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명반 에세이 58: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Manic Street Preachers) - The Holy Bible
찬송가보다 거룩한 신성모독 송가
■ 신성모독은 예수의 가장 큰 업적
예수는 사형수였다. 유일신 예수가 사형에 처하게 된 죄목은 역설적이게도 신성모독이었다. 예수는 사형으로 자신의 신성함을 증거했다. 신성모독이야말로 예수 자신의 신성을 증거할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수단이었다. 이런 말이 누군가에겐 금기처럼 느껴지겠으나, 이는 사실이다. 기독교 신자 입장에서는 예수가 유일신이지만, 그 당시 유대인의 관점에선, 아니 지금도 유대인들에겐 예수란 그저 신성모독을 저지른 사형수에 불과하다. 그런 사형수를 신성하고 거룩한 유일신으로 섬기는 집단이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큰 세력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예수를 신성모독자라며 마냥 비난만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신념을 증거하는 것에 있어서, 목숨을 바치는 것만큼 효과적인 수단이 또 있을까. 예수는 사형을 통해, 마침내 자신의 신념이 얼마나 강한 것인지 만인에게 드러낼 수 있었다. 자신이 곧 유일신 그 자체라는 예수의 선언은 육을 제물로 바쳐 영생을 얻었다. 그렇게 예수는 세상에서 가장 큰 유일신 중에 하나가 되었다. 그렇다. 유일신 중에 하나, 말이다. 세상엔 역설적이게도 유일신이 너무 많다. 유일신은 유일해야 하는데, 세상은 그렇지가 않다. 자신이 재림 예수라 주장하는 사람들만 하더라도 대체 몇 명이란 말인가.
유일신이 항상 사람의 형태로 있는 건 아니다. 예로 들자면, 특정 이념이나 사상, 학문 등이 누군가의 어떤 세력의 유일신이 되기도 한다. 사람이 아닌 물건이 유일신이 될 때도 있다. 내가 보기에 이 세상엔 예수나 여호와, 알라를 뛰어넘는 훨씬 거대하고 막강한 힘을 가진 유일신이 이 땅에 이미 강림한 것처럼 보인다. 그의 이름은 자본주의, 그것은 기독교도 불교도 이슬람도 유대교도, 심지어 중화인민공화국의 공산당마저도 이기지 못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이자 종교가 되어버렸다. 돈은 부처와 예수보다도, 여호와와 알라보다도 강하다. 그들이 만든 열반이나 천국도 이젠 모두 돈으로 살 수 있다. 이걸 부정하는 순진하리만치 본분에 충실한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이걸 긍정하는 사람들이 승려로서 목사로서 성직자로서 종교인으로서 행세하고 다니고 있는 것이, 그런 행세를 하고 다니는 사람일수록 세상에서 더 크고 막강한 세력을 얻는 것이 지금 현실 아니던가.
■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유일신, 자본주의
성경(The Holy Bible)은 신성모독 범죄자 예수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이름을 따 음반을 발표한 록 밴드가 있는데, 영국 웨일즈 출신 밴드 “매닉 스트리트 프리처스(매닉스Manics)”가 그 주인공이다. 굳이 이름의 뜻을 풀어보자면, 거리의 미친 전도사들, 즈음 되겠다. 사실 이들의 정규앨범 “The Holy Bible”은 1집 앨범이 아니다. 그들의 밴드명이 딱 봐도 종교와 관련되어 있을 것 같은데, 의외로 “성경”이라는 제목의 앨범은 데뷔 후 꽤 나중에 발매한 셈이다. “The Holy Bible”은 1집, 2집을 거쳐 1994년 정규 3집으로 세상에 나오게 된다.
이들의 앨범 “The Holy Bible”은 유대교를 향한 온갖 신성모독이 난무하는 예수의 행적을 닮아, 시작부터 불경한 단어들을 늘어놓는다. 이 앨범 첫 노래 “Yes”의 후렴구를 보자.
“And in these plagued streets of pity you can buy anything. For $200 anyone can conceive a God on video. He's a boy, you want a girl so tear off his cock. Tie his hair in bunches, fuck him, call him Rita if you want, if you want.
