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명반 에세이 76: 마돈나(Madonna) - Like a Prayer
신앙에 정답이 있을까
■ 다시 주님 곁으로
나의 꿈은 한 때, 기성종교를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그것이 실제로 가능한 꿈은 아니더라도, 기성종교 세력이 약화되는데 내 몫이 조금이라도 보태지면 좋겠다는 게 내 꿈이었다. 물론 영성을 부인한 적은 없었다. 기성종교를 무너뜨리겠다는 생각을 가질 때에도, 영성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나는 언제나 인생에는 맛있는 걸 먹고, 멋진 옷을 입고, 넓은 집에서 살아가는 것 말고도, 가장 중요하게 추구해야 할 것이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 가장 중요한 것이 내게는 영성이었다. 이제 기성종교는 영성을 추구할 기능이 남아있지 않다는 게 내 믿음이었고, 이제는 종교를 초월한 영성을 추구하는 게 마땅한 시대가 왔다고 믿었다.
이토록 뒤틀리고 삐딱한 반종교주의자로서 내 이름이 알려졌다면, 내 인생은 분명 파멸했으리라. 지금은 이런 내 꿈이 이뤄지지 않고 아직 무명으로 남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내 인생은 내가 한 때 꿨던 꿈과 정반대로 가고 있다. 기성종교를 무너뜨리겠다는 다짐에서, 기성종교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가톨릭 성당에 출석하게 됐으니 말이다. 이제 겨우 두 번 출석했을 뿐이고, 세례는 아직 받지도 않았지만, 지금 내 마음은 온통 가톨릭에 기울어져 있다. 내가 왜 다시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심했는지 얘기하려면, 이 글에서 그걸 다 얘기할 순 없을 것이다. 다만, 그 수많은 교회 중에 어째서 가톨릭을 택했느냐, 이거에 대해선 좀 더 얘기할 수 있다.
비록 주변에 가톨릭 신자는 없지만, 가톨릭은 내 정신세계에서 꽤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즉위하시고 나서 교황님의 타 종교를 향한 열린 태도와 진보적인 행보에 관심이 가기도 했고, 빅토르 위고 소설 “레 미제라블”을 읽으며 미리엘 주교의 청빈과 사랑을 실천하는 삶에 감동을 받기도 했다. 비록 이 소설이 한 때 가톨릭에서 금서로 지정되었다는 사실을 접했을 땐 인지부조화를 느끼긴 했지만, 한 편으로는 “유퀴즈”에 출연한 두봉 주교님을 보고 미리엘 주교와 같은 삶이 실존한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게다가 내 음악 인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 가수 윤하도 가톨릭 신자로서 자신의 세례명으로 곡을 만든 적이 있으니, 과연 내가 다음에 다닐 교회로 가톨릭을 정한 건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다.
성당에서 교리를 한 번 받고 나서 문득, 마돈나가 떠올랐다. 마돈나. 팝의 여왕이라고 불리는 그 사람. 언젠가 마돈나가 가톨릭 신자라는 얘기를 들은 거 같은데, 확인해보니 진짜였다. 게다가 자신의 가톨릭 신앙을 고백한 노래까지 만들었다니, 더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알고 있기로, 마돈나는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앞장섰던 사람인 걸로 아는데, 페미니즘과 성소수자, 이 두 가지는 가톨릭 교리와 정반대이지 않은가. 게다가 동정녀 마리아를 강조하는 가톨릭과 달리, 마돈나는 자유로운 성생활을 노래하는 가수인데, 가톨릭 교리와 정반대 행보를 걸어온 이런 사람도 가톨릭 신자로 살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나는 곧, 마돈나의 음악세계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마돈나 정규 4집 “Like a Prayer”에 관해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앨범의 1번 트랙이자, 주력 싱글로 내세운 동명곡을 알게 되었고, 해당 곡의 뮤직비디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1981년 MTV가 개국하면서, 대중음악계는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중심이 옮겨갔다. 때는 1989년, 보는 음악의 유행과 발전이 절정에 도달했을 때였다. 마돈나는 “Like a Prayer” 뮤직비디오를 통해, 보는 음악이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 신성모독은 없다
