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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 - Antichrist Superst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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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9: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 - Antichrist Superstar

 

[ 유토피아보다 완벽한 디스토피아의 역설적 아름다움 ]

 

 

■ 혐오가 대세인 세상

 

여성혐오, 성소수자혐오, 장애인혐오, 무슬림혐오, 등등... 요즘은 혐오라는 단어가 대세인 거 같다. 어딜 가나 혐오라는 단어가 안 보이는 곳이 없다. 혐오는 이제 세계적인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거 같다. 혐오를 빼놓고 어디서 얘기를 하는 게 참 힘든 세상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그 어떤 것도 혐오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마음은 혐오하는 자들을 혐오하는 데에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이런 현 세태를 미리 예견하고 노래로 만든 예언자적 인물이 있다면 믿겠는가? 그의 이름은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이다.

 

마릴린 맨슨, 그에 대한 내 마음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한 때 그에게 “츤데레”의 마음을 품었다. 겉으로는 싫은 척을 해도, 은근히 속으로는 좋아할 수밖에 없는 그런 인물이라는 얘기다. 나는 한 때 교회를 굉장히 열심히 다녔다. 그 와중에도 과격한 록 음악을 즐겨들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내게는 기독교인으로서 지켜야 하는 선이라는 게 있었다. 마릴린 맨슨의 음악을 즐겨 듣는 건 기독교인으로서 큰 죄를 짓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워낙에 음악이 좋아서, 안 들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그의 음악은 좋아해도, 그의 사상에는 동조하지 않는 걸로 타협을 보고, 조금씩 그의 음악을 들었다.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하자면, ‘마릴린 맨슨 이 새끼는 하는 짓은 마음에 안 드는데, 어쨌든 음악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니까.’ 이런 생각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앨범 이름에서부터 “Antichrist(적(敵)그리스도)”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마릴린 맨슨의 대표 앨범은 듣질 않았다. 대신 다른 앨범들을 열심히 들었다. 하지만 마릴린 맨슨의 음악을 좋아하는 나로선 그의 대표 앨범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기독교인을 관둔 최근에서야 이 앨범을 접하게 되었는데, 지금 굉장히 이 앨범에 열광하는 중이다. 과연 사람들이 이토록 이 앨범에 열광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

 

 

 적그리스도를 선언한 마릴린 맨슨

 

일단 마릴린 맨슨의 앨범 “Antichrist Superstar”를 살펴보기 전에, 그가 누구이며, 왜 이런 제목을 가진 앨범을 발매하게 되었는지부터 알아보자. 마릴린 맨슨은 한 개인의 예명이기도 하고, 그 개인이 이끄는 밴드의 이름이기도 하다. 마릴린 맨슨은 희대의 섹스 심볼 마릴린 먼로와 희대의 살인마 찰스 맨슨의 이름을 합쳐서 만든 이름이다. 그가 이끄는 밴드 멤버들도 다들 이런 식으로 유명한 여배우와 유명한 살인마의 이름을 조합해서 예명을 지었다. 이 밴드의 이름부터가 그들이 지향하는 음악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다. 아름다움과 사악함이 공존하는 세상의 모순을 음악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 그들의 지향점인 것이다.

 

마릴린 맨슨과 그의 밴드 멤버들은 모두 본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짙은 화장을 하고 무대에 오른다. 화장이 너무 지나쳐서 기괴해 보일 정도다. 화장이라는 건 본래 더 아름다워 보이려고 하는 건데, 화장을 통해 자신들의 모습을 훨씬 기괴하게 만드는 그들의 역설이 놀랍다. 그들의 비주얼은 모순적인 그들의 밴드 이름과 무척 잘 어울린다.

 

마릴린 맨슨이 주목받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세계적으로는 유래 없이 적(敵)그리스도 콘셉트를 내세워 활동했다는 점이다. 물론 그들 이전에도 악마주의를 내세워 활동하는 앨리스 쿠퍼, 오지 오스본, 블랙 사바스 같은 선배들이 있었지만, 그들조차도 적(敵)그리스도를 마릴린 맨슨만큼 적극적으로 내세우진 않았다. 사실 마릴린 맨슨도 선배 뮤지션들처럼 악마주의 비슷한 기괴한 콘셉트를 잡는 밴드였지, 처음부터 적그리스도를 내세우는 밴드는 아니었다.

