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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 - WE ARE CHAOS

인생명반 에세이 55: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 - WE ARE CHAOS

 

공포의 아이콘이 베푸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 ‘나’보다는 ‘우리’를 부르짖게 되었다는 것

그가 불렀던 노래 중에 제목부터 ‘We(우리)’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곡이 있었던가? 내 기억엔 없었던 것 같은데. 나는 그 신곡의 제목을 봤을 때부터 눈이 동그랗게 변하며 뭔가 대단한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가사와 함께 노래를 감상하니, 이 사람, 역시 나이가 드니 변하긴 하는구나 싶었다.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매우 긍정적인 의미였다.

 

마릴린 맨슨, 그의 노래는 언제나 불편하고 날카로웠다. 그럼에도 마릴린 맨슨의 노래에 깊이 빠질 수 있었던 건, 그와 공유하는 불편함이 있었기 때문이고, 나도 언젠가 그의 노래처럼 세상을 향해 살벌한 칼날을 들이대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언제나 내게 그런 역할을 주로 맡았던 뮤지션이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는 위로보다는 독설이 훨씬 잘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뭔가 달랐다.

 

“In the end we all end up in a garbage dump, But I'll be the one that's holding your hand.

 

결국엔 우리 모두 쓰레기통 속에서 끝장나겠지만, 난 네 손을 잡아줄 사람이 될 거야.”

 

그의 입에서 이런 따스하고 부드러운 기운을 내뿜는 가사가 나오다니 믿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게 그가 쓴 가사임을 곧바로 인정할 수 있었던 것은, 청자를 향해 따스한 위로를 건네면서도, 그 속에서 그가 이전부터 음악을 통해 보여주었던 어두운 세계관이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어두운 곳이라 해서 따스함이 없겠는가, 부드러움이 없겠는가. 마릴린 맨슨은 올 7월 29일에 발표한 신곡 “WE ARE CHAOS”를 통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철저한 어둠 속에서도, 누군가 손잡아주고 위로해줄 사람이 있다는 걸 증명했다.

 

2020년, 첫 정규앨범이 나온 지 20년 훨씬 지난 지금, 마릴린 맨슨은 록 역사에서, 세계 대중음악 역사에서, 하나의 아이콘이 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신곡 “WE ARE CHAOS”는 마릴린 맨슨 스스로가 자신의 이런 위치를 자각하고, 지난 시절 실컷 해오던 세상을 향해 날을 세우는 역할도 좋지만, 이제는 자신의 음악을 오랫동안 사랑해오던 사람들을 더 많이 챙길 때라는 걸 깨달았음에 탄생한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의 살벌한 자아를 내세워 ‘그들’을 공격하기보단, 자신의 음악을 사랑해준 사람들을 생각하며 ‘우리’에 대해 더 깊은 얘기를 꺼내기 시작한 것이다. 록 역사의 아이콘으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셈이다.

 

 

▲ 2번 트랙 “WE ARE CHAOS” 뮤직비디오

■ 마릴린 맨슨의 부드러운 변화는 어떻게 이뤄졌는가

사람들은 흔히 어둠이라는 단어를 접할 때, 부정적인 느낌을 먼저 떠올리지만, 나는 오히려 어둠이라는 말을 떠올릴 때, 안식을 먼저 느낀다. 우리는 어둠이 있기 때문에, 쉴 수 있는 거다. 세상이 온통 빛으로만 가득하다면, 세상에 쉴 수 있는 곳은 없을 터. 그늘을 떠올려보자. 그늘도 결국 어둠이니까. 여름의 땡볕 아래를 걸을 때, 가로수나 건물 등이 만든 커다란 그늘을 만나면, 그 안에서 맞이할 서늘한 기운을 먼저 떠올리며, 반가운 마음부터 들지 않던가. 우리가 주로 잠에 빠져있는 시간도 세상에 어둠이 가득한 밤 시간이지 않은가.

 

탁월한 예술가일수록 밝은 것보단 어두운 것들에 더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예술가로서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은 세상의 빛에 피곤해질 때, 예술가들이 만든 그늘 안에서 휴식을 취하는 거다.

