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명반 에세이 79: 장필순(Jang Pill Soon) -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가을처럼 식어가는 마음에도 끝내 남아있는 건
■ 가을은 식어가는 열망을 더 식기 전에 붙들라고 속삭인다
가을은 잊혀져가는 것들을 기억하는 계절이다. 여름에 찬란하게 푸른빛을 내던 나무에 이파리들은 서서히 자신의 빛을 잃어간다. 날씨에 열기는 식고 서늘한 바람이 가슴에 스며들면, 그 서늘한 기운이 내가 잊고 지내던 것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열기가 차지하던 가슴에 열기를 잃어버리는 탓이다. 서늘한 바람이 내 가슴에 통증으로 스며들 때 즈음, 이 아픔은 내게서 떠나가는 것들을 조금이라도 내 곁에 남아있을 때 더 소중히 여기라고 속삭인다. 가슴이 속삭이는 감미로운 경고. 감미로운 경고의 계절, 가을. 가을은 온 줄도 모르고 어느새 내 곁에 있다. 가을은 가을이라는 계절이 잊힐 때 즈음 내 곁에 슬쩍 서있다. 봄과 가을이 점점 짧아지는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가을은 참 자신의 천성에 충실한 운명을 따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을이 짧아지는 걸 느끼는 만큼, 잊혀져가는 가을을 더욱 기억하고, 더욱 아끼고, 더욱 사랑해야 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요즘 내게 가장 잊혀져가는 건, 글쓰기를 향한 열망이다. 솔직히 요즘 나는 예전만큼 글쓰기가 즐겁지가 않다. 글쓰기보다 즐거운 게 많아진 탓이다. 당장 날씨 맑은 날, 하늘만 바라보고 있어도 그게 글쓰기보다 재미있고, 요즘 성당 다니는 재미에 푹 빠져서, 미사 참석, 기도문 외우기, 성경 필사, 묵주 기도, 이런 것들이 글쓰기보다 훨씬 재미있다. 그러나 내 삶을 지탱해온 것이 무엇인지 떠올려보면, 역시 글쓰기를 빼놓을 수 없다. 글쓰기가 내게 준 은혜를 잊어가는 요즘, 잊혀져가는 것들을 기억하는 계절이 내 곁에 다가온 요즘, 다시 내 글쓰기를 향한 열정을 기억해본다. 한 달에 한 번은 인생명반을 써서 올리겠다는 독자들과의 약속이 있었다. 내 독자들은 온통 친절한 사람들뿐이라, 내가 쓰기 귀찮다고 갑자기 휴재한다고 해서, 나를 나무랄 사람이 없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렇게 글쓰기를 향해 게으른 태도를 표출하면 결국, 후회로 마음이 가장 아픈 건 나 자신이 되어버릴 걸 알기에, 어떻게든 인생명반 한 편을 한 달에 한 번은 꼭 써서, 독자들에게 보여주리라 다짐해본다.
문제는 이번 달에 그렇게 내 마음에 와 닿는 음악이랄 게 없었던 거다. 예전처럼 때우기 식으로 인생명반 스페셜 한 편 쓸까 생각도 해보지만, 그건 너무 게으른 결정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인생명반 스페셜 안 쓴 지도 오래되었다. 올해는 방학처럼 한 해를 보내고, 내년엔 좀 더 글쓰기에 충실한 한 해를 만들기 위해, 인생명반 스페셜을 좀 더 적극적으로 써야지 다짐해본다. 내년에 나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 하늘이 내게 글을 쓸 수 있는 여력을 허락해줄까. 잘 모르겠다. 그저 기도하는 수밖에. 기도하다 보면, 길이 보이겠지. 나는 그 길을 쭉 따라가면 그만이다. 어쨌든 9월 인생명반 한 편을 쓰긴 써야 할 텐데, 어떻게 하면 게으른 글을 쓰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럴 때 딱 떠오른 음반이 하나 있었다. 잊혀져가는 것들을 떠올리는 이 계절을 꼭 닮은 그런 앨범이다.
