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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소닉 유스(Sonic Youth) - Dirty

인생명반 에세이 63: 소닉 유스(Sonic Youth) - Dirty

 

첫 경험처럼 불쾌하게 다가와, 오래된 연인처럼 깊어지는 더러움의 미덕

 

■ 인간은 모두 더럽다.

섹스는 인간이 할 수 있는 행위 중, 가장 위험하고 가장 더러운 행위이다. 생각해보라,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나약한 부위를 서로 노출하지 않으면 할 수 없고, 성기는 언제나 배변기관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다. 그걸 서로 비비고 물고 빨고 하는 걸 안전하고 깨끗한 행위라 할 수 있을까. 이를 통해 임신을 하고 출생을 하게 된다는 사실은, 인류의 기원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돌아보게 만든다. 인간은 더러움을 품고 태어나, 더러움을 갈구하며, 더러움과 함께 살아간다. 더럽다는 건 뭘 의미할까. 그것은 의학적으로 생명에 지장을 주는 것을 첫째로 의미할 것이고, 의학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상황이지만 나와 맞지 않는 사람,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은유로서 사용되기도 한다. 즉, 깨끗함과 더러움은 빛과 어둠의 관계, 선과 악의 관계와 동일하게 놓을 수 있다.

섹스를 더럽다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토록 더러운 행위라는 사실이 명백한데,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그것을 갈구한다. 왜 그럴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로서는, 그걸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걸 예로 들 수 있겠다. 섹스를 더럽다고 칭하기엔 일상에 깊이 자리 잡았고 또 우리 곁에 익숙하니까. 우리는 익숙해져버린 것에 대해선 더럽다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재채기를 하는 사람을 더러 함부로 더럽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사람들은 강도, 살인 등을 저지른 흉악범을 더러운 사람이라 쉽게 칭하지만, 무단횡단이나 불법 다운로드 같은 경범죄에 대해선 더럽다는 말을 쓰지 않는다. 그 정도 경범죄도 저지르지 않고 살아본 사람은 없을 테니까.

더러움이라는 단어가 악이라는 단어와 동일시되어 사용될 때가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선과 악이라는 게 언제나 케이크 자르듯이 딱딱 나누어질만한 성질의 것이던가. 기독교도 입장에선 무슬림들이 더러운 존재들이겠지만, 무슬림들 입장에선 기독교도들이 더러운 존재들일 것이다. 그러나 종교가 없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변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보고 나무라는 것처럼 느껴질 뿐일 터. 기독교도와 무슬림들 입장에선 종교가 없는 사람이야 말로 정녕 유일신으로부터 죄 사함을 받지 못할 더러운 존재로 보일 터. 세상에 속이 온전히 선으로만 채워진 사람이 없듯, 더러움에서 온전히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누구 눈엔 선한 사람도 다른 사람 눈엔 더러운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이렇듯 더러움이란 선악과 마찬가지로 이토록 복잡한 개념이다. 청결과 불결은 빛과 어둠처럼 공생관계이다. 범죄 없이 정의가 성립할 수 없는 것처럼.

더러움이라는 단어가 때론 낯선 것들을 칭하는 용도로 사용될 때가 있다. 낯설다는 것은 그것이 내게 이로운지 해로운지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에, 내게 이롭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진 내게 해가 된다고 생각해야 자신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낯선 존재가 내게 해가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나오게 되면, 그 존재는 더 이상 낯선 존재가 아니다. 그 존재는 이제 친숙한 내 편이니까.
 

 

▲ 앨범 뒷표지, 소닉 유스 앨범 발매 당시 멤버들. 좌측부터 스티브 셸리(Steve Shelley 드럼), 킴 고든(Kim Gordon 베이스), 리 래날도(Lee Ranaldo 기타). 하단 서스턴 무어(Thurston Moore 기타)

■ 대중음악의 가장 낯선 존재들

“소닉 유스(Sonic Youth)”는 언제나 대중음악의 가장 낯선 존재를 자처해왔다. 그들은 뉴욕의 전위적인 음악 판에서 자신들의 지지자들을 형성해왔고, 거기에만 머무르지 않고 음악적 변화를 거듭해왔다. 이들의 음악은 처음엔 “노 웨이브(No Wave)”라고 불리다가, 나중에는 대안의 록이라는 의미를 가진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이라 불리게 되었다. 훗날 머드허니(Mudhoney), 너바나(Nirvana), 펄 잼(Pearl Jam) 등의 밴드들이 이 호칭을 이어받았고, 이들은 지저분하다는 뜻의 “그런지(Grunge)”라는 칭호 또한 갖게 된다. 이 칭호를 곱씹다보면, 소닉 유스와 후발 얼터너티브 밴드들 사이에 형성된 공통분모가 느껴지지 않는가.

