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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소닉 유스(Sonic Youth) - Washing Mac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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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38: 소닉 유스(Sonic Youth) - Washing Machine

 

[ 낯선 감정들이 빚어내는 금강석 바다 ]

 

 

좋아하지만, 좋아하는 이유는 모른다.

오랫동안 소닉 유스(Sonic Youth)에게 환장하면서 언젠간 소닉 유스에 대한 글을 꼭 쓰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쓰고 싶다는 생각만 오랫동안 간절했지, 쓸 수 있다는 확신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러다 소닉 유스에 대한 애정이 조금 시들해졌고, 다른 음악에 심취할 때가 오고야 말았다. 그만큼 소닉 유스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간절함도 멀리 달아났다. 그렇게 몇 달을 소닉 유스에게 애정을 두고 있지 않은 상태로 지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소닉 유스를 왜 좋아했지?”

사실 다른 밴드를 들으면, 좋아하는 이유가 명확했다. 음악적인 측면은 물론이고, 감성적인 측면이 특히 그랬다. 나는 음악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음악에서 풍겨지는 감성 위주로 음악을 판단한다. 그 외에 음악을 이루는 멜로디나 연주 등은 감성을 드러내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소닉 유스는, 아무리 생각해도 감성적인 측면에서 뭐 때문에 좋아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는 거다. 따지고 보면 이유를 몰랐다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다. 이유를 따질 겨를도 없이 스며들듯 소닉 유스를 좋아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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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닉 유스  “Washing Machine” 당시  멤버들. 좌측부터 서스턴 무어(Thur ston Moore: 기타, 보컬), 스티브 셸리(Steve Shelly: 드럼), 킴 고든(Kim Gordon: 베이스, 보컬), 리 래날도(Lee Ranaldo: 기타, 보컬)

그런데 막상 글을 쓰려니까, 도대체 뭘 어떻게 써야할지 막막했다고나 할까. 내가 소닉 유스를 왜 좋아하느냐고 누가 물어보면 내가 대답할 말은 이것이었다. 내가 상상하던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만들어낸 밴드라서 그렇다고. 더욱 엄밀하게 따지자면 슈게이징(Shoegazing)과 그런지(Grunge) 그 사이 어딘가 위치한 음악이라 할 수 있겠는데, 소닉 유스의 음악을 정형화된 언어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좀 이상한 일이긴 하다. 그런데 이건 내 감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소닉 유스의 음악적 위치를 표현한 말에 불과하지 않은가. 소닉 유스를 좋아하는 내 마음을 통해 내 감성에 대해 뭘 말할 수 있는가. 나는 그걸 몰랐다. 그걸 몰라서 이때까지 소닉 유스에 관해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그렇게 환장하듯 좋아하는데도 말이다.

좋아하는 이유도 모르고 그저 빠져드는 것이 진정 사랑이라고 했던가. 내가 소닉 유스에게 느낀 감정이 딱 그것이었다. 내가 한참 소닉 유스에 빠져들 무렵에는 이유를 따질 겨를도 없었다. 그런데 사랑에 있어서 이유도 모르고 열정만으로 진행되는 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열정이 끝나면 그 자리엔 공허만이 감돌뿐이다. 내가 소닉 유스에 이유도 모르고 자연스레 빠져든 것처럼, 소닉 유스를 잠시 멀리하게 된 것도 딱히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다른 매력적인 음악들에 시간을 쏟는 나날이 많아질수록 소닉 유스를 전혀 듣지 않는 나날이 늘어갔을 뿐이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은 거다. 소닉 유스 음악을 안 듣는 날이 많아지고 있다는 걸. 그런데 소닉 유스를 멀리하게 되고 나서야, 내가 왜 그들을 좋아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겨를이 생긴 거다.

