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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오늘도 무사히(Omuhi) – 송곳

인생명반 에세이 61: 오늘도 무사히(Omuhi) – 송곳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실패 언저리에서

 

■ 도망치듯이 도착한 나의 고향

이십 대 후반, 그러니까 2018년 5월 말 즈음이었다. 내가 대구에서 살기로 결심했던 것이. 어느덧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2021년 9월, 내 나이 서른이 되었다. 내가 대구에 살기로 결심했던 당시를 떠올려본다. 나는 무슨 마음으로 여기에 왔을까. 솔직하게 얘기하자면 새 삶을 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도망치고 싶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당시에 나는, 내가 믿었던 종교에 대해 심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고, 그로인해 나는 내 종교를 잃었다. 내가 내 의지로 버린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 때 내 모든 것이었던 유일신의 곁을 떠나는 일이 꼭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해외 어느 기관에서는 종교를 잃은 사람이 이혼을 경험한 사람만큼이나 마음에 큰 상처를 받고 여러 정신질환을 앓게 된다는 통계 자료를 내놓았다고 한다. 내 고통이 그 정도였을까,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유일신을 잃은 나의 고통이 결코 작다고 말할 수도 없다. 게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기도 했었으니, 종교와 사랑 이 두 가지를 모두 잃은 내게, 방황이란 피할 수 없는 운명 같았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 거야.”

 

만화 “베르세르크”에 나오는 이 격언을 몸소 겪었던 나날들이었다. 수도권 생활을 정리하고, 도망치듯 도착한 나의 고향 대구는 처음부터 나를 순순히 반기지 않았다. 내가 대구를 떠난 지도 십 년을 넘었으니 강산도 변했겠다, 그곳엔 나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내가 알던 고향 대구는 내가 가진 추억 외에, 모든 게 사라지고 없었고, 나는 모든 걸 처음부터 시작해야만 했다. 나의 낯선 고향 대구에서 다시. 수도권을 떠나올 무렵에 겪었던 마음의 문제는 오히려 더욱 커져만 갔고, 시간이 지나며 나는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는 사실만 인식하게 될 뿐이었다. 이젠 도망쳐서도 안 되고, 어떻게든 이곳에서 나의 새로운 길, 새로운 삶을 만들어야 했다. 그렇게 결심하고서, 내 나름대로 노력을 기울인 결과, 대구에서 많은 사람들과 가까워지게 되었고, 내 삶에 귀중한 경험들을 그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점차, 이곳 대구에 정착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역병 사태가 도래하고, 그와 함께 따라온 나의 어리석음이 내 모든 것을 뒤흔들어 놓았다. 역병은 대구의 환경을 순식간에 바꿔놓았고, 바뀐 환경은 나를 더 큰 외로움과 어리석음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들은 곧, 나에게 많은 관계의 단절을 가져왔다. 대구에서 알게 된 여러 소중한 인연을 잃었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되는 것 같았다. 다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왕왕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다는 걸 실컷 깨닫지 않았던가. 혼자서 수없이 외로움을 삼키며 억지로 어떻게든 버텼다.

 

더 이상은 못 버티겠다고 한계를 느낄 때 즈음, 나는 대구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을 통해 나는 이곳 대구에서 더 버틸 수 있는 계기와 힘을 얻었다. 내게 음악 에세이 모임을 진행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한 기관에서 제안이 들어온 것이었다. 하나도 기대하지 않았고, 너무 갑작스럽게 다가온 기회라 얼떨떨했지만, 마침 딱히 바쁜 일도 없었고, 내게 사례비도 준다고 했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 오늘도 무사히 싱글 “Guilty”

■ 새로운 기회와 귀중한 경험

내가 대구에 오기 전부터 꾸준히 써왔던 “인생명반” 시리즈가 내게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시리즈를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한 때는 소중했을지라도, 나는 음악 관련 글로 주목 받기보다는 언제나 내 작품, 그러니까 나의 소설로 주목받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컸기 때문에, 소설 작업에 집중하며 이 시리즈에 쏟는 마음이 좀 소홀해진 면도 없지 않아 있었다. 그래도 꾸준히 봐주는 독자들도 있고, 내 입장에서 꾸준히 써 온 시리즈를 갑자기 끝내기도 아까워서, 어떻게든 계속 이어갔더니, 이걸 알아본 대구 사람들이 내게 귀한 기회로 이어준 것이었다.

