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명반 에세이 64: 아이유(IU) - CHAT-SHIRE
본인조차 주체하기 힘들었을 만큼 폭발적으로 피어난 가능성
■ 새로운 길에서 자신을 증명한다는 것
새로운 길에 들어설 때마다,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증명해야 할 때가 반드시 오게 된다. 좀 더 일상적인 예를 들자면, 이직할 때를 생각해보면 될 터. 전 직장에서는 경력이 2년, 3년 쌓였겠지만, 새로운 직장에 도착해서는 자신의 경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새로 증명해야 할 때가 반드시 온다. 한 직원이 회사에 입사해, 그 사람이 일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상사들의 판단이 서는 게, 보통 3개월 정도가 걸린다고 하고, 그 회사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기까지는 적어도 6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누구든지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 반년 간이 가장 힘들다고, 입을 모아 얘기한다. 그래서 회사를 운영하는 임원들 입장에서도, 그 6개월을 잘 버틴 직원은 웬만해선 2년, 3년까지 계속 일을 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게 된다고 한다. 반년, 돌아보면 짧지만 그 시간을 겪는 사람에겐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일 것이다. 이렇듯 자신을 증명하는 일은 이 시간의 무게만큼 힘과 노력이 들어가기 마련이다.
자신을 남들 앞에 증명한다는 건 언제나 어렵다. 이게 어려운 건 예술가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회사 안에서 자신을 증명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울 수도 있다. 예술가에겐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는 매 순간이 증명의 연속일 것이므로. 그것은 마치, 운동선수가 매 경기마다 자신의 최선을 다해야만 제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한 선수가 계속 한 가지 스타일만 고수한다면, 나중에 쉽게 패를 읽히게 될 수 있으므로, 결국 롱런하기 위해선 약간의 변칙을 구사할 줄도 알아야만 한다. 그게 아니라면, 자신의 특기를 그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로, 극한의 능력치까지 끌어올리거나. 단 한 순간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는 냉혹한 스포츠의 세계는 어쩌면, 예술가들이 자기 작품을 통해 세상에 발을 들이는 것과 같다.
저번 작품이 성공했다고 해서, 다음 작품까지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다음 작품을 어떻게 성공시킬 것인가, 그것은 분야를 막론하고 모든 예술가들의 가장 큰 고민일 터. 지난 작품과 똑같이 만들면 사람들이 지루해할 테고, 그렇다고 완전히 바꿔버리자니 기존에 자기 작품을 좋아하던 사람들이 떠날까봐 두렵고. 예술가는 이럴 때 이 둘 사이에서 어떻게 자신의 길을 택해야 할 것인가.
■ 객체에서 주체로, 그 험난했던 변화의 과정
아이유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자기 앨범에 자신이 프로듀서로 나섰다. 아이유는 올해 봄, 정규 5집 “LILAC”과 함께 다시 돌아왔다. 이제는 이런 일이 별로 놀랍지도 않고, 오히려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다. 가수 아이유의 가창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아이유의 작곡 작사 실력은 물론,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을 의심하는 사람조차도 없다. 그녀는 자신이 가진 창작력을 대중 앞에 증명하는 것에 있어선 이미, 제 역할을 끝낸 것처럼 보인다. 가수 아이유뿐만 아니라, 작사가로서, 작곡가로서, 프로듀서로서도 아이유는 대중 앞에 흥행이 보장된 명품 브랜드가 된 것이다. 이런 아이유가 처음 프로듀서로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녀가 얼마나 호된 고난을 겪었어만 했는지,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선명할 텐데, 그게 이제는 벌써 6년 전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녀가 2015년 10월에 발표한 EP “CHAT-SHIRE”에 관한 이야기다.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기획사의 철저한 기획 아래 만들어진 소위 “아이돌”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던 그녀였건만, 이 앨범만큼은 달랐다. 아이돌이 직접 자기 앨범의 감독을 맡게 되며, 자기 작품에 대한 자주성을 차지하게 된 것. 즉, 아이유는 이 앨범을 통해 아티스트로서 첫 발을 내디딘 셈이었다. 2010년 “좋은 날”을 시작으로 이듬해 “너랑 나”까지 연속으로 히트시키며, 아이유는 점차 유명가수 반열에 올랐지만 이들이 아이유의 자작곡은 아니었다. 다만, 가수 아이유로서의 탁월한 가창력을 대중에게 각인시키기엔 충분한 곡들이었다. 이후 2012년 “복숭아” 2013년 “금요일에 만나요” 같은 아이유 본인의 자작곡마저 히트시키며 싱어송라이터로서의 가능성도 보여주었던 그녀였기에, 그녀가 앨범의 프로듀서로서 나선다는 사실은 앨범이 공개되기 전부터 많은 기대를 불러 모았다. 이런 사례가 전혀 없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흔한 사례는 아니었다. 게다가 그 흔치 않은 사례 중에서도 상업적 성공 그 이상의 좀 더 영속적인 가치를 끌어온 경우는 더욱 드물었다. 아이유는 여기서 어떤 성과를 만들어냈을까.
