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명반 에세이 37: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 The Fragile
지옥에서 부르짖는 세상을 향한 마지막 구애
■ 채워지지 않는 갈증
이것은 내가 종교적인 이유로 나인 인치 네일스 음악을 잠시 멀리했을 때 얘기다. 그 당시 나는 내가 몸담고 있는 종교를 위해 봉사활동을 하던 중이었다. 나인 인치 네일스 특유의 음울하고 염세적인 분위기는 내 영성을 해친다고 믿었다. 그래서 봉사활동 내내 그의 음악을 듣지 않았고, 주님만 생각하며 주님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다가가, 나의 사역으로 인해 그들이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기를, 그것만을 바랐을 뿐이었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그런데 나의 우울함은 타고 난 것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내 마음은 봉사 도중에도 자주 우울함 앞에 무너졌다. 성경 공부도, 간절한 기도도, 그 어떤 것도 내 우울함을 물리치지 못했다. 나는 평생 동안 나의 우울함을 물리칠 것들을 갈망했으나, 언제나 갈증은 다시 돌아왔다. 봉사 도중에 인터넷을 하다가 나인 인치 네일스 공식 홈페이지로부터 메일이 온 것을 확인했다. 내용을 보지는 않았지만 제목부터 나인 인치 네일스의 신보 발매를 알리는 내용이었다. 불쾌하면서도 반가운 미묘한 느낌. 이미 헤어진 전 연인의 편지를 받는 기분이었다.
2년간의 종교적 봉사활동을 마치고 임지를 떠나 집으로 귀환했다. 귀환하자마자 나는 왠지 나인 인치 네일스 신보를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 생각을 실현하는 것을 미루고 미뤘지만, 어느새 나는 이 생각에 저항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자연스레 나인 인치 네일스 신보를 찾게 되었다. 그 신보 있는 곡 중에 “Came Back Haunted”라는 곡을 먼저 듣게 되었다. 그 곡을 들으면서, 매일 자살 생각을 하던 그 시절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곡 제목 그대로 그 감정이 나에게 다시 돌아왔다. 그 노래를 듣자마자, 나인 인치 네일스가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 내 영혼이 먼저 나인 인치 네일스를 찾았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감당하기 힘든 전율이 내 몸을 감쌌고, 나는 그 전율을 거부해야겠다는 생각에 신보 전체를 듣는 건 관두기로 했다. 그 전율을 인정해버리면, 내가 오랜 신앙생활로 쌓아둔 것들이 모두 무너질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년이 더 흘러, 나는 스스로 신앙을 그만두었다. 특별한 누군가와의 만남을 통해, 종교가 나를 더 이상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없다는 깨달음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종교를 통해 자신의 인생이 영원히 변화되었노라 고백한다. 그들의 말은 진실일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되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나 자신이 오래 앓았던 우울함을 덮을 것이 필요했고, 그것이 종교라고 믿었다. 종교를 이용해 나 자신에게 계속 최면을 걸었다. 이것만 있으면 나는 행복해질 것이다. 종교를 삶의 최우선으로 삼았기 때문에 행복해졌다고 말하는 저들처럼 될 수 있다. 그런데 최면은 언제까지나 내 가장 깊은 곳에 있는 우울을 덮어주지 못했다. 곧 밑천이 드러나고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느낀 우울함은 이런 사태가 벌어질 것에 대한 예표였던 셈이다. 나는 신을 인정했던 것보다 더욱 명료한 인식으로 나 자신을 받아들였다. 어쩌면 종교가 여기까지 이르는 데에 도움을 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나는 종교를 그만두었다. 종교는 더 이상 내 삶을 지배할 수 없었다.
■ 돌아온 공허
종교를 그만두고 나서, 나인 인치 네일스를 다시 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에 들으려다 그만 둔 신보 “Hesitation Marks”를 들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보를 들어보니 꽤 싱거운 음반이었다. 알고 보니 “Came Back Haunted”가 그 앨범에 수록된 곡들 중에 가장 과격하고 격렬한 곡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얌전한 곡들이었다. 나인 인치 네일스 특유의 징그러운 음색은 여전했지만, 전체적으로 섬세한 움직임으로 일관하는 그런 앨범이었다. 앞에서 싱거운 음반이라 말했다고 이 앨범을 나쁘게 생각하는 건 아니다. 때론 자극적인 음식보다 싱거운 음식이 더 당길 때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역시 내가 알던 나인 인치 네일스는 미친 듯이 날뛰는 맛으로 듣는 음악이었다. 그래서 나는 곧, 내가 한참 숭배하듯 나인 인치 네일스를 좋아할 때 많이 들었던, “Broken”과 “The Downward Spiral” 그리고 “The Fragile” 앨범을 들었다. 역시 이 맛이다 싶었다. 그런데 왠지 내가 고등학생 때 한참 열광하던 그 때 그 느낌이 그대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이쯤 되니 그냥 나 자신이 나인 인치 네일스의 감성과 멀어져서 그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내가 나인 인치 네일스를 지나치게 많이 들어서 좀 질린 탓인지도 모르고. 어쩌면 그동안 나이가 많이 들어서 그만큼 감수성이 무뎌진 것이거나. 그렇게 나는 다른 밴드를 더 많이 들으면서 나인 인치 네일스와 완전히 멀어지는 것 같았다.
