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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도어즈(The Doors) - Waiting for the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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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명반 에세이 17: 도어즈(The Doors) - Waiting for the Sun


[ 우수에 젖은 눈빛 속에 고요히 일렁이는 광기 ]



■ 도어즈를 좋아하시는 부장님


내 고등학생 시절, 너바나(Nirvana)를 통해 록 음악에 대해 본격적으로 알게 되면서 여러 밴드를 알게 되었다. 도어즈(The Doors)도 그런 밴드 중 하나였다. 그 당시의 나는 일단 조금이라도 유명한 밴드는 시대와 스타일을 막론하고 모두 들어봤다. 나를 도어즈에 빠져들게 만든 첫 번째 곡은 “Light My Fire”였다. 7분 가까이 되는 긴 곡 길이에도 불구하고, 듣는 내내 전혀 지루하지 않았음에 충격 받은 곡이었다. 도어즈 정규 1집도 CD로 구입해서 듣게 되었다. 그러나 내 솔직한 감상으로는 “Light My Fire”만큼 인상 깊은 곡은 그 앨범에 없었던 것 같다. 또 다른 명곡으로 자주 거론되는 “The End”조차도 그 당시의 나에겐 그저 지루한 노래에 불과했다.


시간이 흘러 이십대 중반에 접어든 나는 음악 취향이 많이 바뀌었음을 실감했다. 예전보다 더욱 다양한 음악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좋아하는 음악이 자극적인 취향보단 깊이를 추구하는 취향으로 변했다. 그걸 인지한 나는 다시 도어즈를 들어보기로 마음 먹었고, 다시 들어본 도어즈 정규 1집은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예전에 내가 지루하게 여겼던 많은 노래에서 이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깊이가 느껴졌다. 앨범에 담긴 수록곡 전부가 명곡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The End”에서 느린 연주 속에서 드러나는 긴장감. 그 긴장감 속에 감춰진 고요한 광기. 그것은 오직 도어즈만이 내뿜을 수 있는 특색이었다. 1집뿐만 아니라, 1집과 함께 도어즈의 명반으로 자주 거론되는 도어즈의 마지막 정규앨범 “L.A. Woman”도 들어보았다. 그 앨범도 역시 명반이었다. 도어즈가 점점 좋아지기 시작했다.


한참 도어즈에 대해 알아가고 있을 때, 내가 다니던 회사에 새로 부장님으로 취임하신 분이 오셨다. 솔직히 나는 그분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분 성격이 워낙에 자기주장이 강하시고, 남의 일에 간섭하시는 걸 좋아하시는 분 같았다. 남한테 피해주는 걸 싫어해서 항상 조용히 행동하려 노력하고, 남에게 간섭하는 것도, 간섭 받는 것도 꺼리는 내 성격과는 정반대였다. 물론 그분도 내가 항상 마음에 들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그분을 대하면서 앞으로 회사 생활이 좀 힘들어지겠다는 생각을 했다. 새로 오신 부장님과 하루하루를 지내다가, 어느 날엔 점심을 먹으면서 음악 얘기가 나왔다. 과장님께서 부장님의 음악 취향을 물어보자, 부장님은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이 도어즈라고 말씀하셨다. 옆에서 듣던 과장님께서는 놀란 표정으로 날 보며 “너도 도어즈 좋아하지 않냐?”라고 물었다. 나는 “도어즈”라는 단어에 순식간에 새로 오신 부장님에게 깊은 동질감과 친근감을 느꼈다.

 

 

 

▲ 3번 트랙 “Not to Touch the Earth”



 Not to Touch the Earth


부장님과 나는 도어즈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내가 1집과 마지막 앨범을 좋아한다고 말했고, 아직 많이 알지는 못하고 차근차근 알아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부장님은 1집과 마지막 앨범보다는 2집과 3집을 들어봐야 한다고 강하게 말씀하셨다. 2집과 3집이야 말로 도어즈의 음악적 정체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앨범이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다니는 회사 특성상, 음악을 들을 일이 많았다. 부장님이 내게 도어즈 정규 3집을 한 번 들어보자며, 내게 그 앨범을 재생하라고 시켰다. 나는 스마트폰으로 오디오 시스템과 연결해서 도어즈 정규 3집 “Waiting for the Sun”을 재생했다. 1번 트랙 “Hello, I Love You”는 내가 베스트 앨범을 통해 자주 들었던 노래라서 익숙했다. 그 다음 2번 트랙 “Love Street”는 잔잔하면서도 경쾌한 느낌이 돋보이는 곡이었다.


