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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옥민과 땡여사(Ock & Ddang) – 옥민과 땡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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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34: 옥민과 땡여사(Ock & Ddang) 옥민과 땡여사

 

[ 내가 나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기쁨 ]

 

 

■ 인디밴드

 

인디밴드혹은 인디레이블” “인디뮤지션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에 등장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1996, 펑크 밴드 크라잉 넛과 얼터너티브 록 밴드 옐로우 키친두 팀이 만든 앨범인 “Our Nation 1”을 인디밴드라는 말이 등장하게 된 효시로 많이 뽑는데, 그렇게 따지면 인디밴드라는 말이 우리나라에 등장한 지도 어느덧 20년이 넘은 셈이다. 그러면 96년 이전엔 인디뮤지션이 없었을까? 그 기원을 살펴보기 전에, 지금 현재 2019,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인디밴드 혹은 인디뮤지션이 어떤 것일지 살펴보자. 인디뮤지션이란, 주류와 다른 음악을 하는 사람. 딱 이 정도로만 생각하는 것 같다. 그 외엔 인디뮤지션과 비() 인디뮤지션을 가르는 명확한 기준을 알지 못한다. 그냥 사람들이 인디뮤지션이라 부르면 그게 인디뮤지션이구나, 그렇게 생각할 뿐이다. 그런데 사실 인디뮤지션이란 단순히 주류와 다른 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말은 아니다. 중소기업 밑에서 일하는 뮤지션도 아니다. 단순히 이런 뮤지션들을 인디뮤지션이라 부를 것 같았으면, 애초에 96년에 이런 단어가 따로 분리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96년 이전에는 동아기획이라는 회사를 중심으로 당시 기준으로 비주류 장르였던, , 블루스, 발라드, 포크, 퓨전재즈 등에 속하는 뮤지션들이 판을 냈었다. 훗날 여기서 속한 장르 중 몇 개가 사실상 주류로 올라오면서, 비주류 음악 전문 음반기획사라는 색깔은 옅어지기 시작했다. 요즘엔 이적이 속한 기획사 뮤직팜유희열이 이끄는 기획사 안테나뮤직이 동아기획의 역할을 이어받고 있다. 그런데 동아기획이나 뮤직팜, 안테나뮤직을 인디레이블이라 부르지 않고, 여기에 속한 뮤지션들을 인디뮤지션이라고 부르지도 않는다. 주류와 다른 음악을 추구하는 건 맞지만, 인디뮤지션은 아닌 셈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서, “인디(Indie)”라는 건 뭘까? 사실 이 말은 독립을 뜻하는 영단어 “Independence”에서 머리를 따온 단어다. 즉 인디뮤지션이라는 말을 우리말로 고치자면, 독립음악인.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여기서 뜻하는 독립이란 뭘 의미할까? 그것은 주류로부터의 독립을 의미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정의를 내려버리면, 비주류 음악인과 구분이 힘들어진다. 사실상 이런 식의 정의가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는 인디뮤지션의 정의에 가장 가까울 텐데, 원래 인디뮤지션이라는 게 그런 뜻으로 만들어진 건 아니다.

 

 

▲ "옥민과 땡여사" 멤버들. 좌측부터, 전휘영(아쟁), 김빛옥민(보컬, 기타)

결론적으로 인디뮤지션이라 그러면, 뮤지션 스스로가 독립한 걸 의미한다. , 기획사나 다른 외부의 도움을 최소화하고 뮤지션 혹은 밴드 스스로 음악 활동을 하는 걸 진정한 인디라고 불러야 한다는 거다. 인디뮤지션이란 즉, DIY 정신에 충실한 뮤지션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런 뮤지션의 DIY 정신을 최대한 존중해주는 뜻에서, 유통 혹은 레코딩만 조금 도와주는 식으로 뮤지션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하는 회사를 인디레이블이라 부른다. 인디뮤지션 본인이 곧 인디레이블이 되는 경우도 많다. , 음악을 제작하고 활동하는 것에 있어서, DIY의 비중이 얼마나 높으냐에 따라, 인디라 불릴 수 있는 당위성이 높아지는 셈이다. 기획사의 요구에 따라 음악을 고치고, 기획사의 요구에 따라 스케줄을 조정하는 뮤지션은, 인디뮤지션이라 불리기엔 당위성이 부족하다는 얘기다. 인디뮤직이란 단순히 주류와 다른 음악을 하는 걸 넘어, 뮤지션의 음악 활동 주체가 특정 권력이 아닌 뮤지션 본인이 되고자 투쟁한 결과물이다.