종교를 그만두고 다시 또 2년이 흘렀다. 지금은 이상하게, 다시 나인 인치 네일스를 듣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 음악을 다시 찾게 된 시기는, 내 마음의 음울함이 커지기 시작한 시기와 맞물린다. 지금은 오히려 잠시나마 나인 인치 네일스 음악이 질린다고 여겼던 나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로, 다시 거기에 몰입하고 있다. 사실 나는 인생명반 1편을 쓸 때부터 “The Fragile” 앨범에 대해서 꼭 한 번쯤은 쓰고 싶었다. 그런데 왠지 손에 잡히질 않았다. 돌아보면, 내 감성이 이 앨범에 대해 쓸 만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파격적이고 공격적인 느낌으로 따지면 확실히 “The Fragile”보다 “The Downward Spiral”이 우위라고 할 수 있겠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도 “The Downward Spiral” 쪽이 훨씬 쉽다. 그런데 “The Fragile”로 말할 것 같으면 감성적인 깊이가 “The Downward Spiral”에 비해 훨씬 깊은 느낌이다. 그 감성의 깊이가 음악적으로는 질질 늘어지는 느낌으로 다가올 수는 있겠으나, 청자의 감성이 이 앨범 속 화자의 감성과 동화되는 순간, 이 앨범의 위대함을 뼛속까지 깨닫게 되는 마력이 분명히 있다.
“The Fragile”은 “The Downward Spiral”에 비해 부드러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앨범이지만, 오히려 난해함은 더욱 강화된 느낌이다. “The Downward Spiral”은 메탈(Metal)의 다 때려 부수는 짜릿한 느낌이라도 살아있지, “The Fragile”은 그런 맛으로 듣기엔 뭔가 애매하다. 그렇다고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앨범은 절대 아니다. 나인 인치 네일스가 초창기부터 밀어 온 특유의 징그러운 음색은 여전히 끌고 가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청자의 입장에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 즐겨야 할지 판단하기가 꽤 난감한 앨범이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 앨범을 즐길 포인트를 잡아주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요소가 있다. 그것은 가사를 유심히 보면 알 수 있다. 이 앨범은 전작 “The Downward Spiral”처럼 콘셉트 앨범이다. 그런데 콘셉트 앨범이라기엔, “The Downward Spiral”만큼 스토리의 기승전결이 명확한 편은 아니다. “The Fragile”은 기승전결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는 앨범이 아닌, 스토리의 시점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액자식 구성에 더 가깝다. 2CD로 구성된 이 앨범은 “LEFT”라는 이름이 붙여진 CD1번과 “RIGHT”라는 이름이 붙여진 CD2번이 각각 다른 음악적 색채를 가지고 있고, 가사에도 차이점을 보인다. 이 두 CD가 보이는 차이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 앨범의 제목이 왜 “The Fragile”인지 살펴보면 이 앨범에 대한 해석이 더욱 명확해진다.
■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 그리고 상실
앨범에 대한 해석은 음악 감상에 깊이를 더한다. 2CD라는 방대한 분량 때문에 그만큼 해석할 것이 많아지고, 그에 따라 해석 난이도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해석이 쉬워지고, 그에 따라 그 깊은 맛이 우러나온다고나 할까. 한 번 제대로 맛을 들이기 시작하면 “The Downward Spiral”보다도 더 자주 찾게 되는 그런 마력을 지녔다. 본인도 내 인생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쪽이라면 94년 작 “The Downward Spiral” 앨범을 뽑지만, 가장 자주 들으면서 애정도 가장 많이 쏟은 앨범이라면 99년 작 “The Fragile”을 뽑는다. 우선 이 앨범의 제목부터 보자. Fragile. 연약한. 취급주의. 그런 뜻이다. 깨지기 쉬운 유리나 도자기 등이 떠오르기도 한다. 우리는 흔히 연약하다는 표현을 보면, 부드럽고 얌전한 것들을 주로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이 앨범의 사운드는 결코 부드럽지 않다. 오히려 불친절하고 거칠다. 사실 연약한 유리나 도자기는 깨지고 나서 드러나는 파편의 모습이 날카롭고 처참하다. 그 파편을 생각하면 연약한 것들에 대해 언제나 부드러운 것들만 떠올리는 게 단편적인 고정관념일수도 있겠다. 마침 앨범아트에 꽃이 있으니, 연약한 것들의 대표라 불리는 꽃을 생각해보자. 유리나 도자기처럼 날카로운 파편을 남기지는 않지만, 꽃의 지극히 짧은 수명은 아름다운 것들이 지니는 필연적인 유한함에 대해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면이 분명히 있다. 그런 안타까운 생각이 진행되다 보면, 세상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결국 덧없이 사라진다는 염세적인 사고에 이르기 쉽다. 이 앨범을 듣다 보면, 연약함에는 분명 날카로움이 있고, 염세적인 생각에 쉽게 빠지게 만드는 징그러운 면 또한 있다는 걸 상기하게 된다.
