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명반 에세이 66: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 ★
자신의 죽음마저 작품으로 만들어버린 예술가의 삶
■ 새해는 겨울에 떠오른다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연말의 추위는 여전히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은 것 같다. 모든 해의 시작이 겨울과 함께 시작한다는 사실은 얼마나 역설적인가. 겨울은 죽음의 계절. 모든 것이 피어나고 열매를 맺기보다, 모든 것이 마르고 비틀어져 앙상해지는 죽음의 표정을 갖게 되는 계절이다. 새해의 시작이 겨울부터 시작한다는 건, 마치 죽음이 있어야 새 삶도 있다는 걸, 세상이 우리에게 속삭이는 것 같다.
“삶이 진행되는 동안은 삶의 의미를 확정할 수 없기에 죽음은 반드시 필요하다.”
영화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Pier Paolo Pasolini)의 말이다. 이런 격언은 우리가 삶에서 죽음을 준비하도록 돕는 역할을 해줄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를 마저 물리쳐주지는 않는다. 그 누구도 죽음 너머 세상에 대한 정답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종교를 가진 사람은 자신이 가진 종교에 대한 믿음으로 그 정답을 얻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믿음이 죽음에 대한 공포에 비롯되었다는 모순은 얼마나 많은 역설을 품고 있는가. 그럴지라도 살아서 가진 명예를 죽고 나서도 가져가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어렴풋이 그들을 닮고 싶다는 소망이 조용히 피어나는 것 같다. 이를 테면, 그 누구도 뺏어갈 수 없는 삶의 서사를 가지고 세상을 떠난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같은 사람을 바라볼 때 말이다.
그가 자신의 마지막 앨범 “★(Blackstar)”를 남기고 세상을 떠난 지도, 2022년 1월 8일로 어느덧 6주기를 앞두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은 기묘하다. 제 아무리 훌륭한 예술가라도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죽음 그 자체를 예술 작품으로 남기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 데이비드 보위는 보란 듯이 이렇게 해냈다. 그것도 2016년 1월 8일 자신의 69번째 생일에 딱 맞춰, 자신의 정규 26집 앨범 “★”를 공개했고, 약 이틀 후 죽음을 맞이했다. 그것은 자살이 아니었다. 지병에 의한 죽음이었다. 그러나 그 지병마저도 보위라는 예술가가 신 혹은 하늘이라 불리는 초월적 존재마저 굴복시켜 조공처럼 얻어낸 것으로 보인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자신의 죽음마저도 예술 작품처럼 설계할 수 있었을까. 하긴, 그에게 예술가로서 가장 큰 명예를 안겨준 작품 “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가 어쩌면, 자신의 인생도 반드시 종말을 맞이하리라는 걸 깨달은 데서 비롯된 은유이자 자기 예언이었을 수도 있겠다.
이렇게 보면, 보위는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은 사람처럼 보인다. 막상 그가 세상에 공개한 마지막 정규앨범 “★”을 들어보면, 그가 자기 앞에 닥친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가 그렇게 간단하게 단정 지을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걸 실감할 수 있다. 이 앨범 안에는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들이 펼쳐지고 있고, 그 수많은 감정들을 묘사하는 만큼 복잡한 사운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평소 록 음악을 중심으로 대중음악의 여러 장르를 섞는 데 탁월한 재주를 선보인 보위답게, 그의 마지막 정규앨범은 자신의 재주를 아낌없이 발휘한다.
■ 죽음이란 아무리 각오해도 두려울 수밖에 없는 것
보위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뭐 하나로 딱 잘라 정의할 수 없는 음악을 여기서도 선보인다. 그래도 굳이 더 상세하게 묘사를 해보자면, 들으면서 가장 많이 떠오른 데이비드 보위의 과거 앨범 두 개로 설명할 수 있겠다. 하나는 1976년에 발표한 정규 10집 “Station To Station”이고, 다른 하나는 1995년에 발표한 정규 20집 “Outside”다.