부장님께서는 3번 트랙 “Not to Touch the Earth”에서 이 앨범의 최고 진가가 드러나는 노래라고 말씀하셨다. 부장님께서는 볼륨을 그 전보다 두 배 이상 더 높이셨다. 처음부터 곡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광기가 폭발하기 직전의 긴장감이 흘렀다. 잔잔하면서도 불안한 분위기가 곡 도입부에서 감지되었다. 비트가 곡이 진행될수록 점점 강해졌다. 로비 크리거(Robby Krieger)의 기타와 레이 만자렉(Ray Manzarek)의 건반, 존 덴스모어(John Densmore)의 드럼, 짐 모리슨(Jim Morrison)의 보컬까지. 도어즈 멤버 전원이 광기에 압도되어 기괴한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앰프의 무지막지한 볼륨 때문에 스피커와 사무실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시끄럽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들의 힘은 나를 압도시켰다. 그들의 광기가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모든 걸 다 쏟아내며 폭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자 곡이 끝났다.


“Not to Touch the Earth” 이 곡 하나로, 내가 도어즈에 대해 갖고 있던 기존의 모든 이미지가 전부 뒤집어졌다. 원래부터 도어즈의 음악을 좋아했지만, 이 곡 하나로 내 마음속의 도어즈는 단순히 좋아하는 밴드를 넘어서, 경외의 대상으로 진화했다. 앨범은 계속해서 진행되었지만, 충격이 아직 가시질 않아 다음 곡에 집중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업무에 집중해야 할 시간이었다. 업무를 하자. 나머지는 내가 따로 천천히 들어봐야지. 그런 생각을 하며 남은 업무를 처리했다. 다음날 출근하면서 그 전날에 다운로드 받아둔 “Waiting for the Sun” 앨범을 들었다. 처음 들었을 땐 귀에 잘 들어오지 않던 4번 트랙부터 그 이후 나머지 트랙들이 귀에 들어왔다. 과연 명반이었다.



  

▲ 도어즈(The Doors) 멤버들. 좌측부터 존 덴스모어(John Densmore: 드럼), 로비 크리거(Robby Krieger: 기타), 레이 만자렉(Ray Manzarek: 키보드), 짐 모리슨(Jim Morrison: 보컬) 

  

  

 Summer's Almost Gone


도어즈의 노래 중에는 뜨거운 태양이나 여름을 주제로 한 노래들이 많다. 그런데 이상하게 여름보단 겨울에 더 많이 듣고 싶어진다.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 깊게 생각해보았다. 사람들은 흔히 겨울에는 “차라리 여름이 더 나았어”라고 말하고, 막상 여름이 되면 “차라리 겨울이 더 나았어”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가 겨울이 되었을 때 여름을 그리워하는 이유는 여름의 덥고 습한 느낌을 그리워하는 게 아니다. 우린 겨울의 추위와 건조함에 지쳐, 여름의 촉촉하고 따스한 느낌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들이 노래하는 여름은 스멀스멀 피어나는 아지랑이를 바라볼 때 느껴지는 묘한 멜랑콜리다. 그들이 노래하는 여름은 더위가 한창 진행되며 답답하고 습해지는 여름이 아니다. 따스함에서 뜨거움으로 넘어가는 초여름의 느낌과, 뜨거움이 조금씩 수그러들며 서늘함으로 변하는 늦여름이다. 우리가 겨울에 그리워하는 여름, 딱 그런 느낌의 여름을 노래하는 밴드가 도어즈다.


늦여름을 노래한 곡이 이 앨범 4번 트랙에 수록된 “Summer's Almost Gone”이다. 3번 트랙의 넘치는 광기를 가라앉히는 차분한 곡이다. 하지만 마냥 차분하지는 않고, 어딘가 뜨거운 격정이 느껴진다. 끈적한 블루스(Blues) 풍의 기타 연주는 늦여름에 피어나는 희미한 아지랑이를 떠올리게 한다. 여름은 흔히 인간의 삶에서 사춘기 및 청년기를 상징한다. 노래 제목이 “여름이 거의 지나갔다”라는 뜻이다. 내가 그 노래를 처음 들을 때가 이십대 중반에서 이십대 후반으로 넘어가는 시기였다. 딱 나를 위한 노래 같았다. 청년이 아니라고 말하기에도 애매하지만, 청년이라고 말하기엔 나이가 좀 들어버린 그런 상황.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의 가장 격정적이었던 십대 후반과 이십대 초반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지난 추억이 뜨거운 아지랑이처럼 피어난다. 늦여름의 한 가운데에서 가장 뜨거운 여름을 다시 떠올려본다. 그 때의 나는 어떠했는가. 우수에 젖는다.