그녀의 성과가 제대로 평가 받기도 전에, 그녀의 작품은 큰 시련을 맞이해야만 했다. 이 앨범 2번 트랙에 수록된 “Zezé”라는 곡의 가사와 “스물셋” 뮤직비디오 콘셉트와 관련된 논란이 그것이었다. 앞서 언급한 저 곡의 가사와, 그 뮤직비디오가 아이유를 공격하는 사람들의 표적이 되었고, 아이유는 소아성애자라는 불명예스러운 호칭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었다. 아이돌이 자기 앨범에 직접 프로듀서를 맡는다는 것도 드물었거니와, 아이돌 가수가 이런 성적인 논란에 연루된 것 또한,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다. 청소년들에게 바람직하고 건전한 생각을 심어줘야 마땅한 아이돌 가수가 소아성애자라니? 지난 EP “꽃갈피”를 통해 신세대와 구세대의 화합을 주도하며, 바람직하고 건전한 가수라는 이미지를 갖게 된 아이유였기에, 이런 논란이 대중에게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으리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에도 유행이 있듯, 사람들이 비난하는 것에도 유행이 있는 것 같다. 그 시절 아이유를 이런 저런 이유로 비난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제는 그 누구도 이 시절의 아이유에 대해 비난하지 않고, 아이유는 여전히 가요계 정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들은 아이유가 정말로 잘못했기 때문에 비난을 했던 게 아니라, 어쩌면 그 때 아이유를 비난하는 게 유행이라서 그런 것에 불과하지 않았을까. 이 시절의 아이유를 비난하는 유행이 모두 지나버린 지금, 다시 이 앨범을 들어본다. 유행은 색이 바랬을지언정, 이 앨범에서 보여준 아이유의 빛나는 창작력은 전혀 바래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선명하게 내 마음을 울린다.
■ 아이에서 어른으로
1번 트랙 “새 신발”은 곡 제목부터 아이유가 맞이할 거대한 운명을 예견하는 것만 같다. 그러나 이 곡에서 드러내는 정서는 두려움보단 설렘이 앞선다. 자신의 길이 마냥 편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 정도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은 새로운 들어선 길에서 맞이하는 모든 게 마냥 즐거워 보인다. 이런 즐거움 앞에선 약간의 고난 정도는 그저 웃어넘길 수 있을 것만 같다. 아이유의 시련은 바로 다음 트랙 “Zezé”에서부터 시작된다. 곡만 놓고 보자면, 아직은 새로운 길에 들어선 자신을 즐기는 것 같다. 다만, 새로운 길에서 느끼던 설렘이 점차 질려가는 듯, 이제는 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게 된 것 같다. 아담과 이브가 금지된 열매를 탐내다가 타락에 빠졌듯, 그녀는 좀 더 발칙한 욕망을 품게 된다.