전자는 데이비드 보위가 코카인에 중독되어 가장 퇴폐적인 삶을 살던 시절 공개된 앨범으로서, 록과 소울(Soul)의 조화가 돋보이는 앨범이었으며, 수도 없이 죽음의 문턱을 오가던 혼란스러운 보위의 삶과는 달리, 경쾌하고 폭발적인 사운드를 주로 내세우는 앨범이었다. 물론 애수에 젖은 감성을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있었지만, 그 마저도 낙천적인 빛을 잃지 않는다.
후자는 인더스트리얼 록(Industrial Rock)을 시도한 앨범으로서, 당시 인더스트리얼 록이 주로 얘기하던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내용을 보위 특유의 시각으로 담아낸 작품이었다. 보위가 미국에 정착해 나름 안정적인 삶을 살던 때였지만, 그때 선보인 음악은 그의 삶과는 다르게 암울한 분위기와 과격한 사운드를 품고 있다. 마치, 자신의 삶이 아무리 잘 풀리고 있더라도, 세상에서 솟아나는 여러 부조리들을 차마 외면할 수 없다는 듯이.
보위는 그 누구보다 자기 삶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사랑하던 이부형 테리(Terry)의 정신병원 수감 및 자살이라는 가슴 아픈 사건을 겪고서, 자신도 자신이 사랑하던 형과 같이 정신병을 얻으면 어쩌나, 갑자기 자살로 생을 마쳐버리면 어쩌나, 이런 두려움에 오랜 세월 시달려왔다. 그럴수록 그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예술에 몰두했고, 그가 세상에 드러낸 작품 모두가 자기 삶에 대한 두려움과 치열하게 맞서 싸운 흔적들이었다. 그가 삶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강했으면, 그 힘들다는 코카인 중독마저 이겨내고 건강한 삶을 되찾았을까.
자신의 삶이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후에도,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들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마주하여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길 멈추지 않았다. 그의 노래 “ "Heroes" ”가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는 데 한몫 해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그것은 그가 자신이 속한 사회에 충실함으로써 만들어낸 여러 결과 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서 역사에 남아있다. 그렇게 보위는 자기 삶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사회에도 끊임없이 충실했다. 그가 그토록 삶에 충실하여, 예술로써 세상에 도전하기를 멈추지 않고, 거기에 진심을 다해 몰두할 수 있었던 건, 역설적으로 자신의 삶도 언젠간 죽음에 이르리라는 걸 늘 기억하며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앨범은 죽음을 받아들이는 보위의 자아와, 죽음에 저항하려는 보위의 자아, 이 두 자아가 서로 바쁘게 대치하며 서사를 이끌어나간다. 자신은 이 세상에 살면서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쳤다고 체념하는 정서. 그리고 자신은 아직 많은 걸 하고 싶고, 많은 걸 해낼 수 있는데, 왜 지금 죽을 수밖에 없느냐고 울부짖는 정서. 이 두 정서가 바쁘게 교차하며, 본 앨범 특유의 다채로운 사운드와 복잡한 감성을 자아낸다. 절대자마저 굴복시키고 얻어낸 죽음이지만, 그 죽음의 상자를 막상 열어보니, 자신이 각오했던 것보다 훨씬 두려운 것들이 들어있었던 것에 대한 공포. 자신의 삶도 언젠가 자신의 작품 “... Ziggy Stardust ...”처럼 종말을 맞이하리라는 걸 늘 명심하고 있었지만, 막상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니 두려움을 미처 떨쳐내지 못하는 모순. 그러나 이런 모순도 그가 삶에 대한 애착이 강했고, 그런 만큼 삶에 충실했기 때문에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리라.
■ 보위의 죽음은 보위의 삶을 닮았다
나는 이 앨범을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우선 첫 번째 부분을 표현한 곡들부터 살펴보자. 1번 트랙 “★(Blackstar)”와 3번 트랙 “Lazarus”는 보위가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그린 곡들이다. 특히 1번 트랙 “★”는 10분 가까운 대서사시로 전개되는데, 그 긴 시간 동안 자신의 삶을 정의 내린다. 하지만 그 정의마저도 모호한 결론만을 남기고 떠날 뿐이다. 이 곡에는 심각하고 어두운 분위기로 전개되는 시작부와 결말부가 있고, 상대적으로 밝은 사운드와 편안한 멜로디로 전개되는 중반부가 있다. 시작부에선 죽음에 대한 공포, 그것을 오로지 혼자서만 맞이해야 하는 것에 대한 고독 등을 그리고 있지만, 중반부에서는 그런 공포와 고독을 모두 녹여버리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농담들을 지껄인다. 자신의 삶과 죽음마저 희화화시키길 주저하지 않는 용감한 모습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시작부에 드리웠던 어둠은 서서히 농담들을 집어 삼키고, 다시 보위에게 고독을 불러일으킨다.
