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명반 에세이 60: 검은잎들(Leaves Black) - 책이여, 안녕!
앉아서 갈구하기보다 일어나서 쟁취하기로 다짐하기까지
■ 추억은 음악을 만든다
“극장에서 누구랑 어떻게 보는가가 사실 영화의 완성이거든요. ‘누구랑 어떤 길을 걸어가서 어떻게 보고 나왔느냐’까지가 영화의 완성이라고 생각해요.”
왕가위 감독이 자신의 영화 철학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이다. 나는 본래 영화관에 잘 가지 않는다. 지금 역병 사태 때문에 그런 건 아니고, 그전부터 그랬다. 영화를 누구와 같이 보는 것보다, 집에서 혼자 보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일단 최신 영화에 별 흥미를 가지지 않은 탓이기도 하고, 어쩌다 끌리는 영화가 개봉해도, 같이 보러 갈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내 취향에 맞춰줄 사람을 주변에서 찾는 게 힘들다.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고, 집에서 클래식 영화를 주로 보는 편이기도 해서, 왕가위 감독의 저 한마디를 듣고선 왠지 의아했다. 나는 그럼 어디서 영화의 완성을 만들어야 하나. 그럼에도 저 발언은 오랜 시간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결론은 혼자서도 영화를 완성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떤 영화를 감상할 때, 몸은 비록 혼자일지라도, 머릿속에서는 누군가와 함께 했던 수많은 기억들이 스쳐 지나곤 했다. 그 추억이, 그 추억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나와 함께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이 내가 보는 영화를 완성시킨 것이었다.
음악도 때론 영화를 닮는다. 어떤 음악을 경청하고 있으면, 그 음악과 함께 따라오는 추억들이 있다. 그 추억들을 음미하고 있으면, 추억이 음악을 만드는 것 같다. 같은 음악을 들어도 듣는 때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곤 했다. 그것은 나의 누적된 경험으로 변화된 추억의 면면들이 나의 음악 감상을 바꿔놓은 것이리라. 결국, 영화든 음악이든 그 감상을 완성시키는 것은 나의 경험, 나의 추억이다.
■ 부산과 나의 사랑하는 추억들
부산에는 추억이 많다. 일단 바다가 있다는 점에서, 바다 보러 가고 싶을 땐 가끔씩 혼자서라도 종종 찾아갔다. 첫사랑과 처음으로 데이트를 했던 곳이 부산대 인근 거리였고, 내가 종교인이었을 때 사하구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기억도 빼놓을 수 없다. 봉사활동 같이 하는 동료들과 함께 을숙도에 놀러가서 자전거를 탔던 기억도 생생하다. 내가 속했던 온라인 독서모임 회원들이 오프라인 모임 장소를 광안리로 정했기에, 부산엔 독서모임 회원들과의 추억도 들어있다. 내가 쓴 소설책을 처음으로 입고시킨 서점이 부산에 있기도 하다.
검은잎들, 이 밴드도 내 추억을 뒤지면서, 부산을 얘기할 때 빼놓으면 서운하게 되어버렸다. 벌써 1년이 다 지났다, 피아노를 배우게 된 지도. 배운 지 두 달 만에, 알 수 없는 사정으로 피아노 선생님이 나를 가르치는 걸 그만두시긴 했지만. 그는 나를 무척 친절하게 가르쳐주었고, 우리는 점차 많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러면서 그가 내게 검은잎들의 음악을 추천해주었다. 밴드 이름부터 멋지지 않느냐고, 가사도 정말 잘 쓴다고. 부산 밴드인데 한 번 들어보라고.
검은잎들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이들의 첫 EP에 수록된 “메신저”라는 곡이었다.
“날 안아줘. 아름다움을 알려줘. 뒤틀린 마음들을 모두 잡아 펼쳐줘. 날 안아줘. 차라리 안아서 죽여줘. 헛된 생각은 품지도 못하게.”
타인의 상냥함을 이토록 살의에 가까운 마음으로 갈구하는 문장이 꼭 내 마음 같았다. 이 노래를 내 인생의 주제가라고 칭하기도 했을 만큼, 이 노래의 후렴은 내게 강렬하게 다가왔다. 이런 강렬한 문장을 심드렁한 목소리로 읊조리는 보컬은 내 마음을 살며시 깊게 공명했다. 그에 따라오는 담백한 기타 톤과 여유롭게 달리는 리듬까지 매혹적이었다.
