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명반 에세이 81: 프레디 머큐리(Freddie Mercury) - Lover Of Life, Singer Of Songs
영웅의 영광 뒤에 숨겨진 외로움, 악당의 쾌락 속에 숨겨진 사랑
■ 음악이 나를 구원해주던 시절
이번 달, 둘째 토요일. 나는 4년 만에 초록불꽃소년단 공연을 봤다. 이들의 공연을 다시 보기까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은 몰랐는데, 아무튼 그들을 다시 공연장에서 만나게 되었다. 사실 펑크 록 공연 자체가 오랜만이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로는 슬램도, 스캥킹도, 기차놀이도, 떼창도 할 수가 없었는데, 슬램과 스캥킹과 기차놀이와 떼창이 부활한 펑크 록 공연의 쾌감은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관객들과 함께 서로 침과 땀이 섞이는 것도 잊고서 참 열심히 놀았다. 슬램 하느라 어깨가 좀 아프고, 다리는 쫌 뻐근하고, 스피커를 압도하겠다는 기세로 열심히 떼창을 했더니 목이 가버렸다. 그런데 마음만은 흡족하고 풍요로웠다.
돈 벌겠다고 저런 고생을 하면 마음에 불만이 가득할 텐데, 돈을 손에 쥐고 나서도 어딘지 불편하고 우울할 텐데, 돈을 써가면서 펑크 록 공연장에 다녀오면 기꺼이 내 몸을 불사르게 된다. 이런 힘은 대체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답은 간단했다. 음악이다. 음악이 나에게 기꺼이 몸을 불사를 힘을 주는 것이다. 음악이 나를, 밴드를, 관객들을, 우리를 기꺼이 몸을 불사르게 만들었던 거다. 음악 말고 대체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 수 있을까. 딱히 뭔가 쉽게 떠오르질 않는다. 음악으로 몸을 불사르는 이런 경험을 4년 만에 겪고 나니, 음악이 나를 구원했던 시절이 잔뜩 떠올랐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던 나의 영웅들도 떠올리게 되었다.
프레디 머큐리, 초록불꽃소년단과 같은 록 음악 범주에 들어가지만, 같은 록이라고 다 같은 록은 아닌 법. 초록불꽃소년단의 펑크 록과, 프레디 머큐리의 록은 록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분명히 다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내 인생에서 영웅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건 확실한 공통점이다. 음악 속으로 기꺼이 몸을 불사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음악이 내게 많은 걸 줬기 때문이다. 음악은 내게 위로와 격려와 희망이었고, 교훈이었으며 사랑이기도 했다. 이런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이 내겐 곧 영웅이었다. 그런데 이런 영웅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들의 삶이 언제나 내가 바라는 것만큼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그들에겐 삶이었던 음악이 삶이기에 오히려 그들을 아프게 했던 순간들이 많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열아홉 살 때, 한참 록 밴드 퀸(Queen)에게 빠져있었다. 그렇게 퀸 앨범 한 장, 한 장, 천천히 모으다보니 정규앨범 열다섯 장을 모두 CD 음반으로 소장하기에 이르렀고, 이걸로도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던 중이었다. 그렇게 내 나이 스무 살, 나는 프레디 머큐리가 퀸 보컬로서가 아니라, 솔로 가수로서 활동하던 시절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의 솔로 음반들을 접하게 된다. 그때 마침, 프레디 머큐리 인터뷰 모음이 책으로 나온 걸 읽고 있었고, 이를 통해 돈 많고 유명하다는 게, 반드시 행복한 삶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것도, 그때 처음 배웠다. 물론, 나는 가보지 못한 영역인지라, 온전히 공감하진 못했겠지만, 사실은 아직도 돈과 인기를 거머쥔 그들을 향해 질투도 해보지만, 그 시절 나는 프레디 머큐리를 사랑하는 마음에, 나의 영웅을 사랑하는 마음에, 어떻게든 그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공감하고 싶었다.