 

이전의 마릴린 맨슨은 세상의 어둠, 그 자체를 지어내는 예술가였다면, 올 9월 11일에 나온 정규 11집 “WE ARE CHAOS”에선 어둠 속을 헤매는 다른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이 되었다고나 할까. 그는 어둠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굳이 빛으로 인도하려 하지도 않고, 언제까지나 어둠에만 머물러 있으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저 옆에서 살며시 손을 잡아줄 뿐이다. 손 놓으라 말하면 곧바로 놓아줄 것이지만, 왠지 그렇게 말하기엔 그 손길이 편안하기도 하고.

 

이번 앨범에서 보여주는 변화의 중심엔, 컨트리(Country) 가수 슈터 제닝스(Shooter Jennings)가 있다. 지난 정규 9집과 10집에서 작곡의 중추이자 기타리스트로 맹활약을 떨쳤던, 타일러 베이츠(Tyler Bates)가 자신의 본업인 영화음악에 집중하기 위해 탈퇴를 선언했을 때, 마릴린 맨슨 팬들은 걱정을 금치 못했다. 타일러 베이츠가 누구였던가. 무려 음악이 좋기로 소문난 영화 “가디언즈 오브 더 갤럭시(Guardians of the Galaxy)”에서 음악을 맡았던 사람 아니었던가. 이런 무시무시한 커리어를 대체할 사람이 과연 누가 있었을까.

 

 

▲ 슈터 제닝스(Shooter Jennings). 미국의 전설적인 컨트리 가수 웨일런 제닝스(Waylon Jennings)의 외동아들이기도 하다.

 

▲ 슈터 제닝스와 마릴린 맨슨의 공동 작업 “Cat People”의 뮤직비디오

그 와중에 마릴린 맨슨의 작곡가로서 맞이한 슈터 제닝스라는 이름은 반가움보단, 당혹스러움으로 먼저 다가왔던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나만 이렇게 생각한 것도 아니었으리라. 그가 작곡한 앨범의 첫 발매 싱글 “WE ARE CHAOS”가 명곡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었어도, 곡 하나 좋다고 정규 11집 전체가 좋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WE ARE CHAOS” 앨범은 내가 명반이라 치켜세우기에 마땅한 앨범이었던 거다. 오히려 나는 이 앨범을 통해 슈터 제닝스라는 인물에 대해 커다란 호감을 갖게 되었다.

 

마릴린 맨슨은 흔히 인더스트리얼 록(Industrial Rock)으로 분류되고 간혹 메탈(Metal)로도 분류되는데, 이번 앨범은 이 둘 중 어느 하나로 정의하기도 애매하게 되어버렸다. 다른 좋은 말로 하자면, 마릴린 맨슨은 이번 앨범을 통해, 전에는 전혀 시도해보지 않은 다양하고 색다른 시도를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마릴린 맨슨은 “Eat Me, Drink Me” 앨범이나 “The Pale Emperor” 앨범을 거치면서, 단순히 한 장르로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음악적 행보를 시사했었다. 그러니 이번 앨범의 이런 색다른 시도는 예정된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시도는 대성공으로 이어졌다. 이게 단순히 나만의 생각이 아닌 게 영국의 대중음악 잡지 “NME”에선 마릴린 맨슨에게 이례적으로 만점을 부여했고, 다른 매체에서도 극찬들이 쏟아지는 중이며, 상업적으로도 크게 성공을 거둬 “빌보드 200” 8위에 오르기도 했다. 데뷔한 지 20년이 훨씬 지난 가수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 어둠이 주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위로

