역순으로 조합하면 어떤 문장이 만들어지는지 보자.

 

M: The Fallen / A: Of Red Earth / D: The Androgyne / A: In the Shadow

 

The Fallen Of Red Earth The Androgyne In the Shadow (그림자 속 양성구유 붉은 땅의 타락)

 

아담(ADAM)에 맞게 순차적으로 문장을 조합했을 때보다, 훨씬 해석이 자연스러워지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걸 보면, 이 앨범의 스토리는 네 가지 사건을 기준으로 역순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이걸 어떻게 알아냈느냐. 여기서 성경 이야기가 중요해진다. 일단 이 앨범의 트랙 배치 측면에서 첫 두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A와 D에는 성경에 대한 묘사가 별로 없는데, 중요한 건 뒤에 A와 M 부분을 보는 것이다. A 부분에 있는 곡 제목들을 살펴보면 예수에 대한 비유가 나오는데, M 부분에 있는 곡 제목들을 살펴보면 갑자기 창세기에 대한 비유들이 등장한다. 성경을 보면 창세기가 먼저 나오고, 그 다음 예수가 지상에 강림하는 신약이 나오는데, 어째 이 앨범은 거꾸로 되어 있다. 그래서 뒤에 부제들도 한 번 거꾸로 붙여보니, 저런 자연스러운 문장이 나왔다. 저 부제에 따라 앨범 스토리도 거꾸로 보니, 난해하게만 느껴졌던 스토리들이 훨씬 자연스럽게 와 닿았다.

 

 

▲ 3번 트랙 “Fight Song” 뮤직비디오

■ A: In the Shadow

이 앨범의 전체적 맥락을 짚어보기 전에, 앨범을 순차적으로 감상하는 것처럼, 스토리도 트랙 배치에 따라 살펴보자. “A: In the Shadow”라고 명명된 부분은 1번 트랙부터 4번 트랙까지다. 1번 트랙의 제목은 “GodEatGod”이다. 띄어쓰기 안 된 게 오타가 아니고, 실제로 이게 맞는 제목이다. “신이 신을 먹는다.”라는 기괴한 제목과 함께 스산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건반 연주로 시작한다. 가사는 여러 은유를 통해 케네디 대통령(JFK) 암살 사건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제목에 신이 들어가고, 가사는 JFK에 관한 내용인 걸로 봐서, 유일신처럼 보일 만큼 막강한 권력을 가진 JFK의 정권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표현하는 곡으로 유추할 수 있다. JFK가 신이고, JFK를 대신해 남은 권력을 먹게 될 이들이 또 다른 신이 된다는 뜻으로 “GodEatGod”이 되는 것이다.

 

JFK 정권이 무너지고, 거기에 남은 이들은 자녀들에게 폭력을 가르친다. 2번 트랙 “The Love Song”이 좀 더 진중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난입한다. JFK가 재직하는 동안에도 계속되던 폭력이, JFK가 죽고 나서도 대물림되는 현상을 가사에 담았다. 느리지만 육중한 비트와 과격한 음색으로 가사에 힘을 싣는다. 3번 트랙 “The Fight Song”은 폭력을 대물림 받은 무리가 마침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을 그린다. 이 노래 가사 중에 “I'm not a slave to a god that doesn't exist.(나는 존재하지도 않는 신의 노예가 아니야.)”라는 구절에 주목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God(신)은 종교적 예배 대상일 수도 있지만, 정치적으로 신격화 된 인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어쨌거나 신격화된 그 어떤 대상도 따르지 않겠다는 과격한 다짐을 담은 구절로 봐야한다. 폭력을 대물림 받은 이들이 또 다른 폭력에 맞서기 위해 폭력으로 저항하는 순환이 보인다. 빠르고 거칠게 갈겨대는 기타, 육중한 비트를 뿜어내는 베이스와 드럼, 목이 갈라져라 “Fight!”를 외치는 보컬까지, 폭력의 순환을 역동적으로 그려낸다.