아이돌에서 아티스트로 변해가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아이에서 어른으로 변해가는 그 사이 사춘기 소녀를 보는 것만 같다. 어른들이 지어준 울타리 안에서 밝고 친절한 것들만 마주하던 아이가, 어느새 울타리 바깥의 세상을 동경하게 되고, 이 울타리를 나갈 수만 있다면 울타리 밖에서 맞이할 위험마저도 기꺼이 감수하겠다는 그런 발칙한 상상이, 소녀의 마음속에 주체할 수 없이 솟아나고 있다. 세상은 아직 그녀가 울타리 바깥으로 나가는 걸 원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녀의 발칙한 상상은 일부 대중에게 공격의 대상이 되었고, 그녀는 이 때문에 작품 활동에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까딱 잘못하다간 그녀가 평생 가수 생활을 못하게 될 것 같은 위태로운 상황마저 보이기도 했다. 이런 거대한 시련을 그녀는 어떻게 헤쳐 나갔을까.
우선 사과하는 길을 택했다. 내가 앞서 사람들의 비난에도 유행이 있는 것 같다는 식으로 말하긴 했지만, 사실 이 사태가 무사히 지나갈 수 있었던 건 아이유 본인의 성숙한 대처가 가장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녀는 사과를 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자기 작품에 대한 신념을 놓지는 않았다. 이런 논란 속에서도 그녀는 자신의 콘서트를 진행했고, 그곳에서 “Zezé”를 부르는 뚝심마저 보여주었다. 그녀의 이런 뚝심이 대중에게 결국 통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향한 비판마저도 끝내 받아들이는 성숙한 자세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도 이 노래 자체가 이미 가지고 있던 힘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Zezé” 이 곡의 가사를 잘 살펴보면, 이 곡에 대한 여러 입체적인 해석이 가능하도록 설계해두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런 영리한 설계 덕분에, 아이유는 이 곡에 대한 옹호 여론을 획득할 수 있었다. 이 곡을 하나만 떼어놓고 들어보면, 이 가사가 문제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 곡은 이 앨범의 콘셉트를 묘사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라는 걸 기억하자. 아이유 자신의 성장과 그 속에서 형성되는 자신의 입체성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나온 가사라는 걸 생각하면, 소아성애 요소를 문제 삼을 일은 없어 보인다. 자신의 입체성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발칙한 표현들이 나왔던 것이고, 그게 누군가들에겐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곡의 모티브가 꼭 아동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소설이었어야 했느냐, 거기에 대해선 여전히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판단은 듣는 이의 몫이다. 어쩌면 이 논란은 음악을 곡 하나 하나 떼어서 듣는 데 익숙한 대중이, 앨범 전체의 콘셉트를 이해하지 못해 벌인 촌극이 아니었을까.
■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도 모르니까 너희들이 한 번 맞혀봐
“맞혀봐. 어느 쪽이게? 얼굴만 보면 몰라. 속마음과 다른 표정을 짓는 일, 아주 간단하거든. 어느 쪽이게? 사실은 나도 몰라. 애초에 나는 단 한 줄의 거짓말도 쓴 적이 없거든.”
아이유는 자신의 입체성을 더욱 적극적으로 전시하며 다음 곡을 선보인다. 3번 트랙 “스물셋”의 등장이다. 아이유는 이 곡에서 자신의 모습을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그려낸다. 너무 화려해서 오히려 어지럽게 느껴질 정도로. 그런데 이런 어지러우리만치 화려한 자신에 대한 묘사는 본인 스스로도 자신의 모습에 혼란을 느끼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 하지만 그녀는 이 혼란에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맞혀봐.”라며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도발한다. 즉, 그것은 자신을 향한 여러 시선과 해석을 즐겨보겠다는 당돌한 선언이었다. 자신은 항상 진심으로 살았는데, 그런 자신의 삶이 사람들마다 각자 다른 모습으로 비춰진다는 게, 조금은 혼란스럽게 느껴지다가도, 다른 한 편으론 자신의 삶이 가진 입체성에 흥미로워하고 있는 것이다. 스물셋 아이유는 이토록 다양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아티스트였다.