슈터 제닝스 얘기를 좀 더 해보고 싶다. 이번 앨범은 다른 앨범에 비해 유독 멜로디가 유려하고 부드럽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데, 이 역시 컨드리의 유산을 이어받은 슈터 제닝스의 영향력이라 할 수 있겠다. 컨트리와 록이라는 언뜻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두 장르가 의외의 조합을 보여준 셈이다. 컨트리, 우리나라로 치자면 트로트에 비유할 수 있는, 기성세대를 대표하는 장르다. 그러나 컨트리가 가진 특유의 통속성과 편안한 음색이 가져다주는 느낌은, 어쩌면 마릴린 맨슨이 이번 앨범을 통해 보여주려 했던, 위로의 메시지에 꼭 필요했을 것이리라. 사실 슈터 제닝스라는 인물도 단순히 컨트리 가수로만 분류하기엔 서운할 정도로 다양한 음악에 대한 이해를 갖춘 재능 충만한 프로듀서라는 걸 알 수 있다.

 

슈터 제닝스와 마릴린 맨슨의 공동 작업은 사실 갑작스레 이뤄진 게 아니다. 2016년에 이미,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곡 “Cat People”을 커버하기 위해 뭉쳐 공동 작업을 진행한 바 있으며, 슈터 제닝스는 마릴린 맨슨의 오랜 팬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 만큼 슈터 제닝스가 작곡하는 마릴린 맨슨의 곡들이 마릴린 맨슨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들과 적절하게 어우러질 수 있었던 것이리라.

 

3번 트랙 “DON'T CHASE THE DEAD”와 4번 트랙 “PAINT YOU WITH MY LOVE” 그리고 5번 트랙 “HALF-WAY & ONE STEP FORWARD”까지 이렇게 세 트랙이 이어지면서 슈터 제닝스 특유의 부드러운 감각이 도드라진다. 그의 감각이 마릴린 맨슨의 감성과 만나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번에 새로 기타리스트로 합류한 존 스크레플러(John Schreffler)의 연주 또한 인상적이다. 슈게이징(Shoegazing)을 연상시키는 어딘가 빨려 들어가는 느낌의 사운드는, 듣다 보면 내 마음에 깊은 어둠 속으로 침투하는 기분까지 든다.

 

 

▲ 3번 트랙 “DON'T CHASE THE DEAD” 뮤직비디오

■ 악의 화신이 말하는 세상의 모순

이 앨범은 위로의 메시지만 전달하는 것이 아닌, 이전 앨범들에서 꾸준히 보여주던, 적그리스도 슈퍼스타, 어둠의 황제, 악의 화신으로서의 과격한 모습들도 여전히 잘 표현하고 있다. 우선 앨범의 시작을 담당하는 1번 트랙 “RED BLACK AND BLUE”부터 보자. 이 곡은 본 앨범에서 가장 강력하고 역동적인 사운드를 자랑하는 곡이다. 이 곡의 역동성이 표현하고 있는 지점은 세상의 모순, 그 모순 속에서 피어나는 광활한 폭력의 현장이다.

 

“My eyes are mirrors. All I can see are gods on the left, And demons on the right.

 

내 눈은 거울. 나는 신들이 왼편에 있고, 악마들이 오른편에 있는 걸 보네.”

 

기독교 문화권에선 보통 왼쪽을 악의 축으로, 오른쪽은 선의 축으로 비유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거울로 비춰보면, 왼쪽과 오른쪽이 뒤바뀌어버리니, 이를 통해 세상의 모순을 드러낸 셈이다.

 

신을 믿는다고 공언하는 이들은 자신들이 저지르는 온갖 폭력을 신의 뜻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한다. 기독교를 믿는 모든 사람이 그런 건 아니었지만, 예전부터 서방 역사에서 기독교 전파라는 명분으로 타 국가와 타 민족을 정복하는 걸 정당화하기도 했고, 그것은 무슬림들도 마찬가지로, 전도를 명분으로 타 국가를 침략하는 일이 빈번했다. 기독교와 이슬람의 충돌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고, 벌써 500년도 넘게 역사 속에서 숱하게 반복되어오던 일이었다. 12세기 무렵, 기독교 문화권에서 만든 악마의 상징 바포메트(Baphomet)는 그 이름이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메트(Mahomet)에서 따왔다는 설이 있을 정도. 그러나 기독교에게 악마 취급을 받는 이슬람 본인의 입장에선, 본인들이 진정한 신의 편이며, 기독교가 오히려 악마의 편일 것이다. 과연, 누가 악을 정의하는가. 누가 왼편에 섰고, 누가 오른편에 섰는가.

