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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 Hesitation Marks

인생명반 에세이 68: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 Hesitation Marks

 

내가 나아질 수 있는 건, 당신이 있기 때문에

 

■ 인생명반 5주년, 백 회를 기념하며

2017년 7월 28일 새벽 1시, 나는 네이버 블로그에 인생명반 첫 글을 게시했다. 그로부터 오늘 2022월 7월 28일 딱 5주년을 맞이했다. 게다가 이 글은 인생명반 에세이, 스페셜을 모두 합쳐 딱 백 번째 글이 된다. 누군가에겐 어떤 글 연재가 5년이나 되었는데, 겨우 백 회에 도달했다는 사실이 우습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나도 이 연재를 꾸준히 지켜봐준 독자들에게 더 많은 글을 보여드리지 못해서 송구스러운 마음은 있지만, 그래도 인생명반이라는 이름으로 이제 백 개의 글이 쌓였다는 사실에 기쁜 마음이 훨씬 더 크다. 이 모든 건 이 연재를 지켜봐준 독자 여러분 덕분이다. 여러분께 감사를 전하고 싶다.

 

백 회엔 뭔가 특별한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 고민을 좀 했었다. 원래는 “내 인생 최고의 명반 10선”을 해볼까 준비했지만, 역시 그런 특집을 했다간, 저번 글에서 쓴 말을 다시 우려먹는 글이나 되어버릴 것 같아, 이 기획을 접게 되었다. 10선 안에 들지 않은 앨범들과 뮤지션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생길 것 같고. 결국 고민 끝에 나온 것이 바로 이것이다. 나에게 이 연재를 시작하도록 만든 장본인,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얘기를 하는 것.

 

나는 현재 소설가로 활동 중이다. 독자들 중에 이 사실을 아는 독자가 몇이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디 다른 매체에서 원고료 받아가며 연재를 했던 건 아닌데, 나름대로 내가 세운 출판사에서 내가 쓴 소설을 책으로 만들어, 서점에 내놓고 독자들을 만나는 활동을 펼친 이력이 있다. 현재는 두 번째 장편소설을 집필 중이다. 올해 안으로 두 번째 장편소설을 책으로 만들어 독자들에게 선보이는 것을 목표로 쓰고 있다. 나는 언제나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은 마음, 그 중심에는 언제나 트렌트 레즈너(Trent Reznor)가 있었다.

 

 

▲ 트렌트 레즈너(Trent Reznor)

■ 내 예술 세계의 아버지

트렌트 레즈너, 그는 누구인가. 나인 인치 네일스의 유일한 멤버였던 사람이다. 내가 나인 인치 네일스의 음악 속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트렌트 레즈너가 내 예술 세계를 차지하는 비중도 높아져갔다. 아니, 어쩌면 그로 인해 내 예술 세계는 비로소 탄생했으리라. 트렌트 레즈너, 그는 진정 내 예술 세계의 아버지다.

 

이 연재 첫 번째 글의 주제가 “The Downward Spiral”로 정해진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나는 이 앨범을 접하기 전에는 음악, 더 나아가 예술이라는 게 이토록 내 마음에 깊이 들어올 수 있다는 걸, 예술이 내 인생 전체를 물들일 수 있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그 어떤 음악도 이 앨범만큼 실감나고 깊은 감상을 전해주지 못했다. 이 감상은 자기혐오와 자살충동에 시달리던 어린 나에게 유일한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나는 자라면서 꿈을 갖게 되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안식처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음악으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트렌트 레즈너처럼 될 수 없음을 단번에 예감했기에, 나는 음악이 아닌 다른 길을 찾아야 했고, 내가 정한 길은 소설의 길이었다. 소설가로서, 예술가로서, 길을 정하고 마음을 다지기 위해 썼던 글이 바로, 인생명반 첫 번째 글이었다. 나의 예술이 출발한 지점을 다시 돌아보기 위해 썼던 거였다. 이 글이 예상 외로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나는 이런 글을 몇 가지 더 써보기로 하고 그게 쌓이고 쌓여서 지금에 이르게 된다.

