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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조니 캐시(Johnny Cash) - American IV: The Man Comes Around

인생명반 에세이 89: 조니 캐시(Johnny Cash) - American IV: The Man Comes Around

 

대중음악과 찬송가의 경계를 허물다

 

■ 복음을 대중음악에 침투시켜야 한다

음악은 나의 종교였고, 예술이 나의 하나님이었다. 돌아보면, 음악과 예술이 나의 우상이었던 거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우상을 사랑한다. 앞으로도 나는 우상을 사랑할 것이고, 우상과 함께 울고 웃었던 모든 추억을 소중히 여길 것이다. 다만, 우상보다 더욱 많이 사랑하는 것이 생겼다. 이젠 우상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게 생겼다. 교회는 비록 달라졌어도, 예수님께 다시 돌아간 지금도, 대중음악을 통해 영성을 발견하는 일을 즐긴다.

 

조니 캐시, 그의 인생은 그런 의미에서 내게 깊이 와 닿는다. 그가 노래하는 걸 듣고 있으면, 수도자의 노래를 듣는 것 같다. 그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는데, 개신교 정신이란, 우리는 수도원에 들어가지 않고 생계 현장에서 하나님을 발견한다는 것이니까. 그는 평생 노래하는 생활인이었으나, 노래가 그의 수도 생활이었다. 그의 생전 마지막 앨범을 듣고 있으면, 그가 노래를 통해 얼마나 충실히 수도 생활을 했는지 느낄 수 있다. 세월의 흔적이 역력한 그의 거친 목소리를 듣고 있으면, 낡았다는 느낌보단 깊은 울림이 먼저 느껴진다. 관록, 이 관록이라는 단어가 마치 그를 위해 태어난 말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그의 48년 노래 인생을 정리하는 67집 앨범 “American IV: The Man Comes Around”를 들어보자.

 

예수님은 대중음악을 싫어하실까? 아니, 나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대중음악에 무척 관심이 많은 건 물론, 대중음악 현장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 이걸 확신하게 된 사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2020년 “롤링 스톤 선정 500대 명반” 목록 개정판이 나오면서 1위를 마빈 게이 “What's Going On” 앨범이 차지한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올해 5월 “애플 뮤직 베스트 앨범 100선” 1위를 로린 힐 “The Miseducation of Lauryn Hill” 앨범이 차지한 것이다. 두 앨범 모두 기독교 색채가 강하게 드러나는 앨범으로서, 대중음악에 영향력 있는 두 명반 목록에서 모두, 기독교 색채가 강한 앨범이 1위를 차지한 현상을 결코 우연이라 볼 수 없었다. 이는 분명, 예수님께서 대중음악을 복음 전파 수단으로써 적극적으로 사용하겠다는 뜻을 밝히신 것이라고 본다.

 

이슬람이 요즘,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슬람의 성장을 경계하고 대적하는데,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대중음악을 이용하라고. 기독교인들은 대중음악이 기독교 문화에 침투하는 걸 막아야 한다고 애를 쓰는데, 나는 정반대로 생각한다. 이슬람엔 노래와 춤을 죄악으로 여기는 문화가 있는데, 기독교는 오히려 노래와 춤을 교회 안에서 적극적으로 예배에 활용한 역사가 있다. 노래와 춤, 이게 기독교의 주력 선교 수단이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괜히 교회음악과 대중음악을 분리해서, 교회음악에 대중음악이 침투한다며 걱정하지 말고 반대로, 대중음악에 복음을 침투시킬 전략을 짜라.

 

종교색이 대놓고 드러나는 예술 작품은 무엇이든 대중의 외면을 받기 마련이지만, 조니 캐시 노래는 그렇지 않다. 반백년 세월을 대중의 눈에 가장 잘 들어오는 정상에서 노래했던 조니 캐시, 그답게 그의 목소리는 목소리 그 자체로 대중을 강하게 설득시킨다. 그래서 그가 무엇을 노래하든 일단 설득된다. 그러니까 그가 복음을 노래해도 그게 곧 대중음악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American IV: The Man Comes Around”는 대중음악에 어떻게 복음을 침투시킬 것인가 논할 때 좋은 이정표가 되어줄 앨범이다.