소닉 유스는 아티스트 집단이다. 이들은 단순히 더럽다고만 정의하기엔 무척 복합적이고 영리한 존재다. 그들에겐 아티스트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아름다움이 있고 정의가 있고 철학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자신을 “Dirty” 즉, 더러움이라 칭했다. 그것은 마치, 언제까지나 대중음악의 가장 낯선 부분을 차지하고 싶다는, 나는 결코 당신들과 쉽게 친해지지 않을 거라는, 외곬의 선언처럼 보였다.

소닉 유스가 1992년 발표한 “Dirty”는 후발 얼터너티브 록 밴드들이 시도한 대중적인 접근법을 한껏 포용한 결과물이었다. 이 앨범은 소닉 유스의 가장 대중적인 음반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은 1990년 발표작 “Goo”의 후속작이고, 그로부터 약 2년 만에 발매된 정규 7집 앨범이다. 정규 6집인 “Goo”와 “Dirty” 사이에는 1991년 가을에, 후발 얼터너티브 록 밴드들과 함께한 투어가 있었다. 그 투어에 참여한 밴드 명단만 보더라도 어마어마하다. 검볼(Gumball), 베이비스 인 토이랜드(Bades in Toyland), 다이노소어 주니어(Dinosaur Jr.), 그리고 “Nevermind” 앨범을 막 내고서 승승장구하고 있던 너바나(Nirvana)까지.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소닉 유스는 자신들의 음악을 좀 더 널리 퍼트릴 수 있는 자양분을 얻었다.

소닉 유스는 이 앨범을 통해 자신들의 낯선 음악이 대중에게도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그들은 낯설고 더러운 존재인 상태 그대로,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게 된 것이다. 비록 빌보드 차트에서는 그렇게 괄목할만한 성적을 내놓지 못했지만, UK 앨범 차트에서는 무려 최고 순위 6위를 기록하며 저력을 과시했다. 본 앨범은 자신들의 낯선 음악을 고수하면서도, 대중과 어느 정도 타협을 시도했던 전작의 방법론을 이어받아, 좀 더 성숙하고 완성도 높은 음악을 들려주는 명반으로 거듭났다.

이 앨범이 소닉 유스 앨범 중에서도 가장 접근성이 좋은 앨범이긴 하지만, 지금 접하기엔 여전히 난해할 수 있는 앨범인 건 사실이다. 이 앨범이 상업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건, 후발 얼터너티브 밴드들이 형성한 시대적 배경이 톡톡히 한 몫을 해냈기 때문이다. 그 시대와 멀어져버린 지금은 그래서 이 앨범이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이 앨범은 소닉 유스 고유의 낯선 색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에, 아무리 록 음악에 익숙해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쉽게 친해질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렵게라도 친해질 가치가 충분한 앨범이라 소개하고 싶다. 또한 내게는 이 앨범이 그들의 최고 걸작으로 느껴진다. 이 앨범으로 소닉 유스에 빠져들고서, 소닉 유스의 모든 정규앨범을 들어보았지만, 이 정도로 내게 깊은 충격을 안겨준 앨범은 없었고, 이 앨범을 알게 된 지도 어느덧 3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가끔 새로운 충격을 받고는 한다.
 

 

■ 부유한 자들의 말끔하고 호화로운 생활은 약자들의 희생 없이 이뤄질 수 없다.