■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때 즈음 생각나는 앨범
“널 위한 나의 마음이 이제는 조금씩 식어가고 있어. 하지만 잊진 않았지. 수많은 겨울들, 나를 감싸 안던 너의 손을. 서늘한 바람이 불어올 때쯤엔, 또다시 살아나.”
장필순 노래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가사 일부를 따왔다. 이 문장에선 오히려 겨울을 말하고 있지만 “서늘한 바람”이라는 말 때문인지, 나는 이 노래를 겨울보단 가을에 많이 들었다. 정말로 그런지는 세어본 적이 없어서 정확히 모르겠지만, 내 직감이 그렇게 속삭인다. 겨울에 부는 바람은 춥고 시린 바람이지, 서늘한 바람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나는 이 노래를 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을에 많이 들었다. 장필순의 목소리가 “서늘한 바람”이라는 말을 훑고 지나가면, 장필순의 목소리가 장필순처럼 느껴지는 게 아니라, 서늘한 바람 그 자체로 느껴진다. 장필순이 일부러 서늘한 바람이 되려고 노력한 것도 아닌데, 저절로 그렇게 된 것처럼 느껴진다. 이건 장필순의 노래가 뛰어나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전에, 장필순이라는 사람 자체가 원래 서늘한 바람을 꼭 닮은 사람이라서 그랬으리라.
내겐 장필순이라는 사람이 그랬고,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동명앨범이 그랬다. 나는 장필순이 훌륭한 가수고,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가 명반이라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들을 뜨겁게 사랑한 기억이 전혀 없다. 그건 내가 이 앨범의 존재를 12년 전부터 알고 있었는데도, 아직도 이 앨범의 실물 음반을 소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증명하며, 내가 인생명반 연재를 6년 넘게 하고 있는데도, 이 앨범을 아직도 다룬 적이 없다는 사실이 증명한다. 내겐 장필순이라는 가수와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라는 앨범이 딱 그런 느낌이다. 잊혀져갈 때 즈음 떠오르는 음반이 아니라, 다 잊어버리기 직전에 듣고 싶어지는 그런 음반이다. 가을을 참 닮은 앨범이다. 가을이라는 계절은 잊혀져갈 때 즈음 도둑처럼 찾아온다. 이 앨범을 듣고 싶다는 마음도 그렇게 가을처럼 찾아온다.
신기하다. 나는 이 앨범을 사랑한 적이 없는데, 자꾸 이렇게 떠오르는 게. 그러면서 사랑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꼭 뜨거워야 사랑은 아니다. 서늘한 사랑도 있는 거다. 이제 깨닫는다. 나는 이 앨범을 늘 서늘한 마음으로 사랑해왔다는 걸. 더불어, 내가 글쓰기를 여전히 사랑한다는 걸 깨닫는다. 이제는 예전만큼 뜨겁게 사랑하진 않지만, 나는 여전히 글쓰기를 사랑한다. 나는 지금 글쓰기를 서늘하게 사랑하고 있다.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앨범은 1번 트랙 “첫사랑”에서, 반주도 없이 장필순의 서늘한 목소리만 덩그러니 툭 떨어진 채 시작된다. “아직 어두운”이라는 말을 노래할 땐 악기가 없다가 “이른 아침”에 노래가 닿으면, 떠오르는 아침 해를 묘사하듯 살며시 건반 소리가 울린다. 첫사랑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 사람들이 으레 떠올리는 뜨겁고 격정적인 느낌이 아니라, 서늘하고도 포근한 느낌으로 첫사랑을 노래한다. 이건 화자가 첫사랑을 한참 경험 중인 걸 노래하는 게 아니라, 첫사랑이 한참 지나고 그때를 회상하며 노래하는 탓이다. 잊혀져가는 첫사랑의 감각을 잃지 않으려 기억을 더듬고 더듬으며, 기억을 포근히 껴안는 느낌이다. 장필순이 이 노래에서 첫사랑을 노래하는 방식마저 가을에 부는 서늘한 바람을 닮았다. 그렇게 노래는 2번 트랙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의 “서늘한 바람”에 닿는다.