 

그들이 적그리스도 콘셉트를 가지고 활동하게 된 계기는 이러하다. 94년, 마릴린 맨슨이 그들의 레이블 사장인 트렌트 레즈너가 속한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라는 밴드와 함께 투어를 하고 있었을 때의 얘기다. 마릴린 맨슨은 나인 인치 네일스와 함께 미국 유타 주에 도착했는데, 마릴린 맨슨은 그곳에서 안톤 라베이의 사탄 교회를 가게 된다. 마릴린 맨슨은 그 사탄 교회에서 성직자 칭호를 받았다. 유타 주는 우리나라에서 몰몬교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신도가 인구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곳인데, 그 교회의 한 지도자가 마릴린 맨슨이 유타 주에 있는 사탄 교회에서 성직자 칭호를 받은 행위를 맹비난하기에 이른다. 여담이지만, 안톤 라베이의 사탄 교회는 이름만 사탄 교회지, 살인이나 절도 등 그 어떤 반인륜적인 행위도 저지르지 않고, 교리에 있어서도 그 어떤 반인륜적 사상도 담고 있지 않은 점잖은 교회다.

 

 

▲ 마릴린 맨슨과 "안톤 라베이 사탄 교회"의 지도자

마릴린 맨슨은 자신을 비난한 후기 성도 교회 지도자 때문에 격분하여, 나인 인치 네일스의 유타 주 공연 오프닝에 등장하여, 후기 성도 교회 신도들에겐 성경만큼이나 성스럽게 여겨지는 책 “몰몬경”을 한 장 한 장 찢어서 관객들에게 뿌리는 파격적 퍼포먼스를 벌인다. 당연히 이 소식은 유타 주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 더 나아가 세계적으로 퍼지게 된다. 그는 부모 모두 크리스찬인 탓에, 어린 시절 기독교 미션 스쿨을 다녔다. 그는 그곳에서 다른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했는데, 그 사실을 미션 스쿨 담당 목사에게 알려도, 그 목사가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종교에 대한 심한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안 그래도 종교에 반감을 가지고 있던 마릴린 맨슨이 유타 주 사건을 계기로 반(反)종교 주의자적인 면모를 더욱 부각하게 된 것이다.

 

 

 혐오가 만연한 세상을 노래하다

 

96년에 발표된 마릴린 맨슨의 두 번째 정규 앨범이자, 그의 시그니처 앨범으로 평가되는 “Antichrist Superstar”는 이런 배경을 가지고 탄생한 앨범인 것이다. 이 앨범은 인생명반 시리즈에서도 소개한 적 있는 뮤지션인 나인 인치 네일스의 “트렌트 레즈너(Trent Reznor)”가 프로듀서를 맡았다. 1집 때부터 그의 완벽주의자적인 프로듀싱에 힘입어 음악적으로 계속 성장을 거듭하던 마릴린 맨슨은 “Antichrist Superstar”에서 절정의 음악성을 발휘한다. 이 앨범을 듣고 있다 보면, 마릴린 맨슨이 아무리 충격적인 비주얼이나 파격적 행보 및 발언으로 화제가 되어도, 결국 그가 지금까지 이름이 거론되는 건 역시 음악 덕택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1번 트랙 “Irresponsible Hate Anthem”은 제목에서부터 이 앨범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Anthem”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국가(國歌)나 혹은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가처럼 혼자서 부르기 보단 제창이 많이 되는 그런 노래를 일컫는 단어다. 그런데 그 단어 앞에 “Irresponsible Hate(무책임한 혐오)”라는 단어가 붙었다. 사람들이 “Hate(혐오)”라는 단어를 “Anthem(송가)”로써 “Irresponsible(무책임하게)” 부르고 다닐 만큼, 세상에 혐오가 만연하게 된 세기말의 혼란한 상황을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어쩌면 지금이 세기말보다 더 혐오가 만연한 시대일지도 모른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세계적으로 전보다 훨씬 과격한 테러를 많이 일삼게 되었고, 그로인해 무슬림들에 대한 갈등이 심화되고 있고, 세계적으로 극우정당들이 입지를 굳히고 있으며, 세계 최강국인 미국에는 이미 인종차별주의자로 유명한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을 하고 있어, 세계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몇 천 년 동안 지속되던 남녀 간의 갈등과 혐오는 지금에 와서, 미소지니스트와 페미니스트 사이에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한 형태로 드러나게 되었다. 지금만큼 “Irresponsible Hate Anthem”이라는 문장이 잘 어울리는 시대는 또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마릴린 맨슨은 분노에 가득 찬 목소리로 혐오를 일삼는 자들에게 “Fuck It!(좆까!)”를 여러 번 힘차게 외친다. 마릴린 맨슨의 천둥 같은 목소리와 함께, 악기들이 백 만 대군과도 같은 위력으로 같이 돌진하며, 그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준다.