 

그가 이 앨범에서 노래한 “Hurt”는 특히 놀랍다. 이 노래 원곡은 트렌트 레즈너(Trent Reznor) 작곡에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노래이기 때문이다. 나인 인치 네일스, 90년대 미국에서 적그리스도 록 밴드로 악명 높았는데, 그런 밴드의 노래가 조니 캐시 목소리를 타고 찬송가로 바뀌었다. 신성모독 노래가 찬송가로 바뀌는 기적. 이 기적을 목격한 대중은 원곡을 초월했다며 찬사를 쏟아냈다. 이는 2억 회가 넘는 유튜브 조회수로 이어졌다.

 

 

▲ 2번 트랙 “Hurt” 뮤직비디오

 

▲ “Hurt”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 원곡

■ 미국을 노래한 사나이

2002년에 발매된 “American IV: The Man Comes Around”는 그 속을 미국인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들로 채웠다. 미국 내 음악인들이 노래하고 작곡한 곡들은 물론, 미국 밖에서 만들어졌지만 미국에서 널리 사랑 받은 곡들도 있다. 이 모든 노래를 미국을 대표하는 거장 가수, 조니 캐시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뜻깊은 앨범이다. 그는 밥 딜런(Bob Dylan)과 함께 미국 포크(Folk) 음악을 양분하는 기둥이었다. 그러나 밥 딜런은 미국으로 이민 온 유대인 가정 출신이었고, 컨트리(Country) 음악에서 멀어지는 활동을 펼치곤 했다. 반면 조니 캐시는 미국을 대표하는 종교인 개신교에 속했으며, 컨트리 음악에 더욱 가까웠다. 밥 딜런은 세계적인 가수 느낌이 좀 더 강했고, 조니 캐시는 미국 가수 느낌이 좀 더 강했다.

 

앨범 표지도 온통 검정색이다. 그는 무대에 오를 때 주로 검정색 옷을 입고 등장했는데, 이런 광경을 자주 지켜본 미국인들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 “Man in Black(검은 남자)”였다. 이 앨범은 조니 캐시에게, 자신의 노래 인생을 정리하는 앨범이라는 뜻을 가지며 동시에, 반백년 동안 미국 대중음악을 지켜온 거장 가수의 작별인사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앨범 제목이 “American(미국인)”인 것은 얼마나 의미심장한가.

 

앨범의 시작은 이 앨범의 유일한 신곡, 조니 캐시 작곡의 “The Man Comes Around”가 맡았다. 가사를 보면, 성경에 요한계시록 인용이 노래의 시작과 끝을 담당한다. 요한계시록, 이것은 예수님의 12사도 중 한 사람인 요한이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작성한 책으로, 성경 맨 끝에 자리 잡고 있는 책이다. 성경 맨 끝에 있는 만큼 그 내용은 세상의 종말과 예수 재림에 관한 내용들을 담고 있는데, 이는 조니 캐시가 자신의 기독교 신앙을 드러내는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세상에 종말이 닥치진 않았지만, 내게 있어 세상이란 내가 경험한 것이 전부이기에, 내 삶의 끝은 내 세상의 종말과 같다. 미국은 기독교가 세운 나라다. 미국을 대표하는 가수가 요한계시록을 노래하다니, 이 노래를 듣는 미국인들의 심정이 어땠을까. 저마다 자기 인생에 닥칠 아마겟돈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평생 기독교 신자로 살았지만 지난날을 돌아보니, 내 인생이 예수님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기엔, 그렇게 떳떳하지만은 않았던 거 같다. 나는 과연 예수님의 구원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행위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건 알지만, 내가 정말로 예수님을 믿었던 게 맞을까. 예수님을 믿었다면서 왜 그렇게 살았을까. 나는 과연 천국에 들어갈 은총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천국을 바라보는 희열과 구원을 의심하며 느끼는 두려움이 한 노래 안에 뒤엉킨다.

 

 

▲ 조니 캐시 “At Folsom Prison” 앨범 수록곡 “Folsom Prison Blues”

■ 탕자의 겸손한 고백

예수님, 저는 죄인입니다. 그렇게 조니 캐시 노래는 고백을 향한다. 지난날을 돌아보고 또 돌아보니, 나는 얼마나 죄 많고 나약한 사람이었던가. 실제로 조니 캐시는 미국 내에서 반항아로 유명했다. 그를 처음으로 인기가수 반열에 올려준 대표곡이 “Folsom Prison Blues”라는 노래로서, 교도소 수감자의 애환을 다룬 노래였다. 그런 그가 실제로 여러 교도소에서 위문 공연을 했으며, 자신도 마약, 절도 등으로 수감되기도 했다. 그는 약물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1968년 캘리포니아 주립 폴섬 교도소(Folsom State Prison) 위문공연을 기획하였고, 공연은 성황리에 진행되어 녹음까지 되었다. 이 녹음은 몇 달이 지나 음반으로 발매되었고, 그렇게 발매된 앨범 “At Folsom Prison”은 조니 캐시를 대표하는 명반이 되었다. “Hurt” 뮤직비디오에서도 그가 감옥에 갇히는 장면들이 스치는데, 이 뮤직비디오는 조니 캐시가 생전 마지막으로 촬영한 영상이라서 더욱 의미심장하다.

