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명반 에세이 22: 에고펑션에러(Ego Function Error) - EGO FUN SHOW
[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발명품 대잔치 ]
■ 닥터 슬럼프
일본 애니메이션 “닥터 슬럼프”엔 슬럼프 박사라고 하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슬럼프 박사는 명석한 두뇌로 다양한 발명품을 만들어냈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의 취향에 맞는 여성형 메이드 로봇을 만들고자 했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키 큰 미녀에 순종적인 성격으로 말이다. 그는 완성된 메이드 로봇의 아름다운 자태를 꿈꾸었다. 며칠 밤을 새며 메이드 로봇 개발에 열을 올렸지만, 개발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어찌된 일인지 완성된 로봇은 자신이 꿈꾸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로봇은 땅딸막한 어린 소녀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게다가 성격은 얼마나 천방지축 까불어대는지, 더 골치 아픈 건 힘이 아주 장사라서 지구도 주먹 한 방에 두 동강 낼 정도라는 사실이다! 슬럼프 박사 본인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통제불능의 로봇 병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박사는 비록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나온 로봇이지만, 그 로봇 “아라레”와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며 아라레에게 정들어간다. 슬럼프 박사가 살고 있는 “펭귄 마을” 사람들도 아라레와 두터운 우정을 쌓게 된다. 아라레는 때론 박사가 만든 발명품을 지나치게 잘 가지고 놀아서, 연구실은 물론이고 마을까지 초토화 시킨다. 그러나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기도 하고, 지구를 침략하려는 외계인들에게 맞서 지구를 구하는 등, 영 미워할 수만은 없는 오히려 사랑스러운 모습들을 보여준다.
▲ 일본 애니메이션 “닥터 슬럼프”
“닥터 슬럼프” 같은 매력을 뿜어내는 음악이 바로, 에고펑션에러(Ego Function Error)의 음악이다. 요즘명반 다른 글에서 이미 에고펑션에러의 앨범을 소개한 바 있다. 그 글에서 나는 에고펑션에러를 한국 록 음악계의 매드 사이언티스트로 칭했다. 그렇게 칭한 것처럼, 그들의 음악은 언제나 예상치 못한 색다른 실험을 펼친다. 기발한 아이디어들로 다양한 발명품을 만들어 내는 슬럼프 박사처럼 말이다. 에고펑션에러는 자신들조차도 자신들의 음악적 실험이 얼마나 황당한 결과물로 태어날지 예상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기에 에고펑션에러의 음악은 이전에 들었던 그 어떤 음악들보다도 기발하게 느껴졌다.
■ 사이키델릭 펑크
그런 에고펑션에러가 지난 2월 28일에 정규 2집 “EGO FUN SHOW”로 다시 돌아왔다. 정규 1집과 EP를 듣고 상당히 좋은 인상을 받아서, 정규 2집이 평작 이상이 되리라는 생각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런데 막상 들어보니, 내 생각이 틀렸다. 이건 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명반이었던 것! 이전까지 보여주었던 발랄한 연주와 가공할 호소력은 여전했다. 그것들은 분명 아라레의 통제불능 성격과 지구를 두 동강내는 파워를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변했다. 변해도 정말 많이 변했다. 나도 전혀 예상하지 못할 만큼 변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 앨범에선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노련미가 느껴졌다. 이전의 작품들은 위에서도 말했듯이, 자신들조차도 얼마만큼 황당한 결과물이 나올지 예상 못하고 만드는 음악 같았다. 그런 황당함에서 오는 신선한 재미. 그것이 에고펑션에러의 주된 매력이었다. 이번 앨범에선 전혀 다른 매력을 선보인다. 에고펑션에러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했던 “황당함”은 거의 느낄 수 없었다. 황당함은 없었지만 그래도 놀라웠다. 에고펑션에러가 그토록 깊은 노련미를 뿜어낼 수 있다는 걸 몰랐기 때문이다. 황당함과는 전혀 다른 지점에서 “예상치 못한 부분”을 발견했다. 또 다른 기발함이었고, 또 다른 반전이었다.
