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명반 에세이 108: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 The Next Day
사랑으로 단 하루 영웅이 될 수 있었던 오늘이 지나면
삶이란 참 이상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렇다. 내가 무엇을 바라는지 들여다보면 더욱 그렇게 느낀다. 나는 언제나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만 바란다. 바라고 바라도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면, 나는 왜 그것을 바랄까. 이루어지지 않는 바람은 좌절만 부를 텐데, 왜 나는 그런 좌절을 멈출 수 없는 걸까. 바라던 걸 얻게 되어도 문제다. 바라던 걸 이루면 그것은 더 이상 바람이 아니다. 이루었을 때 느낀 기쁨은 잠깐이고, 어느새 가슴은 싸늘하게 식어버린 빈 껍데기가 되어버린다. 가슴은 다시 뜨겁게 바랄 것을 찾아 헤맨다. 삶에 바람이란 이토록 좌절과 식은 껍데기 사이를 오가며 돌고 돈다. 오스카 와일드 말 중에 이런 게 있다.
“인생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다. 첫째는 우리가 바라는 것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둘째는 우리가 바라는 것을 얻는 것이다.”
삶을 누리며 기뻐하기엔, 나는 이미 돌고 도는 굴레에 지쳤고 피곤할 뿐이다. 세상에 다툼이 끊이지 않는 건, 사람들이 바라는 게 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 바라는 게 있고, 저 사람이 바라는 게 있는데, 서로 바라는 게 다르면 다툼은 꼭 일어나게 된다. 서로 바라는 게 없으면, 서로 다툴 일도 없고, 다툴 일이 없으면, 삶에 고민도 없을 거다. 그런데 왜 자꾸 나는 언제나 바라는 게 있을까. 왜 자꾸 나는 이룰 수 없는 것만 바랄까. 삶이란 왜 이렇게 어지러울까.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이 어지러운 삶을 버텼나. 돌아보니 그 힘은 사랑에서 왔다. 사랑이란 너를 위해 죽는 것이 곧 나를 더 큰 삶으로 이끌어주는 힘이라는 걸 깨닫는 것. 네가 나를 사랑하면, 너는 나의 영웅이 되고, 내가 너를 사랑하면 나는 너의 영웅이 된다. 우리는 기꺼이 서로를 위해 영웅이 되어주었다. 우리는 단 하루 사랑으로 영웅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사랑으로 영웅이 될 수 있었던 오늘이 끝나면, 다음 날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다음 날도 사랑으로 서로 영웅이 되어줄 수 있을까. 그런 날이란 벌써 어제가 되었다. 오늘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바람이 식어 빈 껍데기가 된 메마른 가슴으로는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없다. 오늘 나는 영웅이 될 수 없다.
데이비드 보위 앨범 “The Next Day” 표지를 바라본다. 너저분한 꼴이다. 보위 명반 “ "Heroes" ”를 더럽힌 표지. “ "Heroes" ” 표지에 새하얀 정사각형을 주차위반 딱지처럼 붙여놓았다. 그 위에 아무 멋도 없는 메마른 글씨로 “The Next Day”를 적어놓았다. 자기 영광을 자신이 직접 모독한 셈이다. 이게 뭐지. 이건 사랑으로 단 하루 영웅이 된 날이 끝난 다음 날을 뜻한다. 슬프게도, 다음 날은 사랑이 떠나버린 날이고, 사랑할 수 없는 날이고, 끊임없이 어지러운 날이다. 보위는 앨범과 같은 이름을 가진 노래로 이렇게 말했다.
“Here I am, not quite dying, My body left to rot in a hollow tree. Its branches throwing shadows on the gallows for me. And the next day, and the next, and another day.
나 여기 있어, 아직 죽지도 않았는데, 내 몸은 썩어서 텅 빈 나무 속에 남겨졌네. 나뭇가지들은 나를 위한 교수대 그림자로 손을 뻗어.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또 다른 날에도!”
나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죽임을 당한다. 나는 매일 사람들에게 내 삶을 부정 당한다. 매일 죽임 당하는 기분으로 살아간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또 다른 날에도!
