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생명반 에세이

니나 시몬(Nina Simone) - Little Girl Blue

반응형

인생명반 에세이 78: 니나 시몬(Nina Simone) - Little Girl Blue

 

모두가 나를 떠나도 음악은 늘 내 곁에

 

■ 삶이 불공평해도, 나는 노래할 수 있다

한 농부가 길을 가던 중이었다. 어디서 신음 소리가 들려서 주변을 살펴보니 바닥에, 뱀이 큰 돌에 깔려 살려 달라 애원하고 있었다. 뱀의 애원을 무시할 수 없었던 농부, 그는 뱀의 몸을 누르고 있던 돌을 치우고, 뱀을 구해주었다. 그러자 뱀은 태도가 돌변하여, 농부의 몸에 올라가 그의 목을 자신의 몸으로 칭칭 감아버렸다. 뱀은 농부를 잡아먹겠다고 위협했다. 꼼짝없이 뱀의 먹잇감이 되어버린 농부, 뱀에게 이건 불공평하다고 외치자, 뱀이 말하길, 삶은 원래 불공평한 거란다. 농부가 말하길,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불공평하다고, 살려주면 안 되겠냐고. 뱀은 농부에게 제안을 하나 했다. 가는 길에 동물 세 마리를 만나, 삶은 공평한 건지 질문했을 때, 하나라도 삶은 공평하다 대답한다면, 즉시 풀어주겠다고.

 

농부는 어쩔 수 없이 뱀의 제안을 받아들여 길을 떠났다. 처음 만난 동물은 젖소였다. 농부가 젖소에게 삶은 공평한 건지 질문하니, 젖소가 답하길, 사람들은 자신에게 맛있는 건초를 주지만, 그건 자기가 사람들에게 젖을 주기 때문이라고, 그러다가 젖이 안 나오면 사람들이 자기를 잡아먹을 테니, 삶은 불공평하다고. 농부가 다음에 만난 동물은 닭이었다. 농부가 닭에게 삶은 공평한 건지 질문하니, 닭이 답하길, 사람들은 자신을 맹수들로부터 보호해주지만, 그건 자신이 알을 낳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잔칫날이 되면 자신의 목이 제일 먼저 날아갈 테니, 삶은 불공평하다고.

 

젖소와 닭으로부터 삶은 불공평하다는 대답을 들은 농부, 그는 하얗게 질린 얼굴을 하고서, 다음 동물을 만나러 갔다. 뱀이 곧 농부를 먹을 생각을 하며 입맛을 다시고 있을 때, 농부가 세 번째로 만난 동물은 당나귀였다. 농부는 이제 끝이라는 생각에 겁에 질려, 말을 더듬으며 겨우 당나귀에게 물었다. 삶은 공평한가. 그러자 당나귀는 농부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그저 한낱 당나귀에 불과해서 삶이 공평한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어. 하지만 내가 엄마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어. 그때 엄마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삶이 공평하든 공평하지 않든, 그것에 상관없이 넌 춤을 출 수 있다고 하셨어.”

 

농부와 뱀 둘 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당나귀를 바라보았다. 당나귀는 그들의 표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서 미친 듯이 몸을 흔들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젖소와 닭이 당나귀의 춤이 너무 웃겨서 덩달아 춤을 추기 시작했다. 농부도 젖소와 닭을 따라서 춤을 추었다. 뱀도 자신만 춤을 추지 않을 수 없어서 춤을 추었다. 농부와 뱀, 둘 다 격렬하게 춤을 추자, 뱀은 격렬한 몸짓을 이기지 못하고 농부의 몸에서 떨어졌다. 농부는 그 틈을 타서 얼른 뱀으로부터 도망쳤다. 당나귀가 농부를 쫓아가자, 농부가 실컷 웃으며 당나귀에게 말했다.

 

“네 말이 맞아. 삶이 공평하든 공평하지 않든 우리는 춤을 출 수 있어!”

