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명반 에세이 103: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The Jimi Hendrix Experience) - Electric Ladyland
퇴폐의 끝에서 만난 순수
■ 열반에 오른 마구니들
1970년대 한국 군부 정권은 가요를 엄격하게 검열했는데, 정부에 반항하고 퇴폐를 부추기는 노래들은 모두 공연 금지곡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때 검열이 얼마나 심각했느냐면, 지금 보면 건전하기 짝이 없는 송창식 “왜 불러”, 김민기 “아침 이슬” 같은 노래들도 금지곡이 될 정도였다. 금지곡을 공연하면 징역을 살아야 했다. 2008년 개봉한 조승우 주연 영화 “고고70”은 이를 다룬 작품이다.
“고고70” 주인공은 소울(Soul) 밴드 데블스 보컬인데, 그는 밴드 멤버들과 함께 퇴폐 문화를 주도했다는 죄목으로 경찰들에게 잡혀 고문 받게 된다. 경찰들은 그들의 머리를 바닥에 꽂고 엉덩이를 세워, 방망이로 그들의 엉덩이를 힘껏 때리면서, 대마초 피운 동료 음악인 이름을 대라고 요구한다. 그들은 한 대 맞을 때마다 동료 한 명씩 팔아넘겼는데, 보컬은 군 입대 기피 죄목이 추가되어, 봉에 두 무릎이 묶여 거꾸로 매달린 채로 고문을 받는다. 경찰이 그에게 매질하며 대마초 피운 동료 이름을 대라고 요구하자, 오랜 고문에 정신이 혼미해진 그는 이렇게 답한다.
“지미요.” “지, 누구?” “지미 헨드릭스요!”
신에게 자기 좀 도와달라고 읍소하는 구조 요청이었을까 아니면, 자기 인생을 왜 이토록 망쳤느냐고 신을 향해 원망했던 걸까. 어쨌든 데블스가 섬기던 신의 이름이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였다는 건 확실히 알 수 있었던 장면이다. 그가 죽음에 임박하여 신을 찾는 모습은 마치, 순교자를 보는 것 같았다.
한심하고 게으르고 비겁한 데블스. 그런데 나는 어째서 그들에게서 순교자의 표정을 보았는가. 동료를 경찰에게 팔아넘긴 덕분에, 감방 신세는 면한 그들. 그러나 그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일하는 데는 게을러도, 노는 데는 그 누구보다 부지런했던 그들이었다. 일상에선 한심해도, 무대 위에선 그 누구보다 뜨거웠던 그들이었다. 그들에겐 놀이가 곧 일이었고, 놀이터가 곧 일터였다. 자신들의 놀이터를 뺏겨버린 그들은 더 이상 비겁할 수 없었다. 그들은 정부에 반항한다. 무엇으로? 춤과 노래로.
데블스는 무허가 공연을 감행한다. 경찰들은 소문을 듣고 떼를 지어 공연장으로 향했다. 경찰들은 공연장 안까지 침투하여 최루가스를 뿌리며, 밴드와 관객들을 방해했지만, 데블스 보컬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관객들을 향해 물대포를 뿌리며 분위기를 살린다. 밴드가 신나게 연주하고 노래하자, 관객들은 다시 분위기가 살아서 몸이 부서져라 춤을 춘다. 관객들 틈에서 데블스를 지켜보던, 한 사나이가 잔뜩 흥분에 찬 목소리로 외친다.
“이게 열반이야, 닐바나!”
이렇게 외친 사나이가 누구였나. 데블스의 서울 활동을 지원하며, 클럽 “닐바나(Nirvana)”를 세운 사나이였다. 그는 데블스가 경찰의 억압마저 이기며 노래하는 걸 보고, 마구니들이 부처가 된 모습을 본 것이다.
지미 헨드릭스. 그가 대체 얼마나 위대하기에, 그렇게 한심하고 게으른 사람들을 위대한 순교자로 만들었나. 그들에겐 지미가 예수요, 헨드릭스가 그리스도였다. 열심히 놀았다는 죄목으로 실컷 두드려 맞은 그들. 그들이 경찰에게 잡혀 얻어맞은 때는 진정, 그들의 우상 지미가 깨부수어진 순간이었다. 그들은 지미라는 우상을 깨부수고, 자신들이 헨드릭스가 되어 무대에 올랐던 거다.