인도 카스트제도에는 계급에 들어가는 것조차도 허용되지 않는 “불가촉천민”이라는 개념이 있다. 그야말로 인도 사회의 최하위 계급이자, 사회적 약자들이 가장 많이 모인 계층이다. 21세기 인도 사회는 법적으로 이 카스트제도를 인정하지 않지만, 인도 사람들의 문화에는 아직도 이 제도가 뿌리 깊게 박혀 있어, 그들의 사고체계에서 쉽게 뽑아낼 수 없다. 불가촉천민이라 불리는 이들은 그 위에 상위 계급들이 잘 맡아서 하지 않는 온갖 궂은 일들을 맡아서 하는데, 주로 시체 처리, 화장실 청소 등이 이들의 몫이다. 인도 사회는 이 불가촉천민들에게 고마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들을 멸시하고 차별하며, 가끔씩 테러를 일삼는 등 생명에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걸 기억하라. 브라만, 크샤트리아 같은 고위층의 숭고하고 화려한 삶이란 불가촉천민들의 희생 없이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

사실 계급제도를 표면적으로 내세우지 않는 사회라 할지라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계급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개인이 가진 사회적 지위와 부의 크기로 보이지 않는 계급을 만든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가난하고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는 건설노동, 환경미화 등을 맡아줘야만, 고위 정치인, 대기업 임원들의 호화로운 삶이 보장될 수 있다. 이렇게 약자들이 멸시 받고 차별 받는 세상에서, 누가 이들 곁에 머물러 줄 것이며, 누가 이들을 위한 목소리를 높여줄 것인가.

좌파의 미덕은 더러움이다. 좌파는 자본가와 권력자들의 힘을 재분배하여, 약자들에게 힘을 나눠주자는 걸 이념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간단히 말해서, 좌파는 당연히 약자들의 편이라는 것. 그렇기에 좌파들은 사회에서 멸시 받고 차별 받는 사람들 즉, 더러운 사람들 곁에 머물며,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마땅한 사람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규 6집 “Goo”의 거대한 상업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여전히 “Dirty”라고 칭한 소닉 유스의 다짐은 얼마나 경이로운가. 언제까지나 좌파의 핵심적인 미덕인 더러움을 잃지 않겠다는 그들의 다짐이란! 그들은 비록 더러운 자들과 어울리고 있지만, 그 정신까지 함부로 더럽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 스스로를 이렇게 칭할 수 있도록 만든 정신과 그 다짐을 살펴보면, 오히려 숭고하다고 말해야 마땅할 것이다. 왕족의 후예로 태어났지만, 깨달음을 위해 기꺼이 모든 부와 명예를 버리고 끝없이 낮은 곳으로 침잠했던 석가모니의 품격을 닮았다.

“안아줘. 더러운 나를.(Hug Me. I’m Dirty.)”

이 앨범의 아트워크 중에는 이런 슬로건이 있다. 귀엽지만 조금은 이상하게 생긴 헝겊인형들이 안아달라고 호소한다. 약자들은 언제나 상냥한 포옹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약자들을 향한 권력자들의 멸시는 그칠 줄 모른다. 사람들의 넘치는 존경에 실증마저 느끼는 권력자들과 달리, 조금의 상냥함조차 얻기 힘든 약자들의 내면은 계속 분노에 어질러지며 점점 거칠어져간다. 본 앨범은 그런 약자들의 내면을 아낌없이 묘사하고 있다. 약자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 약자의 삶이 겪는 여러 고난들을 역동적으로 그려낸다.
 

 

▲ 1번 트랙 “100%” 뮤직비디오

■ 첫 섹스처럼 다가오는 굉음

첫 자위, 첫 키스, 첫 섹스. 이 앨범과 친해지는 과정을 묘사할 때, 가장 먼저 이런 단어들이 떠오른다. 사실 이러한 첫 성 경험들이 황홀한 기억으로 남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설령 있다하더라도, 그것이 결과적으로 그랬다는 얘기지, 처음 그것을 시도하는 순간부터 좋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난생처음 자신의 급소에 격한 자극을 가하고, 타인과 체액을 주고받고서, 자신의 가장 더러운 신체부위를 타인의 것과 함께 비벼대는데, 그게 처음부터 유쾌할 리가. 하지만 첫 경험만 잘 견디고 나면, 우리는 오히려 그것들을 갈구하게 되지 않던가. 이들이 내뿜는 굉음은 처음엔 거부감이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듣다 보면 결국 치명적인 매력을 깨닫게 된다. 달리 말하자면, 이 새끼들은 좆나 죽여준다는 얘기다!