 

4번 트랙 “Disposable Teens”는 폭력의 순환이 이어지는 세상 속에서 일회용품처럼 활용되고 소모당하는 십대들에 관한 얘기다. 그 십대들이 세상에 대한 분노를 품고 혁명을 계획한다. 십대 특유의 활기를 댄서블한 기타 리프에 담아냈다. 육중한 비트 속에서 혁명을 향한 십대들의 굳은 결의가 보인다. “We're disposable teens.(우리는 일회용 십대들이야.)”라고 반복해서 외치는 후렴구는 다분히 선동적이다. “I never really hated the one true god. But the god of the people I hated.(난 절대 참되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정말로 증오한 적 없지만, 사람들의 신을 나는 증오했지.)”라는 가사를 주목해보자. 이 앨범이 만들어진 배경을 보면,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과 관계가 깊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저 대사는 마릴린 맨슨이 노래 속 화자에게 가장 깊이 감정이입하는 순간일 것이다. 마릴린 맨슨 입장에서 보면, 기독교의 유일신을 싫어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 유일신을 따른다고 공언하는 자들이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자신에게 비난을 쏟아내는 사태를 만들다 보니, 그 사람들의 신이 싫다는 뜻으로 보인다. 서로 사랑하라 가르친 유일신은 이런 폭력에 가득 찬 세상에 대해 책임을 피할 수 있을지언정, 그 유일신을 따른다고 공언하는 자들은 이렇듯 끊임없이 폭력을 재생산하고 있으니, 그 사람들의 신은 싫다고 말하는 건 당연하다.

 

 

▲ 4번 트랙 “Disposable Teens” 뮤직비디오

■ D: The Androgyne

다음은 “D: The Androgyne”이라고 명명된 부분으로서, 5번 트랙부터 9번 트랙까지다. “A: In the Shadow”에서 JFK 정권이 무너진 이후의 상황을 보았다면, 이제는 JFK가 살해당하는 그 당시로 거슬러 갈 차례다. 그래야 폭력의 대물림이 어느 원인에서 시작되었는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5번 트랙 “Target Audience (Narcissus Narcosis)”는 처음엔 잔잔한 연주로 시작되다가, 스산한 마릴린 맨슨의 목소리가 곡을 이끌게 된다. 그러가 갑자기 연주가 과격해지며 곡의 긴장감을 극대화시킨다. JFK가 암살되기 직전, 그를 암살하려는 일당의 굳은 결의가 보인다. 6번 트랙 “President Dead”에서 신경을 긁는 고음 연주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JFK가 총에 맞고 사망한 그 시점의 혼란을 담았다. 7번 트랙 “In the Shadow of the Valley of Death”는 JFK가 죽고 나서 펼쳐지는 절망을 느린 연주와 어두운 음색에 담았다.

 

8번 트랙 “Cruci-Fiction in Space”는 특히 주목해야 할 트랙이다. 코드가 두 개뿐인 단순한 기타 리프지만, 육중한 비트와, 마릴린 맨슨의 냉소적 보컬이 만나 독특한 매력을 발산한다. 이 곡은 JFK 암살 사건을 일으킨 주동자의 입장에서 얘기한다. 그는 사람들에게 신처럼 추앙 받던 JFK를 죽이고, 이렇게 말한다.

 

“I am a revolution. I am a revelation.

 

나는 혁명이야. 나는 계시야.

 

JFK를 죽인 자신을 곧 신격화하고 있다. 그리고 다시 말한다.

 

“This is evolution. The monkey, the man, and then the gun.

 

이건 진화야. 원숭이, 인간, 그 다음엔 총으로.”