그리고 이 병든 측은한 거리에서 당신은 무엇이든 살 수 있다. 200달러면 누구라도 신을 비디오에 임하게 할 수 있다. 그는 소년이고, 당신은 여자를 원하니 그의 음경을 찢어버려라. 그의 머리를 뒤로 묶고, 강간하고, 원한다면 리타라고 불러도 된다.”
30세가 넘어 회당에서 발언할 수 있게 된 예수가 이사야 61장 1절을 읽고, 자신이 그 말씀의 주인공이라 선언하며 신성모독의 시작을 알린 것처럼, 이 앨범은 시작부터 세상의 유일신 자본주의를 향한 맹렬한 일갈을 늘어놓는다. 자본주의에 물들어 병들어버린 거리에선, 돈만 있으면 인권마저 돈으로 살 수 있으며, 인간의 존엄성 따위는 부유한 자의 쾌락을 위해 얼마든지 낭비될 수 있음을, 이 잔혹한 가사는 드러낸다. 예수가 유대교 여호와를 향한 신성모독을 그 회당의 선언 한 번으로 마치지 않았듯이, 매닉스 또한 이어질 트랙에서 자본주의를 향한 신성모독을 실컷 이어나간다. 그렇게 이 앨범 안에서 펼쳐질 자본주의와 매닉스의 싸움은 장대한 서막을 올렸다.
뒤이어 등장하는 2번 트랙 “Ifwhiteamericatoldthetruthforonedayitsworldwouldfallapart(마냑하얀미구기진시를말하는나레는세상이망해버릴거시다)”에선 미국 우파 정권의 위선, 그 밑에 숨겨진 전쟁의 광기와 인종차별 그리고 빈부격차에 대해 얘기하며, 이들을 닮아가는 영국 사회를 풍자하고 있다. 3번 트랙 “Of Walking Abortion”에선 국가에겐 시민들의 목소리란 이미 낙태된 자들의 목소리처럼 가치가 없는 것이라며, 자본이 민주주의를 집어삼켰노라 울분을 토해낸다. 매닉스의 격렬한 연주와 잔혹한 가사들은 자본주의의 위선을 한껏 벗겨내며,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치부들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그 광경이 비록 조금 과장되어 보일 수 있고, 끔찍해 보일 수 있지만, 이는 모두 사실이다.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유일신이 신도들에게 내려준 교리와 축복에 취해있느라, 그 이면에 감춰진 참상들을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매닉스의 신성모독은 그 참상들을 똑바로 목도하도록 유도하여, 우리가 더 이상 자본주의의 위선에 속지 않도록 우리의 정신을 다시 일깨워준다.
■ 자본주의 사회 속 참상에 맞서는 슬픈 혁명가의 초상
5번 트랙 “Archives of Pain”에선 이런 참상들을 만든 장본인들이 누구인지 밝히는데, 후렴에선 분야를 막론하고 여러 이름들을 나열한다. 이는 곧, 이 참상의 책임은 자본주의 속 모든 권력자 혹은 유명인들에게 있다며, 모두의 책임을 강변하는 것 같다. 6번 트랙 “Revol”에선 이 모든 자본주의 권력에 맞서기 위해 투쟁했던 역사 속 공산주의 혁명 전사들의 이름을 나열하는데, 그들 모두가 혁명보다는 자기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모든 혁명이 실패해버렸음을 자조 섞인 음색으로 열변한다.
“Mr. lenin - awaken the boy. Yeltsin - failure is his own impotence. Mr. stalin - bisexual epoch. Kruschev - self love in his mirrors. Brezhnev - married into group sex. Gorbachev - celibate self importance.
레닌 - 소년에게 감정을 품다. 스탈린 - 양성애의 시대. 흐루시초프 - 거울의 자기 모습을 사랑한다. 브레즈네프 - 그룹 섹스와 결혼하다. 고르바초프 - 자만심 강한 순결주의. 옐친 - 실패는 그만의 발기부전.”
이는 6번 트랙 1절 가사 내용이며, 혁명 전사들의 행진을 흉내 내는 후렴을 지나면, 혁명에 순수한 열정이 남아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그 시절이 다시 돌아올 수 없음에 한탄하는 애처로운 구절이 2절 가사를 이룬다.