보위는 왜 자신을 “Blackstar”라고 정의했을까. 검은 별, 검은색은 사실 색이 아니다. 색이란 빛이 있어야 색인데, 검은색은 빛이 없어야 검은색이기 때문이다. 자신은 아무런 색도 가지지 않은 별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보위는 살면서 여러 가지 빛을 내뿜으며 살아왔다. 지기 스타더스트(Ziggy Stardust), 알라딘 새인(Aladdin Sane), 핼로윈 잭(Halloween Jack), 씬 화이트 듀크(The Thin White Duke) 등 자신이 거쳐 간 수많은 페르소나 다른 말로 하자면,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둔 수많은 부캐들이 그걸 증명한다. 이 부캐들은 각자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보위의 삶을 더욱 다채로운 빛으로 꾸며주었다. 하지만 보위는 이들이 내뿜은 여러 빛 중 어느 하나에 온전히 속할 수가 없었다. 그가 계속해서 새로운 부캐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이유일 터.
다시 말해, 그가 한 가지로 정할 수 없는 여러 빛을 내뿜었던 탓에, 역설적으로 그 어떤 빛도 가질 수 없는, 그야말로 검은 별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어떤 빛도 온전히 가지지 않았기에, 자신을 향해 온갖 오해들이 날아왔지만, 그 오해들마저도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꾸며주었노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신의 삶을 긍정한다. 자신의 이름을 처음 세상에 알린 노래 “Space Oddity”의 주인공인 톰 소령처럼, 보위는 자신의 삶이라는 우주 속을 부유하며, 어느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끝도 없이 떠돌아다녔다. 정처 없는 그의 삶이 애처롭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보위 본인은 전혀 자신의 삶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 삶이라서 더욱 아름다웠노라 노래한다. 하지만 그랬던 보위의 삶도 끝을 맞이하게 되었다. 끝이 보이지 않았던 모험이 이제는 “Blackstar” 안에서 끝을 맞이할 때가 온 것이다.
3번 트랙 “Lazarus”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1번 트랙 “★”의 뮤직비디오에서 등장한 우주복을 입고 있던 해골을 다시 만날 수 있다. 그 해골은 보위가 악보를 작성하는 도중에, 보위 책상 위에 얹어져 보위의 곁을 지키고 있다. 보위는 자신이 “Oh I’ll be free, Just like that bluebird.(파랑새처럼 자유롭게 될 거야.)”라고 말하지만, 곧바로 다음 문장에선 “Ain’t that just like me.(나답지 않네.)”라며 한탄을 내뱉는다.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려는 자세와 여전히 삶에 대한 미련이 남았음을 드러내는 한탄이 바쁘게 뒤섞인다. 이 노래 제목에 붙여진 “Lazarus(나사로)”는 신약성서에서 예수의 권능으로 부활한 인물을 뜻하는데, 어쩌면 자신의 죽음이 영원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제목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죽음이 또 다른 삶을 향해 가는 관문이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았던 건 아닐까. 악보를 작성하면서 자기 곁에, 톰 소령을 닮은 해골을 놓았던 건, 우주를 끝도 없이 떠돌던 정처 없는 자신의 삶을 다시 되살리고 싶었던 소망의 발현은 아니었을까.