 

 

▲ 1번 트랙 “Irresponsible Hate Anthem”

 

▲  2번 트랙 “The Beautiful People” 뮤직비디오 (혐오스러운 장면 주의!)

혐오를 일삼는 자들을 항해 강력한 독설을 풀고 나서, 그 독설은 이제 미국이라는 더욱 구체적인 대상으로 향하게 된다. 2번 트랙 “The Beautiful People”은 “America the Beautiful”이라는 노래를 국가처럼 부르며, 자신들을 아름다운 국가의 시민이라고 일컫는 미국인들을 비꼬는 내용이다. 구더기가 들끓는 거 같은 사운드 위로 날카로운 기타 연주가 유유히 흐른다. 마릴린 맨슨의 목소리가 그 사이로 서서히 끼어들어 곡의 힘을 더한다. 갑자기 폭발하듯 날뛰는 사운드와 함께 목이 째져라 소리치는 마릴린 맨슨의 목소리가 일품이다. 곡의 진행에 따라 자신의 음색을 얇게 바꿨다가, 굵게 바꿨다가, 여리게 바꿨다가, 거칠게 바꿨다가, 변화를 거듭하는 마릴린 맨슨의 모습에서 그의 보컬 역량이 얼마나 대단한지 엿볼 수 있다. 그의 보컬 역량은 미국인들을 실컷 조롱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5번 트랙 “Little Horn”은 밴드의 힘찬 연주 역량을 한껏 느낄 수 있는 트랙이다. 처음에 기타 솔로로 비장한 분위기를 깔고, 마릴린 맨슨의 뒤틀린 음색이 그 위를 유유히 흐른다. 그러다가 드럼이 난폭하게 끼어들고, 그와 함께 다른 악기들과 마릴린 맨슨의 목소리가 더욱 난폭하게 날뛴다. 특히 마릴린 맨슨의 전기톱을 목 안에 넣어놓고 최대 출력으로 돌리는 것 같은 목소리가 일품이다. 그의 샤우팅은 사회의 가장 추악한 면을 실컷 난도질한다. 그의 밴드도 이에 질세라, 거침없는 연주로 마릴린 맨슨의 목소리에 온 힘을 다 실어주는 느낌이다.

 

 

 세상을 향한 안티 선언

 

1번 트랙부터 4번 트랙까지는 “Cycle I: The Heirophant”라는 소제목이 명명된 부분으로서, 세상의 추악한 면을 드러내고 비판하는 데에 초점을 둔다. 5번 트랙부터는 그 썩은 세상에 의해 상처받고 뒤틀린 한 개인의 모습을 투영하는 데에 초점을 두게 된다. 5번 트랙 “Little Horn”이 포문을 열고 나서, 기괴하면서도 몽환적인 사운드가 분위기를 이끄는 6번 트랙 “Cryptorchid”와 여전히 몽환적이지만 6번 트랙보다 좀 더 과격해진 7번 트랙 “Deformography”가 이어진다.