 

인간보다 총이 훨씬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는 세상을 은유로써 표현한다. 다음 9번 트랙 “A Place in the Dirt”는 8번의 화자가 품은 방대한 야심을 가사로 표현했는데, 멜로디와 음색에서 처연함이 묻어나온다. 이런 역설적인 묘사로, 야심을 품는 와중에도 병들어가는 속내와, 새로운 폭력이 도래하며 절망에 가득 차는 상황을 표현했다. 이 곡을 순차적인 스토리 라인으로 놓는다면, 곧 1번 트랙 “GodEatGod”으로 이어진다.

 

■ A: Of Red Earth

세 번째 부분 “A: Of Red Earth”는 10번 트랙부터 14번 트랙까지다. “D: The Androgyne”에서 JFK 암살 사건을 들여다봤다면, 이젠 그런 비극이 어떤 사람들에 의해 벌어지는지를 살펴볼 차례다. 그것을 살펴보기 위해 시간은 다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실 JFK 암살 사건의 주동자로 밝혀진 “리 하비 오즈월드(Lee Harvey Oswald)”는 재판 받으러 이동하는 도중에 사살당해, 그의 정확한 범행 동기는 여전히 미궁 속에 갇혀있다. 밝혀진 바로는 그의 단독 범행이라는 쪽으로 무게가 쏠리고 있지만, 미심쩍은 부분이 워낙 많아서 그를 둘러싼 설득력 있는 각종 음모론이 난무했다. 그래서 사실 8번과 9번 트랙의 화자가 오즈월드라는 것도 확실한 해석이라 할 수 없다. 그 화자가 오즈월드 본인일 수도 있지만, 각종 음모론 등에서 지목된 오즈월드의 배후 세력일 수도 있다. 마릴린 맨슨은 오즈월드를 둘러싼 여러 음모론 속에서, 자신의 시각으로 나름대로의 분석을 내렸는데, 그 분석이 담긴 부분이 마지막 두 부분인 “A”와 “M”이다. 그 중 하나인 바로 이 세 번째 “A” 부분을 살펴보자.

 

일단 이 부분에 실린 노래들의 제목부터 살펴보자. “The Nobodies”, “The Death Song”, “Lamb of God”, “Born Again”까지 제목부터 신약성서에 관한 비유들로 가득하다. 예수는 신약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5:24)” 또한 침례 요한은 멀리서 침례를 받으려 자신에게 다가오는 예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 이 구절을 통해 “하나님의 어린양”이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 수 있다. 이런 성경 구절에 기초해 저 노래들을 해석하면,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The Death Song(죽음의 노래)”를 부르던 “The Nobodies(아무 것도 아닌 자들)”이 “Lamb of God(하나님의 어린양)”처럼 영생을 얻기를 갈망한다. 그리고 구세주가 된 하나님의 어린 양은 몸소 “Born Again(부활)”하여 자신이 신도들에게 영생을 줄 능력이 있음을 확신시킨다.

 

 

▲ 10번 트랙 “The Nobodies” 뮤직비디오

하지만 이 앨범에서 마릴린 맨슨은 신약성서의 그리스도 이야기를 삐딱하게 바라본다. 10번 트랙 “The Nobodies”에서는 자신들이 죽은 거나 다름없는 비참한 자들이라 말한다. 기괴한 오르간 연주가 느리게 퍼지며 그 절규를 대변한다. 그런데 11번 트랙 “The Death Song”에서 리듬이 신나게 바뀐다. 마치 죽음을 환영하는 사람들처럼. 죽음에 지배당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죽음을 이용하는 사람이 되어, 세상을 공포로 물들여 권력을 얻고 싶다는 다짐이 드러난다. 자기네들에겐 어차피 미래고 뭐고 아무 것도 없으니 다 망쳐버리겠다는 거다. 이런 흐름 속에서 12번 트랙 “Lamb of God”은 이 앨범의 주제를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이 노래는 1절에서 시점을 JFK 암살 시점이 있던 미래로 잠깐 다시 돌린다. 2절에서는 존 레논(John Lennon)이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Mark David Chapman)에게 살해당한 사건을 언급하며, 시점을 훨씬 더 미래로 돌리는데, 그러면서 가사에서 이런 말을 한다.