7번 트랙 “4st 7lb”은 식이장애 소녀를 화자로 내세워, 미디어가 형성한 미적 기준의 획일화에 대해 얘기한다. 수많은 여성들을 획일화된 미적 기준에 몰아넣고, 자기혐오와 그에 따라오는 식이장애의 고통 속에 빠져들게 만든 건, 모두 자본주의가 부추긴 일이다. 자본주의에 의해 돈이 잘 벌릴 만한 미적 기준을 가진 여성들만을 미디어의 스타로 만들고, 그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여성들은 전혀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는 듯, 그들을 철저히 외면해버린다. 그렇게 더욱 사랑 받고 싶고, 더욱 주목 받고 싶은 여성일수록, 미디어가 형성한 병적인 미적 기준에 자신을 맞춰가며, 서서히 자신의 건강을 잃기 시작한다. 본 트랙의 마지막 구절을 차지한 다음 구절은, 병적으로 변해가는 자신의 모습에도, 미디어가 가둬버린 미적 기준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며, 기쁨에 젖어가는 화자의 모습을 그려낸다.
“I choose, my choice, I starve to frenzy. Hunger soon passes and sickness soon tires. Legs bend, stockinged I am twiggy. And I don’t mind the horror that surrounds me. Self-worth scatters, self-esteem’s a bore. I long since moved to a higher plateau. This discipline’s so rare so please applaud. Just look at the fat scum who pamper me so. Yeh 4st. 7, an epilogue of youth. Such beautiful dignity in self-abuse. I’ve finally come to understand life. Through staring blankly at my navel.
나는 선택한다, 나의 선택, 광란하는 배고픔. 배고픔은 곧 지나가고 아픔은 곧 사그러든다. 다리를 구부리고, 스타킹을 신는다. 나는 트위기. 나를 둘러싸는 공포가 더 이상 신경 쓰이지 않는다. 자기 존중은 사라지고, 자존심은 지겹다. 난 높은 안정에 도달한지 오래야. 이런 수련의 경지는 정말 드무니까 제발 박수쳐줘. 날 돌보려 드는 저 돼지들을 봐. 4스톤, 7파운드, 젊음의 종결. 자기 학대에 담긴 그 아름다운 존엄함. 나는 마침내 인생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 배꼽을 하염없이 응시하면서.”
이 트랙을 노래하는 “제임스 딘 브래디필드(James Dean Bradfield)”의 목소리는 격렬한 음색 속에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화자의 감정을 탁월하게 표현한다. 절에서는 분노에 일그러진 목소리로 노래하다가, 후렴에서는 조금 우수에 젖은 듯 촉촉한 목소리로 노래하고, 곡 말미엔 짙은 우수와 병적인 만족감을 동시에 애처로운 음색으로 녹여내며, 청자의 감탄을 이끌어낸다.
자본주의를 향한 지독한 신성모독은 9번 트랙 “Faster”에서 절정에 이른다. 8번 트랙 “Mausoleum”에서 매닉스는 이미 사리사욕에 물들어버린 실패한 혁명가들을 대신하여, 자신들이 대신 자본주의에 맞서 싸울 준비를 하고, 9번 트랙에 이르러 마침내 그 격렬한 싸움의 현장에 이르게 된다. 곡의 시작에 앞서 조지 오웰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1984”에서 따온 샘플링이 깔린다.
“I hate purity. Hate goodness. I don't want virtue to exist anywhere. I want everyone corrupt.
난 순수함을 증오한다. 선의를 증오한다. 나는 미덕이 어디에나 있게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모두를 오염시키고 싶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선, 세상을 전복시켜야 한다. 전복(顚覆)이란 뒤집어버리는 걸 의미한다. 모든 것이 뒤집어진 세상에선, 이전에 선이었던 게 악이 되고, 이전에 악이었던 게 선이 되어버린다. 이 노래 속에서 자본주의 세상을 전복하길 꿈꾸는 화자 눈에는, 자본주의 세상이 찬양하는 모든 미덕이 오염시켜버리고 싶은 눈엣가시들로 보였을 터. 그것들을 오염시켜 박살내지 않으면, 세상을 전복하는 건 불가능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이 노래 속에서 묘사하는 화자의 모습에선, 타락을 의미하는 곡 제목처럼, 어딘지 모르게 슬픔이 느껴진다. 그 빠르고 강렬한 연주로도 가리지 못할 만큼 짙은 슬픔 말이다. 그 슬픔은 화자의 꿈과 혁명이 곧 실패로 끝나버릴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만을 던져놓고, 곡이 가장 격렬해지는 순간에 갑작스레 끝나버린다.