“Like a Prayer” 뮤직비디오는 가톨릭 신자 입장에서 신성모독, 독성죄로 볼 수 있는 요소들이 잔뜩 있었다. 민소매를 입고 성당에 들어서는 모습부터, 불타는 십자가와 함께 춤을 추는 장면, 흑인으로 표현된 예수와 알몸으로 키스를 나누는 장면까지, 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당시 교황이 직접 나서서, 마돈나가 광고했던 “펩시”를 불매하자고 운동을 주도했을 정도니, 가톨릭 측에서 이 작품을 얼마나 심각한 신성모독으로 여기며 분노했을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나는 “Like a Prayer” 뮤직비디오를 직접 시청하기도 전에, 이런 논란부터 먼저 접했다. 그래서 내가 이 뮤직비디오를 보며 얼마나 짜릿한 희열을 느낄지 생각했다. 금단의 영역을 건드리는 배덕에서 비롯된 희열 말이다. 그런데 내가 직접 이 뮤직비디오를 보며 느낀 감상은 그런 게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이 뮤직비디오 전체가 마돈나의 진실한 간증이라고 느꼈다. 이런 감상을 통해 뮤직비디오로부터 상냥한 위로와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나를 가장 크게 감동시킨 장면이 있었다. 마돈나가 철창 안에 갇힌 예수님 성상으로 다가가니 성상이 눈물을 흘렸고, 마돈나가 철창을 열어 성상의 뺨을 쓰다듬으니 그 성상이 실제 예수님의 육신이 되어 마돈나를 맞이한다. 나는 이 장면에서 마돈나가 자신의 신앙에 관하여 여러 의미를 함축해서 전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흔히 예수님을 철창에 가둬놓고, 그 철창에서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예수님은 너무 거룩해서 우리 삶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예수님을 우리 삶으로 초대하기를 포기하는 거다. 그보다는 예수님을 우리 삶에 초대하는 걸 두려워하는 거다. 이런 두려움이 예수님을 철창에 가두었던 거다. 예수님은 더 이상 살아 움직이는 존재가 되지 못하고 그저, 철창 안에 갇힌 성물로만 굳어 존재하게 된다.
마돈나는 여기서, 예수님을 철창 안에만 가두기를 거부한다. 마돈나는 두려움 없이 철창을 열어, 성물에 불과하던 예수님을 실제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맞이한다. 여기서 마돈나가 예수님을 맞이하는 과정이 중요한데, 마돈나가 사람들로부터 쫓기고 쫓기다가 얼떨결에 도피해 들어간 곳은 성당이었다. 세상이 아무리 자신에게 위협을 가해도, 내 한 몸 지켜줄 곳은 결국 신앙이라는 말 같다. 그 신앙은 성물처럼 굳은 게 아니라, 끊임없이 삶 속에서 살아 숨 쉬며 존재한다.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들어가든 상냥하게 맞이하는 공간, 그곳이 마돈나의 신앙이었다. 마돈나가 성가대와 함께 신나게 춤을 추는 장면은 이런 마돈나의 간증을 증폭시킨다. 그 간증이란 이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과 신앙을 함부로 판단하지만, 예수님은 언제나 자신을 상냥하게 맞이한다는 것.
이런 맥락에서 “Like a Prayer” 뮤직비디오를 감상하면, 표현이 좀 과격하고 도발적인 면은 있을지라도, 신성모독이 아닌 사랑을 느끼게 된다. 십자가를 불태우고, 예수님과 키스를 나누는 장면 등은, 사람들의 낡고 굳어버린 신앙을 향한 일갈이었으리라. 물론 누군가의 일갈을 듣고 기분이 좋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당연히 이런 일갈의 대상에 해당될 사람들은 분노할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이 여기에 분노하셨을까. 분노한 건 오직 사람들뿐이었다. 하느님은 오히려, 이런 마돈나의 간증을 기쁘게 받으셨으리라. 왜 사람들은 하느님을 자신들처럼 속 좁은 분으로 만들지 못해 안달일까.