 

“We were looking for the lamb of god. We were looking for Mark David.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찾고 있었어. 우리는 마크 데이비드를 찾고 있었지.”

 

언제나 세상을 구해줄 구세주를 기다리다가도, 구세주를 없애버릴 사람도 함께 갈구하는 인류의 모순을 꼬집었다.

 

마릴린 맨슨은 왜 갑자기 과거로 역순하던 시점을 잠깐 먼 미래로 향하게 만들어, 구성을 난해하게 만들었을까. 그건 여기서 언급한 두 암살 사건을 대조해보면 알 수 있다. 그 두 사건의 결정적인 공통점은,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유명인의 암살 사건이라는 것과, 단독 범행으로 결론이 났음에도 여러 음모론이 난무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마릴린 맨슨은 반복해서 절규한다.

 

“Nothing's going to change the world.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

 

이 절규의 문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곡 제목과 중첩되며 메시지를 강화한다. 존 레논에게 일어난 암살 사건과 같은 일이 그 이전에 JFK에게도 일어났고, 역사를 뒤져보면 동서고금 비슷한 일들이 속출했다. 마릴린 맨슨은 묻는다. 예수 그리스도 당신이 이 지상을 구원하러 내려왔지만, 그 때로부터 바뀐 게 도대체 뭐냐고. 세상엔 여전히 권력자들을 향한 암살, 유명인을 대상으로 한 테러 등이 이어지고, 그런 사건들이 벌어질 때마다 이득을 챙기는 배후 세력이 있다고. 예전에도 그러했거니와,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이 절규들을 찢어질 것 같은 보컬과 처연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 속에 담아내 전달한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곡은 13번 트랙 “Born Again”이다. 무엇이 부활한 걸까? 유명인의 죽음은 다른 누군가의 죽음으로 대체되고, 유명인의 죽음으로 이득을 챙긴 세력은 다른 누군가의 죽음으로 다시 이득을 챙긴다. 여기서 말하는 부활이란 폭력의 순환이 부활하는 걸 의미한다. 인류 역사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던 권력을 향한 폭력적인 권모술수가 부활하여 JFK를 향해 가게된 것이다. 오즈월드의 범행 동기가 무엇이며, 그에게 배후 세력이 있는지 없는지 그게 중요할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게 있다. 그렇게 유명한 권력자가 죽음으로써 이득을 챙기는 세력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 세력은 이득을 그저 챙기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폭력을 부추기고 재생산하여 이득을 부풀린다. 13번 트랙에서 급격히 빨라졌던 비트는, 14번 트랙 “Burning Flag”에서 더욱 다급하게 변한다. 여기서 마릴린 맨슨은 그 이득을 챙기는 자들을 향해 살벌한 독설을 퍼붓는다. 여기서 독설의 대상이 된 세력들이 5번 트랙 “Target Audience (Narcissus Narcosis)”에서 사건을 벌이게 된다.

 

 

▲ 12번 트랙 “Lamb of God”

■ M: The Fallen

드디어 마지막 부분 “M: The Fallen”에 도달했다. 지난 “A: Of Red Earth” 부분에선 신약에 관한 비유들을 접했다면, 이번엔 구약에 관한 비유들을 접할 차례다. 지난 “A” 부분에서 JFK 암살 사건이나 존 레논 암살 사건처럼, 그런 비극들이 어떤 사람들에 의해 벌어지는지를 살펴봤다면, 이번엔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살펴볼 차례다. 사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기서 마릴린 맨슨의 인류에 대한 다소 비관적인 시선이 드러난다. 일단 마릴린 맨슨은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의 폭력이 어디서 오는가에 대한 질문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천 년 전부터 고민하던 문제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마릴린 맨슨은 아무래도 성악설에 조금 더 무게를 실으며, 인간들은 원래 그런 족속들이라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결론을 짓는 것처럼 보인다.