 

자신이 이런 록의 아이콘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어야만 했는지, 격렬한 사운드와 곁들어 고백하는 트랙들도 수록되었다. 앨범 표지로 쓰인 회화 작품 제목을 곡 제목으로 쓴 6번 트랙 “INFINITE DARKNESS”와, “You're as famous as your pain. Victim is chic, yeah. (넌 네 고통만큼 유명해. 희생은 도도하니까, 예.)”라는 독설을 요염하게 뿜어내는 7번 트랙 “PERFUME” 그리고 자신을 진정시켜달라며 호소하는 8번 트랙 “KEEP MY HEAD TOGETHER”까지가 그 트랙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영웅이 되려 하거나, 유명해지고 싶은 갈망을 갖는데, 한 사람이 영웅이 되고 유명해지기 위해선, 그 뒤로 얼마나 많은 타인의 피와 눈물과 희생이 따르는지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서 청자들에게 묻는다. 영웅이 되는 것, 혹은 유명해지는 것이 과연 좋기만 할까.

 

■ 악의 화신이라도 감정은 있다

마릴린 맨슨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그가 얼핏 지혜로운 교훈을 던지는 영웅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마릴린 맨슨은 이번 앨범에서도 어김없이, 자신은 성자도, 영웅도 아니라며, 선을 긋는다. 9번 트랙 “SOLVE COAGULA”의 가사를 보자.

 

“I'm not special, I'm just broken, And I don't wanna be fixed.

 

난 특별하지 않아 단지 망가졌을 뿐, 고쳐지고 싶지도 않아.

 

No one else I, No one else I, Wanna be like. So I stayed the same, Like nobody else.

 

​닮고 싶은 것 따위, 나 외에 아무 것도, 나 외에 아무 것도 없어. 그러니 난 언제나 같아, 누구와는 달리.”

 

“SOLVE COAGULA”는 19세기 프랑스의 오컬티스트인 엘리파스 레비(Eliphas Levi)가 그린 바포메트의 모습에서 그 양팔에 새겨진 글자이기도 한데, 그 뜻은 “용해 응고”로서, 이것은 연금술의 중심 원리로 통하는 단어들이다. 연금술은 주로 이슬람 국가에서 흥하고, 기독교 국가로 전파되어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16세기 가톨릭에선 이것을 외부 세계로부터 흘러들어온, 탐욕을 부르는 악마의 문화라며 금기시했던 역사가 있다. 그러나 연금술은 기독교 국가 내에서 암암리에 이어졌고, 이는 곧 화학의 모태가 된다. 즉, 사람들이 악마라 부르며 멸시하는 것이라 해도, 그것이 반드시 멸시해야만 하는 건 아니라는 거다. 그 이면엔 이토록 훌륭한 면도 있을 수 있다는 걸 드러낼 수 있는 것 아닐까.

 

 

▲ 엘리파스 레비(Eliphas Levi)가 그린 “바포메트”

바포메트의 팔에 새겨진 글자를 제목으로 삼은 살벌한 느낌과는 달리, 곡 자체는 상당히 정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인데, 여기서 마릴린 맨슨이 자신의 처지를 솔직하고 담백하게 고백하려는 태도가 느껴진다. 그는 세상이 자신을 악마 혹은 성자로 왜곡하려 들지만, 자신은 악마가 아니며 성자는 더욱 아니라는 걸, 결국 자신은 마릴린 맨슨 그 자체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거다. 연금술이 가톨릭에 의해 악마의 학문으로 취급 받았지만, 나중에는 화학의 모태로서 칭송 받게 되었듯이.

 

마지막 10번 트랙 “BROKEN NEEDLE”에선 청자들을 향해 부드럽게 안부를 묻는다.

