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명반 스페셜 26
2020년을 마감하는 시점에 온 지금, 한 해를 되돌아보면, 올해 가장 큰 이슈는 단연 “코로나19”일 것이다. 코로나19로 우리는 많은 것을 잃었다. 특히 음악과 공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코로나19와 함께 찾아온 “비대면 공연”이라는 방식이 낯설게만 느껴졌을 것이다. 이 또한 뮤지션들의 무대를 즐기기에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곤 했지만, 뮤지션과 직접 교감하고 호흡하며, 관객들과 함께 만들어나가는 무대만의 매력만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뮤지션에겐 공연이 곧 밥줄이요 생명일 텐데, 되도록 모임을 만들지 말고, 사람을 만나지 말아야 하는 현 시국 특성상, 뮤지션들의 공연이 절반 이상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공연이 줄어든 만큼 밥벌이가 힘들어진 뮤지션들이 창작에도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 또한 당연하다.
이런 힘든 상황 속에서도 뜻 있는 사람들이 모여 발표한 컴필레이션 앨범들이 있다. 컴필레이션 앨범의 가장 대표적인 예는 “베스트 앨범”이라 흔히 불리는 히트곡 모음집일 텐데, 그 외에 모금 운동을 목적으로 뮤지션들이 곡을 기부하여 만든 앨범도 있고, 특정 장소나 사건, 업적 등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그와 관련된 사람들이 모여 만드는 앨범도 있다. 그중에서 인생명반이 2020년 올해, 직접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했던 앨범들 세 가지를 여기서 소개해보고자 한다.
* 단체 - 앨범 제목 순으로 표기하였습니다.
■ 빅나인고고클럽 - 빅나인 2019
“빅나인고고클럽”은 대구 로컬 음악을 알리기 위해 2018년 8월에 설립된 웹진으로, 이미 여러 매체에서 다뤄진 바 있다. 본격적인 활동은 2019년 1월부터 시작되었는데, 1년 동안 싱글, 앨범 리뷰는 물론이고, 뮤지션 인터뷰까지 이뤄지면서 나름 꾸준하게 결과물들을 내놓기도 했다. 그 결과물들이 쌓이고 쌓여, 책 한 권으로 만들고도 남을 만큼 분량이 되자, 빅나인고고클럽에서는 자연스레 책 출판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아무래도 책이 나오려면, 충분한 자금이 확보가 되어야 했기에, 크라우드 펀딩으로 이어지는 것 또한 당연했다. 그렇게 봄을 바로 앞에 둔 2월에 크라우드 펀딩을 오픈하게 되었다. 100%를 달성하지 못하면 어쩌나 초조한 마음이 가득해지던 무렵. 펀딩 목표 금액 100% 달성이 이뤄졌고, 3월 1일에 개최하기로 했던 책 출간 기념 공연까지 순조로울 것 같았다.
그런데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지고야 말았다. 펀딩 마감을 나흘 정도 앞둔 시점에서 “신천지 대구 교회 발 코로나19 대규모 확산”이 벌어진 것이다. 대구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공연은 당연히 급히 취소해야 했고, 펀딩 리워드로 걸어두었던 공연 티켓은 당연히 환불이나 그에 상응하는 다른 것으로 대체해야만 했다. 많은 수의 환불을 예상했고, 그 환불이 모금 실패로 이어질까 초조한 마음만 더해져갔다. 다행히 환불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고, 공연은 취소할 수밖에 없었지만, 책은 무사히 투자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게 되었다.
이 앨범은 펀딩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리워드로 제공된 것이며, 아쉽게도 정식으로 출시된 앨범은 아니다. 다만, 이 앨범이 가지는 상징성이 있기에 여기서 소개해본다.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유튜브 및 각종 음원사이트에서 검색을 통해 들을 수 있다.