 

“Hurt”를 노래하며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조니 캐시의 목소리는 얼마나 겸손한가. 나인 인치 네일스, 이 밴드 이름이 예수님의 손과 발에 박힌 못들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나는 이 설을 좋아한다. 조니 캐시가 노래의 첫 소절을 이렇게 읊조린다. “I hurt myself today.(나는 오늘 자해를 했어.)” 그가 이렇게 노래할 때, 그는 예수님께 못이 박히는 고통을 상상했을 것이다. 그 고통은 예수 이전과 이후의 모든 인류가 지은 죄를 대속하는 고통이다. 자기가 마약이나 다른 습관 등으로 자신을 해칠 때, 그것은 죄가 되어 예수님의 고통에 더해졌을 것이다. 자신을 해치는 버릇을 고칠 수 없는 자기 모습을 돌아보며 얼마나 후회하고, 얼마나 예수님께 죄송했을까.

 

“Hurt”라는 노래 자체엔 신성모독 구절이 없지만, 이 노래를 작곡하는 과정을 따라가면, 거기엔 작곡가 트렌트 레즈너의 마약, 섹스, 폭력, 신성모독 등에 둘러싸인 삶이 있으며, 원곡이 수록된 앨범도 그런 주제들을 노래하는 곡들이 트랙 대부분을 차지한다. 트렌트 레즈너, 그가 삶에서 저지른 온갖 죄악들이 “Hurt”라는 노래를 낳은 셈이다. 조니 캐시, 그의 목소리는 예수님의 은혜를 담아, 죄악의 노래를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으로 바꿔놓았다. 트렌트 레즈너가 자신의 고통과 우울을 솔직하게 노래로 표현한 걸 갖다가, 조니 캐시는 자신의 죄를 솔직하게 예수님 앞에 고백하는 수단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얼마나 놀라운 예수님의 은혜인가.

 

트렌트 레즈너는 이 노래에 예수님을 표현할 생각이 없었지만, 조니 캐시는 원곡 가사에 단어 딱 하나만 바꿔서 예수님을 표현했다. 원곡에 이 가사를 보자. “I wear this crown of shit.(난 이 좆같은 왕관을 써.)” 조니 캐시는 이 구절을 이렇게 바꾸었다. “I wear this crown of thorns.(난 이 가시관을 써.)” 예수님께서 십자가형 선고를 받고 로마 병사들에게 고문 받으면서 쓴 가시관을 의미한다. 이것이 예수님을 의미한다는 건, 이 노래의 뮤직비디오 후반을 보면 더욱 뚜렷하게 알 수 있다. 이 가사에서 여러 번 부르는 “You(당신)”을 예수님이라고 생각하며 이 노래를 다시 들어보자. 얼마나 겸손하고 솔직한 고백이 되는가.

 

내가 주님께 회심했음에도, 내 소설 “환생 릴리스”를 감추지 않고 계속 공개하는 게 옳다는 걸 다시 한 번 더 확신한다. “Hurt”가 예수님의 은혜로 찬양이 된 것처럼, 신성모독으로 가득 찬 내 소설도 예수님의 은혜로 찬양이 될 수 있다. 내가 세례 받고 조니 캐시 “Hurt”가 내 마음에 다시 와 닿게 된 건, 반드시 성령의 이끄심이었다고 생각한다. 예수님께서 내 지난 죄악과 신성모독 모두를 말끔히 용서하셨다는 뜻을 전하고 싶으셨던 거다. “Hurt”를 노래하는 조니 캐시 목소리는 곧, 아버지의 재산을 챙겨 집을 나갔다가 재산을 탕진하고 아버지 곁으로 돌아온 탕자를 떠올리게 한다. 예수님께서 천국을 비유하며 말씀하셨던 그 이야기. 조니 캐시 목소리를 맴도는 따스하고 상냥한 분위기는 마치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 같다. 돌아온 탕자를 환영하며 오히려 잔치를 열어주시는 아버지의 사랑. 하나님은 속삭인다. 네 믿음은 충분하다. 천국에 너를 위한 잔치를 마련해두었다. 이제 천국에서 나와 함께 영원히 살자꾸나.

