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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스페셜/ROCK BEST 5

슈게이징(Shoegazing) 추천 명반 BEST 5 - 락 서브장르 탐험 1

인생명반 스페셜 20

 

■ 지독할 정도로 내향적인 굉음

80년대 후반, 소련에 불어 닥친 위기는 91년 12월 “소련 붕괴”에 이르게 된다. 소련 붕괴는 곧 “냉전 시대”의 종료를 의미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이라는 이름으로 이념과 이념의 충돌이 10년, 20년, 30년 넘게 지속되면서, 세대가 교체되었고, 교체된 세대는 이전 세대처럼 적극적으로 혁명에 참여하기보다는, 그저 전 세대의 싸움을 무기력하게 지켜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전쟁 이후 점차 안정되어가는 상황 속에 자랐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옮겨가던 과도기 속을 살았다. 이들에게 이념과 이념의 충돌이란 그저 낡은 것에 불과해보였고, 그들은 점점 사회보다는 자기 자신의 문제에 골몰하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X세대”의 출현이었던 거다.

 

음악은 시대를 반영한다. X세대의 출현도 음악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록도 이런 X세대의 요구에 맞게 변화했다. 기존의 공격적이고 외향적인 사운드보다는 부드럽고 내향적인 사운드로 변해갔다. 이렇게 기존의 록과는 다른 새로운 록의 흐름을 만들어간다는 의미로 “얼터너티브 록(Alternative Rock)”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얼터너티브 록 안에서도 수많은 서브장르들이 탄생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강렬한 개성을 지닌 장르를 하나 뽑자면 역시 “슈게이징(Shoegazing)”을 뽑을 수 있겠다.

 

슈게이즈(Shoegaze)라고도 불리는 이 장르는, 신발(Shoe)을 뚫어져라 쳐다본다(Gaze)는 의미로서, 이름에서부터 특유의 외곬 고집과 내향적인 성격을 반영한다. 기존 록에서 중시하던 화려한 연주보다는, 록이 뿜어내는 굉음(Noise)과 그 질감에 극도로 초점을 맞춘 장르다. 신발을 응시한다는 장르명의 의미도, 기타보다 바닥에 있는 이펙터를 더 많이 쳐다본다는 의미에서 비롯되었을 정도. 그다지 부드럽지는 않지만, 내향적인 면에 있어서 타 장르의 추종을 불허하는 지독한 성격을 지닌 장르라 할 수 있겠다. 지금부터 5개의 명반과 함께, 슈게이징 특유의 지독하도록 내향적인 세계로 들어가 보자.

 

* 먼저 발매된 순서대로 소개합니다. 개인적 취향이 반영된 추천이므로, 나오리라 기대하신 음반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이 점 양해바랍니다.

 


  

■ 지저스 앤 메리 체인(The Jesus And Mary Chain) - Psychocandy (1985)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결성된 밴드, “지저스 앤 메리 체인”은 “슈게이징”이라는 장르명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그 장르의 초석을 다진 밴드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들의 음악은 흔히 “프로토 슈게이즈(Proto-shoegaze)”라고도 불린다. 밴드의 중심축을 담당하는 두 멤버, 라이드(Reid) 형제는 단 한 번도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윌리엄 라이드(William Reid)”는 오히려 이런 자신들의 특성 덕분에, 기존 음악의 틀에 묶이지 않고, 더욱 다양한 음악적 실험이 가능하다고 자부한다. 이들의 첫 번째 앨범 “Psychocandy”는 이런 외곬 태도를 반영하듯, 지금 들어도 낯선 굉음들이 부유한다. 고막을 창으로 깊게 쑤시는 것 같은 날카로운 굉음들이 난무하는데, 고막에 가해지는 고통은 왠지,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이방 세계로 이끌어주는 것 같다.