이 앨범은 2019년 대구 로컬 음악 씬에서 발매된 모든 음원들 중, 빅나인고고클럽에서 가장 우수한 평가를 받아 선별된 16곡이 수록되어 있다. 막상 들어보면, 포크부터 시작해, 모던 록, 힙합, 알앤비, 퓨전 재즈, 복고풍 신스팝까지, 장르의 다양화가 두드러진다. 대구라는 대중음악의 변방에서 이렇게 다양한 음악이 나올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수도 있겠다. 대중에겐 음악적으로 아직 낯선 대구라는 곳을 좀 더 가깝게 느끼도록 하기에, 더없이 좋은 기념비적 앨범이라 할 수 있겠다. 음반은 이제 리워드 지급이 끝났기에 구할 수 없겠지만, 책은 아직 전국 독립서점에 팔고 있으니, 관심이 생긴 사람은 검색을 해보아도 좋을 것이다.
트랙리스트
1. 오늘도 무사히 - 요즘속담
2. 옥민과 땡여사 - 편린들
3. 혼즈 - 당신이 잠든 사이에
4. 이글루 - 부르지 않은 노래
5. 탐쓴 - 동대구역
6. 폴립 - DAWN808
7. 클라우즈블록 - 주안
8. 고루고루 - 빛나는 밤
9. 내색 - Life Versus Love
10. 라이브오 - 특별한 일상
11. 안녕, 엘리사 - Star Light
12. 전복들 - 낡은 지도
13. 심상명 - Rainy Day
14. 모노플로 - 밤
15. 채지화 - 알 수 없는 마음
16. 봉형 - 두 손 가득 담아 건네어 주오
■ GBN Live House - GBN Golden Hits
“GBN 라이브 하우스(GBN Live House)”는 서울 문래동에 위치한 공연장으로서, 대한민국 하드코어 뮤지션들의 아지트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시끄러운 공연장”을 표방하며, 하드코어 펑크, 익스트림 메탈 위주로 공연을 진행하는 곳이다. 지난 10년 간, 공연 문화의 급격한 변화로, 수많은 공연장들이 사라져갔지만, GBN 라이브 하우스는 그 자리를 5년 넘게 꾸준히 지키며, 국내 하드코어 뮤지션들의 보금자리가 되어 주었다.
그러나 GBN도 코로나19의 폭풍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공연이 적어지면서 경영에 어려움 생긴 건 물론이고, 시설의 열약함으로 인해, 폭우를 견디지 못하고 침수되기도 하였다. 이에 GBN 측에선 공연장 시설 개선과 경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크라우드 펀딩을 기획하기에 이른다. 크라우드 펀딩의 리워드로 마련한 것이 이 앨범 “GBN Golden Hits”다.
GBN을 살리기 위해, 총 42팀이 참여하여 42트랙, 러닝타임 72분이라는 경악스러운 볼륨의 앨범이 탄생했다. 인생명반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 “키치스” “초록불꽃소년단”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루디건즈”는 물론이고, “데드버튼즈” “룩앤리슨” “두억시니” “빌리카터” 등이 참여하여 앨범의 퀄리티를 높였다. 이 앨범은 펀딩에 참여한 사람들을 위한 리워드로 제작된 CD와 함께, 해외 음원사이트 “밴드캠프(Bandcamp)”에 공개되었고, GBN이 대한민국 하드코어의 중심지라는 걸 증명하듯, 해외 언론에서도 이 앨범을 다룬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무려 “롤링 스톤(Rolling Stone)”에서! 모금을 위해 제작된 앨범이지만, 현 대한민국 하드코어 씬의 모습을 대표하기에 손색없어 보이는 명반이다.
이후 GBN은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와 더불어 몇 번의 공연을 더 열며 운영을 이어나가게 되었지만, 다시 사태가 심각해지며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자, 결국 코로나19가 끝나면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서,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다. 코로나19가 끝나면 반드시 돌아오길 바라는 바이다.