■ 불경한 선지자, 리치 제임스
이 앨범의 가사는 “리치 제임스(Richey James)”가 모두 썼다. 몇몇 곡은 밴드의 베이시스트 “니키 와이어(Nicky Wire)”가 공동으로 작사에 참여했지만, 사실상 이 앨범 특유의 잔혹하고도 깊이 있는 은유들은 모두 리치 제임스의 몫이라고 볼 수 있다. 리치 제임스는 그야말로 매닉스에게 있어 신화 같은 존재라 할 수 있다. 그는 본래 매닉스의 멤버가 아니었다. 그저 매니저에 불과했지만, 그와 함께 지내던 매닉스 멤버들이 그의 예술적 잠재성을 알아보고, 기타도 전혀 칠 줄 모르는 사람을 데려다, 몇 달 연습을 시키고선 기타리스트로 바로 영입시켜버린 것이었다. 그를 떠올리면 왠지,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시드 배릿(Syd Barrett)이나, 섹스 피스톨즈(Sex Pistols)의 시드 비셔스(Sid Vicious)가 같이 떠오른다. 아마 밴드에 짧은 기간 머물렀지만, 밴드의 역사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을 남기고 떠났기 때문이리라. 비극을 안고 밴드에서 떠났기에, 애처로운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 또한 닮았고 말이다. 매닉스는 처음 결성했을 당시, 목표로 잡은 밴드가 섹스 피스톨즈였는데, 그들은 지극히도 그들이 목표했던 밴드와 닮은 행보를 이어갔던 것이었다.
리치 제임스는 1991년 매닉스 정규 1집을 발표하기 전에 가진 한 인터뷰에서, 돌발적으로 면도날을 꺼내 자신의 팔을 긁어가며 “4REAL(진심이다)”라고 새겨버린 경악스러운 사건을 벌이기도 했다. 그 기자가 밴드 음악의 진정성을 어떻게 증명할 것이냐고 질문하자, 그에 대한 답변으로 저지른 일이었다. 이 사건으로 매닉스는 단번에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고, 정규 1집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매닉스 멤버들의 눈이 틀리지 않은 셈이었다.
슬프게도 섹스 피스톨즈를 닮아가던 매닉스의 행보는 그 비극적인 결말마저도 닮아버렸는지, 리치 제임스와 매닉스 멤버들의 좋은 날들은 그리 오래 갈 수 없었다. 정규 3집 “The Holy Bible” 발표 이후, 미국 투어를 앞두고 갑작스레 실종된 것이었다. 실종 이전 그의 모습을 지켜본 멤버들의 말에 의하면, 엄청난 유명세와 거기에 따라오는 대중의 막대한 기대에 많은 부담을 느껴, 항상 술을 달고 살았으며 거식증까지 앓고 있었다고 한다. 그토록 자본주의를 증오하는 노래를 많이 만든 그였거늘, 막상 그런 노래로 스타가 되어버리니, 어쩌면 자신이 비판했던 자본주의에 자신이 가장 큰 피해자가 된 셈이었다.
리치 제임스의 이런 모순 때문에, 그가 우리에게 전한 메시지가 퇴색될까? 그렇지 않다. 그의 메시지는 이런 모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상에 유효하다. 자본주의가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우리가 언제까지나 그 앞에 굴복하고 있을 수는 없다. 사람이면 누구나 편한 삶을 원하고, 편한 삶을 원하는 만큼 돈을 갈구하게 된다. 돈만큼 우리를 안락하게 만들어주는 건 없기 때문이다. 돈이 가져다주는 평안은 그 어떤 이념이나 종교보다도 신속하고 확실하니까. 그렇게 우리 모두는 자본주의가 형성한 경쟁을 불평하고 비난하면서도, 결국엔 자본주의를 벗어날 수 없게 된다. 그렇게 자본주의를 싫어하는 사람마저도, 자본주의에 어쩔 수 없이 머물 수밖에 없는 모순이 형성된다.