이런 앨범 제목에 대한 해석을 놓고, CD1 “LEFT”를 살펴보자. 이 앨범은 스토리가 기승전결 순차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사운드와 가사를 음미하며 스토리를 유추해보면, 여기서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정서는 ‘갈망’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갈망하는 행복이나 사랑을 이 앨범 속 화자가 갈망하고 있다. 그러나 화자는 자신이 갈망하는 것들을 얻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인다. 평소에 염세적인 생각에 쉽게 몰두하는 화자에겐, 세상은 이미 모든 것이 망해버린 포스트 아포칼립스(Post Apocalypse)처럼 보인다. 이런 화자의 생각을 가장 잘 드러내는 곡이 2번 트랙 “The Day the World Went Away”와 12번 트랙 “The Great Below”다. 하지만 화자는 이런 암울한 세상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한다. 화자는 여전히 행복과 사랑을 갈망하며, 그것들을 갈망하는 끝에 겨우 아름다운 것들을 곁에 둘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것들을 자신의 품에서 사라지지 않게 지키는 것이 죽을 만큼 힘겨워 보인다. 이런 정서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곡으로는 5번 트랙 “We're in This Together”와 바로 이어지는 6번 트랙 “The Fragile”이 있다. 5번 트랙에서는 격렬하고 역동적인 곡 구조로 사랑하는 이를 잔혹한 세상으로부터 지키겠다는 화자의 굳은 결의가 느껴진다. 6번 트랙은 잔혹한 세상에서 겨우 빠져나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보금자리에서 불안을 노래하는 느낌이다. 특히 6번 트랙은 앨범 이름과 동명의 곡이므로, 이 앨범의 주제를 더욱 잘 부각시키는 곡이라 할 수 있다.
이토록 자주 불안에 떠는 화자를, 세상은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자신을 행복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잔혹한 세상을 향해 울분을 표출하는 트랙들도 이 CD 안에 들어있다. 6번 트랙이 끝나자마자 이어지는 7번 트랙 “Just Like You Imagined”는 곡 제목에서 드러내는 것처럼, 화자 앞에 광대하게 펼쳐질 불길한 일들을 예고한다. 기괴한 음색이 대형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웅장하게 펼쳐지며 불길한 풍경을 그려낸다. 1번 트랙 “Somewhat Damaged”는 세상에 의해 상처 받은 자신의 마음이 치유 받기엔 이미 다 썩어문드러졌다고 말하며, 과격하고 육중한 사운드가 긴장감을 유발한다. 3번 트랙 “The Frail”에선 조용한 걸 넘어서 싸늘하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느리게 연주되는 피아노를 들을 수 있는데, 이 곡은 4번 트랙 “The Wretched”로 마치 한 곡인 것처럼 이어진다. “The Wretched”는 연약한 화자의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육중하고 기괴한 비트로 청자에게 불안감을 선사한다. 여기에 잔뜩 일그러진 보컬은 세상의 잔혹함을 한껏 맛보고 냉소하는 느낌을 전달한다. 이토록 아름다움과 혼란을 바쁘게 오가는 화자의 마음은, 11번 트랙 “La Mer”에서 하나로 혼합된 형태로 드러난다. 이 곡의 제목은 프랑스어로 바다를 뜻하는 말로써, 이 곡을 듣고 있으면 화자의 마음 속 풍경이 바다처럼 펼쳐지는 걸 느낄 수 있다.