▲ 에고펑션에러(Ego Function Error) 멤버들. 좌측부터 김민정(보컬), 이승현(베이스), 김꾹꾹(기타). 앉아있는 사람, 곽원지(드럼)
좀 더 전문적인 얘기로 들어가 보자. 에고펑션에러는 등장부터 자신들의 음악을 “사이키델릭 펑크(Psychedelic punk)”라는 용어로 정의했다. 그들이 내세우는 사이키델릭 펑크라는 건 뭘까. 분명 록 리스너들이 흔히 알고 있는 사이키델릭 록(Psychedelic rock)과 펑크 록(Punk rock)의 합성일 것이다. 그 음악의 정확한 형태는 예측하기 힘들지만, 아무튼 신비롭고 과격한 음악이라는 것 정도는 알 것 같다. 그들의 음악은 본명 신비롭고 과격했다. 그런데 나의 솔직한 감상을 말하자면, 사이키델릭 록이나 펑크 록, 둘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사이키델릭 록이라고 한다면 좀 양보해서, 정통 사이키델릭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우리나라 록 밴드 “산울림” 같은 출처를 알기 힘든 변종 사이키델릭 록 같았다. 펑크라고 한다면 좀 양보해서, 이것도 정통 펑크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일본의 롤리타 펑크(Lolita Punk) 밴드 “쥬디 앤 마리(JUDY AND MARY)” 같았다.
그들은 정통보단 변종, 이단, 이런 느낌이 훨씬 강했다. 솔직히 펑크나 사이키델릭보다는 “벨벳 언더그라운드(Velvet Underground)”나 “소닉 유스(Sonic Youth)” 같은 아방가르드 록(Avant-garde rock)이라고 보는 게 더 맞는 거 같았다. “퍼블릭 이미지 리미티드(Public Image Limited)”나 “조이 디비전(Joy Division)” 같은 포스트 펑크(Post punk) 같기도 하고. 그런데 이번 앨범은 다르다. 그들이 애초에 추구하고자 했던 “사이키델릭 펑크”의 윤곽이 훨씬 선명해진 느낌이다. 사이키델릭 록과 펑크 록의 정통성이 동시에 느껴졌다. 사실 펑크 록이라는 것도 사이키델릭 록을 비롯한 기존의 록 음악 형식을 모두 해체한 이단으로서 탄생했다. 그래서 사이키델릭 록과 펑크 록을 섞는다는 건, 물과 기름을 섞는 것처럼 무모해 보였다. 그런데 두 장르의 정통성이 하나의 음악에서 모두 느껴지는 결과물을 만들다니!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으랴.
▲ 2번 트랙 “Lazy Cat” 뮤직비디오
■ 발명품 대잔치
이 앨범의 사운드는 주로 이런 식이다. 일단 기타 리프는 사이키델릭 록에 쓰이는 끈적끈적한 주법을 주로 사용한다. 그러나 리프의 호흡을 짧게 만들고, 그것을 빠르게 연주함으로써 펑크록의 느낌을 가미했다. 이런 방식으로 사이키델릭 록과 펑크 록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했다. 이런 방법도 쓰지만, 보컬이 들어가는 부분엔 펑크록 주법으로 연주하고, 보컬이 빠진 브릿지 부분은 사이키델릭 록 주법으로 연주를 바꾸는 방법도 쓴다. 이런 기타리스트의 주법 변화를 능숙하게 잘 따라가는 베이스, 드럼, 보컬 등도 인상 깊다. 나머지 포지션이 기타리스트의 이런 변화를 능숙히 따라가지 못한다면, 이런 변화는 필시 어색한 것이 되었으리라. 에고펑션에러는 이전과는 다른 스타일을 발명했다. 그 발명은 에고펑션에러뿐만 아닌, 다른 밴드로 넓혀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었던 기발한 스타일이었다. 그들은 사이키델릭 펑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발명한 스타일을 이용해, 여러 새로운 발명품을 선보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발명품을 신나게 늘어놓는다. 그래서 이 앨범은 발명품의 향연이라 할 수 있다.
