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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도마(DOMA) - 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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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67: 도마(DOMA) - 도마

 

눈 내린 길 위에서도 정답을 찾을 수 있는 노래

 

■ 노래와 함께하는 겨울

겨울, 외롭고 가난한 사람들에겐 더욱 힘든 계절이다. 거리엔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이지만, 이들 중 그 누구도 나를 안아주지 않을 것 같다. 타인의 온기가 가장 그리워질 겨울에 타인의 온기를 제대로 느낄 수 없다는 걸 깨달을 때면 얼마나 외로워지는가. 이럴 때 돈이라도 많다면, 맛있는 걸 잔뜩 사먹으면서 외로움을 달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금전적 여유마저 없다면, 겨울이란 얼마나 견디기 힘든 계절일까. 삶이 견디기 힘든 것이 될 때는 문득, 이 삶이 무거운 짐처럼 느껴져 얼른 벗어던지고 싶다는 생각마저 하게 된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면 문득, 자신이 위험한 상태에 처했다는 걸 깨닫고, 그래도 살아야지, 살아야지 하며, 자신을 겨우 달랜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자신을 달래는 것도 지칠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럴 때, 음악은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21세기가 되고 통신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이젠 음악이라는 것이 부자들만 즐길 수 있는 오락이 아니게 되었다. 누구나 새로운 음악을 찾고자 하는 의지와 약간의 시간만 있다면, 큰 돈 들이지 않고 저렴한 가격으로도 얼마든지 숨은 보석 같은 음악을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이에게 시와 노래는 애달픈 양식”이라 노래하던 김광석의 목소리가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여기, 비루한 현실에 지쳐가는 도중에도 나름의 빛을 내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음악이 있다. 지난 12월에 정규 2집으로 돌아온 “도마”의 이야기다.

 

도마는 멤버 “김도마”와 “거누”로 이뤄진 2인조 밴드다. 김도마가 주로 작사, 작곡 및 노래를 담당하고, 거누는 그 외 악기 연주 그중에서도 주로 기타를 담당한다. 이들이 2017년에 발표한 정규 1집 “이유도 없이 나는 섬으로 가네”는 포크(Folk)의 정석을 보여주듯, 목가적인 사운드와 담백한 목소리로 일관하는 앨범이었다. 반면 작년 12월에 발표한 정규 2집 “도마”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감지된다. 목가적이고 현실적인 사운드보다는 디지털 사운드가 많이 들어간 몽환적인 사운드를 한껏 더했다. 더 이상 이들을 포크 밴드라고만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다채로운 사운드를 들려준다. 인디 음악판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전자 음악에 탁월한 소질을 보여준 뮤지션 “카코포니” 또한 편곡에 참여해, 본 앨범에 다채로운 색깔을 더했다. 1집이 삶을 함께하는 친구가 바로 옆에서 속삭이는 느낌이었다면, 2집은 꿈속에서 만난 친구가 내 속으로 점차 스며들어 마침내 나 자신이 되어가는 느낌. 그렇게 그의 속삭임은 나의 속삭임이 되고, 그의 마음이 나의 마음이 된다.

 

 

▲ 도마 멤버. 좌측부터 거누, 김도마.

■ 북적이는 거리 속에서 문득 소외를 느낄 때

1번 트랙 “잠든 마음”은 담대하게 걸어가는 드럼 사이로 김도마의 담백한 목소리가 훑고 지나간다.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린 복잡한 마음속에 서서히 자리를 비집고 들어서는 당신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당신은 이내 복잡한 내 마음속에 완전히 스며들지 못하고 서서히 다시 밖으로 밀려나온다. “아무도 모르는 소식이고 싶어져”라고 속삭이는 도마의 목소리가 이런 마음의 풍경을 담백하게 포착해낸다. 그렇게 김도마의 목소리는 더 큰 소외 속으로 향한다. 2번 트랙 “서울”의 등장이다.

 

싱어송라이터에게 곡을 쓴다는 일은 언제나 자전적인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픽션을 쓴다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본인의 모습이 투영되기 마련인데, 이 “서울”이라는 노래는 그런 김도마 본인의 자전적 이야기가 훨씬 짙게 들어간 느낌이다. 이 곡을 만든 김도마는 본래 전북 전주 태생으로, 음악을 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서울로 상경한 배경을 갖고 있다. 하지만 꿈을 안고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상경한 사람들이 으레 그렇듯이, 김도마에게도 서울은 쉬운 곳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자신의 구원을 갈망할수록, 자신만큼이나 간절하게 구원을 바라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보였고, 그런 목소리들을 목도하게 될수록, 본인의 목소리가 서울을 걷는 수많은 인파 속에 흔한 목소리로 묻혀버리는 걸 느끼게 된다. 소외는 점차, 서울을 살아가는 본인의 주된 감상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도마는 포기하지 않고 그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목가적 사운드로 시작해, 점차 몽환으로 흩어지는 사운드가 인상적이다. 그 사이로 곡을 조율하는 김도마의 담백한 목소리는 바쁜 현실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으려는 고요하고도 단단한 몸짓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 몸짓을 유지하는 것이 여전히 쉽지는 않았는지 “고요함은 가격이 오르네”라는 한탄을 무심히 툭 뱉는 모습은 청자에게 안타까운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이 노래에서 표현하는 소외는 도시에 묻혀가는 얼굴을 그린 본 앨범의 표지를 무척 닮았다.