 

8번 트랙 “Wormboy”는 6번 트랙과 7번 트랙이라는 알에서 깨어나 발랄하게 꿈틀대는 애벌레 같은 트랙이다. 이 트랙은 이 앨범에 수록된 그 어떤 곡들 중에서도 가장 재치 있는 곡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곡은 과격하고 음산한 분위기로 가득 찬 본 앨범에 색다른 활기를 불어넣는다. 익살스러운 가성과 굵은 진성을 번갈아가며 사용하는 마릴린 맨슨의 목소리에서 세상을 능숙하게 조롱하는 조련사의 품격이 느껴진다. 9번 트랙 “Mister Superstar”는 “미스터 포르노 스타, 나는 당신을 원해”라는 가사와 함께 세상의 온갖 뒤틀린 것들을 원하는 메시지를 육중한 연주와 함께 전달하는 곡이다.

 

 

▲ 4번 트랙 “Tourniquet” 뮤직비디오 (혐오스러운 장면 주의!)
▲ 6번 트랙 “Cryptorchid” 뮤직비디오 (혐오스러운 장면 주의!)

마릴린 맨슨은 9번 트랙 “Mister Superstar”라는 번데기를 깨고 10번 트랙 “Angel With The Scabbed Wings”에서 날개를 펴고 나비가 되어 날아오른다. 9번 트랙에서 마릴린 맨슨은 “이봐 미스터 빅 록 스타, 나는 당신처럼 되고 싶어.”라고 말했는데, 10번 트랙에서 비로소 “미스터 빅 록 스타”의 모습을 완벽하게 갖춘 것처럼 보인다. 난폭한 악기 연주는 마릴린 맨슨의 “딱지가 잔뜩 앉은 날개”를 힘차게 푸드덕거리며 날아가는 모습을 표현하는 것 같다. 마릴린 맨슨의 찢어지는 목소리는 세상에 의해 자신이 얼마나 추악하게 변했는지를 보라며 소리치는 것 같다. 마릴린 맨슨은 과격하면서도 발랄한 연주에 힘입어, 추악한 자신의 모습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더욱 높은 곳으로 힘차게 날아간다. 그렇게 11번 트랙에서 “Cycle II: Inauguration of the Worm”이라고 명명된 두 번째 부분이 끝난다.

 

자신의 날개를 펼쳐 높은 곳으로 주저 없이 나아가는 마릴린 맨슨은 12번 트랙 “Antichrist Superstar”에서 자신이 가장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전파한다. 세 번째 부분 “Cycle III: Disintegrator Rising”이라고 명명된 부분이 시작한다. 세상이 무너지고 있음을, 세상이 종말을 향해 가고 있음을 설파하는 것이다. 미국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나라지만, 기독교 문화가 깊숙하게 파고 들어간 나라다. 건국할 당시에도 기독교적인 배경에 뿌리를 두고 건국된 만큼, 기독교란 미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이고, 어쩌면 기독교는 미국의 뿌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마릴린 맨슨은 이런 기독교를 면전에 두고, 적그리스도 슈퍼스타를 선언한 것이다. 마릴린 맨슨의 적그리스도 슈퍼스타 선언은 단순히 기독교 하나를 두고 적대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의 뿌리에 대한 반항이며, 미국의 모든 것에 대하여 반항하겠다는 선언인 것이다. 세계 최강국 미국에 반발한다는 것은 곧, 세계 모든 것을 적으로 둔다는 얘기나 다름없다. 미국이 세계적으로 얼마나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답이 쉽게 나올 것이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마릴린 맨슨은 가장 도덕적이야 할 목사라는 사람에게, 가장 추악한 모순을 발견하고 종교에 환멸을 느낀 사람이다. 마릴린 맨슨은 13번 트랙 “1996”에서 자신은 세상 모든 것을 혐오하는 “세상의 안티”임을 선언한다. 흔히 마릴린 맨슨에게 “사탄”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데, 마릴린 맨슨은 이 노래에서 “Anti satan”이라는 말을 한다. 그만큼 마릴린 맨슨이 혐오하는 대상에는 예외가 없다는 것이다. 세상 모두가 편을 갈라 누구는 좋아하고, 누구는 차별하는 선택적 혐오를 행사하는 가운데, 마릴린 맨슨의 혐오는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적어도 마릴린 맨슨은 혐오에 있어서는 지극히 공평하다. 그래서 13번 트랙 “1996”은 이 앨범에 실린 그 어떤 곡보다도 과격하고 폭발적인 사운드를 선보인다. 혐오로 가득 찬 이 세상에, 차별은 더욱 심해지고, 차별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싸움은 더욱 격렬해지고 있다. 차별이 심해질수록 공평함은 사라져 가는데, 마릴린 맨슨이 부르짖는 모든 것이 파멸한 디스토피아 속에선 적어도 공평함만큼은 살아있다.

