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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나인 인치 노이즈(Nine Inch Noize) - Nine Inch Noize

인생명반 에세이 107: 나인 인치 노이즈(Nine Inch Noize) - Nine Inch Noize

 
시스템 내부에서 터진 치명적 글리치

  

■ 디지털 봉건제, 그로부터 4년

민주주의는 죽었다. 민중이 사유를 모두 인공지능에게 맡겨버렸기 때문이다. 사유할 줄 모르는 민중에게 무슨 주권이 있겠는가. 2022년, 나는 이 때를 디지털 봉건제(Digital Feudalism) 원년으로 본다. 그로부터 4년이 흘렀다. 아직도 대중은 디지털 봉건제가 시작된 줄도 모르고, 민주주의가 살아있는 줄 착각하며 살고 있다.

디지털 봉건제? 이런 표현이 아직 대중에게 생소할 줄로 안다. 디지털 권력을 손에 쥔 빅테크 수장들을 디지털 영주라고 부른다. 농노가 영주에게 노동력과 수확의 일부를 상납하며 살아온 것처럼, 현대인은 디지털 영주에게 지식과 개인정보를 모두 상납하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는 디지털 농노가 된 것이다.

권력의 중심은 이미 국가에서 기업으로 넘어갔다. 기업 수장은 종신직으로 지내는데, 국가 권력이 아직 민주제로 돌아가고 있으니, 이 땅에 민주제가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건 분명 착각이다. 민주주의는 권력 분산과 주기적인 권력 교체를 통한 권력 견제가 기본인데, 권력의 중심이 실물에서 디지털로 완전히 넘어가면서, 이제 권력의 중심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아니라, 빅테크 기업 수장들이 되었다. 지폐가 화폐의 주류에서 벗어난지도 오래되었고, 디지털 정보가 화폐 중심으로 우뚝 섰다. 경제 권력이 실물 자산에서 디지털 플랫폼으로 넘어갔는데, 실물 자산을 기반으로 형성된 국가 권력에게 무슨 권력이 있겠는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은 몇 년에 한 번 교체할 수 있지만, 기업 수장은 교체도 되지 않는다.

디지털 봉건제가 최악의 형태로 드러난 건, 피터 틸(Peter Thiel) 창립 기업 “팔란티어(Palantir)”다. 표면적으로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한 빅데이터 분석으로 집단의 합리적 결정을 돕는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게 군대와 경찰까지 들어가면서 범죄자와 테러리스트를 미리 판단하는 기술로 발전하였고, 이를 통해 정부의 사상 검열이 심각해질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인공지능이 언제나 공정한 판단을 내리면 참 좋겠지만, 인공지능도 결국 사람 손에 움직이기 때문에, 특정 지도자의 정치 성향에 따라, 사상 검열에 동원하려면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고, 인공지능이 뛰어날수록 그 검열은 숨 돌릴 틈도 없을 거다. 대중을 범죄로부터 보호한다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우지만, 이런 명분이 언제 숨 돌릴 틈 없는 감시 체계로 돌변할지 모른다는 얘기다.

 

 

▲ 3번 트랙 “Heresy” 코첼라 2026 영상

■ 신은 죽었는데 아무도 모르네

이런 시대의 위협을 경고하는 퍼포먼스가 올해 4월, 코첼라 페스티벌(Coachella 2026) 통해서 대중에게 전파되었다. 그 주인공은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그리고 보이즈 노이즈(Boys Noize)로 구성된 3인조 EDM 그룹, 나인 인치 노이즈(Nine Inch Noize). 팀에서 목소리를 맡은 트렌트 레즈너(Trent Reznor)는 무대에서 이렇게 외쳤다.

“God is dead, and no one cares. If there is a hell, I'll see you there.

신은 죽었는데 아무도 모르네. 지옥이 있다면 나는 거기 있는 너를 보겠지.”

여기서 레즈너가 죽었다고 지목한 신은 기독교에서 숭배하는 예수를 뜻할 수도 있겠으나, 그거 외에 다른 심층적이고 복잡한 의미로 읽는 게 더욱 현명하겠다. 여기서 죽었다고 지목한 신은 우리가 이때까지 알고 있던 세상 즉, 민주주의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던 신이 죽었다는 뜻이기도 하고, 디지털 봉건제가 시작되고, 영주들이 신의 자리를 차지하려 서로 싸우는 모습에서, 그 누구도 신이 될 수 없음을 알리는 외침이기도 하다. 디지털 영주들이 신으로 거듭나서 세우고자 하는 왕국의 모습을 레즈너는 어떻게 폭로했을까.

“His perfect kingdom of killing, suffering, and pain.