EP 이후, 싱글로 발매된 “수 마디 사랑”도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대 다가와서, 거짓말만 들려줘요. 당신의 진심 따위는, 난 궁금하지 않아. 꾸며낸 온갖 말들로, 매일 매일 날 속여줘요. 수 마디 사랑이네. 계속 속삭여줘요. 수 마디 사랑이네. 수 마디의.”
사실은 상처 많은 사람이면서, 사랑에 전혀 상처 받지 않은 척하려, 상대방 앞에서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데, 그 방어적 태도가 지나친 나머지, 사랑을 향해 냉소를 넘어서, 기괴한 말들을 던진다. 이런 기괴하리만치 방어적인 문장들을 경쾌한 리듬에 실어 무심하게 뱉어내는 노래라니. 이런 악랄함을 봤나!
담백한 음색 속에 강렬한 문장들을 뱉어내는 이런 이상한 밴드를 기꺼이, 내게 추천해준 피아노 선생님께 수없이 감사하면서, 나는 점차 이들에게 빠져들었고, 이들이 선 공개한 싱글 “수다쟁이”와 “몇 개의 모스를 띄울게”를 들으며, 정규 1집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와 동시에 이들의 공연을 보러 부산까지라도 가겠다고 다짐하기에 이른다.
■ 파도와 부산 냄새가 만들어낸 감수성
올해 1월 말, 드디어 내가 반년 가까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정규 1집이 발매되었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처음 들었을 땐 오히려 실망만이 가득했다. EP에서 실컷 보여주던 경쾌한 냉소와 강렬한 독설은 다 어디로 가고, 이렇게 싱겁고 지루한 음악들만 남아버렸나. 기존에 즐겨 듣던 “수다쟁이”나 “몇 개의 모스를 띄울게”마저도 싱글 버전과는 다른 사운드로 앨범에 수록되어 생소했다. 그렇게 나는 정규 1집을 딱 한 번만 스트리밍 돌려보고 기억에서 잊어버렸다.
검은잎들의 공연을 보러가겠다는 다짐마저 잊은 것은 아니었다. 7월 24일 토요일, 나는 검은잎들의 공연을 보러 부산으로 향했다. 그 공연장에선 앞서 여러 밴드가 연주를 펼쳤는데, 그중에는 평소 보고 싶었던 “폴립”과 “헤서웨이”도 있었다. 검은잎들이 마지막 순서로 등장하자, 나는 숨죽이고 그들의 연주를 들었다. 이 공연에선 역시 정규 1집 위주로 순서가 이어졌다. 1집을 잘 듣지 않았던 나로서는 생소한 노래만이 이어졌지만, 그들이 내뿜는 정서와 사운드까지 생소하진 않았다. 생소하다는 느낌은 잠시뿐, 나는 점차 그들의 매력에 서서히 스며들었다. 듣고 보니 1집에도 좋은 노래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선보인 노래 중에, 내 마음에 가장 깊게 남았던 것은 “파도소리만 들었어”라는 곡이었다.
바다의 도시 부산에서 “파도소리만 들었어”를 듣는 일은 얼마나 조화로운가! 마침 나는 제대로 풀리지 않는 현실 때문에, 나의 청승을 실컷 쏟아낼 배출구가 필요했는데, 그들의 노래가, 그리고 그 노래와 잘 어울렸던 부산이라는 공간이 그 역할을 탁월하게 수행해주었다. 나는 대구에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노래를 다시 듣는 시간을 가졌고, 더 나아가 검은잎들 정규 1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경청하는 시간도 가지게 되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렇게 심드렁하게 느껴지던 앨범이 내 마음 깊이 파고드는 것이 아니던가. 다시 보니, 정규 1집은 그전 음악들에 비해 싱겁고 지루해진 게 아니라, 더욱 담백하고 깊어진 것이었다.