■ 두려움에 맞서는 익살
이제 보위가 자신의 죽음에 맞서 싸우는 부분을 살펴보자. 2번 트랙 “'tis A Pity She Was A Whore”과 4번 트랙 “Sue (Or In A Season Of Crime)” 그리고 5번 트랙 “Girl Loves Me”를 예로 들 수 있다. 사실 보위가 자기 삶에 다가온 두려움, 세상에 만연한 재앙들에 맞서 싸우는 수단은 언제나 익살이었다. 그것은 세상의 종말을 노래하던 보위의 대표작 “... Ziggy Stardust ...”에서도 잘 드러난다. 보위 노래라고 전부 밝고 신나기만 한 건 아니지만, 보위의 가장 어둡고 심각한 노래마저도 그 안에 익살이 숨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앨범에서 죽음과 맞서 싸우는 보위의 모습도 그와 같다. 사실 보위의 의도는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 그저 본인은 평소 자신이 꾸준히 해오던 걸 했을 뿐인데, 이런 노래들이 “★”와 “Lazarus” 같은 노래들과 같은 앨범에 수록되어 있어, 내가 괜히 과장된 해석을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이러나저러나, 이런 노래들은 보위 자신이 죽음을 앞두고 있음에도, 아직도 자신은 건재하다는 걸 과시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2번 트랙 “'tis A Pity She Was A Whore”은 죽음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룬 본 앨범에 수록되어 있음에도, 듣고 있으면 그 흥겨움을 도무지 부인할 수가 없다. 헤비메탈(Heavy Metal)을 하드 밥(Hard Bob)으로 재해석한 것 같은 이 곡은 삶의 가장 역동적이고, 경쾌한 모험의 순간을 그려내고 있다. 이 곡에선 “Whore”를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지만, 어쩌면 이것은 자기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 Ziggy Stardust ...” 앨범 속에서 자신을 “Rock 'n' rollin' bitch(로큰롤 썅년)” 혹은 “Lady Stardust(숙녀 스타더스트)”라고 표현했던 모습과 이 노래가 왠지 겹쳐보였기 때문이다.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도, 자기 삶의 가장 역동적인 부분을 노래하는 그의 의지가 경이롭다.
4번 트랙 “Sue (Or In A Season Of Crime)”와 5번 트랙 “Girl Loves Me”는 2번 트랙을 두 개로 쪼갠 것 같은 구성을 각자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4번 트랙은 2번 트랙에서 격정성만 쏙 빼서 가져온 것 같고, 5번 트랙은 2번 트랙에서 익살만 쏙 빼서 가져온 것 같다. 4번 트랙 “Sue”는 2번 트랙보다도 훨씬 과격하고 어두운 사운드를 선보인다. 무거운 톤을 가진 기타 연주가 사납게 으르렁대는 동안, 몽환적인 질감이 그 뒤를 훑고 지나간다. 보위의 목소리는 이런 사운드를 조율하며, 곡 특유의 음울하고도 역동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4번 트랙의 광기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Girl Loves Me”의 서늘한 익살만이 남겨진다. 5번 트랙은 차가운 사운드가 섬뜩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와중에, 보위의 고의적인 삑사리가 반복되며 괴기스러운 유머를 발산한다. 댄스파티가 열리는 클럽에서, 가장 구석지고 어두운 자리에 앉은 사람들끼리 술에 잔뜩 취해 내뱉는 농담들을 연상시킨다.
이때까지 광기와 익살이 모두 휩쓸고 지나갔으니, 이제 남은 것은 담백한 애수뿐인 것 같다. 6번 트랙 “Dollar Days”는 그렇게 시작된다. 자신은 아직도 이런 인생의 역동성을 다시 맛보고 싶은데, 이제는 죽음이 자기 앞에 다가온 것을 실감했으니, 그 모든 것이 덧없노라 한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한탄도 잠시, 7번 트랙 “I Can't Give Everything Away”는 밝고 웅장한 사운드로 곡의 시작을 알린다. 이런 밝은 분위기와는 다르게, 보위가 반복해서 읊조리는 “I Can't Give Everything Away.(모든 걸 다 줘버릴 수는 없어.)”라는 말은 왠지 쓸쓸하게 들린다. 마치 이 세상에 남기고 싶었던 게 훨씬 더 많았는데, 미처 다 줘버릴 수는 없어서 안타깝다는 듯이, 반복해서 읊조리는 이 문장을 듣고 있으면 내 머리에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 두려움마저 극복하고 떠나버린 보위
그의 아쉬움 섞인 한마디에, 내가 감히 답변을 달자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우리에게 충분히 많은 것을 주고 떠났노라고. 당신의 살아있는 육신을 직접 마주하지 못하는 건 여전히 아쉽지만, 당신의 작품들은 내가 죽을 때까지 결코 내 안에서 죽지 않을 것이고, 수수께끼 같았던 당신의 삶이, 당신의 삶을 닮은 예술이, 내 삶 속에서 끝도 없이 새로운 모습으로 피어나게 될 거라고. 그러니 이 땅에 단 한 톨의 아쉬움도 남기지 말고 편히 쉬어달라고. 물론, 당신은 이미 잘 쉬고 있겠지만.