 

 

▲ 10번 트랙 “Danny Boy”

■ 찬송가란 무엇이며, 대중음악이란 무엇인가

반면 가사 한 번 바꾸지 않고, 악기 하나를 투입하는 것만으로 대중음악을 찬송가로 바꿔놓은 곡들도, 이 앨범에 수록되었다. 6번 트랙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와 10번 트랙 “Danny Boy”가 그렇다.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는 미국 70년대 소울(Soul) 음악을 대표하는 가수, 로버타 플랙(Roberta Flack) 원곡인데, 원곡은 그저 애인에게 불러주는 노래처럼 들리는 반면, 조니 캐시 노래는 여기에 오르간 연주를 투입해, 성령을 만난 사람의 환희를 표현하는 곡처럼 들리도록 바꿔놓았다. 구약성경 아가, 이 책은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역사에서 오랫동안 기독교 정경 목록에서 빠져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요즘엔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를 보면, 남녀 사이에 에로스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커지면 에로스처럼 뜨거운 감정이 될 수 있는 것이고, 에로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편이 될 수 있다.

 

“Danny Boy”에서도 오르간 연주가 돋보인다. 오르간이란 참 신기한 악기다. 오르간이라는 악기는 그 존재 자체로 기독교와 오랜 시간 함께한 역사를 떠올리게 한다. “Danny Boy”는 아일랜드 민요에 영국인 프레데릭 웨더리(Frederic Weatherly)가 1913년에 가사를 붙인 곡이다. 그러나 아일랜드나 영국보단 미국에서 훨씬 널리 부르는 곡이었다. “Danny Boy”는 이런 가사로 시작한다. “Oh, Danny boy, the pipes, the pipes are calling.(오 대니야, 파이프가, 파이프가 널 부르는구나.)” 여기서 “Pipes”는 주로 피리로 해석되지만, 조니 캐시 노래에선 왠지 교회 오르간에 붙은 파이프를 연상시킨다. 오르간은 자녀들을 교회로 초대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목소리처럼 들린다. 오르간 연주 하나만 넣었을 뿐인데, 자녀를 그리워하는 부모를 그린 민요가, 자녀들을 부르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담은 찬송가로 변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지상 부모 마음이나 하늘 부모 마음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거 같다.

 

가사 하나 바꾸지 않고, 이렇게 오르간 연주만 넣어서, 가요와 민요를 찬송가로 바꾸는 걸 보면, 대중음악과 찬송가를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가요도 그 안에 하나님을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서 부른다면, 얼마든지 찬송가로 부를 수 있는 것 아닐까. 심지어 신성모독 노래도 찬송가로 바꾸는데 말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형식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그 안에 담긴 마음이라는 걸 생각하게 된다. 이글스(Eagles) 원곡 “Desperado”가 “Danny Boy” 다음 트랙으로 이어진다. 이거 왠지 의미심장하다. 마치 자신을 하나님 아버지께서 애타게 찾는데 방황을 멈추지 않는 말썽꾸러기로 그리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 “Bridge Over Troubled Water”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 원곡

 

▲ 4번 트랙 “Bridge Over Troubled Water (with Fiona Apple)”

■ 우리는 다시 만나리

이 앨범에서 조니 캐시가 부른 노래들과, 함께 노래한 가수들을 둘러보면, 반백년 노래했다고 권위 내세우며 으스대는 태도가 그에겐 전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다양한 음악을 자기 색깔로 재해석하여, 실험하고 도전하는 노익장을 보여준다. 일단 기독교 신자면서도 나인 인치 네일스 노래를 부른 것도 그렇고, 디페시 모드(Depeche mode) 원곡 “Personal Jesus”를 노래한 것도 흥미롭다. 원곡은 89년에 나온 곡으로, 신디사이저 연주가 돋보이는 댄스 음악이었는데, 이걸 포크 음악 특유의 목가적인 느낌으로 재해석한 건 눈여겨볼만하다. “Personal Jesus”는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 밴드가 2004년에 재해석하여 발표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마릴린 맨슨 노래는 점점 심해지는 기독교 내에 배금주의를 풍자하는 느낌이라면, 조니 캐시 노래는 친구처럼 친근하게 개인적으로 다가오는 예수님을 찬미하는 느낌이다.