 

 

■ 옥민과 땡여사

 

음반 얘기에 앞서, 인디밴드에 대한 얘기를 이렇게 길게 늘어놓은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번에 소개할 이 밴드야말로, 인디밴드라는 단어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밴드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인디밴드로서 활동하는 걸 넘어서, 인디로서 활동하는 것에 대한 장점을 극대화시키고, 그것을 실컷 즐기는 정도까지 이르렀다. 지금 소개할 밴드는,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밴드 옥민과 땡여사. 내가 이 밴드와의 인연을 얘기하려면, 이 밴드에서 작곡과 작사를 전담했던 멤버 김빛옥민씨에 대한 얘기부터 해야겠다. 내가 이분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2018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16일부터 24일까지, 대구에서 미술가들이 모여 껌값전이라는 기획 전시를 마련했는데, 이 전시 제목의 유래가 흥미롭다. 미술 작품의 상업화에 맞선다는 의미로서, 이 전시에 걸리는 모든 작품을 천 원 안팎에 판다는 것이었다. 나는 19일에 여길 방문했다. 대구로 이사 갈 준비도 할 겸 집을 보고 있었는데, 집 보고 시간이 좀 남아서 전시를 보러 갔던 것이다.

 

 

▲ 옥민과 땡여사 멤버들이 손수 제작한 EP 한정판 CD들

거기 입구에 주렁주렁 아기자기하게 매달린 나무인형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게 김빛옥민 씨 작품이었다. 그건 파는 게 아니라, 이벤트를 통해 증정되는 상품이었는데, 내가 거기에 당첨이 되었었다. 그런데 그게 폐막식에 참석한 사람들에게만 주는 상품이었던지라, 안타깝게도 사정이 생겨서 거기까지 받으러 갈 수가 없었다. 대구로 이사하기 전이기도 하고. 사실 껌깞전이라는 건, 내가 인터넷으로 알고 지내던 사람을 만나러 간 것이었는데, 그가 나에게 김빛옥민 씨가 포크 음악도 같이 하고 있다는 설명을 해주셨다. “EBS 헬로루키에도 선정될 만큼 탁월한 뮤지션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벤트가 끝나고 나서 그가 김빛옥민 씨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던 게 떠올랐다. 나는 곧 SNS와 인터넷 검색을 통해 김빛옥민 씨의 음악 활동에 대한 것들을 찾았고, 그렇게 아쟁 연주자 전휘영씨와 함께 구성한 밴드 옥민과 땡여사도 같이 알게 되었다. “EBS 헬로루키에도 선정되었다는 건, 옥민과 땡여사활동을 말하는 걸 곧 알게 되었다.

 

“EBS 헬로루키를 송출하는 방송 스페이스 공감은 내가 굉장히 즐겨보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물론 TV로 본방을 보는 게 아니라 인터넷으로 재방송을 주로 본 것이지만) 내가 자주 보던 TV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사람과 간접적으로나마 접촉을 가졌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옥민과 땡여사도 그렇고, 김빛옥민도 그렇고, 정식으로 발매된 음원은 없었고, 사운드클라우드나 유튜브를 통해서만 자신들의 음원을 공개한 상태였다사실 나의 음악 청취 생활은 소장한 음반을 PC를 이용해 음원으로 변환시켜, 폰에 음원을 내장시켜 듣거나, PC로 음원 파일을 직접 재생하는 걸로 대부분 이뤄진다. 나머지는 거의 벅스를 통해 채우는데, 그래서 내게 사운드클라우드나 유튜브는 접근성이 좀 떨어지는 면이 있었다. 하지만 떨어지는 접근성에도 불구하고, 김빛옥민과 옥민과 땡여사 음원을 들으려고 일부러, 잘 사용하지도 않는 사운드클라우드를 켤 만큼 그들의 음악은 매력적이었다.