 

김도마의 목소리는 점차 나의 목소리가 되어간다. 그의 목소리가 외면에서 점차 내면으로 향하는 까닭이다. 3번 트랙 “거리의 거리”에서는 점차 짙어지는 몽환적인 사운드와 더불어, 외면에서 내면으로 더욱 깊게 침투하는 가사를 통해, 가수와 청자의 정서적 합치를 시도한다. 4번 트랙 “웅크리고 있는게 편했다”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외부 세계에서 잔뜩 겪은 삶을 위한 투쟁에 지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불을 끄고 죽어 있었다”라는 말을 반복해서 읊조리며, 삶에 지쳐 이젠 죽음마저 바라는 마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가사와는 반대로 3번 트랙에 비해 훨씬 밝고 활기 찬 사운드를 선보이고 있어, 마치 화자의 죽음을 향한 갈구가 그리 오래가지 않아 물러날 것이라는 풍자 섞인 암시를 보여주는 것 같다.

 

5번 트랙 “아무도 모르는 춤을 춘다”가 이어진다. 4번 트랙에서 보여준 발칙한 암시는 점차 다시 외부 세계로 향하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으로 변한다. 화자는 죽음을 갈구하는 걸 멈추고서, 다시 살기 위해 몸부림친다. 화자는 자신의 몸부림을 춤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그게 정말 춤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다. 자신은 이렇게 필사적으로 세상을 향해 구호(救護)를 바라는 몸짓을 내보내고 있는데,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몸짓을 춤으로만 보며 웃고 즐기기만 할 뿐이다. 그렇게 자신의 구호를 바라는 몸짓은 그 누구도 진짜 뜻을 알지 못하는 춤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화자 본인도 이젠 자신의 몸짓이 구호를 요청하는 몸짓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몸짓을 바라보는 것처럼, 그저 춤에 불과한지 헷갈리게 되어버렸다. 그 몸짓이 구호를 바라는 것이든, 아니면 그저 춤에 불과했든, 화자에겐 이제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아무도 그걸 보지 않을 때조차도, 버릇이 되어버린 그 몸짓을 멈출 수는 없었다.

 

 

▲ 2번 트랙 “서울”

■ 이젠 나의 정답이 된 그대를 향해

아무리 반복해도 닿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구호 요청은 점차 그 대상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그 대상은 사랑이다. 그러나 사랑마저도 쉬워보이진 않는다. 6번 트랙 “화양연화”는 아무도 보지 않을 것 같은 자신의 몸짓을 “당신과 춤을 추고 싶어”라는 말과 함께 구애의 춤으로 진화시켜나간다. 그러나 그 구애의 춤마저도 상대에게 닿기 힘들어 보인다. 어찌 닿기가 힘들었는지, 하고 싶었던 말, 전하고 싶었던 뜻은 점차 마음에 쌓여 가는데, 그것들을 미처 구애의 대상에게 쏟아낼 수 없어서 “나보다 말을 더 잘하는 빗방울”들에게 대신 쏟아내기에 이른다. 쏟아지는 비는 나의 눈물을 닮아, 그리움이 부르는 슬픔이 되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를 떠올릴 때 어렴풋이 느껴지는 행복이 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이에게 미처 다 전하지 못한 온갖 기쁨과 슬픔이 쏟아지는 비가 되어 내 마음을 울린다.

 

빗방울들에게 자신의 수많은 말들을 쏟아내는 동안, 사랑은 오히려 더욱 깊어져간다. 느리고 끈적끈적한 진행 속에 변화를 거듭하는 다채로운 사운드는 이런 화자의 복잡한 내면을 대변한다. “당신과 춤을 추고 싶어”라고 깊게 읊조리는 목소리는 반복을 거듭하며 감정의 깊이를 더한다. 그 주변을 떠도는 소리들은 사랑을 닮아 분홍빛을 냈다가, 이내 자홍빛이 되기도 하고, 청자색이 되기도 하다가, 결국 검게 되어 갑작스레 뚝 끊겨버린다.