 

5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는데,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중에는 내가 어릴 적 실컷 앓았던 자기혐오와 자살충동을 다시 불러올 만큼 괴로운 경험도 있었다. 그런 괴로운 경험을 할 때마다 나는 다시 나인 인치 네일스 음악을 찾았고, 잠시 그가 만든 음악에 기대며 안식을 느꼈다. 하지만 예전 같을 수는 없었다. 내게서 떠나갔다고 생각한 그 자기혐오, 그 자살충동이 다시 찾아오는 건 결코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다. 나인 인치 네일스의 음악은 이런 나를 달래주긴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내가 이 음악을 듣기 때문에, 과거에 겪은 고통을 똑같이 겪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 3번 트랙 “Came Back Haunted” 라이브

■ 그를 좋아했던 이유가 내게는 독이었다

나인 인치 네일스는 훌륭한 음악이지만, 내게는 언젠가 벗어나야 할 마음의 독(毒)이라는 생각마저 했었다. 내가 그의 음악에 감동과 안식을 느낀 이유가 결코 건강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유일신이라도 된 것처럼, 내 마음을 전부 읽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게 만들 정도로, 그의 음악은 내 마음을 정확하게 대변하고 있었다. 그의 음악은 내게 그런 상태에서 빠져나오라고 강요하지 않았고, 내게 더 나아질 수 있다며 애써 위로하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의 음악을 사랑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음악이 두려웠다.

 

이런 두려움 때문에 나인 인치 네일스를 예전처럼 마음 편히 들을 수가 없었다. 이미 빠져나왔다고 생각한 마음의 고통이 혹여, 이 음악 때문에 다시 생기는 건 아닐까 싶은 두려움 때문에. 하지만 음악은 잘못이 없다. 예술은 잘못이 없다. 이 두려움은 온전히 내 마음이 부른 것이었다. 그건 알지만, 이미 마음에 박혀버린 두려움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한동안 나인 인치 네일스 좋아하기를 두려워했고 멀리했다.

 

그의 음악을 두려워하며 멀리하던 시기도, 지금 돌아보면 그저 웃으며 추억할 수 있다. 이젠 그 어떤 음악도 나를 두렵게 만들 수 없다는 걸 안다. 내가 그의 음악을 두려워했던 건, 내가 진정으로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아졌다고 착각했던 순간이 있었을 뿐이었다. 이젠 내가 정말로 나아졌다는 걸 안다. 이젠 그런 자기혐오와 그런 자살충동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나인 인치 네일스 음악도 저 흔한 사랑 이야기, 이별 이야기 받아들이듯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에 흉터는 남았지만, 그 흉터는 더 이상 나를 아프게 하지 않는다. 이토록 잔뜩 나아진 내 모습에 도취되던 나날을 보내던 중, 나를 사로잡은 앨범 하나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오늘 주제로 다룰 앨범 “Hesitation Marks”다.

 

■ 무엇이 자살을 망설이게 했을까

내가 언젠가 인생명반 글을 통해 “Hesitation Marks” 앨범을 두고 싱거운 앨범이라 평했던 적이 있다. 이제는 그 평을 번복한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나는 “Hesitation Marks” 앨범이 나에게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더욱 정확하게 해석하고 음미할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영어 가사를 더 잘 해석하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이 앨범이 뿜어내는 연주와, 음악으로 형성한 감성이 내 마음에 훨씬 선명하게 새겨졌다는 거다.

 

놀랍게도 이 앨범은 트렌트 레즈너 본인이 자기혐오에서 벗어나 점점 나아지는 과정을 기록한 앨범이었던 거다. 사실 이런 주제 정도는 알고 있었으나, 레즈너가 이 주제를 음악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내게는 오랜 시간 별로 와 닿지가 않았다. 내가 직접 나아지는 걸 경험하고 나서 이걸 들으니, 이 앨범이 어째서 이런 사운드를 갖게 되었고, 이 앨범의 흐름이 왜 이렇게 구성되었는지, 그 과정이 어떤 치열함을 품고 이런 형태로 표현되었는지, 더 깊이 느끼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 2번 트랙 “Copy of A”

이 앨범은 트렌트 레즈너 1인 체제로서 존재했던 나인 인치 네일스의 마지막 정규앨범이다. 그 이후부터는 애티커스 로스(Atticus Ross)가 정식 멤버로 참여하며, 2인조 나인 인치 네일스가 된다. 그 이후의 앨범들도 나인 인치 네일스 음악의 정체성을 잘 계승하고 있으니, 1인 밴드가 아닌, 2인조 밴드 나인 인치 네일스의 행보 또한 그 가치가 충분하다. 그래도 역시 이 앨범은 트렌트 레즈너 1인 체제로서 발표했던 앨범들을 총망라한 인상을 주기에, 나인 인치 네일스 음악을 사랑하는 청자들에게 독보적인 가치를 줄 수 있으리라.