내가 이 앨범을 부산이라는 공간과 연계지어 소개하는 것은 단순히 이 밴드가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밴드라서 그런 건 아니다. 이 앨범은 “파도소리만 들었어”라는 바다를 연상시키는 곡을 수록하고 있는 건 물론이고, 1번 트랙 “로맨스에게”부터 부산의 번화가 “서면”이라는 지명을 직접 노출하기도 했다. 이 노래에서 묘사하는 서면은 밝고 활기 넘치는 거리가 아니다. 그곳은 왕가위 영화에서 묘사하는 홍콩처럼, 수많은 가로등과 네온사인이 유혹 찬 눈빛을 보내는데도, 그 마저도 메울 수 없는 마음의 허기가 느껴지는 공간이다. 청승에 젖어 울먹이는 거리였다. 그런 서면을 품고 있는 부산은 내게, 청승과 고독으로 가득 찬 낭만의 거리로 변해갔다. 청승과 고독은 보통 나쁜 것으로 여겨지지만, 그것이 예술이 되어 나타나면,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마저도 매혹적으로 느껴지곤 한다. 고독과 청승, 그 사이에 사랑의 비가를 부르는 왕가위 영화들처럼 말이다.
■ 추억을 품고 있는 세상은 빌어먹게 아름답다
“책이여, 안녕!” 이 앨범 제목이기도 하고, 3번 트랙 수록곡이기도 한 이 문장은 이 앨범이 그리는 기승전결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얼핏 보면 이게 만나서 반갑다는 뜻인지, 아니면 작별을 고하는 의미인지 헷갈릴 것이다. 이 말의 뜻이 둘 중 어느 것인지 알려면, 역시 이 앨범의 모든 트랙을 경청해보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일 터.
1번 트랙 “로맨스에게” 속 화자는 터덜터덜 걸음을 옮긴다. 곡의 느리고 끈적끈적한 연주는 화자의 힘겨운 걸음을 따라간다. 화자는 비록 서면의 거리를 걷고 있지만, 그의 마음은 한참을 한 곳에만 머무르는 것 같다. “서면을 지나는 길목에 촛농이 끈적거렸어”라는 문장은 그의 머뭇거리는 마음을 대변한다.
“친애하는 로맨스에게, 당신은 잊어버렸죠.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아픔 같은 건 없는데. 친애하는 로맨스에게, 이제 좀 나타나줘요. 나는 한참을 서성거리다 집으로 돌아갔다네.”
여기서 부르는 로맨스란 사람이 아닌, 자신이 잃어버린 어떤 감정을 의미하는 것 같다. 자신은 모든 걸 할 만큼 했는데, 왜 다시 돌아오지 않느냐며 한탄하는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아픔은 없다. 우리는 시간이 해결해 줄 거라는 말을 버릇처럼 하지만, 사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간이 저절로 해결해주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가 뭘 하느냐, 무엇을 어떻게 만나느냐가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화자는 로맨스를 향해 돌아오라고 부르짖지만 결국 힘없이 집으로 돌아간다. 화자의 마음은 집이라는 제자리로 돌아가 정체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머뭇거리다가도 다시 밖으로 나서기로 한다. 그렇게 화자는 4번 트랙에서 “벤치에 앉아” 많은 걸 생각하게 된다. 그의 몸은 벤치에 앉아 가만히 있지만, 그의 마음은 여러 생각으로 끝없이 요동친다. 활기 넘치는 연주가 이런 화자의 마음을 대변한다. 그는 속으로 외친다. 자신이 어떤 그리움에 젖어 청승떠는 모습을 바깥에 그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다고. 이는 그의 마음이 격렬한 불안 속에 잠기고 있음을 드러낸다.
5번 트랙에서 그는 어떤 경구를 읊으면서 마음의 평정을 되찾는다. 어느 정도 마음이 편해진 그는 바다로 향했고, 6번 트랙에서 그는 “파도소리만 들었어”라고 눈물 섞인 목소리로 고백한다. 그는 왜 하염없이 파도소리만 들어야 했을까. 그는 어쩌면 파도와 함께 밀려오는 자신의 추억에 귀 기울이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때의 우리 다 돌아가도, 세상은 참 아름답네. 빌어먹게 아름다워.”
추억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어느 하나 내 곁에 남아있지 않지만, 그 추억들은 여전히 아름답고, 그 추억들을 품고 있는 세상은 그래서 빌어먹게 아름답다.
■ 구원은 우리 곁을 아주 잠시 스칠 뿐
그토록 목이 쉬어라 “세상은 참 아름답네.”라고 외쳤는데, 아직도 할 말이 많이 남았다는 듯 “수다쟁이”가 다음 곡으로 이어진다.
“인파를 지나는 정류장에서, 버스에 타는 예수를 보았어. 그의 목소리는 상냥했지만, 라디오 소리가 시끄러워서 들을 수 없었고, 할 말이 많은 난 계속해서 떠들었어.”