 

  

▲  “옥땡과의 저녁식사” 스케치영상

■ 자신들이 인디밴드임을 즐기는 사람들

 

옥민과 땡여사의 활동에서 큰 의의를 두는 건, EBS 헬로루키뿐만이 아니다. 옥민과 땡여사는 인디밴드라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그것을 최대한 즐기려는 노력을 많이 기울였다. 이 노력이 가장 많이 드러나는 활동이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옥땡청당”이다. 이것은 단 한 사람만을 위한 단 하나의 노래를 부르는 콘서트로서 무료로 진행했다. 둘째는 “옥땡과의 저녁식사”다. 디너쇼 개념에서 벗어나, 가족끼리 하는 오붓한 저녁식사를 모티브로 삼고, 팬들과의 깊은 소통에 초점을 맞췄다. 밴드 멤버들이 직접 음식 서빙도 했다. 단 12명만 신청을 받아 진행했다. 셋째는 이번에 발매한 EP의 한정판 세 개의 케이스를 밴드 멤버 본인들의 솜씨로 100% 수제한 것이다. 미술의 상업화에 맞서기 위해 “껌값전”에 참여한 김빛옥민의 모습이 이런 음악 활동들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정말 상업성과 인지도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권력이라면 기획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그들은 인기를 가장 극대화시킬 수 있을 때, 가장 본인들이 즐거울 때, 밴드의 잠정 해체를 선언했다. 슬프지만, 떠나야 할 때를 알고 적절한 때에 떠나는 이의 강인함과 아름다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헬로루키에 선정되어 “EBS 스페이스 공감에 출연한다는 게, 인디밴드에게 있어서 얼마나 뜻깊은 일인지, 인디밴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아니 스페이스 공감은 모르더라도, 일단 EBS라고 하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지상파 방송에 출연한다는 것 자체로 엄청난 일이지 않은가.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밴드도 아니고, 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밴드가 EBS까지 출연한다는 건 기적이나 다름없는데, 이들은 자신들이 EBS에 출연했다는 것도 딱히 내세우지 않는다. 사실 이들이 헬로루키에 지원하게 된 과정에 대한 얘길 들어보면 우습기까지 한데, 밴드 본인들은 이게 될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았고, 뽑히고 싶어서 계획도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영상 찍을 때도 놀면서 찍는다는 생각으로 대충 찍은 거라고 한다. 지원 영상으로 제출한 영상을 보면, 이 말이 괜히 겸손해보이려고 꾸민 말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을 것이다.

 

 

▲ 3번 트랙 “빛나는” 라이브영상

더 거슬러 올라가서, 이들이 결성하게 된 계기부터가 재밌다. 원래 김빛옥민 혼자서 곡도 만들고 유튜브나 사운드클라우드에 공개하고 콘서트도 하고 활동 잘 하고 있었는데, 전휘영이 어느 날 김빛옥민이랑 프로젝트 같이 해보고 싶다고 접근해온 것이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오래할 생각으로 이 밴드를 결성한 게 아니었던 거다. EBS 출연을 전면에 내세우면, 공연할 수 있는 곳도 많아질 테고, 음원이나 음반 팔기에도 훨씬 도움이 많이 될 텐데, 이들은 음반을 내기도 전에 해체선언을 했다. 김빛옥민이 웹진 빅나인과 가진 인터뷰에서 밝히길, 원래는 더 일찍 활동을 마무리 하고 싶었지만 헬로루키때문에 오히려 길어졌다고 말했다. 이들이 사이가 나빠져서 해체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의 활동을 계속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들이 함께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친자매보다 더 끈끈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 보였다고 말했다. 김빛옥민 본인도 끝까지 좋았다고 밝혔다. 단지, 처음 본인들이 의도했던 대로 프로젝트로 끝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더 오래 끌면 서로 힘들어질 것 같아서 그만두는 거라고 말했다. 이들이 중요시 했던 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인지도나 상업적 측면에서의 성공이 아니라, 본인들이 활동하면서 느낄 보람과 즐거움, 딱 그것뿐이었던 거다. 설령, 잠시나마 성공이라는 게 중요했던 적이 있었을지라도, 적어도 즐거움을 훨씬 더 소중히 여겼던 건 사실이다.