■ 화려해보여도 사실은 외로웠던 사람
그런 의미에서 2006년, 프레디 머큐리 탄생 60주년을 맞이하여 발표된, 그의 베스트 앨범 “Lover Of Life, Singer Of Songs”가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그가 발표한 두 장의 정규앨범, 1985년에 발표한 솔로 정규 1집 “Mr. Bad Guy”와, 스페인 출신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Montserrat Caballé)와 협업한 1988년 작 “Barcelona” 앨범은 물론, 대중에게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던, 프레디 머큐리의 뮤지컬, 영화 작업, 프레디 머큐리 사후에 나온 리믹스 앨범까지 싹싹 긁어 한 장의 앨범으로 완성해냈다. 2CD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2번 디스크는 리믹스와 데모 음원만 수록된 부록 느낌이라서, 여기선 이 앨범의 본편에 해당하는 1번 디스크만 다루도록 하겠다. 나는 웬만해선 베스트 앨범은 잘 듣지 않는데, 이 앨범은 왠지 자주 듣게 된다. 이 앨범의 구성과 서사가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정확히 대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이 앨범을 듣고 있으면, 기획한 사람들이 정말이지 프레디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한껏 느낄 수 있다.
이 앨범을 기획하고 제작한 그들, 그들이 바라본 프레디 머큐리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우선 프레디 머큐리의 겸손한 외침으로 시작한다. 1번 트랙 “In My Defence”의 등장이다. 겸손한 외침이라니, 참 모순형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프레디의 목소리에는 이런 모순형용마저도 설득시키는 마법 같은 힘이 있다. 이건 그의 삶이 이런 모순을 평생 감당하며 살았던 탓이리라. 무대 위에선 그 누구보다 오만하고 화려하지만, 무대 뒤에선 겸손하고 수줍은 사람이었던 사람. “In My Defence”에서 드러난 프레디의 외침은 마치, 이런 모순을 한껏 먹고 그 절정에서 피어난 꽃과 같다. 그 꽃은 강렬하고 매혹적인 향기로 청자를 유혹하고 설득한다. 그는 무대 위에선 왕이나 된 것처럼 관객들을 사로잡지만, 자신이 그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건 오직, 무대 위에서 노래할 때뿐이라는 걸, 그 누구보다 잘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런 자기 삶의 안타까움에 관해 이렇게 외친다.
“In my defence what is there to say. All the mistakes we made must be faced today. It's not easy now knowing where to start, while the world we love tears itself apart. I'm just a singer with a song. How can I try to right the wrong, for just a singer with a melody. I'm caught in between, with a fading dream.
변론을 해야겠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우리의 실수들은 오늘날 반드시 드러날 거야. 우리가 사랑하는 세상이 우릴 갈라놓을 동안, 그것이 어디서 출발했는지 알기란 쉽지 않아. 나는 그저 노래하는 가수일 뿐이야. 내가 어찌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겠어, 멜로디를 노래하는 가수일 뿐인데. 나는 사라지는 꿈, 그 사이에 끼었어.”
그 다음에 그들이 정의한 프레디 머큐리는 이런 사람이다. 2번 트랙 “The Great Pretender”를 보자. ‘Pretend’라는 동사에 어미 ‘–er’을 붙여서 만든 단어인 것으로 보인다. ‘Pretend’는 뭔가를 꾸며낸다는 뜻이다. 흔히 가식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프레디는 자신이 이걸 얼마나 위대하게 해내는지 자랑하려는 듯,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한껏 외친다. 프레디가 가사를 쓰진 않은데다, 원곡이 1955년에 나온 기성곡인데, 굳이 프레디가 자기 목소리로 다시 부른 걸 싱글로 발표했다는 점에서, 프레디가 이 노래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프레디가 그만큼 이 노래에서 자신의 모습을 많이 발견했기 때문이었으리라.
남들 앞에선 왕이나 된 것처럼 행세하지만, 사실은 속에 많은 외로움을 감추고 있는 사람. 자신을 좋아하던 사람들이 떠나도, 떠난 사람들을 향한 슬픔을 감추고, 어떻게든 새로운 사람들을 부르기 위해 애쓰는 사람. 이 모든 슬픔에도, 어떻게든 기쁘게 노래하는 사람. 프레디는 자신을 이런 사람으로 봤던 것 같다. 이런 프레디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안타깝다가도, 이 모든 지독한 외로움을 기쁜 노래로 승화시키는 모습에 경이를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삶은 가식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가식들조차, 듣는 이가 진실하게 느끼도록 노래한다. 그는 이토록 아름다운 모순을 가진 사람이었다. 자신의 모든 외로움을 기쁜 노래로 승화시킨다는 점에 있어, 그 시절 외롭던 나에게, 프레디 머큐리는 누구보다 위대한 영웅이었다.