세상은 거룩한 사제와 더러운 창녀만 있는 게 아니다. 세상은 오히려 더러운 사제와 거룩한 창녀로 이뤄져 있다. 아무도 안아줄 수 없어서 거룩해진 사제. 너무 많은 사람을 안아주느라 더러워진 창녀. 그러나 사제는 그릇된 욕정으로 창녀를 안고, 창녀는 그런 사제를 안아주는 게 싫다. 사제는 더럽지만, 여전히 거룩한 곳에서 일하는 사제다. 창녀는 거룩하지만, 여전히 더러운 곳에서 일하는 창녀다. 거룩한 창녀와 더러운 사제, 이 둘 중에 누구에게 기댈 텐가. 둘 중에 그 누구도 내가 믿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사제와 창녀가 어지럽게 뒤엉키는 세상에서, 내 삶은 넋을 잃고 굴러간다. 내 삶이 데굴데굴 구르니까 마치, 내 삶이 춤을 추는 것 같다. 사랑할 수는 없어도, 춤을 출 수는 있다. 사랑할 힘도 없을 때, 무슨 힘으로 춤을 출까.
춤이란 뭘까. 차라리 삶이란 뭘까 묻는 게 훨씬 쉬운 질문 같다. 춤이란 무엇인지 얘기하려면 책을 열 권 써도 모자랄 거다. 그런데 춤을 주제로 쓴 책을 열 권 이상 읽은 사람만 춤을 출 수 있을까. 그건 아니다. 우리는 삶이 뭔지 모르면서 어쨌든 살아있으니까, 춤이 뭔지 몰라도 춤을 출 수 있다. 그래도 여기서 감히 정의를 내려보자. 이런 정의마저 나중엔 쓸모없어질 테지만, 그래도 어떤 몸짓이든 잡아야 하니까, 내 몸짓을 두고 어떤 말이라도 해야 한다.
춤은 쓸모없는 몸짓이다. 어디 쓸모가 있고, 목적이 있으면, 그건 춤이라고 할 수 없다. 쓸모와 목적을 가지면 그건 춤이 아니라 일이다. 먹고살기 위해 무엇인가 만드는 일이란 춤이 될 수 없다. 춤은 쓸모없는 몸짓이라야 춤이다. 그런데 내가 아까 말하기를 삶이 너무 어지럽게 굴러가니까 춤 같다고 했다. 내 삶은 춤인가. 내 어지러운 삶은 춤인가. 내 삶은 쓸모가 있는가. 내 삶은 목적이 있는가. 아니, 내 삶은 쓸모도 목적도 없다. 그래서 내 삶은 춤이다. 춤은 쓸모도 목적도 없어서 즐거운 거다. 이처럼 삶이란 쓸모도 목적도 없을 때 즐겁다.
나에게 쓸모를 요구하고 목적을 요구하는 사람들로부터, 나는 끊임없이 어지러움을 느낀다. 내가 느낀 이 오래된 어지러움이란, 내 삶을 기어코 쓸모없는 걸로 만들겠다는 방어기제였을까. 내 삶을 기어코 즐거운 춤으로 만들겠다는 저항이었을까. 삶에는 반드시 쓸모와 목적이 있어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오히려 쓸모와 목적이 삶의 아름다움을 뺏어간다. 삶이란 쓸모와 목적이 없어도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 사랑 없이 쓸모와 목적을 추구하는 삶에는 즐거움이 없다. 사랑은 사람이 추구해야 할 유일한 쓸모다. 삶이란 있는 그대로 이미 아름답다는 걸 흠뻑 느낀 사람이라야, 진정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
사랑이란 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랑이란 너를 내 목적을 이룰 수단으로 다루지 않는 것이다. 쓸모와 목적으로 얼룩진 세상에서 사랑이란 참 어렵다. 그러니 사랑할 수 없을 땐, 춤을 춰야 한다. 춤으로 쓸모와 목적을 떨쳐내고, 삶을 되찾아야 한다. 삶에서 누리는 맑은 기쁨이란, 춤으로 되찾을 수 있다.
보위는 사제와 창녀가 뒤엉키는 뒷골목으로 들어간다. 보위는 뒷골목에서 “Dirty Boys(더러운 녀석들)”이 된다. 더러운 녀석들은 별이 된다. 누구나 스타가 되기를 꿈꾸지만, 별은 사실 사람이 살아갈 수 없는 지옥 같은 환경이다. 지금까지 천문학이 밝혀낸 건, 빛의 속도로 135억 년을 달려도 도무지 끝이 나지 않는 드넓은 우주에서,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은 오직 지구뿐이라는 사실이다. 별은 지옥이다. 별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지옥에서 춤춘다. 그러나 “오늘 밤 별들이 내려온다.(The Stars are out tonight.)” 별이 저 하늘에 추락하면, 내 소원을 들어주는 고맙고 예쁜 별똥별이지만, 별똥별이 우리가 사는 땅에 추락하면 참 곤란하다. 그런데 별들이 이제는 우리가 사는 땅으로 온다니!