 

 

▲ 12번 트랙 “Antichrist Superstar” 라이브 영상. 그 유명한 마릴린 맨슨의 "성경 찢기" 퍼포먼스가 나온다.

 

 ▲ 16번 트랙 “Man That You Fear” 뮤직비디오

 

 

 모든 것이 파멸한 디스토피아, 그곳에서 단 하나의 아름다움을 찾다

 

15번 트랙 “The Reflecting God”에서 마릴린 맨슨은 자신을 신이 되었다고 선언하고, 세상을 모두 박살내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곡이 한참 진행되다가 곡이 새로운 면으로 접어들며 드럼소리가 바쁘게 날뛴다. 그 드럼 소리는 원시시대에 살던 우리의 조상들이 가장 야만스럽게 전쟁하는 모습을 떠올리게 만든다. 혐오로 가득 찬 세상은 혐오로 인해 파멸을 맞이하며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드럼 소리가 끝나고 나면, 베이스 기타가 바쁘게 연주를 거듭하며 비장한 분위기를 한껏 깔아둔다. 그 위로 광기에 깊이 젖은 마릴린 맨슨의 목소리가 “구원은 없다. 용서도 없다.”라는 말을 실컷 뱉으며 곡을 지배한다. 일렉트릭 기타 연주도 초고음을 내면서 자신의 힘을 더한다.

 

마릴린 맨슨이 “The Reflecting God”을 통해 모두 파괴시킨 세계는 마지막 16번 트랙 “Man That You Fear”에서 슬픈 모양으로 남게 된다. 잔잔한 피아노 연주와 차분하게 가라앉은 마릴린 맨슨의 목소리는 파멸을 맞이한 세상의 참혹함을 그대로 노출한다. 모든 것이 파멸하고 먼지만 남은 세계에서, 오히려 눈앞의 현실에선 느낄 수 없는 평화를 느낀다. 지금 이 현실을 보면,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한없이 멀게 느껴진다. 모든 것이 너무 어지럽고, 세상에 만연한 갈등과 차별은 점점 심해져만 가는데, 어떻게 모두가 행복하고 모두가 웃으면서 살 수 있는 유토피아를 꿈꿀 수 있을까. 하긴, 유토피아(Utopia)라는 말 자체가 원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향”을 뜻하는 것이니, 멀게만 느껴지는 건 당연한 거다.

 

그럴 때 우리에게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건 유토피아가 아닌 디스토피아(dystopia)다. 유토피아와 완전히 반대개념인 디스토피아는 막말로, 꿈도 희망도 없는 무자비한 세계다. 하지만 이토록 불완전하고 모순에 가득 찬 세상보다야, 차라리 모든 것이 파멸한 디스토피아가 더 아름다운 것일 수도 있다. 적어도 마릴린 맨슨이 이 앨범을 통해 창조해낸 디스토피아 속에선 “공평함” 만큼은 살아있다. 그의 혐오는 대상을 가리지 않았으며, 모든 것을 공평하게 혐오했다. 마릴린 맨슨은 온갖 추태와 극단적인 범죄를 저지르고도, 정의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를 일삼는 자들에게 “니들 중에 옳은 인간은 아무도 없어! 니들은 다 틀렸어! 니들은 다 똑같아! 니들 다 똑같이 죽어버려!”라고 당당하게 외친다. 그래, 마릴린 맨슨의 말이 맞다. 이렇게 저마다 자기만 옳다고 외치는 사람이 너무 많은 어지러운 세상에서, 모두가 똑같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차라리 모두 똑같이 죽는 게 훨씬 더 나아 보인다. 삶은 불공평할지라도,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법이니까.