이 앨범은 약자를 약하게만 그리지 않는다. 그들을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역동적이고 고혹적인 존재들로 그리고 있다. 이를 통해, 약자의 더러움이야 말로 성(性)의 근원이라고 외치는 것만 같다. 약자들에겐 이토록 치명적인 매력이 있으니, 기성 권력에게 약자들을 함부로 얕잡아보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날 때부터 재벌 집안인 사람보다, 자수성가를 이룬 사람이 훨씬 섹시하게 보이는 건 우연이 아니다. 재벌 3세 배경을 타고난 많은 이들이 결국 술과 마약 등으로 자신의 몸을 더럽히며, 섣불리 죽음을 갈구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나. 결국 인간은 누구나 더러움을 조금씩이라도 품고 살 수밖에 없고, 더러움을 갈구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이것은 곧 본 앨범의 제목이 표출하는 가치와 통한다.

이 앨범을 처음 들을 때, 가장 먼저 귀에 들어오는 건 고막을 찢어버릴 것 같은 맹렬한 연주다. 1번 트랙 “100%”를 보자. 이 곡은 소닉 유스와 친분을 유지하던 인물 조 콜(Joe Cole)의 피살사건을 다룬 곡이다. 그는 밴드 “블랙 플래그(Black Flag)”의 공연 업무 담당이었는데, 밴드 이름부터 아나키즘 냄새가 풀풀 나지 않는가. 조 콜 피살사건은 현재까지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이토록 의문에 휩싸인 채로 피살되어버린 친구에 대한 안타까움, 그리고 세상을 향한 분노가 곡의 도입부터 고막을 찢어버릴 듯이 다가온다. 곡이 끝날 때까지, 으르렁으르렁 울어대는 기타 소리와 힘차게 터지는 드럼 소리는 이들의 격정적인 감정을 대변한다.

1번 트랙의 분노는 2번 트랙 “Swimsuit Issue”에서 조금 달라진 형태로 표출된다. 페미니즘 이슈를 담은 곡답게, 메인보컬은 밴드의 여성 멤버 킴 고든(Kim Gordon)이 맡았다. 소닉 유스가 속했던 레이블 게펜(Geffen)의 한 여성 직원이 상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사건을 다룬 노래인데, 곡 제목은 한 잡지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 잡지는 어떤 면에선 노골적인 성적 대상화를 담고 있었는데, 회사 직원을 그 잡지 보듯 대하는 상사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연주는 파도처럼 사납게 날뛰다가도 잠시 잦아들었다가 다시 날뛰기를 반복하는데, 곡의 후반부에서는 곡의 화자가 마침내 물속으로 뛰어들어 유유히 잠수하듯 굉음이 흐른다. 그 사이로 킴 고든은 여러 여성들의 이름을 나열하며 “I'm swimming.(난 헤엄치고 있어.)”라고 끈적끈적하게 읊조린다. 성적 대상화로 가득 찬 세상의 물결을 때론 강하게 맞서면서도, 때론 유유하게 받아들이며 헤엄쳐나가기도 하는 여성의 삶을 묘사하는 것 같다.
 

 