■ 순수한 실험이 가장 뜨겁고 농염한 유행이었던 시절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종교에 몰두한다. 둘째, 지금 당장 죽어도 후회 없을 만큼 짜릿한 퇴폐를 맛본다. 지미 헨드릭스는 어떻게 그들의 예수 그리스도가 되었나. 그는 퇴폐의 끝에서 종교성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가 만난 종교성을 기타로 연주하면, 사람들은 그의 기타를 통해 퇴폐의 끝까지 간다.
그가 연주한 종교적인 퇴폐를 가장 깊이 느껴볼 수 있는 작품은 “Electric Ladyland”다. 그가 자기 밴드와 함께 만든 마지막 앨범이다. 이 앨범은 지미가 쏟아 부은 실험의 결정체다. 이런 실험적인 작품이 으레 그렇듯, 쉽게 친해지기 힘든 앨범이다. 이 앨범을 접하기 전에 먼저, 지미 헨드릭스 밴드의 1집 “Are You Experienced”와 충분히 친해지길 권한다. 1집 건너뛰고, 이 앨범 먼저 들어보고 싶다면, 두 번으로 나눠서 들어볼 것을 권한다. 한 번에 듣기엔 75분으로 너무 길기 때문이다. 1번부터 9번 트랙까지가 A와 B면이고, 10번부터 16번 트랙까지가 C와 D면인데, 하루는 A와 B면을 들어보고, 다른 하루는 C와 D면을 들어보는 식으로 나눠서 들어보는 거다.
앨범 안에 싱글로 따로 나온 트랙들과 먼저 친해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9번 트랙 “Burning of the Midnight Lamp”와 15번 트랙 “All Along the Watchtower”가 싱글로 따로 나온 트랙이다. 특히 “Burning of the Midnight Lamp”를 들여다보면, 하프시코드가 장난치듯 춤추며 기타와 함께 뒤엉키는데, 듣는 이마저 환상의 세계로 빨아들인다. 나는 개인적으로 7번 트랙 “Come On”과 14번 트랙 “House Burning Down”을 추천한다. “Come On”은 지미의 밴드 멤버들, 미치 미첼(Mitch Mitchell) 드럼과 노엘 레딩(Noel Redding) 베이스 연주가 두드러지는 곡으로서, 밴드의 조화를 느끼기에 최적인 트랙이다. 지미 헨드릭스가 저 혼자 뛰어나서 주목 받은 게 아니라, 그 밑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두 명의 훌륭한 연주자가 있었다는 걸 느끼게 해준다.
4번 트랙 “Voodoo Chile” 길이를 보자. 15분이다. 이런 순수한 실험이 가장 뜨겁고 농염한 유행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안정적인 성공 공식에 기댄 사람들의 음악이란 4분만 넘어도 실패할 걸 두려워한다. 그의 자지(Chile)는 겨우 4분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의 자지는 15분이나 즐긴다! 시시하게 경제적 안정이나 추구하고 말이야. 그러면 예술이 시시해지는 거다. 경제적 안정 따위를 추구하는 게 얼마나 시시한 건지, 그의 기타는 그 어떤 명언과 논리보다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한 곡에 10분 넘는 곡이 그거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고, 11번 트랙 “1983...(A Merman I Should Turn to Be)”는 13분 40초다. “Electric Ladyland” 앨범 전체를 보면, 1968년 당대 인기를 얻은 다른 앨범들에 비해 길이가 두 배나 된다. 앨범 전체가 지미 헨드릭스의 순수한 실험으로 불타오른다. 이 앨범은 선언이다. 음악이 그 모든 것보다 더욱 강력한 퇴폐라는 선언. 돈, 인기, 섹스, 마약을 뛰어넘는 퇴폐가 음악에 있다는 선언. 음악이 아닌 다른 모든 쾌락을 지겹도록 맛본 사람의 선언이니, 더욱 설득력이 강하다.
■ 쾌락, 돈보다 중요한 것
2025년 현재, 한국에서 예술을 가장 억압하는 건 뭘까. 자본이 예술을 가장 억압한다. 무엇이든 돈으로 예술의 가치를 평가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돈을 벌 수 없는 예술은 쓸데없는 예술이라며 쉽게 억압하고 무시한다. 출판계든 영화계든 가요계든 다 이런 식이다. 이런 현상이 예술에만 있는 게 아니다. 2025년 대한민국은 모든 가치를 다 돈으로만 측정한다. 예술이든 교육이든 정치든 ‘잘 먹고 잘 살자’는 구호 아래에서만 정당화된다.