1번 트랙 “에고펑쇼”는 50년대 로커빌리(Rock-a-billy) 스타일의 기타 리프가 돋보이는 곡이다. 로커빌리 스타일을 중심으로 과감한 연주로 펑크록 느낌도 주고, 여러 복잡한 기교를 더해 사이키델릭 록 느낌도 더했다. 록 음악의 태동기 느낌으로, 앨범의 첫 관문을 유쾌하게 열어간다. 2번 트랙 “Lazy Cat”은 펑크록의 색채가 강한 곡이다. 그러나 연주가 여유로운 느낌이라, 펑크록 특유의 과격함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여유로우면서도 신나는 느낌으로 즐길 수 있는 곡이다. 브릿지 부분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베이스 기타 연주가 인상적이다. 3번 트랙 “잔다리보행기”는 위에서 말한, 이번 앨범에서 새로 발명한 기타 주법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곡이다. 펑크 록과 사이키델릭 록의 느낌을 동시에 느끼기에 가장 좋은 곡이다.
▲ 7번 트랙 “난 모른다오”
이번 앨범에선 기타 주법의 변화도 눈에 띄지만, 보컬의 변화도 인상적이다. 에고펑션에러의 보컬 “김민정”은 이번 앨범에서 대폭 향상된 보컬 실력을 선보인다. 원래 노래를 잘하긴 했지만, 이번 앨범에서 성량도 더 단단해지고, 표현력도 더 깊어졌다. 게다가 이 앨범에 실린 가사들은 대부분은 김민정 주도 하에 써졌다. 가사의 재치와 메시지 전달 측면에서도 더욱 깊어진 호소력을 느낄 수 있다. 이 앨범에서 가장 선동적인 펑크록 넘버라고 할 수 있는 4번 트랙 “단속사회”를 보자. 가사에선 나쁜 일 당하지 않게 조심하라는 얘기만 하지 말고, “범죄자나 단속하세요.”라고 가해자 위주로 돌아가는 사회를 꼬집는다. 직진적인 사운드와 잘 어울리는 직설적인 가사가 인상적이다. 가사의 재치와 능숙한 보컬 능력이 호소력 깊은 메시지를 만든다.
5번 트랙 “기분”은 4번 트랙에 비해 분위기가 많이 차분해진 곡이다. 전혀 다른 분위기에도 능숙하게 보컬을 표현하는 능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보컬 김민정이 얼마나 다양한 표현력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가사 측면에선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우수한 보컬에 이끌려, 청자는 보컬이 노래하는 질문에 같이 고민하게 된다. 6번 트랙 “말괄량이 가시나”는 스카(Ska) 리듬을 주로 사용하며 색다른 느낌을 준다. 여유롭게 퍼지는 스카 리듬과 함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즐겁게 회상하는 가사가 흥겨움을 더한다. 후렴구는 직진적인 펑크 사운드로 돌변하는데, 여기서 가사는 회상에서 현재의 삶으로 넘어간다. 그러면서 지금의 삶도 꽤 괜찮다는 식으로 얘기하는데, 활기찬 펑크록 사운드와 결합하여 폭발적인 감동을 자아낸다. 사운드와 가사의 궁합을 극도로 끌어올린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 10번 트랙 “비로소, 별” 뮤직비디오
■ 변화 속에서도 여전해야 할 것은 여전하다
앞에서 에고평션에러의 변화에 대해 얘기했다면, 이번엔 에고펑션에러의 여전한 면에 대해 얘기해야겠다. 놓지 말았으면 좋겠다 싶었던 엽기 코드에 관한 얘기다. 7번 트랙 “난 모른다오”는 예측불가 다양한 스타일의 연주로, 청자의 귀와 머리에 신선한 느낌을 퍼붓는다. 가사의 거의 반을 차지하는 의성어가 엽기적인 느낌을 더한다. 8번 트랙 “참다랑어”는 제목 그대로 참다랑어를 찬양하는 곡이다. 록 밴드가 느닷없이 참다랑어를 찬양하는 게 엽기적이다. 역시 그들은 여전하다. 능글맞은 기타가 참다랑어의 헤엄을 유쾌하게 묘사한다. 베이스 기타는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참다랑어의 통통한 몸매를 표현한다. 활기차게 터지는 드럼 소리는 참다랑어의 씩씩한 모습을 표현한다. 제목과 가사와 연주가 삼위일체, 완벽한 조화다. 9번 트랙 “Psychedelic Love”는 가사가 제목을 잘 표현한다. 가사는 환상 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엽기적인 이미지들로 가득하다. 거기에 퍼즈톤 기타 연주가 유쾌하게 울려 퍼진다.