▲ 7번 트랙 “Sugar Kane” 뮤직비디오

■ 불쾌함과 달콤함 그 사이

서로의 체액을 교환하고, 성기를 비벼대는 첫 경험의 불쾌함이 지나가면, 그 불쾌함이 주었던 강렬함에서 벗어나 조금씩 안정적이고 달콤한 감각으로 접어들게 된다. 3번 트랙 “Theresa's Sound World”가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동안, 4번 트랙 “Drunken Butterfly”의 굉음이 갑작스럽게 끼어들며 앨범의 서사를 다시 격정 속으로 몰아넣는다. 이 곡은 마치 섹스를 하던 도중 갑작스레 몰려오는 사랑의 격정을 묘사하는 것 같다. 이 곡은 사랑의 흐름처럼 때론 한없이 과격하다가도, 때론 한없이 고요하다. 격정과 고요를 바쁘게 오가는 이 곡은 사랑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다가오는 불안한 감정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사랑의 격정이 지나고 나면, 불온한 상상력이 고요하게 머리를 지배한다. 5번 트랙 “Shoot”의 등장이다. 이 곡은 느리고 끈적끈적한 곡임에도 뭔가 불온한 감상을 떨쳐낼 수 없다. 가사는 왠지 총을 들고 강도짓을 하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데, 이는 섹스의 더러운 감각에 조금씩 익숙해져가며 쾌감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닮아있다. 6번 트랙 “Wish Fulfillment”는 부드러운 연주 톤을 기반으로 한 곡이지만,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는 굉음이 이색적이기도한 곡이다. 후렴에선 부드러운 연주를 뒤집어버리려는 듯 웅장함을 내뿜다가도, 절로 다시 들어가서 갑작스레 부드러운 연주로 다시 들어간다. 격정에서 허무로 옮겨가는 과정. 충족된 욕망이 만족으로 옮겨가고, 그 만족이 허무로 바뀌는 감정을 묘사하는 것 같다.

7번 트랙 “Sugar Kane”은 허무에 빠지는 자신의 감정에 저항하듯, 새로운 환상을 애써 창조해내는 화자의 힘겨운 노력을 담아낸 것 같다. 그래서 이 곡은 이 앨범에서 가장 곡 구조가 다채로운 곡이다. 창조의 과정을 닮아, 해체와 구성, 구성과 해체가 수없이 반복된다. 그런 의미에서 폭발적인 연주와 함께, 킴 고든이 가장 악독한 외침을 내뿜는 곡 “Orange Rolls, Angel's Spit”이 바로 다음 트랙으로 이어지는 건, 꽤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마치 “Sugar Kane”의 곡 제목을 따온 배우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의 삶을 연상시킨다. 슈가 케인(Sugar Kane)은 그녀의 대표 영화 중 하나인 “뜨거운 것이 좋아(Some Like It Hot)”의 배역 이름이다. 슈가 케인이라는 캐릭터는 마릴린 먼로의 빛나는 매력과 탁월한 연기력을 아낌없이 드러내기도 하면서, 한 편으로는 백치미를 가진 요염한 여성이라는 남성들의 성적 환상이 잔뜩 들어간 캐릭터이기도 했다.

7번 트랙에서 사회가 먼로에게 요구하는 판타지를 형성하는 동안, 8번 트랙은 먼로의 고뇌를 가장 격정적인 외침으로 표출해내는 것 같다. 먼로는 세상에서 숭고한 천사처럼 떠받들어지며 온갖 찬사 및 부와 명예를 거머쥐었지만, 한 편으로 그것은 남성들의 성적 대상화가 불러온 환상을 한껏 충족시켜준 결과이기도 했다. 세상의 거대한 찬사와 끝없는 성적 대상화라는 양극단을 오가는 자신의 모습에 고뇌를 거듭했던 먼로의 삶은, 그녀에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미 유명한 얘기이다. “Sugar Kane”에서 “Orange Rolls, Angel's Spit”으로 이어지는 이 앨범의 흐름은 마릴린 먼로의 이런 복잡한 삶을 탁월하게 표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마릴린 먼로의 모습은 21세기 현재까지도 되풀이되고 있다. 현재도 수많은 연예인들이 성별을 불문하고 많은 대중으로부터 수없이 성적 대상화되고 그로인해 부와 명예를 얻는다. 하지만 아무리 섹스가 좋은 것이라 한들, 사람의 육신은 단 하나뿐이다. 그토록 많은 성욕을 쉽게 받아내고 견뎌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애초에 성욕이란 더럽고 위험한 것이기에, 그래서 더욱 안심할 수 없는 상대에게, 불특정 다수에게 함부로 내어줄 수 없는 것이다.
 

 

▲ 13번 트랙 “JC”

■ 더러움의 미덕

9번 트랙 “Youth Against Fascism”은 여전히 거칠고 날카로운 음색으로 일관하지만, 곡 전개는 전 트랙들에 비하면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자신들이 세상을 통해 맞이하는 온갖 격정을 받아들이며, 자신들의 좌파 이념을 여유롭게 표출하는 것 같다. 이 곡까지 도달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이들이 세상을 향해 이렇게 외치는 것만 같다. 너희들은 약자들을 향해 함부로 더럽다고 말하지만, 정말 더러운 건 기성 권력층에 속한 당신들이라고. 타인을 함부로 착취하고도 염치를 모르는 모습하며, 연예인을 쉽게 소비하고 쉽게 버리기도 하며, 파시즘에 선동되어 타인을 함부로 차별하는 너희들이야말로 진정 더러운 녀석들이라고.