 

앨범의 제목부터 보자. 목을 매달아 자살한 사람의 시체가 공중에서 빙빙 도는 모습을 표현한 문장을 제목으로 삼은 게 “The Downward Spiral”이라면 “Hesitation Marks” 앨범은 즉, 자상으로 자살을 시도한 자해 흔적, 주저흔을 뜻한다. 앨범 표지를 보면, 벽은 사람의 팔뚝을, 그 위에 얹어진 빨간 천은 상처를 연상시키도록 만들어진 걸 볼 수 있다. 이 앨범 속 화자가 자살을 하지 못하도록 망설이게 만든 건 무슨 계기였을까. 무슨 힘이었을까.

 

■ 소외, 자기혐오, 자살충동

레즈너는 우선 자기에게 돌아온 자기혐오를 먼저 묘사한다. 1번 트랙 “The Eater of Dreams”는 툭툭 끊기는 고음들이 청자의 고막을 두드리며 긴장감을 자아낸다. 그 긴장감을 바쁘게 비집고 들어가는 건 2번 트랙 “Copy of A”의 치밀한 박자들이다. 바쁜 진행 속에서도 이토록 치밀한 구성을 쌓아가는 박자들이 경이롭다가도, 그 사이를 끼어드는 변주들은 치밀한 박자들은 무너뜨리려고 시도하는데, 그 시도들은 번번이 무위로 돌아간다. “Copy of A”는 현대인의 소외에 관한 노래다. 감성도 취향도 예술도 모두 바쁘게 복제를 거듭할 뿐인 현대 사회에서, 나의 정체성은 점차 자리를 잃어간다. 복사에 복사를 거듭하며 생산과 생산의 산더미를 쌓아가는 현대 사회, 그런 복사의 산더미 앞에서 나는 언제나 초라해질 뿐이다.

 

복사의 산더미는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고, 나 또한 저 산더미 속에 파묻혀버릴 것 같다. 오직 나만의 감성, 나만의 취향, 나만의 예술이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결국 저 속에 파묻혀서 복사에 복사를 거듭하고, 생산에 생산만을 거듭하게 될 것 같다. 나만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결국 복사에 복사를 거듭하는 공산품일 뿐이다. 그렇게 나의 자아는 저 속에 파묻혀 영영 분실하게 되어버릴 것 같다. 내가 소중하게 지켜온 그 감성, 취향, 예술 등이 결국 소외를 맞이할 뿐이라는 걸 느낀 후에, 자기혐오가 다시 나를 삼킨다.

 

3번 트랙 “Came Back Haunted”는 현대 사회의 소외 현상을 깨달은 화자가 돌아온 자기혐오를 맞이하는 장면을 그린 곡이다. 그토록 열심히 감성을 키우고, 그토록 예술을 만들었는데, 자기혐오와 자살충동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토록 노력했는데, 그런 나의 노력들이 결국 뭐가 진짜인지도 알 수 없게 될 정도로 복제되고 복제될 뿐이라니, 허무하다. 이런 허무한 것들에 시간을 쏟은 나 자신이 싫다. 삶이 온통 허무하니까 그저 죽고 싶을 뿐이다. 징그럽게 굴러가는 베이스, 그 위를 빠르게 훑는 음색의 칼날, 실컷 일그러진 소리들, 위협의 신호처럼 바쁘게 뛰어오는 붉은 소리들. 노래가 끝나면서 거슴츠레 흘러나오는 “The Downward Spiral”의 멜로디는 이것이 예전에 내가 한 번 겪은 적 있는 바로 그들이라는 걸 은유한다.

 

 

▲ 5번 트랙 “All Time Low” 라이브

■ 심연에서 빠져나오려면

4번 트랙 “Find My Way”의 바탕은 무겁고 느리다. 나의 심연을 닮았다. 그 심연에 밝은 소리들이 규칙적으로 끼어든다. 이 심연에서 빠져나오고 싶은 나의 바람과, 이곳을 정말 빠져나올 수 있을까 싶은 의문을 동시에 품은 내 마음을 대변한다. 자기혐오와 자살충동의 반복은 이제 지겹다. 이 지겨운 굴레를 벗어나려면, 이제는 현실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나는 이제 그토록 증오했던 신(神)의 이름을 불러본다. 나의 현실을 초월하기 위해선, 한 때 나의 적이었던 신의 이름이라도 간절하게 찾아야 하리라. 나를 이렇게 만든 게 신 당신이냐고 원망도 해보지만, 역시 지금 내가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존재는 신뿐이기에, 결국 그에게 기도한다. 기도를 거듭하지만, 나의 의심과 그 의심이 부르는 심연은 더욱 짙어져만 간다.