 

소닉 유스 감성이란 어떤 것인가

 

사랑은 분명 빠져들 때는 이유도 없이 빠져드는 것이지만, 그것을 지속시키는 힘은 분명 사유에서 온다고 믿는다. 사유 없이 열정만 존재하는 사랑은 그 수명이 비교적 짧을 수밖에 없다. 나에게 소닉 유스에게 빠져들 열정을 선사해준 앨범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Dirty”라고 답할 것이고, 소닉 유스를 좋아하는 사유를 선사해준 앨범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여기에 망설임 없이 “Washing Machine” 앨범이라고 답할 것이다. 이 앨범은 내가 소닉 유스 음악을 왜 좋아했는지 그 이유를 파헤치고자 했을 때, 계시처럼 내 머리에 꽂힌 앨범이다. 이 앨범 속 수록곡들의 사운드가 내 머리에 울려퍼질 때, 나는 그것이 그 어떤 문장보다 훨씬 명확한 해답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소닉 유스에 한참 빠져들 무렵에 접한 앨범이긴 하지만, 이 앨범에 대한 애정이 깊어진 건 오히려 소닉 유스를 잠시 멀리하게 된 그 시기였다.

 

소닉 유스의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이라고 한다면, 어떤 한 가지 감성에 쏠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닉 유스의 음악은 무감성(無感性)이며 동시에 범감성(汎感性)이다. 다양한 색깔의 감성이 한 곳에 뒤섞여 있기에 그 정체를 명확히 알 수 없다. 이것은 소닉 유스에 대해 호불호를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누군가는 무슨 음악인지도 모르겠다는 느낌 때문에 소닉 유스를 싫어할 것이고, 누군가는 명확히 정의할 수 있는 음악이 아니기 때문에 소닉 유스를 좋아할 것이다. 나는 당연히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다.

 

 

▲ 4번 트랙  “Washing Machine” 1996년 독일 라이브영상.

내가 소닉 유스를 잠시 멀리했던 이유도 같은 맥락에 이야기 할 수 있다. 내가 소닉 유스를 멀리하게 된 시기를 살펴보면, 내 마음이 너무 지쳐서 격정적인 음악은 전혀 듣고 싶지 않을 때였다. 그래서 격정적인 록보다는 포크(Folk)를 주로 찾았고, 록을 듣더라도 쟁글팝(Jangle pop) 계열을 주로 찾았다. 그런데 계속 이런 것들만 듣다 보니까, 반발 심리가 생겼는지 블랙 메탈(Black Metal)처럼 극단적으로 과격한 게 듣고 싶었다. 그렇게 양극단을 오가는 청취 생활을 하다가, 문득 이렇게 양극단을 오가는 것도 질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때, 소닉 유스의 음악이 번개처럼 내 머리에 다시 다가온 것이다. 그 때서야 나는 깨달았다. 그것이 진정 소닉 유스가 표현하고자 했던 바였다. 나는 은연중에 소닉 유스를 격정적인 음악으로 정의하고 있었지만, 소닉 유스가 진정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격정성이 아니었다. 격정성은 그저 소닉 유스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딸려온 것에 불과했다.

 

  

■​ 세속에서 벗어나길 원하지만, 결국 속세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나

 

소닉 유스의 음악이 “무감성이자 동시에 범감성”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그들의 음악에서 왠지 불교가 느껴지는 것 같다. 소닉 유스는 세상에 다양한 사상들이 빚어내는 갈등, 충돌, 혼란 등을 그려낸다. 그 안에서 느끼는 고통, 허무, 환멸 등이 소닉 유스가 표현하는 주된 감성이다. 불교경전 “반야심경”은 “색즉시공공즉시색”이라 하지 않았던가. 소닉 유스가 음악으로 그려내는 풍경이 딱 이와 닮았다. “너바나(Nirvana)”가 소닉 유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다만, 소닉 유스는 불교적이면서도 불교이길 거부한다. 세속으로부터 떠나길 원하지만, 결국 속세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하는, 지극히 세속적인 사람으로서의 감정을 뿜어낸다. 세속인으로서 느끼는 세상의 풍경, 그로부터 오는 번뇌, 혼란, 그것이 소닉 유스의 음악이다.