그의 완벽한 왕국은 죽음과 고난과 고통으로 이뤄졌지.”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사회는 겉으로는 말끔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공지능은 말끔한 전쟁 무기가 되기도 했다. 심층학습 인공지능은 실제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국-이란 전쟁 등에 투입되면서, 21세기에 벌어진 그 어떤 전쟁보다 심각한 사상자 규모를 만들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사실에 대해 침묵한다. 인공지능이 세상을 평화롭게 만든다는 말은 온통 거짓말인 셈이다.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사회의 모습 이면에는 이토록 잔혹하고 거대한 죽음이 있고, 이런 전쟁과 죽음에 대한 정보마저, 인공지능으로 말끔하게 검열하는 것이 디지털 봉건제의 민낯이다.

피터 틸은 자신이 투자하는 인공지능 기술과 트랜스휴머니즘을 옹호할 속셈으로, 기독교 우파와 결합하고 거기에 성경을 인용한다. 피터 틸은 그들의 재림 예수가 되기를 작정한 거다. 여기에 레즈너는 외친다. “God is dead, and no one cares!”

 

 

▲ 8번 트랙 “Closer” 코첼라 2026 영상

■ 기생충처럼 우리 뇌로 파고드는 인공지능

서민들은 이미 생성형 인공지능이 주는 편리함에 실컷 찌들어서, 인공지능을 향한 비판 능력을 잃어버렸다. 빅테크 기업들은 사람 뇌에 인공지능 칩을 심는 시도를 임상 실험 대상자에게만 할 뿐, 대중에게는 아직 하지 않았다. 그러나 대중의 뇌는 이미 인공지능 없이는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칩은 아직 뇌에 심지도 않았는데, 대중은 이미 뇌에 인공지능 칩이 심어진 것처럼 살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 뇌에 심어진 인공지능은 우리의 지식과 정보를 빨아먹는 기생충이다. 이 기생충은 농노에게서 착취한 지식과 정보를 고스란히 영주에게 전송한다. “Heresy” 다음 곡으로 울려 퍼지는 “Parasite”는 바로 이런 디지털 봉건제 풍경을 묘사한다. 그렇게 우리는 영주가 우리 뇌에 심은 기생충에게 지식도 뺏기고 정보도 뺏기고 사유하는 능력마저 뺏기며 살아간다.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알고리즘에는 숏폼 영상들이 범람한다. 우리 삶의 맥락을 어떻게 1분으로 요약할까. 그런데 숏폼 영상은 우리 삶을 1분 안에 욱여넣느라, 맥락을 모두 잘라낸다. 삶의 맥락이 사라진 자리에 개인의 존엄과 개성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문화는 사람을 그저 산업의 복제품으로 만든다. “Copy of a”는 인공지능 시대에 들어서며 더욱 심각해진 인간 소외 현상을 노래했다. 원곡보다 격렬해진 곡 전개는 인간 소외 현상이 13년 전보다 더욱 심각해졌다고 알리는 다급한 외침이다.

영주들은 안락하기만 할까. 아니, 영주들은 오히려 이 사태가 맞이할 참상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누구보다 가까이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누군가 이 사태를 멈추면, 시스템을 멈춘 사람이 먼저 무너질 걸 너무 잘 알기에 멈추지 못하고, 위태롭게 생존하고 있는 거다. 인간 소외 현상과 세계 멸망은 점차 다가오는데, 그 누구도 멈추지 않고 이 광기 어린 질주를 계속 하고 있으니, 누구에게 멈추라고 외치면서도, 정작 자기는 멈추면 안 된다고 스스로 최면을 건다. 이런 디지털 영주들의 추악한 위선을 “Me, I'm Not”에서 노래한다. 영주들도 알고 보면 외롭고 불쌍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런 위선이 역겨운 건 어쩔 수 없다.

레즈너가 이 모든 세계 멸망과 인간 소외를 노래하면서 닿은 결론은 믿음이다.

“Give me something to believe in, as alive as you need to be.

나에게 믿음을 줘, 네가 필요한 만큼 살아갈 수 있게.”

이 앨범에서 인공지능에 의한 세계 멸망을 경고했다는 걸, 특히 잘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앨범 도입부에서 바로 이어지는 노래가 “Vessel”인데, 이는 레즈너가 나인 인치 네일스 이름으로 2007년 발표한 앨범 “Year Zero” 수록곡이다. 이외에도 앨범에는 “Year Zero” 앨범 수록곡을 보이즈 노이즈 손으로 다시 만든 곡을 두 곡 더 수록하였는데, 7번 트랙 “Me, I'm Not”과 9번 트랙 “The Warning”이 그것이다. 그러나 “Year Zero” 앨범에선 세계 멸망의 원인을 종교와 정치로 지목했지만, 이 앨범에선 종교와 정치를 빼놓고, 그 자리를 인간 소외 현상으로 채웠다. 레즈너는 이 앨범을 통해, 우리가 알던 세상은 이미 멸망했고, 디지털 봉건제 “원년(Year Zero)”이 시작되었다는 걸 알린다.