 

 

▲ 1번 트랙 “Just Like Honey” 뮤직비디오

1번 트랙 “Just Like Honey”를 들어보면, 슈게이징보다는 조이 디비전(Joy Division) 느낌의 포스트 펑크(Post-punk)에 더 가깝다고 느낄지 모르겠으나, 듣다 보면 기존 포스트 펑크와는 확실히 차별화를 두고 있는 날카로운 사운드 질감을 느낄 수 있다. 이들의 슈게이징 색채가 좀 더 두드러지는 부분은 2번 트랙 “The Living Dead”부터다. 고막을 찢을 듯이 다가오는 초고음의 굉음이 구조를 지배하는 곡으로서, 처음에 다소 시끄럽게 느껴질 수 있으나 어느 순간 이 굉음 속에서 쾌감을 느끼는 본인의 감정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3번 트랙 “Taste The Floor”에서는 2번 트랙에 비해 좀 더 울퉁불퉁한 느낌의 굉음을 만날 수 있다. 5번 트랙 “Cut Dead”에선 나름 부드러운 서정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더니, 6번 트랙 “In A Hole”에서 아무 예고도 없이 굉음을 한껏 때려 박는 이들의 고약한 성질도 눈여겨볼만하다. 마지막 14번 트랙 “It’s So Hard”에서 절규 섞인 보컬이 부유하는 굉음들과 결합할 때까지, 이 앨범은 고막이 찢길 것 같은 굉음의 행진을 멈추지 않는다.

 

트랙리스트

1. Just Like Honey

2. The Living End

3. Taste the Floor

4. The Hardest Walk

5. Cut Dead

6. In a Hole

7. Taste of Cindy

8. Never Understand

9. Inside Me

10. Sowing Seeds

11. My Little Underground

12. You Trip Me Up

13. Something's Wrong

14. It's So Hard

 


 

■ 라이드(Ride) - Nowhere (1990)

90년대 영국을 휩쓴 밴드 오아시스(Oasis)에서, 2000년대 베이시스트로 활동한 “앤디 벨(Andy Bell)”이라는 멤버를 아는가? 그가 90년대엔 자신이 만든 “라이드”에서 프론트맨으로 활동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사실 슈게이징이라는 장르가 가장 많은 인기를 누린 영국에서 조차 마이너 장르라서, 국내 팬들에겐 “라이드”라는 밴드가 생소한 밴드일 것이 당연할 것이다. 그러나 “라이드”는 슈게이징을 논할 때 절대 빠지지 않는 밴드로서, 특히 이들의 1집 앨범 “Nowhere”는 슈게이징 최고의 명반으로 항상 언급된다. 앞으로 소개할 슈게이징 음반들에 비하면, 조금은 활발하고 외향적인 느낌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여전히 슈게이징 특유의 외곬 고집으로 만들어낸, 굉음의 향연을 물씬 느낄 수 있다.

 

 

▲ 5번 트랙 “Dreams Burn Down”

1번 트랙 “Seagull”부터 쫀득쫀득한 베이스 연주를 뚫고 질주하는 기타 사운드가 일품이다. 그 사이로 층층이 쌓이는 굉음들은 청자를 낯선 세계로 인도한다. 5번 트랙 “Dreams Burn Down”에서는 느린 연주와 격렬한 연주가 번갈아 청자의 가슴을 때리며 기분을 들었다 놨다 한다. 끈적끈적하게 곡을 지배하는 굉음과 그 사이로 스며드는 애수 섞인 피아노 연주, 그리고 보컬이 인상적인 7번 트랙 “Paralysed”를 지나면, 다음 트랙 “Vapour Trail”에서 연주가 조금 활기찬 느낌으로 옮겨가는데, 활기찬 연주 속에서 다시 고개를 드는 애수가 마음을 적신다.