■ 오만해보여도 사실은 겸손했던 사람
1번과 2번 트랙을 통해, 프레디의 정체성을 잡은 앨범은 곧이어, 그런 프레디가 마음에 감추어 두었던 것들을 서서히 꺼내 드러내기 시작한다. 3번 트랙 “Living On My Own”은 웃기게 들릴 만큼 신나는 리듬과 스캣으로 감싸고 있지만, 그걸로 미처 감쌀 수 없었던 외로움이 언뜻 드러나는 것 같다. 외로움은 마음을 겸손으로 이끈다. 4번 트랙 “Made In Heaven”을 들어보자. 돈과 인기를 거머쥐고, 무대 밖에선 언제나 화려한 파티에만 열중하며, 술과 섹스밖에 모르고 살아갈 것 같은 그에게도, 하늘의 뜻에 따르고자 하는 양심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로아스터교 집안에서 태어나, 종교적인 집안의 답답한 분위기에 질려, 가족과 불화를 일으키긴 했어도, 마음 한 구석엔 가족을 향한 그리움이 있었고, 그런 그리움이 하늘로 마음이 향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음악과 술, 포르노만이 내 쾌락의 전부이던 시절. 쾌락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구멍이 늘 있었지만, 그 구멍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 몰라서 또 방황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마음을 하늘로 향하니, 어렴풋이 깨닫게 된다. 그런 마음의 구멍은 채우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는 걸. 오히려 그 구멍을 가만히 내버려둘 때, 그 구멍을 가만히 응시할 때, 하늘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감미로운 사랑이 되어 그곳을 지나간다는 걸. 바람이 되어 내 마음의 구멍을 지나가는 사랑을 느끼면, 기분이 얼마나 상쾌한지. 바람이 주는 상쾌한 기분에 몰두하면, 세상 걱정이 없다. 이게 진정 하늘이 내게 주는 축복이구나 생각해본다. 프레디가 노래한 “Made In Heaven(하늘의 뜻)”이라는 건, 이런 기쁨을 노래한 것이리라. 이런 기쁨은 진정 겸손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 무대 위에서 전력으로 오만할 수 있는 그였기에, 이런 솔직한 기쁨도 누릴 수 있었으리라. 1985년에 발표한 노래 “Made In Heaven”은 10년 후, 퀸 멤버들이 그를 추모할 목적으로 만든, 퀸 정규 15집 앨범의 제목이 된다. 이런 겸손한 모습이 프레디의 본 모습이라는 걸, 퀸의 남은 멤버들은 이미 깨닫고 있었으리라.
7번 트랙 “Guide Me Home”과 8번 트랙 “How Can I Go On”은 이어지는 노래로서, 자신이 언젠가 누릴 영원한 안식을 “Home(집)”에 비유하며, 이토록 험한 세상에 어떻게 영원한 안식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지, 그 고뇌를 노래한다. 이 두 노래는 몽세라 카바예와 함께 한 노래인데, 프레디의 록 보컬은 화자의 절박한 심정을 노래하고, 뒤에 깔리는 클래식 교향악은 그런 심정을 부드럽게 감싸며, 몽세라 카바예의 목소리가 이 모두를 조율하며 든든하게 이끌어나간다. 힘든 삶, 험난한 세상이지만, 우리의 여정이 하늘에서 바라보면 모두 아름답다며, 산들바람이 우리를 위로해주는 기분이다. 우리가 아무리 상처받고 지치고 쓰러져도, 여전히 살아있는 한, 밝은 햇살에서 따스함을 느낄 수 있고, 산들바람에서 부드러움을 느낄 수 있다.
