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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리조(Lizzo) - Cuz I Lov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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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62: 리조(Lizzo) - Cuz I Love You

 

프로파간다를 초월한 다양성의 승리

 

■ 예술과 정치 사이, 작품과 프로파간다 사이

“간란산에서 그것이 전부 보이지는 않지만 가니타에는 건설 도중에 중단된 공사가 너무 많은 것 같다. 「마을 행정이 활발하게 추진되는 것을 막는 고루한 책동자 같은 녀석이 있는 게 아냐?」 하고 N군에게 물었더니, 이 젊은 구의원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그만둬, 그만둬」라고 했다.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무사의 주먹구구식 장사, 문학가들의 정치 참견이다. 가나타 마을의 행정에 대한 나의 주제넘은 질문은 전문가인 구의원의 비웃음을 초래하는 바보스러운 결과로 끝났다. 어쨌든 예술가의 정치 참견은 실수의 근원이다. 한 사람의 가난한 글쟁이에 지나지 않는 나는 간란산의 벚꽃이랑, 또 쓰가루의 친구들의 애정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쪽이 무난할 것이다.”

 

다자이 오사무 기행문 “쓰가루”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다자이 오사무는 이어서, 프랑스 화가 에드가 드가의 일화를 예로 들면서, 예술가는 웬만하면 정치에 참여해선 안 된다는 견해를 고수하기도 했다.

 

예술과 정치 사이를 논할 때, 브릿팝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브릿팝이 크게 유행하던 90년대 영국에선, 브릿팝이라는 음악적 움직임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당시 영국에서는 좌우를 막론하고, 국수주의를 내세우는 것이 국민들을 설득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에 영국적 색채가 잔뜩 들어간 브릿팝이라는 록 음악이, 젊은 층의 국수주의를 고취시킬 훌륭한 수단이라는 인식이 정치권에서 유행했고, 정치권과 언론의 합작으로, 브릿팝은 점차 국수주의의 상징처럼 굳어져갔다.

 

이에 반감을 느껴 적극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낸, 스웨이드의 브렛 앤더슨 같은 뮤지션이 있었는가 하면, 블러는 자신들에게 얹어진 브릿팝이라는 꼬리표를 적극적으로 거부하기도 했다. 그에 반해 오아시스는 적극적으로 정치인들과 만나며, 그들의 힘을 입기도 했다. 그러나 오아시스의 핵심 멤버였던 노엘 갤러거는 훗날 자신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로, 당시 정치인들과 어울려 다녔던 일을 뽑기도 했다.

 

이렇듯 한편에선 정치와 예술의 관계를 지극히 상극의 관계로 두려는 의견이 있다. 반면에 예술가라고 해서 정치에 참여하지 말라는 법이 있느냐고 반문하는 조지 오웰 같은 작가도 있다. 그는 자신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서 정치와 예술의 관계에 대해 이런 의견을 내놓은 바 있다.

 

“먹고 살아야 한다는 요구를 제외한다면, 나는 작가들이 글을 쓰게 되는 데는 (산문 작가의 경우) 네 가지 큰 동기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 동기들은 작가에 따라 각각의 정도가 다르고, 동일 작가의 경우에도 그가 사는 시대의 분위기에 따라 각 동기의 비중이 달라지기도 한다. 네 가지 동기란 이런 것이다.

 

첫째, 순전한 이기심. 둘째, 미학적 열정. 셋째, 역사적 충동. 넷째, 정치적 목적.(‘정치적’이란 용어는 이 경우 가능한 한 넓은 의미이다.) 세계를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욕망, 어떤 사회를 성취하고자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꿔보려는 욕망. 어떤 책도 정치적 편견으로부터 아주 자유롭지 않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견해 자체도 하나의 정치적 태도다.”

 

 

▲ 리조 싱글 “Truth Hurts” 뮤직비디오

■ 그럴지라도 예술과 프로파간다는 구별되어야 한다.

예술가의 정치 활동을 이토록 강하게 옹호하던 조지 오웰마저도, 예술은 예술다워야만 한다는 의견을 이어서 내놓는다. 같은 에세이에 나온 다음 서술을 살펴보자.