 

5번 트랙 “All Time Low”는 나의 의심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예전 행위들을 반복하는 나의 모습 같다. 얄팍한 강박에 불과한 퇴폐 행위들을 마치 대단한 현실 초월 행위인 것처럼 부풀리는 어리석음을 반복한다. 나는 내가 반복하는 이 행위들이 어리석다는 걸 알면서도 일단은 즐겁고, 잠깐은 황홀하다. 곧 무너질 유희의 성읍인 줄 알면서도, 나는 그 안에서 춤추기를 멈출 수가 없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에게 “Disappointed” 실망하고선, “Everything” 내가 나아지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했노라고 소리친다. 그렇게 도달한 곳은 8번 트랙, 나의 “Satellite(위성)”이다.

 

한 때 나는 내 머리 위로 떠다니는 저 위성이 소름끼치게 싫었다. 여전히 싫다. 가끔씩 무섭기도 하다. 나를 바라보는 저 위성의 시선은 나의 심연을 닮았다. 내가 신에게 기도하면서 느낀 의심을 닮았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저 위성은 다름 아닌 내가 원해서 쏘아올린 것임을. 나는 위성을 두려워하면서도, 그 두려움을 이겨내려 허세를 부려본다. 나는 나의 위성을 노려보며 말한다. 너는 나의 일부라고.

 

위성은 나에게 이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알려주었다. 9번 트랙 “Various Methods of Escape”에서 나는 외친다. 길이 왜 이토록 복잡하고 어려우냐고. 위성이 비춰준 길이라도 결국 그 길을 걷는 건 나의 다리이며, 나의 의지일 뿐이다. 이 길을 가는 내 마음은 여전히 심연에 머무르고, 의심은 남아있지만, 그래도 나는 이 어려운 길을 조금씩 걸어가고 있다. 탈출을 향한 나의 여정은 비장하며 웅장하다. 그렇게 탈출을 향한 여정을 이어나가는 중, 나를 오랫동안 괴롭히던 그들이 나를 다시 덮치려고 쫓아온다. 나는 그들로부터 “Running” 도망치기 바쁘다. 내가 그들로부터 도망치는 모습은 마치 어설픈 춤 같아서, 나조차 헛웃음이 나올 것 같다.

 

 

▲ 11번 트랙 “I Would for You”

■ 내가 나아질 수 있는 건, 당신이 있기 때문에

내가 이토록 힘들게 심연을 빠져나와야 할 이유가 뭘까. 의심은 다시 내 마음을 덮친다. 이제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이렇게 다시 의심이 나를 방해하다니. 탈출구를 앞두고 나는 다시 나 자신 안에 자라는 의심과 싸움을 시작한다. 이 거친 싸움 속을 헤쳐 나갈 수 있을 방법을 찾았다. 그건 모두 당신이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있기에, 나는 이 심연을 벗어나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니, 내 마음이 온통 밝아지는 것 같다. 그러나 밝아지는 마음도 잠시, 의심은 다시 내 마음을 바쁘게 울린다. 나는 다시 당신을 생각하며 의심을 물리친다. 내 마음 안에서, 자라나는 의심과 당신의 형상이 최후의 결전을 벌인다. 싸움은 격렬하다. 나는 이 싸움에서 승리할 것이다. “I Would for You” 당신을 위해 나는 해낼 것이다.

 

물리쳤다고 생각한 나의 마지막 의심은 더욱 무섭고 파괴적인 모습이 되어 돌아왔다. 그것은 나였다. 내게 있어 가장 무서운 괴물은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렇게 나는 과거의 나 자신과 그런 과거를 물리치려는 나, 이렇게 “In Two” 둘로 나뉘었다. 내가 나 자신과 싸움을 거듭하면서, 거칠게 이리 저리 얽히다보니 어느 쪽이 진짜 나 자신인 줄도 모르겠다. 나와의 싸움은 마치 거울을 보며 싸우는 것 같아서, 자기혐오와 자기학대를 반복하는 게 과거의 내 모습인지, 지금 내 모습인지 모르겠다. 싸움이 가장 더럽고 격렬한 모양으로 전개될 무렵, 툭 끊어져버리듯 모든 게 끝나버렸다.