 

신약성서 속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이야기를, 이 앨범에서 폭력의 순환이 부활하는 것으로 써먹었듯이, 구약성서의 이야기도 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써먹을 건 분명하다. 일단 여기서는 창세기에 대한 비유가 많이 나온다. “M” 부분의 첫 번째 곡인 “Coma Black”은 창세기 1장과 2장에 나오는 천지창조에 기초하여 가사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마릴린 맨슨은 이 천지장조 얘기를 폭력이 탄생하는 과정을 묘사하는데 쓰고 있다. 그런데 마릴린 맨슨의 인류를 향한 비관적 시선이 잘 드러나는 곡은 17번 트랙 “The Fall of Adam(아담의 타락)”이다. 중간에 연주가 웅장해지면서, 잔뜩 일그러진 목소리가 한 무리를 선동하는 걸 들을 수 있는데, 그 선동 내용을 자세히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Do you love your guns? Your god and your government?

 

너의 총을 사랑하느냐? 너의 신과 너의 정부도?”

 

2번 트랙 “The Love Song”의 가사와 거의 일치한다. 18번 트랙 “King Kill 33°”는 위도 33도에 위치한 JFK를 죽이자며 선동하는 내용이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19번 트랙 “Count to Six and Die (The Vacuum of Infinite Space Encompassing)”에서 곡이 끝나는 부분을 자세히 들어보는 것이다. 여기서 총알을 탄창에 장전하는 소리가 들리고, 뒤로는 총포 터지는 소리들이 은은하게 들리는데, 이 총포 소리가 어디로 이어지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 폭력의 순환

미국은 영국의 기독교인들이 종교적 자유를 찾고자 북미 대륙으로 넘어가 세운 나라다. 그런 만큼 기독교는 미국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대통령 취임식 때는 어김없이 성경에 손을 얹고 기독교의 유일신에게 선서하는 장면이 나온다. 미국이 아무리 종교적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라지만, 미국은 아직도 확고한 기독교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릴린 맨슨은 이런 기독교 사회에서도 폭력이 끊이지 않는다고 설파한다. 이런 기독교 사회가 만든 폭력의 책임을 왜 자기한테 떠넘기느냐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자기보다도 오히려 이런 기독교 사회 안에서 길러진 언론과 정치 세력들을 더 탓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항변한다. 일단 이 앨범의 스토리들을 모두 둘러보았다. 스토리를 시간 순서대로 다시 살펴보기 위해, 트랙 배치를 스토리상의 시간순대로 다시 해보자.

 

15. Coma Black / 16. Valentine's Day / 17. The Fall of Adam / 18. King Kill 33º / 19. Count to Six and Die (The Vacuum of Infinite Space Encompassing) / 10. The Nobodies / 11. The Death Song / 12. Lamb of God / 13. Born Again / 14. Burning Flag / 5. Target Audience (Narcissus Narcosis) / 6. "President Dead" / 7. In the Shadow of the Valley of Death / 8. Cruci-Fiction in Space / 9. A Place in the Dirt / 1. GodEatGod / 2. The Love Song / 3. The Fight Song / 4. Disposable Teens

 

시간순대로 다시 트랙을 배치한 스토리에 따르면, 이 앨범의 스토리는 이런 식으로 이어진다.