 

 

 

흔히 소닉 유스를 노이즈 록(Noise Rock)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소닉 유스가 표현하는 노이즈는 그라인드코어(Grindcore)처럼 기타를 마구 갈기고, 드럼을 혹사시키는 그런 격렬한 노이즈가 아니다. 가끔 그런 비슷한 느낌이 나올 때가 있지만, 그것은 소닉 유스가 진정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세상에서 절대 들어보지 못한 낯선 소리를 표현하는 것에 가깝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은 소리들을 모두 노이즈라 부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양한 사상이 화합을 이루지 못하고 충돌만 빚어내는 이런 세상에, 늘 환멸을 느끼면서도, 결국 이 속세를 떨쳐버리지 못한다. 인간은 결국 죽을 때까지 번뇌를 벗어던질 수 없는 가련한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 몇 번이던가. 감히 셀 수조차 없을 만큼 많을 것이다. 세상에서 환멸을 느끼는 그 순간만큼은 나라는 존재가 지극히 고독한 존재로 느껴진다.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그런 세상에서 가장 낯선 존재 말이다. 소닉 유스가 자신들의 노이즈를 통해 표현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소닉 유스는 세상에서 느끼는 환멸, 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낯선 존재가 되었다는 그 고독감을 표현하기 위해, 음악적으로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감정이라는 것은 그것을 느끼는 당사자의 내면에만 실체가 있을 뿐, 그 외에 다른 사람들에겐 전혀 실체가 없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감정의 실체를 남에게 증명하기 위해선, 언어라는 가공을 거쳐야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닉 유스의 첫 정규앨범 “Confusion Is Sex”는 언어로 가공되기 전 날것 그대로의 감정덩어리를 접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는 앨범이다. 솔직함이 두드러지는 매력이 살아있는 앨범이지만, 타인으로부터 감탄을 자아내기엔 무리가 있는 앨범이기도 했다. 하지만 소닉 유스는 자신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해주길 바랐는지, 점차 자신들의 음악적 언어를 대중적으로 다듬어나갔다. 그런 의미에서 다섯 번째 정규앨범 “Daydream Nation”은 소닉 유스의 대표적인 명반으로 자주 거론된다. 이것을 들어보면, 소닉 유스가 자신들의 음악적 언어를 대중적으로 다듬고자 했던 그 노력이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느낄 수 있다. 이 노력은 다음 앨범 “Goo”를 거쳐 한층 더 성숙했고, 그 다음 앨범 “Dirty”에서 절정에 닿았다.

 

 

▲ 5번 트랙  “Unwind” 뮤직비디오. 팬이 만든 영상이지만, 소닉 유스 감성과 잘 어울려 공식 영상처럼 보인다. 소닉 유스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도 공식 뮤직비디오처럼 사용하고 있다.

 

■ 세상에서 가장 낯선 존재, 나

 

정규 8집 앨범 “Experimental Jet Set, Trash and No Star”에서 소닉 유스는 다시 고립을 택한다. 세상에서 가장 낯선 존재가 된 것 같은 감정을 표현하려 음악을 시작했지만, 점차 대중의 취향에 영합하는 자신들의 모습에 모순을 느낀 게 아닐까. 하지만 오랜만에 다시 고립을 택하려니, 아직은 능숙한 고립이 이뤄진 것 같지는 않다. 그야말로 과도기 느낌이 두드러지는 앨범이 되었다. 소닉 유스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 발짝 더 진보해, 마침내 음악적 완성을 이뤄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정규 9집 앨범 “Washing Machine”이다.