 

후배 가수들과 함께 노래하며, 후배들을 돋보이게도 했다. “Desperado”에선 원곡을 작곡한 돈 헨리(Don Henley)와 함께 노래하기도 했고, 행크 윌리엄스(Hank Williams) 원곡 “I'm So Lonesome I Could Cry”는 닉 케이브(Nick Cave)와 함께 노래했다. 비틀즈(The Beatles) 노래도 불렀는데, 1960년에 등장한 비틀즈도 조니 캐시에 비하면 6년 후배라는 걸 보면, 조니 캐시가 어느 정도로 오래 전부터 활동했는지 감이 잡히는가. “In My Life” 원곡은 비틀즈 멤버들의 젊은 시절이 들어간 반면, 조니 캐시 노래는 좀 더 세월과 관록이 묻어난다. 편곡도 좀 더 느리고 차분한 느낌이라서, 지난 세월을 돌아보는 노인의 감정이 더욱 깊이 와 닿는다. 가사 자체도 사실, 젊은 사람들이 부르는 것보다 노인이 부르는 게 훨씬 와 닿는다. 후배 가수들과 협업하고, 포크 이후에 나온 음악들에 도전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그는 진정한 미국 대중음악의 역사라는 걸 실감한다. 후배 가수들에게도 존경을 표현하며, 자신이 만든 과거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능숙하게 인수인계하며, 진정한 역사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멋지다.

 

후배 가수와의 협업이 가장 돋보이는 곡은 4번 트랙 “Bridge Over Troubled Water”다.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 원곡으로, 피오나 애플(Fiona Apple)과 함께 노래했다. 피오나 애플, 그는 90년대 미국 대중음악 역사에서 중요한 가수이자 작곡가로 불린다. 남을 향해 희망을 노래하기보단, 자기 우울과 고통을 표출함으로써 공감하는 식으로 위로를 전하는 가수였는데, 여기선 희망과 격려를 노래하는 피오나 애플을 만날 수 있어 새롭다. 피오나 애플 혼자서 이 노래를 불렀다면 좀 어색하게 들릴 텐데, 조니 캐시 목소리가 거기에 얹어지며 노래를 능숙하게 조율한다. 피오나 애플 특유의 우울한 음색에서 희망을 이끌어내는 조니 캐시, 그의 관록엔 감탄을 금할 수 없다. 그렇게 조니 캐시는 마지막 앨범을 남기고, 자신의 업적을 후배들에게 맡긴다. 조니 캐시는 이 앨범 마지막 트랙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We'll meet again, don't know where, don't know when. But I know, we'll meet again, some sunny day.

 

우리는 다시 만나리, 언제 어디서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다시 만나리, 어느 화창한 날에.”

 

 

▲ “In My Life” 비틀즈(The Beatles) 원곡

 

▲ 8번 트랙 “In My Life”

종교가 무엇이든, 종교가 있든 없든, 모든 사람은 수도자다. 하나님께 향하는 길을 간다는 게, 별 게 아니다. 그저 진정한 나를 찾고,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단지, 걷는 길이 다를 뿐이다. 나는 예수님의 은혜가 필요해서 기독교로 돌아온 것이고. 사람마다 종교가 다르고 믿음이 달라도, 우리는 모두 진정한 나를 찾고 행복해지는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우리 모두는 종교가 무엇이든 결국, 사랑 안에서 만날 것이다. 사랑의 햇살이 찬란한 어느 날, 우리는 만날 것이다. 그렇게 요한계시록을 노래하던 첫 트랙의 불길한 예감은 정반대로, 구원의 화창한 햇살이 되어 돌아왔다. 천국에서 햇살처럼 화창하게 미소 짓는 조니 캐시를 만날 수 있기를 바라본다. 그가 여기에 남긴 희망을 기억하며.

 


트랙리스트

1. The Man Comes Around
2. Hurt
3. Give My Love to Rose
4. Bridge Over Troubled Water (with Fiona Apple)
5. I Hung My Head
6.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
7. Personal Jesus
8. In My Life
9. Sam Hall
10. Danny Boy
11. Desperado (with Don Henley)
12. I'm So Lonesome I Could Cry (with Nick Cave)
13. Tear Stained Letter
14. Streets of Laredo
15. We'll Meet Again (with The Whole Cash G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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