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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김현식(Kim Hyun-sik) - 김현식 5

인생명반 에세이 86: 김현식(Kim Hyun-sik) - 김현식 5

 

인생의 진실을 꿰뚫어본 자의 절규

 

■ 인생은 이러나저러나 무상하다는 것

대한민국 가요 역사에서 가객(歌客)이라 불린 두 사람이 있었다. 김광석 그리고, 김현식. 이 둘 모두, 지금 내 나이 서른셋에 세상을 떠났다. 나는 정말 커트 코베인, 짐 모리슨, 이 두 사람처럼 27세가 되면 죽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만 나이로도 31세가 넘었다. 요즘 김현식 노래 “넋두리”를 많이 듣는다. 김현식 5집 수록곡이라는 배경이 나를 자극한다. 김현식 5집은 김현식 생전에 발매된 그의 마지막 앨범이다. 이런 배경을 알고 들어서 그런 건지 몰라도, 그의 목소리에서 그가 겪은 인생이 고스란히 스며든 걸 느낄 수 있다. 나는 그가 노래하는 목소리에서 그의 인생에 관해 무엇을 느꼈는가.

 

인생은 이러나저러나 무상하다는 것. 나도 사실 김현식처럼 살다가, 김현식처럼 죽고 싶었다.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삶, 가장 아름다운 결말이라 여겼다. 대한민국 가요계 정상에 올랐지만, 술과 마약으로 점철된 그의 인생. 하지만 함부로 미워할 수 없는 그의 인생. 그가 단순히 노래를 잘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의 목소리에 스며든 인생의 무상함에 대한 깊은 성찰 덕분이겠다. 앞서 사랑하는 동료 음악인 유재하를 먼저 떠나보낸 그였기에, 인생의 무상함이 더욱 사무치게 가슴에 박혔으리라. 김현식 4집에 굳이, 유재하를 추모할 목적으로 “그대 내 품에”를 자기 목소리로 불러 수록한 김현식이었다. 그가 노래하는 호소에는 박력이 있었다. 그는 인생의 무상함을 박력 있게 호소했다. 그의 인생을 파멸로 몰고 간, 술과 마약도 사실은 그가 쾌락에 미친 욕심쟁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인생이 무상하다는 걸 너무 일찍 깨달아버린 형벌로써 주어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나도 내 파멸에 당위를 부여할 걸작 하나 남기고, 미련 없이 세상을 빨리 떠나고 싶었다. 김현식이 노래하는 목소리로 그런 당위를 사람들에게 호소했듯이, 나는 시를 쓰고 소설을 써서 그런 호소를 내뿜고 싶었다. 내 작품들이 세상에 널리 알려지길 바랐는데, 작품을 발표하긴 했어도, 지금 내 작품을 두고 널리 알려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그래도 나는 이만하면, 내 몫을 다했다는 생각도 해본다. 널리 알려지진 못했어도, 어쨌든 나는 썼고 완성했고 발표까지 했으니까. 유명해지든 말든 그런 게 뭐가 중요하랴. 유명해지고 돈이 많아져도 인생이 무상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 김현식

■ 아름다움은 돈이나 인기와 관련이 없다

“겉이 화려할수록 진실 메말라 있고, 겉이 화려할수록 향기 간 곳 없으니.”

 

김현식 5집 1번 트랙은 “향기 없는 꽃”이다. 가요계 정상에서 온갖 화려함을 맛본 김현식. 김현식은 그 화려함 속에 진실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가요계 정상에 올라설 수 있었던 이유가 진실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도 깨닫는다. 진실이 그를 가요계 정상에 올려준 것이 아니라면, 그를 가요계 정상으로 올려준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는 술과 고뇌로 너덜너덜해진 자신의 처지를 살펴본다. 마치 자신이 “향기 간 곳 없”는 꽃처럼 느껴졌으리라. 자신의 처지가 이토록 너덜너덜해지고서야 깨닫는다. 아름다움은 얼마나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느냐, 그런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걸.

 

아름다움은 돈이나 인기와 관련이 없다. 김현식이 노래하는 목소리에 담긴 진리라는 것이 바로 이걸 말하는 거였다. 아무도 오지 않는 산 절벽에 핀 꽃이 인기가 많아서 아름다운 것인가. 꽃은 자신이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지 적은지 관심이 없다. 하지만 내 인생의 꽃이 가진 아름다움은 인기가 없더라도 여전히 아름다우리라. 그럼 됐다. 굳이 사람들에게 내 아름다움을 애써 증명할 필요가 없다.

 

여태 화려함을 쫓아가며 살다가, 돌이키기엔 너무 늦어버린 자신의 삶을 발견하고 절규한다. 그 절규를 2번 트랙 “넋두리”에 담았다.

 

“인생을 몰랐던 나의 길고 긴 세월. 갈 테면 가라지, 그렇게 힘이 들면.”

 

그는 절규에 지쳐 잠시 밖으로 나온다. 4번 트랙 “도시의 밤”을 보자. 남루한 행색으로 거리를 걷고 있으니, 사람들이 아무도 자신을 화려한 인기 가수로 보지 않는다.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않는데,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저 높이 솟은 건물들, 이어지는 길고 긴 길, 그를 따라 끊임없이 이어지는 네온사인과 가로등, 세기도 벅찰 만큼 많은 사람들. 그 사이에서 자신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깨닫는다.

 

“당신도 나도 똑같이, 작은 사람이에요.”