 

“Washing Machine”은 그야말로, 자신들의 낯선 노이즈들을 세련된 음악적 언어로 가공하는 데에 성공한 역작이다. “Daydream Nation”에선 개성과 세련미 사이에 치열한 고민이 엿보였고, “Dirty”에선 세련미가 훨씬 돋보였는데, “Washing Machine”은 그야말로 세련미와 개성 있는 사운드, 두 측면에서 모두 절정을 이루었다. 그 중에서도 개성이 좀 더 튀어나오는 느낌이다. 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낯선 사운드지만 투박하지만은 않은, 그런 느낌을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했다는 얘기다. 정규 1집 앨범으로부터 12년이 지나 1995년에 마침내 이룩한 위대한 성과인 셈이다. 소닉 유스는 여기에 이르러 완성되었으며, 그 이후로 나온 앨범들은 그 전에 낸 결과물들에 대한 변주라고 봐야할 것이다. 물론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앨범은 아니다. 그 어떤 앨범들보다도 소닉 유스의 개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앨범이기 때문이다. 개성이라는 말은 낯설다는 말과 통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복 청취를 통해, 이 앨범이야말로 소닉 유스가 뿜어낼 수 있는 세련미의 극치라는 걸 느낄 수 있다.

 

  

▲  6번 트랙 “Little Trouble Girl” 뮤직비디오

수록곡의 면면들을 살펴보자. 1번 트랙 “Becuz”는 비장한 악기 연주와 함께 킴 고든(Kim Gordon)의 일그러진 목소리가 분위기를 압도한다. 2번 트랙 “Junkie's Promise”는 좀 더 격렬해진 음색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킨다. 고조된 긴장감은 3번 트랙 “Saucer-Like”에서 풀어진다. 4번 트랙 “Washing Machine”에서 연주는 다시 역동적으로 변한다. 역동적인 연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분위기가 급격하게 풀어지며 서서히 곡이 부드럽게 변한다. 부드러운 음색들이 어지럽게 부유하는 가운데, 파도가 일어나듯 까칠한 연주가 넘실댄다. 그렇게 9분간의 긴 여행이 끝나면, 5번 트랙 “Unwind”에서 한층 더 부드러워진 음색이 펼쳐진다. 부드러우면서도 현실에선 잘 마주할 수 없는 낯선 음색들이 펼쳐지는데, 마치 꿈속에서 본 것 같은 해괴한 이미지들이 고요히 부유하는 것 같은 기분을 준다. 6번 트랙 “Little Trouble Girl”은 부드러운 느낌을 넘어서 나른한 느낌까지 주는 곡이다. 나른한 것도 넘어서 깊은 잠에 빠져들기 직전의 무기력함마저 느껴진다. 그 사이에 문득 떠오르는 성장과 사랑의 아픔들. 이 곡이 집어내는 부분이 딱 그런 부분이다. 이 곡은 소닉 유스 곡치고는 꽤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데, 다름이 아니라, 소닉 유스 노래인데도 꽤 동요 같기 때문이다. 코러스를 잔뜩 동원하는 부분이나, 표현하는 것이 뚜렷한 가사, 친숙한 멜로디 등이 그런 느낌을 더한다.

 

 

■ 낯선 감정들의 바다

 

7번 트랙 “No Queen Blues”는 6번 트랙의 달콤 쌉싸름한 잠을 방해하듯 끼어든다. 8번 트랙 “Panty Lies”는 7번 트랙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감정을 더욱 적극적으로 발산한다. 음색이 가장 엉망으로 망가졌을 때, 잘 연주되던 기타 줄이 갑자기 끊어지듯 곡이 끝나버린다. 9번 트랙 “Untitled”는 사실 1번 트랙을 얌전하게 연주한 것인데, 연주 방법만 다르게 바꿨는데도 1번 트랙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세상을 향해 힘껏 저항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지쳐서 드러누운 모습이 문득 떠오르는 곡이다. 10번 트랙 “Skip Tracer”는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것 같은 질주감이 돋보이는 곡이다. 비행기는 익숙한 곳을 지나 청자를 점점 낯선 곳으로 데려간다. 그렇게 낯선 곳들을 지나 도착한 곳은 11번 트랙 “The Diamond Sea”다.