 

 

▲ 마릴린 맨슨 정규 2집 투어 당시 밴드 멤버들. 좌측부터, 진저 피쉬(Ginger Fish, 드럼), 트위기 라미레즈(Twiggy Ramirez, 베이스), 마릴린 맨슨(보컬), 짐 줌(Zim Zum, 기타), 마돈나 웨인 게이시(Mandonna Wayne Gacy, Pogo, 키보드)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다 나아지길 바라는 게 전부다. 또한 그것이 가장 옳은 삶의 형태일 것이다. 사람이 어찌 꿈이나 희망도 없이 살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 꿈과 희망이 너무 멀게 느껴질 땐, 마릴린 맨슨이 창조한 완벽한 디스토피아에 잠시 기대는 건 어떨까. 내 삶을 이토록 힘겹게 만드는 자들이 만연한 세상에, 그들을 향한 증오를 잠시 마릴린 맨슨이 창조한 디스토피아에 맡겨보는 건 어떨까. 우리는 유토피아를 꿈꾸기엔 너무 버거운 존재들이 아니던가. 차라리 유토피아보다 가깝고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디스토피아의 아름다움에 기대어 삶을 살아갈 힘을 다시 얻자. 그런 역설을 마음껏 누려보자. 우리 인간은 원래 저마다 모두 모순에 가득 찬 존재들이 아니던가.

 

마릴린 맨슨이 기괴한 화장을 하고, 거친 목소리를 뿜어내더라도, 그토록 멋있어 보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따로 있다. 나는 마릴린 맨슨이 자신의 본명인 “브라이언 휴 워너(Brian Hugh Warner)”로서는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그러나 브라이언 휴 워너가 마릴린 맨슨이 될 때, 그는 완벽한 디스토피아의 완벽한 군주로 군림하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 모든 것을 가리지 않고, 공평하게 혐오하는 그런 디스토피아의 군주 말이다. 베토벤은 “음악은 모든 지혜와 철학보다 한수 위의 계시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마릴린 맨슨이 디스토피아의 군주로서 자신의 메시지를 가장 잘 전파할 수 있었던 수단은 그의 노래하는 목소리와, 그의 밴드가 만들어낸 음악이었다. 그의 기괴한 비주얼과 파격적인 발언 및 퍼포먼스조차도 그의 음악을 뛰어넘는 파급력을 지니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마릴린 맨슨이 지금까지도 이름이 거론되는 이유일 것이며, 그가 10번째 정규앨범을 낼 정도로 롱런할 수 있는 이유다. 마릴린 맨슨의 음악은 마릴린 맨슨 본인이 “우리는 루시퍼의 길을 설파하기 위해 길을 나선다. 내년에 세상이 멸망하지 않는다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세상에 혐오가 만연하는 이상 끊이지 않고 울려 퍼질 것이다.

 


트랙리스트

 

Cycle I: The Heirophant

1. Irresponsible Hate Anthem

2. The Beautiful People

3. Dried Up, Tied And Dead To The World

4. Tourniquet

 

Cycle II: Inauguration of the Worm

5. Little Horn

6. Cryptorchid

7. Deformography

8. Wormboy

9. Mister Superstar

10. Angel With The Scabbed Wings

11. Kinderfeld

 

Cycle III: Disintegrator Rising

12. Antichrist Superstar

13. 1996

14. Minute Of Decay

15. The Reflecting God

16. Man That You Fear

99. (Hidden Tr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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