할 말이 너무 많은 탓에, 그리스도를 만나도 심드렁하고, 구원보다는 그저 자기 안에 것들을 풀어놓기에만 바빠진다. 묵묵하게 걸어가는 드럼과, 통통 튀는 베이스 기타가 역동적인 바깥 풍경을 묘사하는 사이, 보컬은 심드렁하게 곡을 진행한다. 마치 자신의 회한이 오래되어 익숙해져버린 것처럼. 하지만 그의 심드렁한 말투조차 감출 수 없는 감정의 변화를 기타 연주가 예리하게 포착하며 다양한 사운드를 선보인다. 노래가 끝날 때 즈음엔, 억눌러오던 감정을 서서히 끌어올리듯 보컬이 점점 고조되더니, 다른 악기들을 앞질러 소리를 높이게 된다. 그렇게 실컷 목소리를 높이고도 아직 모자라다는 듯 힘없이 “떠들었어.”라는 말을 떨구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하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내 곁을 고요히 지켜주는 사랑은 잠시나마 마음의 안식을 가져다준다. 때론 내 곁에 사랑하는 사람이 종교가 부르짖는 구원보다도 훨씬 가까운 구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사랑이 주는 안식은 영원할 수 없다. 8번 트랙 “잠든 너”는 그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심정과 잠시나마 누릴 수 있는 안식에 기뻐하는 양가적 감정을 다룬 곡이다.
9번 트랙 “몇 개의 모스를 띄울게”는 베이스 기타와 드럼 소리가 무겁게 툭툭 터지면서 시작을 알린다. 그 사이로 기타와 보컬이 여유롭게 끼어든다. 나는 처음에 여유로운 진행과 담백한 목소리를 듣고, 상대방을 향해 구애하는 노래인 줄 알았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강해졌다. 모스부호가 주로 어떨 때 보내지는 것인지 생각해보라. 이것은 구호를 호소하는 애절한 노래다. 이토록 애절한 호소를 담고 있으면서도, 그토록 여유로운 리듬을 채택한 이유는 후렴을 보면 알 수 있다.
“몇 개의 모스를 띄울게, 말보다 뜨거운 내 손끝으로. 전부 전해 줄게. 몇 번이고 난 두드릴게. 동이 터 오르고 있어. 밤이 물러나고 있어. 동이 터 오르고 있어. 밤이 물러나고 있어.”
어둠 속에서 솟아오르는 햇빛을 발견하고선,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침이 밝으면, 자신이 말보다도 뜨거운 손끝으로 두드렸던 모스부호가 구호 신호를 보내는 대상에, 마침내 닿게 될 것이라 믿고 있는 것이다. 마무리에선 후렴이 다시 반복되는데, 이번엔 희망적인 가사와 달리, 목소리는 거칠어지고 연주는 과격해진다. 동이 트더라도 자신이 바라는 구원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초조해하는 건 아닐까.
막상 그를 위로해주는 건, 동이 터오는 맑은 날이 아니라, 비 내리는 흐린 날이었다. 10번 트랙 “비라도 나리면”을 보자. 비 내리는 날, 빗소리가 바깥을 메우지만 마음은 오히려 고요해진다. 사람들이 밖에 잘 나오지 않는 탓일 게다.
“아 소란스럽다 소란스러워. 비라도 나리면 좋겠어. 한 차례의 소나기는 모두를 씻기고, 멍든 나의 창가를 두드릴 거야. 아, 그럼 나도 쉴 수 있겠지.”
멍든 창가, 무엇이 그의 창을 멍들게 만들었을까. 우리는 창을 통해 세상을 본다. 그렇기에 우리의 눈은 마음의 창이라는 말이 있다. 멍든 창가란 그가 바라보는 창문이 아닌, 그의 눈, 그 눈이 담고 있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사람들로 인해 치이고 치여서 멍들어버린 마음. 그 마음을 두드리는 것은 빗소리뿐이고, 빗소리가 사람들을 바깥에서 지우는 동안, 자신을 아프게 했던 사람들을 잊고서 잠깐의 위로를 얻는 것이다.
■ 내 속에 회한들을 향해, 안녕!