 

류시화 저, 인도 우화 모음집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에서 인용한 이야기다. 노래와 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춤은 자신의 몸짓을 노래로 만드는 행위고, 노래는 사람들을 춤추게 만드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당나귀가 삶이 공평하든 불공평하든 언제나 춤을 출 수 있다고 말한 것처럼, 우리도 삶이 공평하든 불공평하든 언제나 노래할 수 있다.

 

 

▲ 4번 트랙 “Little Girl Blue”

■ 니나 시몬의 가장 소박한 모습을 담은 앨범

니나 시몬, 그녀를 떠올리면 세상의 불평등을 향해 강하게 일갈하는 노래들이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그녀가 노래를 시작한 처음부터 열혈 민권운동가였던 건 아니었다. 그녀가 노래로써 민권운동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건, 1964년의 일이었다. 니나 시몬의 첫 앨범 “Little Girl Blue”는 그보다 약 5년 앞선 1959년에 발표되었는데, 그녀가 노래로써 세상의 불평등을 외치기 이전의 모습을 담고 있다. 이 앨범을 듣고 있노라면, 니나 시몬에게 삶이 공평하든 불공평하든, 노래가 언제나 그녀 곁에 머물렀음을 느낄 수 있다.

 

“Little Girl Blue” 앨범은 소박한 앨범이다. 첫 앨범이니 대중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겠다는 욕심도 보이지 않고, 특정 장르에 대한 고집도 보이지 않으며, 음악으로 실험을 하지도 않는다. 니나 시몬, 그녀를 떠올리면 으레 같이 떠오르는 사회를 향한 풍자나, 민권운동 메시지 같은 것도 없다. 그렇다고 이 앨범이 대충 만든 앨범이냐,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니나 시몬은 이 앨범에서 자신의 장기를 아낌없이 발휘한다. 장기를 발휘하되, 욕심은 느껴지지 않을 뿐이다. 이 앨범이 나올 당시는 이미 로큰롤 음악이 세상을 지배한 시대였지만, 성마르게 유행을 쫓아가지도 않는다. 적당히 보편적이고, 적당히 고전적이다. 그저 니나 시몬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걸로 채워갈 뿐이다. 이런 소박한 구성이 이 앨범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앨범을 니나 시몬 앨범 중에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니나 시몬, 그녀가 꼭 소박한 사람은 아니었다. 세계 최초 흑인 여성 클래식 피아니스트를 꿈꾸었던, 야망 넘치는 소녀가 바로 그녀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야망과 열정 이면에는 분명, 겸손한 존재들을 향한 존중과, 삶의 소박한 순간들을 향한 애정이 있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 앨범을 듣고 있노라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애초에 그녀가 블루스 가수가 되기로 결심한 것도, 단순히 당장 생계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서 그랬던 것이지, 블루스 가수로서 무슨 야망을 실천하겠다는 건 아니었다. 그녀의 평생 야망은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에 있었으니까. 그녀가 첫 앨범 “Little Girl Blue”를 발표하게 된 것도, 야망보다는 가족의 생계에 좀 더 도움이 되고자 했던, 삶의 소박한 순간들에 충실하고자 했던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리라. 꿈도 중요했지만, 그보다도 우선 삶에 충실하려고 노력했던, 니나 시몬의 소박한 마음을 느낄 수 있는 앨범, “Little Girl Blue”다.

 

앨범은 청자를 잔뜩 춤추게 만드는 곡들로 채워졌다. 1번 트랙 “Mood Indigo”는 언제나 밝은 표정을 짓던 연인이 갑자기, 우울한 표정을 보이자 불안해하는 심정을 담은 곡이다. 연인이 다시 밝은 표정을 되찾기를 바라는 마음을 신나는 재즈 리듬으로 표현한 것이다. 5번 트랙 “Love Me or Leave Me”는 당찬 마음을 바쁘게 움직이는 블루스 리듬에 담아 표현한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외로운 채로 살아가는 게 낫겠다고 말하는데, 이를 표현하는 니나 시몬의 목소리가 음과 감정 사이를 여유롭게 넘나들며 청자의 마음을 파고든다. 6번 트랙 “My Baby Just Cares For Me”는 신나는 분위기를 이어가되, 더욱 여유로운 감정을 노래한다. 자신의 연인이 세상 그 어떤 유명한 배우보다도 자신을 더욱 사랑한다고 말해주니,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마음을 표현한다. 니나 시몬의 목소리는 화자의 기쁜 감정을 따라서 한껏 쾌활한 목소리를 뿜어낸다. 총총걸음 같은 피아노 연주가 그녀의 목소리에 힘을 더한다.