가톨릭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있다. 마돈나의 이런 파격 행보는 분명, 가톨릭의 전통에 위협이 되었을 거라 판단했을 터. 그 위협으로부터 가톨릭의 전통을 지키려는 건, 교황으로서 당연한 조치였을 거다. 그러니 어찌 당시 교황님을 비판할 수 있을까. 다만 나는 사람들이 좀 더 열린 마음을 갖고 마돈나의 진실한 간증을 받아들이길 바랄 뿐이다. 논란과 파격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사랑과 자유를 느낀다면, 굳이 나쁜 감정이 일어날 일도 없지 않겠는가.
■ 믿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사랑을
“Like a Prayer” 앨범은 그 전체가 마돈나의 살아있는 신앙에서 비롯된 선교 의지로 가득 찬 앨범이다. 1번 트랙 “Like a Prayer”부터 마돈나는 고백한다. 자신을 부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기도처럼 느껴진다고. 자신은 그 기도에 응답하여 노래하고 춤을 춘다고. 그 목소리에 응답하여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내려주신 소명이라고.
마돈나는 믿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손을 뻗어 사랑을 실천한다. 그 대상은 흑인, 여성, 게이, 어린이, 에이즈(AIDS) 환자 등 사회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이다. 예수님께서도 과부, 장애인, 세금 징수원, 문둥병자, 어린이 등, 당대 멸시 받던 사람들에게 다가가 사랑을 베푸셨다. 그렇다고 마돈나는 예수님을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하느님으로부터 느낀 사랑을 전할 뿐이다. 종교를 전하는 것보다, 사랑을 전하는 것이 하느님께서 더욱 기뻐하실 선교일 테니까. 마돈나는 그것을 잘 이해했고, 자신의 앨범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사랑을 한껏 표출한다.
“Like a Prayer” 뮤직비디오에서부터, 흑인 인권을 향한 마돈나의 관심이 얼마나 지대한지 볼 수 있다. 잘못도 없는데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찰에게 끌려가는 흑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나중에는 그 흑인이 예수님이 되어 마돈나 앞에 나타난다. 예수님의 사랑은 바로, 이런 억울한 불평등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서 전파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것이다. “Express Yourself”는 여성들에게 연애의 주도권을 가지라고 외치는 노래이며, “Till Death Do Us Part”는 남편으로부터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여성들을 위로하는 노래다. “Cherish” 뮤직비디오에선 게이 커플을 인어로 표현하며 동성애의 아름다움을 설파한다. “Spanish Eyes”는 에이즈로 사망한 친구를 애도하는 노래라며, 마돈나가 한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한 편 “Promise To Try”와 “Oh Father” 그리고 “Act of Contrition”을 통해, 자신이 자라온 가정환경과, 자신을 지탱해준 가톨릭 배경에 대해 본격적으로 얘기한다. 마돈나는 한 인터뷰에서 “Promise To Try”에 관한 얘기를 하며, 이 곡이 자신에게 기도를 가르쳐준 어머니를 추억하는 노래라고 밝혔다. 마돈나의 어머니는 마돈나가 사춘기를 맞이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Oh Father”에선 일찍 떠나버린 어머니를 향한 슬픔과, 자신을 학대한 아버지를 향한 원망을 동시에 표현한다. 어린아이에게 불러주는 자장가 같은 곡 “Dear Jessie”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트랙으로 “Oh Father”를 놓은 건 분명, 어린이들의 삶이 자신이 겪은 것과 같이 슬픈 기억으로 남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거다. 여기 이 모든 슬픔과 원망을 이겨낼 수 있었던 건 결국 신앙이었다는 고백이 섞인다. 여기서 “Father”라고 부르는 대상이 육신의 아버지인지 하느님 아버지인지 모호하게 들리는 건, 다분히 마돈나의 의도였을 것이다. 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Act of Contrition(통회기도)”는 1번 트랙을 이용하여 만든 곡으로서, 앨범에 수미상관을 이룬다. 이를 통해, 이 앨범 전체가 마돈나의 간증이며 선교라는 의미를 확고히 전한다.