그러나 모순이 우리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다. 우리는 모순 앞에 당당해질 수 있다. 모순을 안고서라도, 세상의 유일신 자본주의를 향한 신성모독 뱉기를 멈추지 말자. 신성모독이라는 죄목으로 사형에 처해진 예수처럼 자기 신념에 당당하자. 모순 때문에 우리가 무너진다면, 자본주의가 만든 경쟁과 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질 것이고, 인권이 자본 밑에 깔리는 현상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자본주의 속에 살되, 자본주의에 굴복하지는 말자. 이것이 우리 곁을 떠나버린 리치 제임스가 우리에게 바라던 것이 아닐까. 불경한 선지자 리치 제임스의 말들은 이렇게 음반으로 남아, 아직도 매닉스의 격렬한 연주를 타고,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의 목소리를 타고, 우리 마음을 공명한다.
10번 트랙 “This is Yesterday”에선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시간의 개념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닌, 오직 나 자신에게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내가 눈을 감으면 그것이 곧 어제가 된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시인 중에서도 이와 똑같은 주장을 담은 시를 쓴 사람이 있는데, 그는 일제 강점기 저항시인으로 유명한 “윤동주”다. 지구 반대편에서 다른 시간 속에 살면서도 이토록 똑같은 생각을 할 수 있다니. 이런 현상을 보면 정말 시간은 밖에 있는 게 아닌, 우리 안에 모두 들어있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쩌면 리치 제임스는 눈을 감고 자기 안에 살고 있는 수많은 어제를 돌아보던 중에, 윤동주가 “내일은 없다”라는 시를 쓴 1932년 12월의 그 시간을 어렴풋이 떠올린 게 아닐까. 역시 저항시인들끼리는 잘 통하는 것 같다는 생각마저 해본다. 리치 제임스는 비록 우리 곁을 떠났지만, 눈을 감으면 그가 살았던 어제가 지금 내 안에도 있음을 어렴풋이 느낀다. 그는 여전히 어제 속에 살아있다. 그를 만나고 싶으면 조용히 눈을 감고 어제를 향해 떠나보자.
내가 오래 정들었던 교회를 떠나면서, 그 이후의 삶은 유일신이 세상에 벌이는 참상을 드러내고 알리는데 집중하고 싶었다. 부패한 신앙보다 거룩한 신성모독으로 삶과 세상의 진실을 파헤치고 싶었다. 내게 그런 삶을 실현할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글이었고, 그래서 나는 글쓰기에 더욱 매달렸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현실에 짓눌리다보니,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막강한 유일신은 예수도 알라도 아닌, 자본주의라는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그러니 어느 순간부터 내게는 자본주의를 모독하는 게 평생 숙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은 글로 제대로 돈을 벌지 못해, 내가 원하던 것과는 한참 떨어진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다. 사실 지금 일하는 직장에 처음 입사할 때만 하더라도 꽤 비참한 기분이었다. 내가 돈 때문에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니. 돈 때문에 꿈도 버리고, 돈 앞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한다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이제는 내 현실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타협하기로 했다. 타협이 언제나 굴복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타협은 했으나, 아직 굴복하진 않았다. 나도 실은 돈이 필요하고, 돈을 좋아한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보다 돈을 우선하는 세상은 바람직한 세상이 아니다. 이 음반을 들을 때마다, 이 음반 속 자본주의를 향한 일갈의 메시지를 들을 때마다, 아직도 뜨겁게 요동치는 내 가슴을 느낄 수 있다. 이 뜨거운 가슴이 살아있는 한, 모순이 나를 자본주의에 굴복하도록 만들지 못할 것이다. 세상은 이미 사람보다 돈을 훨씬 우선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세상은 어쩌면 절대 바뀌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럴지라도, 나는 여전히 불경한 꿈을 꾼다. 자본주의를 향한 신성모독의 꿈을. 내게 모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내 몫을 해낼 테다. 조금씩이라도 자본주의를 모독해나갈 것이다. 반드시.
* 가사 해석 출처 : askewroad.egloos.com/category/THE%20HOLY%20BIBLE
트랙리스트
1. Yes
2. Ifwhiteamericatoldthetruthforonedayit'sworldwouldfallapart
3. Of Walking Abortion
4. She Is Suffering
5. Archives of Pain
6. Revol
7. 4st 7lb
8. Mausoleum
9. Faster
10. This Is Yesterday
11. Die in the Summertime
12. The Intense Humming of Evil
13. P.C.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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