 

 

▲ 10번 트랙 “I loves You, Porgy” 1960년 “에드 설리번 쇼” 공연 영상

■ 우울을 어루만지는 깊고 상냥한 목소리

니나 시몬의 목소리는 기쁨을 표현할 때도 탁월한 힘을 내뿜지만, 우울을 어루만질 때 그 깊이와 상냥함을 한껏 느낄 수 있다. 이 앨범에는 니나 시몬 특유의 콘트랄토(Contralto) 음색을 한껏 느낄 수 있는 느리고 부드러운 곡들도 충분히 들어있다. 이 곡들이 신나는 곡들 사이에 들어가 분위기를 진정시킨다.

 

2번 트랙 “Don't Smoke in Bed”는 침대에 잠든 배우자를 뒤로하고 이별을 고하는 노래다. 화자는 그를 떠나며 마지막으로, 항상 그에게 지적했지만 잘 고쳐지지 않았던 버릇을 고한다. 그를 향한 마지막 한마디가 담배 연기처럼 자욱하게, 또 느리게 흩어져간다. 니나 시몬의 목소리는 담배 연기보다 더욱 지독하게 마음을 침투하는 쓸쓸한 감정을 어루만진다. 3번 트랙 “He Needs Me”는 연인과 이별해야 할 때를 예감하지만, 아직 그에게 자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쉽게 그를 떠나지 못하는 화자의 모습을 담고 있다. 2번 트랙처럼 슬픈 느낌이지만, 비장한 감정은 많이 덜어지고 상냥한 감성이 목소리에 촉촉하게 스며든, 니나 시몬의 노래를 들을 수 있다.

 

앨범의 표제곡으로 쓰인 4번 트랙 “Little Girl Blue”를 보자. 여기선 우울과 같은 질감으로 희망을 노래한다. 피아노 소리는 마음의 문을 두드리듯 소박하게 퍼진다. 니나 시몬의 깊고 상냥한 목소리를 따라, 우울했던 마음이 서서히 부드럽게 희망으로 옮겨간다. 우울과 비슷한 질감을 가진 희망이기에, 우울할 때 들어도 저항 없이 마음에 스며드는 희망을 잔잔하게 느낄 수 있다. 잔잔하고 은은하게 빛나는 니나 시몬의 목소리, 이런 목소리로 읊조리는 가사 또한 감상에 깊이를 더한다.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보며, 자신의 불행을 곱씹는 소녀. 희망을 기다리며, 손가락을 세고, 빗방울을 센다. 빗방울을 세고 있으니, 잡념이 사라지는 것 같다. 그러다가 자신을 위로해줄 사람이 없다는 걸 울컥 깨닫고 잔뜩 슬퍼진다. 그래도 소녀는 꿋꿋하게 희망을 기다린다. 비는 언젠가 그칠 테고, 다시 해가 밝아올 걸 알기 때문이다. 나를 떠난 사람들도 있지만, 내게 새로운 사람이 올 걸 알기 때문이다. 니나 시몬의 피아노 연주는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영롱하고 화사한 음색으로 바꿔놓는다. 내 마음에 파랗게 질린 우울은 점차 맑은 하늘처럼 푸르게 변해간다.