 

“성질상 나는(여기서 ‘성질’이라 함은 처음 우리가 어른이 되었을 때 우리가 도달해 있는 상태를 말한다.) 위에 열거한 네 가지 동기들 가운데 앞의 세 가지 동기가 네 번째 것을 족히 압도했을 만한 사람이다. 평화 시대였다면 나는 틀림없이 화려한 책 혹은 단순한 묘사 위주의 책을 썼을 테고 나의 정치적 충성이 어느 쪽에 있는지도 모르는 채 살았을 것이다. 어찌어찌해서 나는 결국 일종의 팸플릿 저자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잘 맞지 앉는 직업(인도와 버마에서의 대영 제국 경찰)으로 첫 오 년을 보냈고 가난을 경험했으며 실패를 맛보았다. 이런 경험 덕분에 나는 권위에 대해 안 그래도 이미 갖고 있던 증오를 한층 더 키웠고 노동자 계급의 존재를 처음으로 충분히 알게 되었다. 또 버마에서의 내 직업은 제국주의의 특성도 웬만큼 알 수 있게 했다.

 

지난 십 년을 통틀어 내가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은 정치적 글쓰기가 예술이 되게 하는 일이었다. 나의 출발점은 언제나 당파 의식, 곧 불의(不義)에 대한 의식이다. 책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을 때 나는 나 자신에게 「자, 지금부터 나는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낼 거야.」라고 말하지 않는다. 책을 쓰는 것은 내가 폭로하고 싶은 어떤 거짓말이 있기 때문이고, 사람들로 하여금 주목하게 하고 싶은 어떤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일차적 관심은 사람들로 하여금 내 말에 귀 기울이게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글을 쓴다는 것이 동시에 미학적 경험이 아니라면 나는 책을 쓰지 못하고 잡지에 실릴 글조차 쓸 수 없다. 누구나 내 작품을 검토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내가 쓴 것들 중에 전적으로 선전적인 책조차 본격적인 정치인의 눈에는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이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즉, 정치적인 견해를 강하게 드러내는 작품이라 할지라도, 예술 작품이라면 어쨌든 프로파간다와 구별되어야 한다는 말을 조지 오웰은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나는 조지 오웰보다는 다자이 오사무의 의견에 좀 더 동의하는 편이지만, 내가 지금껏 써왔던 글들을 돌아보면, 내 글도 어떤 면에선 다분히 정치적이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이 시리즈를 통해 많은 음반들을 다뤄왔는데, 그중에는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깔린 작품들이 몇 개 있었다. 존 레논이 그러했고, 섹스 피스톨즈가 그러했고,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도 그러했고,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도 그러했다. 국내에선 노브레인의 초창기 작품들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정치 메시지를 강하게 부르짖으면서도, 자신들의 정치를 특유의 예술 문법으로 치환시키는 것에 성공해, 명반으로 인정받은 사례들이다. 조지 오웰이 시도하고자 했던 “정치적 글쓰기가 예술이 되게 하는 일”을 그들은 음악을 통해, 음반을 통해 이룬 셈이었다.

 

그 어떤 예술도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자신의 작품을 통해, 다른 사람의 동의를 얻고자 하는 것, 사람들로부터 인기를 얻고자 하는 것, 이것들도 모두 정치라는 단어 안에 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거장 예술가들은 정치 선전물과 예술 작품은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결국 우리에게 오래 기억되고 사랑받는 작품일수록, 예술의 본질적 특성에 충실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 리조 싱글 “Rumors (feat. Cardi B)” 뮤직비디오

■ 21세기 예술과 문화 그리고 PC

21세기도 어느덧 20년이 지나버린 지금 시점에서,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제가 있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 흔히 PC라고 불리는 사회적 현상이 그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서 인류는 교통수단과 통신기술의 발달로 급속한 세계화를 이루었다. 이는 상대방의 문화를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환경을 만들었고, 이는 인종 및 국가 혹은 성별에 대한 차별을 금기시하는 결과를 낳았다. 다양한 문화를 포용하여 세계화의 올바른 전형을 제시하자는 것, 이것이 오늘날 PC라 불리는 현상의 골자일 터.