 

① “M: The Fallen” 폭력의 탄생과 JFK 살해를 위한 선동, 구약성서의 비유 

② “A: Of Red Earth” 폭력의 부활과 JFK 살해를 위한 행동 개시, 신약성서 사복음서 

③ “D: The Androgyne” 암살당한 JFK와 그로 인해 이득을 챙기는 사람들, 신약성서 사도행전 

④ “A: In the Shadow” JFK 암살 사건 이후 폭력을 대물림 받는 자들, 성경 이후의 세계

 

 

▲  19번 트랙 “Count to Six and Die (The Vacuum of Infinite Space Encompassing)”

 

  ▲ 1번 트랙 “GodEatGod”

이렇게 보면 스토리를 역순으로 해석하는 게 마땅하다는 건 확실해 보이는데, 마릴린 맨슨은 왜 스토리를 역순으로 배치했을까? 확실히 트랙배치를 스토리 시간순대로 배치해서 들으면, 음악이 뭔가 이상하게 흘러가는 느낌은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음악적인 면만 따지기엔 놓칠 수 없는 부분이 하나 있다.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사건의 원인을 찾아나서는 재미를 주는 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은 따로 있다. 위에서 19번 트랙이 끝날 때 들리는 총포 소리가 어디로 이어지는지 주목하라고 말했다. 그것이 이어지는 부분은 놀랍게도 1번 트랙 “GodEatGod”이다. 앨범 전체 반복 기능을 켜서 한 번 들어보라. 19번 트랙과 1번 트랙은 총포 소리가 이어지는 건 물론이고, 곡 분위기도 비슷해, 이 두 곡이 한 곡처럼 느껴지게 의도적으로 이어놓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 부분 “M: The Fallen”에서는 창세기로 비유를 든 만큼, 폭력의 탄생을 성경 속 최초의 인간인 아담이 탄생한 것에 비유할 수도 있다. 그 아담의 후손들이 벌이는 참상을 1번 트랙으로 이어지도록 만든 것이다. 그래서 첫 알파벳이 ADAM(아담)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사실 맨 마지막 트랙과 첫 번째 트랙이 이어지는 구성은 정규 2집 앨범에서도 시도한 적 있는데, 그 때는 히든 트랙이었다면, 이번엔 트랙리스트에 제대로 표기된 곡을 통해 이런 시도를 했으니,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더 노골적으로 변한 셈이다. 이런 트랙배치가 의도된 메시지임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위에도 언급한 2번 트랙의 가사가 17번 트랙에도 똑같이 나온다는 점이다. 게다가 앨범 전체 반복 기능으로 들으면, 17번에서 2번 트랙까지 겨우 세 트랙만 거치면 된다. 또한 12번 트랙에서 JFK와 존 레논을 언급하며 “Nothing's going to change the world.”라고 반복해서 절규하는 모습에서도 메시지의 명확함을 확인할 수 있다. 마릴린 맨슨은 이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공언하는 자들이 세운 사회조차도 이렇게 어지러운데, 이쯤 되면 인간의 폭력성은 원래부터 타고나는 걸로 봐야하지 않느냐고 따지는 것 같다. 이런 폭력성은 태초부터 있었으며, 예수 이후로도 계속되고 있다고, 19번 트랙과 1번 트랙의 순환 구조로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 폭력을 일으키는 건 루시퍼인가 아니면 하나님인가