 

트랙리스트

1. Seagull

2. Kaleidoscope

3. In a Different Place

4. Polar Bear

5. Dreams Burn Down

6. Decay

7. Paralysed

8. Vapour Trail

 


 

■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 - Loveless (1991)

아일랜드에서 결성된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은 슈게이징의 상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밴드다. 따라서 이들을 대표하는 앨범 “Loveless”는 슈게이징을 상징하는 앨범이 되었다. 아니, 사실상 이들의 2집 앨범 “Loveless” 덕분에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이 슈게이징을 상징하는 밴드가 되었다고 말하는 게 더 알맞을 것이다. 그만큼 언제나 슈게이징을 논할 때, 첫머리에 등장하는 앨범이다. 그러나 이런 상징성과는 달리, 처음 접하면 다소 당혹스러울 수 있는 앨범이다. 슈게이징 자체가 워낙 난해한 장르지만, 이 앨범은 그중에서도 으뜸으로 난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앨범을 여기서 소개하는 앨범들 중에 가장 나중에 들어볼 것을 권한다.

 

 

▲ 1번 트랙 “Only Shallow” 뮤직비디오

그야말로 특징이 없는 게 특징인 앨범이라 말할 수 있겠다. 개성이 없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사운드의 특징을 철저하게 배제하려 노력한 탓에, 특징의 배제라는 요소가 오히려 개성으로 굳어버린 역설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보컬이 읊조리는 멜로디는 분명 편안하게 늘어지는 느낌인데, 악기 연주는 스피커를 터뜨려버릴 듯이 날뛰고, 그러다가 갑자기 소리가 잦아들다가, 다시 굉음들이 부유하기도 하고, 정말 두서없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고나 할까. 이런 사운드가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진다. 그래도 명반이라 불리는 작품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는 법, 다른 밴드를 통해 충분히 슈게이징과 친해진 다음에 들으면, 이 작품이 왜 그 많은 슈게이징 음반들 중에서 으뜸이라 불리는지, 이성보다 본능이 앞서서 깨닫게 될 것이다.

 

트랙리스트

1. Only Shallow

2. Loomer

3. Touched

4. To Here Knows When

5. When You Sleep

6. I Only Said

7. Come in Alone

8. Sometimes

9. Blown a Wish

10. What You Want

11. Soon

 


 

■ 슬로우다이브(Slowdive) - Souvlaki (1993)

슈게이징 입문에 가장 좋은 음반으로 소개하고 싶다. 영국 잉글랜드에서 결성된 “슬로우다이브”는 슈게이징 특유의 색깔에 편안한 팝의 색채를 섞어, 대중이 슈게이징에 좀 더 가까워지도록 만든 밴드다. 그러나 이런 설명도, 앞서 언급한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에 비해서 그렇다는 얘기지, 사실 슬로우다이브도 마냥 듣기 편한 그런 밴드는 아니다. 그래도 음악을 들으며 우주를 둥둥 떠다니는 느낌을 주는 면에 있어선 단연 최고의 밴드라 할 수 있다. 이들의 개성이 가장 진하게 묻어나는 앨범은 이들의 정규 2집 앨범 “Souvlaki”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과 함께 슈게이징이라는 장르의 정체성을 가장 확실히 다진 밴드로 평가 받으며, 슈게이징 특유의 지독할 정도로 내향적인 사운드를 느끼기에 더없이 좋은 밴드다. 이들의 대표앨범 “Souvlaki”를 듣고 있으면, 이렇게 낯선 굉음들이 난무하는데도 이상하게 편안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슈게이징 특유의 지독한 내향성을 드러내면서도, 은근히 팝과의 결합을 꾀하는 부분이 인상적인 작품이라서, 수록곡마다 뚜렷한 개성이 느껴진다.

 

 

▲ 1번 트랙 “Alison” 뮤직비디오

처음엔 편안한 연주로 시작하다가 낯선 굉음이 스며들 듯 다가오는 1번 트랙 “Alison”부터 청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무거운 비트가 곡을 지배하는 가운데, 가볍게 바닥을 훑고 지나가는 사운드와 둘의 융합을 돕는 보컬이 인상적인 4번 트랙 “Sing”도 눈여겨볼만하고, 굉음이 아닌 말끔한 톤을 먼저 앞세운 5번 트랙 “Here She Comes”의 변화는 갑작스러우면서도 앞뒤 트랙과 자연스러운 연결을 이뤄내는 게 놀랍다. 그 다음 6번 트랙 “Souvlaki Space Station”에서 수록곡 중에 가장 격렬한 굉음을 내뿜으며, 청자를 다시 놀라게 만드는 재주도 훌륭하고, 7번 트랙 “When the Sun Hits”에서 팝 연주와 슈게이징 연주가 번갈아 구조를 이끌어가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굉음을 적절히 사용하면서도, 팝에서 느낄 수 있는 친숙함마저 놓치지 않으며, 슈게이징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킨 명반이다.