잘 먹고 잘 사는 게 뭐가 나쁘냐고 그럴 수도 있겠다. 물론 잘 먹고 잘 사는 건 중요하다. 그러나 잘 먹고 잘 사는 것만 유일한 지상 과제가 된 사회에선, 정치인이 유능하다는 이유 하나로 독재도 너무 쉽게 정당화하고, 차별도 정당화하고, 폭력도 정당화하고, 전쟁도 정당화하게 된다. 이렇게 자본이 독재하는 사회를 내버려두면, 거기서 히틀러가 나오고, 박정희가 나오는 거다. 작년 12월, 한국에서 계엄령이 괜히 터졌겠나. 이런 사회에선 그 어떤 도전이나 실험을 할 수가 없고, 그저 경직된 풍경만 이어질 뿐이다. 이런 사회에선 아무리 돈이 많고 안전해도 삶에 맛이 없다. 그러니까 한국이 출산은 꼴지, 자살은 일등이지. 지미의 기타를 들어보라. 자본 독재를 뚫고, 전쟁 없는 세상을 외치는 헨드릭스의 불타는 기타를!
쾌락이 돈보다 중요하다는 걸 뼛속 깊이 이해한 사람만이 진정 사치스럽게 살 수 있다. 자기 가진 걸 다 걸고 사치에 몰두하는 사람은 청빈한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사치스러운 사람이든 청빈한 사람이든, 자기 가진 걸 아낌없이 다 비우겠다는 태도는 같으니 말이다. 자기 가진 걸 아낌없이 다 소비하며 살든, 세상 모든 걸 거부하며 아무것도 갖지 않으며 살든, 그들이 세상을 무너뜨리는 힘으로 작용한다는 건 똑같다. 사치와 청빈은 혁명 속에서 만난다. 그의 기타는 경제적 안정마저도 불쏘시개로 써버리며 맹렬하게 불타오른다. 그는 자기 기타에 문자 그대로 불을 지르기도 한다. 자신이 연주하던 기타마저 불쏘시개로 써버리다니, 그의 연주마저 우상이 될 수는 없었다. 그는 진실로 세상 모든 아이돌에 불을 지르는 하느님이다. 그의 기타는 돈, 권력, 체제, 계급, 세상 모든 걸 불태우는 맹렬한 전력(電力)이다. 이만큼 사치스러운 힘이 또 있을까!
순수는 無이며 공허다. 온갖 더러운 것들을 다 쓸어버려야 순수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중에 더럽지 않은 자 누구랴. 우리는 죽어 마땅하다. 모든 것은 죽어야 하고, 모든 것은 무너져야 한다. 그래야 우주는 순수해질 수 있다. 어차피 죽을 거, 전쟁으로 괴롭고 슬프게 죽기보단, 퇴폐로 즐겁고 황홀하게 죽자는 거다. 퇴폐는 순수다. 여기서 깨달음과 퇴폐가 만나고, 청빈과 사치가 만난다. 모든 소리를 차단하는 굉음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고요는 참으로 닮았다. 열반은 혁명이며, 혁명을 지나면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 무너진다. 삶이 곧 죽음이며, 죽음은 영생이 된다.
창세기와 요한계시록을 보라! 신은 자신의 질서를 세상에 드러내기 전에 먼저, 세상을 혼돈에 빠뜨린다. 혼돈은 신의 질서다. 예술이든 영성이든, 제대로 하려면 경제적 안정 따위나 추구해선 안 된다. 가려면 끝까지 가야지. 내가 이걸로 세상 모든 걸 무너뜨리겠다는 각오로 가야지. 이것만이 내가 추구할 유일한 쾌락이라는 각오로 가야지. 이 각오 외에 다른 모든 건 가벼운 농담으로 소비하는 태도로 가야지. 결국엔 내가 가장 진지하게 각오하던 것이 가장 유쾌한 농담이 되어야지.
■ 신들이 만들어가는 새로운 질서
양은 음을 만나야 비로소 음양이 되고, 링가는 요니를 만나기 위해 존재한다. 파괴의 신 시바도 시간의 여신 칼리 앞에선, 발밑에 짓밟히는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밴드의 2집 “Axis: Bold As Love” 표지를 보자. 내가 이 앨범 표지를 처음 봤을 때, 그가 종교를 조롱할 목적으로, 자신을 힌두 신으로 묘사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는 퇴폐의 끝에서 진실로 신과 합일을 이루었다.