여기서부터 이 앨범은 흥미로운 구성을 취한다. 3번 트랙 “스물셋”에서 청자를 도발하다가, 4번 트랙 “푸르던”에선 지난여름의 상냥하고 감미로운 추억을 속삭인다. 그러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5번 트랙 “Red Queen”에선 흥겹고 역동적인 리듬으로 청자를 사로잡으며, 3번 트랙의 메시지를 이어간다. 6번 트랙 “무릎”은 죽음에 가까우리만치 고요한 정서를 나지막이 읊조린다. 7번 트랙 “안경”에 들어서선 다시 감성에 날을 세우기 시작한다. 그전 트랙들에 비하면 그렇게 역동적인 느낌은 아니지만, 고요한 가운데 갑작스레 끼어드는 불길한 리듬이 마치, 삶에 잔뜩 피로를 느끼는 감정을 표출하는 것 같다. 이렇게 모든 게 선명하게 보여서 피곤해질 바에는 안경을 쓰지 않을 거라고 한탄한다.
날카로운 정서와 상냥한 정서를 서로 바쁘게 오가는데, 그 사이를 메꾸는 틈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앨범의 구성은 조금 불쾌하게 느껴질 정도로 갑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한 편으론 다분히 의도적인 배치로 보이기도 한다. 이런 극단적인 앨범 전개는 이 앨범을 만들 당시 아이유가 프로듀서로서, 또한 싱어송라이터로서 얼마나 큰 포부를 품고 있었는지 엿볼 수 있게 한다. 혹자는 이런 부분에서 아이유의 지나친 욕심이 보인다고 평하기도 했지만, 내 입장에서 보자면 그래서 더욱 재밌는 앨범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아이유가 가진 아티스트로서의 다양한 가능성을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으로 표출한 앨범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나오지 않았고, 이 앨범만의 고유한 색깔이기 때문이다.
이 앨범이 불러온 여러 논란은 단순히 논란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팝스타라면 대중 앞에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또한 표현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고, 표현의 자유만큼 해석의 자유도 중요하다는 것에 대한, 여러 의미 있는 논의마저 낳았다. 이게 아이유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이런 의미 있는 논의가 등장한 배경, 그 중심에 아이유가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녀의 음악이, 그 음악이 내뿜는 힘이, 이런 의미 깊은 논의들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 모든 게 아이유라서 가능했던 것이다. 아이유 이전에 대중 전체로 하여금, 한 가수가 만든 결과물을 놓고 이러쿵저러쿵 깊이 있게 논의했던 때가 언제였을까. 21세기를 맞이하게 된 이후로는 아이유가 처음이지 않았을까? 아이유 이후로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렇게까지 큰 파급력으로 자신의 노래에 시선을 집중시키고, 그에 그치지 않고 여러 깊고도 입체적인 논의를 이끌어낸 사례는 아이유 “CHAT-SHIRE” 외엔 떠올릴 수 없다.
■ 어느 작별이 이보다 완벽할까
아이유는 이제 더 이상 이런 도발을 대중 앞에 선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이런 큰 논란에 겁이라도 먹은 걸까. 전혀. 이번에 나온 정규 5집을 들어보면, 오히려 그녀 자신이 적극적으로 원해서 좀 더 온건한 메시지를 택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녀가 정말 그 이후로 겁을 잔뜩 먹었다면, 이때의 기억이 그저 나쁜 경험으로만 남았더라면, 아이유는 프로듀서로서 다시 나서는 일이 없었으리라. 그러나 그녀는 굽히지 않고 자신의 소신을 실천해나갔고, 그녀는 프로듀서로서도 성공적인 성과를 이어나갔다. 게다가, 그녀의 도전이 끝난 것도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자기 앞에 놓인 도전에 당당하며, 때론 그것을 즐기기까지 한다.