 

 

▲  11번 트랙 “The Diamond Sea”

마지막 트랙 “The Diamond Sea”는 19분 35초라는 곡 하나로서는 엄청난 길이를 자랑한다. 그런데 이 곡은 19분 35초 모두를 곡 하나로 보면 안 된다. 이 곡은 다른 곡을 감상하는 것과는 다른 접근법으로 다가가야 한다. 몽환적인 음색이 부드럽게 울려 퍼지며 곡은 시작된다. 이 음색에 서서히 거친 소리들이 섞이며, 곡에 역동성이 더해진다. 실질적으로 음악이라고 볼 수 있는 부분은 7분 55초까지다. 그 이후로는 음악이 아닌 노이즈의 연속이다. 사실 7분 55초에 이르기 전에도 노이즈가 길게 울려 퍼지는 부분이 존재한다. 이 19분 35초라는 긴 시간 동안 소닉 유스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넘어서 길고 긴 질문을 던진다. 소닉 유스는 자신들이 가진 질문을 던지기 위해, 곡 구조를 탄탄히 쌓았다가 해체시켰다가 다시 쌓았다가 다시 해체시키기를 반복한다. 흩어진 곡의 잔해들은 10분을 넘어가는 긴 시간 동안 부유한다. 부유하는 곡의 잔해들은 처음엔 고요히 흐르다가도, 어느새 어지럽게 뒤엉키기도 하고, 다시 흩어졌다가, 다시 엉망으로 섞인다. 음악과 노이즈의 경계를 오가는 이 곡을 통해,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사라지는 느낌마저 들게 되고, 우주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노이즈가 음악이 될 수 있다면, 존 케이지(John Cage)가 “4분 33초(4 minutes 33 seconds)”라는 곡을 통해 주장한 것처럼 침묵도 음악이 될 수 있을까. 침묵 속에서 섞이는 주변의 잡음, 예를 들면 옷이 스치는 소리, 부스럭대는 소리, 사람들의 귓속말 등도 음악이 될 수 있을까. 우리의 인생 그 자체가 음악이 될 수 있을까. 음악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무엇인가.

 

그 어떤 곳에도 온전히 속할 수 없는 나 자신의 처지에 대해 한탄했던 일이 많았다. 그것은 오래된 한탄이다. 사상은 언제나 내 마음속 깊은 곳으로 다가오는 듯 결국 달아나버렸다. 나는 그저 나 자신이었고, 그 어떤 사상도 나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런 순간이 올 때마다 환멸과 고독에 신음했다. 그런데 소닉 유스는 결국 음악적 고립을 택했다. 고립된 자신들의 음악적 세계에서 자신들만의 성을 쌓았고, 그것은 근사한 모양을 이루었다. 나는 아직도 그 어느 곳에도 속할 수 없는 나 자신의 처지에 한탄하는데, 그들은 오히려 더욱 철저히 고립되는 것을 택했다. 물론 이런 성취는 그 전에 대중성에 대한 철저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지만, 그들이 나중에라도 다시 고립하는 걸 택하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그저 수많은 밴드 중 하나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고립은 전에 없던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그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야말로 쓸쓸함을 이겨내고 고립을 택할 충분한 사유가 된다. 고립된 나 자신의 처지에 한탄할 때마다, 이 앨범이 듣고 싶어진다. 이 앨범을 들으며, 나의 고립이 전에 없던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기 위한 과정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그럴 때 위로는 찾아온다.

 


트랙리스트

 

1. Becuz

2. Junkie's Promise

3. Saucer-Like

4. Washing Machine

5. Unwind

6. Little Trouble Girl

7. No Queen Blues

8. Panty Lies

9. Untitled

10. Skip Tracer

11. The Diamond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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