10번 트랙의 우스꽝스럽고도 혼란스러운 소리들이 지나가고 나면, 11번 트랙 “On the Strip”의 고요한 불안이 다가온다. 고요하게 다가오던 불안은 시간이 흐를수록 다시 커져가며 감정을 다시 격정으로 몰고 간다. 격정은 웅장하고도 안정적인 힘으로 바뀌어 12번 트랙 “Chapel Hill”로 이어진다. 이 또한 9번 트랙처럼 소닉 유스의 좌파 성향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트랙이다. 이 곡은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위치한 채플 힐(Chapel Hill)이라는 마을에서 벌어진 어떤 도난 사건을 언급하는데, 이는 걸프전을 맹렬히 반대하던 사회운동가 밥 쉘던(Bob Sheldon)이 운영하던 서점에서, 현금이 몽땅 도난당해버린 일이었다. 이 서점은 주인의 뜻에 따라, 정치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서적들을 주로 판매해왔었고, 그로인해 반대 세력으로부터 일찍이 “적그리스도 서점”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미움을 받아왔다. 이 도난 사건은 CIA의 조사를 받게 되었고, 소닉 유스는 곡의 시작부터 이 사건을 언급하며 좌파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다.

웅장하면서도 안정적으로 진행되던 곡은 어느 순간 갑작스레, 불온하고 격정적인 연주로 접어드는데, 이는 밴드의 두 기타리스트 서스턴 무어(Thurston Moore)와 리 래날도(Lee Ranaldo)의 황홀한 앙상블을 과시한다. 이는 이 앨범의 절정의 순간 즉, 섹스의 절정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Chapel Hill”의 불온하고도 황홀한 앙상블이 휩쓸고 간 자리엔 다시 상냥한 기운이 들어선다. 13번 트랙 “JC”가 살며시 모습을 드러낸다. 곡 제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이 곡은 1번 트랙과 더불어, 피살당한 조 콜에 대한 헌정이 담긴 곡이다. 1번 트랙이 조 콜의 피살에 무게를 두었다면, 13번 트랙은 조 콜을 향한 그리움에 무게를 두고 있다. 14번 트랙에선 다시 격정을 노래하지만, 마지막 15번 트랙 “Crème Brûlée”에선 다시 상냥함을 노래한다. 내가 거듭 이 앨범을 섹스에 비유했듯, 이는 섹스의 격정이 끝난 후 다가오는 허무함, 그 허무함 속에 촘촘히 스며드는 후희를 묘사하는 것 같다. 후희를 음미하며 내 성관계 상대가 정말로 내가 원하던 사람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동시에 어쩔 수 없이 몰려오는 끝에 대한 허무함, 이 모든 것을 곱씹듯이 앨범은 끝난다.

섹스가 아름다운 것이라 말하려면, 더러움 또한 아름다움의 일부라는 걸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나는 결코 청결보다 불결이 더욱 아름답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불결은 청결을 위해 존재한다. 불결한 것이 없다면 청결은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한다. 이것은 마치 인간이 때론 삶보다 죽음에서 더욱 큰 쾌락을 얻는 것과 같다. 우리를 서서히 죽이는 술과 게으름, 기름진 음식들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죽음의 감미로움도 삶이 있기에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의 삶이란 건강과 죽음, 청결과 불결을 오가지 않고선 유지될 수 없다. 어쩌면 인간은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존재이리라. 그래서 더러움의 미덕을 잊지 말라고 외치는 본 앨범의 가치는 매혹적이다.
 