■ 잊혀져가는 것들을 붙잡으려는 힘겨운 몸짓
3번 트랙 “스파이더맨”은 2번 트랙까지 이어지던 서늘한 감각에서 조금 탈피해, 청자에게 이질적인 느낌을 준다. 3번 트랙의 낯선 느낌은 곧 발칙한 변주로 다가와 흥을 부른다. 이 노래에서 묘사한 “스파이더맨”은 유행을 상징한다. 이 앨범이 나온 때가 1997년 8월이었는데, 이때는 KBS2 방송국에서 “스파이더맨”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인기리에 방영 중이던 때였다. 애니메이션 속 스파이더맨은 자유로워 보인다. 손목에서 거미줄을 발사하며, 빌딩 숲을 날아다니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일탈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런 애니메이션 속 스파이더맨의 모습과는 달리, 사람들은 TV가 주도하는 유행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 없”다. 애니메이션은 흥겨울지라도, 사람들의 소비 생활은 뻔하고 답답하다. 세상이 온통 스파이더맨이다. 스파이더맨으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다. 이 뻔하고 답답한 유행의 물결이 세상을 지배해버렸으니, 유행을 벗어난 자유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노래의 배경을 형성하는 흥겨운 펑키(Funky) 연주에 장필순 특유의 서늘한 목소리가 결합한다. 연주는 유행의 흥겨움을 말하고, 장필순의 목소리는 답답한 심정을 뱉는다.
다른 한 편으로, 이 노래에서 묘사하는 “스파이더맨”이란 마블 코믹스 캐릭터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거기서 이름만 따온 전혀 다른 캐릭터라는 생각이 든다. 빌딩 숲을 자유로이 뛰노는 애니메이션 속 스파이더맨과 달리, 거미는 자신이 쳐놓은 그물 밖으로 전혀 빠져나갈 수 없는 생물이다. 거미는 거미줄을 쳐놓고, 먹잇감이 거미줄에 걸리길 기다릴 뿐이다. 그렇게 자신처럼 거미줄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형편이 된 먹잇감을 노리는 거다. 현대인은 거미줄과 같은 일상을 살아간다. 피곤한 일상의 쳇바퀴를 벗어나려 열망하지만 도무지 벗어날 수가 없다. 이런 일상의 쳇바퀴를 벗어나는 순간, 먹잇감을 잡을 방법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회사라는 거미줄 밖에선 밥을 먹을 수 없는 형편이 되어버린 거다. 이런 현대인의 일상을 거미줄에 비유하고, 그런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스파이더맨”이라고 노래한 거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의 일상을 이토록 답답하게 만든 걸까. 4번 트랙 “TV, 돼지, 벌레”에선 그것이 “채우고 채워도 부족한” “하늘을 찌르는” “우리의 욕심”이라고 답한다. 먹이를 더 많이 잡으려고, 거미줄을 더 넓게 쳐보지만, 그럴수록 거미줄이 삶을 속박하는 반경만 늘어날 뿐, 그것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영영 거미줄 바깥의 삶을 누릴 수 없게 되어버린 거다. 이런 세상에 남은 건 오직 “도로 위”를 달리는 “미친 자동차”들과, “아이들은 어디에 텅 빈 놀이터”뿐이고, 이런 세상에서 누리는 유희란 고작 집에 틀어박혀 “TV 앞에서 하루를 보”내는 거나 “돼지처럼” “먹고 또 먹”는 것뿐이다. 이 노래가 나온 지도 반오십년이 넘었지만, 이런 일상의 모습은 바뀐 게 별로 없다. 그저 TV가 스마트폰으로 보는 유튜브로 바뀐 것뿐이고, 전화로 시켜 먹던 배달 음식이 “배달의 민족”으로 바뀐 것뿐이다. 대체 이런 싸구려 유희가 우리의 슬픔을 얼마나 어루만져 줄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싸구려 유희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 우리에게 잊혀져가는 건 무엇인가.
“이 슬픔의 강은 언제쯤, 그 푸른 바다를 만날 수 있을까.”