■ 내 신앙도 언제나 살아있기를
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무종교인으로 지내던 모습을 거쳐, 나는 다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심하였다. 하지만 돌아보면, 나도 그 이전에 예수님을 믿었을 시절엔, 마돈나와 “Like a Prayer” 뮤직비디오를 향해 비난과 분노를 쏟아내는 사람들과 같았다. 그들처럼 내 신앙은 낡고 굳은 신앙이었다. 예수님을 거룩한 존재로만 여기고 저 멀리 떨어뜨려 놓고선, 도무지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마돈나의 신앙과 그 신앙을 음악과 비디오로 표현한 걸 보고 있으니, 여러 의미로 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정반대로 보이는 마돈나의 인생과 가톨릭 교리 사이를 이어주는 건 사랑이다. 그리고 그런 사랑의 다리를 놓는 힘은 신앙에서 나온다. 사랑 안에선 그 무엇도 대립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 사랑을 향해 나아갈 신앙이 있으면, 세상 모든 게 하나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은 겉모습이 아니라 중심을 보신다. 예수님께선 마돈나의 자유분방한 성생활이 아니라, 그 안에 깃든 진실한 사랑을 보셨다. 마돈나의 노래와 춤이 사람들에게 그토록 진한 감동으로 남을 수 있는 건, 마돈나가 사랑을 베푸는 일로써 노래하고 춤을 추기 때문일 것이라 확신한다. 내 삶이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게 느껴져,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이 힘들고 주저하게 될 때마다, 마돈나가 표현한 당당한 간증을 떠올릴 것이다. 예수님을 향한 진실한 마음만 있다면, 겉모습이 그분의 가르침과 좀 어긋나는 건 괜찮다. 오히려 나의 지금 있는 그대로 부족한 모습을 인정하며, 예수님께 자비와 사랑을 구하는 것이 내가 나아가야 할 신앙일 것이다. 적어도 나 자신의 부족함을 한탄하며, 예수님을 굳은 성물로 만들어 놓고, 철창 안에만 모시는 것보단 훨씬 낫지 않겠는가.
마돈나(Madonna)라는 이름은 원래, 성모 마리아를 향한 경의를 담아 부르는 호칭인데, 마돈나의 이런 삶과 동정녀 마리아 사이는 왠지 한없이 어긋난 모순처럼 보인다. 모순이란 인간이기에 가질 수 있는 고유의 아름다움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아름다운 모순을 사랑하셔서, 사람들이 모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기를 바라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고, 자신을 하느님께 드리는 제물로 바쳤다. 나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내게 존재하는 모순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다. 마돈나도 그랬으리라. 가수 활동을 병행하는 것으로 유명한 크리스티나(Sister Cristina) 수녀님께서 마돈나의 대표곡 “Like a Virgin”을 재해석한 걸 봤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마돈나의 진실한 신앙에 보내는 답장이 아니었을까.
마돈나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삶과 사랑에 정답이 없는 것처럼, 신앙에도 정답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진심만 있으면, 어떤 형태의 신앙이든 모두 정답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짐을 가볍게 해주러 오셨지, 우리의 짐을 무겁게 하려고 오신 분이 아니다. 마돈나가 노래로 표현한 간증을 통해, 나는 이 사실을 온몸으로 실감했다. 내 신앙도 마돈나의 노래를 닮아, 나와 하느님만 알고 있는 진심과 그 진심으로 정한 정답을 따라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트랙리스트
1. Like a Prayer
2. Express Yourself
3. Love Song
4. Till Death Do Us Part
5. Promise To Try
6. Cherish
7. Dear Jessie
8. Oh Father
9. Keep It Together
10. Spanish Eyes
11. Act of Contrition
* 이번엔 특별히 작가 본인이 직접 변역한 가사 모음이 있습니다. 전문 변역가의 결과물이 아니기 때문에, 오역과 의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번역을 보고 싶으신 분은 아래 링크를 눌러주세요.
[가사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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