 

트랙리스트

1. Alison

2. Machine Gun

3. 40 Days

4. Sing

5. Here She Comes

6. Souvlaki Space Station

7. When the Sun Hits

8. Altogether

9. Melon Yellow

10. Dagger

 


 

■ DIIV - Is The Is Are (2016)

2011년 미국 뉴욕 주에서 결성된 “DIIV”는 슈게이징이 전성기를 맞은 90년대에 등장한 밴드도 아니고, 영국이나 그 근처에 있는 나라에서 결성되지도 않았다. 슈게이징과 한참 멀리 떨어진 시기와 환경에서 결성되었음에도, 90년대 슈게이징의 향수를 그대로 재현하는 놀라운 업적을 달성했다. 이들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80년대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밴드 “큐어(The Cure)” 같은 색채가 가장 먼저 느껴지고, 조금 더 듣고 있으면 역시 앞서 언급한 잉글랜드 밴드 “슬로우다이브” 같기도 하다. 이토록 80년대 혹은 90년대 영국 음악의 색채를 그대로 2010년대에 들고 오면서도, 이토록 낡은 느낌 없이 세련되게 느껴지는 건, 2020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슈게이징이라는 장르가 유효하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아 감회가 남다르다. 그 당시에 펼쳐진 수많은 음악적 실험 중에서, 아직까지도 대중에게 익숙해지지 않은 방식이 널려있다는 얘기다. 우리는 어쩌면 음악을 너무 빨리 지나쳐버린 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90년대 영국 풍 음악을 연주하는 2010년대 밴드를 만나는 건 반갑다.

 

 

▲ 3번 트랙 “Bent (Roi's Song)”

이들의 정규 2집 앨범 “Is The Is Are”는 이들의 커리어 중에서 으뜸으로 뽑힌다. 영국의 대중음악 잡지 “NME”는 “2016년 올해의 앨범(NME's Albums of the Year 2016)” 7위에 이 앨범을 올렸으며, 미국의 대중음악 잡지 “피치포크(Pitchfork)”는 “독자가 뽑은 2016년 올해의 앨범 50선(Readers' Top 50 Albums 2016)”에 이 앨범을 선정했다. 3번 트랙 “Bent (Roi's Song)”는 부드러우면서도 기괴한 느낌의 연주가 이어지다가 서서히 굉음이 스며드는 느낌이 일품이다. 활기 찬 사운드와 게스트 보컬을 통해 분위기의 전환을 시도한 5번 트랙 “Blue Boredom (Sky's Song)”도 좋고, 9번 트랙 “Is The Is Are”부터 시작해, 10번 트랙 “Mire (Grant's Song)”를 거쳐, 11번 트랙 “Incarnate Devil”에 이를 때까지 점차 강렬해지는 굉음들을 마주하는 것도 즐겁다. 마지막 17번 트랙 “Waste of Breath”에선 고요한 듯 음산한 연주 속에 살며시 고개를 드는 굉음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트랙리스트

1. Out of Mind

2. Under the Sun

3. Bent (Roi's Song)

4. Dopamine

5. Blue Boredom (Sky's Song) (featuring Sky Ferreira)

6. Valentine

7. Yr Not Far

8. Take Your Time

9. Is the Is Are

10. Mire (Grant's Song)

11. Incarnate Devil

12. (Fuck)

13. Healthy Moon

14. Loose Ends

15. (Napa)

16. Dust

17. Waste of Br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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