 

“Are you alright? 'Cause I'm not okay. All of these lies are not worth fighting for.

 

너 괜찮겠어? 내가 괜찮지 않으니까. 이 모든 거짓말은 싸울 만한 가치가 없어.”

 

마릴린 맨슨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억측들과 싸우는 데 지쳤다며 한탄함과 동시에, 자신을 닮은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당신이 맞이하고 있는 그 싸움 속에서 정말 괜찮으냐고. 때론 그것들과 싸우지 말고 포기하는 것도 좋다며 격려의 말까지 보낸다.

 

누군가 보기에 마릴린 맨슨은 철저한 악의 화신처럼 보일 것이다. 사실 그를 향한 그런 시선은 어느 정도 사실이기도 하다. 본인도 남들에게 그렇게 보이기를 의도한 바도 분명히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게 마릴린 맨슨의 전부는 아니다. 마릴린 맨슨 본인의 이름으로 쓰게 된 인물이자, 세계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살인마 찰스 맨슨(Charles Manson)은 한 기자가 그에게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런 말을 남겼다.

 

“Nobody. I am Nobody. I'm a tramp, a bum, a hobo. I'm a boxcar, I'm a jug of wine. And a straight razor if you get too close to me.

 

아무 것도 아니야. 난 아무 것도 아니야. 부랑자, 거지, 떠돌이 일꾼, 박스 카, 와인 통이기도 하지. 당신이 내게 너무 가까이 오면 난 예리한 칼날이 될 거야.”

 

 

▲ 10번 트랙 “BROKEN NEEDLE”

그는 아무 것도 아님과 동시에, 세상 모든 것에 존재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는 그를 살인자라며 비난하지만, 그 비난은 사회를 건전하게 유지하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그래서 그 비난은 마땅한 것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은 누구나 마음에 이기심을 품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그 이기심은 모든 악의 근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 최우선이며,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최우선이다. 즉, 사람의 인생은 언제나 자기중심적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인간은 이기적이며, 모든 인간은 악하다. 이기심이 곧, 악이라는 전제를 깔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기심이 꼭 나쁘다고만 할 수 있는가. 이기심은 자기 자신을 지키는 힘이기도 하며, 자기 자신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즉, 악한 것을 언제나 악하다며 멸시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감춰진 다른 기능들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사람들이 흔히 악이라 규정짓는 모든 걸 긍정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악을 긍정하지 말되, 악을 인정하자고. 그것도 엄연히 인간 본연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죄에 대한 징벌은 확실히 행하되, 인간의 근본에는 늘 악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말고, 인간이 그런 존재라고 해서 타인 혹은 자신을 함부로 멸시하지 말자는 얘기다.

 

이 앨범을 통해 악의 화신이라 불리는 마릴린 맨슨에게도, 이처럼 부드러운 감성과 남을 향한 배려가 있음을 다른 앨범보다도 훨씬 잘 느끼게 된다. 인간은 모두 근본적으로 이기적이지만, 언제나 그런 건 아니듯이 말이다. 그렇게 인간이 가진 복합성에 대한 나의 고찰은 훨씬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가게 된다. 그에 대한 여러 험악한 소식들이 예전부터 지금까지 활발히 나돌고 있지만, 내가 여전히 그의 음악을 즐겨들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역할에 있어서 그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내게는 없다. 마릴린 맨슨, 그는 나의 영원한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다.

  


트랙리스트

1. RED BLACK AND BLUE
2. WE ARE CHAOS
3. DON’T CHASE THE DEAD
4. PAINT YOU WITH MY LOVE
5. HALFWAY & ONE STEP FORWARD
6. INFINITE DARKNESS
7. PERFUME
8. KEEP MY HEAD TOGETHER
9. SOLVE COAGULA
10. BROKEN NEEDLE

 

* 이번엔 특별히 작가 본인이 직접 변역한 가사 모음이 있습니다. 각 곡명 옆 링크를 클릭하면, 해당 가사 번역으로 이동합니다. 전문 변역가의 결과물이 아니기 때문에, 오역과 의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가사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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