 

이 기회가 내게 왔을 때만 해도, 실은 돈만 보고 진행하기로 결심했던 것이지, 이 기회에 별 큰 의미를 두진 않았다. 그런데 막상 모임을 맡아서 진행해보니, 내가 지금껏 써왔던 인생명반 시리즈가 내게 얼마나 큰 의미였는지, 뒤늦게 깨달았다. 내가 써왔던 글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고, 이 순간 나조차 모르고 있었던 커다란 보람과 감동을 선사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깨달았다. 대구 중구에 자리 잡은 “예술공장”이라는 공간이 있다. 여기서 내가 “음악 에세이” 모임을 진행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주었는데, 이 자리를 통해서 많은 귀중한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음악을 진지한 자세로 경청해본 적도 없었고, 음악에 대한 감상을 글로 옮겨본 적도 없었다고, 그래서 이런 경험들이 새롭고 감동적이었다고. 내게 음악 에세이를 쓴다는 것은 어느 정도 버릇으로 굳어져서, 귀찮아진 감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나의 버릇이 누군가에겐 특별한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걸, 이 모임을 진행하면서 깨달았다. 그들의 감동은 곧 나의 감동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남은 이 모임을 계속 정성으로 이끌어야 되겠다고, 그리고 인생명반도 멈추지 않고 꾸준히 또 열심히 써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특히 9월 10일 금요일에 가졌던 네 번째 모임은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에게 가장 필요했던 모임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모임은 보통 이런 절차를 통해 진행된다. 처음에 참가자들에게 총 여섯 곡을 들려주고서, 그 여섯 곡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곡을 한 곡 골라, 그 곡을 주제로 에세이를 쓰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웠던 건, 그곳에서 재생했던 곡들 중에는 해외 유명 가수도 있었고, 국내의 전설적인 가수, 최신 유행을 선도하는 가수도 있었는데, 그들을 모두 제치고, 참가자 세 명 중 두 명이 가장 좋았던 곡으로 대구에서 활동하는 뮤지션 “오늘도 무사히”의 곡을 뽑았던 것이다. “나의 배역”이라는 노래였다. 그는 서울에 비해 지극히 작은 규모를 가진 대구 음악 판에서 주로 활동하던 가수였는데, 저 유명한 뮤지션들을 모두 제치고 가장 좋았던 곡으로 선정되었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 2번 트랙 “The Satellite” 뮤직비디오

참가자 두 명은 이 노래를 주제로 쓴 에세이를 낭송했다. 한 명은 “나의 배역”을 부른 그 뮤지션에게 힘내라고 격려를 보내고 싶다는 말과 함께, 자신은 과연 이 정도로 치열하게 살아본 적이 있었던가,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고 털어놓았다. 다른 한 명은 좁은 방 안을 가득 메운 자신의 상처 받았던 기억들을 되새겨보는 시간을 가졌고, 이 노래가 자신의 그런 외로운 시간들을 살며시 안아주는 기분이 들어서 위로를 받았다고 밝혔다.

 

■ 감당하기 힘든 꿈이 나의 삶을 괴롭힐 때

나도 이들과 함께 모임에 참여하면서 에세이를 한 편 썼는데, 나는 “나의 배역”이 아닌 다른 곡을 골랐다. 그런데 내가 쓴 에세이를 발표하면서, 내 에세이가 앞서 자신의 에세이를 발표한 사람들의 감상과 겹치는 걸 느꼈고, 내가 쓴 에세이를 내가 낭송하면서도 가슴이 벅차고 목이 메어왔다. 나는 목으로 겨우 감정을 삼키며 어떻게든 끝까지 에세이 낭송을 이어갔다. 그 에세이는 내 꿈이 내 삶에 얼마만큼 중요한 것인지에 관해 쓴 글이었는데, 왠지 그 자리에서 틀었던 “나의 배역”이라는 노래와 내 에세이가 잘 어울렸던 것이다.