 

이토록 방황을 거듭하던 화자가 마침내 마음을 정하게 된다. 7번 트랙 “겨울 발라드”는 아직은 막연하지만 충분히 단단해진 희망을 조심스럽게 노래한다. 자신이 바라는 정답이 확고하다면, 길을 잃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결국 바라던 정답에 닿게 될 거라는 그런 희망이다. 자신조차 자신이 가는 길에 대해 모든 걸 알지 못하지만, 그래서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이지만, 어쨌든 자신은 그렇게라도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정답만 확실히 정해놓는다면 “눈 감고도” 나의 정답을 “만날 거”라는 담대한 다짐을 읊조린다. 눈이 우리 마음에 이어진 길을 덮고, 우리의 시야를 흐리게 만들지라도, 우리는 길을 잃어도 그 속에서 춤을 출 수 있다고, 우리는 쉽게 쓰러지지 않는다고, 우리는 반드시 정답을 만날 거라고, 우리의 희망은 이토록 단단하며 확고하다고.

 

“그리고” 그의 정답은 마침내 나의 정답이 되어간다. 그가 추구했던 정답은 나의 정답이 되어간다. 그와 나의 정답이 다를지언정, 그 정답을 추구하는 방식은 닮아갈 수 있음을 느낀다. 서로 다른 정답을 갖고 있을지라도, 그 정답을 추구하는 방식이 닮아간다면, 우리는 거기서 서로 만나고 친분을 나눌 수 있으리라. 나와 그의 정답이 다를지라도, 그 길이 이어진다면, 영원보다 먼 곳에서 우리의 정답이 마침내 이어질 수 있으리라. 8번 트랙이 나와 그의 정답을 이어주고서, 9번 트랙에서 “겨울 발라드”가 다시 등장한다. 7번 트랙에 비해 좀 더 현실적이고 분명해진 사운드와 함께 김도마의 목소리가 청자의 귀를 감싼다. 김도마가 추구했던 정답이 좀 더 분명하게 내 앞에 다가온 느낌이다.

 

 

▲ 7번 트랙 “겨울 발라드 (김도마 ver.)” 뮤직비디오

김도마의 독백이 끝나면, 그 외로운 독백을 포근히 안아주듯 거누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이 앨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거누의 목소리가 들어가는 순간이다. 거누는 멀리 있는 친구에게 안부를 묻듯이 읊조린다. 그 읊조림은 마침내 멀리 있는 김도마에게 닿아,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김도마와 함께 노래하게 된다. 우리가 그를 그리워하는 만큼, 우리의 그리움은 “정답처럼” 김도마와 “만날” 것이다. 그는 언제나 그곳에 서 있을 것이므로. 이제 그가 우리의 정답이 되었으므로. 저 멀리 정답처럼 서 있는 김도마를 그리워하고 있노라면, 일찍이 우리 곁을 떠난 다른 뮤지션들을 떠올리게 된다. 김광석, 존 레논, 재니스 조플린, 에이미 와인하우스 등의 이름들을 불러본다. 그들도 김도마가 그렇듯이 정답처럼 항상 그곳에 서 있으리라. 우리의 그리움이 그들을 부른다면, 그들은 마땅히 우리에게 올 수 있으리라. 그들의 길이 우리의 길이 되고, 그들의 정답이 우리의 정답이 될 수 있으리라.

 

이제 2월 설날을 지나면 2월 4일로 입춘이 된다. 겨울이 끝나간다. 돌아보면 지난 12월에 나온 이 앨범 덕분에 나는 겨울을 잘 이겨낼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이 끝나고 나서도 이 앨범을 계속해서 들을 것 같다. 여기서 표현한 소외라든가 갈망이라든가 구원이라든가 하는 것은 겨울이 되면 으레 더 마음에 깊게 다가오지만, 그런 감정들이 딱 겨울에만 느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 거리의 지나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것을 담백하고 부드러운 음색으로 녹여낸 한 가수가 있다. 그 가수의 목소리는 어느새 내 마음 속에 부드럽게 녹아 내 목소리를 닮아갔고, 그 목소리는 곧 내 마음이 되어갔다. 그렇게 도마의 목소리는 소외와 갈망, 구원에 대해 걱정하는 내 마음 한편에서 영원히 위로를 속삭여줄 것만 같다. 길을 잃었다고 생각을 할 때조차 그 자리에 늘 정답처럼 그대 서 있”을 것만 같다. 도마가 아무리 먼 곳으로 떠난다고 한들, 내가 이 사람의 노래를 듣고 감동을 받을 수만 있다면, 도마는 언제까지나 내 마음속에 살아있을 것이다. 도마가 내 마음뿐만 아니라 좀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갈 수 있기를 조용히 기도해본다.

 


트랙리스트

1. 잠든 마음
2. 서울
3. 거리의 거리
4. 웅크리고 있는게 편했다
5. 아무도 모르는 춤을 춘다
6. 화양연화
7. 겨울 발라드 (김도마 ver.)
8. 그리고
9. 겨울 발라드 (거누 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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