힘과 질서로 쌓아올린 백인 남성들의 세계에, 섹스와 혼돈으로 맞서는 흑인 여성들의 역습이다. 진지한 논리가 아니라, 어지러운 농담이 세상을 지배한다. 그는 이 세계를 “일렉트릭 레이디랜드(Electric Ladyland)”로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세상은 전쟁으로 영웅이 될 수는 있어도, 섹스로는 영웅이 될 수 없다. 그가 선언한 여성의 땅(Ladyland)에선 섹스로도 영웅이 될 수 있다. 그는 폭력보다 강렬한 쾌락으로 세상을 지배하려고 했다. 폭력이 아닌 쾌락이 지배하는 세상이니, 그곳에는 고통도 슬픔도 없다. 아니, 고통이 있어도 그게 곧 쾌락으로 승화되는 세상이다. 지미 헨드릭스의 기타는 섹스로 영웅이 되려고 했던 위대한 실험이다.
그가 기타로 그린 세상이란, 유일신이 통치하는 금욕적인 사회도 아니고, 평등이라는 이름 아래 자유를 억압하는 무신론 공산주의 사회도 아니다. 그가 기타로 그린 세상은 모든 이원성을 초월한 사회이며, 많거나 적은 것도 없고, 크거나 작은 것도 없고, 그 어떤 것도 거룩하거나 천박하지 않으며, 기쁨이 곧 슬픔이고, 슬픔이 곧 기쁨이며, 신이 곧 사람이며, 사람이 곧 신이다. 그의 세계에선 모두가 신이며, 모두가 자유로운 사람이다.
비가 내린다. 그의 불타는 기타를 꺼뜨리는 비가 내린다. 기타는 힘을 잃고 꿈은 사라진다. 새로운 세상을 향한 꿈이 사라진다. 15년 후를 내다보며 기타를 울린다. 전쟁으로 황폐해진 세상. 미사일 폭격으로 온통 새까맣게 타버린 땅. 그러나 거기에도 비가 내린다. 비가 지미의 기타를 꺼뜨렸는데, 이젠 비가 마른 땅을 적시며 새 희망을 준다. 지미는 다시 기타를 울린다. 비가 아무리 세차게 내려도 절대 꺼지지 않을 불꽃을 피운다. 그 불꽃은 비를 뚫고 커지고 커져서 집을 태우기까지 커진다. 그 집이란 무엇인가. 전쟁을 부추기는 탐욕스러운 정치인들의 집이다. 국회를 불태우고, 대통령 관저를 불태운다. 혁명의 불이 타오른다!
그는 혼돈으로부터 새로운 질서를 세운다. 억압과 통제로 돌아가는 질서가 아니라, 자유와 포용이 주도하는 질서. 어머니라는 호칭이 허락되지 않는 거세된 하느님 아버지가 아니라, 신과 신이 뒤엉켜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질서. 그리고 유일신이 아니라 신들이, 신들이 사랑을 만들었다.
그의 기타는 곧 펑크 록(Punk Rock)이 되었고, 글램 록(Glam Rock)이 되었다. 남성들은 여성처럼 머리를 기르고 화장을 했다. 나는 나의 글이 로큰롤이 되길 바랐다. 오스카 와일드, 그가 영화 “벨벳 골드마인”에서 찬양 받던 것처럼 말이다. 영화에서 흐르는 글램 록 선율처럼, 세상이 진지하게 여기는 모든 것 즉, 종교, 철학, 체제를 온통 화려한 농담으로 물들이고 싶었다. 나는 “인간 실격”을 읽으며 참으로 “어린 왕자”의 천진난만하고 순진한 감성을 느꼈다. 순진하고 천진난만한 마음으로 실컷 퇴폐에 젖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추구하던 열반이었다. 지미 헨드릭스의 기타에선 내가 그 시절 추구하던 열반이 흐른다. 나는 지미의 기타와 함께 신이 되어, 세상을 사치스럽게 즐긴다. 오늘도 내게 즐거움을 주시는 로큰롤의 신, 지미 헨드릭스, 찬미 받으소서.
트랙리스트
1. ... And the Gods Made Love
2. Have You Ever Been (To Electric Ladyland)
3. Crosstown Traffic
4. Voodoo Chile
5. Little Miss Strange
6. Long Hot Summer Night
7. Come On (Part 1)
8. Gypsy Eyes
9. Burning of the Midnight Lamp
10. Rainy Day, Dream Away
11. 1983... (A Merman I Should Turn to Be)
12. Moon, Turn the Tides....Gently Gently Away
13. Still Raining, Still Dreaming
14. House Burning Down
15. All Along the Watchtower
16. Voodoo Child (Slight Retu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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