여기까지 이 앨범의 스토리를 파고드니 의문이 하나 생긴다. 과연 이 땅에 만연하는 수많은 폭력의 주동자가 정말로 루시퍼일까? 사실 성경을 보면, 민족을 자연재해 등으로 심판하는 건 언제나 하나님이었고,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타 민족을 전쟁으로 말살하라고 시키는 것도 언제나 하나님이었다. 악마는 단 한 번도 인간에게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힌 적이 없고, 어떤 민족을 말살하라고 시킨 적도 없다. 그런데 이 모든 폭력의 주동자가 루시퍼라 할 수 있는가? 오히려 미국의 기독교 사회를 보면, 기독교 사회인데도 이토록 어지럽지 않은가. 루시퍼 입장에서는 좀 억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는 누구를 죽이라고 명령한 적도 없는데, 무슨 학살 같은 게 벌어지면 기독교인들이 다 자기 탓만 하니까. 그래서 하나님이 아닌 루시퍼 입장에서 성경을 쓰면, 딱 이런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루시퍼가 역사를 거치며 인간들에게 당해온 억울한 누명과 모함에 관한 해명이 담긴 그런 성경 말이다. 루시퍼는 어쩌면 그 성경을 쓰면서, 기독교 사회가 이토록 어지러워진 것에 대해 자신을 내쫓은 하나님을 조롱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물론 누가 이런 얘기하는 걸 기독교인들 입장에서 들으면, 당연히 항변할 말이 있을 것이다. 그건 성경을 하나님 뜻이 아닌 인간의 관점에서 제멋대로 해석해서 그렇다, 혹은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그렇다 등. 하지만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이 정말 마릴린 맨슨 탓일까? 그전에 폭력을 생산하고 그 폭력을 중계해서 부풀린 사람들이 누구였더라? 이런 질문을 가지고 마릴린 맨슨이 이 앨범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를 접하면, 그의 메시지가 꽤 진중하고 치밀하다는 걸 느낄 수 있다. 이 메시지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선과 악의 경계에 관한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맞이하게 된다. 선과 악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정말 세상에 신이 있어서 그 신이 정해주는 걸까. 신이 정말로 단 한 명이라면, 왜 이 세상엔 종교가 그렇게 많으며, 그 수많은 종교 중에 정말 참된 하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종교는 과연 무엇일까. 내가 믿는 종교 혹은 정치 세력이 절대적인 선이라고 믿고 평생을 거기에 헌신하며 살아왔는데, 갑자기 그 선으로부터 사기를 당하고, 버려지고, 배신당하면, 그 때도 그것을 계속 선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내가 절대적 선이라고 믿었던 것이 갑자기 선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면, 그 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마릴린 맨슨의 음악은 흉측하고 과격한 겉모습을 하고 있지만, 그런 겉모습을 한 겹 벗겨내면 이토록 삶과 세상에 대한 깊은 고찰을 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마릴린 맨슨의 질문이 나의 질문이 되고, 그 질문으로 세상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이 어지러운 세상 속에 나는 어떻게 선악의 기준을 세우며 살아갈 것인가. 선악의 기준이란 어디에 있는가. 마냥 종교나 정치에 맡겨두기만 하면 되는 걸까. 그걸로 끝인 걸까. 선악의 기준을 세우는 데 있어서 나의 역할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들을 통해 삶과 세상에 대해 어떤 답을 얻게 되든지 단 하나 확실한 건, 이런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면 던질수록, 우리는 세상 앞에 더 강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마릴린 맨슨의 음악이란 기괴하고 폭력적으로 느껴질지라도, 나에겐 깊은 성찰을 이끌어내는 훌륭한 음악이다. 나는 마릴린 맨슨의 음악을 들으며 이런 성찰을 하는 내 모습이 좋다. 그러니 당신들이 나를 사탄이라 부르겠다면, 마음대로 해도 좋다. 당신들이 당신들의 믿는 바를 실천하며 살 듯, 나는 내가 믿는 바를 실천하며 살아갈 테니.

 


트랙리스트

A: In the Shadow

1. GodEatGod

2. The Love Song

3. The Fight Song

4. Disposable Teens

 

D: The Androgyne

5. Target Audience (Narcissus Narcosis)

6. "President Dead"

7. In the Shadow of the Valley of Death

8. Cruci-Fiction in Space

9. A Place in the Dirt

 

A: Of Red Earth

10. The Nobodies

11. The Death Song

12. Lamb of God

13. Born Again

14. Burning Flag

 

M: The Fallen

15. Coma Black

16. Valentine's Day

17. The Fall of Adam

18. King Kill 33º

19. Count to Six and Die (The Vacuum of Infinite Space Encompassing)

 


같이 보면 좋은 기사

▲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 - Mechanical Animals

 

 

▲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 - Antichrist Super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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