5집 “LILAC”의 동명곡인 1번 트랙을 보자, 이는 자신의 스물아홉, 그러니까 자신의 20대 마지막 순간을 봄의 끝자락 5월에 피는 꽃에 빗대어 노래한다. 여기서 아이유가 자신의 20대에 대해 어떤 말을 남겼는지 보자.
“어느 작별이 이보다 완벽할까. Love me only till this spring. 오, 라일락. 꽃이 지는 날 Good bye. 이런 결말이 어울려, 안녕, 꽃잎 같은 안녕. 하이얀 우리 봄날의 Climax. 아 얼마나 기쁜 일이야.”
이런 커다란 논란을 겪었던 20대였지만, 그 시련을 극복할 수 있었기에 더욱 완벽하고 기뻤던 봄날이었노라 외치는 아이유. 이런 그녀에게 지난 시절 드리웠던 어둠은 찾아볼 수 없다. 아이유가 여기까지 이를 수 있었던 과정은 5집에 후반부를 담당하는 8번 트랙 “아이와 나의 바다”에서 더욱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아이는 그렇게 오랜 시간, 겨우 내가 되려고 아팠던 걸까. 물결을 거슬러 나 돌아가, 내 안의 바다가 태어난 곳으로. 휩쓸려 길을 잃어도 자유로와. 더 이상 날 가두는 어둠에 눈 감지 않아.”
3번 트랙 “Coin”과 9번 트랙 “어푸 (Ah puh)”에선 자신에게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즐겨 보이겠다는 선언을 흥겨운 리듬에 실어 전한다. 또한 자신은 편한 길에만 안주하지 않고 시련이 오더라도, 자신은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겠다는 모험가의 모습마저 드러낸다. 9번 트랙의 가사를 보자.
“I'm such a good surfer. 가라앉지 않기. 비틀 비 비틀 거리다가 풍덩 Uh, 빠지더라도 구명복 따윈 졸업. I'm such a good surfer. 휩쓸리지 않기. 울렁 우 울렁 거리다가 Throw up, 게워내더라도 지는 건 난 못 참아. 제일 높은 파도, 올라타타 라차차우아. 해일과 함께 사라질 타이밍, 그건 내가 골라. 무슨 소리 겁이 나기는, 재밌지 뭐.”
여기선 자신의 도전 정신과 그에 따라오는 시련을 파도에 비유하며, 자신은 그 파도를 가지고 노는 서퍼라고 노래한다. 여기서 수많은 역경을 딛고 일어선 사람의 여유가 느껴지지 않는가.
아이유는 대중 앞에 계속해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선언하지만, 결국 이 모든 건 자신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 앞에, 자신의 진심이 바래지지 않고 오래도록 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마저 드러낸다. 5집의 마지막 10번 트랙 “에필로그”의 가사를 보자.
“나를 알게 되어서 기뻤는지. 나를 사랑해서 좋았었는지. 우릴 위해 불렀던 지나간 노래들이, 여전히 위로가 되는지. 당신이 이 모든 질문들에 ‘그렇다’고 대답해준다면, 그것만으로 끄덕이게 되는 나의 삶이란, 오 충분히 의미 있지요. 내 맘에 아무 의문이 없어 난, 이렇게 흘러가요. 툭툭 살다보면은 또 만나게 될 거예요. 그러리라고 믿어요. 이 밤에 아무 미련이 없어 난, 깊은 잠에 들어요. 어떤 꿈을 꿨는지 들려줄 날 오겠지요. 들어줄 거지요?”