그들은 엽기 코드만 여전한 게 아니다. 1집 수록곡 “몽유병”에서 보여준 진지한 호소력을 뿜어내는 곡도 수록되었다. 10번 트랙 “비로소, 별”이다. 이 곡을 작곡한 에고펑션에러 기타리스트 “김꾹꾹”은 원래 밝은 느낌으로 작곡했었는데, 보컬 김민정이 곡에서 이별하는 가사가 떠올라서 이별에 관한 노래가 되었다고 한다. 잔잔히 울려 퍼지는 악기 위에 보컬이 담담하게 얹어진다. 호소력은 강렬하지 않게, 편안하게 다가온다. 애수가 천천히 내 마음 속에 퍼진다. 때론 강렬한 호소보다, 이런 부드러운 호소가 더 마음에 깊게 올 때가 있다. 또 그런 게 더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을 잘 포착한 곡이다.
11번 트랙 “바보들의 왕”은 사이키델릭 록과 소닉 유스 스타일의 아방가르드 노이즈가 결합한 곡이다. 1집 수록곡 “어떤 날”과 “파인”에서 김꾹꾹의 광기어린 기타 연주가 인상 깊었는데, 이번 11번 트랙이 그런 광기어린 기타 연주를 완벽히 계승한다. 그러나 언제나 기발한 기타 연주를 보여주는 그답게, 이전의 스타일을 답습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곡들보다 훨씬 묵직한 사운드와, 훨씬 끈적끈적한 연주를 들려준다. 지난 에고펑션에러 글에서 30분이 넘는 “에러잼 (Error Zam)”이라는 곡을 극찬한 바 있다. 30분이 넘는 초특급 대곡이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는 곡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김꾹꾹의 기타 연주 때문이기도 하다. 그의 기발한 연주 스타일이 한 곡 안에서 다양하게 펼쳐지니 지루할 틈이 없었다는 얘기다. 그런 예측불가 기타 연주를 이번 앨범 수록곡 “바보들의 왕”에서도 어김없이 만나볼 수 있다. 물론 곡 길이는 30분을 넘지 않으니, 지레 겁먹지 않아도 된다.
▲ 1번 트랙 “에고펑쇼”
■ 고마운 매드 사이언티스트
매드 사이언티스는 고독하다. 남들이 보기에 전혀 쓸데없는 연구나 미친 듯이 해대는 것 같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에게 골칫덩이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과연 매드 사이언티스트는 골칫덩이에 불과할까? 우리가 누리는 교통, 인터넷, 통신, 의료 등의 편의는 모두 매드 사이언티스트들의 미친 연구에서 비롯되었다. 모두가 미쳤다고 말해도, 자신의 신념으로 연구를 지속했던 그들. 그들이야 말로 진정 세상을 윤택하게 만든 사람들이었다. 에고평션에러의 음악은 대중에겐 생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점점 심해지는 대중음악의 획일화에서, 이런 매드 사이언티스트 같은 음악이 없다면, 새로운 음악을 찾는 이들이 뭘 들어야 할까. 에고펑션에러를 비롯한 여러 뮤지션들이 계속해서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하고 있기에, 우리는 좀 더 다양하고 윤택한 뮤직 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에고펑션에러는 더욱 능숙해진 연구로, 새로운 감동을 다시 안겨주었으니, 이런 연구라면 마땅히 환영할만하다. 다수의 취향보단 그저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음악에 충실한 그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트랙리스트
1. 에고펑쇼
2. Lazy Cat
3. 잔다리보행기
4. 단속사회
5. 기분
6. 말괄량이 가시나
7. 난 모른다오
8. 참다랑어
9. Psychedelic Love
10. 비로소, 별
11. 바보들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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