트랙리스트
1. SCUMRAID - Future
2. Slant - The Trap
3. 키치스 - No Jokes
4. Burn My Bridges - 희망고문
5. FLUSH - Day By Day
6. SKASUCKS - Attitude
7. Full Garage - Chainsaw Truck
8. Look and Listen - Knock It Off
9. Dead Buttons - Tiny Town (Live)
10. Huqueymsaw - Thrash 'til Cum
11. Martyrs - 피에는 피
12. Find The Spot - GBN
13. All I Have - Reviving Light
14. Nahu - Equalized Hatered
15. 두억시니 - Oro Y Oro
16. Dissektist - P.T.S.D
17. 설사 - Lay Off Me
18.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 Start Again
19. No Shelter - 생물학적 아비
20. Thee Mojo - Creature
21. 13steps - 선과 악
22. ...Whatever That Means - Revolving Doors
23. 루디건즈 - SBSK
24. 럼킥스 - 우리는
25. Korose - 요강
26. Fecundation - Orthodox Disease
27. COMBATIVE POST - Out Of Control
28. Gumiho - We Create The Stars
29. 빌리카터 - Don't Give a Shit
30. GAWTHROP - Annie
31. Crawler - 유리
32. Turn For Our - Step On The Bottom
33. CUTT DEEP - Less Talk
34. 초록불꽃소년단 - We Don't Give Up
35. Distruggle - Scars of The Ocean
36. Hwanza - 썩은안전
37. Polluter - Dis-Stress
38. The 1234 Dah - 다정한 사람
39. The Geeks - More Then Ever (Live at GBN)
40. LPP - Little Puppy Princess - Mogwa
41. Arryam - 두 손으로 원을 그려 봐 그걸 뺀 만큼 널 사랑해
42. Tank Boys - I Don't Want To Know (Bonus Track)
■ WEWEWE – We, Do It Together
“생각해봤어, 왜 다 죽이고 싶은지 나는.”
“애리”의 1번 트랙 “나는 깜빡”의 첫 소절이다. 섬뜩한 가사로 시작을 알리는 이 앨범은 여성 록 뮤지션이 속한 밴드만을 모아서, 이 땅에도 이런 탁월한 여성 록 뮤지션들이 있다는 것을 알리고,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와 동시에, 코로나19와 더불어 2020년 대한민국의 거대한 이슈였던 “N번방 사건”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이기도 했다. 록은 흔히 저항의 음악이라 불렸던 만큼, 여성을 대상으로 한 거대 성 착취 사건을 향해 목소리를 내기에, 록만큼 좋은 음악은 없었으리라. 특히, 그 주체가 여성이기에 더욱 돋보였다.
2020년 11월 26일에 각종 음원 사이트를 통해서 세상에 나온 이 앨범은, 여성 록 컴필레이션 앨범이라는 의미를 떼어놓고 보더라도, 수록곡들의 음악성이나, 앨범의 흐름이 탁월해서, 단순히 좋은 록 음악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감상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이 앨범에서 노래하는 가사들은 여성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여성의 이야기가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드러낸다. 그렇기에 우리는 여성의 자아가 표출하는 목소리에 더욱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마저 포함하고 있다.
이 앨범에 참여한 팀들의 명단을 보면, 인디 음악 깨나 들었던 사람들에겐 익숙한 이름들이 많이 보일 것이다. 그만큼 최근 들어, 우리나라 록 음악 씬에 여성들이 발휘하는 영향력이 높아졌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 록 씬 내에는 여성 뮤지션에 대한 편견들이 자리 잡고 있어, 여성 뮤지션들의 활동을 어렵게 만든다는 얘기가 있다. 그런 편견을 타파하기 위해 만들어진 앨범이라 볼 수 있겠다. 이 앨범은 록이라는 주제 아래, 다양한 음악성을 포함하고 있다. 이 앨범의 다채로운 음악을 만끽하며 드는 생각은, 우리나라 음악이 좀 더 풍성해지려면, 이런 여성 뮤지션의 자아가 돋보이는 음악을 더 많이 받아들이고 키워야 되겠다는 것이다. 이 앨범에 참여한 뮤지션들을 포함하여, 이 땅의 모든 여성 뮤지션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자아를 표출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트랙리스트
1. 애리 - 나는 깜빡
2. 에고펑션에러 - 판
3. 향니 - 솔직하게 말해줘요
4. 아마도이자람밴드 - Good Night
5. 아디오스 오디오 - 숨
6. 드링킹소년소녀합창단 - 사적인 복수
7. 천미지 - I've Never Invited Her
8. 황보령 - What Is Love
9. 다브다 - 무궁화
10. 카코포니 - 소녀
11. 티어파크 - Roll Model
12. 빌리카터 - Hell
같이 보면 좋은 기사
▲ 키치스(The Kitsches) - The Kitsches
▲ 에고펑션에러(Ego Function Error) - Epepsh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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