■ 이제는 대중에게 진심을 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팝가수로
이토록 험난했던 길이었음에도 그녀가 이 길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아이유가 진실로 자기 자신이 되어야만 자신의 노래 속 진심이 더 잘 전해질 것이라는 결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이유가 본인 앨범의 프로듀서가 되기로 택한 것은 자신의 진심을 더욱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하여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었다. 이렇게 보니 “CHAT-SHIRE”를 통해 보여주었던 유별난 행보들 속에서, 그녀의 더없이 깊고 상냥한 마음씨를 느낄 수 있다.
“발자국마다 이어진 별자리. 그 서투룬 걸음이 새겨놓은 밑그림. 오롯이 너를 만나러 가는 길. 그리로 가면 돼, 점선을 따라.”
위는 5집 발매 전 선 공개 된 트랙 “Celebrity”의 일부분이다. “나의 ‘별난 친구’에게 해주고 싶은 말들을 적으며 시작했던 가삿말이었지만 작업을 하다 보니 점점 이건 나의 얘기이기도 하다는 걸 깨달았다.” 곡 소개에서 아이유가 이렇게 적었듯, 아이유 본인도 자신의 서툰 걸음 때문에 넘어지기도 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서, 이렇게 보란 듯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할 수 있었다. 저 가사는 친구에게 하는 말이면서도, 과거의 자신을 격려하는 말로도 볼 수 있겠다.
“모든 문학에는 정답이 없다지만 그중 해석의 제한에서 가장 자유로운 것은 시가 아닐까 한다. 작품자의 순정만 담겨 있다면, 어떤 형태든 그 안에선 모든 것이 시적 허용된다. ‘시인’이라든가 ‘예술’이라든가 ‘영감’이라든가 ‘작품’과 같이 본인 입으로 얘기하기에는 왠지 좀 민망한 표현들에 대해 약간의 울렁증을 가지고 있는 내가, 앨범명을 뻔뻔하게 ‘사랑시’라고 지어 놓고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 이유는 여기 담은 것들이 전부 진심이기 때문이다.”
2019년에 발표한 EP “사랑시”에 대한 아이유가 직접 적은 소개문이다. 이 EP 역시 아이유가 프로듀서로 참여한 작품이었다. 그래서 이런 소개문을 당당하게 적어 올릴 수 있었던 것이리라. 시에 담긴 진심을 이해하는 것에 있어서 “CHAT-SHIRE” 앨범은 분명 그녀에게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2020년 9월에 KBS에서 방영된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아이유는 “CHAT-SHIRE”의 6번 트랙 수록곡 “무릎”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 곡이 히트곡이 아닐지라도 ‘무릎’이라는 곡으로 저를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냥 이 곡이 저 같아요. 그래서 공연에서 수도 없이 불렀는데, 부를 때마다 몰입이 되고, 말이 되는, 말하는 것처럼 불러지는 그런 곡이에요.”
이 곡이 아이유가 직접 작사 작곡한 곡이고, 처음으로 프로듀서로 나선 앨범에 수록되었다는 걸 생각하면, 자기 작품에 대한 주도권을 자신이 갖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된다. 프로듀서 아이유로서의 길은 험난했지만, 그 험난한 과정을 모두 거쳐 온 걸, 대중 모두가 지켜보았기에, 그녀가 노래로 전달하는 진심이 더욱 잘 전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아이유가 노래로서 전하는 진심을 떠올릴 때 “CHAT-SHIRE”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겠다. “CHAT-SHIRE”가 있었기에 지금의 아이유가 있다. 청자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하기 위해 험난한 길도 마다하지 않고, 꿋꿋이 여기까지 걸어 와준 아이유에게 감사하며, 다시 한 번 “CHAT-SHIRE”를 들어본다. 그곳에서 보여준 아이유의 창작력과 열정은 여전히 바래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욱 선명해졌다. 아이유가 노래로 전해주는 진심 덕분에, 나는 위로를 받고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트랙리스트
1. 새 신발
2. Zezé
3. 스물셋
4. 푸르던
5. Red Queen (feat. Zion.T)
6. 무릎
7. 안경
8. 마음 *
9. Twenty three *
* 실물 음반 한정 수록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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