 

예술은 문화의 정점이자 최고의 사치라고 할 수 있다. 의식주가 모두 일정 수준에 도달한 사회일수록 예술이 큰 발전을 이루는 현상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문화를 얘기할 때 가장 정점에서 얘기하게 되는 건 언제나 예술이다. 예술이란 한 사회의 문화 수준을 가늠할 때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해낸다. 따라서 PC가 여러 문화권에서 득세할수록, PC는 수많은 예술 작품들에 영향을 주게 되었다. 그러나 PC 또한 하나의 정치 성향이라는 것을 창작자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PC가 요즘 대세라고 해서, PC를 너무 쫓다보면 프로파간다처럼 되어버릴 테니 말이다. 이 지면에 미처 다 담지 못할 정도로, 이미 그런 지적들이 흔하게 있어왔고 말이다.

 

음악계를 보자면 타 예술 분야에 비해선 그나마 이런 지적이 덜한 것 같다. 오히려 내가 보기엔 현 시점에서 PC를 가장 세련되고 영리하게 표현하는 예술 분야는 대중음악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오늘은 이런 PC 예술의 선봉장에 선 뮤지션을 한 명 소개하고자 한다.

 

“They don't know I do it for the culture, goddamn.

 

쟤넨 내가 문화를 위해 이걸 한다는 걸 모르나봐, 썅.”

 

“PC가 문화를 망친다.”라는 말을 버릇처럼 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런 시원한 일갈을 날리는 사람, 바로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리조”다. 확실히 PC를 예술 작품에 녹여내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억지스럽고 선전적인 행태들이 난무했던 것은 사실이나, 그런 수준 이하 작품들이 PC 전체에 대한 비난으로 번지는 것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PC 자체를 잘못된 사상으로 간단히 규정해버리는 게, 어쩌면 PC를 예술에 억지로 끼워 넣으려는 행태보다 더 위험한 것 아닐까? 지금 같은 세계화 시대에, 그 어느 때보다도 상호존중의 가치가 중요시되고 있는 이 시점에, 기존의 편향적인 문화를 조금 몰아내고, 좀 더 다양한 문화를 만들자고 외치는 PC가 꼭 나쁘다고만 할 수 있을까? 이건 오히려 우리가 받아들여야 할 시대의 당연한 흐름이라고, 나는 주장하는 바이다. 물론 지금은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러 시행착오들이 있을 것이고, 그런 시행착오들은 마땅히 비판하고 시정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PC를 향한 모든 비난과 혐오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

 

 

▲ 1번 트랙 “Cuz I Love You” 뮤직비디오

■ 그저 자기 얘기를 풀어놨을 뿐인데 사회를 향한 메시지가 된다.

PC 음악의 선봉장으로 보이는 리조지만, 오히려 그녀는 PC라는 대의보다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더욱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그녀 스스로도 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보내는 데 열성인 건 사실이지만, 그녀의 작품 외적 행보를 제쳐두고서, 그녀의 작품만 딱 놓고 보자면 의외로 PC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경우는 별로 없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이는 그녀의 2019년 작품 “Cuz I Love You”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Cuz I Love You”는 리조의 세 번째 정규앨범으로서, 그녀가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본격적으로 주목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작품이다. 지금이야 그녀의 PC적 행보가 주목받고 있지만, 사실 그녀는 뛰어난 음악성으로 가장 먼저 주목받았다. 펑크(Funk)와 댄스 음악을 논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거장 “프린스(Prince)”가 그녀의 초창기 음악 활동을 지원해주었을 정도니 말이다.