 

 

▲ 9번 트랙 “You'll Never Walk Alone”

■ 가사 없이 부르는 노래

노래라는 것이 꼭 목소리로 불러야 하는 건 아니다. 내 귀에 들리는 음악과 함께 공명하는 마음 또한 노래인 것이다. 물론 목소리를 내며 노래를 따라 부르면 그 마음이 더 쉽게 공명할 수 있겠지만, 때론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충분하다. 아니, 목소리를 내지 않고 그저 경청하는 게 오히려, 더욱 풍부한 마음의 울림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가사 없는 곡을 연주한다는 것. 이것 또한 훌륭한 노래가 될 수 있다. 때론 연주가 가사보다 훨씬 많은 걸 표현할 때가 있다. 때론 말보다 침묵이 우리에게 더 많은 걸 가르치는 것처럼. 니나 시몬이 가수가 아닌 피아니스트를 꿈꾼 것도 바로, 이런 가사 없는 음악의 힘을 잘 깨닫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목소리로 채울 수 없는 마음의 허기를 피아노가 달래주는 것이다.

 

피아니스트를 꿈꾸었던 니나 시몬의 앨범답게, 본 앨범의 피아노 연주는 모두 니나 시몬이 맡았다. 그래서 가사가 있는 노래에서도 니나 시몬의 탁월한 피아노 실력을 한껏 감상할 수 있다. 이미 앨범의 시작을 담당하는 1번 트랙부터, 1분을 넘는 격정적인 피아노 연주로 청자를 압도하며 시작하니, 이 정도면 말이 필요 없다. 하지만 역시, 가사가 빠진 곡에서 그녀의 피아노 실력을 더욱 풍부하게 느낄 수 있다.

 

본 앨범엔 가사 없는 세 곡의 피아노 연주곡이 실렸다. 물론 피아노 독주가 아닌, 드럼과 콘트라베이스가 들어간 재즈 트리오 구성이지만, 그들은 니나 시몬의 피아노를 돋보이게 하는 역할에만 충실하고 있어, 오히려 니나 시몬의 피아노 연주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7번 트랙 “Good Bait”는 묘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발칙한 연주로 시작해, 도발적이고 격렬한 흐름으로 나아가는 것이 인상적이다. 11번 트랙 “Central Park Blues”는 본 앨범에서 유일하게 니나 시몬이 작곡한 곡이다. 여유로운 리듬으로 시작해, 점차 발랄한 흐름을 더해가며 이어지는 구성이 인상적인 곡이다. 본 앨범에 실린 피아노 연주곡 세 곡 중에, 내가 최고로 뽑고 싶은 건, 9번 트랙 “You'll Never Walk Alone”이다.

 

“You'll Never Walk Alone”은 원래 가사가 있는 기성곡이었으나, 니나 시몬은 이 곡을 오직 피아노 연주로만 채웠다. 원곡의 멜로디가 남아있지만, 니나 시몬의 편곡을 거쳐 새로운 곡으로 다시 태어났다. 곡의 제목만 남기고 가사를 모두 지워버린 건, 그 가사만으로는 미처 표현할 수 없었던 것들을 더욱 표현하고 싶다는 의지의 발현이었으리라. 여기서 느껴지는 건, 노래가 아니라, 니나 시몬의 인생이다. 그녀의 연주는 파도가 되어 내 마음에 밀려온다. 그녀가 겪었던 상실, 외로움, 절망, 그리고 그 모든 걸 이겨내려 고독해졌던 순간들, 마침내 고독을 견디고 사람들 앞에 나아와 사랑과 환영을 받는 모습까지, 니나 시몬은 가사도 없이 이 모든 걸 전달한다. 이것은 언어가 아니기에 경험이 되고, 노래가 아니기에 귀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그녀의 연주는 온몸으로 느끼는 체험이 되어 내 마음에 스며든다.