우리는 자유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자유는 우리에게서 잊혀져가고 있었다. 여기서 노래하는 “푸른 바다”는 자유를 의미한다. 우리는 푸른 바다를 만나길 갈망하지만, 이런 일상 속에서 만나는 건 “슬픔의 강”뿐이다. 이 노래는 절에선 잔잔하게 진행하다가, 후렴에서 갑작스레 폭발하는 구조를 지녔는데, 마치 싸구려 유희와 함께 비루한 일상을 누리다가, 갑자기 분노와 슬픔이 울컥 치밀어 오르는 때를 표현한 것 같다. 우리 곁을 떠나고 있는 자유. 이 자유를 붙잡으려는 우리의 몸짓은 얼마나 아프고 힘겨우며 애처로운가.
■ 명상으로 누리는 자유
“밑 빠진 물독에 땀 흘려 물을 채우던, 그 허무한 날들 생각하지 말아요.”
5번 트랙 “풍선”으로 들어간다. 분노와 슬픔으로 세상을 일갈하던 목소리는 다시, 부드럽게 울려 퍼지는 기타 소리와 함께, 차분한 감각을 되찾는다. 싸구려 유희에 분노하던 목소리는 풍선을 향한다. 싸구려 유희보다도 오히려 더 보잘것없는 풍선. 이 풍선을 바라보며 명상에 들어가니, 자유라는 것이 어디 다른 데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런 명상이 바로 자유인 걸. 이걸 깨달으니, 내가 불평했던 싸구려 유희들마저도 고맙다. 그런 싸구려 유희들을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봉사하고 있는가 생각하면, 그것들이 결코 싸구려로 느껴지지 않는다. 모두 귀한 순간들이었다. 세상에 고맙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세상 모든 건 선물이니까. 내게 다가왔던 아픔과 분노와 슬픔마저도, 명상 속에선 모두 선물이다. 세상에 가득한 거미줄마저도 아름답다. 거미줄에 맺힌 아침이슬의 영롱한 빛을 기억하는가. 세상이 너무 시끄러워서 감사를 누릴 여유가 없었던 거다. 감사를 누릴 수 있다면, 세상에 싸구려가 어디 있겠는가. 세상이 답답하게 느껴졌던 건, 이런 여유를 허락하지 않아서 그런 거다. 아니, 세상이 허락하지 않은 게 아니라, 그저 내가 세상으로부터 그런 여유를 얻어낼 용기가 없었던 거다. 그렇다. 용기란 격렬한 몸짓을 펼칠 때만 필요한 게 아니다. 고요하고 정적인 시간을 누리기 위해서 용기를 발휘해야 할 때도 있다.
풍선을 향한 명상은 곧, 사람을 향한 명상으로 나아간다. 6번 트랙 “빨간 자전거 타는 우체부”의 등장이다. 이 트랙은 전 트랙보다 훨씬 역동적인 기타 연주를 들려준다. 그러나 거칠거나 날카롭지 않다. 자전거 달리는 풍경처럼, 딱 상쾌하고 부드럽게 빠르다. 그러나 이 노래에서 묘사하는 모든 풍경은 “우체부 아저씨”를 위한 것. 자전거로 달리며 바라보는 그 드넓은 풍경이 모두 “우체부 아저씨”를 향해 모인다. 이럴 때, 사람도 명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사람이 풍경으로 보인다. 사람이 지워진 탓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보다 더 큰 것으로 거듭난 거다.
“그래!” 명상 끝에 깨닫는다. 7번 트랙에서는 인생이란 무엇인가, 잊고 있던 당연한 사실을 떠올리며 노래한다. 인생이 원래 그런 건데, 인생이 원래 그런 거라는 걸 잊고 살다보니, 인생이 괴롭고 슬픈 것으로 느껴졌던 거다.
“혼자라는 게 좋아 보이겠지만, 내 가슴엔 너에게 보일 수 없는 눈물. 그래! 인생은 그런 것. 그래! 인생은 그런 것, 영화처럼.”