 

 

 

▲ 4번 트랙 “Summer's Almost Gone”

 

 

 

▲ 10번 트랙 “Yes, The River Knows”


여름이 다 지나도 나에겐 아직 삶의 희망이 남아있다. 5번 트랙 “Wintertime Love”는 추운 겨울에도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면 얼마든지 따스한 겨울을 보낼 수 있음을 느끼게 만든다. 6번 트랙 “The Unknown Soldier”에선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전한다. 베트남전이 한창 진행되던 1968년에 발표된 노래다. 게다가 도어즈가 미국 밴드다 보니,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의 메시지를 더욱 간절하게 전하고 싶었을 것 같다. 나라와 이데올로기를 위해 불쌍하게 희생된 “이름 모를 병사”를 추모하며, 전쟁을 멈춰야 한다고 말한다. 21세기에도 나라와 이데올로기로 인해 무고하게 피를 흘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우리가 그 수많은 “이름 모를 병사”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추모는 전쟁을 멈추는 일밖에 없다며, 도어즈는 강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노래한다. 도어즈의 호소력은 1968년이나 21세기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7번 트랙 “Spanish Caravan”과 8번 트랙 “My Wild Love”는 이 세상을 넘어서 또 다른 환상의 세계를 노래하는 것 같다. 물론 가사에서 그런 세계를 묘사하진 않지만, 밴드의 연주와 짐 모리슨 특유의 나른한 목소리를 듣고 있다 보면, 몽환적인 기분에 이끌려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9번 트랙 “We Could Be So Good Together”의 잔잔하면서도 흥겨운 느낌을 지나면, 10번 트랙 “Yes, The River Knows”에 도착한다. 강렬하거나 선명하지 않은 피아노 음이, 나른한 짐 모리슨의 목소리와 함께 곡의 시작을 알린다. 곡의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희미한 음이 연속된다. 햇살을 받아 은은하게 반짝이는 강물을 연상시킨다. 고요하고 유유히 흘러 바다가 되는 강물의 흐름을 연상시킨다. 이 노래를 들으며 겨울의 강가를 걸어보았다. 이미 여름이 찾아온 것 같았다. 내 인생 속에 흘렀던 넘치는 광기도, 뜨거운 격정도, 모두 강물 속에 녹아들었다. 내 인생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우수에 한참 빠져들 때쯤, 마지막 11번 트랙 “Five to One”이 다시 현실의 격정 속으로 인도하며 앨범이 끝난다.



 짐 모리슨


나는 짐 모리슨을 좋아한다. 특히 그의 눈빛을 사랑한다. 그의 눈을 들여다보면, 고요한 우울감과 격정적인 광기가 동시에 느껴진다. 그의 시선은 언제나 이 세계가 아니라 외계를 바라보는 것 같다. 그의 나른한 목소리 또한 사랑한다. 그의 목소리는 언제나 무거운 공기로 여유롭게 공중을 떠다니는 것 같다. 하늘에 떠가는 풍선 같기도 하고, 바다를 떠다니는 해파리 같기도 하다. 그의 눈빛과 목소리는 온갖 깊은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부장님과 일하면서 좀 안 맞고, 답답한 기분이 들 때마다, 그분도 나처럼 도어즈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분도 나처럼 짐 모리슨의 눈빛과 목소리를 사랑했음을 떠올린다. 그럼 모든 답답한 기분이 한 번에 날아간다. 그분도 나처럼 짐 모리슨과 같은 깊이를 추구하고 사랑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그분에게 놀라운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도어즈가 1968년에 발표한 정규 3집 앨범 “Waiting for the Sun”은 내가 짐 모리슨의 눈빛과 목소리에 더욱 애착을 갖게 만든 앨범이다. 이 앨범은 도어즈의 다른 앨범에 비해 부드러운 서정성이 한층 더 강조된 앨범이다. 그러나 지루한 느낌은 전혀 없고, 오히려 도어즈 특유의 감성에 한껏 빠져들게 만든다. 짐 모리슨의 나른한 목소리와 기묘한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가장 잘 알려주는 앨범이다. 로비 크리거의 끈적한 블루스 풍 기타와, 레이 만자렉의 샤먼 의식을 연상시키는 신비로운 건반 연주, 때론 여유롭게, 때론 강력하게 드럼을 터치하는 존 덴스모어까지, 짐 모리슨과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짐 모리슨의 나른한 목소리와, 도어즈의 광기어린 우수에 실컷 젖고 싶다면, 주저하지 말고 이 앨범을 접해보자. 짐 모리슨의 기묘한 눈빛이 뭘 바라보고 있는지 단숨에 깨닫게 될 것이다.

    


트랙리스트


1. Hello, I Love You

2. Love Street

3. Not to Touch the Earth

4. Summer's Almost Gone

5. Wintertime Love

6. The Unknown Soldier

7. Spanish Caravan

8. My Wild Love

9. We Could Be So Good Together

10. Yes, The River Knows

11. Five to 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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