 

 

■ 동서양의 화합을 이루다

 

2019년 1월에 발표한 이 앨범은 인디밴드로서 본인들이 즐겼던 그 즐거움이 오롯이 녹아있다. 하지만 가벼운 즐거움이 아닌, 삶의 고민이 녹아든 묵직한 즐거움이다. 이 앨범을 듣고 있으면, 앨범 전체를 감싸는 밝은 분위기에 젖어드는 한 편, 가슴 깊숙한 곳까지 스며드는 위로를 느낄 수 있다. 김빛옥민의 목소리와 통기타, 아쟁, 이렇게 세 개의 소리만 흐른다는 점에서, 이 밴드와 오랫동안 깊은 대화를 소곤소곤 나누는 기분마저 든다. 저 악기들의 공통점은 전자음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목가적인 사운드가 생명의 본질적 기쁨을 일깨운다. 삶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아도,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그 자체로 기쁨을 느끼게 만든다. 사실 악기가 기타 하나뿐이었다면, 좀 쓸쓸하고 진부한 느낌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쟁이 더해지면서 음악에 색다른 즐거움이 더해진다. 두 목가적 사운드의 결합으로, 도심에서 벗어난 숲속의 맑은 공기를 한껏 마시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  2번 트랙 "새세제" 라이브영상

이 앨범의 가장 큰 성과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아쟁을 “포크(Folk)” 음악의 영역으로 끌어왔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가수 “비타스(Vitas)”는 외계인 같은 분장과 주전자 끓는 소리 같은 극한의 고음으로 유명한데, 그가 최근 몇 년 동안 국내에 크게 알려지며 하필 “아쟁총각”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아쟁이라는 악기가 최근 들어서 좀 희화화되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 앨범을 듣고 있으면 희화화된 아쟁이 아닌, 아쟁의 참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사실 아쟁은 고음을 못내는 악기라서 저 별명은 틀린 거라고 한다. 저 별명을 처음 지은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그가 해금과 아쟁을 헷갈렸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전휘영의 아쟁은 이 앨범에 실린 다섯 곡 모두에서 빛을 발하지만, 특히 1번 트랙 “구슬로”의 격정적인 연주와, 3번 트랙 “빛나는”에서 드러난 흥겨운 연주를 최고로 뽑고 싶다. 아쟁이 이렇게 다양한 표현력을 가진 악기라는 것에 대해 감탄하게 될 것이다. 대중음악에서 흔히 저음을 주로 담당하는 악기는 베이스기타지만, 여기선 그 저음악기의 영역을 아쟁이 대신하고 있다. 여기선 베이스기타엔 전혀 쓰이지 않는, 활을 이용한 연주를 많이 들을 수 있다는 게 인상적이다. 활을 이용해 부드럽고 역동적인 저음을 뿜어내는 아쟁이 청취에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흔히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는 포크 음악이라는 건, 통기타를 중심으로 목가적인 음색을 뿜어내는 대중음악의 한 장르일 텐데, 포크(Folk)라는 단어는 사실 영단어이기 전에 독일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독일어에서 포크(Folk)민속음악을 뜻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서양의 민속음악을 대중음악이라고 부르며 연주하고 있었던 거다. 그런데 이 포크에다가 우리나라 전통음악에 쓰인 악기를 들여오니, 진정한 의미로서 한국형 포크가 탄생하게 된 셈이다. 물론 나는 민족주의자는 아니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출신과 배경을 온전히 지울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아쟁이라는 악기 하나가 들어가면서, 한국어로 이뤄진 가사들에 더 큰 호소력을 불어넣게 되었다. 서양 악기와 동양 악기의 융화가 탁월하게 이뤄졌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정치 체제나 생활 방식에 있어서 서양의 영향을 주로 받으며 살게 된 우리나라 사람들이지만, 그 와중에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만의 역사를 간직한 채, 여전히 우리만의 색깔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이 앨범에서 드러나는 기타와 아쟁의 만남은, 이런 한국인들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여기서 전휘영의 아쟁 연주가 마음에 들었다면, 대구의 또 다른 포크 싱어인 오늘도 무사히의 정규앨범 송곳도 꼭 들어보길 권한다.