세상은 혼돈에 빠진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미친 세상에서도 춤을 춘다. 총을 난사하며 사랑을 고백하겠다는 사람의 손을 잡고 춤을 춘다. 폭력으로 얼룩진 세상이지만 그래도 우리는 춤을 출 수 있다. 아니, 춤을 춰야지 우리는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다. 폭력으로 누구를 죽이기보다, 우리 같이 손을 잡고 폭력적으로 춤추자. 너무 어지러워 토할 때까지 춤추자. 사랑이 없을 때는 춤을 춰야 한다. 그런데, 사랑 없이 춤추는 힘은 어떻게 얻는 걸까. 심연이 있으면, 사랑 없이도 춤출 수 있다. 얄팍한 사람은 거룩한 사제도 더러운 창녀도 품을 수 없다. 심연을 가진 사람은 더러운 사제도 거룩한 창녀도 모두 품을 수 있다.
심연은 좋은 거다. 심연이란 낱말이 요즘 왠지 좋은 뜻보다는 나쁜 뜻으로 더 많이 쓰이는 거 같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감춰진 것들, 그중에서도 더럽고 끔찍한 걸 심연이라 부르는 용례가 많아진 느낌. 그래도 심연은 좋은 거다. 심연에 그토록 더럽고 끔찍한 것들이 많은 이유는 역설적으로, 심연이 그것들을 전부 받아줄 만큼 너그럽고 상냥하기 때문이다. 심연은 그 모든 걸 넉넉하게 받아주는 그릇이다. 우리는 마땅히 심연을 가져야 한다. 심연은 너그럽고 상냥한 침묵이다.
보위는 “Where Are We Now?”를 노래하며, 베를린에서 자신의 심연이 더욱 깊어지던 때를 떠올린다. 자기 삶에도 온갖 더럽고 끔찍한 사건들이 있었지만, 자기 심연이 넓어진 덕분에 그 모든 걸 상냥하게 품어주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때. 그런 상냥하고 너그러운 침묵 속에 살다가, 지금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내 안에는 여전히 베를린이 있을까. 베를린으로 돌아가면 다시 심연을 넓힐 수 있을까. 베를린으로 돌아갈 수 없다면 다른 곳에서 심연을 넓혀야 할까. 어쩌면 내 심연을 더 넓혀줄 그곳은 저기 삶 너머에 있을까. 오늘은 사랑으로 단 하루 영웅이 되었지만, 내일은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 내일도 나는 사랑으로 단 하루 영웅이 될 수 있을까. 심연, 그것은 사랑 없이도 삶을 지속하게 만드는 힘이다. 심연과 더불어 사랑 없는 춤을 추면서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내 가슴 한구석에서 사랑이 싹틀 거다.
내가 바랐던 걸 돌아본다. 나는 왜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뻔히 다 알면서도 바랄까. 아니, 바람은 꼭 이루어지지 않아도 괜찮다. 바람은 바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하다. 바람은 나를 살아있게 만든다. 바람 없는 삶은 삶이 아니다.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아도 삶을 만든다. 그러니 이루어지지 않는 바람도 내 삶에 필요하다. 내가 이루어지지 않는 바람에 괴로운 건, 바람에 쓸모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루어지지 않는 바람이 나를 춤추게 만든다. 내 바람이 이루어진다면 훨씬 더 좋지. 어차피 새로운 바람은 또 불어올 테니까. 그러나 내 오랜 바람이었던 너와 손을 잡게 된다면, 나는 너의 손을 놓지 않을 테야. 나는 사랑 없이도 너와 손을 잡을 수 있다. 나는 사랑 없이도 너와 춤출 수 있다. 내가 너를 사랑할 수 없을 때는 내 심연으로 너를 안아주리라. 나는 너의 손을 잡고, 너와 함께 살아가리라.
트랙리스트
1. The Next Day
2. Dirty Boys
3. The Stars (Are Out Tonight)
4. Love Is Lost
5. Where Are We Now?
6. Valentine's Day
7. If You Can See Me
8. I'd Rather Be High
9. Boss of Me
10. Dancing Out in Space
11. How Does the Grass Grow?
12. (You Will) Set the World on Fire
13. You Feel So Lonely You Could Die
14. He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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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 "Hero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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