 

 

▲ 6번 트랙 “My Baby Just Cares For Me” 1988년 스페인 방송 공연 영상

■ 소박한 삶을 사랑하여,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질 줄 알았던 그녀

그녀의 인생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 실력을 주변에서 크게 인정받았고, 동네 교회에서 피아노 독주회를 열게 되는데, 니나 시몬의 부모님은 흑인이라는 이유로, 딸의 연주를 맨 뒷자리에서 관람해야 했다. 이제 막 사춘기를 겪던 어린 소녀에게 이런 풍경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대학에 들어갈 나이가 되자, 니나 시몬은 자신이 오랫동안 입학하길 갈망했던 음악원에 지원하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입학을 거절당한다. 시대는 결코 니나 시몬에게 친절하지 않았다. 시대는 니나 시몬의 삶이 얼마나 불공평한지 끊임없이 확인시켜주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나 시몬이 계속해서 노래할 수 있었던 건, 노래가 가진 힘을 그녀가 노래할 때마다 잘 느끼고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삶은 불공평하지만, 노래는 그토록 불공평한 삶마저도 아름답다고 느끼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으니까.

 

10번 트랙 “I loves You, Porgy”는 들을 때마다, 불공평한 삶 속에서도 언제나 노래할 수 있다는 걸, 그녀가 잘 깨닫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노래가 있기에, 불공평한 삶은 위로받을 수 있다는 걸, 이토록 잘 깨닫고 있기에, 이토록 깊은 목소리로 노래할 수 있다고. 이 노래는 “포기와 베스”라는 뮤지컬에 쓰인 노래로서, 베스(Bess)가 강한 힘을 가진 남편을 내버려두고, 거지이자 장애인 포기(Porgy)에게 마음이 끌리는 모습을 표현한다. 강하고 폭력적인 남편보단, 가진 것 없고 몸이 나약해도 마음만은 상냥한 포기에게 마음이 더 끌리는 거다. 아무리 포기가 마음씨가 좋아도 그렇지, 베스 본인의 인생도 이미 거칠고 힘들 텐데, 자신보다 훨씬 소박한 인생을 살아가는 포기를 향해 사랑을 품다니. 놀라운 사랑이 아닐 수 없다.

 

니나 시몬의 목소리는 베스의 사랑 그 자체인 것처럼 들린다. 아니, 니나 시몬은 그 너머의 사랑을 노래하는 것 같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흑인들을 향한 그녀의 애정을 여기서 엿볼 수 있다. 인류애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니나 시몬 본인도 시대와 환경으로부터 많은 차별을 받고, 삶이 불공평하다는 걸 실컷 느꼈을 텐데, 세상엔 자신보다도 더욱 불공평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걸 느낀 거다. 가사에선 포기라는 한 남자를 위해 노래하지만, 니나 시몬의 목소리는 포기만을 위해서 노래하는 것처럼 들리지 않는다. 이 노래는 자신과 같은 차별을 겪는 사람들 모두를 향한 세레나데인 것이다. 니나 시몬 본인의 불공평한 인생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준 건 분명, 그녀 자신이 부른 노래들이었을 거다. 니나 시몬은 자신 삶에 가장 소박한 부분을 사랑했다. 그녀가 그랬던 만큼 그들의 소박한 삶마저 사랑했고, 그래서 니나 시몬은 노래로써 그들의 소박한 삶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었던 거다.

 

그녀가 대중에게 처음 이름을 알리게 된 곡이 이 앨범에 “I loves You, Porgy”라는 건 꽤 의미심장하다. 이런 커다란 유명세를 얻게 된 건, 그녀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대중은 이미 느꼈던 걸까. 소박한 삶을 향한 그녀의 깊고 상냥한 사랑을. 그녀의 전성기가 한참 지난 1987년, 유럽에서 방영된 샤넬 향수 텔레비전 광고에, 이 앨범에 실린 “My Baby Just Cares For Me”가 배경음악으로 쓰이게 된다. 하필 이 앨범에 실린 곡으로 유럽 대중에게 다시 한 번, 니나 시몬의 이름이 크게 알려진 것도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다.