6번 트랙 “There Must Be More To Life Than This”는 그의 겸손한 모습을 더 발견할 수 있는 노래다. 프레디는 자신에게 주어진 막대한 돈과 인기에도,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향한 관심을 멈추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In My Defence”에서 자신은 그저 가수일 뿐이기에, 세상에 만연한 문제들을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한탄하면서도, 노래로써 가난하고 소외받는 사람들을 향한 사랑을 열심히 표현한 사람이기도 했다. “There Must Be More To Life Than This”에서 잔잔한 선율에 나긋나긋 말을 건네다가, 10번 트랙 “Time”에서는 좀 더 절박한 감정을 담아 크게 외친다. 우리에겐 주저할 시간이 없다고. 우리가 마주한 세상을 하루라도 더 빨리 치유해야 한다고. 싸움을 멈추는 건, 내일이 있을 수 없다고. 지금 당장 싸움을 멈추고, 서로 화해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 최선을 다해 사랑했기에 파멸하는 모습마저 아름다웠던 사람
5번 트랙 “Love Kills”는 사랑 앞에 무력하게 빠져들 수밖에 없는 처지를 노래한다. 댄스 리듬이 신나게 배경을 휘어잡는 동안, 프레디의 목소리는 사랑을 향해 절박한 심정을 내뿜는다. 절박한 목소리는 이어지는 댄스 리듬과 함께 기쁨으로 번져간다. 9번 트랙 “Foolin' Around”는 제 아무리 세계적인 스타라도, 아무나 다 원한다고 마음대로 자신의 연인으로 만들 수 없다는 걸 노래한다. 쉽게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는 사람을 향해 애태우면서도, 쉽게 다가오지 않아서 오히려 설레는 마음을 댄스 리듬에 녹여냈다. 리듬과 함께 춤추는 프레디의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절로 흥이 돋는다. 내가 프레디가 된 것처럼, 애타는 사랑에 설레는 기분이다.
11번 트랙 “Barcelona”는 몽세라 카바예와 함께 한 트랙이다. 운명, 그 외에 다른 단어로는 도무지 표현하기 힘든 벅찬 감정을 노래한다. 운명을 맞이하여 자기가 알고 있던 모든 세상이 흔들리고 뒤집혀도, 나는 당신을 만나서 벅차도록 기쁘다며 노래한다. 이런 벅찬 감동이 펼쳐지는 장소를 “Barcelona(바르셀로나)”라고 노래한 것이다. 프레디의 목소리는 운명이 벅차게 다가오는 걸 표현하고, 몽세라의 보컬은 운명의 기쁨이 피어오르는 걸 표현한다. 프레디는 몽세라를 만나, 벅찬 감정이 기쁨으로 번져갈 수 있었다. 이는 만남과 우정에 관한 노래지만, 사랑에 관한 노래로 봐도 될 것이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인연에 관한 일이란 건 마찬가지니까.
이토록 운명과 사랑에 자신을 온통 불사르던 그였지만, 그에게 다가온 이별은 가혹하다. 12번 트랙 “Love Me Like There's No Tomorrow(내일이 없을 것처럼 사랑해줘)”는 이별하는 순간마저도, 자신의 남은 힘을 모두 쥐어짜내서 사랑하려는 눈물겨운 감정이 느껴진다. 노래의 선율은 부드럽고, 프레디의 목소리는 그 부드러운 선율에 자신의 감정을 감추려 노력하지만, 그의 절박한 심정은 서서히 새어나와 터져버리기에 이른다. 그가 얼마나 자신을 불사르며 사랑했는지, 지난 노래들을 통해 느껴보았기에, 이런 이별 노래가 더 아프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다시 속수무책 사랑에 빠지며, 상대방을 향해 이렇게 외친다. “I Was Born To Love You(나는 너를 사랑하려고 태어났어)” 그러나 사랑이 그를 파멸하게 만들었으니.
14번 트랙 “The Golden Boy”는 몽세라 카바예와 함께 한 트랙으로서, 11번 트랙에선 만남의 기쁨, 운명의 감동을 노래하던 그들이 여기선, 파멸의 슬픔, 이별의 회한을 노래한다. 아니, 이 노래에서도 처음엔 만남과 운명을 노래하지만, 노래의 끝이 파멸과 이별이라서, 파멸과 이별이 더욱 크게 다가오는 것 같다. 노래에선 한 쌍의 연인을 묘사하는데, 남자는 노래로 부와 명예를 거머쥔 사람이었고, 그가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자신의 부와 명예를 나눠주는 이야기다. 그러나 오히려 부와 명예가 그들의 사랑을 파괴했고, 그들의 인연은 결국 파멸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런 서사를 따라, 곡의 구조도 서로 다른 곡 두 개를 한 곡에 배치한 것처럼 역동적이다. 이런 파격적인 구조에서도 힘을 잃지 않는 프레디와 몽세라의 표현력에 감탄하게 된다. 그래서 더욱, 이 노래 속 연인의 파멸이 안타깝게 다가온다.