 

 

▲ 옥민과 땡여사 "EBS 헬로루키" 출연영상. 노래는 본 앨범 1번 트랙 "구슬로"

■ 편린들

 

이 앨범의 가장 큰 성과 두 번째는 가사다. 이 앨범은 음색이 전체적으로 밝고 활기차다. 그런데 가사를 들어보면, 이런 음악들이 얼마나 많은 고민 끝에 나왔는지 느끼게 된다. 얼핏 들으면 아무말 대잔치처럼 느껴지는 4번 트랙 방구석 독백에서도 진중함이 느껴질 정도다. 가사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그 안에서 작사가의 섬세한 감수성과 깊은 배려를 느낄 수 있다. 김빛옥민의 가사는 솔직히 귀에 잘 들어오는 가사는 아니다. 가사에서 드러내는 이미지가 추상적인 게 많고, 공감각적인 표현도 많고, 은유가 단순하지도 않다. 그래서 받아들이기에 무리가 따르는 면이 좀 있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방구석 독백같은 경우 의식의 흐름에 따라 작성한 듯, 가사의 기승전결 구조를 완전히 해체시켜버렸다. 물론 듣다보면 나름의 기승전결이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지만, 역시 이걸 쉽게 알아채기는 힘들다. 하지만 좋은 노래라는 건 반복청취하기 마련이다. 처음엔 가사보다는 김빛옥민의 깊고 부드러운 목소리와 악기들의 밝은 음색에 이끌려 청취하게 되는데, 그 청취가 계속되다 보면 어느 순간, 김빛옥민이 쓴 가사가 귀에 조금씩 뚜렷하게 새겨지기 시작한다. 김빛옥민의 목소리와 악기 연주 그리고 가사까지 하나로 온전히 조화되는 느낌이 찾아오면, 하늘이 더 맑게 보이고 공기가 더 상쾌하게 느껴질 정도로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이 앨범에서 최고로 뽑는 가사는 2번 트랙 새세제5번 트랙 편린들이다. 2번 트랙은 특히 김빛옥민의 가사 세계에서, 입문용으로 가장 좋은 곡이다. 물론 이마저도 쉬운 편은 아니지만 쉽지 않은 만큼, 받아들일 수 있게 될 때 느끼는 감동이 깊다. 이 가사의 전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사실 내용이 별 게 없다. 그냥 방에서 뒹굴다가 영감이 들어와서 노래를 좀 만들었는데, 그러다 나른한 기분에 얼핏 취했고, 그게 너무 좋아서 다음날 출근하고 나서도 그 기분이 한참 남았다는 그런 뭐, 소소한 일상을 얘기하고 있다. 사실 김빛옥민이 쓴 가사는 거의 이런 식이다. 뭔가 거창한 이상이나 연애의 특별한 순간을 담으려는 게 아니다. 그래서 이 새세제라는 곡은 김빛옥민의 가사 세계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곡이라 할 수 있다. 김빛옥민의 가사 세계에 빠져있으면, 우리가 얼마나 거창한 것들만 얘기하는 가사 세계에 빠져있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흔히 가사 세계에 있어서 일상이라고 하는 것은 엽기적인 문장들로 가볍게 소비되기 쉬운데, 김빛옥민은 평범한 우리의 일상을 깊이 있게 조명하여 묵직한 은유들로 표현한다. 김빛옥민의 가사가 어렵게 느껴지는 건 그녀가 가사를 어렵게 써서 그런 게 아니라 어쩌면, 우리가 일상을 진지하게 얘기하는 이런 가사를 많이 만나보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닐까.