 

깨달음이 주는 평화도 잠시, 그를 괴롭히던 그리움이 다시 찾아온다. 애초에 그를 그토록 음주에 몰두하게 만든 것이 무엇이었던가. 어떻게든 물리칠 수 없었던 친구를 향한 그리움이었다. 그리움이 울컥 그를 집어삼키는 장면을 3번 트랙 “그 거리 그 벤취”에 담았다.

 

“바람이라도 불어 추억이 스치면, 먼 길을 먼저 떠난 너의 생각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왈칵 울어버리지.”

 

나는 거리 안에서 작디작은 존재. 하지만 그리움은 작은 존재인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것이었다. 친구를 향한 그리움은 다른 그리운 사람들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데려온다. 그 중에 또 다른 그리운 이를 붙잡고 묻는다. 당신도 나를 이토록 그리워한 적이 있었느냐고. 나는 그대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라면, 당신 방에 매달린 거울이라도 되겠다고. 그리운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어 호소하는 심정을 5번 트랙 “거울이 되어”에 담았다.

 

“그대 가슴에 피어난 사랑을 알고 싶어요. 그대 은밀한 향기의 비밀을 알게 될까요. 방안에 매달린 당신의 거울이 되어.”

 

그리움 속에서 “재회”를 꿈꾸고 “사랑의 나눔이 있는 곳”을 다시 희망하지만, 이젠 그 모든 희망들이 부질없어 보인다. 그가 최후에 맞이한 안식처는 고독이다. 8번 트랙 “밤의 고독 속에서”를 들어보자.

 

“그 누가 나의 밤을 밝혀 주리오. 그 누가 나의 창가에 노래하리요. 나는 긴 밤의 고독 속에 영원히 잠들고 싶소.”

 

 

▲ 1번 트랙 “향기 없는 꽃”

 

▲ 2번 트랙 “넋두리”

■ 일부러 죽을 필요는 없다

김현식의 이 모든 무거운 고뇌를 뒤로 하고, 아이들이 보는 만화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밝은 음색에 활기찬 연주가 어색하게 끼어든다. 김현식은 이 모든 어색함을 물리치려 자꾸 외친다. “할렐루야” 이 곡이 수록된 계기를 보면 참 재미있는데, 김현식에겐 종교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김현식의 아내가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던 탓에, 아내의 간곡한 부탁으로 이 노래를 수록하게 되었다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도 없었고, 딱히 죽어서 천국에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아내를 향한 사랑은 있었기에,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를 어떻게든 “할렐루야”라고 외치게 만들었으리라.

 

내 인생에 하느님이라는 거창한 존재까지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굳이 영원한 삶까지 원하지도 않았고, 천국도 부담스러웠고, 깨달음을 얻으려고 애쓰고 싶지도 않았다. 윤회를 생각하는 건 내 인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다음 생에 딱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었다. 해탈에 이르려고 노력하는 수도승 같은 거 되고 싶지도 않았고, 그냥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어차피 다음 생에는 이전 생애를 기억하지 못할 테니, 윤회를 생각하는 것도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윤회가 없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순간순간 만나는 아름다움에 마음을 이끌며 살아가면, 그게 인생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젠 슬슬 아름다움에 이끌리는 일조차 지친다. 그냥 모든 걸 잊고 싶다. 내가 모든 걸 잊듯이,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나를 말끔하게 잊기를 바랐다. 그러나 내가 지금 당장 죽을 게 아니라면, 인생의 무상함을 너무 깊이 들여다보지 않는 편이 좋다. 나는 죽음을 생각하기엔 몸도 마음도 너무 건강하다. 약물 중독도 없고, 일부러 그렇게 되고 싶은 생각도 없다. 그러니 어쩌랴, 이렇게 살아야지.

 

사는 동안 어떻게든 사랑하며 살아야지. 사랑하는 동안엔 인생의 무상함을 잊을 수 있을 테니. 하지만 사랑이 힘들 때마다, 김현식의 노래에 귀를 기울여본다. 인생이 무상하다는 걸 이토록 지독하게 느낀 사람이 이 땅에 살았다는 걸 느낀다. 인생은 무상하다는 것. 이것은 진리다. 진리는 아름답다. 진리를 노래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김현식이 노래하는 아름다움에 이끌리면, 삶이 무상하듯이 죽음도 무상하다는 걸 어렴풋이 깨닫는다. 그는 술과 마약으로 고통스러운 인생을 보냈지만, 그가 진정 노래했던 건 자신의 고통이 아니었다. 그가 노래했던 건, 삶과 죽음은 어차피 무상하므로 너무 애쓰지 말라는 위로였다. 인생을 무상하다고 생각하는 게 꼭 나쁜 걸까. 요한 복음서 12장 보면,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이 영생에 이른다고 말씀하셨다.

 

그가 노래로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듣는 우리가 오히려 치유 받는 건, 그가 자기 고통으로 위로를 노래했기 때문이다. 자기 노래에 자신도 위로를 받았다. 그러니 자기 몸이 병들어 가는 줄 알면서도, 죽음이 눈앞에 닥치는 순간까지도 노래를 놓지 않았던 것이다. 김현식은 죽은 게 아니라, 여전히 노래 속에 살아 있다는 걸 느낀다. 영생이란 어쩌면 애써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이미 영생을 누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트랙리스트

1. 향기 없는 꽃
2. 넋두리
3. 그 거리 그 벤취
4. 도시의 밤
5. 거울이 되어
6. 재회
7. 사랑의 나눔이 있는 곳
8. 밤의 고독 속에서
9.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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