 

당신의 형상을 따라가면, 나는 이 모든 걸 극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나는 더 나아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아직 여기에 남아버렸다. 그래도 모든 희망이 떠난 건 아니었다. 이번엔 왠지 당신의 형상이 아니라, 진짜 당신이 내게 살며시 다가와 손을 내민다. 둘로 나뉜 나 자신과의 싸움이 나 자신을 온통 망가뜨릴 만큼 격렬했기에, 나는 다시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그래도 이렇게라도 당신을 만나서 다행이다. 나는 나를 향해 내민 당신의 손을 살며시 잡으며, 낮고 깊게 읊조린다. “While I'm Still Here” 내가 여기 있을 동안, 좀 더 내 곁에 머물러달라고. 그러나 당신 손을 잡자마자, 오히려 예상하지 못한 불안이 내 마음을 덮친다. 불안이 온통 “Black Noise(검은 소음)”으로 몰려온다. 나는 정말 이곳을 빠져나올 수 있을까.

 

■ 딱 샛별만큼만 빛나는 희망

이 앨범 “Hesitation Marks”는 나인 인치 네일스 음악답게, 상투적인 희망을 노래하지 않는다. 본인이 나아지는 과정을 그리긴 했지만, 본인이 정말로 나아진 모습은 그리지 않았다. 그저 나아지기 위해 겪어야만 했던 숱한 의심들, 그 의심들과 싸우는 과정을 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래서 더욱 깊은 격려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자기혐오를 이기기 위해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떠올리기에 이만하면 충분하다. 이런 치열한 과정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기도 하지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든 경험이기도 했기에, 이 앨범을 들으면서 나는 똑같은 일을 다시는 겪지 않으리라 다짐할 수 있다. 이 앨범은 화자에게 희망을 던진다. 하지만 그 희망이 그렇게 밝지는 않다. 그 희망은 오히려 희미하다. 그 희망은 밤하늘의 샛별만큼, 딱 그만큼만 빛난다. 밤하늘이니 해는 당연히 보이지 않고, 달만큼 밝지도 않고, 가로등만큼 밝지도 않다. 그래서 오히려 내 마음에 은은한 기운으로 스며들 수 있는 것 같다.

 

 

▲ 13번 트랙 “While I'm Still Here” 라이브

내가 나아졌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일까. 나는 이 앨범의 결말처럼 다시 불안을 맞이하게 될까. 그래도 두렵지 않다. 내 마음은 충분히 든든해졌다. 나는 그렇게 강해졌다. 다시 불안이 찾아오고, 다시 시련이 찾아와도, 나는 당신이 있기 때문에 극복할 수 있고, 새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 이 앨범의 11번 트랙 수록곡 “I Would for You”에서 말하는 You, 당신이란 과연 누굴까. 사랑하는 가족, 연인, 친구 등으로 단순하게 생각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당신의 범위를 좀 더 넓게 생각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당신은 내가 믿는 신일 수도 있고, 내 꿈에서 만난 미래의 내 모습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내가 지금과는 다른 내 모습을 상상할 수 있고, 내 곁에서 그런 상상을 할 수 있게 격려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그토록 쉽게 자기혐오에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토록 나아질 수 있었던 원동력은 분명, 의심과 실수를 거듭하는 중에도 꾸준히 글을 쓰며 나 자신의 삶을 기획하길 멈추지 않은 데 있으리라. 이런 꾸준한 글쓰기를 가능하게 만들어준 건 당연히 내 글을 보는 독자들의 몫이 컸고, 나의 독자들 중에 인생명반 독자들은 내가 글을 꾸준히 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이었기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5주년을 맞이한 오늘, 다시 한 번 여러분께 감사를 전한다. 인생명반은 앞으로도 느리지만 꾸준히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나의 가장 아픈 부분이면서, 동시에 나의 가장 소중한 꿈이 되어준 트렌트 레즈너. 그에게 다시 한 번 감사한다. 본인이 더 나아지기 위해 치열하게 분투한 과정을 이토록 훌륭한 음악으로 “Hesitation Marks” 앨범으로 남겨준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고. 그래서 이렇게 인생명반 5주년을 나인 인치 네일스 주제로 이끌어갈 수 있어서 감사하다.

 


트랙리스트

1. The Eater of Dreams
2. Copy of A
3. Came Back Haunted
4. Find My Way
5. ​All Time Low
6. Disappointed
7. ​Everything
8. Satellite
9. Various Methods of Escape
10. Running
11. I Would for You
12. ​In Two
13. While I'm Still Here
14. ​Black Noise

 

* 이번엔 특별히 작가 본인이 직접 변역한 가사 모음이 있습니다. 전문 변역가의 결과물이 아니기 때문에, 오역과 의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번역을 보고 싶으신 분은 아래 링크를 눌러주세요.

[가사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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