 

“Cuz I Love You” 앨범의 수록곡들을 살펴보면 2번 트랙 “Like A Girl”이나 9번 트랙 “Better In Color”만 빼면 그저 잘 만들어진 팝 댄스 음반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저 연애라는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를 주로 얘기하고 있고, 자기의 매력을 뽐내는 것에 더욱 열심이다. 사실 앞서 언급한 두 트랙도 PC 메시지가 다른 트랙에 비해 두드러지기는 하지만, 저 두 트랙도 리조 본인의 캐릭터를 강조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메시지가 드러나고 있어, 딱히 정치적인 트랙이라는 느낌을 받지는 않게 된다. “신디 로퍼(Cyndi Lauper)”의 노래 “Girls Just Want To Have Fun”이 웬만해선 페미니즘 노래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그저 흥겨운 노래로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있지 않던가. 사실은 이런 게 그 무엇보다도 가장 효과적인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앨범과 동명곡인 1번 트랙 “Cuz I Love You”를 먼저 보자. 이 곡은 놀라운 구조를 갖고 있는데, 시작부터 리조의 목소리만이 홀로 울려 퍼진다. 그리고 뒤이어 터지는 웅장한 연주는 마치 리조와 한 몸인 것처럼 뿜어진다. 자신의 슬펐던 과거마저 날려버릴 만큼 강력한 사랑에 빠져, 자신이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 탁월하게 표현한다. 자신의 사랑을 이토록 강한 호소력으로 전달하는 여성이라니, 이보다 더 매력적일 수가 있을까!

 

 

▲ 3번 트랙 “Juice” 뮤직비디오

리조의 매력을 얘기할 때 3번 트랙 “Juice”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 곡은 본 앨범의 리드싱글이었으나, 처음엔 차트에서 그다지 괄목할만한 성적을 내놓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가 “Truth Hurts”라는 노래로 요즘 흔히 말하는 “역주행”을 경험했듯, 이 “Juice”라는 곡도 앨범이 대중과 평단을 모두 사로잡는데 성공하며 점차 주목받기 시작했고, 어느새 유튜브 조회수는 1억 회에 달하게 되었다. 이젠 리조의 대표곡으로서 당당히 이름을 올릴 수 있을 정도.

 

“If I'm shinin', everybody gonna shine. I was born like this, don't even gotta try. I'm like chardonnay, get better over time. Heard you say I’m not the baddest, bitch, you lie.

 

내가 빛난다면 모두가 빛날 거야. 난 원래 이렇게 태어난 걸, 별 노력도 안 했는데 말이야. 난 명품 와인 같아,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진해지는 게. 야, 너 거짓말 하지 마, 내가 끝내주는 년인 거 다 알면서.”

 

가사만 보면 유치한 자아도취처럼 보일 수 있지만, 리조는 랩과 노래를 능숙하게 오가며 가사에 설득력을 더한다. 그녀의 외모나 행보 때문에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일지라도, 그녀가 뿜어내는 흥겨움마저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녀에겐 이토록 거부할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음악은 그녀 자신의 매력을 표출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라는 걸 이 곡을 통해 증명한다.

 

“미시 엘리엇(Missy Elliott)”이 참여한 7번 트랙 “Tempo”를 보자. 이 곡엔 이런 가사가 후렴으로 등장한다.

 

“Slow songs, they for skinny hoes. Can't move all of this here to one of those. I'm a thick bitch, I need tempo. Fuck it up to the tempo.

 

느린 노래는 말라빠진 년들을 위한 것. 그것들로는 여기에 그 누구도 움직일 수 없지. 나는 굵직한 년, 박자가 더욱 필요해. 박자를 따라 조져버리자.”

 

자신을 “Thick bitch(굵직한 년)”이라 표현한 이 구절을 음미하다보니, 그녀의 공연 영상을 처음 봤던 때가 떠오른다.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Glastonbury Festival)”에서 그녀가 가졌던 무대였는데, 그녀의 커다란 몸집만큼이나 커다랗게 다가오던 그녀의 춤사위, 무대매너까지. 전에는 미처 경험하지 못한 빅 사이즈 감동이었다.

 

리조는 성량을 크게 지르고 흥겨운 박자에 맞춰 노래하는 것 외에도, 끈적끈적한 블루스 박자에서도 자신의 매력을 뽐낸다. 그런 의미에서 11번 트랙 “Lingerie”는 앨범을 마무리하기에 탁월한 선택이었다. 앨범 전체에 걸쳐 이토록 다양한 매력을 펼치는 리조인데 어찌 그녀의 음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 7번 트랙 “Tempo” 뮤직비디오

■ 예술가가 정치를 하려면 역설적으로 예술에 가장 충실해야 한다.