■ 처절한 마지막 몸부림 끝에 체념
“RIGHT”라 이름이 붙여진 CD2에서는 CD1에서 느낄 수 있었던 갈망의 정서는 옅어지고, 갈망마저 포기해버린 체념과 분노가 느껴진다. CD1에서도 분노는 표출되었지만, CD2의 분노가 훨씬 맹렬하다. 따라서 음악도 CD1에 비해 CD2가 훨씬 역동적인 편이다. 2번 트랙 “Into The Void”는 제목과 가사가 훗날 나오게 될 노래 “Came Back Haunted”와 결을 같이한다. 내가 “Came Back Haunted”를 들으면서 예전에 느끼던 감정이 생생하게 되살아난 게 이런 이유일 것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처음엔 스산한 연주가 부드럽게 울려 퍼지는데, 이게 점점 소리가 더욱 기괴하게 일그러지고, 그 위에 더욱 많이 일그러진 소리들이 중첩된다. 자신을 불행으로부터 구원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고, 다시 구원을 갈망해도, 다시 뜻이 엎어지고, 다시 갈망하고, 엎어지고, 이 과정을 반복하며 환멸을 느끼는 화자의 심정을 표현했다. 화자의 지속되는 마음의 공허는 곧, 자신의 곁에 아무도 없다는 자각에서 오는 원망을 표현한 3번 트랙 “Where Is Everybody?”와, 이런 암울한 상황이 부디 멈춰주길 바라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외치는 5번 트랙 “Please”, 그리고 세상의 모든 부와 명예를 가진 이들을 향한 맹렬한 질투를 담은 6번 트랙 “Starfuckers, Inc.”까지 이어진다.
무엇보다 CD2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부분은 역시 마지막 네 트랙이다. 싸늘한 악기 연주들과 더불어 읊조리듯 그리움을 노래하는 8번 트랙 “I'm Looking Forward to Joining You, Finally”를 지나면, 9번 트랙 “The Big Come Down”에서 자신의 비참한 최후를 예감한 화자의 심정이 긴장감 넘치는 사운드로 펼쳐진다. 10번 트랙 “Underneath It All”은 자신에게 남아있는 힘을 겨우 끌어 모아 살벌한 음색을 토해낸다. 그 살벌한 음색 속에 드러나는 감정은 그리움이다. 이 그리움은 그저 일상에서 마주하는 잔잔한 감정이 아니라, 죽기 직전에 몰려오는 온갖 후회와 더불어 몰려오는 처절함이다. 마지막 11번 트랙 “Ripe (With Decay)”는 시체가 섞어가는 과정을 묘사하듯, 느리고 끈적끈적한 연주로 일관한다. 자신에게 남아 있는 그리움을 미처 다 해소하지도 못하고 쓸쓸히 죽어가는 사람의 심정이 느껴진다. 화자는 모든 것이 망해버린 세계 속에서도 갈망을 놓지 않았지만, 그 갈망들은 끝내 실현되지 못했고, 결국 자신이 예견한 모든 불길한 일들이 벌어지며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갈망과 환멸을 반복하며 삶에 지쳐가는 화자의 심정을 2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음악으로 펼쳐낸 것이다.
방금도 말했듯이, 이런 기괴한 음색이 질질 늘어지는 음악을 2시간 가까이 듣는다는 것은, 누군가에겐 고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앨범 속 화자처럼 갈망과 환멸을 지속하는 인생에 지친 누군가에겐, 삶 그 자체가 이미 잔혹한 고문일 것이다. 그에게는 생보다도 더 잔혹한 고문이 없을 텐데, 이런 음악을 듣는 게 고문이 될 수 있을까. 오히려 그에겐 자신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이의 비참함을 음악으로 느낄 수 있음에, 조금이라도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이런 고문 같은 생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우리는 결코 알지 못한다. 생의 너머를 경험하고 돌아온 사람들이 있다고, 그런 소문들을 가끔 접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그것에 공감하기란 쉽지 않다. 아무리 당장 끊어버리고 싶은 삶일지라도, 그것을 정말로 끊어버리는 것은 어쩌면 고문을 견디는 것보다도 훨씬 어려운 일이 될 수도 있다. 결국 고문 같은 삶이라도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고통스러운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 나약한 인간들이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숙명일 터. 그런 숙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이런 음악의 힘이라도 빌려야 마땅할 것이다. 이 와중에도 나는 언제나 궁금하다. 이런 갈망과 환멸을 반복하는 삶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내 삶은 정말로 구원 받을 수 있을까.
트랙리스트
CD1 LEFT
1. Somewhat Damaged
2. The Day The World Went Away
3. The Frail
4. The Wretched
5. We're In This Together
6. The Fragile
7. Just Like You Imagined
8. Even Deeper
9. Pilgrimage
10. No, You Don't
11. La Mer
12. The Great Below
CD2 RIGHT
1. The Way Out Is Through
2. Into The Void
3. Where Is Everybody?
4. The Mark Has Been Made
5. Please
6. Starfuckers, Inc.
7. Complication
8. I'm Looking Forward To Joining You, Finally
9. The Big Come Down
10. Underneath It All
11. Ripe (With Decay)
같이 보면 좋은 기사
▲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 The Downward Spiral
▲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 Year Zero
▲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 - Antichrist Super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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