마지막 11번 트랙 “꽃을 주세요”는 얼핏 들으면 1번 트랙과 비슷한 곡으로 들리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1번 트랙과는 다른 정서를 품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곡의 진행이 지극히 느리다는 점은 같지만, 1번 트랙에 비해 밝고 가벼운 음색으로 곡 전체를 상냥하게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꽃을 갈구하는 그의 목소리에서 “메신저”에서 갈구했던 것과 같은 걸 갈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 갈구는 좀 더 겸손해진 것 같다.
꽃, 특히 꽃들의 여왕이라 불리는 장미는 종교적으로 거룩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인권운동가들이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상징으로 많이 사용하기도 했다. 이제 모든 한탄을 털어냈으니 힘겹게나마 한 발짝 더 나아가, 힘겨운 세상 속에서도 작은 기쁨들을 쟁취하며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 같다. 이토록 힘겹게나마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니, 자기 앞에 꽃을 뿌려달라고. 자신을 잠시나마 거룩하고 존엄한 존재로 여겨달라고 세상 앞에 호소하는 것 같다. 땅에 비가 내려야 꽃이 필 수 있듯이, 이 앨범 속 화자도 빗소리를 실컷 머금었기 때문에, 세상을 향해 꽃을 받으러 나아갈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기형도 작가의 시 “오래된 서적”에선 사람의 일생을 책에 비유하며, 책을 읽듯 자신의 회한을 곱씹는다. 이 앨범에서 “안녕”을 던지는 대상인 “책”은 기형도가 자신의 시에서 비유했던 것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나를 / 한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 펼쳐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이 밴드의 이름인 “검은잎들”은 왠지 자신들이 연주하는 음악도, 기형도의 시처럼 인생의 회한이 잔뜩 담긴 검은 페이지를 연주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앨범의 마지막 트랙에서는 이 모든 회한에도 불구하고, 꽃을 받으러 세상으로 나아가겠다는 다짐을 표출한다. 결국 화자는 검은색 페이지들로 가득 찬 책들을 향해 “안녕”이라는 작별인사를 고하고, 새로운 길을 향해 나서게 된 것이다.
책을 향해 작별인사를 던지려면, 우선 책을 정독해야 한다. 정독하지도 않고 완독하지도 못한 책을 두고 작별인사를 던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덜 읽은 책, 대충 읽은 책에게 섣불리 작별을 고한다면, 그것은 필시 좋은 이별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좋은 이별에는 반드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법이다. 검은잎들의 정규 1집 “책이여, 안녕!”은 화자의 내면에 자리 잡은 검은 페이지들을 정성껏 곱씹으면서도, 조금씩 희미한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 발걸음이 비록 불안하고 초라해보일지라도, 그는 어쨌든 나아가고 있다. 그러니 그에게도 희망은 있다. 그것이 영원할 수는 없을지라도, 잠시나마 얻은 기쁨마저도 소중하다고, 고요하면서도 깊이 있는 울림으로 전하고 있다.
올해 서른을 맞이한 나는 요즘, 내 지난 인생을 곱씹어보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다. 그럴 때, 내 인생에도 희망이 있을까 걱정하게 된다. 나는 “먼 곳에서 오기 시작한 중년의 나”를 견딜 수 없을 것만 같다. 내가 꾸는 꿈들은 모두 “입을 수도 없는” 터무니없이 “비싼 꿈”으로만 보여서, 헛된 욕심을 버리지 못한 나 자신을 질책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여기서 머무를 수는 없지 않겠는가. 살아있는 동안엔 서툴게라도 어쨌든 나아가려 한다. 가끔 추억이 나를 괴롭히겠지만, 추억 때문에 세상이 빌어먹게 미운 곳으로 보이겠지만, 사실은 추억이 있어서 세상은 아름다운 거라고, 조용히 나를 다그친다. 청승으로 날뛰는 가슴을 겨우 달래고 진정시켜본다. 그렇게 내 속에 회한들을 충분히 곱씹고 나서, 나는 검은 페이지들로 가득 찬 나의 책을 향해 작별을 고한다. 이렇게.
“서툰 사람이라 미안해. 서툰 몸짓으로 안녕. 안녕.”
트랙리스트
1. 로맨스에게
2. 캠프파이어
3. 책이여, 안녕!
4. 벤치에 앉아
5. 3:1-26
6. 파도소리만 들었어
7. 수다쟁이
8. 잠든 너
9. 몇 개의 모스를 띄울게
10. 비라도 나리면
11. 꽃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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