여기까지 봤으면, 그녀가 어떤 사상을 전달하려는 마음보다도 자신의 매력을 예술로 표현하는 데 더욱 열중했다는 걸 충분히 느꼈을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녀를 PC 예술의 선봉장으로 여기곤 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게 PC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훌륭한 뮤지션이면서도 그 자체로 이미 흑인이고, 여성이고, 빅 걸(Big Girl)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의 매력을 충실하게 어필하기만 해도, 인종화합 및 페미니즘 그리고 몸 긍정주의(Body Positive) 메시지까지 저절로 따라오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에는 다양한 색깔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9번 트랙 “Better In Color”는 본 앨범의 상징적인 트랙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모든 걸 남김없이 다 보여주겠다는 듯,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자신의 나체를 전시한 이 앨범 표지는 리조의 음악을 정확히 대변하고 있다.

 

예술의 본질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아름다움의 증명이다. 아름다움, 이보다 더 주관적으로 해석되는 단어가 또 있으려나. 하지만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름다움이란 법이나 선, 정의 따위와는 달리, 그 어떤 물질적 효용성이나 이해관계와도 거리를 멀리한다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예술은 정치보다는 사랑을 좀 더 많이 닮았다. 사랑과 정치는 겉으로는 닮았을지 몰라도, 사랑과 정치는 결국 다르듯이, 예술과 정치의 관계도 이와 같다. 사랑에 있어서 이해관계를 전혀 따지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사랑을 두고 이해관계를 깊이 따지려고 들면, 결국 그 빛을 잃어버리듯이 말이다. 아름다움은 물질적 효용성을 떠나서라도,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예술은 이토록 아무짝에 쓸모없어 보이는 것 또한, 그 자체로 이미 아름답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리라.

 

앞서 언급했듯, 정치를 온전히 배제한 예술이란 존재할 수 없다. 모든 예술은 그 자체로 정치적이다. 그러나, 예술의 본질을 잃은 예술은 더 이상 예술일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예술의 본질을 추구하지 않고서, 정치적인 목적만 앞세운 예술은 그저 선전물에 불과하다. 예술가는 예술로 말하는 사람이다. 정치가 예술보다 앞서면, 그건 예술가의 일이 아니다. 혹여 정치에서 시작된 예술이라 할지라도, 창작 과정에서 어떻게 예술이 정치보다 앞서 나가도록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조지 오웰이 “정치적 글쓰기가 예술이 되게 하는 일”을 언급했던 건, 그런 이유이리라. 예술가는 가장 정치적인 작품을 만들 때조차도 예술가여야만 한다. 예술로 정치하길 꿈꾸는 사람들은 리조가 “Cuz I Love You” 앨범을 통해 보여준 이 아름다운 역설을 늘 명심해야 할 것이다.

 

 

▲ 리조 싱글 “Good As Hell”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공연 연상

리조는 그 어떤 이념이나 대의보다도, 자기 세계를 표현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더욱 열중했기에, 이토록 강력한 메시지가 나올 수 있었다. 리조의 본 앨범은 개인의 아름다움이 어떻게 정치적 메시지까지 번져나갈 수 있는지, 그 바람직한 예시를 보여주었다. 그녀가 예술보다 정치를 우선해서 작품을 만들었다면, 그녀는 결코 예술가로서 이처럼 성공적으로 자신의 메시지를 설파할 수 없었으리라. 사람들은 그녀를 정치로 볼지 몰라도, 그녀는 그저 자기 예술에 충실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녀의 음악은 아름답다. 아름다움이라는 예술의 본질에 충실한 그녀의 작품은 오래도록 사람들 곁에 머물며 빛을 발할 것이다. 그녀의 음악이 세상의 빛으로 더해져, 이곳이 좀 더 다양한 빛으로 반짝일 수 있기를, 그렇게 더욱 아름다운 세상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트랙리스트

1. Cuz I Love You
2. Like a Girl
3. Juice
4. Soulmate
5. Jerome
6. Crybaby
7. Tempo (feat. Missy Elliott)
8. Exactly How I Feel (feat. Gucci Mane)
9. Better in Color
10. Heaven Help Me
11. Linger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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