 

다른 노래를 가지고 쓴 에세이였음에도 “나의 배역”이라는 노래와 잘 어울렸던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나는 요즘 내가 만든 꿈이지만 나조차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비대해져버린 내 꿈이 원망스러웠다. 내게 있어 내 꿈이란 내 삶과 동의어였기에, 언제나 그랬던 건 아닐지라도 거의 항상 그래왔기에, 내 꿈을 증오했던 만큼 내 삶도 증오해왔던 것이다. 사실 내 꿈은 내 삶에 대한 증오에서 비롯되었다. 삶이 너무 버겁고 힘들어서, 내 꿈으로 늘 도피해왔던 것이었다. 내가 삶에서 꿈으로 도피하는 순간이 많아질수록, 내 꿈은 비대해져만 갔고, 결국 내 삶과 꿈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가 되어, 내 꿈이 내 삶을 괴롭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는 이미 내 삶이 되어버린 내 꿈을 버릴 수도 없어서, 내 삶과 꿈을 원망하고 있었는데, 이런 거친 삶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나는 사랑을 통해 삶을 버티고, 꿈을 이뤄갈 수 있다는 사실마저 깨달았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늘도 무사히 정규 1집을 다시 경청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앨범에 “나의 배역”이 수록되어 있는 건 물론이고, 이 곡과 함께 이어지는 정규앨범 속 서사를 다시 한 번 전체적으로 음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장 와 닿았던 곡은 이 앨범의 3번 트랙 “언저리에서”였다.

 

“시간은 잡을 수 없고 나이도 먹긴 하지만, 조급해하지 말자던 난 왜 또 흔들리는지. 세상이 말하는 성공과 실패 언저리에서, 오늘도 나는 헤매네, 나 헤매네.”

 

이 노래를 들으며, 방황을 거듭했던 내 이십 대를 되돌아보았다. 지금 나는 그 방황을 어느 정도 극복하긴 했지만, 완전히 그 방황이 끝나지도 않았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기도 했다. 나는 앞서 내가 서른까지 살면서 해온 일들이 과연 의미 있는 일이었을까, 회한을 갖는 시간이 많았다고 고백했다. “성공과 실패 언저리”를 부르짖는 이 노래 가사와 나의 상황이 겹쳐졌다. 그러고 보니, 에세이 모임이 총 여덟 개 모임으로 기획되었는데, 이제 네 번째 모임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모임이 딱 중간 지점에 도달한 것이다. 모임의 성공과 실패를 돌아보기에 이만큼 좋은 시점도 없다는 생각도, 이 노래를 듣는 순간에 함께 들었다. 우연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던 무렵, 이런 생각이 머리를 때렸다.

 

 

▲ 3번 트랙 “언저리에서” 라이브영상

■ 우연이 운명이 될 때

우연이란 의미가 부여되는 순간, 더 이상 우연이 아니다. 의미를 받은 우연은 운명이 된다. 그리고 자신에게 닥친 우연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자신뿐이다. 남의 말을 듣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더라도, 그 말을 의미로서 받아들이는 건 결국 자신의 몫이다. 그렇다. 미래를 만드는 것은 우주의 몫이지만, 운명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자신이 맞이한 운명을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느냐, 나쁜 것으로 받아들이느냐, 그것은 전적으로 본인의 몫이다. 물론 현실이 나의 소망과 바람들을 좀 더 순순히 따라가 준다면, 훨씬 더 내 운명을 받아들이기가 쉬울 것이다.

 

오늘도 무사히, 비록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이름은 아니지만, 그의 노래는 분명 모임에 참석한 그들에게는 그 모임에서 들었던 노래 중 가장 감동적인 노래였다. 세상의 기준에서 놓고 볼 때, 그는 그다지 성공한 뮤지션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노래는 그 모임에서 만큼은 확실히 성공했다. 그 모임에서 흘러나온 그 어떤 노래보다도 깊은 울림을 전해주었고, 그 울림은 그 모임에 참석한 사람 모두에게, 특별한 추억으로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이런 깊은 울림과 귀중한 추억을 비웃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이걸 실패라고 함부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는 성공한 뮤지션이다. 적어도 그 순간 그 공간에서 만큼은 확실히 성공한 뮤지션이었다. 나는 그가 자신이 음악을 통해 쌓은 업적들을 과소평가하지 않았으면 한다. 그의 음악이 그의 앞에 펼쳐준 운명들을, 좋은 운명들이었다고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물론, 이건 그냥 내 바람일 뿐이니, 내 바람을 받아들이는 것도 전적으로 그의 몫일 것이다.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앨범에 수록된 “언저리에서”를 들으며,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이 앨범이 내게 가장 잘 와 닿을 때라는 걸 느꼈다. 서른을 맞이하고서, 내 삶에 그 어느 때보다 내 삶을 자주 되돌아보는 이 때,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 노래가, 이 앨범이 이만큼 깊게 내 마음에 들어올 수 있을까. 나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노래는 이 노래뿐만이 아니었다. 앨범 속 모든 노래들이 그전보다 훨씬 내 마음에 깊게 다가왔다.