  

 

▲ 5번 트랙 "편린들" 라이브영상

5번 트랙 편린들을 보자. 이것은 예술가로서 마주하는 시련에 관한 노래다. 시련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살아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 시련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음을 노래한다. 예술가들은 언제나 잊히는 것을 두려워하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길 작품을 만들기에 몰두한다. 하지만 그건 쉽지 않다. 그렇게 손을 놓아버렸을 때, 이 노래가 지친 예술가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이 노래가 예술가들에게만 해당하는 노래는 아니다. 남들로부터 잊히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는 격려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삶과 인간관계가, 곡선이 되고 직선이 되고 그렇게 세상이 그려지고 예술이 된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위로라는 단어는 묵직하게 사용될 때가 많다. 그에 비해 긍정, 격려, 이런 단어들은 얼마나 쉽고 가볍게 소비되는가. 이 노래는 위로보다는 격려에 가까운 노래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 있는 가사는 쉽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다. 때론 긍정과 격려를 말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고민과 시련의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어 야속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런데 이 노래 편린들의 가사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녀도 우리처럼 어렵고 힘든 삶을 사는 사람이라는 걸, 그녀가 쓴 조금은 어려운 가사들이 말해준다. 그녀도 우리처럼 어렵고 힘들지만, 그래도 격려를 나눠주고 싶은 그 마음이, 그 배려가 감동적이다. 좀 어렵긴 하지만, 깊고 묵직해서 좋다.

 

 

■ 떠나는 모습마저 아름다운 그들

 

옥민과 땡여사의 행보는 김빛옥민이 쓴 가사들을 지극히 닮았다. 거창한 이상보다는 소소한 즐거움을 더욱 소중히 여기는 모습이 그렇다. 더 이상 즐겁게 활동할 수 없음을 예감했을 때, 힘든 결정이었음에도 과감하게 해체를 선언했다. 김빛옥민은 노래 편린들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다시 이 자리에 볼 수 없다 하더라도, 무언간 여기 남아있어. 언젠가 잊혀지는 것에 대한 것이 두려워 말했었지. 나를 남겨야 하고 기억되어야 한다고. 하지만 그건 쉽지 않아. 대신 향기와 소리와 온기가 이곳에 깊숙이 남아 기억될 거야.” 이들의 활동은 비록 짧았지만, 김빛옥민이 쓴 가사처럼 밴드 멤버 둘에게, 그들을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이 앨범을 감명 깊게 들은 사람들에게, “향기와 소리와 온기로 언제까지나 깊숙이 남아 있을 것이다. 우리는 거창한 목표를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버리고 있는가. 물론 목표를 위해 많은 걸 희생하는 게 나쁜 건 아니다. 그것은 곧 위대한 업적으로 이어지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잃어선 안 될 소중한 걸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필요는 있다. 이들의 앨범을 듣고 있으면, 이들이 인디밴드로서 펼쳤던 활동들이 떠오르고, 그 활동들은 우리에게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만든다. 비록 해체하긴 했지만, 음반을 통해 자신들의 기록을 남겨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옥민과 땡여사의 인디밴드로서 존재했던 기쁨이 오롯이 녹아있는 이 음반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이들이 느낀 기쁨과 의미를 가슴 깊이 새긴다면 좋겠다.
 


트랙리스트

 

1. 구슬로

2. 새세제

3. 빛나는

4. 방구석 독백

5. 편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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