누구나 남모를 아픔과 눈물을 안고 살아간다. 나도 그렇잖아. 내게 아픔과 눈물이 없는 게 아니라, 그걸 함부로 보일 수 없으니 감추며 살아갈 뿐이다. 눈물도 아픔도 감추고, 웃으며 살아가는 거다. 인생은 원래 그런 거다. 나만 그렇게 사는 게 아니고,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인생은 그런 것, 인생은 그런 것.
■ 삶이란, 가을 소풍 같은 것
9번 트랙 “넌 항상”은 가사만 보면 “TV, 돼지, 벌레”보다도 더욱 직설적으로 일갈한다. 삶에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만 가득한 사람을 향한 일갈이다. 가사를 따라 연주는 날카롭고도 능글맞게 흘러간다. 이 노래가 재미있는 지점은 노래 중간에 엉뚱한 진행이 펼쳐진다는 거다. 얼핏 들으면 잘 못 느낄 수도 있는데, 이 노래는 무척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노래다.
“주위를 한번 되돌아봐. 더 힘든 사람들도 있지. 나름대로의 아픔 속에 살아가는 이 세상. 그게 세상이라는 거야.” 여기서 한 절이 끝나는 것처럼 진행해놓고, 바로 다음에 엉뚱한 멜로디, 전혀 다른 노래에서 가져온 것 같은 멜로디로 이런 가사를 펼친다. “하지만 꿈을 버리진 말아야 해. 우리의 꿈을 버리진 말아야 해.” 세상이 당신에게 퍼붓는 일갈에 기죽지 말라며 포근하게 격려하는 것 같다. 전에 있던 멜로디를 되찾듯 이런 가사가 이어진다. “너와 나의 세상이니, 한 번뿐인 인생이야.” 이렇게 한 절이 끝난다.
꿈을 이루려고 세상과 맞서다보니, 아프고 힘든 것만 기억하며 감사하는 여유를 잃었다. 그 여유를 잊지 말라고 잔소리를 늘어놓다가도, 결국 중요한 건 너의 꿈이라고 격려한다. 한 번뿐인 인생이니, 너의 꿈은 소중한 거라고, 잊지 말라고 당부한다. 아프고 힘들더라도, 꿈을 잃지 말고, 꿈을 잃지 않으려면, 감사하는 여유도 챙겨야 한다고 당부한다.
앨범의 마지막 12번 트랙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신나는 노래다. 이 앨범 안에는 아픔과 분노와 슬픔들이 있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이 집으로 돌아가는 흥겨운 길 위에 있다고 노래하는 것 같다. 이런 인생이 끝난 다음에 우리는 어디로 가게 될까. 나는 믿는다. 그때가 진정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는 때라고. 천상병 시인은 “귀천”이라는 시에서, 이 세상 살아가는 일을 “소풍”이라고 표현했다. 가을의 서늘한 바람을 맞고 있으니, 산다는 게 마치 가을 소풍처럼 느껴진다. 산다는 건 신나는 일이다. 삶에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있어도, 그게 다 소풍이다. 우리에겐 하늘에 돌아갈 집이 있으니까.
이 앨범에 실린 서늘한 노래들과 함께, 가을이 가진 성격을 음미해본다. 가을이 내 가슴에 불어주는 서늘한 바람, 그 서늘한 바람이 내 마음에 살며시 통증으로 떠오를 때, 이 통증은 경고가 된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잊지 말라는 애정 섞인 잔소리. 그렇다. 가을의 경고는 사랑하는 사람의 잔소리 같다. 이런 가을의 감미로운 잔소리를 들으며, 내 삶은 소중한 것들을 끌어안은 채 여전히 나아간다. 글쓰기를 향한 서늘한 애정으로, 나는 이렇게 또 글 한 편을 완성했다. 가을바람이 참 상쾌하다.
트랙리스트
1. 첫사랑
2.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3. 스파이더맨
4. TV, 돼지, 벌레
5. 풍선
6. 빨간 자전거 타는 우체부
7. 그래!
8. 그녀에 관한 짧은 얘기
9. 넌 항상
10. 사랑해 봐도
11. 이곳에 오면
12. 집으로 돌아오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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