 

그녀의 노래 인생은 소박한 삶을 향한 사랑으로 시작해, 소박한 삶을 향한 사랑으로 끝난다는 느낌이다. 인종차별에 저항하겠다고 자신의 정치 선전을 노래로 만들었던 것도 역설적으로, 그녀가 노래가 가진 힘을 잘 깨닫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노래만큼 불공평한 삶에 큰 힘을 주는 건 없다는 걸 깨달았기에 그랬을 터. 세상 모든 노래는 내게 속삭인다. 삶이 아무리 불공평하게 느껴지더라도, 내 삶에 소박한 순간들을 사랑하길 멈추지 말라고. 이런 속삭임은 다양한 가수의 목소리로 들려오지만, 그 중에 니나 시몬의 목소리가 가장 잘 들릴 것만 같다. 마지막으로 이 앨범에 실린 노래는 아니지만, 니나 시몬이 소박한 인생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느낄 수 있는 신나는 노래, 당나귀처럼 웃긴 춤을 추고 싶게 만드는 노래, 하나 공유하며 마치고 싶다.

 

 

▲ Ain't Got No - I Got Life

“I ain't got no home, ain't got no shoes. Ain't got no money, ain't got no class. Ain't got no friends, ain't got no schoolin'. Ain't got no work, ain't got no job. Ain't got no man. Ain't got no father, ain't got no mother. Ain't got no children, ain't got no faith. Ain't got no earth, Ain't got no water. Ain't got no ticket, ain't got no token. Ain't got no love.

 

난 집도 가지지 않았고, 신발도 가지지 않았어. 돈도 가지지 않았고, 계급도 가지지 않았어. 친구도 가지지 않았고, 뭘 배운 적도 없어. 일도 없고, 직업도 가지지 않았어. 사람도 가지지 않았지.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어. 자녀도 가지지 않았고, 믿음도 가지지 않았지. 땅도 가지지 않았고, 물도 가지지 않았어. 티켓도 가지지 않았고, 통행권도 가지지 않았지. 사랑도 가지지 않았어.

 

Hey, what have I got? Why am I alive, anyway? Yeah, what have I got. Nobody can take away?

 

그럼, 난 뭘 가진 걸까? 난 어쨌든 살아 있잖아? 그래, 내가 가진 거. 누구도 가져갈 수 없는 거 말이야.

 

Got my hair, got my head. Got my brains, got my ears. Got my eyes, got my nose. Got my mouth, I got my smile. I got my tongue, got my chin. Got my neck, got my boobies. Got my heart, got my soul. Got my back, I got my sex. I got my arms, got my hands. Got my fingers, got my legs. Got my feet, got my toes. Got my liver, got my blood.

 

내겐 머리카락이 있고, 머리가 있어. 내겐 뇌가 있고, 귀가 있어. 내겐 눈이 있고, 코가 있어. 내겐 입이 있고, 미소가 있어. 내겐 혀가 있고, 볼이 있어. 내겐 목이 있고, 엉덩이가 있어. 내겐 심장이 있고, 영혼이 있어. 내겐 등이 있고, 섹스가 있어. 내겐 팔이 있고, 손이 있어. 내겐 손가락이 있고, 다리가 있어. 내겐 발이 있고, 발가락이 있어. 내겐 간이 있고, 피가 있지.

 

I've got life. I've got lifes. I've got headaches and toothaches and bad times too, like you.

 

내겐 삶이 있어. 내겐 삶이 있다고. 내겐 두통과 치통과 나쁜 순간들이 있지, 너와 같아.

 

I've got life. I've got my freedom. I've got life.

 

내겐 삶이 있어. 내겐 자유가 있지. 내겐 삶이 있어.”

 


트랙리스트

1. Mood Indigo
2. Don't Smoke in Bed
3. He Needs Me
4. Little Girl Blue
5. Love Me or Leave Me
6. My Baby Just Cares For Me
7. Good Bait
8. Plain Gold Ring
9. You'll Never Walk Alone
10. I Loves You, Porgy
11. Central Park Blues

 


같이 보면 좋은 기사

▲ 니나 시몬(Nina Simone) 명반 BEST 5 – 블루스 아이콘이자 급진적 흑인 민권운동가

 

 

▲ 김광석(Kim Kwang-seok) – 김광석 네번째

 

 

▲ 아이유(IU) - CHAT-SHIRE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