 

내가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6번 트랙 “그대로”였다. 나는 이 노래 특유의 담백하면서도 깊이 있는 격려가 마음에 들었는데, 지금 이토록 이 앨범이 마음에 깊게 들어오는 때에 다시 “그대로”를 들으니, 이미 반복해서 몇 번 들었던 노래임에도, 새로운 감상을 느낄 수 있었다.

 

“그대로도 괜찮아, 굳이 삶을 변명하려하지 않아도. 지금 여기 너 있는 그대로, 그대로.”

 

 

▲ 4번 트랙 “나의 배역”

■ 밖을 향해 고통을 호소해보지만, 내 고통을 알아주는 것은 나의 작은 방 한 칸뿐

본 앨범의 시작은 다소 거칠고 처절하다. 사실 처절함이란 이 앨범을 관통하는 정서인데, 1번 트랙 “늙은 꽃”은 거기에 더해 거친 저항정신마저 느껴진다.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의 설움을 노래한 트랙으로서, 보컬의 음색에서 단호한 의지와 깊은 호소가 느껴진다. 이 곡을 쓴 보컬 본인이 얼마나 그들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려 노력했는지 돋보이는 부분이다. 이 앨범에는 포크 듀오 “옥민과 땡여사”에서 “땡여사”로 활동하던 “전휘영” 씨가 아쟁 연주자로 참여했는데, 그의 아쟁이 가장 돋보이는 트랙이 바로 이 1번 트랙이라 말하고 싶다. 그녀의 아쟁은 이 곡 안에서 때로는 몰아치는 슬픔의 폭풍이 되기도 하고, 그들의 격렬한 분노를 어루만지는 강인한 팔뚝이 되기도 한다. 한국의 전통악기가 곡에 드러나 있어, 이 곡에서 표현하는 아픔이 바로,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 이웃의 아픔이라는 느낌을 더욱 깊게 받을 수 있는 것 같다.

 

2번 트랙 “The Satellite”에서는 반면, 체념의 정서가 느껴진다.

 

“I thought that I can chase my own star. But now I'm chasing only the satellite. I thought that I'm quite different than others. But now I'm thinking same as the others. Oh, how naive that I was. And how funny I am.

 

난 내가 나만의 별을 쫓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지금은 오직 위성만을 쫓아갈 뿐이야. 난 남들과는 좀 다르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지금은 나도 남들이랑 똑같다고 생각해. 오, 얼마나 순진했던 나였으며, 얼마나 웃긴 나였는가.”

 

세상을 바꾸려 열심히 싸우던, 패기 넘치는 청년 운동가의 모습은 다 어디로 가고, 이렇게 자신을 질책만 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신의 체념을 어두운 피아노 연주에 맞춰 읊조리는 목소리가 구슬프다. 3번 트랙 “언저리에서”의 자기반성을 지나면, 4번 트랙 “나의 배역”이 그 뒤를 잇는다.

 

“난 무대의 주인공은 바란 적도 없지만, 내게 허락된 배역이 이렇게나 외로울 줄이야.”

 

곡을 시작하며 울리는 기타 소리는, 시작부터 청자의 숨을 죽인다. 낮게 읊조리는 보컬은 곡에 무게를 더한다. 이 트랙을 통해 이 앨범은 내면의 가장 깊고 어두운 곳으로 침투한다. 자신의 삶이 성공인지 실패인지 되돌아보다가 문득, 자신은 무대의 주인공조차 된 적이 없었다는 걸 깨닫고선 실망하는데, 주인공조차도 아닌 자신의 배역 즉, 자신의 삶마저도 버겁다고 느끼는 자신을 질책한다. 그는 정말로 무대의 주인공을 꿈꾼 적이 없었을까. 왜 없었으랴, 분명히 있었을 터. 단지, 거칠고 각박한 현실을 거치다보니, 세상 앞에 너무 작아져버려 자신이 과거에 가졌던 꿈마저도 부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곡의 화자는 자신의 외로움을 자기가 박혀있는 작은 방 한 칸에서 수없이 읊조린다. 곡에서 울려 퍼지던 기타 소리는 숨이 끊어지듯 비장하게 막을 내린다.