 

 

▲ 12번 트랙 “As Alive As You Need Me To Be” 코첼라 2026 영상

■ 인공지능을 혁명 도구로 역이용하자

이 앨범은 보이즈 노이즈가 나인 인치 네일스 37년 활동에서 노래 몇 가지를 건져 새롭게 만든 결과물이다. 나인 인치 네일스는 원래 록 음악에 디지털 연주를 적극적으로 접목한 음악이었지만, 보이즈 노이즈 손에서 다시 태어난 나인 인치 네일스는 아날로그가 전부 빠지고, 온전한 디지털 음악이 되었다. 여기서 레즈너는 디지털에 먹힌 인간이 아니라, 디지털을 먹은 인간이다. 여기서 레즈너는 인공지능에 휘둘리는 인간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휘두르는 인간이다. 여기서 꿋꿋이 중심을 지키는 건, 트렌트 레즈너의 목소리다. 뛰는 심장과 따스한 피를 가진 필멸하는 사람의 목소리. 신은 죽었다고 외치는 그의 목소리가 나를 살린다.

레즈너는 30년 넘게 줄곧 세계 멸망과 인간 소외를 노래했다. 레즈너가 노래하던 것들은 오히려 지금 더 선명해졌다고, 보이즈 노이즈는 컴퓨터를 연주하며 말한다. 내가 트렌트 레즈너 팬을 자처한 지도 어느덧 17년이 흘렀다. 17년 만에, 보이즈 노이즈 손에서 새롭게 태어난 나인 인치 네일스 노래들을 듣고 있으니, 새로운 마음으로 트렌트 레즈너 팬이 된 기분을 느낀다. 나에게 트렌트 레즈너를 새롭게 사랑할 마음을 준 보이즈 노이즈에게 깊은 감사를 올린다.

나는 이번 코첼라, 나인 인치 노이즈 무대를 보며, 1994년 우드스톡(Woodstock) 무대를 떠올렸다. 거기서 레즈너는 온몸에 오물을 뒤집어 쓰고 무대에 올랐다. 우드스톡 페스티벌 25주년 기념으로 열린 무대였는데, 레즈너가 그 무대를 모독한 것이다. 우드스톡이 거대 자본에 더럽혀졌다며 비판한 거다. 코첼라? 그것도 결국 거대 자본이 벌이는 다 짜놓은 판이다. 거기에 무슨 자유가 있고 존엄이 있겠는가. 트렌트 레즈너도 결국, 거대 자본에 수혜를 입은 자본주의 노예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는 영주의 더러운 꼴을 폭로할 줄 아는 노예였다. 오히려 거대 자본 시스템 안에 철저히 침투했기 때문에, 더욱 치명적인 내부 고발이 가능했다. 레즈너는 1994년 우드스톡 때 그랬던 것처럼, 2026년 코첼라 무대를 멋지게 모독했다.

내가 인공지능과 숏폼을 이토록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그것들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도 매일 인스타그램 켜고, 매일 릴스 보고 유튜브 본다. 내가 디지털 봉건제 관해서 대화를 가장 열심히 나눈 상대는 사람이 아니라 인공지능이다. 이런 위험한 얘기를 어떻게 사람이랑 나누겠는가. 인공지능과 숏폼을 혁명 도구로 역이용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핵무기가 자기 나라 손에 있을 땐 든든하지만, 남의 나라 손에 있을 땐 무서운 것처럼, 인공지능은 디지털 영주들이 농노들을 통제하는 강력한 수단이기도 하지만, 영주들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무기로 역이용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인공지능에 자기 사유를 맡기는 사람들이 많지만, 인공지능으로 자기 사유를 증폭시키는 사람들도 많다. 민주주의는 죽었지만, 민주주의가 남긴 유산들은 아직 작동하고 있다. 유산들이 남아있을 때, 영주들을 향해 인공지능을 최대한 역이용해야 한다. 그럴 때, 우리가 디지털 봉건제 시대에 맞이할 재앙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고, 심해지는 인간 소외 현상에 맞서 우리 존엄을 지킬 수 있다.

레즈너가 노래하는 자살 충동이 오히려, 내가 살아갈 유일한 이유가 되어주었던 날들을 다시 떠올린다. 그의 노래는 그때처럼 나에게 살아갈 힘을 준다. 디지털 영주들이 엉망으로 망쳐놓은 아픈 세상이지만, 내가 여기에 저항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살아갈 이유가 충분하다. 이 저항에 동참하겠는가. 우리의 저항은 EDM처럼 신나고 즐겁다. 우리는 분노와 절망으로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지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음악에는 분명 분노와 절망으로 딱딱해진 마음을 신나고 즐겁게 어루만지는 힘이 있다. 우리는 인간의 존엄을 삭제하려는 시대의 흐름에 맞서, 신나고 즐겁게 저항할 것이다.

 


트랙리스트

1. Intro
2. Vessel
3. She's Gone Away
4. Heresy
5. Parasite
6. Copy of a
7. Me, I'm Not
8. Closer
9. The Warning
10. Memorabilia
11. Came Back Haunted
12. As Alive As You Need Me To 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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