15번 트랙 “Mr. Bad Guy”는 위 노래 속 남자의 파멸을 더욱 자세히 다루는 것 같다. 그러나 파멸하는 자신의 모습을 결코 슬프게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화려하고 웅장하고 당당하게 묘사한다. 자신은 자기 삶을 파멸로 이끈 것도 모자라, 다른 사람들의 삶마저도 파멸시킬 수 있다며, 이런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듯 외친다. 어떻게 보면 참 오만한 모습이지만, 프레디의 당당한 목소리에는 이런 오만한 모습마저 설득시킬 정도로 강력한 마력이 있다. 이런 설득력은 어디서 온 걸까. 그가 사랑에 얼마나 열심히 자신을 불사르는지, 충분히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삶도 실제로 그러했다. 그는 자기 삶을 자신을 불사를 만큼 사랑하였다. 그가 자신의 삶을 사랑했던 만큼, 그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도 그의 사랑을 느꼈다. 그가 얼마나 열심히 사랑했는지, 그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알기에, 그의 파멸에 저절로 당위를 느끼는 것이다.
■ 아름다운 모순을 가진 나의 영웅
15번 트랙을 끝으로, 프레디 머큐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 한 편이 끝난 것 같다. 이어지는 16번, 17번 트랙은 엔딩 크레딧 배경음악처럼 느껴진다. 16번 트랙은 다시 “The Great Pretender”의 등장이다. 2번 트랙과는 편곡이 바뀌어, 같은 가사를 다른 감상으로 느껴볼 수 있다. 15번에서 실컷 웅장하게 표현한 악당 프레디 머큐리, 그가 사실은 위악을 부렸던 것에 불과하다는 걸 말하는 것 같다. 그토록 실컷 위악을 부려도, 사실은 외로운 사람일 뿐이었다고. 자신도 그런 식으로 파멸해선 안 된다는 걸 잘 깨닫고 있었다고. 아무리 그의 목소리가 당위를 외치고 있고, 그게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고 해도, 역시 그런 식으로 파멸하는 건 아니라고, 그건 너무 슬픈 거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래도 역시 나는 프레디가 자랑스럽다. 자기혐오에 빠지는 대신, 자신의 파멸을 그토록 멋지게 노래했다는 게. 파멸할 때조차 당당하게 파멸하는 모습을 두고, 어찌 멋지지 않다고 할 수 있으랴!
5번 트랙과 다르게 편곡된 17번 트랙 “Love Kills”를 들으며, 프레디가 얼마나 사랑에 속수무책이었던 사람인지 다시 깨닫고 나면, 18번, 19번 트랙이 쿠키 영상 보는 것처럼 이어진다. 실제로 이 두 트랙은 쿠키 영상 같은 재미를 주는 데, 다름 아니라, 이 두 트랙은 프레디 머큐리가 그룹 퀸으로 데뷔하기 한 달 전에 래리 루렉스(Larry Lurex)라는 가명으로 발표한 싱글에서 따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기선, 아직은 지극히 미성이던, 설익은 프레디 머큐리의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 사실 퀸 멤버들도 참여한 곡이라, 퀸이 반쯤 장난치듯 발표한 싱글이라고 볼 수 있다. 18번 트랙 “I Can Hear Music”은 사랑의 설렘을 들려오는 음악에 비유한 흥겨운 노래고, 19번 트랙 “Goin' Back”은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잔잔한 노래다. 고난과 환희, 사랑과 이별, 성공과 파멸, 이 모든 것 이전에, 프레디에게도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음을 느낀다. 하지만 나는 역시, 이 모든 게 지나고 끝내 아름다운 모순으로 피어난 프레디가 훨씬 더 좋다.