 

▲ 9번 트랙 “Youth Against Fascism” 뮤직비디오

■ 더러워서, 더없이 상냥하고 깊은 매력

이 앨범은 씨발새끼다. 전혀 친절하지 않다. 이 앨범은 소닉 유스의 앨범 중에서도 그나마 접근성이 좋은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자의 이해를 구하지 않는 무례하고 거만한 자세로 일관한다. 이토록 불친절한 전개와 사나운 굉음으로, 청자를 잔뜩 난해한 기분에 빠져들도록 만든다. 씨발새끼는 섹시하다. 여러 문화권에서 욕설은 대부분 섹스와 관련된 말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말의 “씨발” 또한 성교를 뜻하는 “씹”에서 비롯되었으니. 세계 공용어로 취급 받는 영어는 어떤가. “Fuck”이란 자지를 보지에 넣고 비벼대는 행위를 뜻한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씨발새끼라 불리지 않은 사람, 그는 전혀 섹시하지 않다. 사람이란 무릇, 자신의 고집을 고수하며 살다보면 타인으로부터 무조건 한 번은 욕을 먹기 마련이다. 그럴 때, 욕이 성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다행인가. 자기 고집을 이토록 멋진 예술로 승화시키다니, 이보다 더 고혹적일 수가 있을까. 사람은 너무 멋진 걸 보면 자기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오곤 한다. 진짜 이 앨범은 씹할, 씨발이다!

처음에 나를 이 앨범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게 만든 것은 “100%”나 “Swimsuit Issue”, “Drunken Butterfly”, “Orange Rolls, Angel's Spit” 같은 트랙에서 접할 수 있는 격정적인 굉음의 향연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게 더 깊게 다가오는 것은 “Theresa's Sound-World”나 “On the Strip”, “JC”, “Crème Brûlée” 같은 트랙들이 드러내는 고요한 심연의 흐름이었다. 그 심연에선 불온함과 상냥함이 공존하는 걸 느낄 수 있다. 이런 깊은 매력이 나로 하여금 이 앨범을 더욱 사랑하도록 만들었다. 섹스의 진정한 매력이 격렬함에 있는 게 아니라, 깊은 상냥함에 있는 것처럼. 어쩌면 섹스란, 자신의 가장 더럽고 나약한 부분을 타인과 나누는 행위라서, 더욱 깊고 상냥한 것이리라.

죽음을 꼭 나쁜 거라 할 수 있는가. 무언가가 죽어 사라지지 않으면, 새로운 것이 들어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존재를 죽음으로 이끄는 더러움이란 사실, 새로운 것들이 들어설 자리를 마련하는 숭고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록 중에서도 가장 낯선 음악이었던 얼터너티브 록은 기존의 록을 조금 몰아내고, 청자들에게 새로운 자극을 선사하지 않았던가. 소닉 유스처럼 더러움을 스스로 자처하는 실험적인 아티스트들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대중음악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따분한 모습으로 남았으리라. 이들의 좌파 성향에 찬동하든 말든 그건 온전히 청자의 몫이다. 이 글을 통해 소닉 유스를 열렬히 찬양하는 나조차도, 솔직히 이들의 좌파적 행보 모두를 찬성하진 않는다. 그러나 이들의 음악적 실험이 자아낸 위대한 업적을 함부로 과소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이들의 음악적 성과는 정치 성향을 뛰어넘어, 온전히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Dirty”는 좌파의 미덕을 대중에게 탁월한 방법으로 증명한 명반이다. 이 앨범은 소닉 유스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남아 있는 만큼 오래도록 사람들 곁에 머물며, 사람들의 낡은 생각을 때려 부수고 쳐 죽임으로서, 그 자리에 새로운 세상을 잉태시킬 것이다. 그렇다. 이 앨범은 자신들에게 얹어진 “Dirty”라는 멸칭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자기 정체성으로 받아들임으로서, 맞선 세력의 목소리에 쉽게 휘둘리지 않는 자신들만의 새로운 세상을 탄생시키겠단 굳은 다짐의 선언이었던 것이다.

 


트랙리스트

1. 100%
2. Swimsuit Issue
3. Theresa's Sound-World
4. Drunken Butterfly
5. Shoot
6. Wish Fulfillment
7. Sugar Kane
8. Orange Rolls, Angel's Spit
9. Youth Against Fascism
10. Nic Fit (Untouchables cover)
11. On the Strip
12. Chapel Hill
13. JC
14. Purr
15. Crème Brûlé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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