 

 

▲ 6번 트랙 “그대로” 라이브영상

5번 트랙 “이런 게 외로움이구나”는 오늘도 무사히 본인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썼다고 한다. 슬픔의 정서는 전 트랙에서부터 이어지지만, 분위기가 이전에 비하면 조금은 더 밝아진 것 같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곱씹어보는 모습은 마치, 동이 트기 전 새벽을 보는 것 같다. 6번 트랙 “그대로”에서 앨범은 가장 밝은 정서를 향해 나아간다. 이제는 자기 자신을 긍정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그렇게 조심스레 자기 자신을 격려한다.

 

■ N포세대의 설움을 대변하는 목소리

7번 트랙 “요즘 속담”은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요즘 젊은 세대를 대변한다. “N포세대”라는 말이 있다. 취업도 힘들고, 돈을 벌고, 집을 마련하기는 더욱 힘들어, 결혼은 물론이고, 연애까지 포기하고선, 그 외에 여러 가지를 더 포기하지 않고선, 도무지 살아갈 수 없는 요즘 젊은 세대의 현실을 지칭하는 단어이다. “요즘 속담”은 이런 N포세대의 자조적인 농담들을 밝은 음색에 실어 넣은 곡이다.

 

“희망을 갖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우린, 엉거주춤 미래를 준비하다가, 이따금씩 지금을 탕진하며 고요한 끝을 기다린다.”

 

요즘 젊은이들의 상황을 대변하는 이 문장을, 여러 사람이서 합창하는 곡의 후반에선 기묘한 기분이 느껴진다. 이토록 자조적인 문장을 밝은 음색으로 목청껏 합창하는 그들의 모습이 안쓰럽다가도, 귀엽게 느껴지기도 하고. 이토록 각박한 현실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지만, 아직 그들에게는 청춘이 남아있고, 각박한 현실조차 청춘이 가진 삶의 신선함을 뺏어갈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8번 트랙 “남조선 블루스”는 자조를 넘어, 다시 세상을 향해 날을 세운다. 2번 트랙부터 이어져온 체념에도 지쳤다는 듯, 세상을 비웃는 듯 여러 우스운 비유들을 사용해가며, 세상의 부조리를 낱낱이 까발린다. 느린 블루스 리듬에 맞춰, 정성껏 가사를 꾹꾹 눌러 노래하기 때문에, 그 웃음 섞인 폭로가 더욱 깊게 와 닿는다. 1번 트랙에서 보여주던 청년 운동가의 모습은 잠시 후퇴했을지언정, 죽지는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 7번 트랙 “요즘 속담” 라이브영상

사실 7번 트랙과 8번 트랙만 요즘 세대를 이야기하고 있는 건 아니다. 이 앨범의 모든 트랙이 요즘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요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사회의 부조리에 분노하다가도, 그 부조리에 패배하고서 절망하기도 하고, 각박한 현실에 무너지기도 하지만,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일어서기도 한다. 다시 맞이한 현실이 그다지 반갑지는 않지만, 그 속에서 부조리를 농담과 함께 극복해나가는 유연함을 조금씩 배우기도 한다.

 

오늘도 무사히 노래하기 바랐던 그의 이름은, 이제 우리의 목소리가 되어 우리의 마음을 울리고, 우리도 그의 목소리를 따라,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보내길 바라게 된다. 그의 목소리는 아직 세상에 많이 울려 퍼지지 못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분명 호소력이 있고, 그 호소는 서서히 깊고 넓게 퍼지리라 확신한다. 그는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결코 실패한 뮤지션이 아니다. 이토록 훌륭한 명반을 남겼는데, 감히 그의 음악을 비웃을 수 있으랴. 오히려 그의 음악에 경이로움을 느낀 것이 몇 번이던가. 그리고 나는 그의 노래가 나 외에도 여러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모습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의 목소리가 이 명반과 함께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울리기를 희망해본다. 그리고 내 삶이 나아가는 방향에 그의 목소리가 이따금씩 힘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이미 과분할 정도로 많은 힘과 위로를 그의 목소리를 통해 얻기도 했고.

 


트랙리스트

1. 늙은 꽃
2. The Satellite
3. 언저리에서
4. 나의 배역
5. 이런 게 외로움이구나
6. 그대로
7. 요즘 속담
8. 남조선 블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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