모든 게 수수께끼 같았던 데이비드 보위의 삶. 하지만 정작 보위 본인은 자신의 삶을 굳이 전부 해석하려하지 않았다. 자기 삶에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지에 대해 화를 내고 좌절하는 것보다, 그 안에서 단지 춤을 추고 싶었던 것 같다. 보위가 수도 없이 남긴 수수께끼 같은 가사들은 그저, 어떤 의미를 표현하려는 것보다도, 자신의 삶이 춤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늘어놓은 농담에 더 가깝게 들린다. 보위의 음악들은 정확하게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그 생명력이 빛을 잃지 않는 것 아닐까. 그래서 더욱 세월이 흐를수록 새로운 빛을 입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것 아닐까. 자신의 죽음을 “Lazarus”에 비유한 것은 어쩌면 이 때문이리라. 자신은 이런 수수께끼 같은 삶일지라도 언제나 충실하려 노력했고, 자신이 삶에 충실했던 동안 세상에 남긴 자신의 작품들이, 자신에게 어떻게든 새로운 생명을 부여할 것이라는 어렴풋이 다가오는 희망을 노래했던 것이다. 그런 희망이 마지막 트랙 “I Can't Give Everything Away”의 밝은 사운드로 표현된 건 아니었을까.
나도 보위의 삶의 한 조각을 떼어다가 그와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보위와는 분리된 또 하나의 개체이고, 또 하나의 개성을 가진 삶이겠지만, 이런 나일지라도 보위의 삶의 한 조각 정도는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내 염원이기도 하고. 이 앨범을 듣고 나서, 끝내 내 머리에 가장 많이 울려 퍼지는 문장은 바로 이것이다.
“Look up here, I’m in heaven. I’ve got scars that can’t be seen. I’ve got drama can’t be stolen. Everybody knows me now.
여기를 봐봐, 난 천국에 있어. 난 보이지 않는 상처들을 갖고 있지. 난 뺏길 수 없는 드라마를 갖고 있지. 지금 모든 사람들이 날 알고 있어.”
그 누구에게도 뺏길 수 없는 드라마를 갖게 되었다는 것, 다시 말하자면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독보적인 인생을 살았다는 것, 이것만큼 자신이 자기 삶에 충실했다는 것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또 있을까! 내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 나는 보위처럼 이렇게 당당하게 내 삶을 표현할 수 있을까. 보위만큼 유명해지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뺏길 수 없는 드라마를 갖고 있다고, 그 드라마를 만든 건 내 상처들이라고, 당당하게 외치고 싶은 건 나도 마찬가지다.
모르겠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몫을 하루하루 해낼 뿐이다. 일도, 사랑도, 휴식도 모두 충만하게 누리려고 노력할 뿐이다. 다만 보위가 남긴 노래들을 듣고 있으면, 보위가 나를 격려해주는 것 같다. 내가 가장 나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삶이 언제나 계획대로 흘러가지만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인생이란 그래서 더 재밌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 인생의 재미를 놓치지 않고, 수수께끼 같은 인생 속에서도 즐겁게 춤추기를 멈추지 않았던 보위처럼, 내 삶도 언제나 보위와 함께 춤출 수 있기를 소망해본다. 그러다 보면, 나도 내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 보위처럼 저렇게 외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난 보이지 않는 상처들을 갖고 있고, 난 뺏길 수 없는 드라마를 갖고 있다고.
* 가사 해석 출처 : DanceD 님 (http://danced.co.kr/xe/)
트랙리스트
1. ★
2. 'tis A Pity She Was A Whore
3. Lazarus
4. Sue (Or In A Season Of Crime)
5. Girl Loves Me
6. Dollar days
7. I Can't Give Everything A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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