사람의 인생이란 언제나 모순의 연속이다. 그런 모순의 간극은 삶이 이어질수록 더욱 커질 것이다. 프레디처럼 자신의 업적이 남 앞에 한껏 전시된 사람일수록, 그런 모순의 간극이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프레디는 이런 모순 앞에 굴복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모순들을 자신의 아름다움으로 삼았고, 그는 끝내 승리했다. 무대 위에서 그 누구보다 오만할 수 있었기에, 무대 밖에선 그 누구보다 겸손할 수 있었던 사람. 한없이 사랑하며 자신을 불사를 수 있었기에, 그런 안타까운 파멸에 당위성을 얻을 수 있었던 사람. 나도 내가 가진 모순들에 두려울 때가 많지만, 프레디의 노래를 들으며, 그런 모순들을 내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킬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런 용기로 힘겨운 삶, 험난한 세상에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 앨범의 “Lover Of Life, Singer Of Songs(삶을 사랑한 사람, 노래를 부르는 가수)”라는 제목은 참, 프레디 머큐리를 잘 표현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음악이 언제나 내게 힘을 주는 건 아니었다. 아무리 하느님께 기도를 올려도, 아무리 내 삶에 감사한 것들을 떠올리려 해도, 아무리 곁에 누군가 있다 하더라도,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은 지독한 외로움이 물러나지 않을 때가 있다. 심지어, 사랑마저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있으니,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 나를 가장 아프게 할 때가 그러했다. 이럴 땐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 그 끝에 얻은 “해답이 사랑”이라는 조용필 노래가 온통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 아, 그래도 역시 해답은 사랑뿐이다. 아파도 사랑해야 한다. 프레디처럼 자신을 불사르며 사랑해야 한다. 그가 사랑하며 노래하듯, 나는 사랑하며 글을 써야한다. 아파도 사랑한다는 게 바로 자신을 불사르며 사랑한다는 것일 테니까. 프레디처럼 사랑해야,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 프레디처럼 삶을 사랑하며 살아야, 모순마저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그 모든 실패와 고뇌의 시간을 견디는 건, 오로지 나의 몫이다. 가진 큰 시련 앞에선 외톨이가 된 것 같으나, 세상은 언제나 나를 외톨이가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외로운 시간 끝에 다시, 프레디를 만난다.
나의 영웅 프레디, 하늘은 편안하신가요. 당신의 노래 덕분에 저는 오늘 하루 더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당신은 이 세상을 떠나고, 제가 이 세상에 왔습니다만, 제 가슴 속에 당신은 언제나 살아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내 삶을 실컷 사랑하며 아름답게 꾸민 후에, 언젠가 천국에서 당신의 노래를 들을 수 있기를 바라며, 저는 오늘도 오늘을 살아갑니다. 늘 고마워요.
트랙리스트
Disc 1
1. In My Defence
2. The Great Pretender
3. Living on My Own (1993 Radio Mix)
4. Made in Heaven
5. Love Kills
6. There Must Be More to Life Than This
7. Guide Me Home
8. How Can I Go On
9. Foolin' Around (Steve Brown Remix)
10. Time
11. Barcelona
12. Love Me Like There's No Tomorrow
13. I Was Born to Love You
14. The Golden Boy
15. Mr. Bad Guy
16. The Great Pretender (Malouf Remix)
17. Love Kills (Star Rider Remix)
18. I Can Hear Music
19. Goin' Back
20. Guide Me Home (Piano Version)
* 이번엔 특별히 작가 본인이 직접 변역한 가사 모음이 있습니다. 전문 변역가의 결과물이 아니기 때문에, 오역과 의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번역을 보고 싶으신 분은 아래 링크를 눌러주세요.
[가사 번역]
Disc 2
1. Love Kills (Sunshine People Radio Mix)
2. Made in Heaven (Extended Version)
3. Living on My Own (The Egg Remix)
4. Love Kills (Rank 1 Remix)
5. Mr. Bad Guy (Previously unavailable early version)
6. I Was Born to Love You (George Demure Almost Vocal Mix)
7. My Love Is Dangerous (Extended Version)
8. Love Makin' Love (Demo)
9. Love Kills (Pixel82 Remix)
10. I Was Born to Love You (Extended Version)
11. Foolin' Around (Early Version)
12. Living on My Own (No More Brothers Extended Mix)
13. Love Kills (More Oder Rework by the Glimmers)
14. Your Kind of Lover (Vocal & Piano Version)
15. Let's Turn It On (A Cappe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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